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객관적 지표로 나타난 21세기 한국의 잠재 경쟁력은 만만찮다. 세계은행은 한국의 올해 GDP 성장률을 중국(8.0%), 인도(6.4%), 러시아(5.5%)에 이어 세계 4위(5.2%)로 추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15세 학생의 독서능력 평가 시험에서 한국이 2위(1위는 핀란드)를 차지했다. 지난해 한국의 특허권 신청 증가율은 중국(47%)에 이어 2위(33.6%)를 기록했고, 연구개발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국(2.7%)에 이어 6위(2.6%)였다. 뉴스위크는 그런 지표들을 거론하며 미국은 과연 어떤가 하고 자문했다. 그러나 우리는 21세기 정보혁명과 지식정보 사회를 충분히 대비한다고 자부해도 괜찮은가? 뉴스위크 한국판은 각계 전문가 7인이 말하는 한국의 21세기 생존전략을 들어보았다. e-메일로 전해온 내용을 간추렸다. 1970년대 중반 미국 애플사는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II’를 개발하며 화려하게 부상했다. 그러나 90년대엔 소프트웨어의 신흥 강자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던 애플이 2001년 혁신적인 상품 하나로 보란 듯이 다시 부상했다. ‘아이팟(ipod)’이라는 하드웨어에 음악 판매 서비스인 아이튠스를 결합시킨 컨버전스 신상품이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분야는 기술혁신 속도가 매우 빠르다. 글로벌 경쟁은 갈수록 숨막히는 전쟁이다. 혁신적인 신상품과 서비스는 한순간에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 이 같은 파괴력의 핵심은 언제나 컨버전스(융·복합화)에 있다. 선진 각국의 정부·기업이 컨버전스에 사활을 걸고 전력투구하는 이유다. 그동안 우리는 반도체·휴대전화에서 톡톡히 재미를 봤지만 그것에만 머물러서는 더 이상 IT 강국을 유지하기 어렵다. 컨버전스의 추세를 읽고 신흥 알짜배기 시장을 개척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흔히 컨버전스 하면 DMB·IPTV 등 통신과 방송의 융합만을 생각하지만 컨버전스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과거에 컴퓨터와 통신이란 전혀 다른 영역을 인터넷을 통해 서로 만나게 함으로써 ‘정보화 혁명’을 이끈 사례도 대표적인 컨버전스다. 그리고 향후에는 IT·BT·NT의 융합과 전통산업의 IT 접목 등 산업 간, 기술 간 경계를 뛰어넘어 산업 전반의 혁신을 창출하는 ‘제2의 혁명’이 기다린다. 그리고 이 같은 융합의 중심에는 IT가 핵심 역할을 한다고 미래학자들은 단언한다. 미래 컨버전스를 누구보다 빨리 선점하려면 학계·정부·기업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학계는 학제 간 경계를 뛰어넘는 광범위한 연구로 미래 컨버전스에 관한 기초연구를 적극 수행해야 한다. 정부도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창의적 인재 양성과 법·제도, 핵심 원천기술 개발 등 컨버전스 인프라 조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기업들도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취성을 발휘해야 한다. IT를 기반으로 한 컨버전스 기회를 살려 21세기 ‘IT 일등 강국’에서 ‘국가사회 전 분야의 일등 국가’로 발돋움하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야 할 때다. 한국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개방형 통상국가다. 최근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양쪽으로 압박을 받는다. 다가오는 시대 우리는 더욱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점차 글로벌 자유무역의 중심을 향해 가려는 한국의 생존전략은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견인차, ‘IT 경쟁력’의 강화에 있다. 기술과 품질 혁신으로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IT 수출 비중은 총수출액의 27~28%다. 외형상으로만 보면 그간 잘해왔다고 자찬해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전 세계 IT 기술개발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한 새로운 기술 투자와 핵심인력 양성은 조금이라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 IT업계의 핵심은 융·복합화다. 앞으로 5~10년 후에는 기술과 산업 또는 유관 산업 간의 융·복합 발전 전략을 어떻게 마련했는가가 일류와 이류를 가르는 관건이 된다. 그리고 이 융·복합화의 핵심은 바로 소프트웨어의 경쟁력 확보다. 첨단산업을 육성하려면 우선 소프트웨어와 같은 고도의 능력이 인정받는 풍토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된 이공계 기피로 인한 IT전문 인력의 공동화 현상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공계 출신이 제대로 대우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학계·기업 간의 산학협력을 통해 신기술 개발 협업체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차세대 기초기술 개발에 교두보 역할을 할 연구의 내실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또 기업들은 미래산업의 변화 추이를 따라잡을 핵심 인력을 적극 활용해 신규시장 진입을 위한 개발 노력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각국의 경제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오직 사람과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산업을 창출해내야 한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해 크게 제한된 투자만이 가능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과학기술과 산업을 발전시켜야 할까? 우선은 교육개혁이 절실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런 저런 과외에 시달리고, 중·고등학교 때는 ‘4당 5락’이니 하는 황당한 말이 나올 정도로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공부해야 하는 대학에 가서는 공부하지 않는 나라가 한국이다. 더군다나 대학 졸업생은 많은데도 기업이 정작 뽑으려 하면 적합한 인재가 없다고 한다. 대학은 공부를 제대로 할 사람들이 가서 제대로 교육받고 나오도록 바뀌어야 한다. 초·중·고 과정에선 학생들의 창의성을 높이는 형태로 교육이 전환돼야 한다. 교육이 제대로 서지 않고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두 번째로는 과학기술 연구 관련 투자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제대로 된 하나의 기술이 우리나라를 먹여살린다는 원칙에 근거해 선택과 집중에 따른 지원을 해야 한다. 황우석 교수의 불미스러운 일로 선택과 집중에 관해 말이 많다. 하지만 잘못된 경우 하나 때문에 제대로 된 집중투자가 기피돼선 곤란하다. IT 집중투자가 우리나라를 지금의 IT 강국으로 만들었듯 BT 등 신산업 창출이 가능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우리나라의 ‘먹거리’ 창출이 시급하다. 기업의 전문경영인은 소유주가 아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한다. 미래를 염두에 둔 과감한 기술개발 투자를 책임 문제로 회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세계를 선도할 기술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선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 따라서 사람을 제대로 키우고 잘 활동하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일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가치관으로 우리나라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체계 확립이 절실하다. 이와 함께 폭넓은 과학기술 인프라 구축을 겨냥한 투자는 계속하되 발전 가능성이 큰 사람들을 집중 지원하고 육성하는 일이야말로 한국의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황우석 사태라는 한바탕의 열병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지나갔다. 우리나라에서 줄기세포는 사기·기만과 같은 부정적 의미를 띠는 그 무엇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우리가 황우석 사태 이후 주춤한 가운데 미국·유럽연합(EU)·중국·싱가포르·일본 등은 줄기세포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거나 시작할 움직임을 보인다. EU는 줄기세포 연구에 EU 예산 500억 유로를 사용할 계획이고, 부시 행정부 이후 주춤했던 미국도 학계를 중심으로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중국·싱가포르·일본 역시 공격적인 투자로 돌아섰다.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분야에서 세계는 지금 전쟁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줄기세포 연구 분야는 아직도 세계적 경쟁력이 있다. 황우석 사태로 널리 알려진 초기 단계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차치하더라도 이미 가시권 내에 들어온 성체줄기세포 연구 분야는 이르면 내년 말 첫 상업화 치료제를 내놓을 전망이다. 메디포스트의 무릎연골재생치료제 카티스템™은 세계 최초로 상업 임상에 들어갔으며 신경치료제인 뉴로스템™도 현재 임상시험 중이다. 우리나라도 이젠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재도약하자는 분위기다. 학계의 지속적인 연구, BT 업계와 의료계의 투자 소식이 잇따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도 향후 10년간 480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관건은 줄기세포 연구를 정략적인 ‘쇼’가 아니라 장기적 국익과 우리나라만의 21세기 생존전략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학계·의료계·산업계·정부를 잇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정책적 지원도 확대·지속돼야 한다. 아울러 언론을 포함한 국민 여론의 합의도 다시 도출해야 한다. 줄기세포 연구가 다시 사회적 의제로 자리매김할 때 비로소 줄기세포는 한국을 살리는 희망이 된다. 21세기 생존전략은 혁신적인 기술에 도전하는 기업가가 늘어날 만한 ‘생태계’ 조성에 달려 있다. 혁신은 속성상 많은 실패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록 실패했다 해도 그 실패가 개인의 부채가 아니라 국가적 자산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창의적 교육, 투자 중심의 금융, M&A와 R&D의 확산, 이공계 기피 문제 등을 해결할 정책 설정이 절실하다. 더불어 대·중소기업의 상생을 가능케 하는 거래관행의 개선이 절실하다. 벤처 신화창조는 박세리의 첫 우승에서 보듯 ‘하면 된다’는 막연한 확신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민족적 자신감을 촉발하는 계기였다. 부존자원 없이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IT강국으로 평가받는 한국의 저력은 기업가 정신에 그 뿌리가 있다. 90년대 이후 지식정보사회를 앞당기려는 논의가 많이 있었다. 사막에 나무를 심듯 창업과 힘겨운 생존을 경험한 청년 기업가들이 모여 이를 앞당기는 논의를 하려고 벤처기업협회를 만들었다. 이들이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환경을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지 불과 10여 년이다. R&D 중심 기업의 미래가치를 토대로 직접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가 회수되는 선순환을 구축한다는 목적으로 코스닥 시장도 만들었다. 나아가 압축성장을 위한 ‘벤처기업 육성 특별법’ 제정도 이끌었다. 외환위기를 맞아 한 차례 국가적 위기가 있었지만 이들로 인해 벤처 성공신화가 만들어지면서 한국 경제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준 기업가 정신이 충만하기에 이르렀다고 자부한다. 21세기 한국의 살 길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창의적 글로벌 인재 양성이다. 2020년엔 새로운 일류국가 그룹이 형성돼 21세기를 주도하는 세력이 된다. 그리고 ‘Two W(한국에서부터 중국, 인도차이나반도와 인도를 연결하는 해안선의 모양)’권 지역이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축이 되면서 미국과의 새로운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시기가 예상된다. 쉽게 말해 아세안+한·중·일+인도가 중심이 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우리 글로벌 인재들에게 광대한 활동무대가 열린다는 의미다. 21세기 지식문화 중심 사회에서는 인재·지적능력·무형자산이 국가발전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한국은 이런 면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못 따라올 기록과 업적을 지녔다. 골드먼삭스의 보고서는 한국의 1인당 GDP가 2020년 세계 9위, 2025년 세계 3위, 2050년 세계 2위가 된다고 예측했다. 물론 북한이란 변수가 있긴 하지만 모두 우리의 인적자원과 무형자산을 높이 평가한 결과다. 우리는 0%에 가까운 세계 최저 수준의 문맹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진학률(2005년 82.1%), 한글의 과학성, 한국인의 암묵지(暗默智), 수학·과학 국제학력평가에서 항상 1~4위권을 유지하는 중학생의 학업성취도, 그리고 175개국에 거주하는 세계 1위의 이산성(移散性)은 세계 어느 나라도 못 따라올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국내외 통계에서 한국은 인구비례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외 유학생을 내보낸다(수적인 면에서도 세계 2위). 해외 유학생 수는 미국에서 3위, 중국에서 1위,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2위를 차지한다. 또 우리의 숙성문화(熟成文化)는 편안한 정서와 생명존중의 인간학적 요소, 과학성, 친환경성, 예술성을 포용하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 낸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폭풍을 통과한 나라다. 앞으로 누구보다도 먼저 ‘네오 아날로그 혁명’을 성취할 나라다. 한국이 ‘인재대국’으로 2020년 일류국가가 되려면 창의성을 지닌 글로벌 지적 인재, 발명 인재, 표현 인재, 혁신 인재 양성을 염두에 둔 획기적인 인재 양성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수월성 중심의 학교 운영,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자율적인 동아리 운영, 대학교육의 혁신, 국제기능올림픽 메달 획득자와 IT·BT·NT 과학기술자의 연구공동체 운영, 젊은 과학자들의 연구활동을 돕는 ‘제조업 타운’ 운영, 귀국 해외 유학자의 지원센터, 대기업의 인재양성 프로그램 운영 등 제도권 안팎에서 획기적인 인재양성 정책이 요구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자력으로 다양한 ‘메가트렌드’(한류, 월드컵 응원, 음악·체육 분야 인재들의 활발한 해외활동 등)를 만들어 간다. 이들 메가트렌드는 한민족 메가트렌드, 가치 메가트렌드, 이념 메가트렌드, 과학기술 메가트렌드, 세대 메가트렌드, Two W 중심권 메가트렌드로 나타난다. 2020년에 우리의 인재들이 이들 메가트렌드와 함께 지구촌 곳곳을 누비도록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9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수출 구조는 철강·기계·건설산업 등이 주류를 이루던 중공업 중심에서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와 휴대전화·LCD 등 IT 관련 제품 중심으로 구조가 바뀌었다. 이런 변화에 따라 2005년 말 현재 우리나라 수출산업 중 광의의 IT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36%다. IT산업이 우리 경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IT 분야 수출의 내부구조를 살펴보면 기술종속성에서 아직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제품을 수출하고도 막대한 기술특허 로열티를 외국에 지급해야 하는 형편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보유한 핵심 원천기술 특허기술료 수입 분야에서는 IT의 비중이 매우 크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IT강국’ 위치를 계속 유지하려면 핵심 원천기술 발굴을 통한 기술개발로 기술료 수입을 증대시키는 일이 최우선 과제다. 또한 첨단 IT제품의 지적재산권 확보와 함께 국제표준화를 연계하는 일도 병행돼야 한다. 세계적으로 글로벌 경쟁에 기반한 세계 최초·최고 기술만이 생존하는 ‘승자 독식’ 현상은 IT 분야에서도 올해부터 보다 더 심화되리라 예상된다. 와이브로(초고속 인터넷)와 지상파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우리나라 기업들이 핵심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 최초의 상용화를 통해 세계시장 선점이 가능한 품목이다. 또 지능형 로봇이나 전자태그(RFID), S/W 기술 역시 미래의 대표적 블루오션이다. 따라서 핵심 원천기술 개발을 통해 IT뿐 아니라 여러 관련 분야에서 경제·산업적 파급효과가 막대하리라 예상된다. 중국 등 IT 후발주자들의 추격과 미국·일본 등 기술 선진국들의 거센 도전이나 경쟁 속에서 우리가 살 길은 오직 핵심 원천기술 개발을 통한 기술료 수입 증대와 수출을 통한 세계시장 선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