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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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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文 평산책방 방문…“길 없는 길 가겠다”

정책이슈

정치권 일각에서 ‘2024년 총선 출마설’이 제기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을 방문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났다.조 전 장관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이날 문 전 대통령과 만났다고 밝혔다. 조 전 장관이 문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조 전 장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님을 오랜만에 찾아뵙고 평산책방에서 책방지기로 잠시 봉사한 후 독주를 나누고 귀경했다”고 전했다.이어 “저는 대학 교수로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 활동을 벌였고, 2015년 6월10일 새정치연합 혁신위원으로 임명되어 당시 문재인 대표의 당 혁신 작업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또한 “2017년 5월10일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국정원, 검찰, 경찰, 기무사 등 권력기관 개혁 과제를 수행하는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며 “격무로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조 전 장관은 “2019년 8월 검찰개혁 과제를 부여받고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저와 제 가족에게는 무간지옥의 시련이 닥쳐 지금까지 진행 중”이라며 “과오와 허물을 자성하고 자책하며 인고하고 감내하고 있다”고 했다.이어 “문재인 정부의 모든 것이 부정되고 폄훼되는 역진과 퇴행의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며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길 없는 길’을 걸어 나가겠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2023.06.11 10:04

1분 소요
국정원 개혁 모델로 거론되는 모사드의 피투성이 역사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1일 국가정보원 원장에 김규현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내정한 것을 두고 국정원을 해외와 대북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조직과 기능을 바꾸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 국정원장은 주로 대통령의 측근이나 중량급 정치인, 또는 북한과 직접 거래를 해본 인물을 중용해 왔지만 김 내정자는 외교관 출신이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해외·대북에만 국정원 업무 집중 기대 이에 따라 김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원장에 취임하면 국정원을 이스라엘 해외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처럼 해외 업무에 집중하도록 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내정자 본인도 주변에 ‘국정원이 모사드처럼 변화가 필요하며, 정보부서 본연의 기능으로 정상화해서 멀리,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이익이나 정치에 눈 돌리지 않고, 오로지 국가만 위해 일하는 투철한 신념의 기관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김 내정자는 대학 재학 중인 1980년 외무고시(14회)에 합격해 외교부에 입부했다. 외교부에선 북미1과장, 북미국 심의관,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와 공사 등을 맡으며 대미 관련 업무를 많이 맡았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2007년 국방부에 국제협력관으로 파견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 등 한·미 국방 현안을 다뤘다. 박근혜 정부에선 외교부 1차관과 국가안보실 1차장, 대통령 외교안보수석 겸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을 지내 국방 업무의 경험이 풍부하다. 안보실 1차장을 맡았을 때는 남북고위급 접촉 수석대표로 북측과 직접 대면했다. 외교는 물론 국방과 남북관계까지 경험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국정원장을 맡을 만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김 내정자 발탁은 평소 잘 알고 있던 ‘내 사람’이 아니더라도, 전문성과 함께 국제 감각을 갖춘 인재에게 정보기관의 수장을 맡기려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인선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김 내정자의 인선을 통해 자기 방식의 국정원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는 이야기다. 윤 대통령의 개혁은 국정원 본연의 정보 능력 강화와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여기엔 지난 정권에선 오로지 정치 개입 차단만 강조하면서 능력 강화는 도외시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대와 환경 변화에 따르는 사이버·테러·사보타지(파괴공작)·방첩·디스인포메이션·미디어전 등 다양한 국가안보 도전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충분한 예산 투자와 인력·조직·장비·교육·훈련 마련, 그리고 법률적인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인식도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을 해외와 대북 업무에 치중케 함으로써 이 분야에 대한 정치권의 발목잡기와 국민의 의심을 차단하자는 의도도 읽힌다. 국내 정보에는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해외 정보 수집과 분석, 정세 판단, 그리고 비밀공작만 맡는 대표적인 조직이 모사드이기 때문이다. 해외 정보·공작기관인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국내 보안기관인 신베트(Shin Bet, 샤박(Shabak)이라고도 부름)와 군 정보국인 아만(Aman)과 함께 음지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를 떠받히는 삼지창의 하나다. 이스라엘 밖에서 벌이는 정보수집과 암살·납치 작전은 모두 모사드의 임무다. 이스라엘 국내와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와 골란고원에서 벌이는 모든 정보수집과 작전은 신베트의 관할이다. 군은 별도로 활동한다. 예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거주하는 무장단체 지도자나 자폭공격에 쓸 폭탄이나 로켓 제조자를 아파치 헬기나 무인공격기, 또는 휴대전화 폭탄으로 표적 살해하는 공작은 모사드가 아닌 신베트나 이스라엘군이 맡아왔다. 모사드가 윤석열 정부 국정원의 롤모델로 떠오른 본질적인 이유는 정치와 활동의 분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정권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국민의 사활이 걸린 정보 수집과 정세 판단, 그리고 비밀공작으로 존재가치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갔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정보기관의 수장도 정권의 운명과 상관없이 자리를 계속 지켜왔다. 정보기관의 입장에선 정치적인 변화와 무관하게 오로지 국민과 국가를 위해 묵묵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 받을 수 있다. 이는 모사드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아울러 국민이 정치권이 아닌 정보기관을 더 믿고 지지하는 게 당연시되면서 정치권력은 정보기관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 이용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모사드는 실제로 전 세계의 정보기관 중 국민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는 조직으로 꼽힌다. 강력한 능력과 노하우, 그리고 전문 인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첩보수집과 공작활동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 강국 이스라엘을 받치는 조직이다. 특히 미국과 서방이 목말라 하는 이란·시리아 등 적성국의 정보를 어느 나라보다 풍부하게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리아 이란 등과 무기 거래를 해온 북한과 관련한 정보도 상당히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성과 능력을 모두 갖춘 해외 정보·공작 조직인 셈이다. 실적이 이를 말해준다. 이 따라 우방은 모사드에 손을 벌리고, 적성국은 모사드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 특수외교·정보수집·국민보호·무기조달 등 해외에 전념 이에 따라 윤 대통령과 김 내정자가 국정원 업그레이드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모사드가 과연 어떤 기관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모사드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독립투쟁 및 건국과 궤를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건국했지만, 모사드는 1년여 뒤인 1949년 12월 13일에 공식 설립됐다. 하지만 정보수집과 파괴공작, 요인암살 등 관련 활동은 이미 건국 1년 전인 1947년에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한 독립운동을 하면서 필요 때문에 활동이 벌어졌으며, 이를 통해 조직이 나중에 생긴 셈이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모사드의 모토는 이 기관의 정체성을 함축한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이 바로 모토다. 적을 색출하고 제거해 평화롭고 편안한 나라를 만들어 국민을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하는 게 조직의 목표라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건국 이념인 시온주의와 2000년간 유지해온 유대인 공동체의 정체성도 엿보인다. 모사드의 본부는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에 있다. 직원은 정확한 숫자를 알 순 없지만 일부 추정에선 1200명 정도라고 제시한다. 예산도 당연히 기밀이다. 모사드는 7대 목표도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모든 해외정보·공작 기관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외와 대북 업무에 집중할 윤 정부 시대 국정원의 실질적인 목표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다. 모사드의 첫째 목표는 해외에서의 비밀 정보수집이다. 이는 당연하고 평범한 목표다. 둘째 목표는 더욱 구체적이다. 적성국의 비재래식 무기 개발과 조달의 방지가 그것이다. 셋째 목표는 모사드의 정체성과 역사성, 그리고 유대 국가 이스라엘의 건국과도 연관이 있다. 바로 해외 이스라엘인에 대한 테러 예방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국민이라는 이유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국민과 같은 민족이 세계 곳곳에서 핍박이나 봉변, 그리고 잔혹한 일을 당해온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이를 막는 게 이스라엘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의 주요 업무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한국의 경우 해외 국민 보호는 외교부가 맡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시리아·예멘·우크라이나 등을 여행하는 것은 법에 따라 금지한다’고 고시하는 데 그친다. 이들 국가에 입국하려면 외교부의 특별입국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법적이 제재를 가한다. 특별입국허가를 받으려면 방탄차에 무장경호원을 확보하도록 요구해 큰 이익이 걸린 기업인이나 직원이 아닌 이상 힘든 게 사실이다. 이런 방식보다 이들 국가에서 국가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국민 안전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는 게 필요하다. 국제화되고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입국 금지만으로 해외 국민 안전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무모할 뿐이다. 해외 국민 보호라는 원칙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이스라엘의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모사드가 맡은 게 다를 뿐이다. 국민 안전을 확보하려면 국민의 활동을 틀어막는 것보다 정보와 무력을 가진 국가기관이 나서는 게 맞을 것이다. 모사드의 넷째 목표는 특수외교 및 여타 비밀 관계의 발전과 유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 교류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국익 확대 업무가 그것이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미국·영국 등 우방은 물론 전 세계 다양한 국가와 정보 교류를 한다. 모사드 활동의 특징은 은밀성에 있다. ‘우크라이나에 정보를 제공해 러시아군 장성을 표적 제거하도록 지원했다’는 기밀이 줄줄 새는 미국과 달리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기밀은 기밀로만 존재한다. 가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모사드가 했다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이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연안의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와 2020년 8월 13일 국교를 수립한 ‘아브라함 협정’은 누가 봐도 모사드의 작품이다. 모사드의 정보 수집과 공작이 외교 관계 수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요시 코헨 모사드 국장이 UAE로 날아갔다. 다섯째 임무는 유대인의 해외이민을 공식 허용하지 않는 나라로부터 유대인을 탈출시키는 일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건국 정신을 모사드에 투사한 것이다. 실제로 모사드는 에티오피아·예멘 등에서 유대인을 데려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섯째 임무가 전략·정치·작전 정보의 생산이다. 국가 전략을 마련하고, 국내에서 입법 활동 등 정치적인 행동을 하며, 안보나 보안과 관련해 무력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해외 정보를 모사드가 마련하는 것이다. 정치에 관여하는 게 아니라, 정치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모사드가 하는 것이다. 일곱째 업무는 겉으론 상당히 관료적인 표현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내용이다. 바로 ‘해외 특수작전 수립과 실행’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이스라엘의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높여준 암살 작전을 포함한 해외 공작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물론 이들 공작은 대부분 모사드가 한 것으로 짐작만 할 뿐 뚜렷한 증거가 없는 ‘도깨비 공작’이다, 아울러 이스라엘 정부와 모사드는 작전을 절대 시인하지 않는다. 내가 했노라고 자랑하거나 홍보하지 않는다. ━ 유대인 보호, 적성국 무기개발자 제거 등 대외안보 주력 그런 모사드가 그동안 벌여온 위험한 작전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살펴보자. 물론 모사드가 했다고 의심만 하는 사건이다. 첫째, ‘유대인을 해친 자는 반드시 보복 살해한다’는 원칙에 따른 공작이다. 대표적인 것이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 11명과 독일 경찰 1명의 살해에 가담한 팔레스타인 검은구월단 조직원을 일일이 찾아서 제거하는 복수 작전이다. ‘신의 분노’라는 이름의 이 작전은 영화 ‘뮌헨’으로 잘 알려졌다. 1992년 6월 8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스라엘 강경파 무장조직인 하마스의 지도자 아테프 브세이소가 두 명의 총잡이에게 처형 방식의 근접 사격으로 살해됐다. 브세이소는 뮌헨 학살 관련자다. 1983년 8월 21일엔 그리스 아테네에서 뮌헨 학살 관련자이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고위간부인 마문 메라이시가 오토바이를 타고 온 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숨졌다. 1979년 1월 22일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선 뮌헨 학살 기획자인 PLO 간부 알리 하산 살라메(별명 아부 하산)가 인근의 자동차 폭탄이 터지면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폭발 위치가 보이는 건물의 2층에 수년간 거주하며 저녁 시간이면 고양이를 데리고 베란다에 나왔던 할머니가 있었는데 살라메가 폭사한 뒤 사라졌다. 살라메 제거 작전을 몇 년 간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다. 살라메는 PLO 내의 확고한 정치적 위치 때문에 ‘PLO의 황태자’로 불리며 항상 무장 경호원을 여러 대의 차량에 싣고 다녔지만, 상대의 치밀한 작전 앞에 목숨을 잃었다. 1972년 10월 16일 이탈리아 로마에선 뮌헨학살 관련자로 PLO의 현지 대표이자 리비아 대사관 직원인 압델 와엘 즈바이터가 자신의 아파트 입구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아날로그 전화기로 통화하다 전화기 안에 숨긴 폭탄에 터지면서 숨진 경우도 있다. 이스라엘 국적기나 이스라엘인·유대인이 탑승한 여객기를 납치한 테러범의 상당수도 비슷하게 최후를 맞았다. 1960~70년대 여객기 납치에 관여했던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의 지휘관 와디 하다드가 거주해온 동독에서 1978년 3월 28일 독이 든 초콜릿을 먹고 한 달 뒤에 사망했다. 1971년 7월 8일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 작가이자 여객기 납치 관련자인 가산 카나파니가 자동차 폭탄으로 숨졌다. 1972년 7월 25일 같은 도시에 살던 여객기 납치 관련자 바삼 아부 샤리프가 배달된 책이 폭발하면서 손가락 네 개를 잃고 한 눈이 실명했으며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둘째, 모사드는 공작을 벌이면서 ‘이스라엘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무기 개발자는 살려두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해왔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험한 천적으로 통하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자가 우선 타격 대상이다. 실제로 이란 핵 과학자는 자신의 나라에서 줄줄이 살해됐다. 2020년 11월 27일 이란 수도 테헤란 인근의 소도시인 아브사드르에서 핵 과학자인 모셴 프크리자네는 경호원이 탑승한 두 대의 자동차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다 140m 거리에 주차된 픽업트럭에서 발사된 원격조종 기관총으로 살해됐다. 파크리자데는 헬기 편으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숨졌으며, 원격조종 기관총이 장착된 트럭은 원격조종 폭탄이 터지면서 파괴됐다. 2012년 1월 1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거리에서 핵 과학자인 모스타파 마흐말디 로샨이 자석 폭탄으로 피살됐다. 2011년 4월 9일엔 역시 테헤란에서 이란 핵 과학자인 다리우슈 레자이에가 오토바이에 탄 총잡이의 총에 맞아 숨졌다. 2010년 11월 29일엔 같은 도시에서 이란 핵 과학자 마지드 샤흐리아르가 자동차 폭탄으로 폭사했다. 이란은 물론 팔레스타인의 무기 조달책도 제거 대상이다. 2010년 1월 19일 UAE의 두바이에선 팔레스타인 강경파 무장조직인 하마스의 무기·폭탄 조달 담당인 마무드 알마부가 호텔 방에서 질식사했다. 당시 여러 명의 수상한 남녀가 호텔 CCTV에 찍혔지만, 유럽 국가 여권을 가진 이들은 당일로 항공편으로 이 나라를 떠났다. 1990년 이스라엘의 적인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위해 장거리 야포를 개발하던 캐나다인이 피살된 사건에도 모사드의 냄새가 난다. 1990년 3월 20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캐나다인 대포 개발자 제럴드 벌이 자신의 아파트 문 앞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벌은 사담 후세인을 위해 이라크에서 이스라엘을 직접 포격할 수 있는 최대 사거리 750km의 초대형 대포를 개발하고 스커드 미사일의 사거리와 정확도를 높이는 개량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1980년 6월 13일엔 프랑스 파리에서 이집트인으로 이라크 핵 개발 책임자였던 폐히아 엘마샤드가 프랑스 파리의 메리디앙 호텔 객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1962년 11월 28일 이집트 할루안의 로켓 공장인 팩토리 333에선 우편물 폭탄이 터져 로켓 엔지니어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62년 9월 11일엔 독일 뮌헨에서 이집트 미사일 개발을 돕던 서독 로켓 과학자 하인츠 크루크가 사무실에서 피랍된 뒤 영영 행방불명됐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1948년 독립전쟁, 1952년 수에즈 위기, 1967년 6일 전쟁,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등 4차례에 걸쳐 짧지만, 대대적인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양측은 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1978년 9월 17일 미국에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고 점령지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이 과정에도 모사드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알려지고 모사드가 한 것으로 의심을 받은 일만 이 정도다. 모사드가 했다는 증거가 따로 없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에 작전의 동기가 있으며, 모사드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공작일 경우 모사드가 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정보과 공작 세계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윤 대통령이 지향하는 모사드의 실체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역대 지도자들이 조직을 믿고 애정을 쏟았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사드나, 이 기관이 그동안 쌓아온 실적은 없었을 것이란 점이 명백할 뿐이다. 물론 국정원도 보안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실적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사드가 누리는 신뢰를 확보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적이 두려워하게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물론 멀고 험해도 가야 할 길이다. 국민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말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2.05.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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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학각색(各學各色)’ | 온라인 댓글 논란 어디로? - 정치외교학] 여론 조작 막을 정교한 규제 고민해야

정책이슈

정보의 폭포현상, 동조화현상에 조작 유혹 … 위축효과 끌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 필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격변기를 맞이해 정치적으로 새로운 쟁점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정치권의 중요한 화두가 된 드루킹 인터넷 댓글 조작 사건도 그중 하나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여론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민주국가에서 인터넷 댓글을 둘러싼 갈등을 어떻게 현명하게 처리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인터넷 댓글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우리가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과연 인터넷 댓글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과거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이번 드루킹 댓글 사건을 놓고 보면 정치권은 댓글을 통해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오프라인에서 활동해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것보다 온라인에서 여론을 형성해 지지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더욱 유용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러한 정치권의 인식은 다음과 두 가지 이론적 근거를 통해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다.첫째, 정보의 폭포현상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어떠한 입장이 먼저 정해졌는가에 따라 그 이후의 결정이 영향을 받는다. 특히 그 사안에 대해 정보가 없어 특별한 입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그 영향을 더욱 많이 받게 된다. 형편없는 노래라도 많은 사람이 다운로드했다는 정보를 주면 그 노래를 다운로드 받아 듣고 좋아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원리다. 이와 같은 정보의 폭포현상을 고려할 때 특정 사안에 대해 여론을 선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터넷 댓글을 통해 조직적으로 여론을 선점하고자 하는 유인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둘째, 동조화현상이다.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다수의 의견이 주류적 인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고한 논리나 확신이 없을 경우 다수의 주류 의견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더욱 크다. 인터넷 댓글을 통해 단기간에 여론을 선점해 다수의 주류적 의견을 형성한다면 그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지를 더욱 좁혀 정치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정치권은 변화된 정치환경 속에서 인터넷 댓글을 통한 정보의 선점과 확산을 추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는 개인이 갖는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의 보호라는 가치와 충돌하게 된다. 인터넷 댓글이 문제라고 하지만 이것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해결책은 무엇이 있을까?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서 규제정보국 책임자로 활동한 선스타인(Cass R. Sunstein) 교수의 지적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선스타인 교수는 이런 상황을 방조하는 것보다는 위축효과를 이끌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불필요하고 덜 효과적인 규제를 남발하기보다는 건전한 여론 형성에 방해가 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똘똘하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정치적 영역에서 인터넷 댓글 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리고 현재 댓글 조작 방지법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위축효과를 낼 수 있는 효과적인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소수가 인터넷 댓글을 통해 여론을 왜곡하려는 시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인터넷이라는 공론장에서 여론을 왜곡하고자 하는 빈대만을 박멸할 수 있는 규제를 현명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조진만 교수는…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위원, 한국정당학회보 편집위원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2018.06.24 16:04

3분 소요
[세무조사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국세청(National Tax Service)도 서비스기관이라는데…

산업 일반

저승사자보다 무섭다는 세무조사 … 기업 길들이기 의혹에 빛바랜 납세자권리헌장 국세청의 영어 명칭은 ‘National Tax Service(NTS)’다. 관청 이름에 서비스가 들어가는 것은 ‘고객’인 국민과 납세자의 입장에서 일하겠다는 선한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국세청 세무조사는 저승사자만큼이나 무서운 존재다. 기업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벌벌 떠는 것도 서슬 퍼런 세무조사 칼날이 두려워서다. 대통령이 파면된 초유의 사태를 부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총수 석방·사면이나 경영권 승계 등 기업별로 아킬레스건이 있었지만 그런 약점이 없었어도 감히 살아있는 권력에 맞설 기업은 드물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세무조사는 수시로 이뤄졌다. 국세청은 KT&G·CJ E&M·효성·다음카카오·대우조선해양·부영 등 예전 정부와 가까웠거나 현 정부에 비협조적인 기업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나섰다는 의혹을 받았다. 대외 명분은 복지재원 마련과 재정 확충이었지만 속내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범법 행위가 있다면 응당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정권 입맛에 맞지 않다고 정치적 목적으로 세무조사의 칼을 휘둘러선 곤란하다. 국가개혁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차기 정부가 진지하게 검토할 문제다. 2013년 2월 서울 소공동 롯데쇼핑 본사에 국세청 조사관들이 들이닥쳤다. 국세청은 롯데 총수 일가의 부당 내부거래와 국외 자금 유출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섰다. 세무조사의 칼자루를 쥔 팀은 국세청 기획조사의 핵심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대검찰청의 옛 중앙수사부 같은 조직이다. 국세청은 조사 인력만 150여 명을 투입하며 롯데쇼핑을 샅샅이 뒤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조사 기간만 17개월에 달했다. 결과는 별 게 없었다. 롯데시네마가 매점사업권을 이용해 세금을 일부 탈루했고, 롯데상사·대홍기획 등 일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를 밝혔을 뿐이다. 국세청은 이듬해 약 600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조사를 마무리했다. 장기 세무조사에 시달린 롯데쇼핑은 신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는 등 업무 차질에 시달렸다.세무조사는 법으로 보장된 국세청 고유의 업무이며 올바른 세정 확립을 위해 필요한 조치다. ‘국세기본법 81조2’는 세무공무원이 질문검사권을 행사해 과세요건 사실을 조사·확인하고 과세에 필요한 직·간접 자료를 수집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마따나 민주·법치의 국가 시스템을 작동시키려면 국민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세금을 내야 한다. 세무 당국 역시 국가 시스템을 바로 유지하기 위해 납세자가 올바로 세금을 냈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 세무집행이 원칙에 맞게 이뤄져야 납세자들의 자발적 세금납부를 이끌 수도 있다. ━ 정치적 목적에 세무조사 활용하기도 현실에선 좀 다르다. 권력자의 정치적 목적 달성 등 왜곡된 의도에서 세무조사가 벌어진다는 의혹에서 아직도 자유롭지가 않다. 대검 중수부처럼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정치자금 문제로 전두환 대통령에게 밉보인 명성그룹과 국제그룹은 세무조사 한 방에 공중분해됐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후원한 태광실업은 이명박 정부 내내 시달렸다. 2015년 다음카카오는 국가정보원의 고객정보 제공 요구를 거절했다가 사정당국의 맹공을 받았다.국세청이 국정원·검찰·경찰과 더불어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이유는 자유로운 조사활동과 책임의 부재를 보장한 국세기본법에 있다. 세무조사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남용해선 곤란하다. 이 때문에 국세기본법 81조4도 적정하고 공평한 과세를 실현하기 위한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세무조사에 나서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납세자의 조세탈루 혐의 인정 ▶거래상대방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경우 ▶2개 이상의 과세기간에 잘못이 있는 경우에는 조사권 발동을 허락하고 있다. 해당 사유의 적용 여부는 세무당국의 판단에 맡긴다. 납세자의 신고 내용이 의심스럽다고 판단되면 세무당국이 자의적으로 조사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검찰의 수사권과 비슷한 기능을 가진 셈이다. 정치 권력으로서는 국세청을 십분 이용할 유혹을 느끼기 쉽다. ━ 권한 막강한데 책임지는 일 드물어 세무당국은 권한은 막강한데 책임은 별로 지지 않는다. 무리한 세무조사로 사업체가 부도를 맞아도 담당자에게 중징계를 내리는 일은 극히 드물다. 2011년 세무조사 결정이 납세자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항고소송의 대상이 된다는 판례는 있다. 그러나 세무조사는 공평과세 실현을 위한 세무 공무원의 법적 의무이기 때문에 세무조사 발동 요건만 어기지 않으면 특별한 벌칙 조항은 없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세청이 자체 감사를 통해 세금을 과소·과다 부과한 사례는 2009년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총 9854건이었다. 그러나 1만8197명의 관련자 중 7445명은 경고, 1만633명은 주의조치 등 경징계로 끝났다. 그나마 중징계라는 견책을 받은 사람은 119명에 불과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대부분 단순한 실수로 발생한 경우며,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해임 등 큰 징계를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세무조사로 피해를 입은 납세자가 소송을 제기해도 손실의 직접적인 원인이 세무조사였음을 입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반사업자라면 보복이 두려워 국세청과 소송을 벌이는 것도 꺼린다.이른바 ‘탄력적 세정’이라고 불리는 세정의 한 행태도 문제다. 세무당국의 징세 노력에 따라 세수 실적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력 세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도 135개에 달하는 복지정책에 쓸 재원을 마련하겠다며 기업과 대표자는 물론 가족을 대상으로 중첩 세무조사를 벌이는 한편 2~3년 만에 갑작스럽게 세무조사를 벌였다.실제 지난해 정부의 국세수입은 242조6000억원으로 전년보다 24조7000억원 늘었다. 특히 애초 계획보다 9조 8000억원이나 더 걷었다. 지난해 세법은 바뀌지 않았으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7%에 불과했다. 세수 증가 요인은 별로 없었다. 그만큼 국세청이 강도 높은 세무행정에 나섰다는 뜻이다. 국세청은 이런 분석을 인정하지 않는다. 국세청은 전자세금계산서 사용 확산 등 전산화·시스템화와 담뱃값 인상 등으로 세수가 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2015년 세수는 담뱃값 인상분(약 4조원)을 포함해 총 12조4000억원이나 늘었고, 지난 한 해에만 세수는 전년보다도 11.3% 급증했다. 단지 세수 증가를 시스템 개선과 담뱃값 인상만으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올 1월 세금도 지난해 1월보다 3조8000억원 더 걷히는 등 ‘세수 풍년’이 이어지고 있다.세무조사 등 국세청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세무행정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납세자들의 징세 협력 의지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걸리면 운이 없는 것이고, 안 걸리면 그만이라거나 걸려도 인맥 등을 동원해 막을 수 있다’는 심리가 발동할 수 있다. 기업들이 국세청 고위 관료 출신을 기업의 고문 등으로 영입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실제 롯데쇼핑의 경우 600여 억원의 적지 않은 추징금 규모에도 국세청은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탈세 관련 문제는 국세청이 전속고발권을 쥐고 있어 국세청이 고발하지 않으면 사법처리를 할 수 없다.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은 “롯데쇼핑의 회계부정과 사기 혐의 가능성이 커보였지만 국세청 ‘조세범칙조사 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는 세무사찰로 전환하지 않고 조사를 종결했다”며 “롯데그룹 내부에 국세청 고위직 출신이 여럿 있어서인지 결과적으로 국세청은 흐지부지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조세탈루 혐의의 고발 여부는 각 지방국세청에 설치된 심의위가 결정하는데, 위원회 구성을 해당 지방국세청장이 임명한다. 심의위원들의 명단과 경력도 비공개 처리된다. 지방국세청장이 모든 실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과 국세청 퇴직 간부, 심의위 간 짬짜미가 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는 이유다. ━ ‘깜깜이’ 세무행정으로 이어지는 비밀주의 국세청도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 납세자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사후검증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법인세 신고 시기에 지출 증빙이 없는 경비나 법인의 신용카드 사용액, 특수관계인 허위 인건비 계상, 상품권 과다 구입 후 부적절한 사용, 중소기업특별세액 부당 감면 등의 자료를 제출하도록 한 조치다. 그러나 이런 사후검증 제도는 사실상 제2의 세무조사 성격이 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사후검증을 통한 추징세액은 2011~12년 5000억~6000억원 수준에 머물다 2013년 1조5657억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2015년 선정 건수가 3만 3735건으로 전년 대비 절반으로 줄었는데, 건당 추징세액은 오히려 2947만원으로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국세청이 전방위로 사후검증을 벌이기보다는 일부 기업을 표적 삼아 검증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창식 택스테크 대표 세무사는 “사후검증 선정 건수는 감소한 데 비해 건당 추징세액이 증가한 것은 사후검증이 제2의 세무조사 아니냐는 논란을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로 부실 과세 역시 늘어나고 있다. 납세자들이 제기한 불복청구가 인용돼 환급된 세액은 지난해 2조4989억원으로 전년(1조1238억원) 대비 81% 늘었다. 건수도 583건에서 4991건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국세청의 폐쇄적인 문화 역시 문제점으로 꼽힌다. 국세청은 납세자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국세기본법의 원칙에 따라 상습 체납자 등 일부 정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납세정보를 외부에 노출하지 않는다. 국세청은 비공개 원칙을 논거로 내세워 가계·기업의 세목별 납세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등 세무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 세무 통계는 조세제도 등 국가의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데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 최근 논쟁이 한창인 법인세 실효세율 역시 국세청이 기업들의 법인세 실납부액을 공개한다면 쉽게 산출할 수 있는 통계다. 더욱이 이런 비밀주의 때문에 국세청이 세금을 과도하게 부과하거나 환급금을 과다지급 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도 적발이 어렵다. 특정 기업에 지급해야 할 부가가치세 환급금을 엉뚱한 기업에 주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지만 국세청은 비밀주의를 내세워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 할당량 부과해 고과에 반영하는 건 문제 예측 불가능한 세무행정과 행정중심사고 역시 경제에는 큰 부담이다. 매월·매분기 비슷한 세금을 내던 사업자로서는 갑작스런 세금 증가와 조사부담에 재무·경영상 어려움에 빠지기 쉽다. 세무조사의 빈도를 고무줄처럼 늘리면 세정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려 기업에 부담을 주는 한편 세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 세무공무원들은 세금을 추가로 거둬야 할 일종의 할당량을 부과받으면 전체 경제적 상황이나 사업자 개개인의 사정은 염두에 두지 않고 기계적으로 세수 확보에만 열을 올리게 된다. 세무조사 과정에서도 세금을 부과할지 말지 판단하기 어려운 소득이 있을 경우 일단 추징하고 본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국세청은 이런 실적을 토대로 상벌을 정하기 때문에 공무원들도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창식 세무사는 “공무원들이 세무조사에 착수하기 전에 추징할 세액을 미리 정해놓는 경우도 있다”며 “조사 과정에서도 오래된 소득까지 캐물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국세청은 1997년 납세자권리헌장을 만들었다. 납세자의 권익을 법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귀하는 기장·신고 등 납세 협력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구체적인 조세탈루 혐의 등이 없는 한 성실한 납세자이며 귀하가 제출한 세무자료는 진실한 것로 추정됩니다.” 납세자권리헌장의 맨 처음에 나오는 말이다.

2017.03.11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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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기자의 ‘앵그리 2030’ (18) 분열을 답습한 2030] 기성세대처럼 좌우 편 가르기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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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분단 국가입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선 지 70년 가까이 됐으니 꽤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쪼개졌을 땐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국가는 여러 유무형의 토대 위에 세워집니다. 그 가운데 ‘이념’이란 것도 있죠. 한반도에선 바로 ‘요놈’이 문제였습니다. 소위 좌우 대립의 출발점이었죠. 이념엔 철학적사회학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해석이 붙지만 현실에선 매우 심플합니다. 딴 생각 할 거 없이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기만 하면 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습니다. 이 두 단어는 분단 이후 이 땅에서 벌어진 모든 사회 문제와 갈등을 포괄합니다. 워낙 스펀지 같은 용어여서 못 다루는 주제가 없습니다. ━ 중도가 없는, 중도가 살기 어려운 사회 물론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보수와 진보, 더 이념적인 측면에서 우파와 좌파의 대립은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관측되는 공통적 현상입니다. 우리보다 더 극렬한 갈등을 겪은(또는 겪고 있는) 나라도 많습니다. 지금은 정치적으로 안정된 듯 보이는 선진국 중에도 종교 갈등 못지 않은 이념 갈등에 몸살을 앓은 나라가 꽤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 시점에서 이 나라의 상황이 가장 심각해 보이는 건 갈등이 봉합 단계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극단을 향해 치닫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수와 진보라는 이 실체 없는 두 단어는 국민의 언어 생활을 지배하고, 사고를 점령했습니다.보수와 진보에 대한 개념적 해석은 접어두겠습니다. 워낙 복잡하고, 학설도 많은데다 사실 정확하다 할 만한 정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전쟁과 분단이란 특수한 상황을 경험한 나라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보수와 진보의 갈등 사이엔 언제나 ‘친북’이란 키워드가 있습니다.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느냐’ 혹은 ‘이념적으로 가까우냐’로 구분하는 거죠.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소위 진보정당이라 불리던 통합진보당의 정당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활동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적어도 ‘친북이냐 아니냐’는 구분이 아직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유효하다는 뜻이지요.선진국으로 갈수록 보수와 진보의 전선은 ‘경제 이슈’로 이동합니다. 전통적으로 보수는 경제 성장과 시장 원리를, 진보는 분배와 국가의 개입을 강조합니다. 세부적으로도 입장 차가 큰 사안들이 있습니다. 최근엔 주로 ‘복지’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 경우가 많죠. 국민들은 이런 보수와 진보의 철학과 활동을 주로 정당을 통해 받아들입니다. 우리나라는 철저한 양당제 국가입니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제3 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준 적이 있지만 사실상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두 당이 권력을 나눠 갖고 있습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만들어진 양당 구도는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이 틀 안에서 흔히 새누리당을 보수, 새정치민주연합을 진보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언뜻 맞는 것 같은 이 해석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우리나라 정당, 좀 이상합니다. 보수라는 새누리당은 보수 같지 않고, 진보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진보 같지 않아서죠. 이 부분에 관해선 외국인의 시선이 가장 정확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은 얼마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한국의 보수는 숫자에만 집착하는 개발주의다. GDP 성장률, 수출액, 그리고 랭킹 숫자들. 보수 정당이라면 자유시장원리에 대한 확고한 기본원칙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시장 질서에 반하는 ‘대기업주의’를 신봉한다. 대기업들은 역사적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그래 놓고 법인세 증세를 이야기하면 자유시장원리를 주장한다. 위선이다. 한국의 진보 역시 대기업주의를 버린 적이 없다. 불법을 저지른 대기업 오너를 사면해주는 건 마찬가지다. 진보라면 사회적 약자들,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이게 뚜렷하지 않다.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의 그림자’로만 존재하는 것 같다.” ━ 표독함과 공격성으로 무장한 청년의 이념 싸움 이 지적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한민국 정치를 독점한 두 정당이 보수와 진보의 기본 철학을 잃고, 맥락 없이 떠도는 건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 부분일 겁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두 당은 ‘권력지향적인 보수 정당’으로 묶는 게 타당해 보입니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집권과 당선입니다. 이를 위해 보수와 진보를 옆집 놀이터마냥 왔다갔다 할 뿐, 선명한 철학이나 원칙은 잘 안 보입니다. 상식적인 정치가 이뤄지려면 일단 각 정당이 명확한 스탠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대화나 토론의 창구가 열려 있고, 이를 통해 합리적인 타협안을 도출해 내야 합니다. 초등학생도 도덕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이죠. 정리하면 현재의 정치는 스탠스도 명확하지 않은데 대화도, 타협도 안 됩니다.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국민이 90%에 육박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그런데도 기득권을 가진 두 정당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열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도 갈라져 있습니다. 왜 정치가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죠. 명확히 잘못된 이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젊은 세대 또한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다르다’고 외치지만 적어도 정치관만은 기성세대의 사고와 행동 방식을 답습했습니다. 양쪽으로 갈라져 싸우고, 무조건 상대방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이해와 공감은 없고,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을 회색분자로 몰고 가는 것도 닮았습니다.그 사이 ‘의식 있는 개인’은 점점 사라지고, 집단과 집단의 구도로 대립합니다. 보수 정당이라는 새누리당에도 무상복지 찬성론자가 있고, 새정치민주연합 안에도 무상복지 반대론자가 있습니다.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하나 같이 합리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인데 자기의 일터로 돌아가면 이성을 잃고, 표독함과 공격성으로 무장합니다. 온라인 상에서 다투는 20~30대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의 차이를 무식으로 폄훼하죠.극단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 것도 닮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을 때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천박한 수준이었습니다. 서울 노량진역 일대에 매달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 노란 리본을 가위로 훼손한 건 약과였죠. 어떤 회원은 단원고 교복을 입고 어묵을 입에 물고 찍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세상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을 어묵에 빗대 조롱한 겁니다. 가장 잔인했던 건 폭식 퍼포먼스였죠.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머물던 광화문 광장에 보수라 자칭하는 일부 청년들이 몰려와 치킨과 피자를 먹으며 파티를 연 겁니다. 이들은 지금도 각종 자극적 용어를 동원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게 꽤나 멋있는 일인 줄 착각하면서요.배타적인 건 자칭 진보라 주장하는 20~30대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인 중에 진보 정치인을 꿈꾸는 이가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환경, 장애인 관련 활동을 했고, 한 진보 정당과 관련된 시민단체에서도 일했습니다. 명석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추진력까지 갖춰 어딜 가나 리더 역할을 맡곤 했는데 잘 준비하면 꿈을 이룰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그와 불편한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요. ━ ‘보수와 진보’는 기성세대가 물려준 최악의 선물 “어제 00일보 특집기사 보셨어요?“아니요. 저는 00일보는 안 봐요.”제가 언급한 기사는 자영업의 위기를 다룬 특집이었습니다. 핵심을 잘 짚었고, 현장감도 잘 살린 좋은 기사라 생각해 던진 화두였는데 당황스런 답변이 돌아온 겁니다.“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요?”“아시잖아요. 저랑 성향이 잘 안 맞아요.”“그건 알겠는데. 자영업의 위기가 정치적 성향과 무슨 관련이 있죠?”“그냥 보기 싫은 거에요. 저는 00일보 이름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요. 선택은 제 자유 아닌가요?”“그건 맞는데, 정치를 하겠다는 분이 언론을 가려서야 되겠습니까?”그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렇게 싫으면 하다 못해 ‘지피지기’ 차원에서라도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까지 던졌지만 그는 자리를 피해버렸습니다. 혹시나 싶어 제 주변 지인과 동료 중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00일보는 안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그렇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탄식이 나왔습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문을 걸어 잠가 버리는, 아예 대화나 타협의 여지마저 없애버리는 것까지 우리는 기성세대를 꼭 닮았습니다.보수와 진보의 대립이야말로 선배들이 물려준 최악의 선물입니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는 이분법적 구조에 대항하기보다는 전쟁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원화, 다양화된 사회로 갈수록 특정 이슈와 정책을 기존 이념틀로 분류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죠. 경제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저성장이 당연한 시대에 진보라고 성장과 부양책을 제쳐둘 수 없습니다. 보수가 복지에 문을 닫아걸 수 없는 분위기가 된 것처럼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같은 문제엔 좌우가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고령화에 대응하는데 보수와 진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김용신 박사는 저서 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다원화 시대, 국민의 이해가 양분될 수 없는 현실에서 진부한 좌파와 우파의 이념은 정당 구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어차피 현대 사회에서 정당은 포괄성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억지 구별 때문에 그 의미마저 애매한 중도 보수 혹은 중도 진보, 그리고 합리적 보수 혹은 건전한 진보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고 결국은 차별성도 명쾌하지 않은 정치 세력 간에 권력 투쟁만을 야기하여 반대를 위한 반대만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두 정당의 극렬한 대립 때문에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여든 야든 상대 쪽에서 나온 건 일단 반대하고 봅니다. 불과 몇 년 전 자신들이 추진했던 일에도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이성 따윈 없고, 부끄러움도 모릅니다. 그 사이 급한 일, 서둘러 처리해야 할 일은 모두 제자리걸음입니다. 그러면서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국민을 양쪽으로 가르는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저희가 옳지 않습니까?’라고 의사를 묻는 것 같지만 이는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과정입니다.이렇게 갈등을 조장하는 건 결과적으로 정치인들에게 유리합니다. 그들은 중도층을 두려워합니다. 중도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거니까요. ━ ‘국민 47.4%가 중도’ 10년 전보다 19.3%p ↑ 하지만 국민은 정치인보다 훨씬 똑똑합니다. 정치권이 철저히 이분화된 것과 달리 국민의 생각은 갈수록 ‘가운데’로 몰리고 있습니다. 올해 8월 조선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47.4%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 성향을 ‘중도’라고 답했습니다. ‘보수’가 28.7%, ‘진보’가 20.5%였습니다. 10년 전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보수’는 41.1%에서 12.4%포인트, ‘진보’는 26.0%에서 5.5%포인트 감소한 반면 ‘중도’는 28.1%에서 무려 19.3%포인트나 증가했죠. 연령별로는 20대(51.1%)와 30대(54.8%)의 중도층 비중이 매우 높았습니다. 중도층이 현재 지지하는 정당으론 새누리당(30.6%)이 가장 많았지만,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無黨)파가 47.9%로 절반가량이었습니다.20세기적 의미의 보수와 진보는 조만간 사라질 게 분명합니다. 지배적 이념으로서 이들의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습니다. 보수 정당이 진보 정당의 정책을 흡수하고, 진보 정당이 표의 확장성 때문에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건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주류 정당이 중앙으로 전선을 옮긴 탓에 극우·극좌가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전통적인 이념 대립보다는 청년 실업이나 노인 복지 등 세대 갈등적 요소가 정치판의 핵심 전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의 밥그릇을 지키는 문제가 지금보다 훨씬 민감하게 다가오겠죠. 기성 정당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길 기대할 게 아니라, 직접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는 뜻입니다.그러려면 일단 20~30대가 ‘가운데’서 만나야 합니다. 기성세대에게서 철저히 학습 받은 좌우 이념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제 3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념적으로 자유로워야 활동 반경이 넓어집니다. ‘가운데’ 머물러야 힘이 있습니다. ‘20~30대는 당연히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야당의 착각을 깨뜨리려면, ‘어차피 20~30대는 투표도 안 해’라고 거들떠도 안 보는 여당의 오만에 경종을 울리려면 젊은 세대가 캐스팅보트를 꽉 쥐어야 합니다. 20~30대의 삶 속에 누적된 불만과 개혁 의지를 끌어내고, 에너지를 결집시킬 중도적 청년 정치세력이 꼭 탄생해야 합니다. 이렇게 갈라져 있어서는 답이 없습니다. ━ 기성 정당에 기대지 않는 ‘제3의 길’ 찾아야 분단 이후 대한민국 역사는 분열의 역사였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그 연장선이죠. 그러나 시대별로 구분하면 젊은 세대에겐 나름 공통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20~30대였던 1960년대~1990년대까지 젊은 세대는 비교적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산업화로 시작해, 독재 타도, 민주화까지, 많은 이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분단 이래 젊은 세대가 이렇게 정치적으로 분열된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 2030은 친구와 지인에게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 편이면 다행이고, 아니면 싸울 준비를 합니다. 단언컨대 지금은 서로 싸울 때가 아니라, 함께 싸울 때입니다. 고민을 이어갈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다음번에는 ‘20대 총선, 왜 중요한가?’를 주제로 지혜를 모아보겠습니다.- 장원석 기자

2015.11.1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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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말 많고 탈 많은 단통법 - 분리공시? 요금인가제 폐지 논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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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월 17일 오전 7시. 해도 덜 뜬 시간에 서울 강남 의 한 호텔에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방송통신위원장, 휴대전화 제조사, 이동통신회사(이하 이통사) 3사 사장급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이하 단통법)’ 시행 이후 소비자의 불만이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단통법 폐지 논란까지 불거지자 대책을 마련하자 며 연 긴급 간담회였다. 대화는 허심탄회했는데 성과는 없었다. 이들은 결국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호텔 문을 나섰다. #2.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컨슈머워치는 10월 16일 ‘단통법 예견된 파행, 무엇을 간과했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단통법의 최대 수혜자는 소비자가 아닌 이통사라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법을 만들었는데 오히려 역차별을 불러오고 있으니 차라리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직 복사기 온기도 안 빠진 새 법률은 벌써 누더기가 됐다. 단통법 시행 여파에 이동통신 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10월 1일 시행됐으니 채 한 달이 안됐다. 시행 첫날부터 이전보다 소비자 부담이 훨씬 커졌다는 비난이 제기됐는데 상대적으로 이통사는 사업 환경이 좋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자신들의 손으로 단통법을 통과시켰던 국회의원들마저 스스로 말을 뒤집으며 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단통법의 입법 취지는 ‘가계 통신비 부담 줄이기’다.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 계 통신비지출은 4.3%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통신비 인하’가 핵심 공약으로 등장해 큰 관심을 받았던 이유다. 이통사의 지나친 보조금 경쟁으로 단말기 판매 가격에 부당한 차별이 발생한 것도 단 통법 도입 배경 중 하나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공약은 법안으로 구체화됐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한국전자 통신연구원 등에 소속된 전문가들이 법안의 골자를 만들고, 지난해 5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발의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 등으로 치열하게 싸우던 여야는 올해 5월 2일 민생법안을 긴급히 처리하자며 단통법을 131개 안건과 함께 무더기 통과시켰다. 준비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생략됐다. ━ 마케팅 비용 줄어든 이통사만 ‘살 판’ 단통법은 보조금 차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단말기별 출고가, 지원금, 실판매가를 공개하는 동시에 방통위가 보조금 상한선을 규제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가 과도한 보조금 경쟁을 막으면 이통사가 적극적인 품질·가격 경쟁을 벌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 자연히 통신요금이 내려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시행해보니 결과는 달랐다. 방통위가 보조금 상한선을 제시하자 이통사는 경쟁 대신 평화를 택했다.단통법이 시행되자 이통사들은 일제히 보조금을 낮췄다. 정부가 보조금을 제한해 더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겉으로는 슬픈 척했으나 속으로는 웃었다. 그동안 통신 3사는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치열한 점유율 확보 경쟁을 해왔다. 눈에 안 보이는 보조금 경쟁도 치열했고, 이걸 ‘고객 빼 오기’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보조금에 큰 차이가 없으니 경쟁할 유인이 사라졌다. 보조금은 덜 주고, 마케팅 비용도 덜 드니 일석이조다.자연히 이익이 늘어난다. 증권업계는 보조금이 5%(1만 원)가 줄어들면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이 5.7%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KT는 9%, LG유플러스는 약 10% 늘어날 전망이다.마케팅 비용 감소 효과도 크다. 마케팅 비용이 5% 감소하면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은 6.7%, KT는 15.9%, LG유플러스는 20.8%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변수 없이 마케팅 비용의 축소만으로도 이통사의 이익이 10% 이상 증가한다는 것이다. 단 통법 시행을 앞두고 이동통신사의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 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단통법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인 2월 17 일 SK텔레콤의 주가는 19만 6500원이었지만 법 시행 직후인 10월 2일 29만 8500원으로 치솟았다. KT 주가는 2만 8300원(3월12일)에서 3만 5050원으로 뛰었다. LG유플러스 역시 8890원(7월 15일)에서 1만 2300원으로 올랐다.보조금을 덜 주면 소비자는 아무래도 휴대전화 구입을 꺼리게 된다. 실제로 단통법 시행 이후 현장에선 시장 냉각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각 영업점은 고통이 크겠지만 이통사 입장에선 전체 파이가 변하지 않는 한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이미 대부분의 소비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고가의 요금제를 쓰고 있다. 단기적으로 휴대전화가 덜 팔려도 수익구조 엔 큰 변화가 없다. 게다가 단통법 시행 전 통신 3사는 하나같이 음성·인터넷·문자 등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요금제를 내놨다. 요금제 중에 서비스로 만들 수 있는 상품은 거의 다 마련해 둔 셈이다. 무제한 요금제까지 만들어놓은 마당에 굳이 가격 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 ━ 요금 담합 보호막으로 전락한 요금인가제 이와 달리 기대했던 소비자 부담 줄이기에는 실패했다. 법 시행 이후 보조금은 최대 60%가량 줄었다. 단통법 시행 전 60만 원 정도에 구입했던 삼성 갤럭시S5(광대역LTE-A)는 이제 75만 원에 사야 한다. 같은 휴대전화 가격이 한 달도 안 돼 15만 원이나 비싸진 셈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한 1인당 평균 보조금(지난해 5~10월 기준)은 SK텔레콤이 42만 원, KT가 43만 원, LG유플러스가 38만 원이었다. 하지만 단통 법 시행령에 따라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보조금 상한선은 25만~35만 원이다. 보조금이 줄어든 만큼 최대 17만 원에서 최소 3만 원까지 소비자가 더 내야 한다는 의미다.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통법 시행으로 소비자 간 차별은 없어졌지만 보조금 상한선을 묶어두면서 단말기를 더 비싸게 구입하게 됐다”며 “최대 수혜자는 이통사이고, 소비자·제조업체·유통업체 등은 모두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가계 통신비 인하가 목적이라면 요금인가제를 폐지해야 한다” 며 “요금인가제를 폐지한 상태에서 후발기업이 품질 개선을 할 경우 요금이 평균 8.7% 가량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1991년 도입된 요금인가제는 통신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요금을 인상하거나 신규 요금제를 출시하는 경우 사전에 정부의 인가를 받도록 한 제도다. 1등 이통사가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아 시장을 잠식하는 걸 막고, 후발사업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이동통신 시장이 처음 열리던 때라 정책이 제법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23년이 지난 지금 요금인가제는 사실상 이동통신 3사의 과점 체제를 보호하는 규제로 변질됐다.1등 사업자가 지나치게 싼 요금을 받을 경우 후발주자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이유로 비교적 높은 가격을 책정하도록 유도 하면, 후발주자는 비슷한 가격으로 따라가는 식이다. 자연히 3사 모두 비싼 통신비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 통신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싼 것은 요금인가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세계에서 이동통신 요금을 정부에 신고하도록 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과 전병헌 의원 등이 “요금인가제가 통신 3사 요금 담합을 조장하고 있으므 로 이를 폐지해 본격적인 요금인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며 폐지에 앞장 서고 있다.일각에선 단통법 도입 과정에서 배제된 ‘분리공시제’를 도입해 다시 법을 개정하자는 주장도 있다. 분리공시제는 휴대전화 보조금 중에 통신사가 주는 소비자에게 주는 지원금과 제조사 가 이통사에 주는 판매장려금을 각각 구분해 공시하는 제도다.소비자가 받는 보조금(지원금+장려금)의 출처를 정확히 밝히 자는 의미다. 원래 분리공시제는 단통법 안에 포함돼 있었다가 마지막 조율 과정에서 빠졌다. 제조사의 장려금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상위법(단말기 유통법)에 위배된다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방통위가 따랐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단통법 내에 분리공시제를 넣은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선언했다. 보조금의 구성 내역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면 단말기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그러나 분리공시제는 이번 단통법의 부작용과 큰 관련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일단 분리공시를 한다고 해서 보조금 규모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어차피 상한선은 방 통위가 정해두게 돼 있다. 보조금 상한선이 30만 원일 때 소비자 입장에선 그 돈을 제조사가 주든 통신사가 주든 전혀 상관 없다. 받기만 하면 된다. 영화관 카드 할인과 마찬가지다. 할인을 카드사가 해주는지, 영화관이 해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몇 %의 할인을 받느냐가 중요하다.분리공시를 주장하는 측에선 제조사가 해외에 비해 국내에 서 스마트폰을 비싸게 판다고 말한다. 국가별로 장려금을 어느 정도 주는 것인지 공시하면 한국 제조사가 스마트폰 가격을 내릴 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삼성이나 LG가 해외에서 딱히 저렴하게 스마트폰을 파는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 갤럭시S5의 국내 출고가(9월 기준)는 86만 6800원이다. 중국은 5199위안(약 89만 원), 영국은 539.99파운드(약 92만 6000원) 등이다. 대략 비슷하다. 미국이 649.99달러(약 74만 원)로 조금 싼 편인데 해외에서 판매되는 갤럭시S5는 32GB 메모리를 탑재한 한국 출시 모델과 달리 16GB 메모리에 배터리도 1개다. 추가 배터리와 충전기를 별도로 사야 하고 DMB 기능도 없다.이는 자칫 국내 제조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삼성전자의 해외 판매 비중은 97%를 넘는다. 타깃 자체가 해외에 있다. 분리공시로 제조사가 국내 통신사에 지원하는 장려금이 공개되면 해외 통신사들도 같은 수준의 장려금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통신사들에게 스마트폰 1대당 장려금을 1만 원씩 인상하며 총 5조 원 가량의 추가 비용이 든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제조사 입장에선 인상분을 출고 가격 인상으로 메우려 할 테니 소비자로서도 그리 좋을 게 없다. ━ 제조사-이통사 분리한 ‘완전자급제’ 주장도 아예 단통법을 폐지한 뒤 ‘완전자급제’로 가자는 주장도 나온다. 완전자급제는 휴대전화 유통과정에서 통신사를 배제하는 방법이다. 소비자가 일반 매장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하고 통신 상품은 통신사 대리점에서 별도로 구매하는 방식이다. 완전자 급제가 되면 자연히 보조금 관행은 사라진다. 제조사 간 경쟁으로 휴대전화 출고가가 떨어지고, 통신사 간 경쟁으로 요금이 저렴해질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현재의 유통시장이 흔들리면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완전자급제를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면서도 “수만 개에 달하는 유통점에 대한 대책이 먼저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지금까지 제기된 부작용만으로도 단통법은 어떤 형태로든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앞으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연 22조 원에 달하는 이동통신 시장이 요동칠 전망이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단통법 시행으로 통신사에 비해 대리점들은 상당한 고통(비용)을 지불할 것이며, 외국계 제조사에 대한 국내 제조사의 역차별도 발생한다”면서 “정부가 애초에 제시한 대로 통신비 인하가 목적이면 가격과 품질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이 정답”이라고 지적했다.

2014.10.19 19:39

7분 소요
국정원 개혁 시급하다

산업 일반

얼마 전 국제위기그룹(ICG)은 한국 국가정보원을 둘러싼 논란을 심도 있게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국가 전복 시도를 수사 하고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국내 활동을 감시하는 권한”을 가진 조직이지만 오히려 국가정보원이야말로 한국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주체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엔 2012년 대선 개입 의혹, 기밀문서 유출, 증거 조작, 뇌물수수 혐의와 부정부패 등 국정원에 제기된 갖가지 문제들이 상세히 담겼다.첩보 및 방첩활동은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업무다. 특히 저개발국조차 사이버 테러와 해킹이 가능한 오늘날엔 더욱 그렇다. 국가정보원처럼 중요한 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국가정보원은 2012년 대선 과정에 벌어진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국회가 마비되고 박근혜정부도 공약 이행에 차질을 빚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그 직원들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ICG는 “개혁에 필요한 입법적, 행정적 조치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탓에” 한국 정부가 국가정보원을 제대로 개혁하지 못했다고 시사했다. 은밀하고 고도로 기술적인 첩보활동의 특성상 국회의원을 포함한 국민 대부분이 첩보활동 과정과 그 파급력을 잘 모른다. ICG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과 국가정보원 고위 관료들은 “대대적인 개혁을 하면 권력을 잃을까 우려했기 때문에 개혁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문제는 개혁이 단지 조직의 존폐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과거의 취약한 안보 태세가 그대로 남아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개혁은 시도하는 족족 교착 상태에 빠졌다. 국가정보원은 더 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자체 개혁을 택했다. 조직 의 위신을 국가안보보다 더 중요시하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정부와 국가정보원은 복잡한 기구다. 일부 조직원들 이 사익을 추구하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ICG의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와 국가정보원 내부엔 조직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안을 제시하는 개혁 성향의 인물이 적지 않다.예를 들면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감독 체계 강화, 내부고발자 보호 등 4가지 주요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인식을 같이 했다. 현재 국가정보원이 갖고 있는 수사권을 대검찰청에 넘겨야 한다거나,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장을 지명하면 국회 청문회에서 인준 과정을 거치게 하는 등 “제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국가안보에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특별법원을 구성해 감독하게 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첩보활동은 큰 위험을 내포한다. 실패할 경우 그 여파가 어마어마하다. 주의 부족이나 정보 당국의 정치화, 첩보 실패 같은 요소가 한반도 갈등을 촉발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그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북한은 얼마 전 핵무기와 미사일 역량을 더욱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2015년을 ‘통일 완성의 해’로 선포하며 전면전을 준비한다. 현재 자취를 감춘 김정은의 상태 역시 위험요소다. 개혁에 수반되는 비용 지불을 꺼리기엔 한국이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다.

2014.10.12 16:50

2분 소요
글로벌 파워피플[40] 타미르 파르도 이스라엘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 국장

산업 일반

전 세계 정보기관 중 가장 국민의 신뢰 받는 조직, 현재 외교 정보 수집에 열중 국가정보원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끝없는 논란에 빠져있다. 대선 과정에서의 댓글 사건부터 탈북자 간첩 관련 재판까지 여러 사안을 둘러싸고 국정원이 정치권 기 싸움의 대상이 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은 물론 정보원의 이름이나 신분까지 마구 노출되고 있다. 정보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지구상에서 자국의 정보기관을 타도대상으로 삼는 정치인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국정원을 개혁하겠다는 국회 국정원개혁특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1월 이스라엘 해외 정보작전기관인 모사드(MOSSAD)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을 시찰하고 돌아왔다.이 과정에서도 여당 의원들은 국정원 본연의 정보 능력 저하를, 야당 의원들은 국정원의 정치 관련 개입이라는 서로 상반된 주제를 내세웠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도 정보기관은 정치와는 별개로 오로지 국민과 국가를 위해 묵묵히 할 일을 할 뿐이다.정보기관의 수장도 정권과 상관없이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정보기관은 정권에 대한 충성이 아닌 국가의 사활이 걸린 정보 수집과 정세 판단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나타낸다. 따라서 정치권조차 정보기관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국민이 정치권이 아닌 정보기관을 더 믿고 지지하기 때문이다.전 세계의 정보기관 중 가장 국민 신뢰를 받는 조직이 이스라엘의 모사드다. 이 조직의 현 수장인 타미르 파르도(61)는 전 세계를 상대로 첩보 수집과 공작 활동을 펴는 강력한 존재다. 모사드는 직접 공작을 펴는 기관이다. 미국과 서방이 답답해 하고 있는 이란·이집트·시리아 등의 정보를 어느 나라보다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해외 정보공작기관인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국내 보안국인 신베트(Shin Bet, 샤박(Shabak)이라고도 함), 군정보국인 아만(Aman)과 함께 음지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이스라엘 밖에서 벌이는 정보 수집과 암살·납치 작전이 모사드의 주요 임무다.이스라엘 국내와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와 골란고원에서 벌이는 모든 정보 수집과 작전은 신베트의 관할이다. 군은 별도로 활동한다. 예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거주하는 무장단체 지도자나 자폭용 폭탄 제조자를 아파치 헬기나 무인공격기, 또는 휴대전화 폭탄으로 표적 살해하는 일은 모사드가 아닌 신베트나 이스라엘군이 벌여왔다.18세 때 공수부대에 자원파르도는 2011년 11월29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지명을 받고 인준 절차를 거쳐 2012년 1월1일 업무에 들어갔다. 그는 모사드에 들어오기 전 18세 때 군에 입대했다. 그는 훈련 강도가 가장 강하고 군기가 엄격하며 험악한 작전에 직접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진 공수부대에 자원했다.공수부대에서 장교 훈련을 받고 임관한 그는 전선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통신병과를 자원했다. 공수부대에서도 최고 정예부대인 사예레트 마트칼(수색부대)을 지원했다. 이 부대는 야전에서 적의 정보를 입수하는 임무를 기본으로 하면서 적진 깊숙이 침투해 가치 높은 전술 정보를 빼내는 임무에 직접 투입된다. 아울러 대(對)테러리즘 임무와 인질 구출작전에 최우선 동원된다.파르도는 군 복무 중 역사적인 경험을 했다. 1976년 7월4일 그 유명한 엔터베 작전에 투입된 것이다. 당시 팔레스타인 게릴라가 납치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있던 에어프랑스 여객기에서 106명의 승객 중 102명을 구출하고 52명의 게릴라와 우간다 병사를 사살한 작전이다.맹장수술로 병원에 후송된 승객 1명이 구출되지 못하고 3명의 승객이 사망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구출됐다. 이스라엘군은 1명의 전사자를 냈는데 바로 부대장인 요나단 네타냐후였다. 바로 지금 이스라엘 총리인 베냐민의 형이다. 이 작전의 성공은 모사드가 입수한 정확한 비행기 위치 정보를 군에 전달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파르도는 1980년 군대에서 제대한 뒤 모사드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공적으로 세 차례나 훈장을 받은 그는 공작을 전담하는 부서장을 맡았다. 하지만 모사드의 특성상 그가 어떤 공작을 맡았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군 참모부의 정보연락관으로 일하던 그는 모사드의 2인자를 거쳐 마침내 수장에 올랐다.공작 전문가답게 그는 모사드 수장을 맡은 직후부터 암살 공작 지휘설에 휘말렸다. 그 해 1월 11일 오전8시20분쯤(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가에서 난데없이 강력한 폭탄이 터졌다. 이란 핵과학자 무스타파 아흐마디 로샨이 탄 은색 푸조405 승용차가 거리를 달리던 중 폭탄 공격을 받아 즉사한 것이다. 오토바이 한 대의 앞뒤 좌석에 나눠 타고 갑자기 나타난 두 괴한이 차량 바깥쪽에 플라스틱 폭탄을 붙인 지 9초 뒤에 강력한 폭발음이 테헤란 시내에 울려 퍼졌다.로샨은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80km쯤 떨어진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의 부소장으로 이란핵개발의 핵심 요원이었다. 수법으로 보나, 로샨의 지위로 보나 이는 이란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세력이 저지른 짓이 분명해 보였다. 이란에서 그 이전 2년 간 살해된 핵과학자는 로샨을 포함해 4명 이상이라고 영국 BBC방송 등 외신들은 보도했다. 모사드 수장 맡은 후 암살 공작 지휘설에 휘말려이 사건은 파르도가 지휘하는 모사드의 공작으로 의심 받았다. 물론 모사드가 이 작전을 벌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스라엘 정부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정보 전문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이를 모사드의 솜씨라고 판단하고 있다.적국인 이란 한복판에서 이런 대담한 작전을 벌일 정도로 폭넓은 현지 인적 네트워크와 작전 수행능력을 가진 조직은 모사드 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실제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보유를 자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여기고 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모사드를 앞세워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파르도가 오랫동안 맡아온 모사드의 작전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인물을 제거하는 게 임무였다. 모사드는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 대신 짖지 않고 물어뜯는 개를 상대하는 게 임무다. 원색적인 욕과 저주가 담긴 성명이나 발표하는 전면의 정치집단보다 무기 개발·밀수 등으로 이스라엘의 안보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이면의 상대를 조용히 제거해왔다.2010년 1월 19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고위 군사지휘관인 마무드 알마부를 살해한 것이 대표적이다. 알마부는 해외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할 무기와 폭탄을 구입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으로 들여오는 일을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당시 호주·프랑스·영국·아일랜드·네덜란드 여권을 지닌 여려 명의 남녀가 객실에서 알바부를 전기쇼크로 기절시키고 근육마비제인 숙시닐콜린을 투여한 뒤 베개로 얼굴을 덮어 질식시켜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남녀들은 알마부 살해 뒤 유유히 두바이를 빠져나갔다. 당시 CCTV 등에 출입 흔적을 남기고 위조여권 사용이 들통 나는 바람에 이스라엘 정부가 곤욕을 치르긴 했으나 모사드의 암살 작전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잘 보여줬다.모사드의 암살 작전은 역사가 오래 됐다. 1960년대 중동 국가들의 로켓 개발을 돕던 전 나치 과학자들을 제거하는 다모클레스 작전은 전설에 속한다. 알려진 것으론 1962년 9월11일 독일 뮌헨에서 이집트의 미사일 개발을 돕던 서독 국적의 로켓 과학자 하인츠 크루크를 사무실에서 납치한 것이 첫 작전이다. 크루크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한데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1962년 11월 28일 이집트 할루안의 비밀 로켓공장인 팩토리333에서 우편물 폭탄이 터져 기술자 5명이 숨지고 책임자가 실명했다. 우편물에는 독일 함부르크 소인이 찍혀 있었다.모사드는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적국의 무기 개발을 돕는 경우 아랍인이고 서구인이고 가리지 않고 제거했다. 1990년 3월 2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캐나다 출신의 야포 개발자인 제럴드 벌이 자기 아파트 문 앞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이 그중 하나다. 벌은 사담 후세인의 주문을 받고 사거리 750km의 초대형 대포를 개발하고 있었으며 스커드 미사일 개량 프로젝트에도 관여하고 있었다.뿐만 아니고 모사드는 홀로코스트,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살해사건, 이스라엘에서 자폭테러를 벌여온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원 등을 상대로 납치와 살해 공작을 꾸준히 벌여왔다. 1960~70년대 여객기를 납치해 팔레스타인 포로를 풀어달라고 요구한 무장단체 간부들도 주요 살해 목표였다. 자동차 폭탄, 전화 폭탄, 휴대전화, 포인트 블랭크(처형방식의 근접 사살) 등 수법도 다양했다. 그러면서 모사드는 암살공작의 살아있는 교과서를 온몸으로 써왔다. 그런 방식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안전하게 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사실 모사드도 실수를 한다. 작전 중 실수를 범해 국제 망신을 초래한 적도 여러 번이다. 첫 케이스는 노르웨이 릴리함메르 사건이다. 1973년 릴리함메르에서 모로코인 웨이터 아메드 부키치를 PLO간부이자 검은구월단 지도자로 뮌헨 학살을 이끌었던 알리 하산 살라메로 오인해 사살한 사건이다. 당시 모사드 요원들은 부주의로 작전 당시 사용한 자동차로 공항까지 가다 모두 체포돼 망신을 당했다.이들은 체포와 재판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돼 영영 해외 근무가 불가능해졌다. 재판 과정에서 여성 요원 한 명이 현지인 변호사와 눈이 맞아 결혼하기도 했다. 군기가 빠져도 단단히 빠진 모사드의 모습이었다. 요원들은 이후 2년 안에 모두 풀려났지만 이 사건으로 안가를 비롯한 모사드의 유럽 내 비밀 작전 인프라가 쑥대밭이 됐다. 모사드의 해외 공작은 이 사건 이후 한동안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모사드는 1997년에도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9월 25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하마스 정치 지도자인 할레드 마샬을 독살하려다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 여권을 지닌 두 명의 모사드 요원이 체포되기까지 했다. 이스라엘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압력에 못 이겨 마샬을 살릴 해독제를 제공했다. 모사드 암살공작조가 자국 여권을 사용한 데 분노한 캐나다는 대사를 소환했다. 이스라엘은 외교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2010년 두바이에서 CCTV에 요원들 얼굴이 찍힌 것도 명백한 실수의 하나다.하지만 이런 사건에도 철저히 지키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해외에서 잡힌 요원들을 데려오기 위해 어떤 대가도 감수한다는 점이 그 하나다. 아무리 모든 것이 들통나도 공식적으로는 절대 공작을 시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그 둘이다. 앞에서 소개한 수 많은 작전 중 모사드가 했다고 시인한 작전은 하나도 없다. 모사드가 아니면 할 조직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입 무거운 조직의 수장이 바로 파르도인 것이다.모사드 소행이라고 시인한 작전 없어파르도는 이 조직을 위해 오랫동안 수없이 많은 공작을 벌였다. 위에 언급한 암살 공작 사례 중 1980년 이후에 일어난 것은 그가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를 증명할 아무런 자료도 없다. 정부나 변호사들이 정보기관원과 공작원 이름을 공개하는 경우는 있어서도 안 되며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있었던 적도 없다.현재 파르도는 이스라엘 정부가 외교에 필요한 거의 모든 해외 정보를 구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임무에 너무도 바쁜 나머지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틈도 없다. 든든한 정보수장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경제 이익을 위해 어떤 공작을 벌이는지는 비밀이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서 분명히 뭔가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14.03.11 15:04

7분 소요
Special Report - 지방선거도 있는데 올해보다 더 하면 더 했지

산업 일반

내년에도 여야 정쟁 치열할 듯 ... 소득 양극화, 일자리 늘리기, 통상임금 등 갈등 불씨 “달라진 것 없어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이제 와서 뭘….” 취득세 영구 인하,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 등 부동산관련법이 12월 10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시장 반응은 차갑다. 정부가 4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내놓은 대책이지만 처리가 지연돼 시장에서 이미 흥미를 잃은 탓이다.더구나 시너지를 내야 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은 여전히 국회에 묶여 있다. 정부와 국회가 손발이 안 맞으니 결과가 이렇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양도세든 수직증축이든 굵직한 이슈를 꺼냈으면 시장에 쇼크를 줘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다”고 말했다.올 한 해 정치권의 히트상품을 뽑자면 단연 ‘국가정보원’이다.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대선 개입이나 북방한계선(NLL)이나 출발점은 모두 국정원이었다. 일이라도 하고 싸웠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했다. 국회 본회의 폐회 하루 전까지 처리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경제활성화든 경제민주화든 정책이 나오면 입법이 따라야 하는데 보조를 맞추지 못하니 길이 막혔다.소상공인, 중소·중견기업, 대기업 등 45개 경제단체가 경제활성화 법안의 처리를 촉구하는 광고까지 냈지만 여야는 하나같이 외면했다. 여야가 국회 정상화 방안에 합의한 이후 속도를 내는 모양새지만 이미 많이 늦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등 핵심 법안은 연내 처리가 불투명하다. 소득세·법인세·금융상품과세 관련 법안 또한 여야 간 시각차가 크다. ‘내년에도 정치권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사실 내년은 더 불안하다. 우선 국정원 불씨가 살아있다. 여야가 특위를 구성해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마무리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희웅 민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장하나 의원 발언 등 민주당 지도부가 당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근거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반발 역시 여전하기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지방선거의 결과가 종결 여부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가계·기업·정부 불협화음실제로 내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상반기 내내 여야의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권영진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은 “3월경부터 각 당 공천이 시작되고, 본선까지 분위기가 이어진다고 볼 때 국회가 생산적인 논의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선거에 몰입하면 자연히 민생법안 처리가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역대 지방선거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다. 비교적 초반인 취임 2년차에 맞는 선거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부담이 크다.야당 역시 잃어버린 지지율을 되찾아와야 하는 입장이다. 윤 센터장은 “중요한 정책이 있어도 야권과 대립해 실익이 낮다고 판단하면 하반기로 미룰 수도 있다”면서 “선거 결과에 민감한 기업 역시 실제 행동을 선거 이후로 유보할 가능성이 크고, 여러 면에서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더 큰 문제는 여야만 분열돼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 회복을 위해선 경제주체 간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지만 현안마다 대립하는 상황이라 개선이 쉽지 않다. 소득 양극화, 기업과 개인 간 소득 괴리, 일자리 늘리기, 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등 하나하나가 갈등거리다. 산재한 갈등이 우리 경제에 잠재적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기업은 서운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월 17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방문해 경제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를 당부했다. 겉으론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동의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세수 확대를 위한 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등의 압박이 거세진데다 줄줄이 대기 중인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도 부담스럽다. 근로시간 단축, 정리해고요건 강화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환경규제 강화도 걱정거리다. 투자하라고 쪼면서 기업의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국민도 마찬가지다. 거시지표가 좋아졌다지만 서민경제에 온기를 불어넣을 정도는 아니다. 취직하기도 어려운데 돈 모으기는 더 어렵다는 청년 세대의 박탈감은 특히 심각하다. 노년 빈곤층 문제 해결도 만만치 않고, ‘기업은 돈을 쌓다 뒀다는데 우리의 삶은 왜 이런가’라는 상대적 박탈감 역시 기저에 깔려 있다.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옛 속담에 ‘안 되는 집은 장맛이 쓰다’고 했는데 힘을 모아 경제를 살려야 할 시점에 단결이 너무 안 된다”면서 “서로에게 책임 묻기 바쁜데 조율을 해야 할 정부가 지난 1년간 보여준 모습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실제로 박근혜정부는 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 등 주요 경제 이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보여주지 못했다. 윤 센터장은 “현 정권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경제 주체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라며 “방향을 분명히 하고, 피해를 보는 쪽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적극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내년에는 복지 재정 이슈가 더욱 부각될 전망이지만 이제껏 정부가 보여준 모습에 비춰본다면 큰 기대는 어렵다. 기초연금은 방식을 놓고 논란만 키웠고, 지방자치단체와의 복지예산 분담 문제 역시 해결하지 못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선거 때 감당할 수 없는 복지공약을 한 것부터 실수”라면서 “부담이 커지자 여러 형태로 변형하기 시작했는데 논란만 더 커졌다”고 말했다.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재원 문제로 정치권과 세대별, 이해관계자별 갈등이 심각해진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신뢰’라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도 희석됐다. 67%까지 올랐던 대통령 지지율이 48%(한국갤럽)로 떨어진 요인 중 하나다.황 연구위원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잘하는 건 잘했다 칭찬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데 여야는 물론 국민까지 진영논리에 갇혀 분열된 상황”이라며 “반대편을 무조건 배척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국민과 기업, 경제가 멍들고 있다”지적했다.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는 “장기적 성장 기반 마련을 위해 노동시장과 서비스 부문의 구조개혁은 매우 중요한 과제인데 이는 누군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필요한 문제”라면서 “치열한 정책 설득과정과 경제주체 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치어리더 역할을 해 각 경제주체의 힘을 모으고 더 적극적인 조정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상여금은 통상임금’ 판결 노사갈등 새 변수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취약점인 노사갈등과 북한 리스크도 내년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철도파업은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코레일 노조의 무책임한 파업도 문제지만 정부와 사측이 강경 대응으로 노동계의 반발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연대 파업 등 극단적 노사갈등이 빈번해지리란 예상이 많다.게다가 철도파업을 계기로 한 대학생이 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큰 파장을 불러오면서 새로운 사회갈등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대법원의 판결도 변수다.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회사 측이 상여금을 대폭 줄이기 위한 임금 개편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반발하는 노동계와 극심한 갈등이 예상된다.권력지형 변화에 따른 북한 리스크도 커졌다. 반복돼 온 리스크라 학습효과가 있고, 북한 이슈가 장기적인 충격을 준 사례도 드물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지만 회복을 기대하는 한국경제에 충분히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장성택 처형과 김정일 2주기 행사 이후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가 열리면서 4차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무력 도발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내년 1월 하순에서 3월 초순 사이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2013.12.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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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북한 경제개방 도로 빗장 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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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파 2인자 장성택 사실상 가택연금 … 경제개발구·특구개발에 짙은 안개 절대 권력의 칼날은 매서웠다.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29살 조카는 자신의 후견역할을 해온 67세의 고모부를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서 반성문을 쓰는 처지로 전락했다. 최측근은 공개 처형됐다. 북한 권력의 2인자로 불리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 움직임 얘기다.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장성택 부위원장의 직위를 박탈하고 측근들을 줄줄이 숙청했다는 보도의 충격파는 컸다. 그가 김정은 정권 들어 가장 잘나가던 핵심 실세였다는 점에서다. 국가정보원이 12월 3일 국회에 보고한 장성택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장성택 측근인 이용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차관급)과 장수길 부부장이 반당(反黨)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고 11월 하순 공개 처형됐다. 비리 혐의까지 받은 이들은 군부와 권력 내부에 미리 고지된 이후 총살형으로 처리됐다고 한다.장성택이 부장을 맡고 있는 행정부는 인민보안부(경찰) 등 공안기관을 관장하는 노동당 내 핵심 부서 중 하나다. 국정원은 “공개 처형 이후 장성택 소관 조직과 연계 인물에 대해 후속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성택 계열에 대한 숙청이 상당 기간 더 진행될 것이란 의미다.지난해 7월에도 군 핵심 실세인 이영호 군 총참모장이 숙청된 일이 있었다. 아버지 김정일이 생전에 어린 후계자인 김정은의 군부 과외교사로 낙점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권력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상징적 의미 등으로 볼 때 장성택 계열에 대한 숙청작업은 훨씬 심각하다.일명 ‘장 부장’으로 통하던 장성택은 유일 지배 체제의 북한에서 김일성 로열패밀리의 멤버였다. 1972년 김일성의 장녀 김경희와 결혼한 것을 계기로 40여 년 간 권력의 중심축에 자리했다. 한때 김정은 사망 이후 후계 권력을 넘겨받을 인물로 꼽힐 정도였다.유일 지배 체제 강화하려는 포석숙청의 칼끝이 장성택을 겨누는 형국이 되자 우선 권력투쟁설이 제기됐다. 2년 전 김정일의 급작스런 사망 직후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은에겐 든든한 ‘후견 3인방’이 자리했다.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그의 남편 장성택, 그리고 최용해 총정치국장이다. 혈족인 김경희를 제외하고 권력의 양대 축을 맡았던 장성택과 최용해의 권력다툼에서 장성택이 밀린 것이란 말이 나왔다.군부의 외화벌이 이권을 노동당과 내각에 돌리려던 정책에 반기를 든 이영호 총참모장이 전격 숙청된 데 이어 이번에는 당과 권력기관의 핵심 실세인 장성택을 향한 군부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집권 2년차를 넘어서는 김정은이 권력 장악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유일 지배 체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란 분석도 있다. 후견 3인방의 한 축을 없애버리겠다는 건 그만큼 권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란 얘기다.장성택 계열의 몰락은 북한 권력구도에 거센 후폭풍을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 세력이 김정은에게 반기를 들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장성택의 호위무사 역할을 해온 인민보안부와 사법·검찰, 그리고 당 간부들에 대한 숙청의 회오리바람이 혼란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고 연구위원은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 때 3000여명의 측근과 제자 등이 처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며 “장성택 사태의 여파는 그 10배 정도며 희생자가 3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장성택의 공백이 가져올 파장 가운데 관심이 큰 것 중 하나가 경제다. 그가 김정은 체제의 외자 유치와 개혁·개방 문제를 주도적으로 맡아 추진했다는 측면에서다. 장성택은 김정일 정권 때인 2011년 6월 북·중 간 경협을 위한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와 나선경제무역지대 공동개발 착공식에 북한 대표로 참석했다. 김정일이 생애 마지막 경협프로젝트로 관심을 기울인 사업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북·중 공동지도위원회 회의에 북측 단장으로 참석했다. 하지만 황금평을 비롯한 북·중 경협은 지지부진하다. 장성택이 권력의 핵심에서 낙마한 건 이런 부진의 책임 문제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김정은이 북한 지방도시 13곳에 경제개발구를 만들고, 신의주 특구개발을 하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밝힌 시점이 장성택 측근 처형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새로운 개혁·개방 조치는 장성택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다.일각의 기대에도 김정은의 경제 분야 구상이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촘촘히 가동 중이다.그런데도 김정은은 경제·핵 병진노선을 밀어붙이고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2월 3일 한 특강에서 김일성의 국방·경제 병진정책을 거론한 뒤 “정책이 잘못돼서 실패한 것이 아니고 잘못될 수밖에 없는 정책을 선택해서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김정은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북한 경제의 실상을 무시한 무리수가 이어진다. 10대 시절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그곳의 유명 워터파크인 ‘알파마레’를 본떠 문수물놀이장을 10월 개장했다. 파리 센느(seine)강에서 유람을 하며 식사를 하는 바토무슈(Bateau Mouche)와 같은 배를 만들라고 한 뒤 대동강에 선상 레스토랑을 운영토록 했다.마식령스키장과 평양 능라인민유원지의 골프코스, 미림승마구락부 등에서 나타나듯 민생이 빠진 특권층 챙기기 경제로 질주하고 있다. 우상선전물 공사에 2억3000만 달러, 특권층을 위한 위락시설에 3억 달러 등 김정은 체제들어 써버린 5억3000만 달러는 북한 주민이 5개월 간 먹을 옥수수 140만t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갈팡질팡하는 김정은의 인사 스타일과 리더십도 문제다. 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군 핵심자리인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각각 5.4년과 6.6년이었으나 김정은 체제 들어서는 1년 미만이다. 이런 문제는 경제 부문에도 이어졌다. 김정은 체제들어 교체한 내각 장관급 인사는 27명으로 85%인 23명이 경제 분야였다.상처 입은 김정은 경제 리더십김정은은 후계자 시절부터 경제 문제에 자신감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경제 부문 업적으로 삼으려 2009년 11월 시도한 화폐개혁은 주민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이듬해 봄 경제관료인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을 희생양 삼아 공개 처형하는 걸로 불을 껐지만 경제리더십은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 4월 첫 공개 연설에서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성과는 없다.실각설에도 장성택의 복귀를 점치는 시각도 있다. 과거 숙청 위기 속에서 여러 차례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다. 일시적 직무정지든 영구퇴출이든 장성택을 권력 핵심에서 축출함으로써 김정은은 경제정책 등의 추진 과정에서 중요한 조언을 해줄 측근을 잃었다. 공개 처형을 동반한 공포정치 속에서 입을 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비운의 2인자’ 장성택이 없는 김정은 집권 3년차의 문이 열리고 있다.

2013.12.1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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