증권 일반
“한국을 사세요”…글로벌 머니 앞에 선 ‘코리아 프리미엄’
- [한국을 세일즈하라]①
저평가 매력에 상법 개정·주주환원 확대…재평가 기반 마련
정책 지속성과 시장 신뢰 갖춰야 외국인 장기자금 유입 가능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정부가 한국 자본시장 전체를 하나의 ‘투자 상품’으로 묶어 글로벌 투자자 유치에 나선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방산, 로봇, K콘텐츠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과 자본시장 제도 개선을 앞세워 “한국을 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동안 한국 기업의 높아진 위상은 국내 증시의 투자 매력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기업이 늘었지만 외국인 자금은 오히려 이탈하면서 한국 주식에 대한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글로벌 투자자를 다시 불러들이려면 한국 시장의 강점을 알리는 동시에 외국인이 떠난 원인과 고질적인 할인 요인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오는 9월 28일부터 10월 16일까지 개최하는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 2026’(Korea Premium Weeks 2026)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정부와 한국거래소, 금융투자업계, 상장기업이 함께 한국 자본시장의 경쟁력과 제도 개선 성과를 알리고 글로벌 투자자에게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시할 예정이다.
기업 경쟁력 못 따라가는 자본시장 평가
올해 국내 자본시장을 바라보는 외국인 투자자의 시선은 한국 기업의 경쟁력과 달리 냉랭했다. 높아진 한국 기업의 위상이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 확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 들어 8월 말까지 국내 주식을 총 156조2700억원어치 팔아치우며 같은 기간 역대 최대 순매도를 기록했다. 그 결과 코스피는 9000포인트(p)를 넘어선 지난 6월 이후 외국인의 대량 매도세로 다시 6000선까지 무너졌고, 코스닥도 700~800선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 시장과 비교하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올해 외국인 투자자는 8월 말까지 일본 주식을 87조원어치 순매수했다. 지난해에도 50조원어치를 사들이며 일본 주식시장의 주요 수급 주체로 자리 잡았다. 반면 한국에서는 개인투자자만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 물량을 상당 부분 받아내며 하락장에서 수급의 한 축을 담당했다.
반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로 대폭 상향했고, 경기선행지수(CLI)는 102.87까지 올라 5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교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도체 수출 증가에 힘입은 결과다.
실물경제와 기업 경쟁력은 앞서가고 있지만 자본시장의 평가는 이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서 괴리가 커진 셈이다. 한국 증시가 글로벌 자금을 다시 끌어들이려면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투자자의 수익으로 연결할 주주환원과 지배구조 개선, 예측 가능한 시장 제도를 함께 증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부도 이런 이유로 지난해부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과 기업의 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동시에 상법 개정에 이어 ▲주주환원 확대 ▲일반주주 보호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장기간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확신을 주는 데 힘쓰는 모습이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정책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지속해서 추진하면서 한국 시장을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 내세우는 국가 차원의 세일즈에 나선 셈이다.
반도체 넘어 로봇·방산·바이오까지
산업계와 증권업계는 정부의 제도 개선과 함께 한국 증시가 글로벌 투자자에게 내세울 산업적 강점은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반도체를 비롯해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피지컬 AI 분야의 성장 기대를 키우고 있다. 이 밖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 등의 방산 ▲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 등의 조선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등의 바이오 등 국내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여기에 네이버와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을 비롯해 엔터테인먼트·게임·화장품·식품 기업들로 K콘텐츠의 확산 효과가 이어지며 한국 시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연결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가 한국 자본시장을 통해 반도체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주요 성장 흐름에 맞춰 다양한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경제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증시가 내세울 첫 번째 상품으로 세계 AI 산업을 뒷받침하는 기업들을 꼽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시대의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어나면서 메모리는 범용 부품을 넘어 연산 성능과 전력 효율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 됐다.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미국 빅테크 기업의 AI 투자가 지속될 가능성을 근거로 한국 증시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재평가될 여지가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티모시 모 골드만삭스 아시아태평양 수석 주식전략가는 지난 9월 7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골드만삭스는 기존 코스피 목표치인 1만2000 전망을 고수하고 있다”며 “이는 실적 달성 가능성에 기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골드만삭스는 한국의 코스피 목표치를 1만2000으로 제시했다.
한국의 경쟁력은 반도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전기차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제품군과 글로벌 생산 기반을 갖췄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면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늘리고 전동화 시장이 회복하면 전기차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대응력이 강점이다. 완성차와 부품, 배터리로 이어지는 탄탄한 제조 생태계는 그룹의 경쟁력을 뒷받침해 왔다. 여기에 ‘아틀라스’라는 피지컬 AI 역량을 더하면서 자동차 제조기업을 넘어 모빌리티·로봇 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조선과 방산은 수주를 기반으로 장기간의 실적을 가늠할 수 있는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친환경 선박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으로 각국의 국방비가 늘어나면서 한국 방산 기업들은 주목을 받고 있다. 빠른 납기와 기술·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유럽과 중동으로 수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산업뿐 아니라 K컬처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한국 증시만이 제공할 수 있는 투자 자산이다. 음악과 드라마, 영화, 게임, 웹툰 등 K콘텐츠가 ▲공연 ▲영상 ▲광고 ▲상품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화장품과 식품, 패션 등 소비재 산업의 해외 매출 증가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투자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저평가 매력 뒤에 남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자본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기업들의 경쟁력에 비해 주가가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들은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는 미국이나 일본 기업보다 낮은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적용받아 왔다. 이익이 늘어나고 산업 내 지위가 높아져도 기업가치가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고착화한 결과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주가 조정을 거치며 12개월 선행 PER이 각각 4.1배와 3.9배로 역사적 하단에 근접했다. 미국 마이크론의 6배와 샌디스크의 15.8배, TSMC의 22.7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기업의 저평가가 역설적으로 한국 시장의 투자 매력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보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낮은 밸류에이션이 실제 재평가로 이어지려면 반도체 업황 회복뿐 아니라 주주환원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할인 요인을 해소해야 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구조적인 배경으로 위험자본을 투자한 주주에게 적정한 보상을 제공하는 기본 원칙을 한국 기업들이 외면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저조한 주주환원이 투영된 평가라는 것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주주환원 정책과 기업 지배구조, 회계 투명성은 이미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지적됐던 요인”이라며 “주식시장이 질적으로 새로운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법 제도적 개선뿐만 아니라 기업의 인식과 관행의 개선, 투자자의 적극적인 역할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세안+3(아세안+한·중·일)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올해 3월 발간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축소, 기업 밸류업을 통한 주식시장 개혁’ 보고서에서 지배주주의 높은 영향력이 소수주주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국제 기준보다 낮은 배당성향도 국내외 투자자의 한국 주식 선호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정부가 기업 밸류업과 주주 보호를 자본시장 정책의 중심에 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1차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해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해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합산 3% 룰’도 도입했다. 이어 2차 상법 개정을 통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배제를 금지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 대상을 최소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했다. 합병과 분할, 주식교환, 자사주 처분 등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는 의사결정에서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복상장 제한과 자사주 제도 개선도 같은 방향을 향한다. 유망한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뒤 자회사를 다시 상장해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를 떨어뜨리거나 회사 자금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는 관행을 줄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고배당기업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기업의 배당 확대와 투자자의 장기 보유를 유도하는 제도로 꼽힌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고배당기업의 배당소득에 별도의 세율을 적용하면 투자자는 배당주를 오래 보유할 유인을 얻는다. 기업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금융지주와 자동차, 통신 등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업종을 중심으로 중장기 배당 정책과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이 제때 시장을 떠날 수 있도록 퇴출 기준도 강화했다. 한국거래소는 올해 7월부터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000원을 밑돌면 관리종목으로 지정하는 주가 미달 상장폐지 기준을 도입했다. 이후 90거래일 동안 45거래일 연속 1000원 이상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는다. 미국 나스닥은 주가가 30영업일 연속 1달러를 밑돌면 상장 유지 기준 미달을 통보하고 원칙적으로 180일의 개선기간을 부여한다. 이 기간 일정 기간 1달러 이상을 유지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국내에도 이러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얻고 있다.
다만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한국 증시의 반도체 의존도가 더욱 심화한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소수 대형주의 지수 영향력이 큰 탓에 미국의 금리 정책이나 메모리 가격 전망이 흔들리면 국내 증시 전체가 크게 출렁이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뿐 아니라 자동차·조선·방산·바이오·콘텐츠 등으로 투자 기회가 넓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 생태계와 제도 변화, 시장 인프라를 묶어 한국 전체를 하나의 투자 상품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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