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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철학이 담겼다”...세계적 명사가 사랑한 와인 [와인 인문학]](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5/02/12/ecn20250212000024.353x220.0.jpg)
예술·정치·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은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채로운 와인 취향을 갖고 있다. 그들이 사랑했던 와인은 단순한 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들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창이 되기도 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매력적인 와인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미국 3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마스 제퍼슨은 열렬한 와인 애호가였다. 그는 프랑스 대사로 활동하며 유럽 와인, 특히 프랑스 와인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당시 유럽 와인은 미국에서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제퍼슨은 와인을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에 버금가는 토양과 환경, 그리고 기후를 가졌다고 판단해 몬티첼로에 직접 포도밭을 조성하기도 했다. 비록 그의 생전에는 미국산 와인 생산이 성공되지 못했지만, 그의 와인에 대한 열정은 후대 미국 와인 산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제퍼슨은 보르도 와인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그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을 지지하기 위해 프랑스 해군이 출정했던 보르도의 역사적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보르도는 그에게 있어 단순한 와인 산지를 넘어 자유와 독립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오늘날 보르도 가론강의 샤르트론 부두변에는 그의 이름을 딴 ‘토마스 제퍼슨 잔교’가 세워져 있다. 보르도 와인 박물관에는 ‘토마스 제퍼슨 강당’이 마련돼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제퍼슨이 특히 사랑했던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이다. 그는 1787년 보르도를 직접 방문해 샤토 오브리옹·샤토 디켐·샤토 마고 등의 와인을 구매했고, 이를 즐겨 마시거나 조지 워싱턴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는 1855년 보르도 와인 공식 등급이 발표되기 70년 전에 이미 샤토 라피트·마고·라투르·오브리옹을 최고 등급으로 평가해 왔다.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와인을 즐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샹베르탱 한 잔이면 전투에서의 피로를 잊게 해준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샹베르탱 와인을 애호했다. 나폴레옹은 쥐브리 샹베르탱의 한 도멘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는 그의 샹베르탱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 와인은 쥐브리 샹베르탱 마을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레드 와인으로, 나폴레옹의 강인함과 카리스마를 닮은 웅장하고 파워풀한 맛을 자랑한다.나폴레옹이 샹베르탱과 같은 강렬한 와인을 선호했던 것은 전쟁터에서의 고된 삶과 승리에 대한 갈망을 반영하는 듯하다. 샹베르탱은 피노 누아로 만드는 부르고뉴 그랑 크뤼 와인 중 하나로, 섬세하면서도 파워풀한 맛과 향의 조화가 일품이다. 검붉은 과일과 감초·스파이스·흙·가죽 등의 복합적인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
흥미롭게도 나폴레옹은 실각한 후 유배지였던 세인트헬레나섬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콩스탕스 와인으로 위안을 삼았다고 전해진다. 샹베르탱과는 정반대의 달콤한 맛을 지닌 콩스탕스 와인은, 어쩌면 황제의 고독과 쓸쓸함을 달래줬을지도 모른다. 콩스탕스 와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콘스탄시아 지역에서 머스캣 드 프롱티냥 품종으로 만드는 달콤한 화이트 와인이다. 꿀·살구·오렌지 껍질·꽃 등의 아로마가 특징이다. 17세기 유럽 왕실과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세계 3대 스위트 와인 중 하나로 꼽힌다.‘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의 명작을 남긴 프랑스의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는 미식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몽라셰를 마실 때는 항상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여야 한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몽라셰 와인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했다. 몽라셰는 부르고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화이트 와인이다. 뒤마의 작품처럼 섬세하고 우아한 풍미를 자랑한다. 뒤마는 숫자 ‘3’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의 대표작 ‘삼총사’에서도 이런 애정을 엿볼 수 있다.뒤마는 와인을 시음할 때도 숫자 ‘3’을 강조했다. 눈으로 보고, 코로 향을 맡고, 입으로 맛을 보는 세 가지 감각을 통해 와인을 온전히 경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는 뒤마가 와인을 단순한 음료가 아닌 예술 작품처럼 감상했음을 보여준다. 몽라셰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그랑 크뤼 포도밭 몽라셰에서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드는 가장 비싼 화이트 와인 중 하나다. 잘 익은 과일 향·흰 꽃 향·꿀 향·미네랄 향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다. 특히 깊고 견고한 맛과 긴 여운을 남긴다.‘자본론’의 저자이자 공산주의 사상가 칼 마르크스는 독일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와인을 접했다. 그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코스 데스투르넬 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코스 데스투르넬은 묵직하고 탄탄한 구조감을 지닌 레드 와인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처럼 깊이 있고 복합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마르크스가 이 와인을 즐겨 마셨다는 사실은 그의 냉철한 이성 뒤에 숨겨진 섬세한 감수성과 예술적 취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은 보르도 생테스테프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카베르네 소비뇽·메를로·카베르네 프랑 등을 블렌딩해서 만든다. 1855년 보르도 와인 공식 등급에서 2등급으로 선정된 와인이다. 깊이 있고 우아하며 풍부한 과일 향과 탄탄한 구조감을 갖는다. 장기 숙성 잠재력도 뛰어나다.이처럼 와인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매력적인 존재다. 와인 한 잔에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사랑했던 와인을 통해 그들의 삶과 철학을 엿보고, 와인의 매력에 한층 더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2025.02.16 09:01
4분 소요![“세상에 이런 일이” 우연이 빚어낸 명품 술의 탄생[와인 인문학]](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4/12/30/ecn20241230000036.353x220.0.jpg)
때로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행운이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진다. 술의 세계에서도 우연한 사건이나 실수가 새로운 맛과 풍미를 선사하는 경우가 있다. 마치 연금술사가 마법의 묘약을 제조하듯, 뜻밖의 변수들이 술의 역사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더한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다양한 술의 종류를 탄생시켰다.세금 피하려다 탄생한 황금빛 보물스카치 위스키는 대자연이 선물한 술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험준한 산악 지형과 혹독한 기후는 밀, 보리 같은 곡물 재배에 적합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환경은 스카치 위스키 탄생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 15세기부터 증류 기술이 스코틀랜드에 전해지면서 척박한 땅에서 자란 곡물들은 ‘생명의 물’이라 불리는 위스키로 변모하기 시작했다.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합병으로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이 탄생하자 영국 정부는 과도한 위스키 세금 정책을 세워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밀주꾼으로 내몰았다. 그들은 세금 징수원의 눈을 피해 산속 깊은 곳이나 동굴에 숨어 몰래 위스키를 증류했다. 이 과정에서 밀주꾼들은 산속의 습지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탄(피트)을 태워 싹 튼 보리를 말리는 열원으로 사용했다. 이로 인해 스카치 위스키에 매캐한 피트향이 베게 됐다.또한 산속에서 마땅한 위스키 저장 용기를 찾을 수 없었기에 당시 스페인에서 대량으로 수입하던 셰리(Sherry) 오크 빈 통을 도시에서 수거해 산속으로 옮겨와 위스키를 담아 보관했다. 원래는 무색의 투명한 위스키가 옅은 호박색이라는 환상적인 색상을 갖게 된 이유다.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산속에서 밀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스카치 위스키 특유의 스모키하고 깊은 풍미와 매혹적인 색상까지 얻게 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오늘날 스카치 위스키는 싱글 몰트, 블렌디드 등 다양한 종류로 출시된다. 각 지역의 독특한 토양과 기후, 증류 방식에 따라 개성 넘치는 맛과 향을 선사한다.코냑은 두 번의 섬세함으로 탄생한 명품 브랜디라고 한다.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코냑 지방은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덕분에 예로부터 포도 재배가 활발했다. 16세기 와인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저장 공간과 운송에 문제가 발생하자 와인을 증류해 부피를 줄이는 방법이 고안됐다. 하지만 한 번 증류한 브랜디는 와인의 섬세한 향을 잃어버리고 거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 코냑 지방의 상인들은 ‘두 번 증류’라는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했다. 두 번 증류를 통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섬세한 향을 농축한 결과 오늘날 우리가 아는 코냑이 탄생했다.코냑은 오크 통에서 숙성되는 동안 바닐라·캐러멜·말린 과일 등의 풍부한 향을 머금게 된다. 등급에 따라 맛과 향의 복합미가 천차만별이다. 섬세한 꽃향과 과일향이 조화를 이루는 VSOP, 긴 숙성 기간을 거쳐 깊고 풍부한 풍미를 자랑하는 XO 등 코냑은 그 품격과 가치를 인정받아 ‘브랜디의 왕’으로 불린다.
실수에서 태어난 기적과 같은 술아마로네는 달콤한 와인이 실수로 완전 발효되면서 탄생한 기적과 같은 술이다.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 지방의 발폴리첼라 지역은 아름다운 포도밭과 풍요로운 자연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아마로네는 달콤한 레치오토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히 탄생했다.레치오토는 포도를 건조해 당도를 높인 후 발효시켜 만드는 달콤한 와인이다. 1930년대 와인 저장고에 장기간 방치된 레치오토 와인이 발견됐다. 놀랍게도 이 와인은 당분이 모두 발효돼 드라이하면서도 농축된 풍미를 지녔다. 이 우연한 발견은 ‘아마로네’라는 새로운 와인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아마로네는 달콤하지 않고 ‘쓴맛’을 가진 와인을 의미한다.아마로네는 짙은 루비색을 띤다. 말린 자두·무화과·초콜릿 등의 풍부한 향과 묵직한 타닌이 조화를 이루는 와인이다. 숙성될수록 복합적인 풍미가 더해져 긴 시간 즐길 수 있는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화이트 진판델은 캘리포니아의 햇살 아래 탄생한 분홍빛 로맨스라고 말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풍요로운 햇살과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유명한 와인 생산지다. 1970년대 셔터 홈(Sutter Home) 와이너리는 진판델 포도로 레드 와인을 만들다 발효 과정이 멈추며 낭패를 봤다. 거대한 발효조에 담긴 와인의 양은 워낙 많아 버릴 수도 없었다.이 와인은 아름다운 핑크빛을 지녔다. 달콤한 딸기와 라즈베리 향, 그리고 가벼운 풍미를 보였다. ‘화이트 진판델’이라는 다소 엉뚱한 이름으로 판매된 이 와인은 당시 미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렇게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연한 실수가 빚어낸 세런디피티라 할 수 있다.슈페트레제는 뜻하지 않은 늦수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독일어로 ‘늦은 수확’을 뜻하는 슈페트레제는 과숙한 포도로 만드는 스위트 와인이다. 포도가 나무에 오래 매달려 있으면 당도가 높아진다. 일부에는 ‘귀부 곰팡이’라고 불리는 보트리티스 시네리아가 피어 특유의 풍미를 더한다.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는 독일 와인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다. 독일 와인을 대표하는 달콤하면서도 향기가 좋은 슈페트레제(Spätlese) 등급의 리슬링 탄생지로 유명하다. 당시 풀다(Fulda) 교구에는 여러 개의 포도원이 있었고, 포도 수확을 하기 위해서는 익은 포도 샘플을 따서 교구장에게 보여주고 수확 허가서를 받아와야 했다.매년 가을이 되면 교구에 속한 여러 수도원에서 교구장이 거주하는 중앙 수도원까지 전령들을 보내 포도 샘플을 전달했다. 1775년 가을 풀다 교구의 교구장이 사냥을 떠난 바람에 허가증 교부가 늦어져 수확이 2주 정도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침 그 시기에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의 포도밭에 귀부 곰팡이가 급증해 포도가 농익고 높은 당도를 지니게 됐다. 그 결과 예년보다는 당도가 높고 복합적인 풍미를 지닌 와인이 만들어졌다.이처럼 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다양한 우연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해 왔다. 술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음미하며 술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김욱성 와인칼럼니스트
2025.01.04 10:00
4분 소요![보르도의 와이너리와 교황 '클레멘스 5세'의 전설 [와인과 인문학]](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4/10/29/ecn20241029000025.353x220.0.jpg)
샤토 파프 클레망(Chateau Pape Clement)은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페삭 레오냥에 위치하고 있다. 700년 넘는 오랜 역사로 보르도에서 가장 오래된 이 와이너리는 특이하게도 14세기의 교황 클레멘스 5세의 이름을 가졌다.높은 품질을 인정받아 1953년 그라브(Grave) 지역의 그랑 크뤼 등급으로 지정을 받은 이 샤토의 기원은 14세기 초 보르도의 대주교였던 베르트랑(Bertrand de Got) 소유의 포도원에서 시작됐다. 그가 대주교로 임명되자 리옹에서 대주교로 활동하던 그의 친형이 선물로 하사한 것이다. 이후 베르트랑은 1305년 프랑스인 최초로 교황이 돼 클레멘스 5세(Pope Clement V)로 등극하게 된다.700년 넘는 역사 속 숨겨진 비극당시 미남왕으로 불리던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는 로마 교황청과 힘겨루기를 하며 왕권을 확장하고 있던 차에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베르트랑을 교황으로 내세웠다. 보르도를 떠나면서 클레멘스 5세는 포도원을 후임자에게 물려줬다. 하지만 그에게 로마 교황은 이름이었을 뿐 한 번도 로마 바티칸으로 가지 못했다. 그는 임시 교황청인 아비뇽에 머무른 채 불운한 삶을 살았다. 어수선한 정국에 위협을 느낀 클레멘스 5세는 로마 교황청으로 부임하기를 꺼려했다. 대신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에 임시 교황청을 지어 머물렀다. 약 70년간 클레멘스 5세와 그의 후임 교황 6명은 로마가 아닌 아비뇽에 머물렀다. 이 시기를 역사에서는 ‘아비뇽의 유수’라고 부른다.클레멘스 5세가 교황이 되기 이전인 14세기 초까지는 로마 교황의 종교적 권위와 프랑스 군왕의 세속적 권력이 극한으로 대립하던 시기다.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로마 교황청의 정치간섭에 저항하고 자신을 황제로 선언하면서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비위를 거스르게 된다. 프랑스의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필리프 4세는 플랑드르 지방과 아키텐의 소유권을 놓고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 전쟁을 벌였다. 그는 전쟁자금 확보를 위해 성직자들에게도 세금을 징수하는 강수를 뒀다. 성직자에 대한 과세를 금지한 로마 교황의 지엄한 명령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필리프 4세는 삼부회 소집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내실을 다진 후 로마 교황과 정면 대결에 나섰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교황 납치’라는 대범한 작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1303년 필리프 4세는 심복 부하 노가레를 파견해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이탈리아 아니니의 별장에 감금했다. 그는 반항하는 교황의 뺨까지 때리며 안하무인의 무례를 범한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에 성공한 교황은 한 달 만에 화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 베네딕토 11세가 후임으로 선출됐다. 그는 전임 교황의 납치를 주도했던 노가레를 파문하고 복수하게 된다. 하지만 베네딕토 교황은 갑작스러운 병으로 불과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독살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베네딕토 11세 서거 후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열렸으나 추기경단이 양분돼 1년 간 공전했다. 프랑스의 실세 필리프 4세의 추종파와 이탈리아 보니파시오 8세 추종파로 분리돼 대립하다 결국 프랑스 편을 든 추기경들의 표를 얻은 보르도 대주교 베르트랑이 1305년 6월 클레멘스 5세로 교황 자리에 올랐다.필리프 4세는 자신 덕분에 교황이 된 클레멘스 5세에게 갑(甲)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교황을 강압해 십자군 전쟁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템플기사단을 모두 체포하도록 했다. 잉글랜드와의 긴 전쟁으로 템플기사단에 많은 빚을 지고 있던 필리프 4세가 빚쟁이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필리프 4세는 템플기사단 지도부에 남색과 신성모독, 동성애 등의 죄를 뒤집어 씌워 극형에 처했다. 이 엄청난 사건은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에 발생했다. ‘13일의 금요일’이 서양에서 불길한 날로 금기시 되는 이유다.템플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는 1314년 3월 18일 시테 섬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는 불에 타 죽으면서 필리프 4세와 클레멘스 5세에게 “1년 내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죽음의 저주를 퍼부었다. 그의 저주가 통한 것일까. 클레멘스 5세는 다음 달 갑자기 사망했다. 필리프 4세는 그해 10월 병을 앓다 죽었다.
슬픔의 역사 딛고 탄생한 최고급 와인이런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700년을 견뎌 온 와이너리인 샤토 파프 클레망의 양조장과 와인 저장고 등 여러 곳에는 교황의 문장과 성물이 가득하다. 보르도에 남겨진 클레멘스 5세의 와이너리는 보르도의 대주교들에 의해 관리돼 오다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국가에 몰수됐다. 이후 경매에 넘겨져 일반인에게 매각됐다.이후에도 주인이 몇 차례 바뀌고 최종적으로 1980년경 열정적인 와인 사업가 베르나르 마그레(Bernard Magrez)가 인수한 이래 지금에 이른다. 그는 많은 투자와 설비 현대화를 통해 와인의 품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특히 2009년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Jr.)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으며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샤토 파프 클레망의 포도원은 총 60헥타르(ha)에 달한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가 6대4의 비율로 심어져 있다. 청포도 품종인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과 세미용(Sémignon) 그리고 뮈스카데(Muscadelle)도 일부 심어져 있다.샤토 파프 클레망은 그랑 뱅(Grand vin)급으로 매년 2만 케이스의 레드 와인과 2000케이스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세컨드 와인(Second Wine)으로는 르 클레망탱 뒤 파프 클레망(Le Clémentin du Pape Clément)과 르 프렐라 뒤 파프 클레망(Le Prélat du Pape Clément)을 생산한다. 샤토 파프 클레망의 와인은 병입 전 평균 18~20개월 간 새 프렌치 오크 통에서 숙성한 후 시장에 나온다.필자가 이 샤토를 방문했을 때 마셨던 2013년산 파프 클레망 화이트 와인은 옅은 금색을 보였다. 잘 익은 감귤 향, 어렴풋한 열대 과일향과 은은한 오크 향이 기분 좋게 올라왔다. 침샘을 자극하는 신선한 산미는 와인의 골격을 잡아줬다. 입 안에서 ‘복숭아’ ‘사과’ ‘파인애플’ 같은 미네랄의 풍미와 깊이가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질감이 인상적이었다. 세련된 절제미가 돋보였던 최고 수준의 페삭 레오냥 지역의 화이트 와인으로 손꼽을 만했다.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2024.11.02 10:00
4분 소요![한적한 스페인 시골 마을 '와인 핫플'이 되다[와인과 인문학]](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4/10/02/ecn20241002000064.353x220.0.jpg)
빌바오(Bilbao)는 스페인의 북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1940년대 스페인 내전 직후 산업 발전이 시작되면서 도시 재건이 이뤄졌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철강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쇠퇴하면서 실업률이 증가하고 청년들은 하나 둘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끝 모를 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빌바오의 뜻있는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도시 활성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결론은 바로 ‘문화산업의 힘’에 도시의 운명을 걸어보자는 것이었다. 주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이 1997년 10월에 개관했고, 매년 수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오면서 빌바오는 관광과 문화, 미식의 도시로 재탄생하게 됐다.구겐하임 미술관은 7년간 1억 달러의 공사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방문객이 몰리면서 이 비용은 3년 만에 모두 회수됐다. 미학적인 ‘문화 코드’로 죽어가는 도시를 온전히 살려내게 된 것이다.
빌바오 구겐하임은 단순 미술관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도시 경제 전체를 변모시켰다. 구겐하임이 오픈한지 3년 만에 약 5억 달러의 경제 유발 효과와 1억 달러의 새로운 세금수입을 창출했다. 매년 130만명의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문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한 도시가 새로운 건축물로 인해 경제적 쇠퇴기를 극복하고 재정적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다는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 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게 됐다. 150년 와이너리의 환골탈태이 미술관의 건축가는 바로 프랑크 게리(Frank Gehry)였다. 그는 캐나다 출신의 미국 건축가로 해체주의 건축의 대가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비선형적인 디자인 기법과 구성 요소의 해체를 통해 구조물의 역동성을 돋보이게 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의 설계로 완성된 빌바오 구겐하임은 3만3000장의 티타늄 패널로 감싼 구조물이다. 중앙에 하중을 받치는 기둥이 없는 곡선적인 철골구조를 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번쩍이는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물고기를 보는 느낌을 준다. 중앙의 아트리움은 50미터 높이의 공간을 이룬다. 이를 중심으로 19개의 전시실이 3개층으로 퍼져 나가는 동심원 구조를 띠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설치작품을 비롯해 팝 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추상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어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런 빌바오 효과를 예사롭지 않게 지켜보던 와이너리(와인 양조장)가 있었다. 이 양조장의 이름은 빌바오 남쪽으로 120Km 떨어진 스페인 유명 와인 생산지 리오하에 있는 마르케스 데 리스칼(Marqués de Riscal)이다. 지난 2008년 설립 150주년을 맞았던 이 와이너리는 프랑크 게리를 불러들여 초현대식 건물을 짓고 완벽하게 거듭날 계획을 세웠다. 150년이라는 전통의 무게에 눌려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던 이 와이너리는 올드한 이미지 쇄신과 함께 생산설비의 현대화를 통해 환골탈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프랑크 게리에게 건축 디자인을 맡겼다. 결국 이 와이너리는 총 건축 비용 6300만유로(940억원)를 들여 부속 호텔을 포함한 최고급 시설로 거듭났다. 와이너리의 오랜 전통과 초현실주의 건축미학을 접목시킨 최대의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마르케스 데 리스칼이 자리한 마을의 이름은 시각장애인을 뜻하는 ‘엘시에고’(Elciego)다. 아주 오래 전 마을이 세워졌을 때 어떤 시각장애인이 이곳에 주막을 차리고 술과 음식을 팔았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조용했던 이 시골 마을에 시각장애인도 눈이 번쩍 뜰 만한 일이 벌어졌으니 바로 마르케스 데 리스칼의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이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시골 마을에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아방가르드한 건물 외양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현대적인 와이너리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프랑크 게리는 플라멩코를 추는 스페인 무희의 화려한 치맛자락을 모티브로 삼아 분홍, 금, 은색 티타늄을 휘감은 지붕을 디자인했는데, 마치 와인 잔 속에서 일어나는 파도처럼 보인다. 차갑고 딱딱한 물성의 티타늄 강판을 자연스럽고 리드미컬하면서도 따뜻함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한 구조물은 경외심마저 들게 한다. 오랜 전통의 무게로 녹슬어가던 마르케스 데 리스칼이 프랑크 게리의 설계 덕분에 완벽하게 새로 태어나 이제 스페인에서도 체류형 와인 관광지로 각광받게 됐다. 와인의 품격 갖춘 호텔 또한 마르케스 데 리스칼 내에는 ‘시티 오브 와인’(City of Wine)이라는 호텔도 함께 지어졌다. 이 호텔은 스위트룸을 포함, 43개의 방을 갖췄으며 메리어트 호텔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꼬달리’(Caudalie) 스파와 수영장을 갖추고 있으며, 객실 테라스를 통해 중세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고 언덕 위에 우뚝 솟은 고풍스러운 성 안드레 성당도 감상할 수 있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도 지난 2007년 자녀들을 데리고 이 호텔에 머물러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리스칼의 후작’이라는 뜻의 마르케스 데 리스칼은 스페인의 왕 펠리페 5세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스페인 장군 ‘발타자르 아메세가’(Baltasar Amezega)에서 유래했다. 그의 후손 기예르모 아메세가(Gillermo Amezega)가 작위를 물려받아 1858년 마르케스 데 리스칼 포도원을 설립하게 됐다. 이는 리오하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로 포도원 면적은 540헥타르(ha)인데, 루에다 지역에도 350ha의 밭을 보유하고 있다. Eh 연간 700만병의 와인을 생산하며 60% 이상을 10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최고급 와인은 1986년 첫 선을 보인 바론 드 치렐 레세르바(Barón de Chirel Reserva) 와인으로, 수령이 100년 이상인 포도나무에서 작황이 좋은 해에만 생산된다. 좀더 현대적인 스타일의 핀카 토레아(Finca Torrea) 와인은 2009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향긋한 과일 풍미가 돋보이며, 수령이 오래된 뗌프라니요와 그라시아노 품종을 섞어서 만든다. 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2024.10.06 10:00
4분 소요![120년 된 난파선서 꺼낸 와인...맛이 어땠을까[스페셜리스트 뷰]](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4/09/03/ecn20240903000019.353x220.0.jpg)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대하고 가치 있는 선물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남긴 명언이다. 기원 전 400년경에 활동했던 그가 이런 말을 남긴 것은 와인이 그만큼 삶에 큰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술은 전분을 당으로 만드는 당화과정을 거쳐야 하는 복잡하고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와인은 당분이 높은 포도를 그냥 으깨기만 해도 포도 껍질에 붙어있는 효모가 당분을 분해해 향기로운 술이 된다. 이에 와인이 신이 인간에게 준 '위대한 선물'로 칭송된 듯하다.이처럼 와인은 별다른 인위적인 개입 없이도 만들 수 있기에 가장 '순수한 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요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내추럴 와인'은 자연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며 화학 제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는 포도재배와 양조방식을 적용하며 환경에 관심이 많은 와인 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인문학의 보고' 와인, 넘쳐나는 이야기들예수가 일으킨 많은 기적 중에서도 첫 번째 기적은 바로 갈릴리 가나(신약성경 요한 복음서에 등장하는 갈릴리의 마을 가운데 하나) 결혼식장에서 6개의 항아리에 가득 찬 물을 와인으로 만든 기적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인 결혼식에서 와인은 가족과 친지, 지인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축배를 들며 결속을 다지는 귀중한 음료였다. 이에 와인은 첫 번째 기적의 상징으로 그 깊은 뜻이 성경에 기록돼 있다. 와인은 세대 간의 격차를 허무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장성한 자녀들과 서먹한 식사 시간, MZ세대 직원들과의 딱딱한 회식 자리에 와인을 놓고 대화하는 순간 서로의 마음은 열리고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게 된다.테이블에 놓인 와인에 대한 이야기나 풍미, 함께하는 음식과의 조화 등에 대해 조금씩 의견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와인이라는 거대한 공통 주제가 서로의 관계를 부드럽고 끈끈하게 엮어주게 될 것이다. 수십년의 세대차이를 극복하는데 가장 탁월한 선택은 바로 와인일 것이며, 와인을 이야기처럼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누구든 자리를 함께하고 싶어 하는 파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와인은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해 수천년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와인 속에는 신화와 전설·역사, 종교, 전쟁, 일화와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와인을 '인문학의 보고'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와인 라벨 뒤에 숨겨진 이야기와 생산지, 와인 이름에 얽힌 비화, 우연한 행운으로 탄생한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 등 와인을 마시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재미난 주제들이 무궁무진한 것도 와인의 매력이다. 프랑스 속담에도 “혼자 마시는 와인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인생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귀한 와인일수록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눠 마신다면 잊지 못할 와인의 향기와 함께 행복했던 그날의 추억도 서로의 가슴 속에 오래 간직될 것이다. 와인과 헤라클레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와인의 고향은 무려 8000년이란 오랜 양조역사를 가진 나라 조지아(Georgia)로 알려져 있다.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6000년경 조지아 중부 크라미스 디디 고라(Khramis Didi Gora)지역에서 와인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양조장 흔적이 발굴됐다. 2015년에는 조지아 동부의 신석기 정착지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용 대형 항아리인 크베브리(Qvevri)의 잔해가 발견됐다. 연대는 기원전 6000년경으로 밝혀져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와인 유물로 재확인됐고 현재 원래의 형태를 복원해 조지아 국립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항아리 내부의 검게 착색된 부분은 와인이 침전된 잔해물로 확인된 바 있다.
러시아와 경계를 이루며 조지아의 북쪽을 우산처럼 덮고 있는 거대한 코카서스(Caucasus) 산맥은 와인을 만드는 양조용 포도 품종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의 원산지이자 고향이다. 세계 대부분의 양조용 포도는 조지아의 코카서스 산에서 그 뿌리가 시작됐다. 고대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페니키아인들은 코카서스의 포도를 그리스와 이집트로 전파했고 여기서 다시 이태리와 프랑스 등 구대륙 국가로 퍼지게 됐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카프카즈’라 불렀던 코카서스는 매우 신성한 산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해주자 제우스는 분노해 그를 코카서스의 험준한 카즈베기 바위산에 쇠사슬로 묶어 두는 형벌을 내렸다. 이 형벌은 무려 3000년간이나 계속됐다. 또 날마다 제우스신의 독수리가 찾아와 포박된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는 끔찍한 고통도 계속됐다. 이윽고 헤라클레스가 12가지 과업 중 11번째인 헤스페리데스 정원의 황금사과를 훔쳐 오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메테우스를 찾아가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바위산에 당도해 화살로 독수리를 쏘아 죽이고 쇠사슬에 묶인 포박을 풀어 프로메테우스를 자유롭게 했다. 그 대가로 프로메테우스로부터 황금사과를 훔쳐오는 방법을 알게 된 그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를 찾아가 대신 하늘을 받치고 있을 테니 황금사과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오직 아틀라스만이 황금사과를 따올 수 있어서다. 그러나 황금사과를 훔쳐 온 아틀라스는 마음이 변해 헤라클레스에게 하늘을 떠받치는 짐을 떠 넘기려 했다. 이 잔꾀에 대한 대응 방법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이미 들은 바 있었던 그는 ‘어떻게 해야 잘 들 수 있나 시범을 보여 달라’고 했고, 이 말에 속아 우쭐해진 아틀라스가 하늘을 드는 시범을 보이는 순간 짐을 넘긴 헤라클레스는 유유히 빠져나오게 됐다. 아무튼 헤라클레스 덕분에 풀려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형벌을 상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징표로 그를 묶었던 바위와 쇠사슬의 일부를 잘라 반지를 만들어 꼈다. 이것이 인류가 반지를 끼게 된 기원이라고 한다. 인간을 위해 3000년간의 혹독한 형벌을 감내했던 그의 위대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반지를 끼게 된 것이다. 뉴욕의 관광명소 록펠러 센터 아이스링크 전면에 세워진 큰 황금 동상은 바로 이 신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인류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와 코카서스산, 그리고 반지 모습의 둥근 테두리로 구성된 이 동상은 뉴욕에서 한 번쯤은 본 기억이 있을 것텐데, 동상에는 이런 깊은 의미가 숨어있다.
3000년간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이 파 먹히는 고통을 당했지만 그는 신이라 죽지 않았고 다음 날이면 간은 다시 싱싱하게 재생됐다. 우리가 날마다 와인을 마시고 간을 혹사하는 것은 아마도 프로메테우스의 지고한 인간사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무의식적인 리추얼(Ritual)이 아닐까? 우리가 와인을 마시는 가장 고상한 변명이라 할 수 있겠다. 120주년 만찬장에 등장한 와인 이야기보르도 생 쥘리앵(Saint-Julien) 지역의 그랑크뤼 2등급 와인인 샤토 그뤼오 라로즈(Chateau Gruaud-Larose)는 매우 특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 2004년 한국-영국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엘리자베스 여왕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를 국빈으로 초청한 만찬에서 샤토 그뤼오 라로즈 1985빈을 내놨다. 당시 왕실의 버킹엄 지하 와인 셀러에 있는 2만5000병의 와인 중 하필이면 왜 이 와인을 만찬주로 내놨을까 궁금증이 커졌다. 여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지금부터 약 30여년전인 1992년 싱가포르 근처 가스파르 해협의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난파선이 120년 만에 건져 올려졌다. 이 배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 사이공으로 가던 프랑스의 마리 테레즈(Marie-Therese)호가 1872년에 좌초된 것이었다. 배 안에서는 보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와인만 수백병 발견됐다. 이때 발견된 와인이 바로 샤토 그뤼오 라로즈였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발견된 와인들 모두 와인의 풍미가 남아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와인들은 새로운 코르크로 갈아 끼워졌고, 라벨도 다시 붙여져서 경매를 통해 판매됐다. 일부는 고급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 올라 병당 1만 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이 와인은 어떻게 120년을 견딜 수 있었을까. 수심 100미터의 바닷속 온도는 영상 4도다. 이는 물의 부피가 최소화되는 온도다. 또 햇볕과 공기가 차단되기 때문에 이론상 가장 오래 와인을 보관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깊은 바다속에서 120년을 견디고도 향기를 잃지 않았던 와인이었기에, 한국과 영국의 수교 12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 가장 적합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더 놀라운 것은 여왕이 만찬주로 내놓은 샤토 그뤼오 라로즈 와인이 1985년산이었다는 점이다. 120년 만에 바다에서 건져진 와인은 1865년산이었다. 여기에 120년을 더하면 1985년이 된다. 여왕은 의도적으로 1985빈을 만찬주로 준비한 것이다. 역사와 인문학에도 해박한 영국 왕실 소믈리에들의 세심한 배려와 완벽한 준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와인 라벨에 점자를 새겨 넣은 와인이 있다. 프랑스 북부 론 지방의 와인 명가인 메종 M. 샤푸티에(M. Chapoutier)다. 1994년부터 시제란 에르미타주(Monier de la Sizeranne Hermitage) 와인의 라벨에 시각 장애인용 점자를 세계 최초로 새겨 넣었고, 1996년부터는 샤푸티에가 생산하는 모든 와인에 점자를 넣게 됐다. 경영주 미셸 샤푸티에가 어느 날 우연히 TV를 시청하던 중에 프랑스의 시각장애인 가수 질베르 몽따녜(Gilbert Montagné)가 인터뷰 도중, 진행자가 ‘어떨 때 가장 불편하고 힘이 드나요?'하고 질문하자, 그는 '와인 가게에서 와인을 고를 때 가장 좌절감이 듭니다. 누군가와 함께 가지 않으면 원하는 와인을 고를 수가 없거든요'라고 대답했다. 이 대화를 들은 미셸 샤푸티에는 이들을 위한 점자 라벨을 만들게 됐다. 현재 샤푸티에의 모든 와인 라벨에는 생산자, 빈티지, 재배지역과 와인 색상이 점자로 표기돼 시각 장애인들이 타인의 도움 없이도 와인을 고를 수 있게 됐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미셸 샤푸티에는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실천에 옮겼고, 그의 와인은 가장 인간적인 라벨을 달고 있다는 찬사를 듣게 됐다. '천국의 맛'을 즐긴 이들이 부럽다하루 저녁 5명이 먹은 밥값만 8000만원이 나온 사연이 있다. 이는 아직도 인당 가장 비싼 식대로 기네스북에 기록돼 있다. 이 사연은 2001년 7월 영국 런던에서 발생했는데, 당시 해외 토픽으로도 소개돼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국내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도 등장한 적이 있는 영국 출신의 유명한 셰프, 고든 램지(Gordon Ramsay)가 운영하는 런던의 고급 와인 바 ‘페트뤼스’(Petrus)에서 발생한 이야기다. 그날 영국의 금융사 바클레이즈(Barclays) 캐피탈 증권사 간부 5명은 특별한 거래를 성사시킨 후 자축의 의미로 페트뤼스에서 와인 5병을 마셨다. 그리고 계산서에는 무려 4만4007파운드가 찍혔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8000만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금융 계통에서 일하며 와인에도 조예가 깊었던 이들이 가장 비싼 와인 중 하나로 알려진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의 가장 유명한 빈티지 3병을 버티컬(Vertical: 연속된 연도의 와인)로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보르도에서도 가장 비싼 와인 샤토 페트뤼스의 최고 빈티지로 알려진 1945, 1946, 1947년산을 마셨는데, 3병 가격만 6000만원에 달했다. 나머지 2의 와인은 부르고뉴의 몽라셰 1982년산과 샤토 디켐 1900년산으로 가격은 약 2000만원이다.
이들은 이 엄청난 계산서를 다음 날 회사에 회식 비용으로 청구했다고 한다. 이런 소문은 빨리 퍼지는 법이다. 곧 언론에서도 이 사연을 다루게 됐고 터무니없는 금액의 회식비는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됐다. 문제가 된 레스토랑과 회사는 논평을 거부했지만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고 금융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문제가 된 5명의 간부들에게 책임을 물게 하는 것이었고 결국 이들은 회사를 떠나게 됐다.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아직도 와인 호사가들은 당시의 사건을 떠올리며 경외심과 부러움을 느낀다. 비록 해고됐지만 샤토 페트뤼스 3병을 마시면서 천국의 맛을 보지 않았을까 하면서 말이다. 과연 앞으로도 20세기 최고의 와인이라 알려진 페트뤼스 1947년산을 포함한 값비싼 3병을 한 테이블에 두고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와인 이름 페트뤼스(Petrus)는 영어로는 피터(Peter), 우리말로는 ‘베드로’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1대 제자이자 초대 교황이었던 베드로 성인의 이름을 붙인 와인으로, 라벨에는 베드로 성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손에는 예수님에게 받은 천국으로 가는 열쇠가 쥐어져 있다. 5명의 간부는 8000만원의 회식비로 인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지만 와인을 마셨던 그 순간만큼은 과연 천국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다. 김욱성 와인칼럼니스트
김욱성 와인칼럼니스트는_ 미국 텍사스 주립대와 RPI 공대에서 MBA 학위를, 그리고 경희대에서 국제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 호텔신라 서울 마케팅 판촉팀장으로 부임하면서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 2015년 프랑스 유학을 떠나 OIV(국제와인기구)가 주관하는 와인 매니지먼트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년 동안 세계 27개국 400개 와이너리와 100여개의 와인관련기관 등을 방문하면서 포도재배와 양조기법, 와인 마케팅 전략을 익혔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와인 관련 글을 쓰는 와인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김박사의 와인랩’을 운영 중이며 최근에는 <와인의 시간>이라는 신간을 출간해 강의 활동도 하고 있다.
2024.09.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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