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에세이 - ‘수퍼 주총 데이’의 하루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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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에세이 - ‘수퍼 주총 데이’의 하루

CEO 에세이 - ‘수퍼 주총 데이’의 하루



가끔 외신에 나오는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는 경영자들의 로망이다. 세계 주요 기업 CEO를 비롯한 3만5000여명이 참석해 비즈니스 정보를 나누고 친분을 쌓는 축제의 장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기업의 주총 현실은 다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월 22일에 주주총회를 개최한 회사는 국내 주요 그룹 계열사를 포함해 총 689개사였다. 이른바 ‘수퍼 주총데이’다.

12월 결산 상장법인 중 약 40%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사 갈 때 따지는 재수 없는 날도 아니고 길일도 아닌데 왜 이 날 주주총회가 몰릴까? 두 눈 부릅뜬 주주들이 두렵고 거북하기 때문이리라.

대표이사로 경험하는 주주총회는 그 전보다 훨씬 짜릿하면서 다이나믹한 한편의 리얼 다큐 같다. 주총의 전초전은 탐색전이다. 개최 전에 얼마나 많은 외부 주주가 참석했는지, 단골로 나와 경영진을 괴롭히는 주주는 얼마나 왔는지, 전체 분위기는 어떤지를 미리 보고 받고 시작한다. 물론 출석 주주 수를 점검하는 건 합법적 의사결정을 위한 의결권 정족수 확보에 필요한 수순이다.

다음으론 여러 장부와 준비물을 점검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소품이 바로 방망이다. 어찌 보면 주주총회는 방망이를 두드리기 위해 여는 행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안건이 통과됨을 선언하며 두드리는 그 방망이가 보통 방망이던가? 국회가 열리면 가끔씩 그 방망이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가?

뭐니뭐니해도 주주총회의 하이라이트는 상정된 안건을 통과시키는 과정이다. 대다수 기업은 일정한 순서와 룰을 갖고 있다. 먼저 지난 한 해의 경영 성과에 관한 것으로 재무제표·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현금흐름표에 대한 승인 건이다. 몇 가지 굵직한 이슈를 설명하고 지난 해 이익을 발표할 때쯤이면 잠깐이나마 우쭐해진다. 특히 배당을 조금 두둑이 드릴 때면 박수라도 받길 기대한다.

그러나 행여 지난해 적자가 났다면 이야기가 180도 달라진다. 정말 도둑이 제발 저리는 심정으로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어디선가 환청도 들려온다. “그 따위로 경영할 거면 나도 하겠다. 자신 없으면 물러나라.”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두어 시간 서 있는 것 같다. 간신히 동의를 얻어 방망이질을 하면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다.

다음 안건인 이사선임으로 넘어가면 사막의 태양 아래있는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구석에 있는 어느 주주가 “웬만하면 그만 하시지” 라고 빈정거릴까 두려워서다. 허겁지겁 동의를 구하고 두 번째 가결을 알리는 방망이질을 할 때는 스포츠카 몰듯 잽싸게 해치운다.

다음 안건인 임원 보수 한도 승인 건을 상정하면 “어이 자네 봉급값 했는가?” 하는 촌로 주주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하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안건을 상정할 때쯤이면 괜스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떠 하이톤으로 변한다. 최종안이 통과됐다는 방망이를 두드릴 때는 어릴 적 동네 아주머니가 가볍고 신나게 두드린 빨래 방망이처럼 상쾌·경쾌·통쾌한 소리가 난다.

필자도 얼마 전 수퍼 주총데이를 무사히 마쳤다. 주주총회를 마치고 나올 때 어느 주주가 내 어깨를 가볍게 치며 “방망이를 왜 그리 빨리 두드리느냐?”고 농을 건냈다. 왜 그리도 무안하고 창피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다짐해본다. 내년에는 모두 신나고 행복한 주주총회를 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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