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분기 영업익 ‘100조 시대 연’ 삼성...이재용식 ‘시스템 삼성’은 과제
- [‘이재용의 삼성’을 움직이는 힘]②
3분기 영업익 107조 ‘새 역사’…반도체 호황에 사상 최대 실적
선대 사업 여전히 핵심…하만·M&A 넘어 ‘다음 삼성’ 만들 시험대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 삼성전자가 새로운 기록을 썼다. 올해 3분기 매출 195조3000억원,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을 기록하며 세계 주요 기술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을 넘어섰다.
실적을 이끈 것은 반도체였다. 인공지능(AI) 열풍에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이 전체 영업이익의 99%에 달하는 106조5000억원을 벌어들였다. 이병철 창업회장이 반도체 사업의 기틀을 놓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세계 정상으로 키워낸 사업이 오늘날에도 삼성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재용 회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는 없다. 세계 정상에 오른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대응하는 것 역시 경영자의 몫이다. 다만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지금, 또 다른 질문이 남는다. 선대가 남긴 반도체를 넘어 이재용 회장은 다음 10년, 나아가 100년의 삼성을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만 성공했지만...새 포트폴리오 안 보인다
“이병철 손자나 이건희 아들이 아닌 선대 못지않은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2017년 12월 27일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남긴 말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혐의를 부인하면서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삼성을 더 강한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법정에서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발언이었지만 선대의 후광을 넘어 독자적인 경영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회장이 사실상 삼성 경영의 전면에 나선 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삼성은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세계적인 기업의 위상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삼성의 핵심 사업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선대가 구축한 사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 TV 등이 대표적이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삼성전자의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이 25년째 거의 그대로”라며 “하만이 들어온 것 외에는 크게 바뀐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재용 회장만의 경영을 했다고 볼 만한 것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선대와 달리 경청을 중시하고 전면에 나서지 않는 리더십을 보여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경영 스타일의 변화가 곧 사업 구조의 변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이재용의 삼성’을 상징할 새로운 성장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그렇다고 이재용 시대에 새로운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 사업을 직접 키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 기업의 기술과 사업을 확보하는 인수합병(M&A)이 대표적이다. 그 성과를 보여주는 사례가 미국 전장·오디오 기업 하만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80억달러, 당시 약 9조3000억원 규모의 하만 인수를 결정했다. 당시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듬해 인수를 마무리하며 자동차 전장사업 확대의 발판을 마련했다.
성과는 실적으로 확인된다. 삼성전자 연결 실적에 편입된 2017년 하만의 매출은 약 7조1000억원이었다. 2025년에는 15조7833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약 575억원에서 1조5311억원으로 약 27배 증가했다. 올해 3분기에도 매출 4조3000억원, 영업이익 6000억원을 기록했다.
재계 관계자는 “하만은 이재용 시대 삼성의 사업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며 “선대가 구축한 사업을 성장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외부에서 새로운 기술과 사업을 확보해 또 다른 수익원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新 시스템 삼성’을 구축하라
이재용 회장은 반도체 등 기존 주력 사업을 넘어 로봇과 전장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는 자신이 물러난 이후에도 삼성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강력한 리더십과 과감한 투자로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다면, 이 회장은 총수 개인의 판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조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회장이 전면에 나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보다 신중하게 경영 현안을 조율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총수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도 조직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또한 최근 반도체와 가전 부문에서 불거진 성과급 갈등은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과 소통 체계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임을 보여준다.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맡기는 것을 넘어 구성원의 신뢰를 확보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과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다. 이 회장은 2020년 5월 대국민 사과에서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은 이후 계열사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과 준법경영을 강조해 왔지만, 4세 승계 포기 이후 경영 체제를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복귀 문제 역시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4세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지배구조 측면에서 가장 큰 리스크”라며 “새로운 경영 체제를 준비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지금부터라도 단계적인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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