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V3 롱레인지 어스 트림 시승기
EV9에서 느낀 완성도, EV3에서도
긴 주행 거리가 주는 여유로움은 덤
지난 7월 기아의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을 타본 적이 있다. 약 800km를 달렸는데, ‘정말 잘 만든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맏형 EV9을 타보니, 기아 전기차 라인업 막내인 EV3가 궁금해졌다. EV9에서 느꼈던 완성도를 똑같이 경험할 수 있는지 중점을 두고 달려봤다. 서울과 대구, 영천 등을 오갔다. 주행 거리는 2박 3일간 약 700㎞다.
이번 시승에서는 체격이 서로 다른 성인 남성 두 명을 각각 동승자로 태웠다. 두 사람의 첫 반응은 모두 똑같았다. 모두 입이라도 맞춘 듯 “넓네”라는 말을 먼저 뱉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실내 공간에 대한 칭찬부터 꺼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차지만 막상 앉아보니 예상보다 훨씬 여유롭다는 평가다.
EV3는 소형 SUV다. 전장 4300㎜·전폭 1850㎜·전고 1560㎜다. 차체 크기만 놓고 보면 넉넉한 공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실내 공간을 결정하는 휠베이스는 2680㎜에 달한다. 바퀴와 바퀴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확보하고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특성을 활용해 실내 공간을 넓혔다. 실제로 타보니 공간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변속기를 운전대 뒤쪽에 배치하면서 센터 콘솔 주변 공간을 확보했다. 앞좌석에서 느껴지는 개방감도 이러한 구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뒷좌석 등받이는 각도를 조절할 수 있고, 필요할 때는 6대 4 비율로 접을 수 있다. 차체 크기의 한계를 공간 설계로 보완하려는 기아의 고민이 엿보인다.
트렁크 적재 용량은 460ℓ다. 앞쪽 보닛 아래에도 25ℓ의 별도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실제 1박 2일 캠핑에 필요한 짐을 실어봤는데 공간은 충분했다. 평소 캠핑을 떠날 때면 2열 좌석까지 접어 짐을 싣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2열 좌석을 그대로 둔 채 캠핑 장비를 모두 실을 수 있었다. 소형 SUV라는 차급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의 적재 능력이다.
공간을 단순히 넓게만 만든 것도 아니다. 앞좌석에는 릴렉션 컴포트시트를, 2열에는 별도 송풍구와 USB 충전 단자, 열선시트 등을 마련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탑승객의 편의까지 고려한 셈이다. EV9이 큰 차체에서 오는 여유로움을 보여줬다면, EV3는 작은 차를 얼마나 알차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줬다.
전기차인 만큼 힘도 좋다. 가속페달을 묵직하게 밟으면 차체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뻗어나간다. 단순히 빠르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전기차 특유의 즉각적인 가속 반응에 작은 차체가 더해지면서 탄환처럼 쭉 뻗어나가는 느낌이다. 무작정 거칠게 달리는 것은 아니다. 강한 힘을 내면서도 움직임은 매끄럽다. 작은 차체가 주는 특유의 단단함과 주행 안정성이 조화로웠다.
EV3 롱레인지 전륜구동 모델의 최고출력은 150kW(약 204마력), 최대토크는 283Nm다. 물론 더 강력한 출력을 내는 전기차도 많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고속 주행에서는 힘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제어하느냐가 중요하다. EV3는 속도와 안정성 사이 균형을 잘 잡았다는 인상을 줬다. 고속 주행에도 불안감이 크지 않았던 이유다.
EV3 롱레인지에는 81.4kWh 배터리가 탑재된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17인치 휠 기준 최대 501㎞다. 소형 SUV라는 점을 고려하면 부족하지 않은 수치다. 단, 아쉬운 점도 분명했다. 고속 주행에서의 전비다. 전기차는 일반적으로 속도가 높아질수록 공기저항이 커지면서 전력 소비량이 늘어난다. EV3를 타면서는 이 같은 현상이 유독 크게 체감됐다.
도심 주행에선 전혀 느끼지 못한 지점이었다. 운전의 재미만큼 고속 주행에선 배터리 소모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실제 EV3 롱레인지의 고속도로 인증 주행거리는 447㎞로 복합보다 54㎞ 짧다. 주행 환경에 따라 전비가 달라지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시승에서는 고속 주행에 따른 전비 저하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주행거리가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되레 주행거리는 이 차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고속 주행을 즐기지 않는 운전자라면 전비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1회 충전으로 최대 501㎞를 달릴 수 있다는 점은 상당한 매력이다. 전기차를 탈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충전인데, 이 같은 걱정을 덜어준다는 것만으로도 EV3의 가치는 충분했다.
2026년형 EV3의 판매가격은 스탠다드 모델 기준 ▲에어 3995만원 ▲어스 4390만원 ▲GT 라인 4475만원이다. 롱레인지 모델은 ▲에어 4415만원 ▲어스 4810만원 ▲GT 라인 4895만원이다. 개별소비세 3.5%와 친환경차 세제혜택을 적용한 가격으로, 전기차 구매보조금은 제외한 금액이다.
EV3가 가진 경쟁력은 분명하다. 소형 SUV라는 차급이 무색할 만큼 넉넉한 실내 공간과 부족함 없는 주행 성능, 긴 주행거리까지 두루 갖췄다. 특히 일상 주행은 물론 장거리 여행과 캠핑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다. 첫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는 소비자라면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다.
시승을 마치니 최근 기아에 붙는 수식어가 제법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EV3는 기아가 전기차에 쏟아온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비싸고 큰 차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고 대중적인 차를 잘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실력이다. 기아가 ‘전기차 명가’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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