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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단지 놓고 미 관리와 육탄전”

“울산단지 놓고 미 관리와 육탄전”


축하 리셉션에 초대된 외교사절과 내빈들, 여배우 최은희씨. 왼쪽이 김용태 최고회의 경제고문.

5·16이 일어난 1961년도 소띠 해였고 박 대통령 서거 30주년이 되는 올해도 소띠 해지만, 1961년 한국은 그야말로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살 만하게 되니까 공단들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 아니냐고 철없이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당시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인들조차 ‘이런 나라에서 희망이 있겠느냐’며 탄식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원로 지식인이었던 강원룡 목사가 어느 좌담회 자리에서 “그때 나라 꼴이 오죽했으면 군부라도 나섰으면 좋겠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있었다”고 했겠는가. 반추해 보면, 경제인들의 탄식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강 목사는 이런 얘기를 했다.

“군사혁명을 잘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5·16이 나던 무렵은 도저히 나라가 유지될 수 없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그랬고, 정치가 그러니 경제는 더 말할 것이 없지요. 뭔가가 일어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개적은 아니더라도 모여 앉으면 나왔어요. 4·19 이후 들어선 민주당 정부에 기대를 했지만 오히려 혼란만 더 가중됐고. 그래서 지식인들 중에는 애국심이 충만한 군인들이라도 나와 줬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바라던 사람이 많았던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도 5·16이 터지자 올 것이 왔다고 했지만 윤보선씨도 똑같은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후에 박정희라는 사람을 직접 만나보니까 정말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농민의 설움이 뭔지, 굶주림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자란 사람이었고 이미 혁명공약에서도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경제 재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해서 그렇다면 기대를 해도 좋겠다는 얘기를 한 겁니다. 그 당시에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말도 했지만 오죽했으면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겠다는 다짐을 혁명공약에 넣었겠습니까.”


“애국심에 불타는 새 한국 지도자 등장”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로 시작되는 혁명공약 포고문은 JP가 초안을 작성하고 박 의장이 윤필한 것을 김용태 전 장관이 광명인쇄소를 운영하던 이학수씨를 통해 인쇄해 시민들에게 뿌렸지만 핵심은 4항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과 기성정치인들에게는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군부가 궐기했다’는 정치적인 명분도 있었지만 4항에서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 경제재건에 총력을 쏟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 것이다.

이것은 혁명 후인 11월 케네디 대통령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박 의장이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그대로 나타나기도 했다. 당시 외신들과 미국 관리들까지 ‘의외로 침착하고 애국심에 불타는 새로운 한국 지도자’라고 평가했지만 그는 5·16의 진의는 정권에 대한 야욕이나 정체(政體)의 변조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 겨레의 빈곤을 내쫓고 자손만대를 위한 영원한 민족적 번영과 경제재건을 성취해야겠다는 숭고한 사명감에서 궐기한 것’이라고 확고하게 밝혔다.

이로써 경제문제가 쿠데타의 핵심 이유였음이 알려지면서 그때까지 한·미 양국의 불편했던 관계가 상호신뢰 관계로 구축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었다. 여하튼 이정림 전 대한유화 회장은 박 의장 앞에서 경제재건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한 것이 후회되고 실언을 했다 싶어 겁도 나더라고 했다.

솔직히 자신도 개성상인이다 해서 장사깨나 하고 멋쟁이 당코바지 입고 쩔렁거리면서 다녔다지만 막상 경제인들이 국가재건에 앞장서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국가가 어떻기에 재건을 해야 하는가 싶어 속을 들여다봤더니 정말 그렇게나 맨땅인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중앙정보부 경제담당관실 직원들과 자리를 함께한 김용태 고문(앞줄 오른쪽에서 셋째). 막강했던 정보부였지만 탁자와 술을 담은 주전자가 가난의 상징처럼 보인다.


“쌀·비료 사야지, 원사 공장 하나 없지…”


‘옥양목 팬티조차 못 입고 지내는 국민이 태반’이었을 정도로 일자리도 갖지 못하고 산업적인 기반부터 황무지나 다름없고 암담했다는 얘기였다.

“김용태씨가 뭔지는 모르지만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은 안 하고 경제인협회부터 만들라고 해서 경제인도 아닌 김용태씨가 협회 구성을 강력히 주문하니까 머쓱하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사실상 경제재건의 모태가 됐었구나 싶기도 했어요. 경제라는 건 경제인들이 일으키는 것이지 권력이 일으키는 게 아니잖아요. 자유당 때도 보고 민주당 때도 봤지만 권력이 해놓은 게 뭐 있어요. 오히려 권력은 깡패였어. 그래서 5·16도 터졌겠지만 하여간 따지고 보면 경제재건은 전부 경제인협회를 중심으로 경제인들이 나섰단 말이오. 그래서 경제인협회가 재건의 모태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건데, 어쨌든 그 당시에 경제인협회를 만들면서 수출을 조사해봤더니 연간 수출액이 총 3800만 달러요. 잊어버리지도 않아.”


>> 경제인협회 차원에서 조사했다면 그 시점부터 사실상 경제재건을 위한 경제인들 활동이 시작됐다고 봐야 합니까?
“그렇지요. 혁명정부에서는 정보부장 JP하고 김용태 경제고문이 주축이 돼서 계획을 짜고 그랬지만 우리 기업인들은 그때부터요. 그 전에는 각자가 개인 사업만 했지 국가경제를 어떻게 한다는 건 생각지도 않았으니까. 그래가지고 연간 수출액총 3800만 달러가 통계로 잡혔어요. 그렇다면 주요 수출 품목은 뭐냐 하고 더 분석을 해보니까 중석을 수출한 게 약 반이 돼요. 대한중석이라고 있었어요. 중석 값이 그렇게 좋았어요. 거기서 벌어들인 돈이 반이에요. 그 외에는 인삼 수출이 좀 있었고 해산물이라고 하는 게 해태와 오징어 좀 내보낸 게 있고. 그렇게 해가지고 전부 벌어들인 게 고작 3800만 달러였어. 그러니 그것 가지고 무슨 경제재건을 하고 어떻게 사느냐 말이야. 더구나 수입은 몇 배나 덩치가 큰데. 북한 놈들 때문에 그나마 쓰던 것도 전쟁으로 전부 못 쓰게 돼서 사와야 되는 게 태반이에요. 비료도 사들여와야지, 쌀도 사들여와야지, 원사공장도 하나 없어서 인조실은 물론이고 내가 56년에 대한양회 세울 적에 못도 수입했어요. 못이 없어서. 그럴 정도니 뭐 기가 막힌 얘기지.”


>>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이대로 죽을 수는 없고, 탄식만 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어떻게든지 일으켜야 되겠는데 방법이 뭐냐, 경제재건을 하자면 공장 하나라도 세워야 하니까 우선 급한 것부터, 파급효과가 큰 것부터 대상을 선정했지요. 자금은 다음 문제야. 업종이 나와야 자금 규모도 잡히니까. 그러고 자금 문제는 운크라(UNKRA·국제연합한국재건단)도 생각을 했어요. 운크라는 50년도 연말에 유엔에서 6·25전쟁 때문에 파괴된 한국의 재건을 돕자면서 설립했던 기구잖아요. 근데 그것도 나중에 알아보니까 운크라 자체가 58년도에 해체됐어요. 더 암담해졌지. 그렇지만 내 생각은 비록 해체가 됐더라도 유엔에서 우리를 돕는다는 분위기는 남아있을 것 같단 말이오. 그래서 자금은 운크라에 떼를 좀 써보자고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것도 또 일장춘몽이야. 우리가 그만큼 국제기구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덤빈 거요. 국제기구는 해체되면 끝이야.”

운크라는 53년부터 폐허된 한국의 부흥사업에 착수한 후 5년 만인 58년 6월, 활동을 종료했다. 해체될 때까지 1억2208만4000달러를 지원하면서 식량을 비롯한 민수물자를 들여와 많은 구호활동을 폈고 주택, 의료, 교육시설 등을 건설하고 인천 판유리공장(한국유리), 문경 시멘트공장 같은 산업 시설물 건립과 국립의료원 같은 공익사업에도 원조자금을 투입한 것이 사실이었다.


>> 경제인협회에서 파급효과가 큰 것부터 대상을 선정했다면 실질적인 계획이 나왔다고 봐야 됩니까?
“안(案)이지. 파급효과가 크고 국민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급한 산업부터 단계적으로 계획을 세운 것이 비료공장을 만들어보자, 철공공장도 만들어보자, 건설에 필요하니 시멘트공장도 만들자, 그런 안을 낸 거지요. 자금조달 문제가 확정되기 전 단계니까 실질적인 계획이라기보다 안이지 안. 그런데 그때부터 기가 막히는 일이 벌어져요. 김용태 최고회의 고문이 우리가 만든 안을 보더니 맨 앞에 정유공장을 넣으라는 거요. 그러면서 그때 처음으로 거대한 공업단지 건설을 해야 된다는 얘기를 해요. 솔직히 멍하게 쳐다봤어요. 그때까지는 정유공장을 구경도 못해봤고 정유공장이 뭘 하는 건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거기다가 정유공장뿐 아니라 연관 산업이 되는 공장들은 전부 집어넣는 거대한 공업단지를 만들어야 된다고 하니까 온전한 정신으로 들을 수가 있겠어요? 그게 나중에 보니까 울산공업단지 건설 구상이에요.”


>> 경제인협회가 발족되니까 비로소 김 고문도 울산공단에 대한 구상을 드러낸 셈이군요.
“하여간 김용태씨가 공업단지 얘기를 하는데, 그것도 그냥 하는 게 아니에요. 가만 보니까 공부를 엄청 했고 내용을 완전히 알고서 해요. 우리가 명색이 한국에서는 방귀를 좀 뀐다고 했던 경제인들인데 아무도 못 알아듣는 얘기를 하는 거요. 그러니까 김용태씨도 나중에 보니 고민을 많이 했고 당시 은행에 있던 사람, 교수, 재무부 계통, 관료들, 그중에 부흥부 안경모 차관, 김정렴 상공부 차관, 이런 사람들까지 실무팀으로 만들어서 막 연구를 시켰어. 거기서 나온 것이 정유공장이에요. 그러니 계획안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커지게 됐지요. 그런 걸 보면 김용태 그 양반이 혁명에 참여했다고 군인들 부류로 보다간 큰코다치겠어요.


울산공단 기공식에서 생긴 일


스케일 자체가 우리하고는 달라. 군인들은 아예 그 양반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이병철씨가 김용태씨 보고 경제재건의 아버지라고 했을 정도니 뭐. 거의 매일 만나서 논의를 하고 그랬지만 아부가 아니라 우리가 봐도 기막힌 자료에다가 방안까지 꺼내놓으니 말이오. 기업을 했던 사람도 아닌데 어디서 그런 머리가 나오는지 말이야. 좌우간 규모가 커졌어요.”

울산공업단지 건설 때문에 김용태 고문이 그 막강하던 유솜의 킬렌(James S. Killen)처장 하고 멱살까지 잡고 싸웠다는 얘기가 여기서 나오게 된다. 물론 공단 기공식을 마치고 축하 리셉션을 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박 의장을 비롯해 많은 외교사절과 장관들, 최고위원들, 그리고 지역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김 고문은 킬렌 처장의 멱살을 붙잡고 육탄전을 벌였고, 그 일로 유솜이 한국에 대한 원조를 끊겠다고 해서 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김용태 전 장관이 직접 밝힌 내용이다.

“사실 기공식을 하기 전까지 더 어려웠던 건 어떤 공장을 만들거냐, 장소가 왜 울산이냐 해가지고 박 의장을 설득하는 게 힘들었어요. 숱한 난관이 있었어. 그 내용은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킬렌하고 싸우게 된 건 그 친구가 한국을 계속 미국의 원조물자나 받아먹는 나라로 묶어두려고 자꾸 시비를 걸고 울산공단을 못 만들게 하니까 그랬던 거지. 그때가 기공식을 했던 날이여. 박 의장은 그 당시만 해도 국가원수 전용기가 없을 때니까 군용기 ‘비바’를 타고 내려가고 서울에서 특별열차를 편성해가지고 경제인들과 언론인, 최고회의 멤버들, 외국 공관 대사들을 전부 데리고 울산으로 가서…. 그때만 해도 완전히 허허벌판 아니에요? 거기서 펑 하고 기공식 버튼을 누르고 거창하게 행사를 했단 말이여. 그러고는 울산에 호텔이 하나도 없으니까 경주 불국사, 아주 빈약한 2층짜리 불국사 호텔이 있었는데 거기서 외국사절도 초대를 했으니 박 의장이 주최하는 축하리셉션을 했어요. 근데 유솜 처장이라는 놈이 기공식장에서도 자꾸 중얼거리더니 리셉션을 하는데도 공개적으로 비난하잖아. 한국에 기술이 있나 돈이 있나, 미국에서 싼 물자 갖다 쓰면 되지 공업단지가 뭐냐고 말이여. 정말 확 끓어오르는 거라. 이미 기공식까지 했는데 그따위 말을 하니 주도적으로 일한 사람은 기분이 좋겠느냔 말이여. 나도 다혈질이고 그때만 해도 30대인데. 그래서 멱살을 잡고 파티고 뭐고 이 새끼 죽이겠다고, 냅다 박아버리려고 멱살을 잡은 채 옆으로 질질 끌고 갔거든? 하하하.”

화기애애하던 행사장이 긴장과 경악스러운 표정들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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