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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행 RG 발급 사실상 중단?…생존 위기에 내몰린 중소 조선사

[금융 지원 못 받는 중소 조선사②]
지난 2010년 이후 RG 발행 부산은행 4건, 대구·광주은행 2건 불과
낮은 신용도 및 담보 부족 원인…"기금 마련 등 현실적 지원책 마련해야"





[중앙포토]


한국 조선업계가 수년째 이어진 불황에 마침표를 찍고 재도약의 뱃고동을 울리고 있다. 그러나 중소형 조선사들은 재도약은커녕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을 포함한 국내 주요 은행들이 대형 조선사 위주의 금융 지원에 골몰하는 사이, 중소형 조선사들은 존폐 기로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른바 ‘K-조선 재도약의 명암’이다.  
[이코노미스트]가 국내 주요 은행들의 지난 20년간 RG(선수금 환급 보증) 발급 현황을 추적한 이유다. 조선사 파산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 금융사가 선주에 선수금을 대신 환급하기로 약정하는 보증인 RG는 조선사 금융 지원의 핵심이다.  
올해 상반기(1월 1일~6월 30일)에만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을 포함한 국내 주요 은행들의 RG 발급 규모는 6조원을 넘어섰지만, 같은 기간 소형 조선사에 대한 RG발급은 25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조선사가 밀집한 부산·울산·경남 등에 위치한 지방은행이 지난 10년간 소형 조선사에 발급한 RG 건수도 6건에 그쳤다.  
국내 주요 은행은 부실 대출을 우려해 소형 조선사 RG 발급을 꺼리고, 신용보증기금의 중소 조선사 RG 특례보증 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K-조선 재도약 속 침몰 위기에 내몰린 중소 조선사 문제와 해법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
 
조선소 밀집 지역인 부산·울산·경남 및 호남 등 지역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는 지방은행의 RG(선수금 환급 보증) 발행이 거의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발행된 건수가 단 6건에 불과해 낮은 신용도 및 업황 악화 등을 이유로 해당 지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중소 조선사 지원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K-조선’ 구호에도 중소형 조선사들 ‘RG 가뭄’ 여전

28일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2010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국내은행 17곳(국책은행 포함)의 RG 발행 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방은행 가운데 부산은행 4건 및 대구은행 및 광주은행이 발행한 2건이 유일한 것으로 파악됐다.
 
RG는 건조된 선박이 계약대로 인도되지 못하면 발주사가 조선사에 낸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지급해준다는 일종의 보증서다. 중소형 조선사로서는 RG 발급이 선행돼야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기반으로 선박 건조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만약 RG 발급이 거절당하게 되면 사실상 조선사들의 밥줄인 수주가 중단되는 셈이다.
 
최근 ‘K-조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조선업황이 회복세를 나타나면서 대형 조선사들의 대규모 해외수주 소식이 들리고 있지만, 중소 조선사들의 ‘RG 가뭄’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중소 조선사 관계자는 “대기업은 수주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반면 중소 조선사 선박수출은 거의 제로 상태”라며 “국가에서 발주하는 선박도 예산이 부족해 지난해 대비 70%~80% 정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중소 조선사 관계자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황 악화가 지속되면서 대형사들조차도 RG 발급 기간이 석달 이상으로 길어졌다”며 “신용도가 낮은 중소형사들의 경우 어렵게 따낸 수주를 포기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형 조선사의 경우 RG 발급이 늦어지더라도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유동 자금을 마련할 수 있지만 중소형사들의 경우 담보 능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RG 발급 거절은 치명적”이라며 “시중은행들로부터 거절당한 중소조선사들이 지방은행들에게까지 외면 받는다면 사실상 기댈 곳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RG 발급 요청 거의 없어” vs “낮은 신용도 거절 불보듯” 

[사진 각 지방은행 로고]
 
상황이 이런데도 지방은행의 경우 ‘리스크 관리’ 기조를 내세우며 RG 발급에 소극적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부산·경남지역의 경우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진중공업 등 세계 7대 조선소 중 6개가 자리잡고 있는데, 중소형 조선사들의 수주 증가는 곧 지역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직결된다.
 
물론 지방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선박건조 계약서에는 ‘일정 신용등급 이상 은행을 RG보증 은행으로 한다’는 문구가 들어가는데, 선주 입장에서는 글로벌 신용도가 높은 은행이 선수금 환급을 보증해야 안전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보통 신용등급이 높은 수출입은행이 대형 RG 계약을 맡아 왔지만, 2010년 이후부터는 우리나라 시중은행들의 신용도도 높아져 RG업무를 함께 해 왔다. 상대적으로 자산 규모에서 열세인 지방은행의 경우 RG 발급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조선업황이 좋을 때는 중소형 조선사들도 주거래 은행인 대형 시중은행에 RG 발급 업무를 맡겼는데 업황이 악화되면서 시중은행들이 중소형사의 RG 발행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부거래 은행 역할을 하는 지방은행들로서는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조선업 경기가 급락하고 조선사들이 연쇄 파산하면서 국내 금융사들은 수조원대의 대규모 손실을 봤다. 이후 은행들은 조선산업에 대한 금융지원 요건을 대폭 강화하거나 중단했고, 이에 중소형 조선사들에 대한 RG 발급도 사실상 끊겼다.  
 
지방은행들도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최근 수년간 조선사들의 RG 발급 요청이 거의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부산은행 관계자는 “올해 중소형 조선사의 RG 신청이 말 그대로 제로였다”고 말했고, 경남은행 역시 “최근 1~2년간 중소형 선박사의 RG 신청 건수가 아예 없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중소 조선사 관계자는 “RG 발급이 필요한 대규모 수주는 보통 산업·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맡아 왔다”며 “통상 선박수출의 경우 대규모로 진행되다 보니 지방은행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십억에서 수백억 수주의 경우 지방은행들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지만 이마저도 담보 제공 및 낮은 신용도 등을 이유로 RG 발급이 거절될 가능성이 높아 아예 요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선업계 “정부 차원의 기금 조성 및 제도 개선 필요”  

이와 관련해 정부도 9월 초 ‘K-조선 재도약 전략’을 발표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중소 조선사 지원책 마련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정책금융 기관장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조선업 호황에도 대형-중소사간 경영여건 개선 속도가 양극화되고, 중소형 조선사의 금융 여건이 녹록지 않다”며 “특히 대부분 중소형 조선사 구조조정이 마무리됐고, 수주 여건도 개선세에 있는 만큼 정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RG 발급 등 금융지원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RG 부분 보증 업무를 맡고 있는 신용보증기금을 비롯해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 기관장들도 “실무회의에서 논의된 다양한 지원 방안을 적극 검토해 RG 특례보증 한도확대, 중소 조선사의 사업재편 지원,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유동성 지원 등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화답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중소형사 대상 RG 발급을 위한 별도의 기금 마련이나 보증비율 상향 등의 현실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중소조선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중소형 조선사만을 대상으로 하는 기금이 마련되야 한다”며 “보증 기관이 우려하는 부실 가능성의 경우 전문가 중심의 위원회를 구성해 사업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이뤄진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부연했다.  
 
지방은행들 역시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구체화될 경우 중소형 조선사와의 상생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부산은행 관계자는 “해양금융부 부서를 신설하고 보증 관련 상품을 확대하기 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다원 인턴기자 hong.da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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