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2% 수익률'에 묶인 내 퇴직연금..."안전자산 인식 버려라"
- [퇴직연금, 이제 굴려야 할 시간]①
수익률 2~4%에 묶인 ‘잠자는 돈’
대부분 중도 인출...적극적 ‘자산 굴리기’ 나서야
GDP를 1% 끌어올릴 경우 약 20조원대의 부가가치가 추가로 창출되는 반면, 연금 자산 수익률을 1% 높이면 연간 약 30조원 규모의 자산 증가 효과가 발생한다. 이는 단순한 금융 성과를 넘어 국민 경제 전반에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다. 또 연금 수익률 개선은 개인 자산에 직접 반영돼 노후 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저성장·고령화 국면에 접어든 한국 경제에서 연금 운용 효율성 제고가 또 다른 ‘성장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유다.
특히 퇴직연금은 수익률 개선이 가장 시급한 자산으로 꼽힌다. 적립금이 500조원에 육박했지만 퇴직연금 자산의 약 70~80%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머물러 있어 가입자 대부분의 수익률이 2~4%에 그치고 있다. 사실상 ‘예금형 자산’에 머물러 있는 구조다. 지금이라도 퇴직연금을 굴려 노후 안전망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아쉬운 퇴직연금 지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 합산으로 496조8021억원을 기록했다. 500조원에 육박하는 자산을 형성하게 됐지만 수익률은 초라하다. 통합연금포털 퇴직연금 비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 42개 사업자(은행·증권·보험사)의 DB형 평균 수익률은 2.79%, DC형은 3.87%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DB형, DC형 모두 평균 수익률이 2~4%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대다수의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DB형과 DC형의 차이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DB형은 기업이 적립금 운용을 책임지며, 운용 성과가 좋든 나쁘든 근로자는 약정된 금액을 받게 된다. 안정성은 높지만, 자산 운용에 따른 추가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반면 DC형은 자산운용을 근로자가 직접 결정한다. 투자 상품 선택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며, 성과에 따라 퇴직 후 수령액도 변동된다.
현재 절반 이상의 가입자들은 비교적 안정형인 DB형을 선택해 퇴직연금을 '방치'하는 중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024년에 발표한 퇴직연금 보고서에 따르면 가입자들이 선택한 제도 유형은 DB형이 53.7%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DC형은 25.9%, IRP는 20%를 기록했다.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DC·IRP 비중이 아직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면서, 자산을 적극적으로 굴리는 ‘연금 투자’ 문화 역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10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퇴직연금에 대해 ‘투자’라는 개념보다 약간의 이자를 얹어주는 ‘예금형 상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며 “그래서 2% 수준의 낮은 수익률에도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별도의 투자 판단을 하지 않더라도 장기 자산배분 전략이 자동 적용되도록 설계된 제도다. 그러나 실제 운용 구조를 보면 취지가 무색하다.
2025년 기준 공시 자료에 따르면 가입자 기준으로 안정형 선택 비중이 79.4%에 달한다. 반면 적극투자형과 중립투자형 비중은 각각 5.3%, 6.4%에 그쳐 대부분 가입자가 여전히 저위험 자산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률 격차는 분명하다. 적극투자형은 연 14.93%, 중립투자형은 10.81%를 기록한 반면, 안정형은 2.63% 수준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입자 선택은 수익률이 낮은 구간에 집중되며 자산배분 효과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퇴직연금은 안전해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사의 방식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은행과 보험사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초저위험’ 비중은 80~90% 수준에 달했고 일부 증권사만 상대적으로 투자형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일 업라이즈투자자문 대표는 “일부 증권사는 900개 이상의 상장지수펀드(ETF)를 제공하고 실시간 거래 환경을 구축한 반면, 은행과 보험사는 100~200개 수준의 제한된 상품만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의 퇴직연금 담당자가 보수적으로 상품군을 제한하거나, 금융사의 시스템이 낙후된 경우 가입자의 적극적 운용은 구조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연금 수령 유도’ 제도적 장치 필요
퇴직연금이 노후대비 보다는 당장의 ‘생계형 목돈’으로 활용된다는 점도 문제다. 고용노동부 보고서에 따르면 퇴직연금 수령 계좌 중 연금 형태로 수령하는 비중은 약 10~13% 수준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부분은 일시금 형태로 인출되고 있었다. 지난 2023년 중도인출 규모는 2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0% 증가했으며, 인출 사유의 절반 이상이 주택 구입(52.7%)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주거 임차 목적(27.5%)까지 더하면 퇴직연금이 노후 대비 자산이 아닌 사실상 부동산 자금으로 활용되고 있는 구조가 뚜렷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과 함께 가입자 행동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투자 상품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투자 교육과 함께 연금 수령을 유도하는 세제·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금융회사 역시 원리금 상품 중심의 영업 구조에서 벗어나 장기 자산관리 관점의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디폴트 옵션 제도의 구조적 개선도 과제로 꼽힌다. 현재 한국형 디폴트 옵션은 가입자가 사전에 직접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옵트인’ 방식이다. 이에 대해 정도영 한양대 ERICA 교수는 “미국이나 호주처럼 기본적으로 투자 상품이 자동 지정되고 원하지 않을 경우만 변경하는 ‘옵트아웃’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책임 구조의 명확화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투자 선택의 책임은 가입자가 지되, 적절한 상품을 제공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은 사업주와 금융기관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기관이 일정 수준 책임을 가지고 디폴트 상품을 설계해야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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