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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무한동력은 실패·도전에 대한 관대함에서 [유웅환 반도체 열전]

산·학·연 선순환 구조 갖춰
협업·공유·네트워크 중시해

 
 
2020년 10월 그래픽 아티스트가 독일 베를린에서 애플 기업을 홍보하는 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마르지 않는 샘이란 없다. 모든 샘물은 하늘에서 비가 내려 끊임없이 충원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가 현재 세계를 이끌어가는 기업들의 집합체라고 해서 그것이 영원하리라는 법은 없으며, 실리콘밸리의 경쟁력의 근원 중 하나인 스탠퍼드가 세계 일류의 대학이라고 해서 그것 역시 영속할 순 없다.
 
그러나 여전히 실리콘밸리는 실리콘밸리고 스탠퍼드는 스탠퍼드다. 샘에 끊임없이 신선한 물이 공급돼 솟아나듯, 스탠퍼드와 실리콘밸리 등 산학연을 잇는 현 시스템은 선순환 구조를 그린다. 이는 교육, 지역, 기업이 서로 합심하여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주는 그들이야말로 실리콘밸리의 진정한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순환 구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실리콘밸리 경쟁력은 ‘협업’

실리콘밸리는 하나의 크러스트 형태를 취하고 있고, 이로 인해 각 기업의 팀들 역시 협업이 활발하다. 팀 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 중 하나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혼자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나의 꿈을 이루려면 타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대로 타인의 꿈을 응원하다 나의 꿈을 이룰 수도 있다. 개인의 꿈이 조직의 꿈이 될 수도 있고, 조직의 꿈이 나의 꿈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이전 세기의 조직형 인재와는 사뭇 다른 개념이다. 예전에는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능력들이 조합되는 방식으로서의 자질이 중요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협업의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거나 발견되고, 따라서 목표가 바뀔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방식의 자질이 중요하다. 결과를 위한 과정이 아니요, 과정은 결과를 위해서만 복무하는 것이 아니다. 과정 속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놀라운 힘으로 창조해 만들어내어야 한다. 협업과 협업형 인재가 이를 가능케 한다.
 
세계적인 전자전기 기업 지멘스의 조 케저(Joe Kaeser) 전 회장은 국내 한 포럼에서 “협업은 혁신의 새로운 공식이다”라고 설파했다. 그는 협업은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 많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협업’ ‘공유’ ‘네트워크’ 등이 디지털 세계의 핵심가치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는 유행의 흐름을 좇기에 급급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보다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퍼스트 무버는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와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데, 협업을 통한 새로운 창조는 퍼스트 무버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지난 5월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증권거래소 주가 화면에 비치는 행인 모습. [AFP=연합뉴스]

위험을 감수해야 성공 이뤄

허나 기술과 아이템이 좋다고 한들 그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거나, 세상이 그만한 그릇이 못 된다면 모두 헛수고일 뿐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은 열린 자세, 즉 포용과 관대함으로부터 나온다. 실리콘밸리의 그들은 실패를 용인한다. 실리콘밸리는 위험 부담(risk taking)으로부터 이익을 창출한다.  
 
현재에도 수많은 벤처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그들 중 일부는 대박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 숫자보다 몇 곱절 많은 수의 벤처들이 망한다. 특이한 것은 벤처의 실패에 대해 창업주가 모든 경제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상 벤처는 개인 돈으로 출자하는 경우보다는 투자자들의 돈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들은 사업 아이템의 적실성과 그것의 시장 가치를 따져보고 돈을 투자하는 순간 그 회사의 운명에 동참하게 된다. 투자 수입을 공동 분배하는 것처럼 책임 부담 또한 공동으로 지는 것이다. 이처럼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환경으로 인해서 과감한 도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실리콘밸리는 경험치를 높이 산다. 앞서 이야기했던 벤처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있어서 미국은 가시적 성과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벤처가 만들어지고 실패하는 과정 전반에도 관심을 갖는다. 특히 창업주는 회사를 세우고 그것을 관리하는 전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실무 감각, 현장 감각,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두루 경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약 창업주가 실패를 했다면 그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부터 여러 가지를 배웠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풍토로 인해서 벤처 실패 이후에도 기업에 재취업하는 사례도 많다. 실패와 도전에 관대한 문화의 뿌리는 과거 서부 개척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실리콘밸리는 이미 문화적·지리적·역사적으로 도전정신·개척정신·모험정신을 구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실패는 성공의 반대말이 아니라 도전과 동의어였던 것이다.
 
2019년 9월 홍콩 소재 애플 매장에서 아이폰 제품을 살펴보고 있는 방문객들. [AFP=연합뉴스]

성공의 원동력은 다양성에서

실리콘밸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도가니와 같다. 사전적으로 도가니는 금속을 용해하는 그릇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는 다양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각각의 이질적인 요소들을 녹여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주물공장과 같다.  
 
우선 그들은 인종적인 다양성, 계급적인 다양성, 젠더적인 다양성을 포용해 창의적인 혁신을 주조해 내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완벽한 단계는 아니다. 갖은 차별과 불평등도 존재한다. 직장인 비율에서 백인 남성의 비율이 여전히 높다. 하지만 인종적으로 유대인·인도인·중국인이 없는 실리콘밸리를 상상할 수 없으며, 여성의 리더십 역시 과소평가할 수 없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차별이 존재한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 벽을 제거하겠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국내의 시선과 실리콘밸리의 시선을 각각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대체적인 인상은 저임금 노동에 고강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실리콘밸리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유의 지식과 문화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인재로 바라본다.  
 
세계 경쟁력은 모든 노동력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 각각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실천한다. 분명 실리콘밸리의 성장 동력에는 그 어떠한 문화적·지리적·종적 경계에도 종속되지 않는 포용력이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직원에게 아낌없이 베푼다. 실리콘밸리의 상당수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주고 있지만 봉급·승진, 그리고 각종 복지혜택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직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회사의 방향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듯 한 사람의 작은 아이디어가 시장의 판도 자체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 필자는 27년 경력의 반도체 열사(烈士)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후 인텔에서 수석매니저를 지냈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스카웃돼 최연소 상무로 재직했다.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SKT 부사장(ESG그룹장) 등을 거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정책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 반도체 분야 90여 편의 국제 논문과 Prentice Hall과 고속반도체 설계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다.
 

유웅환 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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