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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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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 기념 '엔젤 콘서트' 개최

전시

1884년 조‧이 수호통상조약에서 시작한 양국간의 인연이 올해로 140주년을 맞은 가운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초대형 콘서트인 '엔젤 콘서트 Angel Concer'(주최 이너서클컴퍼니, 에이비씨코퍼레이션, 주한이탈리아대사관 공동주최)가 오는 5월 11일 오후 6시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엔젤 콘서트 Angel Concert'는 주최사인 이너서클컴퍼니와 에이비씨코퍼레이션측이 지난 2023년 이탈리아 리보르노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인 피에트로 마스카니 Pietro Mascagni의 고향 리보르노에 방문하여 마스카니 페스티벌 측의 예술 총감독 겸 지휘자인 마리오 메니깔리 MARIO MENICAGLI, 연출자인 마르코 볼레리 MARCO VOLERI와 테너 알베르토 프로페타 ALBERTO PROFETA, 소프라노 노에미 우마니 NOEMI UMANI 등의 출연진들을 초대함으로써, 본 공연을 공동제작 하기로 하면서 행사의 의미를 살리기로 했다. 총감독인 연출가 안주은은 “수교 140주년이라는 가슴 벅찬 의미를 가지고 있는 본 공연을 통해 양국간 우호증진이 더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히며, 관계자를 비롯한 일반인들까지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했다.한편, 본 공연은 수교 140주년이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한국에서의 공연만이 아닌 이탈리아에서의 교류 형태의 공연으로도 진행하기 위해 지난 2023년 일찌감치 한국인 최초로 안주은 교수를 마스카니 페스티벌의 연출가로 선정하고, 오는 8월 3일과 4일 양일간 교류 공연을 펼치기로 했다.“베리어프리”, “노블레스 오블리주”등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펼치기 위해 사회 소외계층, 다문화 가정, 입양아 가정, 장애인 등에게 1만 석의 좌석을 협찬사의 이름으로 기부하기로 하는 등 수교 행사의 의미와 사회 전반에 문화예술의 가치를 극대화 하기 위한 여러 이벤트가 함께 진행되는 본 공연은 총감독 안주은을 비롯. 한국측 지휘자로 김봉미, 국립무용단 솔리스트이자 안무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박기환. 소프라노 박성희, 조현애, 테너 이동명, 이현종, 가수 송가인 등이 출연한다.

2024.03.28 09:58

2분 소요
신뢰적자 위기 사회...기초부터 새롭게 다져야 [임무송의 시사논평]

전문가 칼럼

‘신뢰’는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적 자본이자 경제적 번영의 필요 조건이다. 일찍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5년 그의 대표작 ‘트러스트’에서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그 사회의 신뢰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그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혈연· 지연·학연 등 개인적 연고를 초월해 사회적 범위에서 통용될 수 있는 ‘공적인 신뢰’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을 때 활발한 경제행위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일본과 달리, 저신뢰 국가로 분류한 ‘한국의 경제발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점에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요즘 우리 사회 모습을 보면 그의 주장을 마냥 내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유엔(UN)에 의해 선진국으로 인정된 것이 무색하게 곳곳에서 신뢰의 붕괴가 잇따른다. 최근에 벌어진 몇 가지 사태만 손꼽아봐도 아찔하다. 아파트 공사에서 철근을 빼먹고 축제에서는 한탕주의 바가지 씌우기가 반복되고 은행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수백억짜리 사고가 터진다. 이른바 ‘묻지마 폭력’이 전염병처럼 번지며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Xenophobia)과 광장공포증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태원에 이은 오송 참사와 새만금 잼버리 파행, 그리고 예외 없이 이어지는 네 탓 공방은 온 국민에게 절망감을 안긴다. 중대재해처벌법에도 불구하고 일터에서는 죽음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특검의 몰락과 판사의 일탈로 다시 한번 확인된 사법부의 도덕성위기, 시민의 삶에 직결된 부동산, 일자리 등 국가통계 왜곡 혐의를 받는 정부의 일탈도 그 심각성에서 뒤지지 않는다. 한국, ‘공적인 신뢰’ 붕괴…“국가 시스템 혁신해야”미국의 홍보 컨설팅 기업 에델만이 매년 주요 국가의 여론주도층과 일반 대중에게 사회 주체들에 대한 신뢰도를 물어보는 ‘에델만 신뢰도 지표 조사’에서도 우리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2023년 한국 기업의 신뢰도는 38, 정부의 신뢰도는 34로 모두 하위권이다. 인도네시아는 각각 83, 76으로 우리보다 훨씬 높고, 싱가포르는 기업(62)보다 정부(76)의 신뢰도가 높다. 우리나라 사회지도층 가운데 신뢰도가 가장 낮은 그룹은 2022년에는 언론인, 2023년에는 정부 지도자라니 뉴스도 정부 발표도 믿음을 잃었다. 사회적 불신이 커질수록 양극화도 심한데 한국은 영국·독일·일본 등과 함께 위험국가군에 속한다. 윤리성과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선한 의도로 추진해도 국민이 불신하고, 국민이 믿지 않으면 정책은 실패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말하는 전형적인 ‘신뢰적자의 위기’ 모습이다. 최근에 “우리도 답 없다”는 현직 경찰관의 글이 언론에 보도되며 주목 받았다. 소신 행정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호소에는 전적으로공감하지만, 자칫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 같아 염려된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인한 공멸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가이고, 현대국가는 법치·민주·공화의 사회계약 위에 서 있다. 계약이 지켜진다는 믿음이 없으면 국가도, 경제도 존립할 수 없다. 우리 모두 K시리즈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사회적 신뢰의 기초부터 새롭게 다져야 한다. 부패의 카르텔을 혁파하기 위한 외부통제와 엄벌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현상보다 원인을 치유하고 내부통제 기제가 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근원적인 조치가 절실하다. 첫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의 시스템을 일대 혁신해야 한다. 흉악범죄자에 대한 확실한 처벌, 그리고 집시법 개정을 통해 집회와 시위 대처에 쏠린 치안 자원을 민생치안으로 돌릴 수 있도록 여야 정치권의 협력과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둘째, 직업윤리·공직윤리·기업윤리 등 윤리적인 ‘올곧음’을 확립해야 한다. “윤리적 정부는 공무원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발견하며, 도덕적 분위기를 증진시키는 유리온실과 같은 개방된 정부이다”라는 발언처럼 올곧음이 요구되는 것은 언론·기업·노조도 마찬지다. 개혁 대상 1호는 정치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공직자를 악의적 반복 민원으로부터 보호하고 법을 엄정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장치도 필요하다.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출범한 ‘특별민원 직원보호반’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기대된다. 셋째, 도덕적 의무의 실천을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주요 주체들로부터 수많은 결의와 선언이 있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핵심은 언행일치이다. 공약(公約)이 헛약속(空約)이 되면 아니 되듯이,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의 성찬은 불신과 냉소만 키울 뿐이다.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습관화되면 서로 물어뜯다가 공멸에 이르게 된다. 넷째, 규제혁신과 민주적 책임정치이다. 현대적 의미의 직업윤리는 부패하지 않고 맡은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 창의성·적극성·유능함을 요구한다. 실상을 감추는 허위의식과 ‘우리끼리’ 문화, 시대변화와 동떨어진 규제는 무능과 부패의 온상이다. 노동, 안전 등 사회적 규제도 혁신의 예외가 될 수 없다. 권한과 책임은 함께 가야 한다. 가톨릭 미사 전례 중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하고 크게 뉘우치는시간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큰일이 터져도 책임은커녕 반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편을 갈라 남 탓만 해대니, 거대한 빙하가 깨지듯이 공동체가 밑바닥부터 갈라지고 부서진다. 신뢰공영(信賴共榮), 불신공멸(不信共滅)이다. 임금과 고관대작들은 도망가고 백성은 외적을 피해 각자도생해야만 했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신뢰자본 축적을 위해 시민은 각성하고, 정부를 비롯한 국가의 중추 조직은혁신하고 사회지도층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사람 ‘인’(人) 자가 의미하듯이 우리는 서로를 믿고 기대어 사는 존재이다.

2023.09.03 16:00

4분 소요
천일만에 열리는 샛노란 그리움 가득  ‘구례산수유꽃축제’ [E-트래블]

여행

산수유꽃은 내숭쟁이다. 봄은 새침데기다. 둘의 밀당을 훔쳐보는 구경꾼은 꽃샘추위다. 산수유는 꽃망울 움을 틔어 봄 기운의 눈치를 살핀다. 서로 눈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이 내숭쟁이요 새침데기인 이유다. 산수유가 꽃망울을 빼꼼히 내민 후, 봄이 하품이라도 할라치면 슬쩍 자기도 따라하며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곳저곳에서 순식간에 터지는 노란 축포는 세상 노란 나라를 만든다. 지금 구례, 싹수 노란 꽃대궐에 상춘순례객도 마음이 동했다. 구례 산수유꽃 ‘사(4)적지’3년 만에 귀향하는 남편은 천일동안 기다린 아내가 떡갈나무에 내걸었을 지 모를 노란 리본의 유무에 마음 조린다. 숱한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쓰인 ‘토니올란도&던’의 1973년 히트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all oak tree’의 가사다. 노란 리본은 조바심과 그리움이요, 끝내 해후다. 이맘 때면 전남 구례에 노란 물결이 넘실거린다. 매년 그랬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감은 이 노래처럼 3년 동안 노란 산수유꽃과 상춘의 마음을 갈라 놓았다. 떡갈나무가 산수유나무로 바뀌었고, 태평양이 가른 공간적 이질감에도 그 노란 마음은 변함이 없다.3월 11일 제24회 구례산수유꽃축제가 열린다. 앞선 제21~23회 축제(2020~2022년)는 취소됐다. 이번 축제는 ‘영원한 사랑을 찾아서’란 주제로 11~19일 산동면 지리산 온천 관광지와 산수유 군락지 마을 일원에서 펼쳐진다. 계척마을에는 중국 산둥에서 이민 온 산수유 시목이 있다. 할머니나무로 불리며 수령은 1000년으로 알려졌다. 건너편 수락폭포 가는 길에 있는 달전마을에는 할아버지 나무가 있다. 이 나무의 수령은 300년이라 한다. 산수유꽃이 흐드러져 노란 물감 흩뿌린 듯한 절정을 보여주는 반곡마을, 방송 예능 프로그램 촬영지로 유명한 현천마을이 이들과 더불어 구례 산수유 4대 경승지다. 이들 마을은 모두 구례 산동면에 있다. 옛날 중국 산동성의 처녀가 지리산으로 시집올 때 가져와 심었다는 산수유나무 덕을 톡톡히 봐, 아예 동네 이름을 산동으로 지었다. 김순호 구례군수는 이번 산수유꽃축제에 대해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꽃을 시작으로 화엄사 홍매화, 구례300리 벚꽃, 섬진강 갓꽃 등 봄철 내내 우리 지역 꽃길을 걸으면서 구례의 봄 정취를 만끽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실제 구례 산수유꽃축제는 한반도 봄꽃 축제의 출발점이다. 홍매화가 아름다운 화엄사산수유만으로 구례 여행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구례 하면 화엄사를 빼놓을 수 없다. 6세기쯤 창건한 고찰로 백제 성왕 때 산문을 열었다. 사찰 내 각황전을 비롯해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이 있다. 이곳의 매력은 템플스테이다. 최근에는 BTS의 RM이 이곳에서 템플스테이를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1박2일부터 6박7일까지 다양한 상시휴식형과 1박2일과 2박3일짜리 참선수행형이 운영되고 있다. 화엄사 뒤안을 돌아가면 구층암이 있다. 이곳에서 돌계단을 따라 10분가량 걸어올라가면 나온다. 1000개의 불상이 있는 천불전과 스님이 기거하는 울퉁불퉁 모과나무를 미끄럽게 켜지 않고 기둥으로 사용한 요사채가 이채롭다. 화엄사에서 제3회 홍매화·들매화 사진콘테스트가 펼쳐진다. 산수유꽃축제에 맞춰 오는 11~26일 화엄사 홈페이지를 통해 출품작을 접수한다. 출품은 개인당 한 작품으로, 프로 사진과 휴대폰 카메라 사진으로 나눠 평가한다.홍매화 사진을 올린 선착순 참가자 100명에게는 치킨 상품권을 증정한다. 프로 사진 수상자에게는 상금 100만∼300만원, 템플스테이 1박 2일 상품권 등을 준다.휴대폰 사진 수장자에게는 30만원 상당의 화장품과 템플스테이 1박 2일 상품권부터 최대 300만원 상당의 도예작품을 수여한다.명승 제111호 지정된 오산 사성암구례 오산에 자리한 사성암은 구례 화엄사의 말사다. 사성암은 깍아지른 암벽에 지어진 사찰로 서기 544년 연기 조사가 세웠다. 당초 오산사로 불린 이곳은 원효, 의상, 도선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했다하여 사성암이라 불린다. 2014년엔 명승 제111호로 지정됐다. 암자 주변엔 풍월대, 신선대, 소원바위 등 12비경이 자리해 있다. 또한 이곳에 오르면 섬진강이 한 눈에 들어오며 구례읍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사성암 옆으로 나오면 시야가 확트인 패러글라이딩 활공장도 있다. '윤스테이' 촬영지로 유명한 쌍산재구례군 마산면 상사마을 쌍산재는 2021년 방송된 tvN ‘윤스테이’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끼 낀 투박한 돌이 박힌 오솔길이며 담을 이룬 탱자나무와 세월을 켜켜이 이고있는 기와가 정감 넘치는, 한옥은 TV에서 본 모습 그대로다. 이 고택은 오씨 가문의 200년 세월을 이어온 집이다. 주인 오경영씨는 “쌍산재는 현 주인장의 6대조 할아버지가 서당채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 그리 불리게 됐다. 쌍산재엔 그 현판 뒤에 사락당이란 당호가 붙어 있는 데, 이는 쌍산의 4형제가 우애 좋게 살았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택을 한옥펜션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집안에서 사람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집도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 반질반질 윤이 나더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아직 손님을 받고 있지 않지만, 곧 오픈 일을 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쌍산재에는 경암당, 호서정, 안채, 별채, 사랑채 등 여러 채의 한옥이 죽노차밭길 등 대나무 숲을 피해 곳곳에 자리해있다. 영벽문을 나서면 낚시터도 펼쳐져 있다. 대문 밖 당몰샘은 물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당몰샘은 장수를 약속한다는 천년의 샘인데, 원래 집안에 있던 것을 무시로 샘을 찾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샘을 밖으로 내고 다시 담을 둘렀다. 입장료는 1만원으로, 제공된 차와 함께 대청마루에 걸터 앉아 봄볕을 즐기면 그마저 힐링이 된다. 구례 운조루 고택은 조선 영조 52년(1776년)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가 지은 집으로, 자리한 곳은 조선 3대 명당 중 하나다. 운조루는 사랑채 누마루의 이름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으로 유명한 이곳에는 ‘타인능해’라 쓰인 뒤주가 있다. 필요한 사람이 쌀을 퍼갈 수 있게 한 뒤주다. 운조루 곳곳이 보수공사 중이라 당초 뒤주는 쉽지 찾아볼 수 없지만, 운조루 고택 대문에 새로운 뒤주가 설치돼 있다. 예를 구한다는 구례의 의미를 오롯이 담은 곳이다.

2023.03.10 09:00

4분 소요
故 이건희 회장 2주기…‘KH 유산’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산업 일반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별세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KH(건희) 유산’은 의료계와 미술계 등에서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사회 환원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은 지난해 4월 고인이 평생 모은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점을 국가기관 등에 기증하고, 감염병 극복 지원(7000억원)과 소아암 희귀질환 지원(3000억원) 등 의료 공헌에 1조원을 기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유산의 약 60%에 달하는 규모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12조원 이상의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상속 재산의 상당 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예상을 깬 사회 환원이었다. 미술계에서는 방대한 작품의 기증이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이중섭의 '황소' 등이 포함된 '이건희 컬렉션'은 감정가로 2조∼3조원에 이르며, 시가로는 10조원이 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작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을 관람하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을 국민에게 돌려드려야 한다는 고인의 뜻이 실현돼 기쁘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특별전은 매회 매진을 기록하며 '이건희 컬렉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현재까지 72만명의 관람객이 기증품을 감상했다. 대구미술관과 박수근미술관 등 지방 미술관에도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5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2026년 시카고 박물관에서 특별전을 여는 방안을 논의 중이고, 이건희 회장 컬렉션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품의 맞교환 전시도 검토 중이다. 인터파크티켓에 따르면 1주년 기념전의 입장권 예매자 중 20∼30대 비율이 70.4%를 차지할 만큼 젊은 세대로 미술 수요층이 확장됐다.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은 특별전을 관람할 때마다 찍은 인증샷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화제가 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작년 보고서에서 '이건희 컬렉션'이 생산 유발 2468억원, 부가가치 유발 1024억원, 취업 유발 2144명 등 총 3500억원의 경제 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 의료계서도 성과 KH유산은 의료계에서도 빛나고 있다. 이 회장의 ‘인간 존중’ 철학에 기반한 의료 공헌이 국내 의료계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감염병 극복을 위해 기부하기로 한 이 회장의 유산 7000억원 중 5000억원은 한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사용될 예정이다. 첨단 설비를 갖춘 120∼150개 병상 규모로 국내 민간병원 중 최대 규모다. 또 2000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건축과 필요 설비 구축, 감염병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제반 연구 지원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사용된다. 또 유족이 가정 형편 어려운 소아암과 희귀질환 환아를 위해 3000억원을 기부함에 따라 향후 10년간 이들에게 유전자 검사·치료, 항암 치료, 희귀질환 신약 치료 등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게 된다. 소아암 환아 1만2000여 명, 희귀질환 환아 5000여 명 등 1만7000여 명이 도움을 받게 될 전망이다. 소아암과 희귀질환 임상 연구, 치료제 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도 9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서울대병원은 작년 8월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사업단'을 발족하고 공모 방식으로 소아암 21건, 희귀질환 12건, 공통연구 21건 등 총 54개의 추진 과제를 선정했다. 사업단은 지난달부터 전국 9개 주요 병원과 함께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을 앓는 전국의 소아 환자들을 위해 검사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올해 말부터는 환아 검사와 치료 지원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과제 책임자인 홍경택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의미 있는 기부금으로 전국 소아청소년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아들에게 중요한 검사를 무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건엄 기자 Leeku@edaily.co.kr

2022.10.25 19:05

3분 소요
대한민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석영 가문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 (25)]

전문가 칼럼

‘명문가(名門家)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가 높고 학식과 덕망을 갖춘 훌륭한 집안.’ 명문가의 사전적 의미다. 조선은 수많은 명문가를 배출했다. 그런데 흔히 명문가의 기준을 사회적 지위에 두는 경우가 많다. 장원급제자를 몇 명 배출했다든지, 삼대가 정승을 지냈다든지, 대제학이 연이어 나왔다든지 하는 것으로써 명문가 여부를 판정한다. 학식과 덕망도 중요한 기준이어야 하지만 객관화가 힘든 탓인지 의례적인 수사에 그친다. 그러다 보니 명문가라 불리더라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한데 여기 사회적 지위, 학식과 덕망을 고루 갖춘 집안이 있다. 고결한 마음으로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일가가 있다. 명문가다운 명문가이자, 조선 부자의 품격을 보여준 이석영(李石榮, 1855~1934) 가문이다. 이석영이란 이름은 낯설게 들리겠지만 독립운동가 이회영(李會英, 1867~1932),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李始榮, 1868~1953)의 형이라고 하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건영-석영-철영-회영-시영-호영 여섯 형제가 막대한 재산을 정리해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불리는 이 여섯 형제는 가장 유명한 인물인 넷째를 따라 흔히 ‘우당 이회영 일가’라 불려왔다. 그 호칭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 보니 다른 형제들은 묻혀버린 감이 없지 않았다. 특히, 가장 많은 재산을 독립운동에 희사했던 이석영의 이름을 아는 이는 드물다(예컨대 여섯 형제가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한 토지 267만 평 중 약 95%가 이석영의 소유였다). 이번 화에서는 바로 이석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석영은 조선 선조 때의 명재상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다. 이항복의 현손 이태좌가 좌의정을 역임했고, 이태좌의 아들 이종성이 영의정을 지냈는데, 이종성의 현손이 이석영의 아버지 이유승이다. 이유승도 형조판서와 우찬성 등 최고위급 관직을 거쳤으니 그야말로 조선에서 손꼽히는 가문이라 할 수 있다. ━ 나라가 도탄에 빠지자 관직 버리고 교육기관 설립 그런데 이석영은 서른 살이 되던 해인 1885년, 집안의 인척이자 영의정을 지낸 정계의 거물 이유원의 양자가 됐다. 평소 이석영의 출중한 능력과 인품을 눈여겨보았던 이유원이 적자 이수영이 요절하자 고종에게 상소를 올려 그를 양자로 입적시킨 것이다. 이유원은 “갑부란 말을 들었으면서도 한없이 재물을 탐한” 인물로 “그의 별장이 있는 경기도 양주 가오실에서 서울에 이르는 80리 길이 모두 그의 땅이었다”라고 전해진다.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이석영이 이유원의 양자가 되면서 이를 상속받게 된 것이다. 이후 이석영은 문과에 급제하고, 종 2품 당상관에까지 올랐다. 사간원 정언과 홍문관 수찬 같은 청요직(淸要職)이나 과거시험의 시관(試官)을 맡은 것을 볼 때 학문도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라가 혼란에 빠지면서 이석영은 관직을 사임하고 더는 출사하지 않았다. 정3품 통정대부를 제수받은 친형 이건영, 대한제국 외부(外部)의 교섭국장을 지낸 친동생 이시영도 비슷한 시기에 벼슬에서 물러났다(막내 이호영은 아직 어렸고, 이회영과 이철영은 벼슬길 자체를 마다하고 있었다). 이들 여섯 형제는 이석영의 집에서 자주 회합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는데, 주로 넷째 이회영이 논의를 주도했다고 한다. 이회영은 이동녕, 양기탁, 안창호 등과 조선 백성의 민족의식과 자립역량 강화를 제창한 ‘신민회’를 조직하였고, 이상설과 함께 만주 용정에 민족 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설립했다. 해외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해 서간도를 직접 답사하기도 했다. 이런 이회영을 지지하고 자금을 대준 것이 이석영이었다. 생부인 이유승도 가산이 넉넉한 편이었지만, 조선의 대표적인 거부로 꼽혔던 양부 이유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여섯 형제의 활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사실상 이석원이 도맡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던 1910년 8월,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이 강제로 병탄되자, 이회영의 권유에 따라 여섯 형제는 50여 명의 일가권속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이때 급히 가산을 정리하여 40여만 원의 자금을 모았는데, 이석영의 재산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40만 원은 오늘날로 환산하면 약 600억 원에 이르는 돈이라고 한다. 환산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2조 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 가세 기울어도 사재 털어 조국 독립 활동에 헌신 만주에 도착한 여섯 형제는 이상룡·이동녕·김동삼 등 민족지사들과 힘을 합쳐 자치 결사 조직인 경학사를 설립하고 군인 양성 기관인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이철영이 경학사장과 신흥강습소 교장, 이회영이 경학사 내무부장, 이석영이 신흥강습소 교주(校主)를 맡은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여섯 형제의 지원이 없었다면 두 기관은 운영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이석영은 신흥무관학교의 설립 비용뿐 아니라 운영경비까지 모두 감당했다. 수익이라고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곳에서 계속 자금을 투입해야 했으니, 이석영의 그 많던 재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나고 만다. 이후 일제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신흥무관학교가 문을 닫고 여섯 형제는 뿔뿔이 흩어져 중국 각지를 떠돌아야 했는데, 1925년 셋째 이철영이 빈곤과 풍토병에 시달리다가 눈을 감았고, 1931년 막내 이호영이 실종되었으며, 1932년 넷째 이회영이 다롄 감옥에서 일제의 모진 고문 끝에 순국했다. 그리고 이석영은 1934년 빈민가에서 아사(餓死)하고 만다(첫째 이건영은 1940년 병으로 사망했고, 다섯째 이시영만이 살아서 해방을 맞았다). 1936년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한국국민당의 기관지 〈한민〉의 기사를 보자. 현대어로 바꿔 소개한다. “그는 매우 많던 재산 전부를 가져다가 이주 동포들이 살아갈 방도를 세워주고 신흥학교를 경영하는 데 전부 탕진하고 말았다. 〈중략〉 나중에는 지극히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도 조금도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았으며 태연히 장자(長者)의 풍도를 보여주었다. 말년에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고생하다가 상해의 어느 모퉁이에서 굶어 돌아가신 이가 그처럼 공이 많은 이석영 씨인 줄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또 올해 5월 11일 상해의 조카 집에서 역시 가련한 신세로 돌아가신 이가 그의 가장을 따라와 독립군의 밥을 지어 먹이고 옷을 지어 입히던 이석영씨의 부인인 것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안타깝게도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재산을 조국 독립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던 이석영이란 부자가 존재했다는 것을, 대의를 위해 가문을 희생했고 그로 인해 온 가족이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도 후회하지 않았던 명문가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 아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부자로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준 이석영을 소개하며, ‘조선의 부자들’ 연재를 마친다.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김준태 칼럼니스트

2022.08.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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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번영한 경주 최 부잣집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⑧]

전문가 칼럼

흔히 부자(富者)는 삼대를 가지 못한다고 한다. 부를 일구기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 10대가 넘도록 큰 부자였던 집안이 있다. 마지막 대에 이르러서도 망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 기부를 통해 스스로 부를 해체했다. 교동법주로도 유명한 경주 최 부잣집 이야기다. ━ 조선 역사에 스며들어 있는 최씨 가문의 전통 최 부잣집의 여정은 조선 중기의 무인 최진립으로부터 시작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했던 그는 인조 대에 이르러 공조참판, 삼도 수군통어사를 역임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노구를 무릅쓰고 청나라 군대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해 ‘정무(貞武)’라는 시호를 받았다. 최진립은 천석 정도의 재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약 30만평), 자식에게 집안에 천석 이상의 곡식을 들여놓지 말라 당부했다고 한다. 소작료를 많이 받지 말고 주위에 베풂으로써 재산을 늘리지 말라는 것이다. 아들 최동량은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했다. 개령현감, 용궁현감 등의 벼슬을 지낸 그는 시비법과 이앙법을 도입해 소출을 획기적으로 늘렸지만, 소작료를 대폭 줄여줌으로써 재산을 현 상태로 유지했다. ‘부잣집’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손자인 최국선에 이르러서다. 그는 적극적인 농업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도 “재물은 거름과 같아서 나누면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지만 쌓아두면 악취를 풍긴다”는 신념이 있었다. 흉년이 들면 쌀을 빌려 간 사람들의 빚을 탕감하고 창고의 곡식을 내어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했다. 죽기 직전에는 “내가 빌려준 것은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담보 문서를 모두 불태웠다. 이후 4대인 최의기는 가업을 확장하면서도 근검절약하고 이익에 얽매이지 않았다. 교동으로 터전을 옮긴 9대 최세린은 흉년이 들 때마다 대량의 곡식을 내어놓았으며, 10대 최만희도 그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굶주린 사람들을 대규모로 구제하면서도 혹시 부족한 점이 없는지를 염려하곤 했다. 사업 수완과 자산 운용 능력이 뛰어났던 11대 최현식은 가문의 재산을 더욱 크게 늘렸는데, 그 역시 어려운 사람을 돕고 구제하는 일에 아낌이 없었다. 그 덕분일까? 당시 남부지방을 휩쓸며 부자들을 약탈하던 활빈당(대규모 무장 농민 집단)이 경주를 공격하자, 이웃 농민은 물론 부랑자, 걸인까지 몰려와 최 부잣집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마지막 부자인 12대 최준은 이웃을 돕는 조상들의 선행을 계속 이어감과 동시에 상해 임시정부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민족 자본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구은행과 백산상회 설립에도 참여한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절감, 대구대학(지금의 영남대학교)을 건립하고 전 재산을 대학 재단에 기탁한다. 300년에 걸친 실로 숭고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 300년 이어간 가문의 부, 6개 가훈이 원동력 최 부잣집은 어떻게 이러한 정신을 계속 간직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많은 재산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 원동력으로 최 부잣집의 가훈이 잘 알려져 있다. 소개하는 자료에 따라 가훈의 항목은 3개, 6개, 7개로 다양한데, 여기서는 가장 유명한 6개를 기준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옛 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아서 가훈이 만들어진 정확한 시점을 알 수가 없다) 첫 번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과거시험을 보라는 것은 학문을 닦아서 그것을 검증받으라는 의미이고 양반 네트워크에 포함되라는 뜻이다. 가문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소양이 있어야 하며, 양반 신분을 유지해야 관(官)이나 지역 유지들과의 관계를 원활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는 것은 관직에 나서지 말라는 말이다. 권력을 탐하다가 몰락하거나, 정치 싸움에 휘말려 피해를 보지 않도록 경계한 것이다. 두 번째, “재산을 만석 이상 모으지 마라.” 최진립이 남긴 유훈과 같은 맥락이다. 최 부잣집은 3대 최국선 대에 이르러 만석꾼이 되었다. 토지에서 거둬들이는 쌀의 소출량이 만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유한 토지가 확대될수록 소출량도 늘어나야 한다. 한데 최 부잣집은 토지가 늘어도 만석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에 맞춰 소작농으로부터 받는 소작료를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최 부잣집의 소작료는 매우 싼 편이었는데, 재산이 늘어날수록 소작료가 추가로 인하되니, 소작농들이 최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도록 열심히 일하는 이색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이익을 독점하지 않고 공유함으로써 지주와 소작농 간의 상생을 가져온 것이다. 세 번째,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 흉년은 토지를 증식하기 쉬운 때다.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려워진 사람들이 자신의 전답을 싼값에 내놓기 때문이다. 이럴 때 매입하면 당연히 큰 이윤을 남길 수 있겠지만, 최 부잣집은 이를 금기로 여겼다. 남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자기 배를 채우면 필시 원한을 남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경주에서 사방 백 리면 영천, 울주, 포항을 포괄하는, 경상북도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최 부잣집이 부를 축적한 것은 혼자 잘나서가 아니다. 지역민들의 도움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지역에서 최소한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관심을 갖는 것이 부자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책무라는 것이다. 다섯 번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지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게 하라.” 이 말은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며느리에게만 검소함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최 부잣집 역대 가장들의 공통적 특징이 ‘검소’, ‘검약’이다. 장차 안살림을 책임져야 할 며느리에게 처음 3년 동안 이러한 최 부잣집의 정신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는 의미다. 마지막 여섯 번째,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우리 전통에서는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집에서 묵어가고, 그런 사람을 손님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최 부잣집의 나그네 접대 규모는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동시에 100명이 넘는 손님이 묵는 일도 있었다. 접대비용으로 연간 천석을 소모했다고 한다. 이는 따뜻한 인심을 보여준 측면도 있지만, 나그네를 통해 전국 각지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상 6개의 가훈을 통해, 우리는 10대에 걸친 만석꾼 의 힘은 권력을 탐하지 않고, 근검하고 절약하며, 정보를 중시함으로써 얻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지 않고, 이익을 공유했으며, 아낌없이 베풂으로써 부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역대 가장들이 이 가훈을 힘써 실천했기 때문에 300년 동안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이며, 수많은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고, 부가 사라진 지금에도 여전히 존경받는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이용우 기자 lee.yongwoo1@joongang.co.kr

2021.10.17 20:30

5분 소요
[CEO UP |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산업 일반

━ 10년 만에 매출 1조원 돌파에 ‘방긋’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0년 국내 음식 배달 앱 시장에 진출한 지 10년 만에 매출 1조원 시대를 연 것이다.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의 뚝심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평가다.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우아한형제들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1조995억원으로, 2019년 매출액(5654억원)보다 94%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배달 업계의 치열한 마케팅 경쟁과 프로모션 비용 지출 등으로 112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2019년 364억원의 영업 손실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지만 적자 폭이 69% 줄었다.우아한형제들의 실적과 함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김봉진 의장의 ‘통큰’ 선행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2월 18일 김 의장은 세계적 기부클럽인 ‘더기빙플레지’ 219번째 기부자로 등록됐다. 더기빙플레지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가 2010년 함께 설립한 자선단체다.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원 넘는 자산을 보유해야 가입 대상이 되고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해야 한다.김 의장의 재산은 배달의민족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하면서 받은 DH 주식 가치 등을 포함하면 1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면 5000억원이 넘는 돈을 기부하게 되는 셈이다.이 외에도 김 의장은 지난 3월 11일 사재 1000억원을 출연해 직원들에게 주식과 격려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전 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내 “아시아로 진출해 더 큰 도전을 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땀 흘려 애써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저의 개인적 선물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산 절반 기부와 별개로 올해 2월 28일까지 입사한 우아한형제들과 우아한청년들, 해외법인(베트남·일본) 등의 전 구성원 1700여 명에게 자신이 보유한 DH 주식 일부를 증여한다는 것이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2021.04.03 14:15

2분 소요
“AI 인재에 써달라” 김재철 동원 명예회장 500억원 기부

CEO

KAIST에 향후 10년간 연차 지원 계획… ‘김재철 AI대학원’ 명명 “인공지능(AI)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 패권을 쥐게 된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AI 인재를 양성해달라”며 카이스트(KAIST)에 사재 500억원을 기부한다. 김 명예회장은 12월 16일 KAIST 대전 본원 학술문화관 정근모 컨퍼런스홀에서 AI 인재 양성을 위해 향후 10년 동안 연차별로 사재 총 500억원을 기부한다는 내용의 약정식을 체결했다.김 명예회장은 “세계 각국이 AI 선진국이 되기 위해 치열한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며 “AI 기술 발전을 위한 길을 고민한 끝에 우수한 교수진과 기초역량을 갖춘 KAIST에 기부하는 방안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KAIST가 한국의 선두 주자가 돼 세계적으로 저명한 교수들을 많이 모셔오고 석박사 과정 학생 수를 늘려달라”고 덧붙였다.KAIST는 김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기부금 전액을 AI 분야 인재 양성과 연구에 사용키로 했다. 특히 2019년 8월 정부 지원으로 문을 연 AI대학원의 명칭을 ‘김재철 AI대학원’으로 명명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역량을 갖춘 교수진을 단계적으로 확충해 오는 2030년까지 현 13명에서 40명으로 늘리고 AI 융복합 인재 양성과 연구에 주력한다는 방침도 정했다.신성철 KAIST 총장은 “과학기술 발전과 AI 강국을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정신을 몸소 실천한 김 명예회장에 경의를 표한다”며 “국가 발전이란 KAIST의 사명감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김 명예회장의 기부를 토대로 KAIST가 AI 인재 양성과 연구의 세계적 허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한편 원양어선 항해사 출신으로 동원그룹을 일군 김 명예회장은 지난 4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AI 인재 양성과 기술 확보에 남다를 관심을 기울여 왔다. 카이스트 기부 이전 동원그룹 계열사인 동원산업을 통해 지난해 한양대에 30억원을 기부해 국내 최초의 AI솔루션센터인 ‘한양 AI솔루션센터’ 설립을 지원했다. 김 명예회장은 “사재를 뜻(AI) 있는데 쓰겠다 결심했다”며 “국토도 좁고 자원은 없지만, 사람은 우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2020.12.18 20:20

2분 소요
[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29) 신일용 만화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만화로 그렸죠.”

전문가 칼럼

B2B 마케팅 30년 전문가 출신… 차기작은 영어 학습만화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동안엔 시간 가는 줄 몰라요. 회사 다닐 때처럼 매일 작업실로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하고, 여름엔 7 to 9도 해요. 만화책이 잘 팔리면 좋겠지만, 앞으로도 팔리는 만화보다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릴 겁니다.”지난해 만화책 를 펴낸 신일용(63) 만화가는 “인생 2막을 아마추어 만화가로 살겠다”고 말했다. ‘만화로 떠나는 벨에포크 시대 세계 근대사 여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3권짜리다. 책 앞날개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열 개쯤 있는데 만화로 그리고 싶었다. 10~15년 걸릴 것 같아 당장 시작하려 회사를 떠났다. 꽤 괜찮은 회사들에서 꽤 오래 일했다.” ━ 책날개에 ‘작가의 출간 예정작’ 예고하기도 그는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삼성에 입사해 삼성물산, 삼성SDI 등에 근무했고, 효성그룹 계열사인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 대표를 지냈다. 삼성그룹 비서실 인사팀 과장으로 근무 당시 지금의 삼성 채용시스템을 만든 실무자였다. 스토리텔링에 강한 자칭 이야기꾼에 고교 시절 미술반 활동을 한 것이 만화를 그리게 된 배경이다.“만화는 도구일 뿐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출판시장도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차별화를 노리는 한편 소셜 미디어에 빠진 젊은 층의 눈길을 끌려고 만화라는 장르를 고른 거죠.”그는 기업에 종사하던 시절 B2B 마케팅에 30년 몸담은 마케팅 전문가이다. 그가 생각하는 만화 생산자로서 자신의 강점은 세 가지다. 우선 품질의 수준을 떠나 질 자체가 고르다. 통계 용어를 빌리자면 분산이 작은 편이다. 둘째 하루에 만화 네 쪽을 그리는데 이 정도면 만화가로서 생산성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스토리를 끝까지 끌고 가는 스토리텔러로서의 힘이 강하다. 라벨르 에뽀끄는 3권 합쳐 950여 쪽에 이르는 긴 스토리이다. “20대에 만화가가 됐다면 프로가 되어야 했겠죠. 팔리는 토픽을 찾고 시류를 따라 만화 대본의 논조도 시장에 맞췄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아마추어 만화가로 남고 싶습니다. 큰돈 욕심도 없어 작업실 유지할 정도만 벌면 돼요.”만화는 노트북 화면에 스케치북이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터치 펜으로 그린다. 종이도 물감도 필요 없다. 그가 이번에 다룬 ‘라벨르 에뽀끄’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1차 대전 발발 전 유럽의 황금시대를 가리킨다. 식민 자본주의가 꽃피운 시대이자 그 반작용으로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가 꿈틀댔고 새로운 사조의 미술과 음악, 문학이 활기를 띠었다. 과학은 발달했고 사람들은 낙관주의에 젖어 있었다. 격동의 시대였고, 역사가 직선으로 진보한다고 당대의 사람들은 믿었다. 무엇보다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종횡으로 첨예하게 부딪치며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인상적인 사례가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벌어진 드레퓌스 사건이다. “드레퓌스 사건을 은폐한 프랑스 군부는 독일과 유태인에 대한 국민의 혐오와 증오심을 악용해 되레 국민을 협박했습니다. 고용된 에이전트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도적적 해이의 전형이죠. 당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는 스스로 믿고 싶어하는 드레퓌스에 관한 거짓말이 확대 재생산됐습니다. 마치 요즘의 우리 사회와 같죠. 그러나 진실은 진영을 넘어서는 가치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소셜 미디어는 가짜 뉴스의 유통과 확증 편향 강화의 통로가 되고 있어요. 근본적으로는 빗나간 입시 교육과 책을 읽지 않는 세태에 원인이 있다고 봐요.”그는 프랑스가 위선과 반목, 야만과 혐오로 얼룩진 드레퓌스 사건을 겪으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발전했고 똘레랑스의 전통을 이어갔다고 주장했다. “똘레랑스가 생기려면 깊은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 성찰을 하려면 재료가 되는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은 독서를 통해 만들어져요. 독서는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킵니다. 단 자기 생각을 할 기회를 되레 빼앗는 자기 계발서는 논외예요.”그는 다음 작품을 ‘작가의 출간 예정작’으로 책의 뒷날개에 이미 예고했다. 올 여름 출간할 예정인데 영어 학습만화이다. 영어 사교육, 영어권 연수 등 영어 때문에 온나라가 난리지만 영어 실력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게 그의 인식이다. 주인공은 영화 ‘쿵푸 허슬’의 고수 두꺼비 아저씨이다.내년 11월께 나올 그 다음 작품은 ‘우리가 모르는 동남아시아’이다. 동남아는 경제·외교 면에서 우리나라의 중요한 파트너이고 우리 젊은이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를 관광지 정도로 생각하고 이들 나라를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는데, 잘 모르거나 잘못 알아서입니다. 동남아는 역사, 문화, 사회, 정치 면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는 정말 흥미로운 땅이에요.” ━ 2막은 한겨울 나목의 벌거벗은 힘으로 살아야 그에게 인생 2막을 사는 지혜를 구했다. “가능하다면야 밥벌이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죠. 그 일이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또 혜택을 받은 세대로서 어떤 형태로든 봉사를 하며 살아야죠. 타인에 대한 존중과 관용은 모든 세대에게 필요하지만, 특히 젊은 세대를 자기 자신만큼 존중해야 합니다. 상대를 존경할 수 없더라도 존중할 수는 있어요.”그는 은퇴 후엔 한겨울 나목이 보여주는 벌거벗은 힘, 벌거벗은 자의 아름다움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지위, 조직 내에서의 권위, 금력까지 다 벗어던지고 나서도 초라해지지 않으려면 나목처럼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명예는 가장 마지막에 벗는 내복 같은 것인지도 몰라요. 이렇게 다 벗어버리고도 남는 건 인간성과 인간미죠. 그러자면 자기 희생을 해야 돼요.”그는 보수도 진보도 힘을 잃은 건 희생을 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잘사는 사람, 이른바 가진 사람들 자제의 군 복무율은 보통사람의 자식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으로 낮습니다. 보수가 희생을 하지 않는다는 단적인 증거죠. 유럽, 미국 심지어 일본의 사회 지도층도 이렇지 않아요. 노블레스 오블리주야말로 우파의 훈장입니다. 반면 진보는 30년 전의 운동 경력을 평생 훈장처럼 우려먹어요. 시니어가 대접 못 받는다고 하는데, 좌우 가릴 거 없이 시니어들이 반성해야 합니다.”그가 말한 벌거벗은 힘은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떡갈나무’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대 삶을 살아라 젊었든 늙었든, 저기 저 떡갈나무 같이. 마침내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면 보라, 나무가 서 있는 줄기와 가지의 벌거벗은 힘(naked strength)을.” 그의 카톡 상태 메시지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emento mori)’이다. “역사상 모든 위인은 죽었습니다.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판단의 실수를 줄일 수 있어요.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사람을 보면 좀 딱해요.”

2020.02.0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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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말라드’의 먹구름

산업 일반

프랑스와 영국이 100년을 맞서 싸운 이른바 ‘백년전쟁(Hundred Years’s War)’이 끝날 무렵, 도버 해협의 항구도시이자 프랑스의 요충이었던 칼레(Calais)가 영국에 함락된다. 칼레 시장은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사절단을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보내 자비를 구했다. 그러나 영국은 단호했다. 감히 대영제국에 덤빈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다만 칼레 시민의 목숨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도시 대표 6명만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칼레 시민들은 과연 누가 먼저 목을 내놔야 할지 술렁이기 시작했다. 도시가 온통 긴장과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칼레 시의 으뜸가는 부자인 ‘생피에르(St Pierre)’가 맨 먼저 교수형을 자청했다. 이어 시장, 상인, 법률가 등 귀족들이 줄줄이 나선다.그들은 처형을 받기 위해 스스로 교수대에 모였다. 그러자 지도자급 6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한 에드워드 3세는 형을 집행하지 않고 그들을 모두 사면했다. 이렇게 해서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탄생한다. 이는 곧 서구사회를 지탱하는 커다란 힘이 되었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도덕의식은 계층 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졌다.이처럼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 높은 신분에 걸맞은 대접을 받으려면 명예(Noblesse)만큼 의무(Oblige)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초기 로마 시대에도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희생정신이 있었다.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 강했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만만치 않다. 엄청난 희생자를 낸 한국전쟁 당시 미국 참전용사 중 142명이 미군 장성들의 아들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많은 것을 받는 사람은 많은 책무가 요구된다((Much is given, much is required).”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196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한 말이다. 미국 최대의 할인유통매장인 ‘월마트’ 창업주는 대를 이은 근검절약 정신으로 유명하다. 창업자 샘 월턴은 유통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됐지만, 자녀들은 가게에 나와 일한 만큼만 용돈을 주고 자신도 낡은 트럭을 손수 몰고 다녔다.근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 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1, 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가 전투 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지 않았던가.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회 지도층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사회 저명 인사나 소위 상류계층의 병역기피가 매우 오래된 병폐로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오너 리스크(Owner risk)’에 대한 여론의 준엄한 심판은 일부 경영진의 ‘갑질 사건’에서 불거져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제 우리도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높은 신분에 걸맞은 대접을 받을 수 없는 사회로 다가서고 있다.지도층의 의무를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부자에게도 사회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논리가 최근 확산하고 있다. 영연방 유대교 최고지도자인 조너선 삭스(J. Sachs)가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특히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e Oblige)’가 그것이다. 부(富)를 누리는 계층이 치러야 할 의무다.한국에서는 과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얼마나 지켜질까. 거꾸로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이용하여 세도를 부리는 행위인 ‘노블레스 말라드’는 없을까. 프랑스어로 귀족을 뜻하는 노블레스(Noblesse)와 아프고 병든 상태를 뜻하는 말라드(Malade)의 합성어로, 기득권 세력이 힘을 믿고 각종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행위를 말한다.‘부모 간 인턴 주고받기, 00외고 유학반, 상류층 금수저 모임….”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과 별개로 검찰은 조 장관과 관련된 여러 의혹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조국 장관 딸 조모씨의 ‘인턴 품앗이’ 의혹도 그중 하나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유학반’은 ‘스펙 부풀리기’의 복마전인 셈이다. 입시 전문가들과 외고 졸업생들에게 물어봤다. 유학반은 다 ‘금수저’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의 노블레스 말라드를 더 말해 뭘 하겠는가.“금융권은 과도한 탐욕과 도덕적 해이를 버려야 합니다.” 전 금융위원장 한 분은 기자들에게 미국의 ‘월가 시위(Occupy Wall Street)’를 언급하면서 한국 금융권에 일침을 가한 적이 있었다. 이제 우리 금융권에도 지도층의 의무를 강조하는 리세스 오블리주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로 5만여 개의 기업이 쓰러졌다. 그냥 망한 것이 아니라 은행에 큰 빚을 남겼다. 금융회사들까지 파산 위기에 내몰리자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손실을 막아줬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도 마찬가지. 구제금융을 받고 기사회생한 금융회사들이 거액의 연봉과 성과급으로 흥청거리는 건 아닌지.‘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신약성서(누가복음 12장 48절)에도 나온다. 가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전이라고나 할까. 핀란드에는 소득 수준에 따라 벌금을 내는, 이를테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법(法)이 있다. 한 백만장자가 자동차로 시속 40㎞의 제한 구간을 약 70㎞로 달렸다가 일반 서민의 10배가 넘는 8700만원의 거액을 벌금으로 냈다는 보도가 있었다.정부와 여당은 당정 협의를 열고 ‘재산 비례 벌금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행위 불법 및 행위자 책임 기준으로 벌금일수를 정하고 경제적 사정에 따라 벌금액을 산정, 불평등한 벌금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같은 행위에 대해 벌금을 차등화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 게 아닌지 위헌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도 저도 우리에겐 먼 나라 얘기일 뿐일까.- 정영수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부국장)

2019.10.0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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