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앱 마켓 지고 ‘스팀’이 뜬다…PC·콘솔 골드러시에 바뀐 게임사 문법
- [새 판 짜는 K게임]①
확률형 아이템 한계 직면…글로벌 PC·콘솔로 무게추 이동
첫 주 평점이 생명선…‘얼리 액세스·DLC’ 새 흥행 공식 뜬다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한국 게임산업을 지탱해 온 ‘모바일 앱 마켓 출시 후 확률형 아이템 기반 장기 서비스’ 모델이 한계에 부딪힌 모습이다. 내수 시장 정체와 양산형 게임에 지친 이용자들의 이탈이 이어지자, 주요 게임사들은 생존을 위해 글로벌 PC 플랫폼 ‘스팀’(Steam)과 콘솔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 이동은 단순한 유통 채널 확장에 그치지 않고 기획과 개발, 마케팅, 사후 지원에 이르는 K게임의 비즈니스 문법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실적으로 증명된 플랫폼 다변화
체질 개선 성과는 주요 게임사들의 실적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 기존 PC 라이브 타이틀 성과 위에 루트슈터 ‘퍼스트 디센던트’, 액션 RPG ‘퍼스트 버서커: 카잔’, 익스트랙션 슈터 ‘아크 레이더스’ 등 PC·콘솔 신작들을 연이어 안착시켰다. 그 결과 넥슨의 전체 매출 중 PC·콘솔 비중은 70%대 후반까지 치솟았고, 북미와 유럽 등 서구권 매출 비중 역시 30% 수준에 육박하며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크래프톤 역시 호실적을 기록 중이다. ‘PUBG: 배틀그라운드’가 스팀과 콘솔에서 견고한 트래픽을 유지하는 가운데 인생 시뮬레이션 ‘인조이’와 AI 게임 ‘미메시스’가 스팀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여기에 2026년 공개된 ‘서브노티카 2’가 스팀 얼리 액세스 출시 20여일 만에 판매량 500만장을 돌파했다. 이에 힘입어 크래프톤은 반기 매출 2조6000억원대, 영업이익 9000억원대 후반이라는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업계 영업이익 1위를 지켰다.
네오위즈 또한 ‘P의 거짓’ 본편 롱런과 대형 확장팩(DLC) 판매 호조로 전년 대비 영업이익을 80% 이상 끌어올렸다. PC·콘솔 매출 비중을 40% 이상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해외 매출 비중 50%를 넘어서며 체질 개선을 완수했다.
유통 환경이 바뀌자 신작을 알리는 과정도 바뀌는 추세다. 과거 모바일 시대에는 출시 전까지 정보를 감춘 채 대규모 광고와 사전예약으로 트래픽을 모으는 물량 공세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평가 기준이 까다로운 스팀과 콘솔에서는 출시 전 미완성 빌드를 공개하고, 전 세계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수용하며 ‘위시리스트’(찜하기)를 쌓는 오픈형 개발이 필수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매년 세 차례 열리는 온라인 신작 축제 ‘스팀 넥스트 페스트’(SNF)가 핵심 시험대로 떠오른 배경이기도 하다. 8200여종의 타이틀이 격돌한 2026년 10월 행사에서 카카오게임즈 자회사 엑스엘게임즈의 ‘아키에이지 크로니클’은 공개 체험판을 통해 최고 동시접속자 약 2만명을 동원, ‘가장 많이 플레이된 체험판’ 5위에 올랐다. 카카오게임즈는 앞서 ‘갓 세이브 버밍엄’과 ‘더 큐브, 세이브 어스’ 역시 스팀 테스트를 거치며 서구권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선제적으로 반영했다. 드림에이지도 팀 기반 PvP 신작 ‘알케론’을 스팀 넥스트 페스트에 출품하고 정기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내수 모바일 MMORPG의 대명사였던 엔씨의 변신도 돋보인다. 엔씨는 ‘아이온2’를 지난 10월 스팀과 자체 플랫폼에 동시 출시했다. 과도한 과금 요소를 덜어낸 아이온2는 출시 직후 스팀 글로벌 매출 최상위권과 최고 동시접속자 40만명을 돌파하며 엔씨의 해외 매출 비중을 끌어올렸다.
패키지·DLC 문법 적응 진통…향후 플랫폼 판도는
다만 PC·콘솔로의 이주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소수 고과금 이용자를 타깃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설계하고, 출시 후 업데이트로 결함을 메우던 모바일 라이브 서비스의 관성은 패키지 시장에서 치명적인 독이 된다. 패키지 시장은 출시 첫 주 판매량과 메타크리틱 점수, 스팀 유저 평점이 게임의 생명 주기를 판가름한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빌드를 내놓았다가는 출시 당일 혹평을 맞고 스팀 알고리즘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개발 현장에서는 촘촘한 레벨 디자인과 내러티브로 수십 시간의 싱글 플레이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본편 출시 후 DLC를 적기에 공급해 타이틀 수명을 유지해야 하는 숙제도 존재한다. 최근 펄어비스의 ‘붉은사막’이 높은 판매고와 함께 글로벌 어워드 후보에 오른 것이나 네오위즈가 ‘P의 거짓’ DLC로 안정적 후속 이익을 창출한 배경에는 모바일식 관성을 버리고 패키지 문법에 맞춰 파이프라인을 재구축한 노력이 자리 잡고 있다.
체질 전환에 따르는 재무적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트리플A급 PC·콘솔 신작은 4~5년 이상의 개발 기간과 수백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개발 중 현금 흐름이 없는 데다 초기 흥행 실패 시 매몰 비용을 회수할 길이 없어 ‘흥행 변동성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향후 2~3년간 글로벌 시장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초대형 콘솔 대작’과 참신한 아이디어의 ‘미드코어·인디 신작’으로 양극화될 전망”이라며 “개발비 회수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미완성 버전을 유료로 먼저 선보이는 ‘얼리 액세스’ 모델이 보편적인 출시 공식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K게임의 승패는 글로벌 게이머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독창적인 재미와 완성도 높은 빌드를 지속적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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