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SK하이닉스가 쏘아올린 ‘중복상장’ 논란… 개미 울리는 ‘물적분할’ 잔혹사
- [코리아디스카운트 논란]①
상장 철회에도 ‘지배구조·주주소외 리스크’ 재조명
LG화학·카카오, 중복상장 이후 모회사 주가 폭락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반도체 업황 호조와 주가 상승으로 국내 증시를 견인해 온 SK하이닉스가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중복상장 추진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란 한복판에 섰다. SK하이닉스가 결국 상장 검토를 공식 철회하긴 했으나, 과거 몇몇 기업의 물적분할과 중복상장 과정에서 발생한 소액주주들의 피해와 지배구조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탓이다.
기업의 중복상장은 물적분할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사실상 같은 메커니즘으로 평가한다. 법적 절차 등은 달라도 모회사의 기존 주주가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는 과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복상장이란 모회사와 자회사가 증시에 동시 상장된 상태를 말한다. 모회사(A)가 이미 증시에 상장된 상황에서 자회사(B)까지 별도로 증시에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두 회사가 모두 상장사가 되는 구조다. 물적분할은 기업(A)의 한 사업부(C)를 떼어내 100% 자회사로 만들고 쪼갠 회사 주식을 모회사가 소유하는 방식이다.
A기업 입장에서는 B나 C회사를 상장하면서 신규 주주들에게 주식을 매각하고 자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사업부가 빠져나간 A기업은 그만큼 기업가치가 쪼그라들고 주가는 하락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A기업의 주식을 들고 있던 소액주주들은 그만큼 피해를 보게 된다.
이는 회사를 둘로 나누면서, 기존 주주들에게도 지분율만큼 신설회사의 주식을 나눠주는 ‘인적분할’과 구분된다. 인적분할은 기존 회사(A)를 존속회사(A)와 신설회사(D)로 분리할 때, 기존 회사 A의 주주들에게도 보유 지분 비율대로 신설회사 D의 주식을 주는 방식이다. 주주들은 A회사의 기업가치가 축소되더라도 D회사의 성장 과실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중복상장, 즉 물적분할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물적분할이 아니라 처음부터 별도 자회사였다”거나 “밖에서 인수해 온 회사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중복상장 규제를 피했지만, 최근에는 금융당국의 심사가 엄격해지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0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대상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이 중복상장에 해당한다는 금융감독원장의 판단에 동의하느냐’는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이라고 했다. 그는 “수직적 지배구조에 있는 계열사인 SK스퀘어와 SK하이닉스가 모회사로서 주주 충실 의무에 기반한 5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지난 2021년 인텔의 낸드플래시·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을 인수하며 출범한 회사다. 미국 중간지주사인 AI컴퍼니를 통해 솔리다임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만약 솔리다임의 상장이 이뤄졌다면 SK㈜ → SK스퀘어 → SK하이닉스 → AI컴퍼니 → 솔리다임으로 이어지는 ‘5단 중복상장’이라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LG엔솔 떼어낸 LG화학, 카뱅·카페 분리한 카카오…주가 하락
중복상장·물적분할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은 배경에는 과거 LG화학과 카카오의 사례가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다. 두 기업의 쪼개기 상장으로 소액주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지난 2020년 9월, 회사 미래 성장의 핵심축이었던 배터리(이차전지)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을 설립한 뒤 2022년 1월 유가증권시장에 전격 상장시켰다. 당시 시장 투자자 상당수는 배터리 시장의 폭발적 성장성을 기대하며 LG화학 주식을 매수했는데 LG엔솔이 물적분할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추진 소식이 가시화되기 전 최고 105만원까지 올라섰던 LG화학 주가는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른바 지주사 할인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2022년 1월 말 LG화학의 주가는 63만9000원까지 떨어졌고, 지난 10월 23일에는 22만8500원까지 하락했다. 4년 만에 주가가 네 토막이 난 셈이다. 반면 알짜 사업부였던 LG엔솔은 시가총액 87조원으로 유가증권시장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LG엔솔보다 시총이 많은 기업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성전자우·SK스퀘어 뿐이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우선주가 사실상 삼성전자에 포함되고 SK스퀘어가 SK하이닉스의 모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LG엔솔이 국내 시총 3위인 셈이다.
카카오 역시 알짜 사업부를 연이어 분할·상장시키며 모기업의 가치가 축소된 대표적인 사례로 함께 거론된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는 카카오 그늘 아래에서 성장하며 카카오의 이익을 극대화시켰고, 그 영향으로 카카오 주가는 최고 17만3000원선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카카오는 플랫폼 내부에서 빠르게 성장한 사업부들을 차례로 독립시켜 증시에 잇따라 상장시켰고 이후 주가는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2021년 12월 말 카카오의 주가는 11만2500원으로 쪼개기 상장 전보다 약 30%가 빠졌다. 이듬해 12월 29일에는 5만3100원으로 다시 반토막이 났다. 지난 10월 23일에는 2만9800원으로 고점 대비 80% 가량이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업의 결실이 모회사 주주에게 돌아가지 않고 개별 자회사로 분산되면서 지주사 디스카운트가 발생한 것이다.
“상장 안 하겠다” 공시 나오자 주가 상승
이런 주가 변화는 SK하이닉스의 솔리다임 상장 추진 철회 결과와도 직결된다. 지난 10월 23일 SK하이닉스는 공시를 통해 “생산능력 확대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해 왔으나 자본시장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프리IPO 및 IPO에 대한 검토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SK하이닉스의 주가는 3.27% 올랐다. 같은 날 새벽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6% 넘게 하락하면서 전 세계 반도체 증시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SK하이닉스가 얼마나 선방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앞서 미국 계열사(심원아메리카)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던 명신산업과 엠에스오토텍 역시 주주 상장 추진을 철회한 날 주가가 18% 가까이 급등한 바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솔리다임 사태에서 금융당국이 이사회의 ‘주주 충실의무’를 근거로 제동을 걸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며 “이런 우려 때문에 국내 기업의 주가가 어느 정도 저평가된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주식시장이 선진화되면서 이같은 문제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촘촘한 시스템으로 소액주주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불안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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