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9

“2000만원 반지, 클릭 한번으로”…‘프러포즈 링’ 온라인 인기

산업 일반

고가의 주얼리 브랜드들이 온라인에 입성하면서 수천만원대의 웨딩밴드, 프러포즈 링 등 하이엔드 주얼리를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으로 반지를 구매하는 고객 중 남성이 여성보다 많았다. 온라인 명품 플랫폼 캐치패션은 상반기(1월 1일~5월 15일) 럭셔리 주얼리 판매 현황을 조사한 결과 주얼리 카테고리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8% 신장했다고 27일 밝혔다. 품목별 판매 비중은 반지(33.1%), 목걸이(29.2%), 팔찌(27.3%), 귀걸이(6.4%) 순이었다. 특히 같은 기간 반지 판매액은 200% 증가했고, 구매 고객 중 남성이 여성보다 많았다. 지난해 5월 15일부터 올해 5월 15일까지 반지 구매자는 남성이 58%, 여성이 42%를 차지했다. 엔데믹(풍토병) 기대와 결혼 시즌이 맞물리면서 고가의 프러포즈 링이나 웨딩밴드가 주얼리 전체 판매를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올해 캐치패션에서는 2000만원 상당의 스위스 명품 브랜드 ‘피아제’의 반지가 판매됐다. 프러포즈 링으로 유명한 해당 반지는 18캐럿의 화이트골드 소재에 다이아몬드와 블랙 세라믹이 화려하게 디자인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400만원이 넘는 프랑스 하이 주얼리 ‘메종 부쉐론’의 콰트로 미니 링 18K 골드 펜던트 목걸이와 300만원에 달하는 ‘펄스 비포 스와인’의 키트 사파이어 루비&14K 골드 시그넷 링 등도 모두 남성 고객이 구매했다. 캐치패션 관계자는 “고가 주얼리의 경우 오프라인에서 상품을 확인하고, 신뢰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구매하는 소비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공격적인 매스 광고 없이도 파페치, 마이테레사, 매치스패션 등 100% 정품만 취급하는 글로벌 파트너사가 많이 알려지면서 캐치패션에 대한 신뢰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채영기자kim.chaeyoung1@joongang.co.kr

2022.05.27 16:33

2분 소요
진짜 같은 합성 다이아몬드

산업 일반

외관뿐 아니라 열전도성, 전자 이동도, 경도 같은 물리적 특성에서도 천연제품 따라잡아 인조 합성 다이아몬드의 품질·연마(cut)·투명도가 갈수록 천연제품과 비슷해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업계에서 갈수록 더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고급 소비자 시장은 마지막 남은 미개척지다. 이 시장은 상당 부분 소비자들이 다이아몬드 제품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와 관계가 깊다.인조 다이아몬드 합성 방법은 새롭지 않다. 19세기 중반부터 과학자들이 그 기술을 연구해 왔다. 다이아몬드는 고온과 압력에 노출된 탄소 제품이라는 사실에 근거했다. 그러나 1950년대까지 실험실 환경에서 그 기술을 적용하는 방법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그 뒤 갈수록 진품처럼 보이는 합성 다이아몬드 제조법 3가지가 개발됐다. 이는 외관뿐 아니라 열전도성, 전자 이동도(electron mobility), 경도 같은 물리적 특성에도 적용된다. 그런 특성에선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그에 따라 합성 다이아몬드가 첨단 레이저 연마 도구로 갈수록 많이 사용된다. 발전소 같은 각종 산업용의 전자 응용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전체 공업용 다이아몬드 중 95% 이상이 합성 제품이다.합성 다이아몬드가 전통 산업에 제기하는 당장의 위협은 천연으로 속여 파는 제품들이다. 천연 다이아몬드의 연마와 광택 작업 인건비가 상승함에 따라 마진을 유지하려고 합성 제품을 천연 제품으로 위장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합성 제품이 15~25% 정도 싸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정도는 감당할 만한 위협이다. 합성제품 신속 판별기 같은 예방조치와 ‘천연다이아몬드품질보증’ 프로그램이 새로 도입됐다. 소매업체에 합성 다이아몬드의 명시적인 표시를 의무화하는 법률 관련 논의도 진행 중이다.더 큰 위협은 소비자가 의식적으로 천연제품 대신 합성 다이아몬드를 선택하는 데 따르는 시장 점유율 하락에서 비롯된다. 천연 다이아몬드 업계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s) 커넥션으로 아직도 시달린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분쟁 자금으로 활용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는 말이다. 합성 다이아몬드 업계는 ‘분쟁 무관(conflict-free)’ ‘윤리적’인 제품으로 마케팅하며 이 같은 틈새를 파고들었다.그러나 다이아몬드가 왜 그렇게 귀하게 여겨지고 보석 장신구 업계의 주축을 이루는지 핵심을 찌르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제품 가격은 항상 사람들이 지불할 용의가 있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이런 원리는 다이아몬드도 다르지 않다. 지난 수년간 우리 연구팀이 실시한 조사에서 가치는 성격상 다차원적임이 번번이 입증됐다. 구체적으로 사회적·개인적·기능적 가치의 3가지 중요한 차원이 있다.사회적 가치는 남들과의 관계에서 뭔가를 얼마나 가치 있게 인식하느냐를 나타낸다. 우리를 멋져 보이게 만드는가, 우리 이미지나 신분을 높여주는가 등이다. 개인적 가치는 우리의 바람과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 주는가를 반영한다. 그리고 기능적 가치는 제품을 얼마나 쓸모 있게 여기는가를 나타낸다. 우리는 제품을 구매할 때마다 이들 각각의 차원에 가중치를 다르게 부여한다.‘천연 vs. 인조’ 다이아몬드의 가치인식 측면에선 차이점이 뚜렷하다. 합성 다이아몬드가 공업적 용도(예를 들면 고급 정밀 도구) 면에서 훨씬 더 애용된다는 사실은 상당 부분 이 분야에서의 기능적 성격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그들은 비교적 저가에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때 합성 다이아몬드를 구입한다.그러나 소비자(그리고 특히 약혼반지 구매자)에겐 다이아몬드에 담긴 감정적 의미가 훨씬 더 크다. 실제로 전 세계 다이아몬드 공급을 독점하던 드비어스가 철저한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한 덕분에 다이아몬드의 인기가 급등했다. 드비어스는 대규모 캠페인으로 다이아몬드 약혼반지 수요를 창출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슬로건이 대표적이다.다이아몬드 마케팅 방식에 반영되는 강력한 감정적 요소는 기능적 가치로는 포착할 수는 없다. 따라서 거기에는 개인적 가치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 선물 받는 사람을 구매자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이아몬드 가격이 말해준다고 업체들은 홍보한다.다른 고급품과 마찬가지로 다이아몬드는 막대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대다수 소비자에게 다이아몬드는 단순소장품이 아니라 과시용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약혼반지로 구입할 경우엔 상대방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보여주려는 측면도 있다.합성 다이아몬드 업계에는 이것이 실질적인 장벽이다. ‘합성’이라는 용어 자체가 다이아몬드에서 연상되는 귀족적인 이미지를 깎아내린다. 이런 측면에서 합성 다이아몬드 업계는 이 시장을 공략하는 실질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분쟁 무관’ 다이아몬드라는 마케팅이 도움은 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천연 다이아몬드 업계가 공급망을 갈수록 엄정하게 조사해 분쟁지역 다이아몬드를 솎아내기 때문이다.합성 다이아몬드 업계는 앞으로 이 같은 감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그럴 수 있다. 그래서 합성 다이아몬드의 사회적인 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구입하는 사람이 긍지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 거기에는 한두 기업뿐 아니라 업계 차원에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그때까지 다이아몬드의 기능적 가치에 더 관심이 많은 실속파 소비자가 소규모의 합성 다이아몬드 시장을 형성할 것이다. 그러나 합성 다이아몬드가 주류로 올라서려면 사람들이 가진 사회적·개인적 가치 인식에 어필하는 마케팅을 전개해야 한다. 한편 천연 다이아몬드 업계는 시장 지배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폴라 슈클라

2016.12.12 11:54

4분 소요
영구적인 아이러니, DIY 문신

산업 일반

잉크 디자인을 이용한 피부 장식은 오랜 전통을 가진 인간의 관습이다. 1991년 알프스에서 발굴된 ‘얼음인간 미라 외치(Ötzi the Iceman)’는 전신에 50개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근대적인 피부 아트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1891년 토마스 에디슨의 전동 조각 펜을 개조해 문신 작업이 전동화됐다. 하지만 약 한 세기 동안 재봉 기계나 다름 없었다. 1초에 80~150번 피어싱을 해서 피부 속에 잉크를 주입했다.문신은 한때 선원·범죄자·마오리족의 문화였다. 서방의 반문화가 그 관습을 받아들여 현대화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기술혁신으로 문신의 가능성이 크게 달라졌다. 비가시광선(자외선과 적외선 등)에서만 보이는 동화상 야광 이미지들로 이뤄지는 액정 디자인, 그리고 전자파로 지울 수 있는 잉크가 등장했다. 한편 서방세계 유행 특구의 또 다른 구석에선 ‘DIY 문신(stick and poke, 바늘과 잉크를 이용해 직접 새기는 문신)’이 유행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가장 초보적인 방식이다. 원시적인 수작업 문신으로 유행의 최첨단 선도자 다수를 ‘외 치 미라’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40달러 정도에 DIY 문신 세트를 구할 수 있다. 내게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예전에 그런 문신 작업과 그 조잡한 결과 모두 여러번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교도소 밖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감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기술을 숙련할 시간이 많다. 사람들이 모터만 달려 있으면 무엇으로든 문신 총을 만든다. 이런 까닭에 VCR은 모두 케이스 안에 넣고 자물쇠를 걸어 둔다. 망가진 카세트 데크조차 반납해야 한다. 하지만 반납할 무렵엔 어느샌가 모터가 없어지고 비슷한 무게의 뭔가로 대체된다.그러나 카운티 교도소에선 ‘DIY’ 방식이 일반적이다. 재봉바늘, 실 그리고 잉크 비슷한 재료로 피를 보며 부리나케 작업을 해치운다. 그런 작업 수십 건에서 나는 망보는 역할을 했다. ‘아티스트’마다 나름의 처방이 있지만 공통분모는 탄소다. 체스 말이나 기타 플라스틱을 태울 때 그 위에 마분지 조각을 갖다 댄다. 마분지에서 검댕을 긁어내 보통 샴푸와 타액을 포함하는 독자적인 혼합물과 섞는다. 그 결과는 사람들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삐뚤빼뚤한 선, 불분명한 글자, 그리고 만인의 감염이다. 하지만 분명 영구적이다.니콜 웨스트는 Stickand Poke TattooKit.com의 주인 이다. 친절하게도 문신 세트 하나를 내게 보내줬다. 40달러짜리 제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볼 수 있었다. 사이트를 개설한 지 불과 2년. 정통성을 찾는 최근의 유행을 공략하고 있다. 그 세트는 미국 전역 심지어 멀리 말레이시아까지 팔려나갔다. 그러나 웨스트는 고객들이 모두 어떤 특정한 유형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DIY 문 신을 하는 사람은 종종 어떤 대의를 주장하는 운동가들 인 경우가 많다. 완전 채식주의자(vegans), 사회정의 광신자, 동성애 전사 등이다. 15세 청소년으로 소년원에서 재봉바늘과 펜 잉크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그 세트는 옛날 황금기의 공예품으로 꾸며졌다. 바늘 2개, 약간의 잉크, 다량의 거즈 등 빈약한 내용물을 정성들인 포장으로 보완한다. 사용법이 적힌 종이는 직접 칼로 잘라 목판 인쇄한 듯하다. 추천 디자인(단순해야 한다)은 복고풍 닻과 하트다. 그리고 잉크 소재의 완전 채식주의를 보증한다는 사실이 많은 구매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대체로 고객 중에 소년원 수감자들은 거의 없다. 대다수가 대졸 학력자다. 하지만 감방 스타일의 문신을 몸에 새긴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어필한다. 그들은 유행을 앞서간다. DIY 문신은 아이러니의 표현이다. ━ 저질 문신의 미학 수형자들은 문신을 좋아한다. 따라서 처음 입소 절차를 밟을 때 문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더니 거짓말한다고 여겨 간수들이 나를 발가벗겼다. 출판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2년이 채 안 되는 헤로인 중독으로 주머니 칼을 들고 얼뜨기 강도 짓을 했다. 2003년 당시 신문들은 나를 “미안해 하는 강도(the apologetic bandit)”라고 불렀다. 강도 짓을 후회하는 빛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사는 내게 10년 형을 선고했다. 철창 신세를 지던 10년 동안 12개 교도소를 거쳤다. 문신이 없는 내 피부는 내가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였는지 말해주는 무수한 사례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일부 수형자는 범죄조직의 요구로 문신을 새겨 넣는다. 나머지는 해골·용·단검으로 더 터프한 인상을 주려 한다. 그러나 더 개인적이고 가슴 뭉클한 인간적인 차원에서 수형자들은 외모 변형을 통해 인간성 몰수를 거부한다. 그들은 창고에 보관되는 물건 취급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인간과 문신 그 자체가 되려 한다. 감방 수칙 위반으로 엄한 처벌을 받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은 수감의 본질을 이루는 인간성 상실에 싸우기 위해 문신을 이용한다. 감방 입소 절차는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정체성의 외면적 상징을 철저히 벗겨낸다. 먼저 옷을 벗기고 죄수복으로 갈아 입힌다. 이어 머리를 면도칼로 빡빡 민다. 끝으로 번호가 주어진다.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 남겨진 정체성이다. 번호와 몸뚱이. 번호는 바꿀 수 없다. 보디빌딩과 문신, 심지어 기본적인 피어싱도 이 같은 정체성 강탈에 대한 작은 반항이다. 어떤 아이러니도 없다.현대적인 문신은 기본적으로 뉴욕의 바워리 거리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그 기법은 1961~1997년 뉴욕시에선 불법이었다. 세인트마크스 플레이스에 자리잡은 ‘펀 시티 태투스’는 1976년에 문을 열었다. 20년 동안 반 불법적으로 영업해 왔다는 의미다. 문 앞에 잠재 고객이 전화를 거는 부스가 있었다. 검문을 통과하면 커피 숍을 통해 뒤편으로 들어가 아티스트를 만난다. 요즘엔 그냥 안으로 들어가 멜리사 가르시아에게 DIY 키트에 관해 물으면 된다. “1997년 타투샵이 합법화됐기 때문에 DIY 키트로 직접 문신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직접 하는 문신은 쿨해 보이기는커녕 정통성과는 상극이다. 오히려 가식적이다.” 힙스터(인디 음악과 비주류 패션 취향을 좇는 도시 거주 밀레니엄 세대) 하위문화를 비난하는 일반적인 주장이다. 그만한 여유가 생겼을 때 팹스트 블루 리본 맥주를 마신다면 그것도 가식일까? 또는 가볍고 세련된 프레임 대신 두터운 범생이 안경을 고른다면? 아이러니의 명분으로 한다면 가식적이 아니다. 물론 DIY 문신의 경우에는 그 아이러니가 영구적이다.DIY 문신은 정확성이 떨어지는 기술이다. 몇 년 전 뉴욕주 북부에 있는 그린헤이번 교도소 마당에서 ‘재봉바늘과 실’을 이용한 문신 작업 중 망을 봤다. ‘아티스트’ 태투 밥은 도축업자 출신으로 돈만 주면 누구에게나 어떤 문신이든 해줬다. 고가의 마약복용 습관이 있었으며 2연속 종신형(two life sentences)을 받았다. 블러즈 갱단의 한 조직원이 목 뒤에 글자를 새겨 넣고 있었다. 밥은 들킬까 두려워 몹시 서두르고 있었다. 이 작업을 하다가 걸리면 1년 독방신세를 져야 한다. 작업의 대가는 담배 2갑이었다. 젊은 조직원이 내게 어때 보이냐고 물었다. 아주 근사하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내 목소리에 주저하는 느낌이 있었던지 어떤 글자냐고 재차 물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알 길이 없었다. 다행히 밥이 때맞춰 입 모양으로 ‘G’라고 알려줬다. 거짓말로 그 친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그의 친구들이 진실을 말해줄 때까지는 말이다. 나는 아내와 DIY 키트를 사용해 봤다. 내 안의 목소리는 이디시어(유대인 언어) 억양으로 하지 말라고 속삭였다. 세계의 많은 문화가 종교적 의미의 상징으로 문신을 이용해 왔다. 문신의 영속성은 영적인 의미로 충만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다른 형태의 외모 변형과 함께 문신을 극히 혐오한다. 유대 정교회에선 하느님 자신이 선택한 사람의 몸에 아무런 장식이 없기를 바란다고 믿는다. 따라서 수세기 동안 잉크로 외모가 변형된 나 같은 사람은 유대인 공동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 그와 같은 금지령은 1945년 수정돼야 했다. 팔에 독일 숫자가 새겨진 강제수용소 생존자들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자가 문신한 유대인들은 이 같은 냉혹한 역사의 수혜자들이다. 문화적인 공기도 바뀌었다. 근대 서방 문화에선 문신이 자기 표현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졌다. 더는 범죄나 밑바닥 삶을 연상시키지 않는다. 문신이 더는 반항적이지 않다면 어쩌면 저질 문신(bad tattoos, DIY 작업 결과인 조잡한 문신)이 그런 기능을 할지도 모른다.콜비 벡이 자신의 자가 문신 사진을 내게 보냈다. 그런 작업을 하게 된 배경 설명을 덧붙였다. “DIY 방식으로 직접 문신할 필요가 있었다. 돈이 많이 드는 유명 아티스트나 작업의 품질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 속의 내 자화상을 뛰어넘으려는 목적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로 자신을 평가했었다. 터무니 없는 소리 같지만 사실이다. 마침내 내 앞에 다른 사람을 두지 않게 됐을 때 내가 원하는 어떤 문신이든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을 나 말고 누가 더 잘 새겨 넣겠는가? 사람들이 동네 문신 시술소를 찾아갈 능력이 있으면서도 정통성이나 길거리 유행감각(street cred)을 추구해 DIY 방식을 선택한다고 본다. 내 자신을 말해주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그 결과는 ‘베키’가 안에 쓰여진 불안정해 보이는 하트다. 뉴욕의 라이커스 아일랜드 교도소에서 쉽게 할 수 있었을 성싶다.DIY 문신을 하는 사람들은 완전 채식주의자 잉크와 DIY 정신을 강조한다. 자신들이 교도소에서 새겨 넣었다고 오인 받을 만한 문신을 하고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필시 의식할 듯하다. 그것을 오히려 즐길지도 모른다. 자가 문신의 본질은 정통성이다. 필시 벡 같은 사람에게는 해방감도 주는 듯하다. 반면 프로들은 그것을 가식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요즘은 보이지 않는 인터넷이 사방 천지에 소용돌이 치는 시대다. 아바타와 디지털화된 존재가 세상 풍경을 이룬다. 고통과 피를 수반하는 약간의 원시성은 우리가 인간임을 깨닫는 데 필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일 보는 일상적인 모습도 아니다. 바늘로 자신의 피부를 찔러 잉크를 주입하는 특별한 유의 자의식을 가진 모험적인 호모 사피엔스다. 아름다움을 원하는 건 아니다. 그건 돈으로 살 수 있다. 스스로 정통성을 부여한다. 영구히.많은 기회를 흘려 보낸 뒤 이제 나도 문신자 대열에 합류했다. 20년 전 맨하튼 동남부에 있는 내 아파트 거실에서 ‘문신 파티’를 열었다. 펑크 로커들이 서로 문신을 새겨줬다.당시에는 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했다. 감방 생활 10년 동안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내 판화집(아트북 출판사 타센 펴냄)이 다른 사람들의 모델로 사용될 때도 ‘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전의 어느 날 밤 아내가 바늘을 집어 들었을 때 마침내 문신을 받아들이고 아내에게도 똑같이 새겨줬다. 지금은 우리 발에 짝을 이루는 ‘커플’ 점 문신을 갖고 있다. 배경을 모르면 거의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작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둘 만의 비밀 의식이 치러졌다. 우리의 점 문신을 보여줄 때 우리는 반어적으로 세련됨을 과시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풍자는 포즈에 있다. 우리는 이제 결혼반지와는 달리 변기 속에 쓸려갈 수 없는 뭔가를 공유한다. 아이러니는 눈 녹듯 사라지고 혈거인과 그의 짝이 모습을 드러낸다.‘얼음인간 외치’의 50개 문신은 그에게는 모두 뭔가를 의미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뭔지 결코 모를 것이다. 갱단 조직원 목 뒤의 흐릿한 글자도 의미가 있었다. G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나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내와 내 왼발의 커플 점 문신도 역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우리는 안다. 바늘 아래선 문명의 화장이 벗겨지고 민낯이 드러난다. 교도소 마당에서 스스로 바늘을 찌르든 아내가 바늘을 휘두를 동안 어금니를 깨물고 있든 마찬가지다. 정통성을 좇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성취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완벽한 방식인지 모른다. 우리는 너무 애쓰지 않았고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다.

2014.11.03 11:26

8분 소요
저속하지만 멋진 미술가

산업 일반

앤디 워홀의 후계자로 불리는 데이미언 허스트는 미술품의 마케팅과 구매를 작품의 일부로 통합했다 런던의 한 화려한 거리에 있는 우아한 건물 안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미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데이미언 허스트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보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한 선반 위엔 앤디 워홀의 회화 ‘전기의자’가 놓여 있고, 벽난로 선반 위엔 프랜시스 베이컨의 주요작 한 점이 걸려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제프 쿤스의 작품도 눈에 띈다. 허스트는 돈이 아주 많은데다(filthy rich) 이 작가들을 영웅시하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허스트가 사람들이 예상할 만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남자다움을 과시하지(whip out his willy)도 않고 방귀를 뀌거나 욕지거리도 하지 않았다(인터뷰하는 동안 욕설이 네 번 정도 튀어나왔지만 그의 고향 리즈에서는 목사도 그보다 더 욕을 많이 한다). 또 기자의 질문에 무례한 반응을 보이지(head-butt)도 않았다. 그의 옷은 모두 검은 색이었고 손가락에 해골 반지를 끼고 있긴 했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음반 제작자나 레스토랑 주인들 사이에서 아주 흔한 스타일이다. 한때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들이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망나니(yob)는 온데간데 없었다.“지난 5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허스트는 말했다. “컨디션도 아주 좋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1990년대와는 대조적이다. “이전에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지금 와 생각하니 미친 짓처럼 보인다. 그 시절엔 화도 잘 냈다.” 그는 런던의 사무실에 품위있게 앉아 침착하게 이야기했다(그의 집과 가족은 멀리 데번에 있고, 약 200명의 직원을 거느린 그의 스튜디오들은 영국 남부 곳곳에 흩어져 있다).“난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47세가 된 지금도 여전하다.” 허스트가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16세와 11세, 6세의 세 아들을 두었고 이 아이들의 어머니와 1991년부터 동거해 왔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빼고는 중년의 나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젊은 시절 거부했던 뭔가(something his younger self had always refused)를 받아들이게 됐다는 사실이 세월의 흐름을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회고전(4월 4일 개막)이 그 예다. 그는 예전에 친구 데이비드 보위에게 “테이트에선 절대로 전시회를 열지 않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곳은 이미 세상을 떠난 미술가들을 위한 곳이다.”어쩌면 그 작고한 미술가 중 한 명이 허스트의 모습으로 재림했는지(has found a second coming in Hirst)도 모른다. 허스트는 팝아트계에서의 높은 위상과 미술시장에서의 엄청난 점유율 덕분에 앤디 워홀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후계자로 꼽힌다. 그는 또 미국 작가 잭 밴코스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술과 미술가, 작품의 가격을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이라는 하나의 체계 안에 통합시킨 워홀의 전통을 이었다. 밴코스키는 2009년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 ‘팝 라이프(Pop Life)’의 기획에 참여했다. 이 전시회에서 그는 “워홀은 1960년대에 이미 단순히 그림을 통해 상품화된 문화를 보여주는(simply showed us our commodified culture) 기존의 팝아트에서 미술품의 마케팅과 구매, 판매를 작품의 일부로 통합한 새로운 종류의 예술로 도약했다”고 주장했다. 이 분야에서 워홀은 허스트에 비하면 초보자(a tyro)에 불과했다. 현재 허스트는 미술가로서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이 말은 모순처럼 들릴지 모른다. 오늘날 허스트의 작품 대다수는 그가 20년 전 내놓았던 작품의 반복(riffs)이기 때문이다. 허스트는 1992년 이미 상어와 양을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근 작품을 선보였고 도트 페인팅(색색의 점으로 이뤄진 그림)과 스핀 페인팅(빙글 빙글 도는 원을 중심으로 한 그림), 나비 콜라주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해 런던 서펀타인 갤러리의 공동관장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지난 25년 동안 가장 위대한 미술품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허스트의 1990년 작품 ‘천 년(A Thousand Years)’을 선택했다. 커다란 유리 상자 안에 잘린 소머리가 놓여 있고 그 피를 먹고 사는 구더기(maggot)와 거기서 부화한 파리(결국 극초단파 살충장치에 의해 죽는다)가 득실대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허스트의 첫 번째 걸작이자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는다.허스트의 초기 작품들은 그 하나 하나가 미술품의 위대한 전통을 잇는 개별적인 작품으로 인식됐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귀중한 물건(precious objects meant to impress)이라는 기본적인 기능 면에서 옛 거장들의 회화나 조각작품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것들은 기존의 많은 그림처럼 “시간을 초월하는(timeless)” 주제를 다뤘기 때문에 미술의 본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으로 보기 어려웠다. 한때 최고의 허스트 수집가였던 우크라이나의 갑부 빅토르 핀추크는 허스트의 장엄하고 숭고한 주제에 끌려 그의 작품을 사들인다고 말했다. “허스트는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에서 다룬 천지창조와 신이라는 주제와 유사하다.” 하지만 반(反)허스트파인 코톨드 인스티튜트의 줄리언 스탤라브래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허스트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universal values)는 안일하고 공허하며 진부하다. 그가 같은 경향의 작품을 되풀이해서 내놓는데도 사람들이 별로 싫증을 내지 않는 게 놀랍다.”하지만 지난 5년 동안 그 개별적인 작품들이 모두를 포함하는 하나의 거대한 작품 속에 통합됐다. 허스트의 소재는 이제 파리나 상어, 또는 점이 아니다. 타블로이드 언론과 경매시장, 수집가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독특한 반응(his art’s peculiar reception)이 그의 소재가 됐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난 예술이 ‘모나리자’라는 작품과 그 그림이 들어있는 우편엽서 사이의 어디엔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다. 워홀은 미술의 대중화를 꽤 괜찮은 일로 보이게 만들었다. ... 미술가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자신이 본 것을 후대에 보여줘야 한다.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더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인다.” 2007년 허스트는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백금 해골 조각상을 제작하고 작품가를 1억 달러로 책정했다. 이렇게 해서 이 작품은 정신 나간 미술계의 현황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돈은 작품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일 뿐 아니라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고 허스트는 말했다.“전에 (미술에서) 돈은 사랑만큼 중요하며 포착하기 어렵다(elusive)고 말한 적이 있다. 포착하기 어렵다는 말은 손에 넣기 어렵다는 의미뿐 아니라 그 개념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워홀은 미술 사업도 위대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허스트는 오늘날의 자유분방한 자유시장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된 워홀이다.하지만 워홀과 달리 허스트는 자신의 실체를 솔직하게 드러낸 적이 없다(he’s never put his real self on the line)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건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신문을 읽으면서 ‘신문의 관심을 끌 만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 난 전시회 개막식에 가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노숙자처럼 보이는 걸 좋아했다.” 그는 신문의 지면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to seize column inches) 노력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모두 팬을 확보하기 위한 일이었다.”가장 최근에 허스트의 팬을 끌어모은 행사는 지난해 가을 열린 ‘스팟(Spot)’ 프로젝트였다. 세계 각지의 11개 개고시언 갤러리에서 300여 점의 도트 페인팅 작품을 전시한 이 프로젝트에서는 허스트의 도트가 새겨진 머그와 T셔츠도 함께 팔았다. 평론가들은 이 프로젝트가 무의미하며 정통 미술에 대한 배신행위(empty and sold-out)라고 비난하며 격분했다. 하지만 허스트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잘 나타내주는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던 성장과 관계가 있다. ... 전시회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나말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미술가가 또 있을까? 또 개고시언말고 나와 함께 이런 일을 벌일 갤러리가 또 있을까?” 그의 대형 작품(mega-art)들과 대규모 화상(mega-dealer) 개고시언 갤러리는 “멋지게 잘 들어맞으면서도 저속한 방식으로(in a kind of cool way, but in a gross way as well) 손을 잡았다.”2008년 9월 15일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열린 허스트의 경매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던 바로 그날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허스트의 작품 200여 점이 총 2억 달러 가까이에 팔렸다. 하지만 이 경매는 거기서 팔린 작품보다 그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였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녔다. 당시 소더비 경매를 총괄했던 샤이엔 웨스트펄은 “경매 자체를 모든 것을 포함하는 작품(the all-encompassing work of art)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고 말했다(물론 이 경매는 허스트의 자산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됐다. 그의 자산은 약 3억 달러로 알려졌다). 서펀타인의 공동관장 오브리스트는 “허스트의 경매는 그 자체가 회화나 조각작품과 동등하게 미술사의 일부가 된 유일한 경우였다”고 말했다. 미술의 한계를 새롭게 정의한 사건이었다.허스트의 이런 경향은 그의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런던 골드스미스대에서 허스트를 가르쳤던 개념미술가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은 그가 영국 사회의 밑바닥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술을 포함해) 상류층과 관계된 모든 것에 저항하는 근로계층 문화에 진정으로 동화되진 않았다. 그런 배경 덕분에 허스트는 기성 미술계의 보수적인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미술 작업을 할 수 있었다.허스트의 어머니는 꽃장수였다.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이 어렸을 때 늘 우리와 아버지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고 허스트는 회상했다. 허스트는 미술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기질(her art bug)을 이어받았다. 고교 시절 그는 그림을 자주 그렸다. “사람들은 내가 그린 그림을 좋아했고, 난 그게 좋았다.” 허스트는 또 그 시절 여자들과 주로 어울렸다고 회상했다. “남자친구들은 나를 게이라고 놀렸다. ... 예술적 성향은 남성적인 기질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는 뜻이 맞는 친구 몇 명을 사귀게 됐다(found a tiny circle of like-minded peers). 그 친구 중 한 명이자 현재 허스트 미술 사업체의 간부인 휴 앨런은 이렇게 회상했다. “미술은 삶의 공백을 메워줬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꿈을 꾸게 했으며 희망과 흥분으로 가득찬 세계였다.”허스트는 리즈대의 1년짜리 미술 과정에 등록했다. “실업수당 받는 신세를 면하려고(to get me off the dole) 그 과정에 들어갔다. ... 미술은 직업으로 삼기엔 너무 재미있는(too much fun to be a career) 분야였다.” 하지만 과정이 시작되자 배움에 대한 욕구가 불타 올랐다. “리즈의 미술도서관엔 없는 책이 없었다. ‘이 책들을 모두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후 허스트는 런던으로 가서 빈 집에 불법으로 거주하면서 막노동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골드스미스대에 들어갔다. “당시 그의 작품은 골드스미스대에 다니는 다른 학생들의 작품보다 훨씬 더 평범했다(much tamer)”고 크레이그-마틴은 말했다. “당시 자신의 감각보다는 미술사의 과거에 더 충실한 작품 같았다.”허스트는 1988년 ‘프리즈(Freeze)’라는 제목의 팝업 전시회를 기획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동료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선보인 전시회였는데 과감한 작품들(여전히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의 조각 작품은 제외)뿐 아니라 런던의 고루한 갤러리 체제를 탈피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크레이그-마틴은 “허스트는 늘 미술계 자체에 호기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미술뿐 아니라 미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졌다.”허스트는 미술가 겸 흥행업자의 역할(the role of artist-impresario)을 떠맡았다. 그것은 곧 그의 작품 주제가 되기도 했다. 기자가 허스트를 찾아갔을 때 보여준 진지한 사색가와 명석한 사업가로서의 면모는 ‘데이미언 허스트’라는 작품 뒤에 숨은 P T 바넘(19세기 미국의 유명한 흥행업자)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미국 출신인 크레이그-마틴은 허스트가 “영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심술궂고(stroppy) 건방진(cheeky)’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타고난 선동가(provocateur)다. 무의식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비난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난 런던에서 젊은 미술계 인사 3명에게 허스트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엔 모두 터놓고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미술가 데이비드 레이먼드 콘로이(33)는 “우리 세대의 영국인들 사이에선 허스트를 좋게 생각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untenable)”고 말했다. “정통 미술에 대한 일종의 배신행위(selling out)로 간주되는 듯하다.” 화상 데이비드 호이랜드(34)는 “허스트가 우리 갤러리에서 작품을 사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큐레이터 폴 피어로니(31)는 허스트가 “현대미술의 좋지 않은 점을 모두 합쳐놓은 존재(the embodiment of everything that’s wrong with contemporary art)”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대처의 후손이다. 인간의 사업적인 본질을 가장 우선시하는 신진보주의의 정수다.”하지만 갑자기 (허스트를 헐뜯는) 자동반사 반응이 멈추기라도 한 듯(as though their knees have finished jerking) 그들은 런던 미술계를 변화시킨 허스트의 행동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피어로니는 “허스트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아주 따뜻한 감동이 밀려온다”고 말했다. “그의 초기작 ‘천 년’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영국 북서부 랭카셔의 베리 출신으로 현재 런던에서 활동하는 호이랜드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 런던 미술계에 북부 출신은 없었다. 북부의 근로계층 출신은 확실히 없었다. ... 허스트가 없었다면 난 런던에서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즈나 돈캐스터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을 것이다.”콘로이는 좋든 싫든 허스트는 무시하지 못할 존재라고 말했다. “그의 사업 모델이 참 흥미롭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미술시장의 복잡한 생리(the machinations)를 다룰 줄 안다.” 콘로이는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에 대해 썩 내키지 않는 듯한 찬사(grudging admiration)를 보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충격적인 작품을 만든 다음 그것을 자신에게 팔다니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번역 정경희

2012.05.03 11:19

9분 소요
“창고 부족할 정도로 금 쌓여”

산업 일반

▶귀금속의 ‘메카’인 서울 종로 금은방 시장에 황혼이 지고 있다. 달러 약세와 더불어 금값이 치솟고 있다. 주식도 폭락하고 부동산 경기도 좋지 않다. 금을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다시 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귀금속 시장 불황의 늪은 깊어만 간다. 국내 귀금속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종로 귀금속 상가를 취재했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받은 금반지를 한강에 던져버리는 일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요즘은 선물 받은 금반지를 다시 파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재테크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반지를 처음 샀을 때보다 값이 서너 배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흔적들마저 실용적 가치로 환산하는 세태를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금은 예나 지금이나 ‘돈이 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금값이 올라가는 바람에 세상은 바야흐로 황금광 시대(黃金狂 時代)가 되어버렸다. 금이라면 젖먹이 어린애까지 귀가 번쩍 뜨이는 요즘! 너나없이 속이 상하면 “에잇! 빌어먹을 금광이라도 하나 발견해야지!”하고 금광만 발견하는 날에는 세상만사 모두 풀릴 줄만 알고 덤비는 세상이다. - 낙천성, 『당세 협잡 풍경』, 별곤곤, 1993.3.2, 『황금광 시대』,전봉관, 살림출판사에서 재인용. 황금광의 ‘광’자가 미칠 광(狂)자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 당시에도 ‘죽은 부모의 금니조차 수습할’ 만큼 금에 대한 욕망은 대단했다. 금값이 쌀값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 농부들은 낫 대신 곡괭이를 들고 금광을 찾아다녔다. 최근엔 금값이 다소 주춤하지만, 몇 년 전에 비하면 많이 비싸졌다. 달러 약세와 더불어 금의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상황만 보면 다시 황금광 시대가 올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반대다. 동네 금은방은 눈에 띄게 줄었고, 한국 귀금속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종로 귀금속 상가의 영업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주 3일제를 해도 수입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나돈다. 귀금속 시장의 불황은 10년 전부터 시작됐다.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데다 사회 양극화마저 심해지면서 장신구로 금을 살 수 있는 계층이 급속히 줄어든 탓이다. 요즘은 거의 철퇴를 맞은 상황이다. 3년 전인 2005년에 비해 귀금속 제조업체와 전국 도매업체, 종사자가 30~35%로 감소됐다. 돌잔치나 회갑, 칠순 잔치에도 금을 선물하는 예는 극히 드물어졌다. 몇 년 전 3.75g(1돈)에 5만원가량 하던 금반지는 지금 12만원이 넘는다. 잔치 때는 귀금속 대신 현금을 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고, 자연히 금은방을 찾는 손님도 줄었다. 동네에서 금은방을 찾기가 전당포를 찾는 것만큼 힘들어졌고, 종로 귀금속 상가 뒷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대로변 매장은 군데군데 손님이 있었지만, 실제 구매자는 거의 없다고 한다. IMF 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금속 매장을 10년째 운영하는 박경식(54)씨는 “잘나갈 때에 비해 매상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가장 경기가 안 좋다던 IMF 때도 귀금속은 장사가 잘됐어요. 낮이든 밤이든 2층에서 골목길을 내려다보면 사람 머리밖에 안 보였다고요. 근데 지금은 훤해요. 여기 돌아다녀 봤죠? 다 일찍 문 닫고 들어가요. 폐업하는 사람도 있고. 소매상이 안되니 도매상도 안되고, 또 공장도 안되고. 종로 귀금속 시장 전체가 죽는 거지요.” 귀금속은 경기에 가장 예민한 제품이다. 경기가 안 좋으면 제일 빨리 시장이 죽고, 경기가 살아나도 제일 늦게 반응이 온다. 한마디로 ‘타격은 빠르고, 회복은 더딘’ 것이다. 종로에서 장사하다 강남으로 가게를 옮기는 사람도 있다. 소득 수준이 높은 강남에 구매자가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강남 역시 고급 매장을 제외하고는 장사가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외국 제품이 주를 이뤄 실제 한국 귀금속 시장은 거의 죽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약을 먼저 했다가, 금값이 올라 손해를 봐야 하는 일도 있어요. 반대로 금 값이 내려 일찍 계약할 걸 하고 후회하는 손님도 있고. 매일 금 시세가 달라지니 그런 일도 생기죠. 그것도 일부고, 사려는 사람이 워낙 없으니….” 서울 근교 금은방은 물론이고, 지방은 더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가격에 인건비까지 포함해야 하니 물건 값은 더 비쌀 수밖에 없다. 인터넷 쇼핑몰이 활성화되면서 금은방을 직접 찾는 사람이 줄어든 것도 동네 금은방이 어려움에 처한 한 원인이다. 종로 일대는 대로변에 위치한 귀금속 소매상이 있고, 골목 안쪽에는 소매상을 상대하는 도매상, 그 뒤로 도매상을 상대하는 귀금속 공장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원남동 일대까지 합하면 100여 개가 넘는 공장이 있다. 여기서 전국 물량의 80%가 생산된다. 귀금속 시장이 어렵다는 것은 문을 닫는 공장이 급격히 늘어나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골목 여기저기 공장을 임대한다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수퍼마켓에 담배를 사러 나온 공장 기술자 이명호(35)씨는 오래된 불황 탓인지 일거리가 없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아침부터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어요. 거의 매일 그래요. 주문이 워낙 없으니까. 원래 우리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3명이었는데, 지금은 저 혼자예요. 일이 없으니 기술자들도 월급 받기 미안하고, 사장도 마냥 데리고 있을 수 없으니까 내보내는 거죠. 경기가 살아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답답하죠. 다들 먹고살기도 힘든데 금반지 사라고 누구한테 말해요. 못하지.” 타격은 빠르고 회복은 더딘 금 시장 이명호씨에 따르면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공장도 언제 폐업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이 없을 땐 그냥 출근하지 말라는 사장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공장을 내놓아도 귀금속 공장 외에 다른 사업을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업종 전환도 힘들뿐더러, 요즘은 금 보관할 창고가 부족할 정도로 금이 쌓이고만 있어요. 이것도 골칫거리지. 보관하기 쉬운 물건도 아니고.” ‘나까마’라 불리는 중간상인들은 도매상과 소매상을 연결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이들은 검은 파우치를 들고 골목 여기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34년 동안 종로에서 중간상인 일을 하는 이태경(63)씨도 바쁘게 골목을 오가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일이 없다고 가만 있을 수는 없잖아. 계속 돌아다니고는 있는데, 정말 일이 없어. 원래 내가 기술자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나까마를 시작했는데, 올해가 제일 어려운 것 같아. 내 조카도 여기서 기술자로 일하는데, 얼굴이나 볼까 해서 찾아갔더니 오늘은 출근도 안 했더라고. 여기가 이런데 동네 금은방은 더 어렵겠지.” 일거리가 없어진 것은 금값이 상승한 탓도 있지만, 수출 시장을 중국에 빼앗긴 것도 원인이라고 한다. 한때는 중동이나 아프리카로 수출되는 귀금속이 많았지만, 지금은 중국의 값싼 인력에 밀려 수출 길이 막힌 것이다. “근래 잘되었던 해는 88년 올림픽 때와 IMF 때야. IMF 때는 잠깐 휘청거리다가 다시 시장이 살아났어. 금 모으기 운동을 할 때는 일당을 10만원이나 주고 국가에서 일을 시켰다니까. 그 당시 기술이 좀 좋던 애들은 일본으로 가기도 했어. 워낙 한국 사람들이 부지런하니까 일본에서도 인정을 받았지. 환율 탓도 있지만, 현재는 일본 시장도 많이 죽어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애들이 많아졌어.”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모방한 짝퉁 상품을 시장에 팔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범죄의 유혹을 쉽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아는 사람이 몇 명 붙잡혀 들어갔는데, 한몫 잡는 게 벌금을 물거나, 잠깐 들어가서 사는 것보다 나으니까, 걔들이 쉽게 쉽게 하게 되는 거지.” 서울시에서는 종로 귀금속 상가 일대를 외국인 관광특구로 만들자는 상가 입주자들의 의견을 좇아 시행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관광특구는 시장 활성화의 뾰족한 수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종로 귀금속 상가뿐만 아니라 그나마 영업 중인 동네 금은방들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귀금속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소득 수준이 특별히 나아지지 않는 한 금은방의 몰락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2008.07.21 10:38

5분 소요
Periscope

산업 일반

The Jihad Opens a Third Front 파키스탄 무장세력 이제는 이란까지 위협 파키스탄의 이슬람 무장세력은 오랜 세월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에 불안정의 씨앗을 뿌렸다. 이제는 세 번째 나라에 주목한다. 바로 이란이다. 지난달 이란 국경에서 차량폭탄이 터져 13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지난주 이란 경찰 4명이 파키스탄 국경과 인접한 네고르에서 살해됐는데 범인들은 파키스탄으로 도망쳤다. 이란 정부는 발루치족의 과격단체인 존돌라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파키스탄 정부가 묵인했다고 비난했다. 발루치족은 소수민족 중 하나로 이란과 파키스탄 두 나라 모두에 거주한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이끄는 파키스탄 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이란은 국경지대에 치안대 파견을 늘리고 여행자와 교역품의 감시를 강화하면서 700㎞에 달하는 국경 울타리의 건축을 서둘렀다. 파키스탄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악명 높은 파키스탄 치안대가 국경을 넘나드는 지하드(성전) 전사들을 도와준 게 이번이 처음일 가능성도 매우 낮다. 요즘 테헤란에 떠도는 음모이론에 따르면 무샤라프의 친밀한 동맹국이자 이란의 최대 적인 미국이 존돌라를 지원하는 주범이다. 이란의 강경파인 무스타파 푸르 모하마드 내무장관은 미국 정보요원들이 이란 반군과 만났다고 주장했다. 거기다 최근 파키스탄의 한 야당 정치인은, 지난달 일어난 폭발사고가 이란에서 출발해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로 들어가는 수십억 달러짜리 가스관의 건설공사를 막기 위해 미국이 벌인 책략 중 하나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논평을 거부했다. 이 모든 사정으로 인해 무샤라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파키스탄의 무법지대인 발루치스탄과 그에 인접한 부족 거주지역들은 아프가니스탄, 미국, 파키스탄뿐 아니라 얄궂게도 미국의 적인 이란까지 위협한다. 이런 급진파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위험할 정도로 모호하다. 이렇게 다양한 친구들에다 국경 곳곳에서 불안한 소요가 벌어지면서 무샤라프 대통령은 자기 집 뒷마당에서 말썽을 부리는 저항세력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지경에 빠진 듯하다. 그들은 역내의 모든 구성원뿐만 아니라 무샤라프 본인까지 위협한다. RON MOREAU and ZAHID HUSSAIN Cleaner Carats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팔지 않는다 청혼을 하려는 사람들은 약혼 반지하면 언제나 4C를 생각한다. 연마(cut), 투명도(clarity), 색(color), 중량(carats). 이제는 C가 하나 더 늘었다. 다섯 번째 C는 바로 정치적 올바름(PC : Political Correctness)이다. 티파니&Co, 벤 브리지, 제일스 같은 유명회사를 포함한 19개 보석 회사는 ‘더러운 황금, 금지(No Dirty Gold)’ 캠페인을 벌인다. 보석 거래가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캠페인 참가자들은 채광 작업은 금반지 하나당 20t의 폐기물을 생상하고 식수를 오염시키며 지역의 거주민들에게서 삶의 터전을 빼앗는다고 말한다. 정치적 올바름의 기류는 지난해 12월 개봉된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의해 촉발됐다.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벌어지는 약탈적 보석 거래를 다룬 영화다. ‘깨끗한’ 캐나다 다이아몬드와 재활용 금을 판매하는 Brilliantearth. com의 판매는 지난해 세 배 넘게 증가했다. CEO 베스 거스타인은 다이아몬드 구매자들이 이제는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매일 요가를 하고 유기농 아니면 먹기를 거부하는 그런 채식주의자만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다.” TheKnot.com 같은 결혼 관련 상품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보석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증가일로라고 사이트 편집자 칼리 로니는 말했다. “이미 반지를 갖고 있는 여성들도 그 반지가 어떻게 자기 손까지 들어왔는지 알고 싶어한다. 예전에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환경에 대한 고민이 무시됐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ALICIA BARNEY THE DEBUNKER 짐바브웨 군부 독재 막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짐바브웨를 구제불능 국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의 소속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군부의 핵심 지도부와 무가베의 자누-PF당 의원들은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려는” 무가베의 시도를 막으려 한다. 선거 동시실시는 무가베가 독재를 연장하려는 속셈의 일환이다. 오랜 세월 서로 반목했던 야당들도 정치적 견해차로 뒤로 하고 무가베 진영 내부의 개혁주의자들에게 손을 뻗친다. 만약 이들이 무가베의 움직임을 중단시키고 자유롭고 공평한 선거에 합의한다면 세계는 제재 조치를 완화하고 다시 투자를 재개할 전망이다. By the Numbers 위험한 코끼리 1990년 세계가 상아교역을 금지한 후 코끼리 밀렵은 상당히 줄었다. 하지만 상아 장신구의 인기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점차 부유해지면서 아프리카 코끼리들이 다시 위험에 처하고 있다. 23,000마리 2006년 밀렵꾼에게 죽음을 당한 코끼리 수. 2002년 이후 매년 약 5000마리씩 상승. 24t 지난해 아시아로 밀수입된 상아의 양. 전년도 물량보다 거의 2배 증가. 200달러 2005년 아시아에서 매매된 상아 ㎏당 실거래가. 750달러 2007년 아시아에서 매매된 상아 ㎏당 실거래가. Killer Question 푸틴에게 맞서다간 목숨 부지 못한다 지난해 10월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했던 인물 중 최소 네 명이 죽거나 총을 맞았다. 미국인 크렘린 연구가 폴 조얄. 3월 1일 메릴랜드 집 밖에서 총격을 당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지난해 11월 런던에서 전직 KGB 요원이자 그의 친구인 망명객 알렉산더 리트비넨코의 독살을 푸틴 정부가 저질렀다고 주장한 지 얼마 안돼 벌어진 사건이었다. 러시아 기자 이반 사프로노프. 지난주 모스크바에 있는 그의 아파트 4층 발코니에서 추락사했다. 러시아와 이란·시리아 사이의 비밀 무기거래를 추적해 왔다고 전해진다. 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지난 해 10월 총에 맞아 사망했다. 크렘린이 뒤를 봐주는 세력들이 체첸에서 벌이는 직권남용 및 학대 사례를 취재했다. 모두 우연일까? 크렘린은 연루설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비판가들은 일련의 사건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를 읽는다. 험악한 우연의 희생자가 되기 싫으면 국가에 대항하는 어떠한 말도 뱉지 마라. OWEN MATTHEWS and ANNA NEMTSOVA Reality Check 소화 능력의 진화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성인이 되기 전에 유당(우유 등 유제품에서 발견되는 당류)의 소화 능력을 상실한다. 하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아니다. 영국의 런던대(UCL : University College London) 연구자들에 따르면 북유럽인 90%는 성인이 된 후에도 우유와 유제품을 소화시킬 수 있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의외로 7000년 전에는 유럽인이 우유를 전혀 소화시키지 못했다. 그게 바로 진화가 아닐까.

2007.03.20 14:16

4분 소요
경매에 인터넷 전화를 결합하면?

산업 일반

스카이프 인수한 e베이걖?대화 원활해지면 거래 더 활발해진다지만 부정한 거래 우려도 오스트리아의 미술품 거래상 알렉산더 자케의 최근 경험은 물어보나 마나 e베이 관계자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 자케는 1998년 이후 e베이에서 고미술품을 팔아왔다. e베이 경매에 무료 인터넷 전화 서비스 스카이프를 결합한 드문 판매자 중 한 명이다. e베이는 지난해 여름 26억 달러에 스카이프를 인수했다. 자케는 2월 진귀한 중국 미술품 120점을 경매하면서 자신의 스카이프 사용자 ID를 함께 올렸다. 그리고 입찰 희망자들에게 표준 중국어를 구사하는 미술 전문가와 전화 상담을 하도록 권유했다. 갑자기 비인간적인 원격 디지털 매장에서 따뜻한 사람의 음성이 들리게 됐다. 전문가와 상담한 사람들은 상담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입찰 가격이 높았으며 경매 물품은 모두 15만 달러에 팔렸다. e베이에서 자케가 판매한 아시아 미술품 최고기록에 근접한 액수였다. “10달러짜리 간단한 품목을 팔 때는 반드시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복잡한 고급 품목을 팔 때는 무척 도움이 되는 서비스”라고 그는 말했다. e베이가 그 인터넷 전화 회사에 쏟아부은 수십억 달러가 그만큼 두둑한 수익을 올려줄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한다. e베이(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는 6월 중순 ‘e베이 라이브’ 연차총회에서 스카이프를 최초로 미국 시장에 통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엄선된 소수 품목의 경매에서 판매자가 원하면 스카이프 단추를 포함시켜도 된다. 자동차, 부동산, 다이아몬드 장식 반지가 그런 품목들이다. 메그 휘트먼(49) 최고경영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화 판매방식 도입으로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신뢰가 두터워져 판매(그리고 e베이의 수수료 수입)가 증가하기를 기대한다. 스카이프 통합은 e베이의 앞날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전자상거래 산업은 지난 몇 년간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며 포화상태에 다다랐다. e베이는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맹렬히 변신을 꾀했다. 4년 전 뉴스위크 표지에 오를 당시 e베이는 순수한 경매회사였다. 사람들이 다락방에서 찾아낸 잡동사니들을 판매할 때 수수료를 받아 성장해 왔다. 당시 주요 경쟁사는 아마존닷컴이었다. 전자상거래가 부상하면서 성장이 빨라지고 주가도 올랐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되자 e베이의 성장세는 둔화됐다. 그때 구글이 등장했다. 이 검색엔진 선두 기업은 이제 e베이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떠올랐다. 구글은 검색 결과 옆에 영세기업들의 광고를 실어주고 네티즌들을 그들의 사이트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제공했다. 구글의 위협이 심각해지자 e베이는 5월 야후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e베이에 야후의 검색광고를 싣도록 했다. 휘트먼은 적극적인 다각화로 새로운 도전에 대응했다. 스카이프뿐 아니라 2002년 온라인 결제회사 페이팰, 지난해 온라인 소매업체 쇼핑닷컴을 인수하고, 5월에는 e베이 익스프레스를 선보였다. e베이 익스프레스는 신제품 도서·의류·가전제품을 정가에 판매하는 서비스다. 이런 모든 변화를 보는 월스트리트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지난 2년 동안 e베이의 주가는 31% 하락했으며 지난해 여름 스카이프 인수 이후로는 23%가 떨어졌다. “시장이 스카이프에 거는 기대가 아주 낮다. e베이의 인수에 실망했다”고 씨티그룹 분석가 마크 매허니는 말했다. 매각을 앞둔 시점에서 여러 회사가 스카이프에 군침을 흘렸다.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그 온라인 전화회사는 이용자 수가 4년 만에 1억 명이나 늘어났다. 일설에 따르면 웹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이다. 설립자 니클라스 젠스트롬과 재너스 프리스가 지난해 회사를 팔겠다고 내놓았을 때 휘트먼은 그 회사를 손에 넣으려고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루퍼트 머독의 뉴스 코프보다 더 높은 인수가를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휘트먼이 꺼낸 비장의 무기는 e베이 설립자 피에르 오미디아르였다. 그는 휘트먼의 요청으로 협상에 가세했다. 오미디아르와 휘트먼은 회사의 앞날이 너무 창창하니 팔지 말라고 스카이프 창립자들에게 충고했다. 당시에는 무분별한 솔직함처럼 보였다. “심리전술은 아니었다”고 오미디아르는 회상했다. “내가 협상에 참여한 목적은 창립자들 간에 정직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취지였다.” 스카이프 창립자들은 그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이제 스카이프 인수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e베이가 입증해야 한다. 그 온라인 전화회사의 올해 예상수익은 2억 달러라고 e베이는 말했다. 대부분 스카이프 가입자들이 일반 전화선을 이용하는 스카이프 비가입자들과 통화를 주고 받을 때 부과하는 소액의 수수료에서 나온다. 2006년 e베이의 추정수익 57억 달러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진짜 가능성은 스카이프·e베이·페이팰 간의 잠재적인 시너지 효과에 있다고 휘트먼은 말했다. 예를 들어 2~3년 후에는 스카이프 가입자가 동료 스카이프 가입자에게 페이팰을 통해 송금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e베이의 모든 경매 항목에 스카이프 단추가 설치돼 매출 신장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e베이의 스카이프 기능은 애완견 산책 도우미, 배관공 같은 서비스산업을 끌어들인다. 그런 서비스산업은 주로 전화를 이용해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e베이와 스카이프 간에 어떤 시너지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페이팰의 공동설립자인 모험자본가 피터 티엘은 말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들도 스카이프를 추가하면 오히려 e베이와 페이팰에 해가 되지 않을까 공공연히 의구심을 표시한다. 스카이프를 이용하면 판매자가 구매자를 간단하게 네트워크 밖으로 유도해 직거래가 가능해진다. 그러면 e베이에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스카이프 설립자 젠스트롬은 자신도 e베이 매각 전에 그런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면 양사의 성장에 도움이 됐지 나쁠 게 없다고 휘트먼이 설득했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는 “그런 부정거래 시장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전한 거래에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비판을 잠재우려면 스카이프 인수로 e베이의 채산성이 크게 향상됐으며 막강한 구글의 공세를 막아내는 데도 도움이 됐음을 입증해야 한다. “구글은 경쟁자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라고 휘트먼은 말한다. 그는 구글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프린스턴대 동급생)와 매달 수차례씩 대화한다고 귀띔한다. 그런다고 알렉산더 자케 같은 e베이 판매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구글의 검색엔진에도 자신의 고미술품 매장을 광고한다. 올해 미국시장에서 e베이를 통한 사업은 전체적으로 예년 수준을 유지했다. “GM 같다”고 자케는 말했다. “모델은 아주 많이 만들어 내는데 대부분 신통찮다. 모든 사람의 요구를 일일이 들어주기 힘들다.” 휘트먼은 6월 중순 스카이프-e베이 통합의 다음 단계를 발표했다. 그때 휘트먼 팀은 자케 같은 중요한 판매자들에게 안심하라고 전화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제 그럴 수 있는 기술도 있으니 다행스럽지 않은가. 차진우 jincha@joongang.co.kr

2006.06.27 14:49

4분 소요
e베이 경매에도 사기 많다

산업 일반

Swimming With Sharks 지난해 11월 중국의 은행원 재키 청은 5035 파텍 필립 시계를 사려고 e베이 경매 사이트를 뒤졌다. 뉴욕에 사는 한 여성이 내놓은 매물이 있었다. 판매자 e베이 계정 정보에 따르면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스위스 시계를 팔았고 항상 만족스러운 고객평가를 받아 왔다. 청은 경매에 참가해 시계를 낙찰받은 뒤 1만600달러를 뉴욕으로 송금했다. 그러자 택배 배송 조회번호가 적힌 e-메일이 도착했다. 이상한 점은 물건을 퀘벡시에서 캐나다 우편을 통해 보냈다는 점이었다. 6일 뒤 홍콩에 있는 청의 집에 우편물이 도착했다. 그 안에는 갈기갈기 찢긴 자동차 카탈로그가 들어 있었다. 청은 “나를 가지고 놀았다”고 말했다. 청은 e베이에 계속 e-메일을 보내 배상을 요구했다. 5일 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e베이로부터 자신들은 책임을 못 지겠으니 FBI에 신고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FBI는 홍콩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다. 홍콩의 한 경찰관은 그런 사기는 수도 없이 많으니 그냥 잊어버리라고 청에게 말했다. 인터넷 사기 사건이 크게 늘었다. 온라인 경매가 점점 더 위험해진다는 의미다. 청은 합법적인 판매자의 e베이 계정을 도용한 사기꾼에게 속아 돈을 보냈다. 사기꾼은 해당 경매 사이트에서 보낸 것인 양 수천 개의 주소로 e-메일을 보내 계정 비밀번호를 기입하라고 요구한다. ‘피싱’이라 불리는 수법이다. 그렇게 입수한 비밀번호로 사이트에 접속해 계정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원주인의 좋은 평판을 이용한다. 원래 피드백 제도는 온라인 경매회사와 그 사용자들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신용이 쌓이면 계약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기꾼들은 사이트 회원을 사칭해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논다. 이런 사기가 증가하는 한 가지 이유는 저렴한 개인 제작 프로그램 덕에 경매 사이트가 더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온라인 경매의 선두주자 e베이에서는 1억8100만 명이 1년에 400억 달러가 넘는 물품을 사고 판다. 매일 11만 명이 새로 가입하므로 사기꾼도 넘쳐나고 사기당할 사람도 늘어난다. e베이나 그 유사 사이트들은 이런 사기 사건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사기 사건이 얼마나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FBI에 따르면 미국 내 온라인 사기는 지난해 20% 증가했다. 다섯 중 세 건은 경매 사기다.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하게 증가했다. ‘e베이 위탁거래 사업의 창업과 운영’이라는 책을 쓴 스킵 맥그래스는 “한동안 시간이 흐르자 사기꾼들은 e베이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게 될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런 사기가 늘어나면 소비자는 심각한 심리적 충격에 비싼 물건은 e베이를 통해 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의 사기 수법 중 하나는 안전거래 서비스 사기(안전거래 서비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간에 제3자가 개입, 구매자가 제품을 확인한 뒤 대금을 지급하도록 중재하는 방식). 캘리포니아주 실리에 사는 테리 매클라티는 빚을 갚기 위해 e베이 사이트를 통해 아내의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를 팔려고 했다. 영국 리딩에 사는 한 남자가 안전거래 회사를 통해 1만8000달러를 지불하겠다고 제의해 왔다. 매클라티는 그 회사 사이트를 방문, 돈이 입금됐음을 확인하고 반지가 배달되면 그 돈이 자신에게 지불된다는 설명에 다이아몬드를 보냈다. 다이아몬드가 도착한 월요일, ‘e베이 협력업체’라고 쓰여 있던 그 안전거래 회사의 웹사이트도 사라졌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져간 사람은 가짜 안전거래 회사 사이트를 만들고 훔친 계정을 사용한 사기꾼이었다. 계정 도용 방법 외에도 허위 고객평가를 얻는 방법은 많다. 독일 미어부시에 사는 e베이 관련 베스트셀러 책의 저자인 모니카 제미치는 때로는 판매자들이 좋은 고객평을 써주면 물건값을 깎아주겠다고 제안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로마 우편·통신경찰국의 알레산드로 카리니 국장은 구매자가 물건 환불을 해주지 않으면 안 좋은 고객평을 올리겠다고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카리니는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의 모조품 판매도 큰 문제로 떠오른다. 미국의 오클리 선글라스사는 지난해 온라인 경매 사이트의 판매자 1만9000명이 가짜 오클리 선글라스를 진품으로 속여 팔았다고 신고했다. 경매 사이트들도 이 같은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e베이에는 현재 1000명이 넘는 ‘신뢰·안전’ 전문직원이 있다. 그들은 전국을 돌며 경찰에게 온라인 사기를 적발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법을 가르친다. 최근의 일제 단속에서는 프랑스·독일·그리스에서 11명의 루마니아인이 체포됐다. 그들은 합작해서 미국인 상대로 온라인 사기를 치려 했다. 그러나 일부 사용자는 e베이가 문제의 계정을 신속히 폐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은 e베이에서 온라인 사기를 당했다고 신고한 지 18일이 지났지만 그 계정은 아직도 삭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온라인 경매가 천문학적 성장을 계속하려면 더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야 고객의 신뢰를 얻는다.

2006.03.24 13:40

3분 소요
성공사례

산업 일반

목봉현 C4 GLOBEL 사장 곽상준 쿨앤쿨 사장 김경훈 TS커뮤니케이션즈 사장 김태은(오른쪽)·이성복(왼쪽) 키스킨 공동대표 |성공사례1 | “미쳐야 성공할 수 있다” … 목봉현 C4 GLOBEL 사장기능성 노트북 가방 개발… “기성세대 이상의 용기와 결단 필요” “청년 창업가에게는 기업가성 발작증세가 필요합니다.” 올해 대학 4학년인 목봉현(26) 씨포글로벨(C4 GLOBEL) 사장은 청년 창업가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쳐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 입학 때부터 창업을 생각했던 목사장은 지난 8월 염원하던 창업에 성공했다. 고기능성 노트북 가방 개발이 그가 내놓은 사업 아이템이다. “전공(섬유공학)을 살릴 수 있는 아이템을 찾다가 노트북 가방 시장이 의외로 큰데도 국내에 변변한 브랜드가 없는 것에 착안해 독특한 기능을 갖춘 노트북 가방을 개발하게 됐다”고 한다. 올해 1월부터 후배와 친구 등 4명이 제품 개발에 매달려 가방을 열지 않고도 노트북 사용이 가능한 기능성 가방 개발에 성공했다. “제품 개발에 앞서 온·오프라인을 샅샅이 뒤져 시장조사를 했고, 승산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 목사장의 설명이다. 창업 자본금은 부모님과 친지를 설득해 3,000만원을 빌렸다. 씨포글로벨이 개발한 제품은 현재 특허출원 중이다. 변리사협회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1년에 1번 무료 특허등록 서비스를 해주는 프로그램를 활용했다. 생산라인은 중국에 공장이 있는 국내 업체와 계약을 마쳤다. 우선 쇼핑몰을 통해 브랜드를 노출시키면서 노트북 제조사 등에 납품을 추진한다는 것이 기본 전략이다. 코트라(KOTRA)와 연계해 수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목사장은 수업을 야간에 몰아서 듣고, 주간에는 오로지 사업에 매달렸다. 그동안 단 한번의 결석도 없었지만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휴학을 조심스럽게 고민 중이다. 목사장은 “학생 창업에는 상상 이상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며 “기성세대에 비해 힘든 점이 많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창업의 과정을 통해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경험을 습득했고,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해결 능력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목사장은 ‘자금 조달’을 사업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직원들 먹여살려야 하고, 자본금도 날릴 수 있다는 부담감도 크지만 만약 실패하더라도 다시 할 수 있다는 용기는 변치 않을 것입니다.” |성공사례2 | “인터넷 장사꾼 경험 살려 창업” …곽상준 쿨앤쿨 사장 쇼핑몰 거간꾼으로 자본금 마련… 원스톱 인터넷 마케팅 대행사 창업 “똑같은 역량을 내 일에 투자하면 부가가치는 몇 배로 돌아옵니다.” 곽상준(27) 쿨앤쿨 사장이 창업을 한 이유다. 곽사장은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군대 행정병 경험으로 어렴풋이 직장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됐고, 우연한 경험으로 창업의 길에 들어선 경우다. 2001년 제대 뒤 인터넷을 하다가 시중에서 3만원대 후반이던 화상카메라가 한 쇼핑몰에서 2만9,000원에 팔리는 것을 목격한 그는 호기심에 화상카메라를 구입한 뒤 그럴듯한 광고문구를 붙여 옥션 경매에 올렸다. 그러자 불과 몇시간 만에 3만5,000원에 팔렸다. “어!” 순간 신천지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첫달에 30만원의 용돈을 벌었다. 그의 수입은 이후 60만원, 150만원으로 늘어갔다. 어떤 때는 물건을 만져보지도 않고 거간꾼 노릇만으로도 차익을 얻었다. “당시에는 쇼핑몰 문화가 판매자 중심이었는데 저는 역발상을 통해 구매자 입장에서 제품에 대한 꼼꼼한 리뷰를 달았더니 반응이 좋았습니다.” 지난 2002년 영화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의 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무렵에는 인터넷에서 마술상품을 찾아내 무작정 제조업체로 달려갔다. 수중에 있던 150만원으로 100개를 구입해 일주일간 광고안을 작성하고 옥션에 올리자 하루 만에 전량 매진. 이렇게 열흘 동안 900여개의 마술상품을 팔았다. 이 일은 곽사장이 쇼핑몰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사장’ 직함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곽사장은 이후 복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찜질방에서 ‘호박죽 완제품 팩’을 먹어보고는 제조사를 찾아가 납품을 부탁했다. 그리고 아예 ‘죽 쇼핑몰’을 차려 지금도 월 평균 3,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돈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는 사업이 아니라 장사였죠. 경험을 살려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보자고 결심하고 폐업하려는 업체를 지인으로부터 무상으로 넘겨받았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인터넷 원스톱 마케팅 업체인 쿨앤쿨이다. 쿨앤쿨은 인터넷상에서 마케팅 부족으로 묻혀 있는 상품을 발굴해 홈페이지, 쇼핑몰 구축부터 판매지원과 CI컨설팅까지 지원하는 일종의 마케팅 대행 서비스 업체다. 소규모 식품이나 의류업체들이 고객으로 연결되면서 많게는 월 1억원 정도의 매출이 발생되고 있다. “취업이 안 되니까 창업이나 해보자는 것은 무모한 도전입니다. 이 경우 무조건 실패하죠. 청년창업은 튀는 아이템과 경험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가 쌓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성공사례3 | “젊은 기획력을 팝니다” … 김경훈 TS커뮤니케이션즈 사장전공 살려 스포츠 이벤트사 창업… 月 1,000만원 매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김경훈(25) TS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은 자신의 전공을 십분 살린 청년 창업가다. TS커뮤니케이션즈는 스포츠·레저 분야 기획사. 김사장은 전공인 사회체육학을 살려 스포츠 분야의 행사기획과 이벤트를 대행하고 있다. 물론 아이템 자체는 신선한 것이 아니다. 이 점은 김사장도 잘 알고 있다. “획기적인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빨리 사업에 뛰어들었고, 기존 업체들과 차별화된 컨셉트로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김사장은 TS커뮤니케이션즈의 슬로건을 “많은 사람들과 젊음을 공유하자”라고 내걸었다. “단순히 기업이나 단체의 행사를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젊음을 바탕으로 한 기획력을 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현재는 기업체의 체육행사를 기획하고 대행하는 서비스로 월 1,000만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대학 입학 때부터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실제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따로 있었다. 김사장 부친의 사업이 IMF 때 부도로 무너졌던 것이다. 김사장은 “아버지의 부도로 인해 오히려 도전정신이 솟구쳤고,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스포츠 이벤트 기획사를 염두에 두고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공부에 전념하면서 선배들과 지인을 따라다니며 실전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창업을 한 것은 2003년 7월로 창업 자금은 동아리에서 주최한 스키캠프 등에서 모은 돈과 친지로부터 도움을 받아 4,000만원으로 시작했다. 1년여간 사업을 해본 소감에 대해 김사장은 “기대했던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 대단히 힘들다”고 운을 띄웠다. 김사장은 “스포츠 이벤트 기획사 시장은 인맥 위주의 계약 관행이 많아 발품을 팔아 고객을 접촉해도 막상 계약으로 이어지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나이가 어리다 보니 신뢰를 주지 않는 곳도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은 젊음과 패기로 이겨낼 수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창업을 하기 전에 완전하게 관련 시장에 대한 조사와 이해가 필요한데 많은 분들이 이 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템만 좋다고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창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격언은 다름아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것입니다.” |성공사례4 | “새 상품 끊임없이 내놔야 생존”…김태은·이성복 키스킨 공동대표 노트북 키보드용 커버 개발… 수입의 90%는 R&D에 사용 키스킨은 생면부지 세 명의 대학생이 도원결의해 설립한 회사다. 화학공학도인 이성복씨(27)와 전자공학도 이소희씨(24)가 한 벤처스쿨에서 같은 강좌를 듣다가 창업에 대한 관심사가 같다는 것을 알고 의기투합했고, IBM 커뮤니티를 운영하던 김태은씨(27)가 합류해 지난해 10월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키스킨은 노트북용 키보드 커버 제품을 개발, 현재 삼성전자에 공급하고 있다. 또한 의료용 기기의 키보드 커버까지 개발해 메디슨에 납품하고 있다. 이 제품들은 이미 수차례의 창업 관련 경진대회에서 입상해 기술을 검증받았고, 각종 대회 수상금은 고스란히 창업 자본금(1,300만원)이 됐다. “데스크탑 PC용 키보드 커버는 많지만 노트북용은 없었다”고 말하는 이대표는 이 제품에 대해 “노트북은 열이 많이 나 실리콘을 혼합한 재질을 써야 했다”고 설명했다. 김태은 대표는 “국내에는 아직 유사 제품이 없고 미국과 일본에는 기술과 가격 측면에서 시장성이 있다”고 자신했다. 키스킨은 최근 두 종의 제품을 새로 개발했다. ‘배터리 닥터’와 ‘FPCB 점착캐리어시트’다. ‘배터리 닥터’는 리이온(Li-ion)충전배터리 사용 시 발생하는 이물질을 분해해 배터리 수명을 연장시키는 물질로 기존 유사 일본 제품보다 절반의 가격에 10월부터 국내 유통에 들어간다. ‘FPCB(연성인쇄회로기판) 표면실장용 점착 캐리어 시트’는 “전자기기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FPCB 점착시트를 기존 제품보다 효율성이나 가격경쟁력 부분을 최소 20배 증가시킨 신소재 생산 소비재”라는 것이 김대표의 설명이다. 이대표는 창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들에게 할 말이 많다. “많은 학생벤처들이 아이템의 연속성 부재로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는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해 상품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매출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입의 90%를 제품개발비로 돌린다는 키스킨은 생산과 디자인 등은 모두 외주를 통해 해결하고 회사는 오로지 개발에만 전념하는 ‘R&D 컴퍼니’를 추구하고 있다. 키스킨의 3인 공동대표가 월 가져가는 돈은 활동비 명목의 50만원 정도다. “본인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판단은 시장이 하는 것이죠. 시장이 받아줄 수 있는 아이템인지가 청년창업 조건의 1순위입니다.”(이성복 대표)

2004.10.01 00:00

6분 소요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MAGAZINE

MAGAZINE

1781호 (2025.4.7~13)

이코노북 커버 이미지

1781호

Klout

Kl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