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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냉혹한 현실 체감”하고 ‘뉴 삼성’의 길 제시하다

광폭행보 통해 뚜렷해진 ‘반도체·ICT·바이오’의 새로운 삼성
백악관과 공급망 문제 논의…반도체 인센티브 법안 통과 요청도
거미줄 ICT 인맥 통해 AI·메타버스 등 차세대 기술 협력 협의
바이오업계 리더 모더나 CEO 만남 통해 글로벌 제약시장 공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을 마친 뒤 24일 오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해 건물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을 마친 뒤 24일 오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해 건물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현장의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되니 마음이 무겁다”
 
10박11일 간의 북미 출장을 마치고 24일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소회다.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방문 이후 13개월 만이었다. 북미 출장은 2016년 이후 5년4개월 만이다. 5년여만의 미국행이라는 점, 그리고 지난 8월 가석방 이후 첫 글로벌 경영 행보라는 점에서도 그가 내놓을 성과에 관해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지난 19일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의 34주기 추도식도 불참하며 출장길에 나섰다는 점에서 그의 미국 방문이 가진 의미는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 부회장의 입에서 “마음이 무겁다”라는 표현이 나온 것은 날로 격화되는 글로벌 시장 경쟁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의 이번 출장은 삼성의 미래 성장 동력의 기틀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미국 동부와 서부를 오가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정을 소화하며 강행군을 펼치고 가시적인 성과도 도출했기 때문이다.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 위한 통큰 투자…냉혹한 현실도 체감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성과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약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내년 상반기에 착공해 2024년 하반기 가동이 목표다.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이번 파운드리 공장 건설은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1위 달성’이라는 삼성전자의 목표를 실현시킬 승부수라는 평가다. 앞서 지난 2019년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이후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203 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7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자료 업계]

[자료 업계]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1년 2분기 기준 대만 TSMC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52.9%로 글로벌 1위 지위를 탄탄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7.3%로 그 뒤를 쫓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5G, 메타버스 등 IT산업을 이끄는 미국 한복판에 파운드리 공장을 만들어 시스템 반도체 고객에게 첨단 미세 공정 서비스를 보다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공장 부지가 결정되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즉각 환영 입장을 내놨다. 브라이언 디스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좌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의 공급망 보호는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의 최대 우선 과제”라며 “오늘 삼성의 투자 발표를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백악관을 비롯해 미국 정가 인사들도 연쇄적으로 접촉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반도체 인센티브 법안을 담당하는 핵심 인사를 중심으로 미국 연방의회 핵심 의원들을 만나 반도체 인센티브 관련 법안의 통과 등에 대한 협조를 강하게 요청한 것이다.  
 

인텔 등 현지 반도체업체 집중 견제 뚫고 안착할 수 있나  

해당 법안은 바이든 행정부가 발의한 반도체생산촉진법(CHIPS for America)으로, 핵심 IT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할 수 있도록 520억 달러(약 62조원)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은 지난 6월 상원을 통과했지만, 현재 하원에 계류 중이다. 삼성전자·TSMC 등 해외 기업에도 보조금을 주는 것에 미국 반도체업계에서 반대하고 있어서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미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생산비가 아시아보다 30∼40% 비싸서는 안 된다”며 “이 차이를 줄여 미국에 더 크고 빠른 반도체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미국 정부에 호소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했다고 2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기자회견 하는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했다고 2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기자회견 하는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사진 삼성전자]

 
이 부회장은 출장 이튿날인 19일에는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과도 만났다. 백악관이 외국 기업의 대표를 개별적으로 초청해 핵심 참모들과의 면담 일정을 마련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투자를 사실상 결정하고, 백악관 측에 이를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글로벌 이슈로 부상한 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결 방안, 연방정부 차원의 반도체 기업 대상 인센티브 등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삼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폭넓은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첫 행선지로 정한 AI센터…삼성의 미래 증명해 

두드러진 성과는 ‘반도체’였지만 이번 북미 일정에서 가장 많이 할애한 부분은 AI·메타버스 등 차세대 소프트웨어와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였다.
 
이 부회장의 출장 첫 일정이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삼성 AI센터였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업계 관계자는 “가석방 후 첫 해외 출장지로 AI센터를 택했다는 것은 AI가 삼성의 미래사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토론토센터는 스벤 디킨스 토론토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센터장을, 엘런 젭슨 토론토대 교수가 부사장 겸 수석과학자를 맡고 있다. 두 교수는 ‘AI의 눈’으로 불리는 컴퓨터 비전 분야의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라이즌 본사에서 한스 베스트베리 CEO(왼쪽)와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라이즌 본사에서 한스 베스트베리 CEO(왼쪽)와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AI는 이 부회장이 각별히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 후 삼성은 지난 8월 3년간 24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삼성은 “AI·로봇 등 미래 신기술·신사업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2일 개최된 ‘삼성 AI 포럼 2021’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승현준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은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AI 기술은 사람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드는 기술이며 삼성리서치의 모든 R&D 영역에 AI가 적용되고 있다”고 전사적으로 AI가 쓰이고 있음을 설명하기도 했다.  
 

구글과 ‘안드로이드 동맹’ 굳건히…빅테크 CEO와 ICT 집중 논의 

이 부회장은 귀국 비행기에 오르는 전 마지막 날인 22일(현지시간)에도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를 만나 AI를 비롯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자율주행 등 ICT 분야의 다양한 공조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10여년 전부터 스마트폰 사업에서 오랫동안 협력 관계였던 삼성전자와 구글은 시스템반도체로 협력 분야를 확대했다. 
 
업계에서는 구글이 자체 설계한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올 연말 생산 예정인 스마트폰 ‘픽셀 시리즈 6’에 탑재하기로 한 가운데 삼성전자에 칩 생산을 맡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시스템 반도체, AI 분야까지 협력 범위를 넓힐 경우 이른바 ‘안드로이드 동맹’이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와 면담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와 면담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 부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차세대 ICT 기술 협력을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버라이즌 경영진도 만났다. MS의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모바일 ▶VR ▶AR ▶메타버스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협력 및 소프트웨어(S/W) 생태계 확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마존을 방문한 자리에선 ▶AI ▶클라우드 컴퓨팅 등 차세대 유망산업 전반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고 한다.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를 만나서는 5G 네트워크 통신 장비 사업 등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의 협력방안에 관해 얘기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버라이즌은 2018년 세계 최초로 5G 홈(5G FWA) 서비스를 상용화한 데 이어 2019년 5G 이동통신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상용화하는 등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제2 반도체 신화’ 꿈꾸는 바이오…모더나 CEO로 물꼬 틀까 

이 부회장이 빼놓지 않고 만난 인사는 누바아페얀 모더나 공동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이었다. 이 부회장은 지난 8월 24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코로나19 이후 미래준비’ 계획을 발표하며 바이오산업을 ‘제2의 반도체 신화’로 창출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지나 16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누바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오른쪽)의 모습. [사진 삼성전자]

지나 16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누바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오른쪽)의 모습. [사진 삼성전자]

 
모더나와 삼성은 코로나19 백신으로 ‘사업 파트너’ 관계로 올라섰다. 이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5월 모더나와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생산 계약을 체결하고 8월부터 생산에 나섰으며, 10월부터는 삼성이 생산한 백신이 국내에 출하돼 전국의 방역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아페얀 의장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진행된 코로나19 백신 사업에서의 공조 방안과 향후 추가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더 나아가 중장기적으로 바이오산업 전반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아페얀 의장은 1999년 설립한 바이오 제약 관련 투자회사인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을 통해 모더나를 포함한 100개 이상의 혁신적인 바이오텍을 발굴해 투자하는 등 업계 리더로 꼽히는 인물로 업계 영향력이 크다. 야페얀 의장과의 만남을 계기로 향후 글로벌 바이오업체들과의 활발한 교류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글로벌 기업 CEO와의 만남은 이 부회장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귀국 후 김포공항 서울김포비즈니스 항공센터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래된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보고 회포를 풀 수 있었고, 또 미래에 대해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참 좋은 출장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말한 “시장의 냉혹한 현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재다. 그가 광폭 행보를 통해 보여준 ‘뉴 삼성’이 본 궤도에 얼마나 빨리 오르느냐가 삼성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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