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하나금융 청라에 담긴 일터의 미래…“사옥은 목적지가 돼야”[이코노 인터뷰]
- 로버트 맨킨 NBBJ 대표 매니징 파트너 인터뷰
임원실 중심 위계 벗어나 개방·연결…5개 계열사 한 캠퍼스에
1.1㎞ 보행로에 녹지 접목…협업과 휴식 아우르는 공간 설계
[이코노미스트 권지예 기자] 전통적으로 기업 사옥은 보안과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막고 층별로 공간을 분리하며, 임원실 중심의 수직적 위계를 건물 구조에 반영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연말 입주를 앞둔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하나금융그룹 그룹헤드쿼터는 이 오래된 공식을 뒤집은 공간이다. 삼성전자 북미 본사, 텐센트 선전 본사, 아마존 스피어스 등 글로벌 사옥을 디자인해 온 세계적 건축설계사 엔비비제이(NBBJ)가 설계했다.
지난 2일 하나금융 청라 그룹헤드쿼터 준공에 맞춰 방한한 로버트 맨킨(Robert Mankin) NBBJ 대표 매니징 파트너(이하 대표)는 이 사옥을 두고 “금융기관의 본사가 어떤 모습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그는 전 세계 사옥 및 글로벌 스포츠 디자인 부문을 총괄하며 주요 대기업의 공간 전략을 지휘하고 있다.
위계 벗어나 ‘개방과 연결’로 전환
맨킨 대표가 꼽은 한국 대기업 사옥의 가장 큰 변화는 ‘위계에서 개방과 연결로의 이동’이다. 과거 한국 오피스는 임원실 중심의 수직적 구조와 효율성 위주의 고정 좌석 배치가 주를 이뤘다.
맨킨 대표는 “삼성과 하나금융 등 한국 대기업 프로젝트를 연이어 진행하며 확인한 주요 변화는 위계적인 오피스를 벗어나 보다 개방적이고 연결되며 유연한 환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하나금융 청라 사옥은 전형적인 한국 오피스에서 크게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이어 “위계는 개방성과 연결성으로 대체되고, 고정된 책상 중심의 업무 방식은 분산된 자율 업무 환경으로 전환됐다”며 “기존의 층별 구성을 대신해 서로 연결된 공간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5개 금융 계열사가 한 캠퍼스 안에 통합되는 만큼, 공유 공간을 늘려 하나의 통합된 조직이라는 인식을 강화했다.
외형적으로 하나금융 청라 사옥은 직육면체 오피스 타워가 아닌 여러 수평 매스가 어긋나며 감싸는 형상을 취한다. 건물 블록을 엇갈리게 쌓은 뒤, ‘리본 파크’가 나선형 띠처럼 건물을 휘감아 올라가는 형태다. 연속적인 보행로 자체가 건물의 중심축을 이루며 내부 사무 공간과 녹지 환경을 수직으로 잇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NBBJ가 이번 설계에서 핵심으로 제시한 개념은 ‘회복적 업무’다. 모니터 주시 시간이 길고 감정 노동 강도가 높은 금융·IT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동안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마친 후 오히려 더 나은 상태를 느낄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이다.
아마존 스피어스가 거대한 유리 돔 안에 자연을 이식한 대표 사례라면, NBBJ는 청라 사옥에서 자연을 독립된 정원이나 편의시설이 아닌 업무 공간의 구성 자체에 녹여냈다.
1.1km 길이의 연속 보행로는 직원들이 이동하며 자연스럽게 녹지와 신선한 공기를 접하고, 책상 앞에만 머무르는 대신 다양한 시점을 경험하도록 유도했다. 건물 중앙의 대형 아트리움(건물 내 중앙 개방 공간)과 계단 위에 설치된 천창은 자연광을 건물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였다.
맨킨 대표는 “자연·자연광·다양성·사회적 교류는 스트레스 감소에 직결되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나금융 청라 사옥은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일하도록 요구하는 대신, 부서와 업무 유형에 따라 조용한 환경과 협업 환경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제공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출근 넘어 가치 찾는 ‘목적지’로
재택근무와 원격근무가 자리 잡은 하이브리드 시대, 기업이 이 같은 사옥을 지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맨킨 대표는 “오피스가 출근을 강제하는 의무적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유연성과 즐거움, 가치를 제공하는 ‘목적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직원들이 공간 안에서 협업과 교류, 휴식, 조직의 목적의식을 발견할 때 기업 역시 생산성 향상과 인재 확보라는 실질적 결실을 얻는다”며 “사옥을 단순한 작업실로 다루는 기업은 하이브리드 시대에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목적지’로서의 사옥을 구현하기 위해 NBBJ는 기업의 산업군과 일하는 방식에 맞춰 공간 연결 전략을 다각화하고 있다. 수평적 협업이 핵심인 텐센트 본사 등 IT 기업에는 스카이브리지로 연결된 수평 캠퍼스를 구축하고, 층간 단절이 심했던 하나금융에는 연속 보행로를 통해 부서와 대중을 수직적으로 연결하는 식이다. 실제 조직이 일하는 방식에 맞춰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울러 NBBJ는 미래 사옥이 고립된 사적 건축물을 넘어 ‘도시의 공공재’로서도 기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층부와 중간층 편의시설, 조경 공간을 시민에게 개방해 임직원과 대중이 교류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도시에 공공적 가치를 환원하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맨킨 대표는 “한국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건축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매우 흥미로운 시장”이라며 “기술과 건강, 지속가능성, 새로운 업무 방식이 어우러진 미래형 오피스의 기준을 한국의 고객들과 함께 계속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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