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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그냥 두면 인류의 종말 뻔하다”

“핵무기 그냥 두면 인류의 종말 뻔하다”

‘펜타곤 페이퍼’ 폭로로 유명한 대니얼 엘스버그, 신저에서 자신이 미국의 핵전쟁 기획자였음을 밝히며 ‘핵겨울’의 암울한 미래 경고해
엘스버그는 핵무기의 기술적인 결함이나 러시아와의 사소한 정치적 충돌만으로도 미국의 주요 도시들이 30분 안에 재와 연기로 사라지고 ‘핵겨울’이 올 수 있다고 암울하게 예측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대니얼 엘스버그는 미국 국방부 출신 군사분석 전문가 출신이다. 그는 1971년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 개입을 위해 무력충돌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국방부 극비문서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뉴욕타임스 신문에 넘겨 반전 여론을 확산시킨 인물로 널리 알려지면서 ‘세기의 내부폭로자’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그러나 엘스버그가 국방부 산하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사무실 금고에서 ‘펜타곤 페이퍼’를 몰래 빼내갈 때 챙긴 다른 문건도 있었다. 미국의 ‘상호확증파괴(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라는 핵전략의 설계자 중 한 명으로서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자료였다. MAD란 적이 핵 공격을 가할 경우 적의 공격 미사일 등이 도달하기 전에 또는 도달한 후 생존해 있는 보복력을 이용해 상대편도 전멸시키는 보복 핵전략을 가리킨다.

엘스버그는 핵 관련 일급비밀 문건을 비닐 봉투에 넣어 뉴욕 주 북부에 있는 형의 농장에 숨겨뒀다. ‘펜타곤 페이퍼’를 둘러싼 일대 소동이 가라앉고 난 뒤 그 내용을 폭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해 열대폭풍 도리아가 그곳을 덮치면서 그 소중한 문건이 완전히 유실되고 말았다. 그후로 그는 다시는 그 문건을 보지 못했다.

‘펜타곤 페이퍼’ 폭로 이후 엘스버그는 문서 오용 및 절도죄로 15차례 기소됐고, 정부로부터 불법도청과 정신병력 조사 등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 대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1973년 방면된 뒤 반전·반핵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세기의 내부폭로자’로 불리는 엘스버그는 신저 ‘최후 심판의 기계: 핵전쟁 기획자의 고백’에서 미국의 핵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담을 돌이켰다. / 사진:DEMOCRACYNOW.ORG
올해 87세로 여전히 건장한 엘스버그는 최근 미국 전역을 돌며 ‘최후 심판의 기계: 핵전쟁 기획자의 고백(The Doomsday Machine: Confessions of a Nuclear War Planner)’이라는 자신의 신저에 관해 강연하느라 바쁘다. 그는 그 책에서 자신이 미국의 핵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담을 돌이킨다. 그는 그 프로그램을 두고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저지르는 범죄’에 해당한다고 표현했다. “핵폭탄은 잘못된 경보나 테러리스트의 침입, 허가받지 않은 발사 결정에 취약한 체계를 갖췄기 때문이다.”

뉴스위크는 지난 4월 14일 진보적인 로비스트들의 모임에서 강연한 그를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공습을 결정한 바로 그날이었다. 미국과 영국-프랑스가 그 공습에 참가했고, 그들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내전에서 민간인을 표적으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데 대한 응징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시리아 정부와 러시아는 그런 행위를 부인했다. 현재 시리아 내전엔 핵무장한 5개국이 개입하고 있다.

엘스버그는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 당시 미국 핵 플랜은 전면전만을 가정했다”며 “만약 소련이 미국을 향해 핵을 발사하면, 미국은 소련은 물론 소련의 동맹인 중국 또한 동시 타격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핵무기를 공격에 사용하겠다는 ‘선제 사용’ 정책을 포기하기를 원한다. 그는 핵무기 개발이 한창일 때 자신과 동료들이 고안한 무기 시스템이 지금도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으며, 기술적인 결함이나 러시아와의 사소한 정치적 충돌만으로도 미국의 주요 도시들이 30분 안에 재와 연기로 사라지고 ‘핵겨울’이 온다고 암울하게 예측했다. 핵겨울이란 핵전쟁이 일어난 뒤에 계속된다는 어둡고 긴 겨울 상태로 미국 과학자 단체가 1983년 발표한 논문에서 사용한 용어다. 이 논문은 만약 미소 양국이 전면전쟁에 들어가 보유한 핵무기를 전부 발사하면 60일 후에는 북반구의 중위도 지방이 북극과 같은 영하 45℃의 한대로 변해 인류가 멸종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 당시 미국 핵플랜은 전면전만을 가정했다. 만약 소련이 미국을 향해 핵을 발사하면, 미국은 소련은 물론 소련의 동맹인 중국 또한 동시 타격할 계획이었다.”
1971년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엘스버그는 기자회견에서 그 보도를 막으려 했던 닉슨 대통령을 비난했다.
다음은 뉴스위크가 엘스버그와 가진 일문문답이다.



주제가 너무 끔찍하고 책 내용도 몹시 암울하다. 모두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내용인데 사람들이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은 종종 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럴 때면 나는 그들을 미심쩍게 바라본다. ‘당신 괴짜인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베트남전에서처럼 장애물과 어려움에 관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한다면 가능성이 아무리 작더라도 변화를 이뤄낼 기회가 생긴다. 정보가 없으면 시스템의 관성이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내 책에 담긴 그런 정보는 지난 반세기 동안 왜 핵전략의 그런 상황이 거의 변함이 없으며 문제의 핵심이 어디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책에서 지적했듯이 만약 핵무기 시스템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수단이라면 초기 핵무기 시스템 개발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당시엔 그것을 도덕적으로 어떻게 정당화했을지 궁금하다. 지금도 사람들은 당시의 당신처럼 생각하고 있을까?


분명히 그렇다.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을 비난하며 괴물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 얻은 교훈은 언제나 아주 평범한 사람이 끔찍한 행동에 참여하거나 그런 행동을 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반드시 아주 사악한 사람이라야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구의 종말을 가져울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의 경우 그 목적은 우리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믿어지는 적을 저지하는 것이다. 당시 우리는 소련을 ‘핵무장한 나치 독일’로 생각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시스템의 한 쪽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쪽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9년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하며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를 찾아가서 핵무기 폐기를 촉구했지만 두 번째 임기 말엔 핵무기 현대화에 1조 달러 이상을 지출하기로 동의했다. 그런 변화 과정에서 과연 어느 정도가 핵무기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산업을 위한 정책과 관련 있는가?


핵무기 시스템은 항공우주 산업에 막대한 지원을 제공했다. 항공우주 업계가 미국 국방부가 원하는 일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국방부는 보잉·레이시언·록히드가 필요로 했던 것을 정부에 판매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그런 지원을 합리화했다. 그런 합리화가 모든 것을 왜곡시켰다. 수익과 일자리, 정치인들의 표밭이 달라졌다. 의원들은 지역구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에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과 록히드 사이의 이익충돌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이해관계 상충을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말 북한은 ICBM급으로 알려진 화성-15형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 사진:NEWSIS


핵전쟁이 일어나면 지구상의 모든 동물 종과 거의 모든 인류가 멸절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핵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잘 생각해보라.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의 핵전쟁에서 실제로 승리했다. 하지만 그 전쟁은 일방적이었다. 핵무장한 두 나라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이 아니었다. 지금 미국은 북한과의 핵전쟁에서 이기는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다.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실제로 우리가 이길 것이다. 또 우리는 여전히 이 땅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남북한은 사라질 것이다. 그에 비해 미국은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 정도만 잃을 것이다. 적어도 한쪽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약 미국과 러시아가 핵전쟁을 치른다면 상황이 그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생존자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핵전쟁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인물 5명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메르켈 총리는 이 문제에서 세계적인 리더십을 아주 효과적으로 발휘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독일을 위해 핵무기 선제 공격 정책을 도입했다. 메르켈 총리는 그런 정책을 포기하고 어느 누구의 핵우산도 필요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어쩌면 그가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야 할 듯하다. 나는 핵 문제에서 중국의 세계적 리더십을 보고 싶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초콜릿 케이크를 나눠먹을 정도로 사이가 좋다. 또 중국은 1964년 이래 비교적 분별력 있는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은 다른 초강대국을 무장해제하거나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모든 초강대국이 그렇게 한다면 세계는 훨씬 더 안전해질 것이다.

그 다음은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다. 그는 영국의 비핵화를 원한다. 그는 이 책을 보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민주당 인사들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과 경쟁했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민주당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같은 진보적인 지도자들이 이 책을 꼭 읽기 바란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공화당 의원들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보는가?


그건 아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 장관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난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는 나처럼 해병 출신이다. 해병은 재래식 전쟁을 수행한다. 따라서 그는 핵무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내 생각에 매티스 장관이 ‘핵겨울’의 효과를 연구하도록 주선하면 좋겠다. 미국 국방부는 그런 연구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가진 핵폭탄이 사용되면 세계가 어떻게 될지 자문하는 연구 말이다. 그들은 인류가 종말을 맞는 것 외에 다른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 나나 벌레이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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