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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에 밀려오는 중국 압박용 한·미 동맹 청구서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미국, 통신 등 첨단기술 관련 요구 이어
나토·아태 연맹 확대에 동참까지 유도해
한국에 “중국 포위망 일원이 될 것” 요구

 
 
미국 국기와 중국 국기를 배경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미국 달러 지폐와 중국 위안 지폐. [로이터=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20~22일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맞았다. 한국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한‧미 정상이 대면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5월 21일 발표한 한·미 공동성명은 두 정상 간의 호흡이 잘 맞는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미연합방위 태세에 대한 상호공약 확인, 경제안보와 공급망을 둘러싼 협력 태세 강화 등 안보와 경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제안한 인도 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대한 한국 참여를 약속 받았으며 한국에 이어 방문한 일본에서 이를 공식 출범했다.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글로벌 역할을 강화하기로 한 부분이다. 이를 위해 한·미 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업그레이드한 목적이 보인다. 사실 동맹 강화에 대한 청구서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한미 공동성명 곳곳에 한·미의 전략적 결합을 강화하는 부분이 보인다. 문제는 그 결합의 최종 과녁이 중국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최고 전략 목표가 중국 견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동성명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미래는 21세기 도전들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에 의해 규정될 것임을 인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 정상은 핵심·신흥 기술과 사이버 안보 협력을 심화하고 확대해 나갈 것을 약속하였다. 양 정상은 또한 공동의 민주주의 원칙과 보편적 가치에 맞게 기술을 개발, 사용, 발전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언뜻 보면 지당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문구가 왜 공동성명에 굳이 명시됐는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21세기 도전’이라고 두루뭉수리로 적었지만 사실 미국의 속내는 중국에 대한 압박에 한국이 동참하기를 바라는 의도가 읽힌다. 미국의 국가 목표가 미·중 대결에서 중국을 누르는 것이니만큼 미국이 동맹국에 이를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21세기 도전은 여러 가지를 가리킬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이 미국의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와 지식재산권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도용하거나 해킹하면서 자국의 기술산업 발전에 이용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런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산업을 일으켜 산업혁명과 IT 혁명에 이은 새로운 경제혁명으로 세계를 주도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은 이미 일반화한 전망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을 정당한 가격을 주고 사는 대신 도용하거나 해킹해서 쓰려고 한다는 합리적 의심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기술에 민주주의 이데올로기 적용해 중국에 대항

공동성명에서 나타난 ‘양 정상은 핵심·신흥 기술과 사이버 안보 협력을 심화하고 확대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는 부분은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동성명에는 “첨단 반도체, 친환경 전기차용 배터리, 인공지능, 양자기술, 바이오기술, 바이오제조, 자율 로봇을 포함한 핵심·신흥 기술을 보호하고 진흥하기 위한 민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부분도 있다.  
 
이를 결합하면 미국은 중국이 굴기하는 데 필수적인 첨단 반도체, 친환경 전기차용 배터리, 인공지능, 양자기술, 바이오기술, 바이오제조, 자율 로봇 등 첨단 기술이 더는 중국에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보호’란 미국과 한국의 이런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과 특허가 중국에 의해 침해되지 않도록 하면서 중국의 무상 접근을 공동으로 막자는 의미일 것이다.  
 
‘양 정상은 또한 공동의 민주주의 원칙과 보편적 가치에 맞게 기술을 개발, 사용, 발전시킬 것을 약속하였다’는 부분은 권위주의적인 중국에 첨단 기술이 흘러 들어가지 못하도록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한국과 미국 등이 막자는 합의로 볼 수 있다. 과학기술에 민주주의 원칙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적용해 대중국 유입을 막자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미국의 대중국 통신 압박이다. 공동성명에 있는 “통신 보안과 사업자 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양 정상은 또한 국내외에서 개방형 무선접속망(Open-RAN) 접근법을 사용하여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안전한 5G 및 6G 네트워크 장비와 구조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협력할 것을 약속하였다”는 부분이 이를 가리킨다. 이미 지난해 5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방미 당시 공동성명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미국이 집요하게 한국에 요청하는 내용이라는 의미다.  
 
여기에서 언급한 ‘개방형 무선접속망(Open-RAN‧오픈랜)’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오픈랜은 미국 업체의 오픈랜은 5G 무선접속망의 소프트웨어(SW)과 인터스페이스를 개방형 표준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 네트워크 하드웨어(HW)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때 해당 제조사의 것만 계속 쓸 필요가 없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 두고 네트워크 운용에 필요한 SW와 HW를 분리한다거나, 제조사 종속성 탈피라고 표현한다. 이동통신사가 필요에 맞게 업그레이드 소프트웨어를 마음에 맞는 걸로 골라 쓸 수 있어 비용 절감과 효율 상승을 기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장비 제조업체가 없는 미국의 산업계가 통신망 업그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효과가 있다. 오픈 랜에 대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업체들은 뜨악한 표정이다. 초기 장비 공급을 계기로 계속 독점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사업에 미국 업체가 참여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한국 업체들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과 조건을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솔루션을 찾아야 하는 입장이다.  
 
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윤석열 대통령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토,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새로운 위협으로 규정

바이든의 방한 뒤 한국 정부가 곧바로 받은 청구서의 하나는 5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초청받은 것이다. 현재로썬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나토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본·호주·뉴질랜드와 같은 아시아·태평양 국가와 핀란드·스웨덴 등 한때 중립국(지난달 나토 가입 신청을 했다), 우크라이나‧조지아 등 옛 소련에서 분리한 국가와 함께 파트너 국가에 속한다. 나토 사이버 방위센터의 정회원국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한국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유럽에 안보 위기 상황이 온 상태라는 배경도 있다. 나토와 미국으로선 한국과 같은 아시아·태평양 국가와 협력을 강화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할 때 더 세력을 크게 보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나토는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나토에 대한 ‘새로운 위협’으로 규정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5월 1일 워싱턴에서 미국을 방문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를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이달 말 열릴) 나토 정상회의에서 현재와 미래에 예상되는 위협을 다룰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전략 개념’을 채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의 전략 개념이란 안보환경에 대한 평가와 이에 대한 대응 전략 등을 담은 공식 문서다. 한마디로 나토의 입장과 방향을 보여주는 문서다. 이를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손보면서 중국이 중요한 위협이란 사실을 명시하겠다고 밝힌 셈이다.  
 
나토는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도 중국의 위협을 명시적으로 밝힌 데 이어 2021년 6월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러시아를 ‘새로운 도전’이라고 언급했다. 중국이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에 구조적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1948년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공동방위 기구로 설립된 나토가 중국까지 위협으로 문제 삼고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핵심 의제로 다룬 것이다. 블링컨의 이번 발언은 이를 아예 ‘나토의 전략 개념’ 속에 명시하겠다는 이야기다.  
 
사실 블링컨은 이날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발간 100주년 기념 온라인 대담에서 중국 견제 이유가 당시 바이든이 말한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에 구조적으로 도전’임을 재확인했다. 바이든은 이날 대담에서 중국을 “규범에 입각한 국제 질서에 대한 가장 심각한 장기적 도전”으로 다시 한번 규정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국제 질서를 다시 구성하려는 의도와 이를 위해 필요한 경제·외교·군사·기술적 능력을 모두 갖춰가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지목했다. 이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미국 내부로의 투자, 동맹·우방과의 연계, 경쟁 등을 제시했다.  
 
블링컨 장관은 “전략 개념에는 중국의 급속한 군사화와 러시아와의 ‘제한 없는 우정’, 세계 평화와 안보에 필수적인 법치를 바탕에 둔 국제질서의 약화 시도 등이 포함된다”며 전략 개념 수정이 중국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제한 없는 우정’은 지난 2월 4일 베이징 겨울 올림픽 직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성명에서 나온 표현이다. 중국은 이 표현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용인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중국과 러시아의 끈끈한 결합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블링컨이 이 대목에서 이를 사용한 이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면담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면담 자리에서 미국에 2025년까지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50억 달러(약 6조3000억원)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미국, 한국에 중국 경제적·군사적 압박하는 동맹 요구

문제는 이를 전략 개념을 유럽에서 유럽+아태로 확장하는 전략 개념 수정 결의를 할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이 초청됐다는 사실이다. 나토와 미국이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 국가 정상을 이번 회의에 초대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도 “러시아와 중국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과의 전략적 경쟁이 점차 늘어나는 시기에 대비하고 억지력과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차기 전략 개념을 채택하기로 (블링컨 장관과) 합의했다”며 “이는 이달 말 정상회의에서 내려질 중요한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말 나토 정상회의의 목적이 나토와 인태 국가의 결합을 통해 나토가 중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힌 셈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유럽연합(EU) 및 인·태 지역의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냉전 초기인 1949년 서유럽·북미 국가들이 소련에 대항하고 공동방위를 하기 위해 결성한 나토가 대중 견제용으로 진화한다는 의미다.  
 
사실 나토는 경쟁 상대였던 바르샤바 조약기구(55~91)가 소련 붕괴 뒤 해체되면서 존폐 위기에 처했다. 미국은 나토를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를 수호하는 ‘가치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존속시켜왔다. 그러다 이번에 미국이 새로운 위협으로 상정한 중국까지 견제하는 조직으로 업그레이드를 시도하는 셈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나토를 인·태 지역의 미국 동맹·우방과 연합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파워기구로 바꾸겠다는 의도가 보인다는 점이다.  
 
현재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각자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미는 서로 차이가 없다. 문제는 미국이 한‧미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에 이처럼 중국을 경제적·군사적으로 포위하고 압박하는 동맹 체인 구성에 협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맹을 중국 압박의 기제로 보는 미국과 안보와 북핵 해결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한국 사이에 미묘한 틈새가 보이는 부분이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극복해야 할 새로운 과제다. 동맹 협력과 국익 사이에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한국의 국력이 그만큼 커진 상황에서 한·미 동맹도 새로운 형식이 필요함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 대만 같이 중국과 경제 교류가 큰 국가는 미·중 경쟁 상황에서 특수한 상황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러시아에 대한 서방 주도의 경제 제재에서 이스라엘은 불참했다. 러시아가 이스라엘의 사활이 걸린 이란과 시리아와 관련한 정보를 교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미국이 인정해서다. 이스라엘에는 러시아에서 온 유대인과 비유대인(주로 배우자) 이주자 인구도 상당해 국내 정치적으로도 예민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한국은 일본·대만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대중 압박 동참에서 일정 부분 유예를 받을 필요도 있다. 미국과 한국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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