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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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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수장 제거로 본 표적 암살 공작의 국제정치학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미국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71)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드론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제거하면서 표적 암살 공작이 국제적으로 새롭게 주목받는다. 적의 우두머리나 주요 인사를 드론을 이용해 대놓고 제거하는 표적 암살 공작이 국제정치의 주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시각으로 7월 31일 오전 6시 18분(미국 동부 서머타임 기준 30일 오후 9시 48분)에 카불 중심부 셰르푸르 지역의 저택 발코니에 나와 있던 알자와히리를 드론(무인기)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제거했다. 이집트 안과의사 출신인 알자와히리는 2001년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의 오른팔로 테러를 사실상 설계한 인물로 알려졌다. 빈 라덴이 2011년 5월 미군 특수부대 DEVBRU(해군 특수전 개발단)의 공격으로 숨진 뒤 그 뒤를 이어 알카에다의 수장을 맡아왔다. 미국은 빈 라덴의 두뇌 노릇을 한 최측근이자 후계자인 알자와히리를 드론으로 제거하면서 21년 만에 알카에다 최고 지도부에 대한 보복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집트 남성의 2020년 기대여명인 69.88세를 이미 지난 알자와히리를 9·11 21년 만인 이제야 뒤늦게 표적 암살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회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AP통신·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블룸버그통신·NBC 등 미국 매체와 타임오브이스라엘·독일의소리(DW)·프랑스24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작전은 장기간의 공작으로 이뤄졌다. 알자와히리는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에 은신해 있었는데, 2021년 8월 30일 미군이 카불에서 완전히 철수한 뒤 가족이 먼저 카불로 옮겼다. 이들은 카불로 옮긴 뒤 탈레반 내 강경파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의 지도자인 시라주딘 하카니가 제공한 부촌의 저택에 머물러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한 주 전에 작전을 승인했으며, 2022년 초 알자와히리가 카불로 옮긴 뒤부터 정보당국이 그를 감시해왔다고 말했다. 미국이 알자와히리의 카불 이동을 2022년 초에야 인지했다는 이야기다. 의문은 최초 정보를 누가 제공했느냐로 향한다. 눈여겨볼 점은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공작 기관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네아 국장이 지난해 12월 5일 미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포스트와 타임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해 6월 취임한 바르네아가 맡은 가장 큰 임무는 이란핵합의(JCPOA) 복귀를 추진했던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알자와히리 가족의 카불 이주를 인지하고 감시를 시작했다는 올해 초가 바르네아가 워싱턴을 방문한 지 한 달쯤 뒤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스라엘로선 미국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카불에서 수집한 초특급 정보를 미국과 공유함으로써 미국의 JCPOA 복귀 포기나 연기를 설득하려고 시도했을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의 '시차'는 정보 소스를 감추기 위한 연막작전일 수 있고, 미국이 이스라엘이 제공한 정보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다. 바이든이 취임 뒤 처음으로 7월 14~15일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당시 많은 양보와 립서비스를 제공한 점도 이런 추측의 근거로 볼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밀접하지만, 바이든은 이번 방문에서 자신의 공약에서 상당히 후퇴해 이스라엘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바이든이 15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가진 모든 국가적 역량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구절을 넣었다는 사실이다. 바이든은 양국 정상회담에선 "외교가 최선의 방안임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스라엘 채널12와의 인터뷰에선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해 최후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 군사적 옵션의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 용인하는 미국의 의도 대선 공약으로 이스라엘이 반대해온 이란핵합의(JCPOA) 복귀를 외쳤던 바이든으로선 의외다. 이스라엘로선 대미 외교의 개가라고 부를 만하다. 바이든의 기존의 입장을 선회해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 가능성에도 고개를 끄덕여준 것은 미국 내 유대인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과 별도로 바이든이 이스라엘에 뭔가 신세를 진 게 있지 않으냐는 짐작을 낳게 한다. 아무튼, 미국 정보 당국은 알자와히리의 집을 6~7개월간 계속 추적한 결과 그가 가족과 함께 그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집은 2021년 8월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면서 빈집으로 있다가 탈레반 정부의 국방부 소유로 넘어갔으며, 최종적으로 하카니가 소유하게 됐다. 탈레반은 2020년 2월 29일 카타르의 도하에서 탈레반 측과 만나 미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탈레반이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과 관계를 끊고 자신들의 지배지역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는 ‘도하 합의’에 서명했다. 하지만 탈레반 내에서도 극단적인 주장을 펴온 하카니는 이를 무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확인된 자와히리의 위치는 올해 4월 초 바이든의 국가안보 부보좌관인 조내선 파이너와 국토안보 보좌관인 엘리자베스 셔우드랜돌이 상부에 알렸으며, 그 직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바이든에게 이를 보고했다. 미 정보 당국은 알자와히리가 집의 발코니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것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미국 당국은 집의 모형을 만들어 공격과 함께 다른 거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강구했다. 바이든은 이 모형을 7월 1일 직접 살펴봤다. 그는 미국 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국(DNI)의 에이브릴 헤인즈 국장과 중앙정보국(CIA)의 윌리엄 번스 국장, 국가대테러센터(NCTC)의 크리스틴 아비자이드 등 정보‧공작 최고책임자들과 공격을 논의했다. 바이든은 7월 25일 최종 보고를 받고 작전을 승인했다. 공격에는 드론이 동원됐다. 알자와히리가 아침에 발코니에서 나와 선채로 밖을 내다보자 상공을 은밀하게 선회하던 드론이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알자와히리는 현장에서 즉사했지만 같은 집에 살던 가족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AGM-114의 변형인 AGM-114 R9X는 미사일에 폭발물 대신 동역학 탄두를 장착했다. 발사 뒤 날카로운 대형 칼날이 여러 개 튀어나와 강력한 힘으로 목표물을 난자한다. 인간 목표물을 대상으로 사용하면서 이른바 ‘부수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특수 미사일로, ‘닌자 폭탄’ ‘나르는 긴수(미국의 유명 식칼 브랜드)’로 불려왔다. 미국 정보당국은 도·감청과 위성 사진 등으로 알자와히리의 사망이 확인된 뒤인 8월 1일에야 작전을 공개했다. 미국은 9‧11테러의 핵심 인물인 알자와히리를 제거함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한 것은 물론 지난해 8월 카불 철수에서 보여준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운 모습에 대한 만회 효과도 어느 정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바이든이 11월 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가안보 부문에서 어느 정도 점수를 얻었을 수 있다. 미국은 2020년 1월 4일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국제공항에서 드론 공격으로 암살했지만, 이라크는 미군과 정보기관이 주둔해 관련 정보 수집과 작전을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적진이나 다름없는 아프가니스탄이 카불에서 공작과 작전을 벌일 수 있는 능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차별화한다. 물론 드론은 과거 아프가니스탄의 대테러 목표물 공격을 위해 출격 기지로 사용해온 이웃 파키스탄 서남부의 비행장에서 이륙했을 가능성이 크다. 파키스탄은 중국과 가까운 나라지만 과거 미국과 사이가 좋을 당시 확보하거나 제3국에서 조달한 미국산 F-16 전투기가 127대 이상이 있어 이를 계속 운용하려면 미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친중 국가임에도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에선 드론 이착륙장을 제공하는 등 협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론 조종은 미 본토의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조정실에서 위성 통신을 이용해 했을 것이다. 조종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무인-원격 공격 시스템이다. 보복 악순환 부르는 표적 암살과 전쟁 기술 눈여겨볼 점은 2020년 솔레이마니 공격 당시 이란은 보복을 외치며 이라크의 미군기지에 미사일 발사했지만 결국 찻잔 속의 태풍으로 마무리됐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정면 대결을 할 수 없었던 이란은 이라크에서 벌어진 자국 주요 인사의 암살에 더는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실 미국 CIA의 대테러센터(CTC)는 2001년부터 아프가니스탄과 예멘 등에서 무인기를 이용한 표적 암살 작전을 수행해왔다. 미국은 CTC 등 다양한 기관의 대테러 조직을 연결해 국가 대테러센터(NCTC)를 구성했다. 하지만 CTC는 조직의 수장도 ‘로저’라는 암호명으로만 알려졌을 뿐 누구인지 비밀에 부치는 등 철저히 비밀리에 은밀한 작전을 수행해왔다. 이스라엘은 군과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를 앞세워 무인기를 통한 표적 암살 작전을 수행해왔다. 2004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정치‧군사 조직인 하마스의 창시자 아메드 야신을 가자지구에서 표적 암살했다. 이스라엘군은 무인기로 위치를 확인한 뒤 F-16 전투기를 인근에 보내 굉음으로 주의를 분산한 뒤 아파치 공격용 헬기를 출동시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해 야신을 암살했다. 2007년 이후에는 무인기로 가자지구의 로켓 발사대를 수색‧파괴하는 작전도 벌여왔다. 하지만 2021년 5월 6~21일 예루살렘 일부 지역 팔레스타인 주민의 강제 이주와 알아크사 사원에서의 충돌 이후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로 가한 로켓 공격을 막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로켓의 상당수를 아이언돔으로 불리는 방공 시스템으로 요격했지만, 완전히 봉쇄하진 못했다. 결국 하마스의 로켓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보복 폭격 속에서 256명의 팔레스타인인과 13명의 이스라엘인이 목숨을 잃었다. 표적 암살이 대를 이어가는 적개심을 부추긴 셈이다. 모사드는 최근 들어 이란의 핵 과학자를 상대로 암살 공작을 벌여왔다. 핵 개발을 추구하는 이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핵심 인력을 제거해 개발 속도를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역시 국가 수준에서 벌이는 표적 암살 공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는 오토바이 폭탄, 원격 조종 기관총 등 다양한 무기가 동원됐다. 드론을 활용한 표적 암살 공작은 은밀성·기동성·신속성을 확보한 데다 지휘부나 두뇌에 해당하는 뱀무리 제거로 인한 심리적‧정치적 효과가 크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물론 러시아‧중국 등 다양한 나라가 은밀하게 활용해왔다. 드론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더하고 여기에 무선통신기술, 원격제어기술 등 기술적 진보가 더해지면서 이는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적에게 우두머리를 잃는 상실감과 함께 언제, 어디에서 당할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줄 수 있어 상대를 효과적으로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 게다가 탄두에 폭발물 대신 칼날을 장착해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AGM-114 R9X의 활용으로 언론과 인권단체의 비난을 잠재울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이 작전의 활용을 부추길 수 있다. 표적 암살은 어둠의 전쟁에서 효과가 큰 작전으로 평가된다. 다만 정확한 정보와 정밀한 작전계획의 확보가 난제다. 아무나 벌일 수 있는 작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상대가 실력이 있는 경우라면 보복의 악순환도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런 우려에도 이젠 표적 암살이 국경을 넘어 글로벌 단위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시대가 됐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주권국가를 대놓고 침략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은 또 하나의 안보 충격이다. 뱀 머리가 아무리 제거돼도 지구촌은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8.06 18:00

7분 소요
취임 8개월만에 정치 위기에 몰린 바이든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시한을 앞둔 30일 심야(현지시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 육군 제18공수군단 제82공수사단장인 크리스 도나휴 소장이 단독군장 차림으로 C-17 수송기에 올랐다. M-16 자동소총의 총신을 짧게 개량한 M-4 카빈을 오른손에 들고 소송기에 오른 도나휴 장군은 아프간에서 철수한 마지막 미군이 됐다. 그는 1992년 웨스트포인트를 마치고 임관해 주한미군 제2사단 소총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미군 특수부대인 델타포스와 레인저에서 근무했으며 이라크전과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퇴치전투에 참전한 무골이다. 도나휴 장군이 82공수사단 부대원들과 함께 빽빽하게 탑승한 C-17 수송기가 카불 공항을 이륙하면서 20년 가까이 진행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끝이 났다. 아프간은 20년 만에 탈레반이 통치하게 됐다. 아프간이 탈레반에 넘어가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 뒤 최대의 정치적인 위기에 처하게 됐다. 사실 아프간의 미군 철군은 여러모로 불가피했다는 평가다. 미군이 영원히 아프간에 주둔할 수는 없다는 바이든의 말에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방식이다. 그중에서도 무질서하고 허술하며, 수많은 사람을 뒤에 남긴 불완전한 철수가 비난을 불렀다. 미국의 이미지에 흠집을 안긴 것은 물론, 전 세계에 미국에 대한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 ━ 바이든, 별장서 회의하고 아프간인 비난도 8월 15일 카불이 신속하게 탈레반에 함락되고 카불 공항에 탈출하려는 사람이 몰리면서 대혼란이 벌어지던 때 바이든은 주말을 맞아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쉬고 있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그는 캠프 데이비드에 있는 회의실에서 백악관 안보팀과 화상회의를 열었다. 지쳐 보이는 바이든이 회의실의 넓은 탁자에 홀로 앉아 거대한 멀티모니터를 보며 회의하는 모습은 전 세계에 ‘준비하지 못한 미국’ ‘대처하지 못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각인했다. 바이든은 하루 뒤 워싱턴에 나와 연설을 했다. 그러면서 철군의 당위성만 역설하고 자신의 철군 결정을 옹호했다. 함께 피를 흘렸던 아프간인을 향해 “자기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고 대놓고 비난했다. 아프간 정부군은 미군과 함께 작전하며 5만여명의 탈레반과 수천 명의 테러조직원을 사살했는데 이 과정에서 6만~7만명의 아프간 정부군의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전사자는 2420명이었다. 단순한 숫자로 말할 수 없는, 함께 피를 흘린 사이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정작 문제는 철군이 아니라 비계획적이고, 혼란스러우며, 위태로우며, 어설픈 철수 작전이었는데도 말이다. 그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미숙한 철수작전인데도 바이든은 이에 대해 어떤 사과도 없이 철군 당위성만 강조하면서 동문서답을 한 셈이다. 바이든은 첫 연설에서 자기 합리화와 아프간인 비난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비난이 일자 다시 연설을 자청했다. 그는 여기서 다시 위험한 발언을 이어갔다. 바이든은 모든 미국인과 조력자를 대피시키겠다고 말했다. 미 중부사령부의 케네스 매켄지 사령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미군 역사상 최대의 민간인 대피 작전”이라고 자평하면서도 “탈출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이송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앞 부분의 발언은 대통령에 기분을 맞추기 위한 보고일 뿐이고 발언의 무게는 뒷부분에 실릴 수밖에 없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비극적이다. 아프간을 떠나지 못하고 남은 미국 국적자는 100~200명으로 추정된다. 로이터통신은 전시동맹협회(AWA) 자료를 인용해 지난달 25일 기준 미국 특별이민비자(SIV) 신청자와 그 가족 6만5000명이 아프간을 떠나지 못했다고 전했다. 제2 우선순위(P-2) 자격자와 그 가족 19만8000명 이상도 현지에 남았다. P-2 자격은 미 언론사나 비정부기구(NGO) 등에서 일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미국을 위해 일한 조력자다. 이들은 서방의 일원은 될 수 있지만, 탈레반과 함께 살기 힘들 수밖에 없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지원으로 설립된 카불 아메리칸대학의 학생과 가족 등 6만 명도 서류를 얻지 못해 잔류했다. 추정에 따라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떠나지 못하고 아프간에 남게 됐다. 이는 개인에게 슬픔이요 비극이지만 바이든에게는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다가올 운명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군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남기고 철수한 것은 “도덕적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더 힐도 “’모든 미국인을 대피시키겠다’고 약속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바이든에 대해 미국 내에선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아직 무르익은 단계는 아니지만, 탄핵 이야기도 거론된다. 지난 1월 취임한 바이든으로선 정치적으로 위기일 수밖에 없다. ━ 해외 각국, 바이든 대처에 거센 비난 쏟아내 해외에선 말할 것도 없다. 독일·영국 등 동맹국의 실망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때는 동맹과 외교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에 체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원 외교 위원장을 지냈다며 외교를 최대 경쟁력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한 바이든을 보는 서구 동맹의 눈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뒤늦게 국무부 등이 나서 한국과 대만, 유럽 등과 관련해 “다르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바이든이 보여준 무사안일, 정보실패, 그리고 과거 함께 싸웠던 아프간인에 대한 비난은 돌이킬 수 없는 신뢰 추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사실상 글로벌 일극 세계를 이끌어왔던 미국의 신뢰가 21세기에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비아냥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9월 1일 새 학기 첫날인 ’지식의 날‘을 맞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의 공립 청소년 수련센터인 ‘오케안(대양)’에서 수련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20년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주둔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타스통신을 비롯한 러시아 관영 매체에 따르면 푸틴은 이날 작심한 듯 미국을 비난했다. 푸틴은 “미군은 지난 20년간 아프간에 머물면서 현지 주민들을 문명화시키고 정치 체제를 비롯해 자신들의 규범과 표준을 옮기려고 시도했지만, 결과는 미국과 아프간 주민 모두에게 비극과 손실만 가져왔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소련은 1979~89년 10년간 아프간에 주둔하면서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봤으며 이로 인한 충격으로 1991년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로 분열됐다. 미국이 소련의 사례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아프간을 침공해 서구의 민주주의 체제를 이식하려다 막대한 손실만 보고 물러난 것을 비난한 것이다. 푸틴은 7월 20일 모스크바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고별 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외부에서 제삼자의 가치를 강요하려는 무책임한 정책과 낯선 잣대에 기준을 둔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들에 건설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 등을 상대로 인권·민주주의·언론자유 등을 내세우거나 요구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내놓고 말한 것이다. 1일 블라디보스토크 발언도 아프간에서 봤듯이 미국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힘으로 다른 나라에 자국의 가치를 강요할 수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간섭하지 말라는 주문을 아프간에 빗대서 한 셈이다. 바이든은 국내외의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국격 추락에 대한 대책부터 고민해야 할 처지다.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발언이나 요청·요구가 힘이 빠질 가능성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은 8월 말로 잡은 철군 시한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수많은 아프간인 조력자는 물론 미국 국적자까지 모두 데려오지 못하는 ‘잔류 참사’를 빚었다.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8월 23일 카불로 날아가 카타르에서 귀국한 탈레반 최고지도자 압둘 가니 바르다르와 만나서 회담했지만, 탈레반에 시한을 연장하도록 설득하지 못했다. 탈레반의 축포로 끝난 아프간 전쟁을 되새김질해보면 바이든이 느끼는 정치적 부담을 상상할 수 있다.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그해 10월 7일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스웨덴 웁살라대 분쟁 데이터 프로그램(UCDP)에 따르면 21만2191명의 인명 손실을 내고 끝났다. 브라운대 왓슨 연구소에 따르면 민간인 희생자가 5만1613명에 이른다. 전투원 희생자도 아프간 군경 7만668~6만7558명, 전쟁 초기 북부 동맹 200여명에 미국 2420명, 영국 456명, 캐나다 159명, 프랑스 89명, 독일 62명, 이탈리아 53명, 한국 1명 등 모두 3576명에 이른다. 부상자도 미국 1만9950명, 영국 2188명, 캐나다 635명 등 2만2773명에 달한다. 여기에 미국 노동부 등의 조사에 따르면 민간군사기업(PMC)에 소속된 요원(사실상 용병)도 3939명이 숨지고 최소 1만5000명이 부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최소한 미국 69명, 네팔 19명, 영국 17명에 캐나다·필리핀·러시아·우크라이나 국적이 각각 13명이다. 한국 국적자도 2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웟슨연구소에 따르면 탈레반은 5만1191명이 사망했으며, 미 국방부는 알카에다 테러리스트가 200명 정도 숨진 것으로 본다. 미국의 소리(VOA)는 아프간 당국자를 인용해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 격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 무장대원도 2400명 정도 숨졌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 비용은 현재 화폐가치로 전체 2조2610억 달러가 들었다는 것이 웟슨연구소의 추산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미군의 2020년 군사비 지출이 나토 기준으로 7850억달러였으니 지난 20년간 2.88년치, 거의 3년치 미국 국방예산을 아프간에 쏟은 셈이 된다. 일본(2조3626억 달러)이나 독일(2조382억 달러)의 2020년 한해 정부 지출과 비슷하다. 한국의 2020년 정부지출(4144억 달러)의 5.5배에 가깝다. ━ 미국 아프간 전쟁 비용, 2조2610억 달러 추산 이런 희생과 비용을 치렀음에도 탈레반은 소탕되지 않았다. 여전히 4만~6만의 병력을 유지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공감대는 미국은 물론 서방 세계 전체에서 힘을 얻었다. 철수는 쉽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 미국은 2014년까지 미군을 아프간에서 철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9800명의 미군이 계속 남아 나토의 안정화 지원 임무를 맡았다. 미군과 다른 나토 회원국 군대를 합쳐 1만3000명이 군사 고문과 안정화 작업, 그리고 대테러 임무를 위해 계속 주둔했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20년 미국은 아프간 정부를 배제하고 탈레반과 직접 협상했으며 그 결과 2020년 2월 29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미국의 아프간 특사 잘마이 칼릴자드와 탈레반 대표 압둘 가니 바르다르가 ‘도하 합의(아프가니스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합의)’에 서명했다. 탈레반은 알카에다 퇴치에 협조하기로 했으며, 미국과 나토 동맹국은 탈레반이 합의 조건을 지키면 14개월 안에 모두 철군한다는 내용이었다. 2021년 1월 취임한 조 바이든은 4월 미군의 철수를 발표했다. 그러자 5월부터 탈레반의 공세가 시작됐다. 1996~2001년 아프간을 지배할 당시에도 차지하지 못한 북부 지역을 시작으로 공세에 나서 주요 도시를 하나하나 점령했다. 아프간은 서울 지하철 2호선처럼 전국을 고리 모양으로 도는 순환도로가 있다. 아프간에는 이 고리를 장악하는 세력이 나라를 차지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1979~89년 이 나라를 침공했던 소련도 완전 장악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 고리 도로를 거의 장악한 데 이어 8월 초에는 수도 카불을 포위했다. 카불 남부의 가즈니와 동부의 잘랄라바드를 점령해 탈출구를 막았다. 8월 15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카불을 빠져나가면서 미국이 세우다시피 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은 무너졌다. 2001년 이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가 나라를 다시 차지했다. 서구 세력은 이슬람주의 극단세력인 탈레반을 막지 못했다. 탈레반의 승리로 아프간 이슬람 공화국과 미국의 20년 공든 탑만 무너진 게 아니다. 이번 카불 사태로 바이든이 그동안 누려왔던 유능한 ‘국제외교통’ 이미지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으로 문외한인 도널드 트럼프를 압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대신 고집불통에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기성정치인의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정치적인 위기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은 1977~81년 재임하면서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겪은 데 이어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을 겪으면서 인기가 폭락해 결국 재선에 실패했던 지미 카터에 비교되는 분위기다. 더 큰 문제는 바이든이 자신의 위기를 돌파하려고 무리하게 동맹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거나 대중국 압박이나 러시아 회유에서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이 만회 외교에 지나치게 신경을 쓸 경우 대북이나 대한반도 정책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민에 최악의 국가로 인식되는 북한과 관련해서 어떠한 돌파구를 열든지, 아니면 반대로 꼼짝 못 하게 옭아맬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빚든지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 관계는 과일을 키우듯이 무르익을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당장의 정치적 위기 만회나 인기 회복, 치적 쌓기를 노리든지 지도자의 고집을 받쳐주기 위한 정책을 펼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카불 사태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바이든을 바라보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눈이 동시에 초조해지는 이유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09.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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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인사이트 | 41년 만에 미국이 대만을 찾은 이유] 미국·중국·대만 삼각관계 끝은 어디

전문가 칼럼

美, 중국 폭정 공산당으로 규정… 옛 우방국들과 반중 연대 강화 미국의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 9~13일 미수교국인 대만을 방문한 것은 미국-대만 관계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에이자 장관은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 단교한 뒤 타이베이를 찾은 미국 인사 중 최고위급이다. 단교 뒤 미국 각료급 인사의 대만 방문은 6년 전인 2014년 지나 매카시 환경보호청장이 마지막이었다.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미·중 무역 전쟁과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이에 따른 휴스턴과 청두의 총영사관 폐쇄 등으로 악화 일로에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다.에이자 장관은 대만에서 눈에 띄는 일정을 보냈다. 의례적인 방문 수준을 넘어선다. 표면적인 이유인 방역 협력은 그 일부일 뿐이다. 8월 9일 특별기 편으로 타이베이에 도착한 에이자 장관은 대만에서 상당히 바쁜 일정을 보냈다. 10일 오전 대만에서 사실상 미국 공관 역할을 하고 있는 민간기구 미국재대만협회(AIT)의 제임스 모리아티 대표 등과 함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만나 회담했다. 미수교국인 대만의 최고지도자와 거침없는 만남의 행보를 보인 셈이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의 우자오셰(吳釗燮) 외교부장, 천젠런(陳建仁) 전 부총통, 라이칭더(赖淸德) 전 행정원장과도 만나 대화를 나눴다.이번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12일 에이자 장관이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분향소가 마련된 타이베이 빈관을 조문하며 대만에 민주주의를 가져왔던 리 전 총통의 업적을 기린 것이다. 대만 민주화의 물꼬를 터 ‘미스터 민주주의’로 불렸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분향소를 찾아 추모한 에이자 장관은 중요한 발언을 쏟아냈다. 에이자 장관은 분향소에 ‘리 전 총통의 민주주의 유산은 미국과 대만 관계를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다. 의례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문구다.국민당 소속 리 총통은 1988~2000년 대만 총통을 지내면서 다당제와 총통 직선제를 도입하고 국민당 독재를 종식해 대만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일본 식민지 시절 대만에서 태어나 일본 교토대 농림경제학과에서 공부하다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일본군 소위로 임관해 복무했다. 그는 종전 뒤 미국에 유학해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석사,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전공은 농업경제학이다. ━ 美 복지부장관 대만 방문, 중국에 맞서 연대 암시 정치에 뛰어든 그는 본성인(本省人)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만 총통을 맡았다. 본성인은 1945년 이전에 중국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한인을 가리킨다. 1949년 중국 대륙을 공산당에 빼앗기면서 대만으로 이주한 국민당계 한인과는 정체성이 다르다. 리 전 총통은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는 한편, 베이징 당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면서 ‘양국론’을 주장하며 대등한 양안 관계를 추구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대만인으로부터는 ‘국부’로 존경 받았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대독(臺獨•대만독립) 세력의 수괴’로 불렸다.에이자 장관은 대만 방문 중 리 전 총통에 대한 찬사를 계속했다. 10일 차이 총통을 만났을 때는 “리 전 총통은 대만 민주주의의 아버지인 동시에 20세기 전 세계 민주주의 조류의 중요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11일 대만국립대학 강연에서는 리 전 통총을 “위대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민주주의자인 리 전 총통 추모를 내세워 중국공산당을 자유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세력으로 몰아간 셈이다.에이자 장관의 방문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12일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와 연구소와 미국진보센터(CAP)가 공동 주최한 화상회의에서 “대만이 자유·민주의 튼튼한 보루 역할을 하겠다”고 발언했다. 차이 총통은 ‘대만 보위는 인도·태평양 지역 자유의 보루’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같은 맥락에서 홍콩인에 대한 지원 입장을 재확인했다. 중국이 전국인민대표회의 결정으로 홍콩 국가안전법을 제정하고 일국양제 체제 분열, 정권 전복, 테러조직 결성 및 활동을 예방·저지·처벌한다며 공안 정국을 조성하자 대만은 홍콩인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지원 의사를 밝혀왔다. 이주를 희망하는 홍콩인을 받아들이겠다는 뜻도 공개해왔다.에이자 장관은 대만 방문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강조했다. 중국이 세계보건기구(WHO) 의사결정기구인 세계보건총회(WHA)에서 대만의 옵서버 자격 참가를 반대해 올해 화상으로 열린 총회에 참가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 에이자 장관은 “장관으로 있는 동안 대만의 옵서버 지위 회복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두고 중국을 비난하고 대만을 감싼 셈이다. ━ 대만 총통 전투기 구매로 美 대만여행법 통과에 화답 인구 2380만 명의 대만은 중국 우한(武漢무)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즉시 문을 걸어 닫고 중국과의 인적 교류를 중단했으며 철저한 방역으로 확산을 저지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확진자 481명에 사망자 7명의 경미한 피해에 그쳤다. 그 결과 대만은 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모범적으로 대처한 국가가 평가된다. 하지만 중국의 방해로 올해 세계보건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의 마스크 공장을 방문해 “우리는 안보·경제·보건 분야에서 친구이자 파트너인 대만을 지속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이러한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과 언행은 미국과 대만 관계가 새로운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국은 1979년 단교 뒤 대만과는 공식 외교 접촉은 자제해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해왔다. 2016년 5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첫 취임(올해 1월 재선)하고 그 해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취임은 2017년 1월)하면서 미국과 대만은 전략적으로 접근해왔다. 트럼프는 당선인 신분이던 그 해 12월 차이 총통과 전화 회담을 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대만의 총통이 전화회담을 한 것은 1979년 미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은 뒤 처음 있는 일이다.2018년에는 미국과 대만 관계가 급진전했다. 미국과 대만 고위 관료들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촉진하는 ‘대만 여행법(Taiwan Travel Act)이 그 해 2월 28일 미국 의회를 통과하고 3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발효됐다. 미국 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6년 9월 대만여행법을 발의하고 상원에 제출했지만 부결됐다. 하지만 대만여행법은 2017년 1월에 하원을 거쳐 5월 상원에 다시 제출됐으며, 결국 2018년 1월 하원에서 법안이 가결된 데 이어 2월 28일 상원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대만여행법의 첫 수혜자는 대만의 차이 총통이었다. 그는 2019년 3월 말 남태평양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미국 하와이를 경유하며 미군 장성을 비롯한 미국 인사들과 만났다. 차이 총통은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세미나에도 참석해 “미국에 F-16V 전투기와 전차 구매를 요청했다”고 직접 밝히고 “전 세계에 대만 방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뒤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에 F-16V를 팔기로 했다. 이는 대만이 1992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전투기 도입이 됐다.육군 8만8000명, 해군 4만 명, 공군 3만5000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대만은 최신 무기체계 획득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중국의 견제로 전 세계에서 무기를 들여올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 밖에 없는데 그나마 최신형 무기체계는 팔지 않기 때문이다. 육군의 경우 미군이 쓰는 M1A1 에이브럼스 전차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미국의 거부로 한 단계 아래인 M60A3 전차 200대 구매에 만족해야 했다. 565대의 주력전차(MBT)를 보유한 대만 기갑 전력의 핵심은 구형인 M-48 전차다. 479대의 전투기를 보유한 대만 공군의 핵심은 143대의 F-16 A/B형이다. 개량된 C/D형은 미국이 팔지 않아 획득하지 못했다. 87대의 F-5E/F도 보유하고 있지만 퇴역 시기가 한참 넘은 구형 기종이다. 그 외에 55대의 프랑스제 미라지 2000을 운용하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는 중국의 눈치를 봤는지 성능이 떨어지는 기종을 넘겼다. ━ 미국·대만, 앞에선 단교 뒤에선 우방국 군사동맹 유지 이런 사정의 대만에 미국이 F-16V를 핀매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과정에서 대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무역협상 등에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카드인지도 알 수 없다.이는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와 미·대만 단교 이후 유지돼 왔던 워싱턴과 베이징의 관계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지적된다. 사실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면서도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대만 방위를 위한 역할도 계속해왔다. 미국 의회는 1979년 미국의 대중 수교와 대만 국교단절 직후인 그해 4월 ‘대만관계법’을 제정했다. 오랜 우방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연합국으로 싸웠던 중화민국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과거 양자가 맺었던 외교협정을 유지하고, 대만 방어용 무기에 한해 대만에 미국산 무기를 제공하며, 대만 주민의 안전과 사회경제적 제도를 위협하는 무력사용 등 강제적 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력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은 미국 국내법임에도 내용은 외교 협정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과 대만이 국교는 단절하면서도 군사적 동맹관계는 유지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사실 미국과 중국은 외교 관계 수립을 전후해 1972년 2월 ‘상하이 코뮤니케(공동성명)’, 1978년 12월 ‘미·중 수교 코뮤니케’, 1982년 8월 ‘8·17 코뮤니케’ 등 3개의 코뮤니케를 발표했다. 1972년 상하이 코뮤니케는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처음 언급했다. 1978년 수교 코뮤니케에선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만과 공식적인 정치 관계는 단절하되 경제·문화적 관계만 유지하며, 미·중 양국이 국제 분쟁을 줄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1982년 8·17 코뮤니케에선 이전 코뮤니케에서 나왔던 대만 문제를 재확인했다. ━ 대만관계법·6개보장으로 중국 주도 양안 통일 견제 독특한 점은 8·17 코뮤니케 직전에 대만과 ‘6개 보장’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6개 보장은 대(對)대만 무기판매에 기한을 정하지 않고, 무기수출시 중국과 사전협상하지 않으며, 양안 중재 역할을 맡지 않고, 대만관계법을 수정하지 않으며, 대만 주권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변경하지 않고 대만에 중국과의 협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1979년의 대만관계법과 1982년의 6개 보장은 미국과 대만 관계의 기본 원칙이 돼왔다.상하이 공동성명은 ‘미국은 대만해협 양측의 모든 중국인들이 중국은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이러한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이라고만 했을 뿐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중국이 주도하는 양안 통일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미국은 이렇게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 민간기관인 미국주 대만협회(AIT)를 상주시키면서 관계를 이어왔다. AIT는 민간기관이지만 비자 업무 등을 운영하면서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서 실질적인 미국 외교공관 역할을 해왔다. 외교공관과 달리 대만의 타이베이(臺北)와 가오슝(高雄)에는 물론 미국 워싱턴에도 사무실을 유지한다.지난해 3월 19일 AIT의 윌리엄 브렌트 크리스텐슨 대표는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과 대만이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 사무소’의 고위 관리가 참석하는 연례 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대화의 명칭이 ‘인도태평양 민주주의 거버넌스 협의(Indo-Pacific Democratic Governance Consultations)라는 사실이다. 이 포럼의 목적에 대해 크리스텐스 대표는 “미국과 대만이 지역에서 협력을 증진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추구해 오늘날 거버넌스 도전을 받는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것”이라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촉진하는 데 미국과 대만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없다”라고 말했다.1년 전의 이 발언은 이번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열쇠일 것이다. 미국과 대만의 관계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반비례해 계속 변화 중이다. 그 궁극적인 종착역이 어딘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0.08.15 16:51

8분 소요
[도쿄 올림픽 연기] 역대 올림픽은 순탄하지 않았다

국제 이슈

전쟁·냉전으로 취소·보이콧… 반칙·승부조작은 고대 올림픽도 마찬가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범유행)으로 인한 글로벌 혼란이 급기야 2020년 도쿄(東京) 올림픽·패럴림픽을 1년 정도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IOC의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3월 24일 45분간 통화하면서 연기에 합의했으며 IOC는 이날 즉시 임시 이사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연기를 승인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먼저 연기를 제안하고, 바흐 위원장은 “100% 동의한다”고 응답하면서 담판이 이뤄졌다.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이날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연내 개최를 포기하고 2021년 여름까지는 개최하며, 그리스에서 채화돼 일본으로 옮긴 올림픽 성화는 일본이 보관하고 시기를 미뤘음에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2020’이라는 대회 명칭은 그대로 쓰기로 했다는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성화 릴레이도 연기됐다.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에 안전한 곳이 없어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언제 꺾일지 알 수 없어 올해 하반기로 옮기는 방안도 설득력이 부족했다. 선수의 안전과 관중의 참여, 그리고 전 세계적인 흥행을 위해선 개최 시기를 한 해 뒤로 옮기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 도쿄 올림픽 1년 연기 후폭풍 만만치 않아 결국 개최 시기를 1년 연기했지만 뒤처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내년 비슷한 시기에 열릴 예정인 다른 국제 스포츠 이벤트의 개최 시기 조정도 문제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2021년 여름과 초가을에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수영세계선수권 대회와 고베에서 장애인육상 세계선수권 대회가 예정돼 있으며, 미국에선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대회 연기에 따른 행정 처리는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가장 먼저 생각할 대상이 경기장이다. 조직위원회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위해 33개의 경기장을 포함해 진행 공간 등 모두 43개의 장소를 확보했는데, 내년에 이를 다시 확보하려면 추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내년에 다른 이용이 이미 예약돼 있는 경우도 있어 이를 연기하거나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하기 때문에 전면적인 임대 재협상을 해야 한다.선수촌도 문제다. 새로 건설한 뒤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선수촌으로 사용한 뒤 개보수를 거쳐 분양 고객에게 인도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연기로 사달이 나게 생겼다. 부동산 인도시기를 1년 뒤로 늦출 수밖에 없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조직위원회가 보상 책임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직위원회도 활동이 1년간 연장되면서 자칫 ‘돈 먹는 하마’가 될 처지다. 인건비는 물론 사무실 임대료도 1년 치가 추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조직위원회는 IOC와 각국 올림픽위원회에서 도쿄를 찾은 VIP와 직원들을 위해 가계약한 경기장 주변의 숙소 4만6000개의 취소도 문제다. 조직위원회는 물량을 싹쓸이하다시피 해 일반인은 대회 기간 중 예약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직위원회는 이번 연기로 이 많은 물량을 모두 취소하고 내년으로 재계약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위약금을 둘러싼 분쟁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올해 여름 도쿄와 주변 지역에는 이들 숙박 물량이 쏟아지면서 가격이 급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미 500만 장을 판매한 입장권도 문제다. 환불과정도 만만치 않으며, 이를 1년 뒤에 쓸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쉽지 않다. 확보해둔 임대버스 2000대의 계약을 모두 취소하고 내년에 이 정도 물량을 다시 모아 계약하는 일도 골칫거리다. 1만명 이상의 경비 인력, 11만명의 자원봉사자를 일단 해산하고 내년에 다시 모으거나, 활동 시기를 내년으로 조정하는 일도 과중한 업무가 될 수밖에 없다. ━ 2차 대전 당시엔 ‘정치 선전장’되기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와 함께 한번 정한 올림픽을 연기하는 초유의 사건을 겪는 데 따른 심리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올림픽 연기는 근대 올림픽 도입 뒤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 취소나 반쪽 개최, 선수 학살 등 비극은 왕왕 있어왔다.아이로니컬하게도 일본은 올림픽 반납과 취소의 전력이 있다. 과거 침략전쟁을 벌이느라 1940년 도쿄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한 전력이 새삼스럽게 지적된다.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 여름 올림픽은 1964년 이후 두 번째로 같은 도시에서 열린다. 그런데 사실은 도쿄 올림픽 유치는 이번에 세 번째다. 도쿄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다음인 1940년 올림픽 개최권을 확보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여름 올림픽으로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하지만 군국주의 일본은 1937년 침략전쟁인 중·일전쟁(1937년 7월 7일~1945년 9월 2일)을 일으키면서 각의에서 올림픽 개최권 반납을 스스로 결정했다. 한 나라가 유치했던 올림픽을 자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을 이유로 스스로 포기하고 반납한 사례는 1940년 도쿄 올림픽이 유일하다.이렇게 일본이 반납한 1940년 여름 올림픽 개최권은 핀란드의 헬싱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소련이 1939년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전쟁(1939년 11월 30일~40년 3월 13일)을 벌어지면서 올림픽은 아예 취소됐다. 인류의 제전인 근대올림픽을 전쟁으로 중지한 것은 1916년 베를린 여름 올림픽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된 데 이어 두 번째 사례다.전쟁이 끝난 1936년 베를린에서 여름 올림픽이 열렸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이를 게르만족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선전장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미국의 아프리카계 제시 오언스(1913~1980년) 선수가 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에서 각각 금메달을 따고 4관왕에 오르면서 히틀러의 인종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1940년 도쿄 또는 핼싱키 올림픽에 이어 1944년으로 예정됐던 런던 올림픽도 나치·파시스트·군국주의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아 끝내 열리지 못했다. 올림픽은 종전 뒤인 1948년 런던이 여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비로소 재개됐다.일본이 올림픽을 포기하고 벌인 중·일전쟁은 끔찍한 살육극으로 이어졌다. 종전 뒤인 1947년 중화민국 행정원 배상위원회는 일본과의 전쟁으로 군인 365만405명, 민간인 913만4569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1995년 중국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 산하 군역사연구부에서 출간한 는 항일전쟁 기간 중 3500만명의 중국인이 죽거나 부상했다고 기록했다. 동아시아를 넘어 인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 올림픽 참가마저 갈라놓은 냉전시대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44만6500명의 군인이 숨졌다. 종전 뒤엔 소련군에 의해 60만명의 일본군 포로가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잡혀가 노역에 종사했으며, 이 가운에 6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은 침략전쟁 과정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잃기도 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여름 올림픽에서 마술경기의 일종인 장애물경주에서 금메달을 딴 니시 다케이치(1902~1945년 3월 22일) 선수다. 니시 선수는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벌어진 이오지마 전투(1945년 2월 19일~3월 26일)에서 전차 제26연대장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인류애에 입각한 평화와 화합의 제전을 버리고 국가주의를 내세운 침략전쟁을 벌인 대가였다.올림픽은 정치 문제를 내건 보이콧으로 얼룩지기도 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27개국이 보이콧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당시 뉴질랜드가 반인륜적인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의 분리거주) 정책 때문에 국제적인 제재를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 경기를 치렀는데, IOC가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를 금지하지 않자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와 이라크 등이 대회를 보이콧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92개국 6084명이 참가했으며 29개국이 대회를 보이콧했다.몬트리올 올림픽 보이콧 사건은 그 다음에 열린 1980년 모스크바 여름 올림픽에 비하면 약과였다. 모스크바 올림픽은 1956년 이후 가장 적은 80개국 5179명 참가에 그친 반쪽 올림픽이었다. 소련이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보이콧을 주도했다. 그 결과 서방 진영을 중심으로 한 66개국이 올림픽에 불참했다. 한국도 포함됐다. 13개국이 참가는 했지만 국기 대신 올림픽기를 앞세우고 입장했으며 3개국은 국가올림픽 위원회 깃발을 들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989년 2월까지 이어지면서 소련을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전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투입한 이 전쟁으로 소련은 재정문제에 봉착했으며 고전적 공산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웠던 소련을 몰락으로 이끄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공교롭게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다음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었다. 이번엔 소련이 보복에 나서 보이콧에 나섰다. 하지만 동조 국가는 소련과 북한,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등 14개국에 불과했다. 로스앤젤레스 대회에는 140개국 6829명이 참가했다.1972년 뮌헨 올림픽은 72개국 7170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지만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다. 올림픽 기간 중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인 ‘검은 9월단’ 무장대원 11명이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인질로 잡고 협상을 시도하다 선수 전원을 살해한 뮌헨 참사가 벌어졌다. 인질극이 시작되면서 일시 중단됐던 경기는 사건이 종료되면서 재개돼 폐막식까지 마쳤다. 이 사건으로 올림픽기가 사상 처음으로 조기로 게양됐으며 이스라엘 국가도 조기로 게양됐다. 이스라엘의 대외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는 테러 관련자를 보복 살해하는 ‘신의 분노 작전’을 펼쳐 20명 이상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의 분노 작전은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의 모티브가 됐다.뮌헨 참사를 겪은 뒤 올림픽의 보안과 경비가 강화됐으며 안전 올림픽이 강조됐다. 몬트리올, 모스크바,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보이콧을 겪은 뒤 국제사회는 올림픽 보이콧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지 않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동서 양 진영이 참가한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보이콧은 사라지고 올림픽은 더 이상 정치로 얼룩지지 않았다. 인류는 올림픽의 비극으로부터 그나마 교훈을 얻었던 셈이다. ━ 연애·결혼·정치권력 얻은 고대 올림픽 우승자들 하지만 고대 올림픽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형식적으로는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행사였지만 현실적으로는 힘이 좌우하는 우락부락한 행사였다. 기원전 776년에 시작돼 기원후 394년까지 계속됐던 고대 올림픽의 주관도시인 엘리스는 개막 전 그리스의 각 도시 국가에 3명의 사자를 각각 보냈다.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을 중지하고 재판은 연기하며 사형은 미루도록 요청했다. 부정을 타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하지만 현실은 힘이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였다. 고대 군사 강국인 스파르타가 전쟁금지 관례를 어겨 벌금과 출전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벌금을 내지 않고 넘어갔다. 가공할 전투력을 지닌 스파르타의 경보병을 두려워한 다른 도시 국가들은 누구도 이를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고대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은 중지해도 정쟁을 자제했다는 기록이 없다. 올림픽은 국내와 국제 정치의 대결장이 됐다.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관련한 정치인의 위상과 인기가 단박에 오르내리는 것은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로 맞붙었다가진 도시는 이긴 도시에 한참 동안 목소리가 낮아졌다.근대 올림픽을 제안한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고대 올림픽이 아마추어리즘의 제전이라고 믿었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고대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는 상금과 격려금으로 평생 먹을 재산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올림픽 우승자가 인기를 얻어 연애와 결혼은 물론 정치에서도 힘을 얻는 게 일반적이었다. 처음엔 엄격한 아마추어리즘을 내걸었던 근대 올림픽이 현실을 감안해 축구 등 일부 종목에서 프로 선수의 참가를 허용하는 이유다. 하긴 아마추어 선수하고 해도 돈과 거리가 먼 수도승은 아니지만 말이다.고대 올림픽은 스포츠 행사라기보다 종교 제전에 가까웠다. 선수들은 도시국가 엘리스의 성소인 올림피아에 모여 높이 12m의 위압적인 제우스신 석상 아래에서 경기를 치렀다. 고대 올림픽이 사라진 것도 종교 때문이다. 그리스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347~395년, 재위 379~395년)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국교로 삼으면서 이교 행사인 그리스의 올림픽을 폐지했다. 이집트에선 신전이 폐쇄되고 사제들이 쫓겨나면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맥이 끊어졌다.‘그래도 종교행사였던 만큼 고대 올림픽에선 경기를 정정당당하게 했을 것’으로 여긴다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올림포스에 반칙 선수들의 벌금을 모아두는 자네스라는 상자를 만들어 둔 것을 보면 반칙이 다반사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심판이나 선수를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는 것도 수시로 벌어졌다.근대 올림픽에선 국적을 바꿔 뛰는 경우가 왕왕 있어 세부 규정까지 마련됐지만 이런 일은 사실 고대 올림픽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소타데스라는 장거리 경주 선수는 출신 도시인 크레타 소속으로 출전해 우승했으나 다음 경기에선 다른 도시국가 에페스로 국적을 바꿔 출전했다. 두둑한 돈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스포츠와 돈의 관계는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 근대 올림픽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다. 올림픽이 다양한 측면에서 성숙해져야 하는 이유다.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를 계기로 더욱 성숙한 대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선 일본 때문에 전쟁 피해를 입었던 이웃나라들이 ‘침략의 상징’으로 여기는 욱일기를 자국민의 응원도구로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황당한 일부터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인류가 코로나19라는 재앙 앞에 힘을 합쳐 대응하면서 그 정도 교훈은 얻어야 하지 않을까. 올림픽 정신인 평화와 화합을 제대로 이루려면 말이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0.03.2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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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의 빗썸 과세 그 후] 가상증표라더니 암호화폐 제도화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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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아닌 ‘자산’ 분류, 특금법 통과 때 규정 생겨… 주요국도 자산으로 규제, 중국 ‘추월차선’ 경계감 커져 국세청이 지난 12월 29일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코리아에 803억원 규모의 기타소득 과세를 통보했다. 빗썸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외국인 거래자의 자산 거래에 원천징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빗썸의 최대주주 비덴트는 “가상화폐 과세에 대한 법령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과된 부당과세”라고 반발하고 있다.비덴트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세무당국이 세금을 매기려면 증권이든 재화든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한 규정은커녕 정의조차 내리지 않았다. 2018년 1월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도 “가상화폐라고 부르는 것도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다. ‘가상증표’ 정도가 맞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암호화폐는 디지털 코드로 이뤄진 효용 없는 일종의 증표이며, 이에 대해 법적 규정조차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2년 가까이 흐른 지금 국세청이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분류하고 세금을 물리겠다는 방침을 공식 천명한 것이다.국세청은 암호화폐를 ‘부동산 이외의 자산’으로 전제해 세금을 물린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이외의 자산은 주식·채권은 물론이고 상품권 같은 통화대용증권·은행예금처럼 현금화하기 용이한 자산을 의미한다. 암호화폐는 게임아이템처럼 디지털 공간에 존재하지만 물물교환 및 현금화 할 수 있기 때문에 광의의 자산으로 분류한 것으로 풀이된다. ━ 암호화폐에 과세 판단 근거는 암호화폐 자체는 어떤 자산의 성격을 갖지 못하지만, 거래소를 통해 현금이나 다른 암호화폐와 거래할 수 있다. 실제로 암호화폐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혼·폐업 등에 대비해 자산을 암호화폐로 바꾼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 당시에는 정부가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분류하지 않아, 재산분할이나 청산·과세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지난해부터 재판부는 이혼소송 등에 있어 암호화폐가 실질적 자산의 기능을 한다고 보고, 소송인의 재산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가 자산이라면 응당 과세의 대상이다. 이번 빗썸에 대한 과세는 ‘비거주자가 국내에 있는 자산을 양도할 때는 관련 소득에 대한 세율 금액을 거래대금을 지급하는 사람이 원천징수할 의무가 있다’는 소득세법에 근거를 뒀다. 미국·중국·일본 등 해외에 거주 중인 사람이 국내 거래소인 빗썸을 통해 암호화폐를 팔아 현금화 한 경우, 이 거래를 중개한 빗썸이 세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국내 거주자는 자산 소득세를 매년 종합소득세 신고납부로 이행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외국인은 일일이 소환해 과세할 수 없어 중개자가 거래 당시에 매매차익의 22%를 거둬 국세청에 납부해야 한다. 세무당국이 암호화폐 투자의 강점으로 꼽혀온 세금이 없고 자유롭게 역외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에 허들을 둔 셈이다. 그간 금융·조세당국은 중국 등지에서 국내로 유입된 암호화폐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국부를 유출한 것으로 판단해왔다.만약 당국이 암호화폐를 화폐로 간주했다면 거래대금에 과세는 불가능하다. 실제 암호화폐의 본질적 성격과는 별개로 현재 거래되는 양상을 보면, 유가증권처럼 프리미엄을 얹어 거래되고 있어 화폐보다는 자산의 성격이 짙다.이번 과세 결정은 지난해 빗썸 세무조사 이후 내려진 것으로 1년간의 과세적부심을 거쳐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세청의 판단일 뿐, 실제 이 과세를 위한 법령이나 근거는 아직 없다. 애초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국세청도 별도의 과세 의무를 고지하지 않았다. 빗썸이 의무를 방기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국세청은 이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개별 납세자에 관한 구체적 세원이나 과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며 원론적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세청으로서도 이번 과세는 어쩔 수 없었다. 빗썸이 지난 5년간 중개한 외국인 거래에 과세 제척기간이 2019년까지였다. 이 시한을 넘기면 과세가 불가능하다. 일단 제척기간 전에 과세를 통보한 뒤 다툴 사항이 있다면 함께 따져보자는 것이다. ━ 자산 인정, 제도화로 이어질까 정부는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그러나 암호화폐가 자산으로써 어떤 자격과 용도, 증명을 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지분증권의 경우 기업의 자본금을 일정 액면가만큼 쪼개, 소유자가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산이다. 증권은 법률적 검토와 정부의 인정을 밟아 발행된다. 일종의 중앙집권형 증명을 거친 자산이다. 이 때문에 기업에 대한 권리 행사나 분쟁은 법적 테두리 내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자산의 소유나 자격을 입증하지 못한다.예컨대 달란트라는 재단이 발행한 100억개의 코인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달란트 재단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달란트 코인 거래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소수가 달란트 코인을 과점하고 있다면 이 코인 생태계에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최근에는 증권형토큰공개(STO) 논의도 활발하다. 개별 코인에 지분 가치를 부여해 재화에 대한 실질적 권리를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STO를 통해 불특정 다수가 돈을 모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를 구입했다면, 이 거래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나리자에 대한 소수의 지배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면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이 된다. 또 암호화폐는 현재 법적으로 어떤 자격이 없음에도 STO는 소유·자격 증명을 수반하기 때문에 자본시장법과 충돌할 가능성도 크다.돈스코이호 사태처럼 사업 주도자가 투자자들을 기망할 위험성은 물론 이더리움이 클래식으로 쪼개진 것처럼 투자자들 간에 의견 대립으로 사업이 무산될 가능성도 크다. 블록체인은 아직 기술적으로 불완전하고, 정부 인증 등 법적 책임이 부여되지 않은 자산이라 암호화폐를 둘러싼 여러 분쟁은 어디까지나 제도권 밖의 일로 취급되고 있다.이런 위험성 때문에 정부는 암호화폐를 게임아이템처럼 별다른 자격·지분 증명의 역할은 없지만, 거래를 통해 소득이 발생하면 과세할 수 있는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물론 통화로서도 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은 ‘가상통화 및 CBDC 공동연구 태스크포스(TF)’를 발족, 운영 중인데 암호화폐라는 용어 대신 ‘디지털화폐’와 ‘암호자산’으로 분류해 사용하고 있다. ‘암호’(가상)와 ‘화폐’ 두 단어를 연결하지 않았다. 원·달러·엔 등 법정 통화의 디지털 거래는 디지털화폐로 인식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지급결제는 암호자산 영역으로 나눠 연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정부의 블록체인 도입 방향은 정부·유관기관은 블록체인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화폐 발행 비용을 낮추는 금융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취지로 연구에 나서고 있다. 일단 법적으로는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암호화폐의 호칭을 ‘가상화폐’로 정하는 한편 ‘분산원장 기술을 사용해 교환 및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 인식되는 전자적 이전 가능 증표’를 정의하고 있다. 더불어 이를 보관·관리·교환·매매·알선·중개하는 ‘가상화폐 취급업자’에 대한 정의도 두고 있다.특금법은 자금세탁·공중협박자금조달의 방지 등 범죄의 예방적 조치에 초점을 맞췄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규정을 한 것만으로도 한 발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국회 회기 내 처리는 불투명하지만 국회의 방향을 가늠하는 한편 차기 국회 통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특금법 처리에 발맞춰 가상자산 소득세 과세 방침을 정하고 올해 세법 개정안에 구체적 과세 방안을 담을 방침이다. 정부 과세는 단기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을 줄일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론 제도권 편입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한국은행의 경우 디지털 화폐(CBDC) 발행을 검토 중이다. 블록체인 방식 도입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화폐 거래와 관련한 정보의 무결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유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예컨대 현재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5만원권을 디지털 화폐로 발행할 경우 회수율이 왜 떨어지고, 주로 어느 시간대, 어디에서 사용됐으며, 순환주기는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된다. 이런 정보를 수집하면 경제 동향과 방향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어 세밀한 경제정책 수립 및 통화정책 집행이 가능하다. ━ 글로벌 주요국도 육성보단 일단 규제 큰 틀로 보면 정부는 독단적으로 블록체인 제도화를 추진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암호화폐를 비롯한 디지털통화는 국경을 초월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 세계적인 공통 규칙이 세워질 가능성이 커서다. 이에 주요국 정부의 방향에 보조를 맞춘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규칙은 유럽연합(EU)과 미국·일본 등을 중심으로 설계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글로벌 주요국들도 블록체인 육성보다는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대표적인 사례가 페이스북이 발행한다고 밝힌 암호화폐 리브라에 대한 미 정부의 입장이다. 지난해 7월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는 혁신보다 부작용의 무게가 더 무겁다며 리브라를 가로막았다. 개인정보 유출을 비롯해 암호화폐 사업자가 대출 및 채용에 이용하거나 익명성 보장에 따른 범죄자금, 탈세 등에 악용될 것을 우려했다. 다만 미 하원도 디지털 통화 기술은 실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막을 수 없으며, 송금 수수료 인하 등의 혁신은 필요하다고 공감했다.이 일로 리브라의 초기 멤버였던 페이팔·비자·마스터카드·스트라이프 등 파트너사들이 대거 이탈했다. 2018년 초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블록체인 프로젝트 ‘톤(TON)’을 준비하던 텔레그램 역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문제 제기를 받았다. SEC는 텔레그램이 증권법을 위반해 법원으로부터 긴급 조치 및 임시제한 명령을 받았다며 제동을 걸었다. 권리가 없는 자산 발행과 유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SEC는 또 면제조항인 ‘레귤레이션 S’의 적용도 엄격화했다. 레귤레이션 S는 미국에서 미국 외 거주하는 비시민권자에게 증권 공모를 받을 수 있는 규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외 암호화폐 사업자들이 STO를 진행하자 SEC는 12개월 동안 토큰을 양도하지 못하게 하거나 적격 투자자 인증의무 등의 허들을 통해 자금 공모를 어렵게 했다.최근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도 암호화폐의 회계기준을 통해 암호화폐의 화폐로서 기능적 측면보다는 재고자산·무형자산 등 자산의 측면이 더 강하다고 봤다. 일본 재무성도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는 한편, 용어를 가상화폐에서 암호화 자산으로 바꿨다. 더불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암호화폐가 자금세탁 및 테러조직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글로벌 암호화폐 추적 시스템을 개발키로 했다. 검은 거래에 쓰일지 모르는 암호화폐를 일단 가두리에 가둬놓고 제도화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 중국이 암호화폐 경쟁 불 당길까 이런 가운데 중국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은 암호화폐를 통해 새로운 글로벌 통화패권을 구축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 첨단산업과 융합을 통한 블록체인기술 산업의 혁신 발전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중국 인민은행은 이르면 올 상반기 중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내놓을 계획이다. 선전과 쑤저우에서 시범 운용할 계획이다. CBDC는 리브라·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 아닌 디지털통화다. 금융투자 상품이나 자산이 아닌 실물 결제용 디지털 화폐로 결제망에 중국 국영은행과 이동통신사·텐센트·알리바바 등 공룡 IT 기업들을 포함시켰다. 현재 중국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인허가제로 바꿔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한편, 기술 회사에 대거 투자해 기술 격차를 확보하고 있다. 이런 중국 정부의 암호화폐 개발은 세계의 이목을 끌어모으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수단 아니겠느냐는 관측에서다. 이에 중국은 CBDC를 통해 전세 역전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CBDC는 블록체인을 활용했기 때문에 중국외 국가나 유통 흐름을 잡기 어렵다. 이를 통해 달러화 체제에서 한발 물러선 제3세계 국가들을 위안화 네트워크에 묶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중국이 CBDC를 통해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과 이란 등의 나라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 뤼차오(呂超) 랴오닝(遼寧)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지난해 12월 글로벌 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북한은 블록체인·암호화폐 연구에 협력해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더불어 중국의 블록체인 생태계 강화는 관료들의 부패를 줄이는 한편 중앙당 중심의 집행력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중국의 이런 행보에 미국도 마음이 초조하다. 블록체인을 비롯해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 등 신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비해 뒤처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아디티 쿠마르하버드대 벨퍼과학 및 국제업무센터 소장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는 실제 개념이 증명이 될 것”이라며 “기술·법적 준비가 돼 있는지,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서구사회도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다만 미국이 디지털 달러를 개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중앙집권형 달러 암호화폐를 발행하면 사실상 미국이 전 세계 모든 금융거래를 들여다보게 돼 국제 사회의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돼서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2020.01.0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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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안전보장 무역관리’에 나타난 아베의 비수] 한국 방위산업·원전 마비도 노릴 수 있다

국제 이슈

전략 물자 통제 핑계로 압박 가능성… 북한·러시아·이란 등처럼 ‘불량국가’로 몰아갈 계산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초유의 경제보복을 당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이 겉으로 드러난 조치를 넘어 더 큰 압박 카드를 쥐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7월 1일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반도체·디스플레이용 핵심 소재 세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를 예고하고 4일 실시에 들어갔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들 품목의 한국 수출이 그동안 포괄적 허가 대상이었으나 앞으로는 개별 심사를 밟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경제산업성은 “수출 관리제도는 국제적 신뢰 관계 토대에서 구축돼야 한다”며 한·일 관계 신뢰 손상을 조치의 이유로 들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 레지스트는 일본이 세계 생산량의 약 90%를 차지한다. 불화수소도 약 70%를 일본이 만든다.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스마트폰 화면에 주로 쓰는 재료이며, 포토 레지스트는 빛에 반응하는 감광 물질이며, 불화수소는 반도체 표면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사용한다. 이들 일본제 소재는 정밀도와 품질이 뛰어나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고품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제조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세 가지 소재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의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공급선이 제한돼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 ━ 수출 관리 규정 고쳐서 한국 압박 더욱 큰 문제는 일본의 조치가 해당 품목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는 형식이 아니라 수출 관리 규정을 고쳐 한국을 이 품목에 대한 ‘포괄적 수출허가 대상(일명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외환 및 외국물자법’의 ‘수출무역관리령’의 규정에 따라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화이트 국가’로 지정해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는 우대 조치를 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7월 4일부터 한국을 우대 대상에서 제외해 수출을 규제한다. 일본은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기술과 재료를 위험 국가에 수출하지 못하게 하는 ‘안전보장 무역관리’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안보 위험이나 제3국 전용 우려가 없는 ‘신뢰할 수 있는 나라’는 ‘포괄적 수출허가 대상’ 명단에 포함해 제한 없이 수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그런데 이번 조치는 일본이 안보 등의 문제를 이유로 무역을 규제하는 수많은 제품 중에서 이 세 가지만 우선 제외한 것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의 조치가 단순히 세 가지 3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우려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의 7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현재 27개국인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아예 제외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7월 24일까지 공청회 등 절차를 거쳐 8월 중 정령(政令)을 개정해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할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만일 한국이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되면 군사적 전용 가능성을 막기 위해 수출 통제 물자로 지정된 광범위한 ‘리스트 품목’은 물론 식료품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비(非)리스트 품목도 개별 수출 허가를 거쳐야 한다. 한·일 무역 대란이 벌어지는 셈이다. ━ 국가신뢰도에 타격 가능성 일본이 군사적 전용을 막기 위해 수출을 규제하는 대상이 되면 한국의 국가신뢰도 역시 타격을 입게 된다. 이는 일본 경제 산업성 무역관리부가 레이와(令和) 원년 5월, 즉 올해 5월에 작성한 ‘안전보장 무역관리에 대하여’라는 보고서에 보면 잘 드러난다. 안전보장 무역관리 제도는 선진국이 보유한 고도의 기술과 관련 물질이 대량파괴무기(핵무기·화학무기·생물무기·미사일)와 통상무기의 개발·제조·사용·저장 등을 하려고 하는 국가에 넘어가 국제적인 위협이 되고 지역과 글로벌 정세를 불안정화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보고서는 이런 일을 미리 막기 위해 선진국 중심으로 국제적인 규범을 만들었다고 밝힌다.국제적인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무기나 군사 전용이 가능한 물품과 기술이 일본의 안전 등을 위협할 수 있는 국가나 테러리스트 등 우려할 행동을 하려는 자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는 건 기본이다. 특정 물품과 기술이 대량파괴무기를 만들려는 나라나 테러조직에 넘어가 무기 제조에 사용된다든지 수출 관리가 엄격하게 실시되지 않는 나라를 통해 우회 수출되는 일을 막겠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자동차 제조와 절삭에 사용되는 공작기계는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다. 금속 도금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인 시안화나트륨의 경우 화학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다. 해수 담수화에 사용되는 여과기의 경우 생물학적 무기 제조를 위한 미생물 추출에 쓸 수 있다. 탄소섬유의 경우 민간에선 항공기 구조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지만 군사용으로는 미사일의 구조재로 쓴다.이에 따라 일본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는 재료와 부품 목록을 만들고 국제기준을 준수하는 서방국가에 대해선 ‘화이트 국가’로 분류해 심사 없이 수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말이 군사적 전용 우려가 있는 재료와 부품이지 실질적으론 일본이 자랑하는 대부분의 고품질 재료와 부품이 망라돼 있다.화이트 국가에서 제외되면 수출할 때마다 일일이 심사를 받게 된다. 심사 기준을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낭비되는 시간과 행정 절차도 문제이며, 심사에 걸리는 시간도 예사 일이 아니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를 구매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불확실성의 리스크에 노출된다. 제때에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관련 기술을 일본 기업만 보유하고 있을 경우도 문제지만, 중요도에 비해 소요 물량이 적어 우리가 자체 개발할 경우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국제 공급망에 의존해 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의 물품을 공급받다가, 비용편익이 떨어지는 자체 개발이나 자체 생산을 하게 될 경우 기업의 경쟁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 한국과의 관계 최악이라도 무방? 결정적인 문제는 아베 총리의 이번 조치가 한국에 경제적 타격을 주고 양보만 기대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아베는 그야말로 한국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도 좋다는 오기를 보여주고 있다.화이트 국가에서 제외되면 한국은 그야말로 국제적으로 불량국가 대접을 받게 된다는 점이 그 하나다. ‘안전보장 무역관리’ 보고서는 ‘안전보장을 둘러싼 과제의 심각화 사례’로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이란, 러시아, 중국, 그리고 북한을 들고 있다. 따라서 이번 일본의 조치는 한국을 이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제적으로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래서 원자력이나 미사일, 비행기 부품이나 재료 등까지 포함해 한국을 수출 규제대상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한국은 주요 에너지원인 원자력과 방위산업까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일본이 경제와 과학기술은 물론 안보국방 분야에서 밀접한 미국을 겨냥해 한국에 대한 불신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단순히 징용공 판결에 대한 불만 표출 수준을 넘어 남북한 접근에 불안과 불만을 표출하고, 한·미 동맹의 균열까지 노린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볼 수 있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한국이 중국과 가깝게 지내고 자국과는 관계가 소원하다고 불만을 표시해왔으며, 미국의 정부와 학계에 로비해 이런 담론을 형성하려고 노력해왔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동맹 또는 한·미·일에 인도와 호주를 더한 인도태평양 동맹으로 중국에 대항하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이 삼각동맹은 고사하고 인도태평양 동맹에도 넣을 수 없는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무역에서 신뢰 관계가 없는 나라와 군사 분야에서 손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도 강화해 한국을 국제사회는 물론 동북아시아에서 고립시키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이는 정치적으로 일본 내에서 보수 세력을 결집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단순히 오는 7월 21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 승리만 노리는 게 아닐 수 있다. 한국 때리기는 일본 내에선 올해 안으로 예상되는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의 개헌에도 힘이 될 수 있다. 개헌은 아베의 필생의 소원이었다. 더 나아가 일본의 동북아시아와 글로벌 세계에서의 주도권 향상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 아베의 그랜드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베의 경제보복 조치는 경제만 노린 게 아닌 셈이다.이 보고서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일본의 의도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보고서는 북한에 대해선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강조했다. 북한은 2017년 9월 6번째 핵실험을 실시하고 수차례에 걸쳐 미사일 발사도 계속했다. 그러면서 2018년 4월에는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을 발표했으며 그해 9월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선언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으며 완전한 비핵화를 논의 중이다. 올해 5월엔 여러 차례에 걸쳐 미상 비행체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선박이 일본산 레이더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개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 아베의 전략 중국에 대해선 신무기 개발과 사이버 공격, 그리고 화웨이와 ZTE 등 일부 기업을 위협으로 꼽았다. 보고서는 중국은 2018년 항공모함 시험 운항과 극초음속 비행체 실험 등 신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국에 거점을 둔 APT10이라는 사이버 공격 그룹이 미국·유럽·일본을 대상으로 장기적으로 은밀하게 사이버 공격을 해왔음을 강조했다. APT라는 이름 자체가 은밀하게 숨어서 국가와 기업, 개인에 대한 컴퓨터 해킹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지능형 지속공격(APT)’을 가리킨다. 2009년 서방에 실체가 드러났지만 활동 내역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APT10은 서방 국가를 대상으로 해킹을 일삼으면서 군사·산업·정부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빼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보고서는 이와 함께 중국의 통신장비 및 네트워크 공급업체인 화웨이와 전기통신 장비 및 시스템 업체인 ZTE도 안보와 관련한 우려 대상으로 꼽았다. 미국은 최근 이들 기업이 스파이 공격과 서버 공격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미국은 물론 서방 동맹국에도 이들 기업과의 거래를 중지하고 관련 업계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들 기업이 서방에 판매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구매자의 정보와 데이터를 중국이 볼 수 있게 하는 ‘백도어’를 설치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주요한 요인으로 등장했으며 아직도 진행 중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영국에서 벌어진 망명 KGB 요원의 암살 미수, 핵 문제 등을 들며 안보 위협 사례의 하나로 꼽았다. 러시아는 2014년 2월 우크라이나 영토이던 크림반도를 러시아계가 많이 거주하고 역사적으로 자국 영토였다는 이유로 병합했다. 그해 2월에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계를 앞세워 돈바스 전쟁이라고 불리는 내전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이렇게 악화하면서 서유럽을 비롯한 서방 국가는 그해부터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들어가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해 크림반도 병합과 인권문제, 부패, 그리고 2015년 백악관 등 미국 정부에 대한 사이버 공격, 내란 중인 시리아 정부 지원, 대북 교역 및 접촉, 그리고 화학무기(신경가스 공격) 사용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개인과 정부기관을 제재 중이다.2018년에는 영국에 망명 중이던 전직 러시아 정보요원이 신경가스 공격을 받는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해 영국 정부가 러시아에 대해 새로운 제재에 들어갔다. 올해 2월에는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을 위반했다며 이 조약의 폐기를 통보했으며 러시아는 3월 이 조약에 따른 의무 이행을 중지하며 갈등이 증폭됐다. INF는 양국이 사거리 500~5500㎞의 중거리 및 단거리 지상발사형 탄도미사일과 크루즈(순항)미사일을 폐기하는 것이 골자다. 지상발사형 중·단거리 미사일은 고체 연료를 사용해 연료 주입시간이 별도로 필요 없기 때문에 즉시 발사가 가능하며 속도도 빠르다. 아울러 사거리가 짧아 핵무기를 탑재할 경우 발사 뒤 상대방이 미처 조기경보 레이더를 작동하고 공습경보를 울리기도 전에 적국을 공격할 수 있는 가공할 무기다. 이에 따라 만일 핵전쟁이 벌어지면 적을 가장 먼저 타격하는 제1격의 핵무기 체계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됐다. 따라서 이를 제거해 핵전쟁 발생을 막자는 것이 조약 체결의 근거였다. 이 조약은 냉전 시절인 1987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서명했으며 1991년 6월까지 미국이 846기, 소련이 1846기를 폐기했다.그런데 27년이 지난 2018년 2월 미국은 러시아가 사거리 300~5500㎞인 ‘9M729 이스칸데르-K(나토명 SSC-8)’ 순항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것을 두고 INF 위반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8년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도 같은 무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고, 2019년 2월 1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INF 이행 중단을 선언하고, 다음날인 2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같은 선언을 하면서 조약은 올해 8월 1일자로 폐기에 이르게 됐다.중동의 경우 2017년 10월 글로벌 테러를 일삼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수도 역할을 하던 시리아 도시 라카가 함락되면서 이 단체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해 12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외교부에서 자폭 공격이 발생했고 IS는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발표했다. 그해 3월엔 IS 최후의 거점으로 알려진 시리아 동부의 이라크 국경지대 도시인 바구스도 함락돼 IS의 지상조직이 사라진 것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달인 4월 남아시아 스리랑카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발생했으며, IS는 지신들의 저지른 공격이라고 발표했다. 스리랑카 당국은 자국 내 이슬람 과격 조직인 NT가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선 IS가 저지른 일련의 자폭 공격에 사용된 급조폭발물(IEDs)에 사용된 폭약이 일본제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영국에 있는 분쟁무력연구소(CAR)가 IS가 사용한 IED를 분석한 결과 일본제를 포함한 20개국, 50개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특히 일본 기업이 만든 EC2 신호용 릴과 여러 가지 전자 부품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2016년 1월엔 이란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및 독일이 참가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즉 이란 핵합의가 이뤄지면서 이란에 대한 원자력·미사일 관련 물품의 수출금지조치가 해제됐다. 하지만 2018년 5월 미국이 이란 핵합의에서 이탈하면서 제재가 재개됐다. 이란은 그해 12월 발사 시험을 계속 하는 등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유엔 안보리 산하 전문가 패널의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제 탄소섬유가 중국을 거쳐 이란으로 향하다가 이란 도착 전에 제3국에서 압류됐다. 탄소섬유는 민간용으로도 사용되지만 우라늄 농축을 위한 고성능 원심분리기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소재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고품질 제품은 유엔 안보리 결의로 이란에 수출이 금지됐다. 이란이 이를 입수하려고 했다면 핵개발에 사용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사일 항법장치에 사용되는 일본산 샤이로와 가속도계도 주베이징 이란 대사관 직원이 수화물에 실어 반출하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아베가 내민 비수에 한국은… 일본은 이런 사례를 들면서 북한·중국·러시아·이란과 중동 테러조직에 일본산 전략 물자가 가지 않도록 ‘안전보장 무역관리’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이 이런 나라 수준으로 대접받게 된다면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비수를 내밀었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이 위기에서 탈출할 것인가.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2019.07.0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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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 새 없는 ‘인도양의 눈물’

산업 일반

오랜 내전 시달린 스리랑카에서 부활절 기독교인 노린 연쇄 폭발 테러로 수백 명 사망… 이슬람 급진 무장단체 IS 배후 자처해 부활절인 지난 4월 21일 일요일 아침 남아시아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에서 연쇄 폭발 테러가 발생했다. 스리랑카 경찰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8곳에 있는 여러 성당과 호텔 등을 표적으로 삼은 이 테러로 약 360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다쳤다.첫 폭발은 수도 콜롬보 시내 코치키케이드 지역 성안토니오 성당에서 발생했다. 이어 중부 해안 도시 네곰보의 성세바스티안 성당, 동부 해안 도시 바티칼로아의 자이언 교회, 콜롬보의 샹그릴라, 시나몬그랜드, 킹스버리 호텔, 콜롬보 남부 외곽의 트로피컬인 게스트하우스, 콜롬보 북부 교외 오루고다와타 공동 주거시설에서 동시다발로 폭탄이 터졌다. 부활절 미사를 위해 성당에 모였던 신도들이 속수무책으로 참변을 당했다. 스리랑카 관광개발청에 따르면 희생자 중 인도, 중국, 미국, 영국, 일본, 덴마크, 포르투갈, 터키 출신 등 외국인도 수십 명에 이른다.스리랑카는 종족과 종교 갈등에서 비롯되는 극심한 폭력사태의 험난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이번 테러는 기독교의 가장 성스러운 날인 부활절을 축하하는 시점에 스리랑카의 기독교 공동체를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 신자들이 미사에 참석하는 동안 여러 성당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스리랑카에서는 다수 종족 싱할라족으로 구성된 불교도를 등에 업은 정치 세력들이 과거 영국 식민통치 시대를 지적하며 기독교 등 소수 종교계 주민을 식민시대의 유물로 몰아세운다. 이곳의 불교도(70% 이상)와 힌두교(12.6%), 무슬림(9.7%)은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 등의 식민지배를 당하면서 개종을 강요한 기독교에 강한 적대감을 보인다. CIA 월드 팩트북 2012년 추정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기독교인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로 인구의 7.4%를 차지한다.불교도는 대부분 싱할라족이지만 스리랑카·인도 타밀족은 거의 전부 힌두교 신자다. 거기에다 소수지만 강한 기독교도 집단이 있다. 그러나 타밀어를 사용하는 무슬림은 무어족으로 인식된다. 수 세기 전 이 지역에 정착한 아랍 상인들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이 집단 사이의 이해 충돌과 무력 분쟁으로 스리랑카는 전쟁터로 변했다. 내전은 1983년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단체 타밀엘람해방호랑이 반군(LTTE)이 싱할라족 정부군 13명을 살해하면서 시작됐다. LTTE는 자살부대를 만들어 스리랑카 정치 지도자와 정부군을 공격했고 1991년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 암살, 1993년 라나싱헤 프레마다사 전 스리랑카 대통령 암살 등의 배후로 지목받는다. 1987년 미국은 LTTE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했다.1994년 집권한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전 대통령은 평화 협상을 시도했고 2002년 노르웨이의 중재로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LTTE가 휴전을 거부하자 정부군은 2009년 군사력을 동원해 LTTE 무장반군을 무력 진압했다. 이때 정부군이 저지른 각종 잔학 행위는 인권 침해 및 인종청소 논란을 낳았다.LTTE는 무슬림도 표적으로 삼았다. 무슬림은 내전이 끝나도 차별에 시달렸다. 사반세기에 걸친 내전(약 10만 명이 희생됐다)의 대부분은 스리랑카 정부와 LTTE 사이에서 벌어졌지만 대부분 LTTE가 일으킨 사건에서 엉뚱하게 무슬림이 학살과 강제 이주의 대상이 됐다. LTTE는 2009년 싱할라족 불교 지도자인 마힌다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이끈 정부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결국 항복했다. 그로써 내전이 종결된 뒤 10년 가까이 평온한 상태가 유지됐지만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라자팍사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하면서 다시 정국이 불안정해졌다. 그 조치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으로 라자팍사의 총리 임명은 무산됐지만, 스리랑카는 올해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내전 종식 이래 싱할라 불교 민족주의가 급부상하면서 ‘보두 발라 세나’를 비롯해 정권의 비호를 받아온 불교 극단주의 조직들이 스리랑카의 다른 종교 신자, 특히 무슬림을 탄압했다. 동시에 일부 무슬림은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다고 알려졌다.스리랑카 정부는 이번 테러가 지난 3월 15일 무슬림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질랜드 테러의 복수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사원에서 백인우월주의자의 총격 테러로 이슬람교도 50명이 숨졌다.이후 IS는 뉴질랜드 테러에 복수를 다짐했다. IS는 지난 3월 19일 선전 매체 나시르뉴스에 44분 분량의 녹음 파일을 올리고 “뉴질랜드 모스크 두 곳의 살해 장면은 잠자던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를 깨우고 칼리프의 추종자들을 복수에 나서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IS가 이번 사건의 배후를 자처했다. 지난 4월 23일 IS 선전매체 아마크는 “스리랑카 연쇄 폭발이 IS 전사들에 의한 공격”이며 “우리와 전투 중인 연합군에 속한 국가의 국민과 기독교인이 그 표적”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IS가 이번 테러에 직접 가담한 것인지, 아니면 IS가 스리랑카 내 이슬람 단체에 이번 공격을 지시한 것인지 아닌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스리랑카 정부는 먼저 이번 사건의 배후로 현지 급진 이슬람조직인 NTJ(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를 지목했다. 정부 대변인은 NTJ가 국제 테러조직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는지도 조사한다고 덧붙였다. NTJ는 불상 등을 훼손하는 사건으로 지난해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스리랑카의 무슬림 과격 단체다.이와 관련해 한편 스리랑카 정부는 인도와 미국 정보당국을 통해 NTJ의 공격 가능성을 사전에 통보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신문은 미국과 인도 정보기관이 테러 발생 전인 지난 4월 4일 스리랑카 정부에 ‘테러 공격이 준비 중이라는 징후를 포착했다’는 내용의 경고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또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테러 2시간 전에도 인도 정보기관이 구체적인 테러 정보를 스리랑카 정부에 제공했다. 그런데도 스리랑카 정부가 이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고 대응에 실패한 것은 정치적 분열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기관을 관장하는 대통령과 정부 부처를 관장하는 총리 사이의 갈등으로 총리조차 테러 첩보를 공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는 대통령이 국방과 외교를 책임지고 총리는 내정을 통할하는 이원집정부제 국가로, 현 대통령은 지난해 현 총리의 해임을 시도한 적이 있다.스리랑카 경찰은 이번 연쇄 폭발 테러와 관련된 용의자 50여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은 추가 테러에 대한 우려 등으로 지난 4월 22일 자정을 기해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발표했다.-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2019.05.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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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 | 수익성 세계 최고기업은 사우디 아람코 애플은 오래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기업으로 알려졌지만 그런 시대는 끝났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업체 사우디 아람코가 상장을 준비하면서 회사 실적을 공개했다. 그 뒤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살펴봤더니 지난해 1111억 달러의 순이익을 올려 경쟁사들을 크게 앞질렀다. 실제로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우디 아람코의 순이익은 애플, 구글 모기업 알파벳, 그리고 엑손 모빌을 모두 합친 것과 같은 규모였다. 사우디 아람코의 재무실적은 1970년대 그 회사가 국유화된 이후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상장기업 또는 기업공개를 계획 중인 기업의 실적만 발표되고 전 세계 상당수 기업 특히 국유기업의 실적은 공개되지 않아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우디 아람코의 기업공개는 지난해로 예정됐었지만 2021년으로 연기됐다.- 카타리나 부크홀츠 스타티스타 기자 ━ 이란 | 트럼프 대통령, 이란 혁명수비대 ‘테러조직’ 지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8일 미국이 이란의 혁명수비대(IRGC)를 ‘테러조직’으로 공식 지정할 것임을 확인했다. IRGC는 이란군에 속한 정예부대다. 과거 워싱턴 정부가 다수의 관련 단체와 조직을 블랙리스트에 올렸지만 IRGC 자체가 공식적으로 테러집단으로 간주됐던 적은 없었다. 1941년부터 미국의 후원 아래 이란을 통치하던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국왕을 전복시킨 이란 혁명 직후 1979년 창설된 IRGC는 이란군 내의 정예부대로 활동해 왔다. 근년 들어선 시리아 같은 지역 분쟁에 개입해 이란이 후원하는 부대를 훈련·지원해 왔다.이란의 탄도미사일과 핵 프로그램은 IRGC가 관리한다. 이란은 사거리 최대 약 2000㎞의 미사일들을 보유한다고 밝혔다. 그 정도 사거리면 이란이 미국 우방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 군사기지들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 이란은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을 위협해왔으며 강경파들은 수시로 지역 라이벌인 이스라엘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트럼프 정부는 또한 1996년 19명의 미국인이 희생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코바르 타워 폭파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테러 공격과 음모의 배후에 IRGC가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정부는 아프리카와 유럽 국가들을 표적으로 했다가 적발돼 미수에 그친 음모와 계획들을 거론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테러단체 지정은 “IRGC를 지원하거나 함께 사업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명백히 보여준다… IRGC와 사업할 경우 테러를 후원하는 격이 된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번 결정이 4월 15일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곧바로 트럼프 정부의 결정을 규탄했다. “미국이 그런 결정을 한다면 이란 공화국은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이 8일 밝혔다.- 제이슨 레몬 뉴스위크 기자 ━ 영국 |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 체포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7)가 7년 가까이 숨어 지내던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영국 경찰에 체포됐다.에콰도르가 그의 망명자 신분을 박탈한 뒤였다. 런던 경시청은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가 나이츠브리지의 대사관으로 경찰관들을 불러들인 뒤 어산지를 연행했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어산지는 2012년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던 스웨덴으로의 신병 인도를 피하기 위해 에콰도르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었다. 그는 2017년 취하된 스웨덴 사건은 자신을 미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책략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에서 위키리크스 플랫폼을 통해 비밀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수배된 상태다.어산지가 미국 송환을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에 사형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어산지의 변호사 제니퍼 로빈슨은 어산지의 체포가 미국의 송환요청과 관련됐다고 트위터에 올렸으며 런던 경시청도 이를 확인했다. 웨스트민스터 치안판사 재판소(하급 재판소)는 2012년 6월 29일 어산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의 신병을 스웨덴에 인도하기 위한 법원 출두 명령에 응하지 않아 보석조건을 위반했기 때문이다.런던경시청은 성명을 통해 “그는 런던 중심부의 한 경찰서에 구속·수감됐으며 조속한 시일 내에 웨스트민스터 치안판사 재판소에 출두한다”고 말했다.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비디오 성명에서 어산지에 대한 근 7년 만의 망명처 제공 취소 결정을 설명하면서 자국의 주권적 권리를 강조했다.“오늘 나는 에콰도르에 대한 어산지의 무례하고 공격적인 행동, 그와 관련된 조직의 적대적이고 위협적인 선언 그리고 특히 국제조약의 위반으로 인해 어산지의 망명을 지속할 수 없고 더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셰인 크라우처 뉴스위크 기자 ━ 건강 | 언어로 표현하면 분노 억제할 수 있다 분노는 여러 단계의 강도 변화를 거치는 감정이다. 그리고 너무 심해질 때는 감정이 폭발하거나 무너져 내릴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면 반응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신경학자들이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 감정을 복잡한 단어로 묘사했더니 사람들의 스트레스 강도가 낮아져 파괴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었다.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은 한 기사에서 이 같은 결과에 덧붙여 특정 문화에는 순간적으로 사람이 느끼는 분노의 유형을 더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더 감정적인 단어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그리스어에선 일시적인 분노에는 ‘orge’, 오래 지속되고 더 강력한 감정엔 ‘menin’이라는 단어를 부여한다. 독일어에도 ‘backpfeifengesicht’라는 단어가 있는데 ‘따귀를 갈겨야 할 얼굴’이라는 강한 의미다.감정을 단어 같은 더 구체적인 형식으로 변환함으로써 내부에서 그런 감정이 분출되면 육체적으로 반응하려는 충동이 줄어든다. 신경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은 대체로 뇌에서 생성되며 실제로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부정적인 것에 반응해 얼굴을 찡그리는 것은 뇌의 지시에 따른 반응이다.배럿은 ‘남의 불행에 즐거워하는 기분’이라는 단어를 거론하며 그 단어를 모른 상태에서는 그런 감정을 느끼더라도 그 느낌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단 그 단어를 접하고 의미를 이해하면 그런 감정이 촉발되면서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경향을 보인다.이번 연구에선 감정묘사가 세밀해지면 인간이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공격하는 경향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그런 감정이 인지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단어가 반응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분노의 정체를 파악하고 억제할 수 있을 때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솔루션을 더 잘 찾을 수 있다.- 바네사 닥터 아이비타임즈 기자

2019.04.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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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vs 파키스탄의 70년 넘은 해묵은 갈등] 종교·영토 분쟁 얽힌 핵 보유국의 화약고

산업 일반

폭탄 테러→보복 폭격으로 충돌 위기… 추락 조종사 석방하며 화해 움직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비핵화와 유엔 제재 해제를 둘러싸고 정상회담을 시작한 2월 27일(이하 현지시간) 사실상의 핵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군사적으로 충돌했다. 파키스탄군은 인도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잠무카슈미르 지역의 정전선 부근에서 인도 공군의 미그-21 바이슨을 격추하고 조종사를 사로잡았다. 인도 측은 파키스탄 공군의 F-16 전투기도 추락했다고 주장했지만 파키스탄 측은 이를 부인했다.사실상의 핵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국제 정세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러시아와 전통적으로 가까웠던 인도는 최근 들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군사적으로도 협력하면서 전략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과 가까워졌던 파키스탄은 최근 들어 다시 중국에 접근해 일대일로에 동참하다 국가 부채가 늘면서 고민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이런 두 나라 사이의 분쟁이 악화하면 국제적으로도 다양한 합종연횡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파키스탄 공군의 F-16 전투기는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협력 관계를 강화했던 미국이 파키스탄에 ‘테러와의 전쟁’에만 쓴다는 조건 아래 판매한 고성능 무기체계다. 가뜩이나 남미 최대의 산유국인 베네수엘라 사태로 복잡한 상황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무력 충돌을 벌이면서 전면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트럼프는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피로 피를 씻는’ 방식의 유혈 보복 더구나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하노이에 머무는 동안 미국 워싱턴에선 ‘코언 청문회’가 열려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리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 해결사’로 불렸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이 미국 하원 감독개혁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트럼프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코인은 트럼프를 ‘인종차별주의자’ ‘사기꾼’ ‘범죄자’로 부르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다양한 스캔들과 관련해 거짓말을 해왔다고 증언했다. 코언 청문회에 더해 인도·파키스탄 상황까지 악화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8일 회담 결렬을 선언하고 하노이를 떠났다. 물론 북한과의 협상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결렬의 결정적인 요인이겠지만, 트럼프를 둘러싼 다양한 국내외 상황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2월 27일 파키스탄의 인도 공군기 격추는 하루 전인 2월 26일 벌어졌던 인도의 공습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뤄졌다. 이날 인도 공군의 미라지-2000 전폭기는 잠무카슈미르 지역의 정전선을 넘어 파키스탄 관할지를 폭격했다. 그곳에 테러 캠프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인도가 파키스탄 관할 지역에 있는 ‘테러 캠프’를 공습한 이유도 ‘보복’이었다. 2월 14일 잠무카슈미르의 인도 관할지역인 잠무카슈미르주의 주도인 스리나가르 외곽을 지나던 수송 차량 행렬을 대상으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인도 경찰 41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부상했다. 당시 인도 경찰 2500명이 버스 25대에 나눠 타고 이동하던 중 버스 두 대를 상대로 한 폭탄 공격이 발생했다. 이는 양군 간 벌어진 민병대 공격으로는 30년 만의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인도는 잠무카슈미르의 파키스탄 지역 민병대가 이 테러를 조직했다고 보고 보복에 나섰다.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2월 16일 한 집회에서 “테러범을 어떻게 처벌할지는 우리 군대가 결정한다”라며 보복을 암시했다. 양국은 이런 상태가 벌어지면 빠짐없이 ‘피로 피를 씻는’ 방식의 유혈 보복을 가해왔다. 실제로 2016년 9월 잠무카슈미르의 인도 관할지에서 인도군이 공격을 받아 19명이 숨지자 인도는 특수부대를 파키스탄 관할지역으로 투입해 12명을 사살했다. 이런 종류의 사태가 벌어지면 양국 국민도 ‘보복’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게 일상화했다.이번 사태를 두고 벌인 양국의 설전을 살펴보면 협상이나 타협이란 단어는 아예 찾을 수가 없다. 자살폭탄 공격이 벌어진 당일인 2월 14일 인도는 즉각 “테러 단체가 벌인 공격으로 파키스탄이 지원했다”고 발표했다. 파키스탄 측도 물러나지 않고 “우리 당국은 관여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하고 “인도가 말하는 단체의 창설자가 파키스탄에 있는데 인도가 증거를 제시하면 체포하겠다”라고 나왔다. 인도는 “원한다면 증거를 제공하겠다”라면서도 “대화할 시간은 끝났다”라고 말했다.2월 16일 인도 공군의 미라지-2000의 공습이 이뤄진 직후 인도는 “테러조직만을 겨냥한 공격이었으며 군과 시민은 피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키스탄 측은 “폭격은 전정협정 위반”이라며 “시민들이 부상했으며 이로써 우리에겐 보복할 권리가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다음날인 2월 27일 파키스탄 공군의 F-16기가 인도 공군의 미그-21 바이슨을 격추하자 인도는 “파키스탄 공군기가 인도 군시설을 노려 우리가 출격했다”라고 발표했으며, 파키스탄 측은 “인도군의 전투기가 우리 측에 칩입해 격추했다”라고 상반된 주장을 했다.그런데 3월 1일 대반전이 일어났다.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가 추락 인도 공군기의 조종사를 석방해 인도로 송환한 것이다. 더 이상 사태 확대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인을 보낸 셈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도 양측은 설전을 이어갔다. 인도는 “조종사 석방이 대화의 시작이 될 순 없다”라며 협상을 거부하고 “우선 파키스탄 측의 테러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파키스탄의 칸 총리는 “(인도 조종사 석방으로) 평화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며 대화를 호소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양측 모두가 ‘정치적인 주판알’을 튕기면서 실리를 계산하기 바쁜 상황이다.사실 모디 총리는 4~5월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지지 기반인 힌두 민족주의 세력의 결집을 노리기에 이번 사태가 호재가 될 수 있다. 모디 총리는 현재 야당인 국민의회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총선은 박빙의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국민의회는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1889~1964년, 1947~1964년 총리 재임)와 그의 딸인 인다라 간디(1917~1984년, 1966~1977년 및 1980~1984년 총리 재임)와 손자인 라지브 간디(1944~1991년, 1984~1989년 총리 재임)에 이어 증손이자 4대 세습 정치인인 라훌 간디(49)가 이끌고 있다. 군부의 입김을 강하게 받고 있는 연약한 총리라는 평판을 듣는 파키스탄의 칸 총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강한 리더십을 보여줘 지지층을 넓힐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양국은 치열한 미디어전·선전전을 전개하고 있다. 하늘에서 공중전을 벌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조종사를 둘러싼 진실 공방이 대표적이다. 특히 인도는 파키스탄이 부인하는 F-16 전투기 추락을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다. 추락 조종사의 신원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심지어 파키스탄 조종사가 낙하산으로 탈출했지만 그를 인도 조종사로 오인한 파키스탄 군중이 집단 폭행해 숨졌다는 소문도 확산하고 있다.지난 2월 27일 파키스탄과 인도 경계지역 상공에서 양국 전투기 각각 1대가 서로 공중전을 벌인 것은 확실하다. 이 교전에서 인도 공군의 미그-21 바이슨 1대가 추락했으며 낙하산으로 탈출한 조종사가 파키스탄 측에 ‘체포’됐다가 3월 1일 본국으로 생환했다는 내용까지는 확인된 사실이다. 그런데 전 세계에 보도된 이 뉴스에는 소문이 하나 붙어 다닌다. 이 소문은 인도 미디어만 상세히 보도할 뿐 파키스탄 미디어에선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세계 최대의 민주국가’로 표현되지만 힌두 민족주의가 만만하지 않은 인도와, 쿠데타 세력인 군부가 정국을 좌우하고 이슬람 민족주의가 역시 상당한 파키스탄 중 어느 나라 미디어를 신뢰할지는 개인의 판단에 달렸다.소문은 각각 인도 공군과 파키스탄 공군 소속인 조종사의 엇갈린 운명을 다뤘다. 인도 미디어인 ‘뉴인디언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당시 공중전에선 인도 공군의 미그-21 바이슨만 추락한 게 아니라 파키스탄 공군의 F-16 전투기도 함께 떨어졌다. 두 사람 모두 비상 탈출해 낙하산을 타고 파키스탄 지역에 내려 지역 주민들에게 붙잡혔지만 그 뒤의 운명은 엇갈렸다. 추락한 인도 공군의 미그-21 전투기 조종사 압히난단 바르타만은 낙하산으로 지상에 내린 후 파키스탄의 지역 주민에게 붙들렸지만 파키스탄군에 구출돼 구금시설로 옮겨졌다. 3월 1일 석방돼 인도로 돌아온 그의 사진이 공개됐는데 얼굴이나 신체에서 구타나 가혹행위를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 보이지는 않았다.다행히 사실상 핵 보유국인 양국 간의 이번 분쟁은 전면적인 충돌로까지는 번지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잠무카슈미르를 둘러싼 양국 국민의 감정 대립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 잠무카슈미르에서 전면전·국지전 반복 인도는 1947년 독립하면서 힌두교도가 다수인 인도와 무슬림(이슬람신자)가 다수인 파키스탄으로 분할됐다. 인도냐 파키스탄이냐의 선택은 식민지 시대 이전부터 인도의 각 지역을 지배하던 봉건 영주인 라자 562명의 의사에 따랐다. 그런데 인도의 북서쪽, 파키스탄의 북동쪽에 있는 잠무카슈미르 지역은 분쟁의 불씨가 됐다. 이 지역 주민은 무슬림이 80%였지만 지배 영주인 라자는 힌두교도로 인도 귀속을 원했기 때문이다. 어정쩡한 상태에서 그해 10월 무슬림은 파키스탄 귀속을 요구하며 소요 사태를 일으켰으며 10월 21일 파키스탄에서 이 지역을 접수하겠다는 민병대가 이동해 들어왔다. 그러자 라자의 요청으로 인도도 다음날 군대를 보내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은 1949년 유엔의 중재로 잠무카슈미르 지역을 분할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그 뒤로도 1965년, 1971년 전면전을 벌였다. 1971년은 잠무카슈미르가 아닌, 당시 ‘동파키스탄’으로 불렸던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인도가 지원하면서 벌어진 전쟁이다. 1999년에는 파키스탄이 잠무카슈미르 지역의 카길을 공격해 점령했다가 인도군의 반격으로 물러난 국지전이 벌어졌다. 2014~2015년과 2016~2018년에도 대치와 부분적인 충돌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핵 보유국 사이의 화약고인 셈이다.중국도 이 분쟁에 끼어들었다. 현재 잠무카슈미르 지역은 인도가 43%, 파키스탄이 37%, 그리고 중국이 잠무카슈미르 지역 북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20%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은 1962년 인도와의 국경 분쟁 당시 이곳을 점령해 계속 점유하고 있다. 현재 파키스탄은 중국이 점유한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잠무카슈미르 지역 전체의 영유권을, 인도는 이를 포함한 전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인도는 1993년과 1996년 협상으로 현재의 중국이 점유한 지역의 통제선은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토 주장은 계속하지만 경계선은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잠정적인 외교 선언이다. 잠무카슈미르 분쟁이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 간 분쟁을 넘어 국제적인 성격을 띠는 이유다.인도와 파키스탄은 분쟁 와중에 핵 실험을 하고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 됐다. 인도는 1964년 국경을 맞대고 국경분쟁까지 벌인 중국이 핵 보유국이 되자 비밀리에 핵 개발에 나섰다. 인도는 1974년 ‘미소 짓는 부처’라는 암호명으로 첫 핵실험을 한 다음 24년 이상을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 힌두민족주의정당이자 지금 모디 총리의 소속 정당인 BJP의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가 집권하던 1989년 핵실험에 나섰다. 서부 라자스탄주의 포크란 핵실험장에서 ‘샤크티(위력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작전’이란 암호명으로 5월 11일 세 발을 연속 터뜨린 후 13일 두 발을 추가 실험하는 연속 핵실험을 했다. 언제, 어떤 종류의 핵폭탄도 마음대로 터뜨릴 수 있는 과학적·군사적 능력을 중국과 파키스탄은 물론 전 세계에 보여준 셈이다.바리파이 총리는 핵실험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우고 선거에 승리했으며 집권한 지 불과 두 달 뒤에 이를 실행했다. 핵개발은 이미 이전에 완료된 셈이다. 바지파이 총리는 의기양양하게 핵보유국을 선언하고 정치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미국과 일본 등 서방국가가 경제 제재에 나섰지만 이를 감수했다. 제재로 경제 발전에 필요한 해외 투자가 끊겼지만 민영화 정책 등을 통해 자본을 모으면서 경제 성장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힌두민족주의자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다.파키스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인도가 핵실험을 한 같은 달인 5월 28일 서부 발루치스탄의 창가이 지역에 있는 라스코힐에서 다섯 발의 핵폭탄을 동시에 터뜨렸다. 암호명 ‘창가이1’로 불리는 핵실험이었다. 5월 30일 발루치스탄 하란 사막에서 한 발의 핵폭탄을 추가로 터뜨리는 암호명 ‘창가이2’ 핵실험도 했다. 두 차례에 걸쳐 모두 5회의 핵실험을 한 인도와 6회의 핵실험을 한 파키스탄은 핵 능력을 사실상 인정받았다.파키스탄도 인도와 마찬가지로 핵실험 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를 받았지만 인도처럼 NPT 회원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 험하지는 않았다. 냉전 기간 중 미국의 남아시아 동맹국이었던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에 맞서는 무자히딘(무슬림 전사)의 훈련·투입·보급을 하려는 미국에 적극 협조해왔다. 파키스탄에 주둔했던 미군은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때까지 머물렀다. ━ 파키스탄은 중국, 인도는 미국과 밀월관계 이런 배경에 따라 1998년 핵실험에 따른 미국의 제재는 3년 만에 풀렸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것도 큰 계기였다. 미국이 2001년 10월 7일 탈레반 지배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파키스탄은 군수와 작전의 후방기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탈레반 세력을 공격하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무인기도 파키스탄 남부 발루치스탄주에서 이륙했다. 파키스탄은 군사적으로 미국의 준동맹으로 간주돼 왔다. 이번에 인도 공군의 미그-21 바이슨을 떨어뜨린 파키스탄 공군의 F-16 전투기도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파키스탄이 중국에 접근하면서 미국과 관계가 멀어지고 대신 인도가 미국과 가까워지고 있다. 얽히고설킨 잠무카슈미르의 갈등을 푸는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19.03.09 17:42

9분 소요
오스만 제국의 부활 꿈꾸는 현대판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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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의 존립 위협하는 쿠르드족 민족주의를 짓밟고 장기 집권 도모한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독재자는 위엄을 얻으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말도 안 되는 거창한 계획을 공표하고 실행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선거도 모자라 자신의 재선을 위해 소수민족 쿠르드족을 악마 취급하는 유세를 벌였다. 독재자가 늘 그렇듯이 공동의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난세가 닥치면 사람들은 자신감 있는 지도자를 숭배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부활을 이끄는 인물로 생각한다. 그는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쿠르드족을 학살하도록 용인했고 자신의 군대도 풀어 쿠르드족을 공격했다. 그는 반드시 저지돼야 하고 저지될 수 있다.과거 ‘산악 터키인’으로 불렸던 쿠르드족은 터키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그들 중 다수는 독립을 원한다. 그러나 1999년 분리독립을 추구하던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마르크스주의 지도자 압둘라 오칼란은 터키 당국에 붙잡혀 투옥된 후 평화를 촉구했다. 대다수는 그의 생각을 따랐다. 그러나 아직도 다수가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쿠르드족 거주지를 통합해 과거 ‘쿠르디스탄’의 영광을 되찾는 꿈을 갖고 있다.2013년 당시 터키 총리였던 에르도안은 쿠르드족의 정체성과 언어를 인정하고 자치권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 터키 정부군과 쿠르드족 민병대 사이의 휴전이 합의됐지만 2015년 적대행위가 재개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PKK 테러리즘에 대응한다고 주장했고, PKK는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 지역에 댐과 군사기지를 건설해 휴전 합의를 깼다고 맞섰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았든 전쟁은 다시 불붙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무장 헬기, 대포, 기갑부대를 동원해 공격했다. 그 공격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33만5000명이 난민이 됐다. 그중 대다수가 쿠르드족이었다. 유엔 보고서는 파괴된 쿠르드족 마을이 황량한 달 표면의 모습과 비슷해졌다고 묘사했다.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족 민족주의를 자신의 존립에 가해지는 위협으로 인식한다. 터키인으로선 처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아르메니아 집단학살’(20세기 초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 거주하였던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을 집단으로 살해한 사건)을 돌이키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쿠르드족 집단살해를 개탄했다. 그 일로 파묵은 국가모독혐의로 기소됐고, 그의 책을 불태우는 행위가 공개적으로 펼쳐졌다. 국제사회의 항의와 압력으로 파묵은 풀려났다. 그러나 지금도 그는 한때 민주적이고 온건한 무슬림 국가였던 터키가 “공포정치 체제로 치닫고 있다”며 에르도안 정권에 날선 비판을 이어간다.2016년 에르도안 정권을 무너뜨리려던 군사 쿠데타 기도가 실패로 끝나면서 선포된 국가비상사태는 2년만에 겨우 해제됐지만 철권 통치는 여전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 서부 이즈미르에서 20년 이상 작은 교회를 이끌어오던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2016년 10월 테러조직·PKK 지원과 간첩 혐의로 구속했다(건강 문제를 고려해 가택연금 상태지만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 최장 35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에르도안 대통령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그곳으로 가서 싸우려는 이슬람 지하드 외국 투사들을 지원했다. 그들이 터키를 경유지로 삼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IS의 세력 구축을 돕고 수니파 원리주의자가 아닌 모든 사람에 대한 야만적 테러를 조장했다. 터키군이 못 본 체하는 동안 IS는 시리아 코바니에서 쿠르드족을 몰아냈다.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는 미국의 공중 지원을 받아 코바니를 탈환했고, 그 여세를 몰아 IS를 완전 격파하는 전투를 이끌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PKK와 YPG를 하나의 조직으로 본다. 그는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이 난민 수용소가 있던 터키 국경 부근에 PKK가 거점을 유지하도록 허용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라크에서 쿠르드족을 보호하지 않기로 한 미국의 이전 결정에 한층 더 대담해져 시리아 북서부의 쿠르드족 도시 아프린을 공격해 대규모 난민 위기를 초래했다.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제 반(反)아사드 시리아 난민을 터키에서 아프린으로 이주시켜 그곳의 인구 구성을 바꾸고 있다. 또 그는 시리아 도시 만비지의 쿠르드족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며 그곳에서 미군과도 맞설 수 있다고 떠벌렸다. 미국 정부는 그에 맞서지 않고 물러섰다. 중대한 실책이었다. 그에 따라 YPG도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터키 언론은 미국에 승리했다고 자축했다.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의 쿠르드족을 무력화하면서 시아파 국가의 패권을 노리는 이란이 이란-터키 국경에 위치한 칸딜 산악지대에서 동부 쿠르드족 민족주의자들을 학살하는 데 합류하고 싶어 한다. 그는 그처럼 시아파 이란과 연합하려고 하면서도 자신을 수니파의 선봉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원리주의 무장단체 무슬림형제단과 그와 연계된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하마스를 지원함으로써 하마스와 싸우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자극한다. 또 예루살렘 성전산에서 무슬림 시위를 조장해 그곳 이슬람 사원의 수호자인 요르단의 반발을 산다. 또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제1도시라고 선언함으로써 이슬람의 최고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관리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불쾌하게 한다.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F35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나토의 미사일방어시스템 대신 러시아의 S-400 미사일 방어체계 도입을 추진한다. 지난 7월 말 신흥경제국 모임인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에 비회원국 수반으로 참석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브릭스 가입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것은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미국 프로농구 NBA 뉴욕 닉스에서 뛰고 있는 터키 출신의 에네스 칸터 같은 해외 터키인은 에르도안의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이 모두 힘을 합해 터키 국민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대항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자유세계는 독재 정권의 요구를 들어줘선 안 된다.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미국은 중요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은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을 인정하는 29개국에 합류해야 한다. 터키 정부의 거짓 부인을 묵인하면 쿠르드족을 향한 그들의 공격을 권장하는 결과를 낳는다.터키의 심각한 경제 문제가 에르도안 정권을 억제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쿠르드족에 대한 정치적 숙청과 공격이 심해지면 서방은 터키에 금융 지원을 중단하고 에르도안 대통령과 가족을 포함해 핵심 인사들을 대상으로 경제제재를 가해야 한다.자유세계가 에르도안 대통령 견제 조치를 신속히 취할수록 세계는 더 안전해질 것이다. 터키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조나선 워치텔, 앨버트 워치텔※

2018.08.2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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