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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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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美 중간선거 개시...유권자 70%

차이나 포커스

(워싱턴=신화통신) 올해 미국 중간선거 투표가 8일(현지시간) 시작됐다.이날 아침 미국 전역의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차례로 들어섰다. 올해 중간선거에서는 하원 전체 435석과 상원 100석 중 35석을 새로 선출한다. 이외에 미국 50개 주 가운데 36개 주의 주지사 등도 재선거를 앞두고 있다.미국은 현재 인플레이션이 심각해 식료품∙연료유 등 생필품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또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광폭의 금리인상을 계속함에 따라 경기 침체 위험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미국 설문조사 업체 갤럽(Gallup)에 따르면 올해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였으며, 낙태권∙범죄∙총기정책∙이민 등이 그 뒤를 따랐다.미국 NBC 뉴스가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 10명 중 7명 이상이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 여론조사 전문가인 존 조그비(John Zogby)는 전반적으로 미국 및 중간선거 유권자들의 정서가 저조해 국가 흐름에 공감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며 각자 입장에 따라 공감하지 않는 이유도 제각각이라고 말했다.버지니아주의 한 공화당 지지자는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고인플레이션과 고물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민주당 지지자는 여성의 권리 보장을 주장하는 한편 미국의 분열이 더욱 심화될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2022.11.09 10:12

1분 소요
중간선거 민주‧공화 접전…미국 이민정책 전진할까 후퇴할까

국제 이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심판의 장’이라는 ‘11‧8 미국 중간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글로벌 경제의 가늠자'라 할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경기 침체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는 지라 그 어느 때보다 이목이 집중되는 게 현실이다. 이 선거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임기 후반부에 상원과 하원을 주도할 정당이 판가름날 예정.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현재 그동안 바이든이 속해 있는 민주당을 도와주던 낙태 이슈나 지난해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의 진상조사 등은 가을로 접어들면서 이미 빛이 바랬다고 한다. 요즘 미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경제와 범죄 등 민생 이슈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워싱턴 정가의 시각이다. 11‧8 미국 중간선거의 사전선거는 주에 따라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50개주의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 상원의원의 3분의 1인 35명 그리고 주지사 전원인 36명을 새로 뽑는다. 이번 중간선거에도 어김없이 공화‧민주 양대 정당 지지자들이 강하게 결집하고 있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거의 2년 전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치열하게 경합을 벌였던 '대선 수준'의 선거 분위기라고 전한다. 현재 미국 상원은 100석 중 50대 50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이 사이 좋게 나눠가지고 있다. 하원의 경우 의석 435석 가운데 민주당이 220석으로 212석의 공화당을 8석 앞지르고 있다.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핵심이슈로 먹고 사는 경제와 낙태 외에 이민 정책도 떠오르고 있다. 현재 미국은 구인난에 외국인 노동자 부족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비중이 17.2%에 달했던 보건복지 분야는 현재 9%의 일자리가 비어있는 상태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28%에 달하는 건설 인력도 4.8%가 부족한 실정이며, 운송·창고·유틸리티 업종의 비어있는 일자리도 6.6%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노동인력의 부족을 초래한 정책으로 외국인 이주자 즉각 추방정책으로 알려진 ‘타이틀 42호’(Federal Title 42)가 꼽힌다. 타이틀 42호는 트럼프 정부를 내내 관통했던 '뜨거운 감자'였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의 미국 연방정부가 제정한 이 법령은 반(反)이민 정책으로 비판 받았는데, 불법 체류자와 이민자에게는 ‘언제 자유와 희망의 나라 미국에서 추방될까’하는 끔찍한 트라우마였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5월23일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불법 입국자들을 강제추방하도록 허용한 연방 공중보건법 타이틀 42를 점진적으로 폐기할 것을 서명했다. 그러나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를 쌍끌이로 장악한다면 판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의 대법원 인사를 늦추고 민주당의 열린 이민정책에 직격탄을 날려서 트럼프 시절의 반이민 정책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크다. 또 하나 공화당이 승리를 거둔다면 바이든이 정책 폐기 선언을 한 ‘이민자 보호 협약’(Migration Protection Protocols : MPP)과 ‘멕시코 대기’(Remain in Mexico) 프로그램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확률이 높아진다. 트럼프가 실행했던 이 강경 이민 정책은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이민자에 대해 그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멕시코에서 기다리게 해 미국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것. 지난해 이 반이민 정책은 미국 대법원이 폐기를 허용한 바 있다. ━ 기로에 선 바이든 정부의 열린 이민 정책 최근 여성의 낙태금지법 등 공화당 입맛에 맞는 보수 편향 판결로 비판 받는 미국 대법원이 유일하게 내놓은 민주당 지향의 판결로 평가받고 있다. 미 대법원이 반이민 정책에 제동을 걸어 얼어붙었던 ‘열린 이민 정책’이 가까스로 희망의 싹이 돋운 가운데 이번 중간 선거의 결과에 따라 다시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논쟁도 불을 지핀 상태다. 또 하나 미국의 이민 정책과 관련하여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다카’(DACA) 제도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갈지도 관심이다. DACA 프로그램은 오바마 정부 때 시작된 이민 구제 프로그램이다. 미성년자로 불법체류자가 된 서류 미비 불법이민자가 그 대상이다. 대부분 중남미 출신이 수혜자이지만, 아세안국가에서는 한국 출신이 가장 많은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 다카에 대한 미국인 유권자의 생각은 확연하게 갈린다. 공화당 지지자 10명 중 9명이 미국‧멕시코 국경 안보 문제가 중요한 이슈라고 보는 반면 민주당 지지자는 10명 중 6명만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화당 측은 남미 불법 체류자의 추방과 더욱 철저한 국가 안보에 초점을 둔다면 민주당 측은 불법 체류자에 대해 관대하면서 합법적인 방안 모색과 제시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게 특징이다. 또 불법체류자나 합법적 이민자에 대한 관점 또한 뚜렷하게 나뉜다. 지난 10월 21일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인 NPR과 마케팅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IPSOS)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5명이 이민자 증가에 반대했고 4명이 찬성, 1명이 중립적 입장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중간 선거에서 상원, 하원 모두 공화당에게 과반수를 빼앗겨 의회 주도권을 상실한다면 바이든의 정부는 정지 상태에 빠지고 심지어는 탄핵의 대상이 되는 끔찍한 시나리오에 직면한다. 현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를 받는 후보들이 대거 경선을 통과하면서 일부 후보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도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버지니아주의 밥 굿(57) 공화당 하원의원의 경우 “바이든 정부의 의도적이고 열린 이민 정책으로 불법 이민자들이 급증해서 국가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면서 “이로 인한 시민들의 불안이 가중되어 바이든에게 오히려 가장 큰 탄핵 명분이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고의로 국경을 개방해 미국민을 덜 안전하게 만들기 때문에 탄핵 당했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해왔다”면서 “의회는 대통령이 헌법적 책무 수호에 실패할 경우 책임을 물을 의무가 있다. 공화당이 새 다수당이 되면 첫날부터 공격적으로 정부 감독 의무를 수행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현재 판세로는 상원은 팽팽한 접전 속에 민주당의 아슬아슬한 우위, 하원은 공화당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둘 다 차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미국 언론은 일제히 전망한다. 역사적으로 거의 임기 전반부 때 과반수이던 정당은 중간선거에서 패했으며, 상대당의 주도권 탈환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당이 추구하는 '열린 이민 정책'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판세와는 다른 ‘민주당 싹쓸이 승리’라는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바이든 정부의 '열린 이민 정책' 행진이 계속될 것이고 트럼프를 다음 대선후보에서 아예 거론조차 못하게 하는 것까지도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이민정책은 중간선거 때 공화당이 압승을 거두던 민주당이 가까스로 신승을 하든 변화의 바람은 어쨌든 불어닥칠 것이다. 이민정책에 햇살이 한껏 비춰지기를 희망하는 모두에게 진전을 거듭했던 미국의 이민 정책들이 다시 뒷걸음치지 않을까 우려되는 요즘이다. 김지영 국민이주 대표

2022.11.0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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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텃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패배…위기의 바이든 [채인택 글로벌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조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늦가을을 상큼하게 출발했지만, 그에게 이 계절은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1월 10일 취임한 뒤 처음으로 대규모 다자간 정상회의에 참석해 전 세계 정상들을 줄줄이 만나고 글로벌 사회의 최대 문제인 기후변화 등을 협의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10월 30~31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개막한 제26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함께했다. 글로벌 지도자로서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과 장악력을 전 세계에 보여줄 기회였다.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인 그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는 기쁨도 누렸다. 그런 뒤 워싱턴 근방의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거쳐 11월 3일 오전 전용 헬기인 마리1을 타고 백악관에 도착한 바이든 대통령의 표정은 어두웠다. 오랜 비행과 해외 출장에 따른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령에 따른 기력부족도 아니었다. 3일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악몽의 날이었다고 CNN은 지적했다. ━ 美 민주당, 텃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서 공화당에 패배 민주당 텃밭인 버지니아주의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에 패배하면서 국정운영에 적신호가 왔기 때문이다. 전날인 11월 2일 치른 선거에서 50.7%를 득표한 공화당의 글렌 영킨 후보가 48.6%를 얻은 민주당의 테리 매콜리프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다. 이번 선거는 바이든이 취임한 뒤 처음 치르는 선거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는데 텃밭에서 패배한 것이다. 버지니아주는 민주당의 오랜 정치적 텃밭이었다. 1873년 주자지 선거 이후 1969년 선거까지 100년 가까이 민주당 주지사만 뽑았다. 1969년 당선한 린우드 홀튼이 버지니아주의 20세기 첫 공화당 주지사의 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공화당은 1970~82년과 1994~2002년, 그리고 2010~2014년에만 버지니아주 주지사를 차지했을 뿐이다. 21세기 들어 지난번까지 치러진 다섯 차례의 주지사 선거에서도 단 한 차례만 공화당에 자리를 넘겨줬을 뿐이다. 대통령 선거도 2018년과 2012년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으며,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했던 2016년에도 힐러리 클린턴을 밀었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조 바이든에게 아낌없이 표를 몰아줬다. 바이든은 버지니아에서 54.1%를 득표해 44.0%를 얻은 트럼프에 8%P 이상의 차이로 느긋한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이 그런 버지니아주의 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다. 민주당의 대선 득표율과 주지사 득표율을 비교하면 5.5%가 떨어진 셈이다. 같은 날 치른 뉴저지주 선거도 민주당엔 마찬가지로 충격적이다. 뉴저지주는 원래 민주-공화가 번갈아가며 주지사를 맡아온 지역으로 21세기에 들어와서도 2001년과 2005년 선거에선 민주당이, 2009년과 2013년 선거에선 공화당이 각각 주지사를 차지했다. 그러다 2017년 민주당의 필 머피가 주지사직을 찾아왔으며 이번에 재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박빙이었다. 현역 주지사인 민주당 필 머피 후보가 공화당의 잭 시아타렐리 후보를 박빙의 승부 끝에 간신히 승리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민주당의 머피 지사는 50.1%를 득표해 49.1%를 확보한 시아타렐리 후보에게 신승을 거뒀다. 뉴저지는 대선에선 확실하게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왔다. 1992년 이후 지난 대선까지 한 차례도 빠짐없이 민주당 후보를 밀어줬다. 지난해 대선에선 뉴저지에서 바이든이 57.3%, 트럼프가 41.4%의 지지를 각각 얻었다. 바이든은 뉴저지에서 15%P가 넘는 큰 표차로 낙승을 거둔 셈이다. 게다가 이번 주지사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머피 후보는 10% 안팎의 우세로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민주당은 피를 말리는 박빙의 승부로 가까스로 승리했다. 이에 따라 개표와 승리 선언과 연설도 늦어졌다. 더욱 문제는 이번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 패배와 뉴저지주 박빙 승부가 바이든의 인기 하락과 궤를 함께했다는 점이다. 바이든 지지율은 취임 이래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취임 당시 지지율 55%, 반대 32%였지만 8월 19일엔 지지 46%, 반대 49%로 뒤집어지더니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를 코앞에 둔 10월 28일에는 지지 44%, 반대 51%로 취임 뒤 가장 낮은 지지율과 가장 높은 반대율을 보인 것이다. 바이든은 올해 들어 아프가니스탄 철수 혼란, 대규모 경기부양 예산안 통과에서 보여준 정치력의 부족,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 멕시코 국경에서 아이티 이민자를 말과 채찍으로 내쫓고 강제 추방한 사건 등으로 반대파는 물론 지지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이를 통해 상원 외교 위원장이라는 관록으로 오바마가 부통령으로 모셨던 ‘외교 전문가’라는 명성이 바랬다. 정치력, 협상력, 리더십, 무엇보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돌아왔음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 국제무대서 뚜렷한 존재감 없어 바이든은 국제적으로도 소리만 요란할 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했을 때 미국이 카불 공항에서 보여준 혼란, 동맹과의 소통 부재와 일방적인 철군 시한 결정,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IS-K(이슬람국가 호라산)의 카불 공항 테러에 대한 대비 실패 등으로 바이든은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점령과 유지에 필요한 파병과 경제적 지원을 했던 유럽 국가 등 동맹국들은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에 실망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국민은 이런 바이든에게 국가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고 실망을 표시했다. 민주당 행정부에 우호적이었던 미국 언론은 물론 중간층 유권자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바이든에 대해선 실망을 표시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 뒤 남은 미국의 국력을 중국 견제에 쓴다고 했지만, 정작 중국이 대만을 위협하고 나서자 말싸움 외에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유가가 폭등하고 물가가 오르고 있는데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백신 접종률도 목표인 70%에 이르지 못한 가운데 국민에게 접종을 제대로 설득하지도 못하고 있다. 팬데믹이 끝나가고 ‘위드 코로나’ 정책을 펴면서 경제가 기지개를 켜려고 하는 상황에서 항구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대규모 물류 대란을 막지 못했다. 급기야 일부 지역에선 화장지까지 부족한 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은 바이든의 민주당 정권 아래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동시에 잃어가고 있다는 불만이 고조됐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에서 열린 G20과 COP26에서도 바이든은 환경 아젠다를 주도하거나 에너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탄소를 줄일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원전이 꼽히지만,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해 기술과 시공 능력, 그리고 관련 산업에 대한 업데이트가 오랫동안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은 원전을 개발하고 전 세계에 확대한 원조 국가지만 오랜 산업 마비 상태에 계속 길을 잃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기본적으로 에너지 수출을 거의 하지 않아서 글로벌 변화를 견인할 당근이 부족한 상황이다. 원자로인 APR-1400을 개발하고 미국 원자력위원회의 안전 인증까지 마친 한국과 손잡고 전 세계를 상대로 원전 건설을 이끄는 정도의 국가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통해 미국과 서방이 탄소 배출 감소와 궁극적인 탈탄소 시대 개막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탈탄소 시기를 미국과 서방이 제시한 2050년이 아닌 2060년으로 잡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2070년으로 잡은 인도와 협력해 시기를 앞당기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G20과 COP26에서 바이든은 원론적인 입장 제시에 그쳤다. G20의 올해 의장국인 이탈리아나 COP26의 주최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처럼 인류를 위한 경고를 하지도 못했다. 바이든은 회의장에서 조는 모습을 보여 ‘슬리피 조’라는 대선 당시 트럼프가 했던 비아냥거림을 다시 들어야 했다. 지난해 당선 뒤 1년간, 취임 뒤 10개월간 바이든은 그야말로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유약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 왔다. 물론 바이든은 이번 주지사 선거는 자신과는 관련이 적은 개별 주의 선거일뿐이라고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이번 주지사 선거는 그런 바이든에 대한 정치적인 평가로 볼 수밖에 없다. 바이든이 선을 그은 것 자체가 이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사전이 우려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민주당 버지니아주 주지사 후보로 출마한 테리 매콜리프 후보가 선거전 초반에는 지지율이 두 자릿수로 앞서다 바이든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동반하락 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버지니아주 주지사 패배의 주요 요인이 바이든의 실정과 인기 하락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뉴저지에서도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얻은 75.3%와 이번 주지사 선거에서 얻은 50.1%를 비교하면 15.4%나 득표율이 떨어진 셈이다. 뉴저지에서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연임한 것은 1977년 이후 44년 만에 처음이지만, 이를 축하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 물론 득표율에는 정당 선호와 함께 후보 개인의 인기 등이 다양한 요소가 작동하지만,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건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으로선 당장 상원의원의 3분의 1과 임기 년의 하원의원 전원을 새로 뽑는 내년 중간 선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의회에서 민주당의 우위가 간당간당하기 때문이다. 100명 정원에 부통령이 당연직으로 의장을 맡는 연방상원에선 민주당 소속 의원 48명과 친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 두 명을 합쳐야 겨우 절반을 차지한다. 거기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야 50석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에 맞설 수 있다. 435명 정원의 연방 하원에서 민주당은 221명을 차지해 213명의 공화당과 불과 8석 차이다. 과반수인 218석보다 불과 3석이 많다. 의회에서 이런 상황도 내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에 밀리면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만일 내년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하면 바이든 행정부는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의회의 견제와 비협조 속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바이든은 재선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재선에 실패하고 물러난 트럼프처럼 바이든도 정치적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나이도 부담이지만 더욱 현실적인 문제는 지지도의 하락이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계속 파상 공세다. 지난 1월 의회 난입 선동과 대선 불복 시도 등으로 트럼프는 공화당에서도 사실상 기피 인물로 통한다. 하지만 바이든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고 실망이 커지면서 공화당 일부가 트럼프를 소환하고 있다. 각종 정치 행사에 트럼프가 나타나면 인파가 몰린다. 물론 트럼프 지지세력이 요란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과대 평가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공화당에서 바이든에 맞서는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내에서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 패배와 뉴저지주 주지사 선거 신승으로 바이든의 정치력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개혁 요구하는 민주당 좌파와 부활하는 트럼프를 앞세운 공화당 우파 사이에서 국정 샌드위치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내년 중간선거는 물론 차기 대선 재선 가도도 흔들리는 상황이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국내외에서 지치고 유약한 모습을 더는 보이지 않게 이미지 관리부터 해야 한다. 78세의 고령이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때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1.11.06 19:00

7분 소요
[방역과 경제 사이에 선 미국의 딜레마] 미국은 코로나19 당파 싸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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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봉쇄” 공화당 “완화”… 트럼프 시위 부추기며 정쟁화 전 세계 많은 나라의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에서 벗어나 경제활동 재개를 모색하고 있다. 방역도 문제지만 봉쇄로 인해 사람들의 정상 활동이 상당 기간 중단되면서 경제는 물론 정치적인 부담까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CNN 등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봉쇄에 반발해 이를 완화해줄 것을 요구하는 주민 시위가 줄이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여러 주는 경제활동 재개를 모색하고 있다. 반면 코로나19의 확산을 제대로 막지도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경제활동을 재개하면 감염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지적도 적지 않다.4월 23일 0시 현재 전 세계에서 확진자가 265만6000명 이상, 사망자가 18만5000명 이상 발생했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84만9000여 명의 확진자와 4만700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특히 뉴욕 주에서 26만2000여 명의 확진자와 2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가장 많은 피해를 봤다. 뉴욕 주는 인구 100만 명당 확진자가 1만3300여 명에 사망자가 1030여 명으로 미국의 어떤 주보다 많다. 검사도 미국 전역에서 이뤄진 4326만여 건 가운데 66만9000여 건이 뉴욕 주에서 이뤄졌다. 인구 100만 명당 검사자 비율도 뉴욕 주는 3만4000여 명으로 미국의 어떤 지역보다 높다. 뉴욕은 그야말로 미국 코로나19의 중심지다. ━ 뉴욕·버지니아 코로나 검사 앞세우며 정부와 대립각 문제는 그런 뉴욕 주가 미국 경제의 심장부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뉴욕 주의 인구는 2019년 7월 추산치로 1945만 명으로 미국 전체에서 캘리포니아(3951만)·텍사스(2899만)·플로리다(2147만) 다음 가는 4위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이 지난 2월 19일 공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뉴욕주의 지역총생산(GDP)은 2019년 추산치는 1조7516억 달러로 미국 내 다른 주와 비교해서 캘리포니아(3조1832억 달러)와 텍사스(1조9180억 달러) 다음의 3위다.뉴욕 주의 GDP는 캐나다(1조7309억 달러)·러시아(1조6378억 달러)·한국(1조6295억 달러)보다 많다. 국가로 치면 미국(21조 4394억 달러)·중국(14조1401억 달러)·일본(5조1544억 달러)·독일(3조8633억 달러)·인도(2조9355억 달러)·영국(2조7435억 달러)·프랑스(2조7070억달러)·이탈리아(1조9886억 달러)·브라질(1조8470억 달러) 다음으로 세계 10위 경제대국에 해당한다.뉴욕 주의 1인당 GDP는 명목금액 기준으로 9만43달러로 미국의 주 가운데 1위다. 국가로 치면 룩셈부르크(11만3196달러)에 이어 세계 2위의 부자나라에 해당한다. 스위스(8만3716달러)나 노르웨이(7만7975달러)보다 많다. 뉴욕 주에는 뉴욕시 맨해튼의 금융가인 월가는 물론 정보기술(IT), 제조업 중심지가 수두룩하다.이처럼 세계의 경제 센터인 뉴욕이 최악의 코로나19 감염시가 되고 경제활동이 중지됐으니 그 답답함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뉴욕 주는 미국의 어떤 지역보다 이른 시일 안에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싶을 것이다.민주당 소속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4월 19일 기자회견에서 그런 의사를 강력하게 밝혔다. 쿠오모 주지사는 “우리 주의 감염 확산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경향이 지속하면 감염의 최고점을 넘어서게 된다”라고 밝혔다. 확산세가 둔화하기를 기다려 출구 전략을 모색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가 밝힌 출구 전략의 하나가 항체 검사다. 뉴욕 주는 4월 20일 항체검사를 시작해 하루 2000명 규모로 실시 중이다. 항체 검사를 통해 전체 인구에서 어느 정도가 집단 면역을 확보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축적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제활동 재개시기를 정밀하게 살필 예정이다.쿠오모 주지사가 밝힌 또 다른 출구 전략은 광범위한 코로나19 검사다. 쿠오모는 주 전역에 걸쳐 ‘가장 공격적인’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경제활동 재개를 위해선 충분한 코로나19 검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설정이다. 이처럼 미국에선 각 주의 코로나19 확진 검사 능력 확대도 출구 전략의 핵심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19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추적할 수 있는 역량이 그만큼 따라줘야 경제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쿠오모의 검사 확대 전략 앞에 다른 주지사들도 호응하면서 충분한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백악관의 자랑을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당 소속 랠프 노덤 버지니아 주지사는 17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1단계 경제 재개를 위한 충분한 코로나19 검사가 이뤄졌다고 언급하자 “망상”이라고 비난했다. 노덤 주지사는 “버지니아주는 코로나19 검사를 위한 면봉조차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트럼프, 주지사에 책임 넘기며 경제활동 정상화 발표 이런 상황에서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는 미국의 현 상황과 출구를 위한 조건을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NYT는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연구결과를 인용해 “경제 활동 재개가 가능 하려면 현재 하루 14만6000명 선인 코로나19 검사능력이 적어도 50만~70만 명 수준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3~5배 더 많은 검사 능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NYT는 “현재 미국의 50개 주와 워싱턴DC를 포함한 51개 지역 중 이런 능력을 갖춘 곳은 로드아일랜드 주뿐”이라고 지적했다. 뉴욕 주의 이런 움직임은 미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방역을 제대로 하면서 안전하게 경제활동을 재개하는 출구 전략의 조건을 잘 보여준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 곡선이 정점을 지나 감소하기 시작했지만 검사 능력이나 항체 보유자 비율이 어느 정도로 확보돼야만 경제활동 재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과학적이고 단호한 쿠오모와 대조적으로 트럼프는 행동이 굼뜨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16일 백악관은 확진자가 많지 않은 주를 대상으로 직장 복귀와 자가격리 해제 등 봉쇄를 3단계에 걸쳐 완화하면서 경제활동을 정상화하는 재개 지침을 마련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재개 시기나 시행 방법 등에 대한 권한을 각 주지사에게 일임할 수밖에 없었다. 연방제라는 미국의 체제에 비춰 경제활동 재개는 주지사가 결정해야 한다는 여론 때문에 밀려서다. 트럼프는 단계별 정상화 지침을 제시하면서도 50개 주에 대한 일률적·강제적 적용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결국 최종 판단은 개별 주지사가 결정할 몫이라며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주지사들에게 넘겼다.그러자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주지사는 서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플로리다, 텍사스 등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은 봉쇄 완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20일부터 쇼핑이나 하이킹, 일반 의료기관 영업 등을 허용한다고 선언했다. 남부 공화당 텃밭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등 6개주의 주지사들은 조만간 정상화 일정을 공동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보조를 맞추겠다는 이야기다. 이들 지역은 감염자가 비교적 적다.반면 민주당은 감염자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동부와 서부 해안 지역의 주지사를 주로 맡고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 시위대의 압력에도 쉽게 봉쇄를 풀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다. 민주당 소속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주내 호텔방 1만1000개를 노숙인들에게 제공한다고 밝히면서 “검사 능력을 대폭 확대하기 전에는 제한을 풀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쿠오모 지사와 일맥상통하는 과학적인 기준이자 지침이다. 동부 7개주 주지사들도 5월 15일까지 자택 대피 명령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 주지사 당 소속에 따라 코로나 대응 정책도 대조 이런 가운데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있는 다른 주들은 이런 조건과 무관하게 조금씩 봉쇄의 빗장을 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0개 주 가운데 29개 주에서 조기에 경제활동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남부 플로리다 주는 17일부터 그동안 폐쇄했던 해변을 제한시간에 개방했다. 이날 공화당 소속인 론 데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폐쇄했던 해변 재개방 여부를 지역 자치장의 재량에 맡기겠다고 밝힌 것이 계기였다.그러자 같은 날 플로리다 주 잭슨빌의 래니 커리 시장이 지정된 시간에, 수건이나 의자 지참을 금지하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등 조건으로 듀발 카운티의 해변을 재개방했다. CNN은 “시민들이 쏟아져나와 조깅·수영·서핑·산책·선탠 등을 즐겼다”고 보도했다. 주지사는 2m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을 당부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CNN의 보도다. CBS도 “마스크 없이 해변 산책에 나선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SNS에는 이를 두고 ‘플로리다 멍청이들’(#FloridaMorons)‘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글이 쏟아졌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플로리다 주 당국은 듀발 카운티 외에도 잭슨빌·넵튠·애틀랜틱의 해변을 매일 오전 6~11시, 오후 5~8시에 개방하기로 했다. ‘시민에게 숨통을 열 여유를 제공했다’는 평가와 ‘방역 라인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교차할 수밖에 없는 조치다. 텍사스 주는 20일부터 주립공원을 개장하고 24일부터는 소매점의 배달 및 테이크아웃 영업을 허가한 데 이어 상당수 소매점의 재개장도 허용했다. 중서부 오하이오 주와 미시건 주는 5월 1일 경제활동을 재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버몬트 주는 5월 1일부터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재개장하기로 했다. 미네소타 주는 18일부터 2m 거리 두기를 조건으로 골프장, 공원, 요트 정박장 등을 열었다.미국에선 외출 제한이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이에 반발하는 시위도 줄을 잇고 있다. 미국 곳곳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자택대피령’을 해제하고 경제활동 재개를 요구하는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장 먼저 시위가 시작된 곳이 미시간주의 주도 랜싱으로 15일 수천 명이 거리에 나와 그레첸 휘트머 주지사에게 경제활동 재개를 촉구했다. 토요일인 18일에는 텍사스, 오하이오, 메릴랜드, 뉴저지, 유타,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워싱턴, 콜로라도 등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일요일인 19일에는 콜로라도주, 몬타나주 등으로 시위가 확산했다. ━ 재선 다급해진 트럼프 항의 트윗 날리며 갈등 선동 시위대는 개인의 일생활동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는 보수파 또는 공화당 지지파가 주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전역의 풀뿌리 보수단체들이 힘을 합쳐 ‘우리나라를 구하자(Save Our Country)’라는 이름의 반대 운동을 공동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주지사들에게 안전하고 신속한 경제활동 재개를 촉구할 계획이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연이어 시위가 발생하자 트럼프는 묘한 행동을 했다. 트럼프는 보수파의 행동을 지지하면서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해방하라(Liberate)라는 말과 항의 시위가 벌어진 주의 이름을 나란히 붙인 트윗을 날렸다. 자신의 트위터에 “미시간을 해방하라” “미네소타를 해방하라” “버지니아를 해방하라” 등의 내용을 연속으로 올렸다. 공교롭게도 이 3개 주의 주지사는 모두 트럼프와 다른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신속한 경제활동 재개보다 방역에 무게를 두는 입장이다.트럼프가 “해방하라”라는 트윗을 날린 것은 주민들의 시위를 부추기고 자신이 주장하는 경제활동 재개를 압박한 것이나 진배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민들에게 주지사들에 대항하는 시위를 선동하고 나선 것이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봉쇄와 경제활동 재개라는 과제 앞에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를 한 셈이다. 그만큼 트럼프가 다급해졌다는 이야기다.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의 경제 점수도 낙제점에 다가서고 있다. 역시 결정타는 고용에서 나왔다. CNN방송에 따르면 미국에서 실업수당을 신청한 사람이 지난 4주간 2200만 명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4월 둘째 주에만 524만5000명이 새로 신청했다. 이에 따라 4월 실업률은 2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보수적으로 봐도 15%는 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 경제 웹사이트인 마켓워치는 이런 실업률은 대공황 당시인 1932년의 25% 이후 최악이라고 전했다.더욱 문제는 코로나19에 확산 초기에는 식당·호텔·바 등 대면접촉이 필요한 서비스업에서 시작해 영화관·옷가게·미용실 등으로 확산했던 감원이 이제는 프로그래머와 법률·의료 분야 종사자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업자가 늘면서 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한 푸드뱅크 앞에 사람들이 긴 줄을 서는 일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11월 재선을 위한 대선을 앞둔 트럼프로서는 방역은 물론 경제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런 조치가 지나치게 노골적이며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경제활동 재개와 봉쇄 해제를 강조하는 반면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은 아무래도 방역을 앞세우고 경제 활동 재개를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코로나19 방역은 갈수록 정치적인 색채를 더하고 있다.적절한 정치는 정치인의 분발을 자극하지만, 지나친 정치화는 포퓰리즘적인 행보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 과정에서 자칫 과학적인 방역이 밀려나고 정치 논리에 따른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판을 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를 내고 있는 미국이 우려되는 이유다.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보기 때문이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 기자 ciimccp@joongang.co.kr※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0.04.25 18:22

8분 소요
꼬리표 문화가 다양성 해친다

산업 일반

캐나다 국적의 무슬림 반체제 여성 작가 이르샤드 만지, “망신주기와 탓하기 그만두고 상대방의 말 경청하라” 백인 남자가 술집에 들어선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운동 슬로건)’라고 적힌 야구모자를 썼거나 프로야구팀 보스턴 레드 삭스의 티셔츠를 입었거나 십자가상 목걸이를 찼을 수 있다. 어쩌면 팔 전체에 문신을 했거나 코걸이를 걸었거나 야물커(유대인 남자가 머리 정수리 부분에 쓰는 동글납작한 모자)를 썼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꾸몄든 그 술집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또는 잠재의식적으로 그가 자신들의 편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단상이다.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족주의(tribalism)를 추구한다. 소속된 부족(집단)의 이익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현상이다. 미국 건국 이래 그런 부족주의를 감내해야 했던 쪽은 당연히 그 사회에서 처음 와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서러운 소수민족이었다. 그러나 캐나다 국적의 무슬림 여성 이르샤드 만지는 신저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Don’t Label Me)’에서 자신과는 다른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건 ‘혐오스러운 백인 남성’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인다. 만지처럼 다양성을 주창하고 옹호하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만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소위 ‘진보파’는 많은 미국인을 인종차별주의자니 레드넥(rednecks, 교육 수준이 낮고 보수적인 미국 시골 주민을 비하하는 표현)이니 하며 꼬리표를 달았다”고 말했다. “진보파의 조롱을 받은 그들 대다수가 그에 대한 보복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만지는 자신이 말하는 ‘정직한 다양성’을 주창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만든 ‘후츠파 어워드(Chutzpah Award, 용기와 신념이 투철한 여성에게 매년 주는 상)’를 받았고, ‘도덕적 용기 프로젝트(moral Courage Project)’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무슬림이자 레즈비언이고, 진보적 이슬람 옹호자로서 주류 이슬람의 코란 해석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그녀는 지난 30여 년 동안 늘 자신에게 붙은 꼬리표를 떼어내려고 발버둥쳤다. 경직된 정체성에 매몰된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고, 다른 사람에게 도덕적 용기를 내라고 지도했으며(“두려움 앞에서도 옳은 일을 하라”), 트럼프 대통령의 선출로 드러난 미국 사회의 부족주의 고조를 비판했다. 하지만 결국 얻은 건 실망이었다. 만지는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에서 “나 자신의 부족 울타리에서 벗어나려다가 오히려 내가 비관주의에 빠져버렸다”고 털어놓았다.다행히 실명한 늙은 구조견 릴리(만지는 “나의 멘토이자 고문자였다”고 말했다)가 그녀에게 탈출구를 열어줬다.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는 그 둘 사이의 가상 대화로 ‘부정직한 다양성(백인·흑인·남성·여성·성소수자·정상인 등 생물학적인 특징에 집착하는 분류를 일컫는다)’과 그에 따르는 호전적인 문화(약간만 잘못된 질문을 하면 완전히 매도당하는 현상)를 거부하는 열정적이고 때로는 재미있으며 설득력 있는 주장을 담았다. 뉴스위크는 ‘꼬리표’ 문화와 관련해 만지를 인터뷰했다.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를 집필한 계기는?지금까지 나는 늘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상징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사회에서 실제로 다양성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다양성을 수용하는 행위가 꼬리표 달기로 변질돼 갔다. 큰 걱정이다. 초기 미국 정착민이 한 행동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인을 집단으로 묶어 분류하고 그 집단을 계급으로 나눠 가치를 매겼다. 과연 그런 사고방식의 부활을 사회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책에서 왜 구조견 릴리와의 대화라는 방식을 도입했나?나는 자라면서 개를 아주 무서워했다. 릴리를 분양 받아 마침내 그 두려움과 마주하면서 나는 두려워할 합당한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전히 쓸데없는 두려움이었다.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때도 그렇다.릴리는 독립심이 아주 강하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마냥 코를 대고 내가 따라오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늙은이’나 ‘장님’ 같은 꼬리표는 릴리를 정확히 묘사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또 다른 교훈이다. 릴리와 가까워지면서 나는 틈만 나면 릴리에게 인간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에 관해 말했다. 그럴 때마다 릴리는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묻는 듯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런 릴리를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 때로는 내 말을 반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미국의 복고적인 정치 분위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런 숙고다.요즘 뉴스는 모든 측면에서 상대방에게 망신을 주고 상대방을 탓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사사건건 승강이를 벌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그렇다. 일한 오마르(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연방하원에 입성한 최초의 무슬림 여성 민주당 의원으로 미국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유대인 단체를 비난했다)와 이스라엘이 그렇다. 또 버지니아주 정치인들과 흑인들이 그렇다(버지니아주 주지사 등 몇몇 정계 인사들이 과거에 흑인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비난 받았다). 또 “흑인을 죽이고 싶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사회가 이런 비판과 비방을 넘어 건설적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고 보나?상황에 따라 반응도 달라야 한다. 하지만 망신주기와 탓하기가 자동적인 첫 반응이 돼선 안 된다. 역풍을 일으킬 뿐이기 때문이다. 망신주기는 상대방을 비하하는 행위다. 망신주기로는 상대방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상대방을 격분시켜 복수를 부추긴다.우리가 얻은 사회적 이득이 오래가려면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수용해야 한다. 우리 입장을 지키면서도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반대 견해를 경청하고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 상대방이 왜 나와 다르게 생각할까? 어떤 경험에서 나온 견해일까? 자신의 말을 상대방이 들어주길 원한다면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 심리의 기본 원칙이다.지난 1월 켄터키주 코빙턴 가톨릭고교에 다니는 백인 학생(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쓰는 붉은색 MAGA 모자를 썼다)이 미국 원주민 운동가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그 학생이 백인우월주의자로 비난 받은 사건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양측 모두에게 잘못이 있는 사건의 한 장면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그런 맥락이 밝혀지기도 전에 무조건 그 학생을 맹렬히 비난했다.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건이다. 인간은 생물학의 지배를 받는다. 난 뇌가 우리를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인간에게 연민을 느끼게 됐다. 책에서 나는 릴리에게 사람이 아니라 개로 태어났기 때문에 총격을 받지 않는 행운을 누린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의 악성 댓글은 용서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꼬리표를 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선택이다. 코빙턴 가톨릭고교생의 경우 진보 진영은 전후 맥락을 모르면서 한 장면만 보고 SNS를 통해 무조건 그 학생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렇게 꼬리표를 달아야 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 선택은 그의 피부색이나 성별, 또는 그가 쓴 모자를 근거로 이뤄진다. 그건 진보 진영이 다양성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자멸적인 행동일 뿐이다.‘부정직한 다양성’이 백인을 비하한다고 지적했는데.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나는 미국 중서부에서 출판홍보 투어를 한 뒤 뉴욕으로 돌아가 대학에 있는 동료와 중서부 독자들의 질문에 관해 얘기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질문에 관해선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 이슬람 공포증)를 얼마나 자주 겪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겪었는지 안 겪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오로지 얼마나 자주 겪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는 중서부 미국인(주로 백인을 가리킨다)을 이슬람 혐오주의자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이 다양성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고방식이 오히려 다양성을 해친다고 내가 설명하자 그도 자신의 편견을 인정했다.책에서 지적한 젊은 흑인 남성 두 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그들은 경찰이 비무장 흑인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저항 운동 때문에 오히려 소외당한다고 느꼈다. 그들은 경찰과 대화함으로써 인종에 근거한 잔혹행위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견해는 현지 흑인 운동권 지도자에 의해 묵살됐다. 그 지도자는 경찰과 대화하는 것이 흑인사회를 배신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에서 활동하는 운동가 중에는 백인과의 대화를 환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외 다른 사람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백인과 대화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그가 존경 받을 수 있는 접근법을 취했지만 결국 암살당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흑인 민권운동이 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킹 목사를 비롯해 당시 운동가들이 백인에게 존경심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존경 받은 게 아니라 상대를 존경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킹 목사는 많은 백인의 존경을 받지 못했다. 그는 증오의 대상이었다.또 나는 민권운동이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킹 목사의 메시지가 정말 옳았다. 그는 모든 사람을 ‘우리’와 똑같이 대하도록 운동가들을 훈련했다.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사람을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도덕적 권위 덕분에 그 메시지가 결국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요즘은 갈수록 많은 사회운동가가 무조건 백인을 비난한다. 그래서 좋은 의도를 가진 많은 백인이 배신당하고 사기당했다고 느꼈다. 그들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질문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백인이라고 피부색으로만 판단 받는다면 구태여 대통령의 인격에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첨단기술이 사회의 분열과 미치광이 행동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많지만 당신은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는데.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내면에 미치광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외부나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다. 물론 기술업체는 수많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동원해 우리가 균형 잡힌 사고를 하지 않도록 부추긴다. 그들은 알고리즘을 조작해 우리가 우리의 편파적인 생각과 일치하는 콘텐트만을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우리가 로그온하는 순간부터 알고리즘이 우리를 조종한다. 하지만 그들이 이용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추구하려는 경향이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우리 견해를 인정하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경우 승리감에 도취되기 쉽다. 하지만 그런 도취감은 금방 사라져 그런 경험을 더 많이 갈구하게 된다. 그러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담을 쌓고 서로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안주하면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물리치게 된다.그렇다고 소셜미디어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로그온했을 때 자신의 의식 있는 정신을 콘텐트에 속박시키지 말아야 한다. 릴리가 책에서 나를 상기시키듯이 난 트위터의 ‘암캐’가 아니다. 질문을 많이 하라고 장려하는데 그러면 인종차별주의자니 무식하다느니 위험하다느니 같은 꼬리표가 붙기 쉽지 않은가?백인이 아닌 젊은이들과 대화할 때 그들은 흔히 ‘사람들이 내 삶에 관해 질문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을 올바로 교육하는 게 내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면 난 그들에게 ‘변화를 원하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들은 당연히 원한다고 말한다. 난 ‘그렇다면 올바른 교육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준다. 사실이 그렇다. 질책만 하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다.다른 사람의 말을 더 잘 들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지만 스마트폰을 손에 달고 성장한 세대에게 전화기를 끄고 얼굴을 맞대며 대화하라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난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감정적인 방어벽만 높아질 뿐이다. 실제로 감정은 의사결정에서 우리 대다수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난 그들에게 그런 직설적인 훈계를 하지 않고 그냥 소셜미디어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묻는다. 또 그들에게 기술업체가 하루 24시간 사용자를 추적하고 조종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렇게 조종당해도 좋은가?’라고 나는 묻는다.사람들의 생각은 언제나 다를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견해차를 감싸안을 능력도 우리에게 있다. 요즘 많은 학교가 상대에게 공격적이지 않게 접근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학교는 학생에게 상처 받지 않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내가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면 그건 너무 적게 바라는 것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 메리 케이 실링 뉴스위크 기자

2019.03.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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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담배산업의 규제]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400년 밀당

산업 일반

규제로 경쟁사 견제하고 규제에 성장세 꺾이기도 … 2009년 사실상 ‘사전허가제’ 산업으로 담배가 산업화되면서 사업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한 수혜이자 장애물은 역시 규제였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인 1613년 미국은 버지니아주에서 담뱃잎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400년 간 담배회사들은 규제를 만들어 경쟁사를 견제하기도 했고, 정부의 규제에 가로막혀 성장세가 꺾이기도 했다. 세계 매출 순위 1, 2위 담배회사가 있는 미국은 담배 규제 역사 역시 길다.영국은 1629년 4월 7일 식민지 미국에서 담배 경작이 증가하자 이를 제재하는 첫 규제를 단행한다. 식민지 무역을 담당하는 뉴잉글랜드컴퍼니는 메사추세츠 지역에서 의료 목적으로 소량을 생산하는 것 외에 모든 담배 경작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웃한 코네티컷 지역은 달랐다. 코네티컷에선 막 태동한 담배 산업을 애지중지했다. 코네티컷에서만 담배를 재배해야 하며 그 외 지역에서 재배하려면 허가증을 얻어야 한다고 공표했다. 허가제의 시작이다. 한동안 영국 왕실은 스스로 담배 수입 독점권을 주장했다. 제임스 1세는 자신만이 버지니아·버뮤다 지역에서 담배를 수입할 수 있다며 영국에서의 독점권을 주장했다. ━ 1731년 담배 품질검사 의무화 1731년 영국은 최초로 담배의 품질검사를 의무화한 버지니아 법안을 공표한다. 담배 경작을 규제하기 시작한 지 100년이 지나서다. 버지니아·메사추세츠에 이어 메릴랜드 등에서 담배를 재배하는 경쟁 농장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는 품질 검사를 위해 의무적으로 창고를 지으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1681년경 담배회사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대형 담배 농장이 미국 동부 지역에서만 이미 9개가 넘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사설 창고 업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이권이 달렸기 때문에 실제로 적용되기까지는 15년 넘게 걸렸다. 당시 버지니아 지역에서 담배는 화폐처럼 쓰이고 있었으니 15년의 조정 기간이 결코 긴 것이 아니다. 실제로 1696년 버지니아주 법에는 주장관급 공무원 연봉을 담뱃잎 1만6000 파운드라고 명시했다. 18세기까지도 담배는 돈처럼 쓰였다. 버지니아 의회는 1755년 성직자들이 월급을 돈과 담배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1865년 독립국 미국은 담배에 대한 규제를 판매 방법으로까지 넓혔다. 담뱃잎을 가득 채운 238l들이 통을 기준으로 매매되던 것을 경매로만 팔도록 강제했다. 메릴랜드주는 1939년 석유처럼 통으로 거래되던 담배를 낱장으로 팔도록 했고, 1947년엔 메릴랜드주립담배공사를 설립한다. 공사는 주지사가 지정한 담배 도소매상 8명으로 구성됐다.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에는 담뱃세가 없었다. 주로 왕실이나 귀족이 미국의 담배를 수입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담뱃세 논의가 본격화한 건 남북전쟁 시기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자금이 필요했던 정부는 담배로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시가에만 세금을 부과했고 이어서 씹는 담배, 피우는 담배에도 세금을 매겼다. 남북전쟁이 끝나고도 5년이 지난 1880년 미국이 담배를 통해 거둬들인 세수는 3800만 달러로 나라 전체 세수의 31%를 차지했다.주정부 차원에서 특별 관리를 받아온 담배산업은 1930년대 들어 미국 연방정부의 관할 아래 놓인다. 1935년 연방정부는 담배검역법안을 통해 농업부가 담배 품질은 물론이고 경매 시스템도 관할하도록 했다. 이듬해엔 생산량과 담배 농가에 보조금을 주는 내용을 담은 법안도 마련한다. 이와 함께 농업부장관이 미국 시장의 주별 공급량을 정하게 하고 초과 생산 때는 벌금을 물리는 식으로 규제를 구체화해 나갔다.1960년대 미국에선 해마다 약 1억5000만 파운드의 현대식 담배가 팔려나갔다. 같은 해 담배 재배 농장의 총 수입은 9억 달러였고, 담배 판매량은 연간 50억 달러에 달했다. 정부도 무려 21억 달러의 세수를 담배에서 거둬들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담배산업 관련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판매 세율이었다. 1910년 13.6%였던 담배 판매세는 1920년 51.1%로 크게 오른다. 이는 모두 연방세였다. 1921년 주정부 중 처음으로 아이오와주가 담배 경작 농가에 직접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고 이는 곧 다른 주로 퍼지게 된다. 1969년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를 마지막으로 모든 주가 담배에 연방세 외의 주세를 따로 부과하게 된다. 지금도 연방 정부는 물론 주정부의 재정을 책임지는 주요 세원 중 하나가 담배다. 다만 주마다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이 다르기 때문에, 소량이라도 세금이 낮은 주에서 높은 주로 담배를 사서 이동하다가는 연방법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 담배산업 태동한 메사추세츠주 담배 규제 강해 담배 규제가 더욱 강력해진 건 1960년대 이후 정설로 굳어진 ‘담배 유해론’에 기인한다. 1964년 미국 공중보건국장은 처음으로 흡연이 해롭다는 내용의 ‘흡연과 건강’ 보고서를 발표했고, 이듬해 연방정부는 공중보건국장의 경고문구를 모든 담뱃갑에 인쇄하도록 했다. 담배회사들은 소송을 걸었지만 미 정부가 이기면서 이는 주정부 단위의 규제로 이어지게 된다. 1970년엔 모든 TV와 라디오에서 담배 광고를 금지했다. 1990년에는 미국 국내선 비행기와 장거리 버스에서 흡연을 못하게 했다. 역설적이게도 미국 담배산업이 태동한 메사추세츠주가 흡연 억제를 위해 가장 열심히 뛰고 있다. 메사추세츠주는 담배 세금 인상, 금연 교육 등으로 담배 소비를 억제했다. 판매량이 1992년 547만갑에서 2007년 277만갑으로 줄었다.2009년 미국 정부는 담배회사 및 로비단체의 발발에도 마침내 ‘가족흡연방지 및 담배규제 법안’을 새로 만들었다. 이 법안을 실행할 주무부처로 결정된 곳은 식품의약국(FDA)이다. FDA는 전자담배 등 새로운 형태의 담배 상품이 나올 때마다 성분을 분석하고, 이를 시판하도록 허용할지 또는 규제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2009년 이후 담배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사전 허가제도로 사실상 회귀했다. ━ 일본의 담배 규제는 | 아직도 실내 흡연자의 천국 일본은 선진국 중에선 담배에 무척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담배에 관한 첫 규제는 상당히 빠른 1900년에 나왔다. 일본은 미성년자흡연금지법을 1900년에 발효해 20세 미만 청소년은 흡연을 할 수 없게 했다.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면 이 법에 근거해 벌금 50만엔(약 500만원)을 내야 한다.1950년에는 담배 지방세 부과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했다. 1950년 담배 1000개비에 세금 898엔을 부과했지만,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는 한 갑당 지방세 25%, 부가가치세 8%를 부과토록 했다.일본도 미국처럼 흡연의 유해성에 기반한 규제가 많고 또 강력하다. 일본은 2003년 사업장 내 흡연금지 가이드라인에 관한 법안을 후생노동성이 제정하면서 간접 흡연이 유해하다고 명시했다.금연구역이 늘어나는 추세와는 다르게 일본에선 실내 흡연이 가능한 곳이 많다. 일본의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금연구역에 관한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뿐 이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내 흡연도 금지된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도 일본에선 실내에서 흡연이 가능한 가게가 많다. 법안에는 ‘사업자 등이 금연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일본 내 담배 생산·판매는 일본전매공사가 독점 운영하다가 1985년 일본담배산업주식회사(JT)를 설립해 사업을 이양했다. 상장사인 JT는 여전히 일본 유일의 담배회사다. 일본 재무성도 여전히 이 회사 지분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다. 담배산업 관련 법에 독점 생산, 정부의 지분 소유를 명시해놨기 때문이다.

2017.11.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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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 도는 중국 돼지고기 시장

국제 이슈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항의 한 창고. 관리자인 보니 제라이가 대형 냉동고를 돌아보기 위해 창고를 지나간다. 오전 10시인데도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하다. 매일 동트기 전에 직원들이 도착해 창고 앞에 궤도차를 끌어다 놓고 지게차를 움직여 수백 상자의 돼지고기를 하역한다. 새벽녘에 이 상자들을 커다란 컨테이너로 옮겨 중국행 대형 화물선에 싣는다. 매일 돼지고기 상자가 늘고 있다.중국의 인구와 소득이 불어나면서 중국 소비자의 수입 돼지고기 수요도 증가한다. 요즘 미국 돈육 생산업자들은 중국 시장 점유율을 늘리려 애쓴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 내 돼지고기 수요가 제자리걸음을 하자 양돈업자들은 새로운 시장 개발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복병이 그들의 중국 시장 진출 노력을 가로막고 있다. 새로운 수입 규제와 중국 내 물류 인프라 미비가 맞물렸다.중국 내 식육 수요가 증가한다. 1960년대 중국인이 섭취하는 음식 중 달걀·닭고기·유제품·식육·생선 칼로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했다. 지금은 식육과 육가공품의 칼로리가 19%를 차지한다.그중에서도 돼지고기가 으뜸이다. 중국의 인구는 13억7000만 명으로 미국의 약 4배다. 하지만 중국인이 소비하는 돼지고기 양은 미국의 6배를 넘는다. 지난해 총 5700만t에 달했다. 그러나 국내 생산량으로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중국은 2008년 돼지고기 순수입국이 됐다.중국의 식육시장은 오랫동안 “생고기 시장(hot market)”이었다고 미국 양돈협회 크리스 호지스 회장이 말했다. 중국 소비자는 거리를 따라 늘어선 가판대에서 막 잡아 판매하는 돼지고기를 구입해 그날 저녁 식탁에 올린다는 의미다. 그러나 중국인의 삶이 갈수록 바빠지고 도시화하면서(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160개) 식육 공급에도 변화가 생겼다. 미국 소비자에게 친숙한 가공육과 냉동육으로 바뀌어갔다.지난 5년 사이 중국에서 이들 제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미국 목축 농가들이 그 기회를 포착하기 시작했다고 호지스 회장은 말한다. 연초 이후 9월까지 미국의 대(對) 중국 돼지고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6%, 살코기(muscle meats, 돼지고기 등심·목살 같은 고급육) 수출은 22% 증가했다. 그는 “도시 지역의 돼지고기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며 “미국 돼지고기 생산자들에게는 경사”라고 말했다. ━ 미국 최대의 돈육 생산업체 중국 기업이 인수 중국의 돼지고기 소비량은 어마어마하다. 한 해 동안 전 세계 식탁에 오르는 돼지고기의 절반 정도를 중국인이 먹어 치운다. 중국은 소비하는 돼지고기의 약 97%를 국내에서 조달한다. 하지만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나라들이 중국 시장의 한 귀퉁이에 비집고 들어설 작은 틈새가 열렸다. 미국 육류수출협회 조 슐레 대외협력 부장의 설명이다.“중국의 돼지고기 수요가 공급을 약간 초과한다”고 그는 말한다. 중국의 양돈 업계는 오랫동안 소규모 농가로 이뤄졌다. 최근 들어 대규모의 기업형 양돈장으로 대체됐다. 아직 이 같은 전환기에 있으며 새 양돈시설의 생산량이 중국인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중국인 소비자가 가판대에서 생고기를 사는 대신 슈퍼마켓에서 가공육과 냉동육을 구입하는 비율도 갈수록 증가한다. 이런 제품들은 장거리 운송도 쉽다. 미시건 주립대학 자원경제학자 데이비드 오르테가가 최근 베이징 주민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47%는 전통시장에서, 39%는 슈퍼마켓에서 돼지고기를 구입했다. 15년 전에는 슈퍼마켓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중국의 식품안전 문제도 소비자가 수입육을 찾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다. 오르테가 교수가 실시한 또 다른 설문조사에선 중국인 외식 고객은 현지에서 잡은 생고기의 신선한 맛을 선호하면서도 미국산 식육이 더 안전하다고 여겼다.이미 중국의 수요로 미국의 돼지고기 생산이 증가했다. 오르테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 미국 생산자들의 대(對) 중국 돈육 제품 수출액이 4억2900만 달러, 2012년에는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중국의 돼지고기 수입 시장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18% 선이다.호지스 회장은 중국시장의 잠재력이 훨씬 더 크다고 여긴다. 미국 양돈협회는 중국 소비자의 기호와 안전우려에 대한 시장 분석에 착수했다. 미국 양돈농가들의 냉동육·가공육 판매 확대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다.미국 버지니아주에 소재한 스미스필드 팜스는 세계 최대 돈육 생산업체다. 2013년 중국의 WH 그룹이 인수했다. 중국인의 미국 기업 인수 중 사상 최대 규모였다. 오늘날 제라이 매니저의 창고를 거쳐가는 박스 중 상당수가 스미스필드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화물이다. 호지스 회장은 “스미스필드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미국 돈육 생산업계에 새로운 기회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시장이 미국 업계에 아무리 어필하더라도, 또는 중국 소비자가 아무리 미국 식육의 안전성을 믿더라도 걸림돌이 있다. 중국인 가정에 다량의 식육을 공급하려는 미국 양돈농가와 식품업체들의 원대한 계획을 가로막는 물류의 어려움이다.자신이 관리하는 PCC 로지스틱스 사무실에서 마주 앉은 제라이 매니저는 중국으로 돼지고기 보내기가 최근 몇 달 사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전에는 손상되거나 찌그러진 박스도 제품이 멀쩡하면 받아줬다. 기업들은 또한 화물이 바뀔 경우 종종 ‘대체’ 증명서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지난 3월부터 돈육제품에 대한 ‘대체’ 증명서를 금지했다. 요즘 그들은 각 화물이 원래 상태대로 도착해야 하고 각 화물의 관련 서류도 처음 검사 받았을 때와 똑같아야 한다고 요구한다.제라이 매니저는 스미스필드 푸드 등 10여 개 고객사를 도와 연간 3000~4000개의 계육·돈육 컨테이너 화물을 아시아로 발송한다. 중국 당국은 최근 그녀 고객의 화물 하나에 불합격 조치를 내렸다. 해당 업체가 제출한 미국 농무부 수출위생증명서에서 회사명 뒤에 ‘Co.’가 누락됐다는 이유였다. 화물이 퇴짜 맞아 태평양을 건너 되돌아온 것은 그녀가 17년간 물류 분야에 종사하면서 불과 세 번째 겪은 일이었다.제라이 매니저는 “요건이 아주 엄격해져 모두가 긴장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직원을 추가로 고용해 각 화물의 서류와 라벨 사이에 오류가 생길 수 있는 수백 가지 사항을 3중으로 확인한다.규칙이 왜 갑자기 그렇게 엄격해졌는지 그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산 돈육 수입의 물결을 억제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의심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전에도 중국이 이 같은 전략을 사용한 적이 있다. 대다수 미국 양돈 농가에서 사용하는 베타 작용제 사료 첨가물에 대한 오랜 금지조치가 미국 돼지고기의 수출증가를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로 남아 있다. 그런 금지조치를 비롯한 까다로운 조건들로 인해 미국 납품업체들이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중국으로 돼지고기 납품 자격을 갖춘 미국 가공공장이 10여 곳도 안 된다고 슐레 대외협력 부장은 말한다. 최근 자격을 갖춘 7개 미국 공장이 더 가동을 시작했다.또한 한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들은 오래 전부터 수입품 검사 기준을 높게 유지해 왔다. 중국이 그들을 따라잡으려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제라이 매니저는 추측한다. 중국의 포괄적인 식품안전법이 지난 10월 새로 발효됐다. 주로 중국의 국내 공급 개선 문제를 다룬다.“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우리는 국민이 소비하는 제품에서 다른 나라와 똑같이 우수한 품질을 요구한다. 우리는 2류 국가가 아니다’는 요지”라고 제라이 매니저가 말했다. 그녀의 직원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포장한 돼지고기가 중국에 도착한 뒤에도 또 다른 걸림돌이 남아 있다. 식육은 냉동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냉동 트럭과 창고 인프라가 소비자 수요를 따라 가지 못한다.‘프리퍼드 냉동차 서비스(Preferred Freezer Services)’의 팀 매클레런 국제개발 담당 상무는 상하이에 있는 자신의 회사에서 그런 문제를 직접 목격한다. 6년 전 중국의 냉동공급 체인의 확장을 시작한 초창기 미국 기업 중 하나다.회사의 트럭 기사들은 아직도 종종 시내로 배달할 때 대형 트럭에서 소형 트럭 또는 3륜 스쿠터로 화물을 옮겨 싣는다. 그리고 트럭이 빈 채로 창고로 돌아가는 일도 부지기수다. 화물 받침대(pallets)도 구하기 어렵고 일꾼들이 거의 짐을 옮긴다. 그는 중국의 기존 인프라를 1960년대와 70년대의 미국에 비유한다. 매클레런 상무는 “온갖 건물과 인프라가 눈길을 끌지만 식품운반은 30년 뒤져 있다”고 설명했다. “모두가 기차와 고층빌딩 짓는 데만 집중했기 때문이다.”미국의 다른 생산업체들도 중국의 늘어나는 식육 수요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려 열을 올린다. 하지만 모두 중국 공급망에 남아 있는 구멍들에 대처해야 한다. 매클레런 상무가 지난 10월 만났던 메인주 주지사는 바다가재 홍보를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 목축업자들은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이후 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조치를 중국이 해제해주기 바란다.현재로선 중국의 수요(그리고 미국 돈육 생산자 입장에서 시장 잠재력)는 확대일로를 걸을 전망이라고 매클레런 상무는 말한다. “계속 증가할 것이다. 분명 엄청난 시장이다.”- AMY NORDRUM IBTIMES 기자 / 번역 차진우

2015.12.1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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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와 선동가의 차이

산업 일반

현재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인물 중 누가 리더십을 보이고 누가 그렇지 않은가?리더십이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만약 그런 능력만으로 따지자면 역사상 최악의 폭군도 위대한 리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리더가 아니라 선동가였다. 그 둘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리더는 국민에게서 최선의 행동과 정신을 이끌어내지만 선동가는 거꾸로 최악을 이끌어낸다.리더는 관용을 설파하지만 선동가는 증오심을 부추긴다.리더는 무력한 사람에게 힘을 부여한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존중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반면 선동가는 무력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할 수단으로 그 희생양을 활용한다.리더는 대중의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없애준다. 선동가는 오히려 그런 두려움을 부추겨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내가 생각하는 미국의 위대한 리더 목록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 여성참정권·노예제 폐지 운동가 수전 B 앤서니,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 사회보장제도를 창안한 혁신가이자 뉴딜정책의 챔피언이었던 프랜시스 퍼킨스 전 노동장관, 흑인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포함된다.링컨 전 대통령은 남북전쟁 끝 무렵인 1865년 4월 두 번째 취임식 연설에서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두를 관용으로 대하라(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고 촉구했다.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대공황이 기승을 부리던 1933년 3월 첫 취임식 연설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라며 “해야 할 노력을 마비시키는 이름 없고, 비이성적이며, 부당한 공포를 말한다(nameless, unreasoning, unjustified terror which paralyzes needed efforts)”고 역설했다.킹 목사는 1963년 흑인들이 민권을 요구했을 때 지지자들에게 “비통과 증오의 잔을 마심으로써 자유를 향한 우리의 갈증을 채우려 하지 말라(not to seek to satisfy our thirst for freedom by drinking from the cup of bitterness and hatred)”고 촉구했다.내가 생각하는 선동가 리스트엔 1890년대 린치 폭도를 지지한 ‘피치포크’ 벤저민 틸먼 전 민주당 상원의원, 1930년대 라디오 방송으로 나치를 찬양한 반유대주의자 찰스 커플린 신부, 1950년대 ‘공산주의자 마녀사냥(Red Purge, 빨갱이 숙청)’에 나섰던 조셉 매카시 전 공화당 상원의원, 인종차별주의를 끝까지 옹호한 조지 C 월리스 전 앨라배마 주지사 등이 포함된다.그들은 국민에게 최악을 장려했다. 약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미국인을 서로 반목하게 했다. 또 두려움을 이용해 증오를 부추기면서 자신의 권력을 다졌다.그렇다면 현재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인물로 돌아가 보자. 누가 리더이고 누가 선동가일까? 리더는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연결하는 다리를 놓으려 했다.예를 들어 공화당 경선후보 랜드 폴 상원의원은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캠퍼스)에서 연설하며 그 대학의 가장 진보적인 학생들과 합의점을 찾으려 했다. 민주당 경선후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버지니아주의 리버티대학을 찾았다. 대다수 학생과 교수가 동성 결혼과 낙태 문제에서 그의 입장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여기 온 것은 진심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우리가 시민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I came here today, because I believe from the bottom of my heart that it is vitally important for those of us who hold different views to be able to engage in a civil discourse)”이라고 말했다.그와 대조적으로 다른 후보들은 분열을 부추겼다. 공화당의 벤 카슨 후보는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다. “감옥에 들어갈 때는 이성애자였던 사람이 나올 때는 동성애자가 된다(A lot of people who go into prison straight and when they come out they’re gay). 그렇다면 감옥에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So did something happen while they were in there)? 한번 자문해보라(Ask yourself that question).”카슨 후보는 또 무슬림은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난 무슬림이 미국의 수반이 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I would not advocate that we put a Muslim in charge of this nation).”한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범죄자에 견줬다. “그들은 마약과 범죄를 미국에 들여온다. 그들은 성폭행범이다(They’re bringing drugs. They’re bringing crime. They’ re rapists).” 그는 또 자녀가 미국 시민이 되도록 미국에 와서 아기를 낳는 ‘원정 출산’을 맹비난했다. “우리가 미국을 되찾아야 한다. 미국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we have to start a process where we take back our country. Our country is going to hell).”트럼프 후보의 지지자가 “무슬림은 우리를 죽이려고 훈련하고 있는데 언제 우리가 그들을 몰아낼 수 있나?”라고 묻자 그는 “많은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한다”며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답변했다.최근 유세에서 트럼프 후보가 불법 체류 근로자를 폄하하자 지지자들은 그에게 항의하러 온 이민자 운동가들에게 침을 뱉으며 밀쳐냈다. 또 그의 지지자들은 라틴계 미국인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백인만 정당한 시민이다”고 외쳤다.트럼프 후보의 지지자들은 이민자 운동가들에게 “xx! 내 호텔방이나 청소해”라고 말했다. 그들은 노숙자를 구타하고 그에게 소변을 본 뒤 “불법으로 우리 국경을 넘어오는 자들을 얼마든지 쏴 죽여봐”라고 말했다.미국은 누구나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다. 선거자금을 충분히 동원하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리더와 선동가를 구분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리더는 사회의 품격을 높인다. 그러나 선동가는 사회를 타락시키고 위험하게 만든다. 그들이 선거에서 져도 그럴 수 있다.- ROBERT REICH / 번역 이원기

2015.11.09 11:01

4분 소요
힐러리는 왜 브루클린을 선택했나

산업 일반

주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면 부동산 중개업자로부터 무엇보다 입지(장소)가 중요하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늘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location, location, location!)”라고 말한다. 미국의 대선 선거대책본부에도 적용할 만한 괜찮은 규칙이다.어디에 본부를 설치하느냐가 후보자의 의중을 반영한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유력시되는 힐러리 클린턴은 선거대책본부를 뉴욕시 브루클린에 두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기존의 개인 사무실, 그리고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가 주도하는 국제문제 해결을 위한 자선단체) 본부와 가까운 곳이다. 또 그는 뉴욕시 교외에 집도 있고, 뉴욕주를 대표한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다. 아울러 선거자금 기부자들과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클린턴의 결정은 그가 선택하지 않은 장소 때문에 더 주목을 끈다. 2008년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 그의 선거대책본부는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었다. 워싱턴 DC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클린턴 부부는 아직도 워싱턴 근교의 조지타운에 집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엔 워싱턴 정가와 거리를 둘 생각인 듯하다.또 오래 전 12년 동안 주지사의 아내로 지낸 아칸소주로 돌아가면 미국 중류층과의 유대를 과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클린턴은 그럴 생각이 없다. 만약 그곳에 돌아간다면 진심이 담기지 않은 표 얻기 행보라고 조롱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곳을 떠난 후 지금까지 아칸소주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아칸소주에 본부를 두면 여러 모로 불편한 점도 많다. 클린턴은 기존의 개인 사무실이 있는 맨해튼도 피했다. 맨해튼에 본부를 두면 돈줄인 월스트리트 금융사들과의 관계가 입방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선거대책본부의 장소 결정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돈이 핵심이다(부동산 투자 결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무실 임대료만이 문제가 아니라 큰손 기부자들과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후보는 멀리 떨어진 곳에 본부를 두면 직원을 구하기가 힘들다. 유망한 후보의 경우도 고위 참모들은 가족과 집이 이미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사를 하거나 장거리 비행기 통근을 꺼린다.2016년 대선을 노리는 공화당 경선후보는 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그들의 선거대책본부는 상당히 널리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주)은 이미 휴스턴에 본부를 차렸다.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는 주도 매디슨에서 팀을 꾸리는 중이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정치자금을 모으고 세력을 규합할 정치활동위원회(PAC)인 ‘라이트 투 라이즈(Right to Rise)’를 마이애미에서 발족했다(출마를 공식 선언하면 곧바로 선거대책본부로 전환될 것이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도 마이애미에 본부를 둘 듯하다. 부시와 루비오는 접전이 예상되는 경합주에 선거대책본부를 두는 유일한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켄터키주를 대표하는 랜드 폴 상원의원은 놀랍게도 텍사스주 오스틴에 사무실을 차렸다. 물론 그는 곧 켄터키주 루이스빌에서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운동 대부분을 그곳에서 지휘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는 온라인 선거 운동 본부만은 성장하는 기술 중심지 오스틴에 두기로 했다. 그곳에서 채용한 여러 유능한 디지털 스타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를 꺼리기 때문인 듯하다.2008년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는 선거대책본부를 시카고에 뒀다. 당시 그가 그곳에 살았고 상원에서 일리노이주를 대표했기 때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그곳에서 정치활동을 펼쳤다는 역사적인 연관성도 고려된 듯하다. 하지만 2012년 재선 운동 때도 오바마는 시카고에 본부를 차렸다. 예상 밖이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워싱턴에 본부를 뒀다면 직원들을 더 자주 찾아가 격려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조지 W 부시는 재선을 위한 선거대책본부를 워싱턴과 가까운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뒀다.그러나 오바마는 자신은 뒤로 물러서고 고위 참모들이 시카고에서 자신의 재선 선거운동을 이끌도록 했다. 데이비드 액슬로드 같은 일부 측근은 일찍이 백악관을 떠나 시카고로 돌아갔다. 선거대책본부를 멀리 둔 게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했다. 첫 임기 동안 비판자들은 오바마가 재선만 노리고 정책 결정을 내린다고 비난하며 그를 ‘군 총사령관(Commander-in-Chief)’이 아니라 ‘선거운동 총사령관(Campaigner-in-Chief)’이라고 불렀다. 오바마는 일리노이주에 선거대책본부를 둠으로써 백악관과 선거운동 본부 사이의 1130㎞라는 거리를 내세워 자신이 재선에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었다.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도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워싱턴과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그는 하원에서 조지아주를 대표하면서 수 년 동안 워싱턴 교외인 버지니아주에 살았다. 딸 하나가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살긴 했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다른 연고는 없었다. 그러나 워싱턴에 살 경우 정가와 거리가 먼 외부자로 선거운동을 하기 어렵다. 따라서 깅그리치는 애틀란타에 빈 사무실을 차려두고 그를 대리하는 법률회사의 주소를 공식 서류의 발신지로 사용했다.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갈 경우 아무도 반기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앨 고어는 2000년 대선을 위한 본부를 처음엔 워싱턴에 뒀다. 현직 부통령으로서 출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에서 득표율이 떨어지자 그는 클린턴 대통령의 그림자 탓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클린턴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고향의 이점을 활용할 목적으로 선거대책본부를 테네시주 내슈빌로 옮겼다. 당시 그는 “미국 중류층과 함께 풀뿌리 운동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선언했다.고어는 도전자 빌 브래들리 상원의원(뉴저지주)을 수월하게 꺾고 민주당 후보로 지명됐다. 그러나 본선에서 고어는 테네시주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가 테네시주에서 부시에게 이겼다면 플로리다주의 개표 시비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처럼 언제든 고향으로 돌아갈 순 있지만 구태여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경우도 있다.- 번역 이원기

2015.04.12 19:13

4분 소요
CONSPIRACY THEORIES - 우리 모두가 음모론을 믿는다

산업 일반

미국 앨라배마주 볼드윈 카운티에서 민간부문 개발업체들에게 지침을 제시하려던 모범 개발계획이 무효화됐다. 주민들이 유엔의 음모라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재산권을 빼앗고, 공산주의를 실시하고, 현지 주민들을 기차에 태워 비밀 캠프로 보내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청사진이 부결되자 주민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미국 찬가 ‘God Bless America’를 불렀다. 도시계획 위원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러났다.의사들이 인생 말년을 맞은 고령 환자들의 건강의료 및 개인적 우선과제에 관해 논의하도록 하고 그 시간만큼 보수를 지급하려는 연방 건의안이 보류됐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비롯한 일부 보수파들이 그 아이디어를 비판했다. 관료들의 ‘사망심사 위원회(death panels, 종말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연명조치 중단을 판단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지 결정하도록 한다는 주장이었다.그러나 그 건의안은 노인병 전문의, 종양학자, 고령자 권익옹호 운동가들의 지지를 받던 구상이었다. 그 구상이 폐기됨에 따라 이제 미국의 고령자들은 의사들이 무료 상담을 해줄 경우에만 소생치료, 통증관리, 종교적 지원에 대한 선택 방안을 듣게 된다.2008년엔 미국에 홍역 환자가 없었다. 백일해에 걸린 사람은 49명에 불과했다. 두 가지 질병 모두 대부분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었다. 2013년에는 미국에서 최소 276명이 홍역에 감염됐다. 한편 백일해 환자는 2만2616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의학 전문가들은 예방접종을 받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에서 그런 추세의 원인을 찾았다. 상당 부분 의사와 제약회사들이 이익 감소를 우려해 예방접종의 위험성을 은폐하려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백신 시장의 수익은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수준이다. 지난 35년 사이 7개 회사 중 6개사가 파산했을 정도다.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병들이 한때 퇴치되기 직전까지 갔지만 요즘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학적 사기와 유명인사들이 내세우는 이같은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그런 예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조지 W 부시가 9·11 테러를 획책해 수천 명을 살해했다, 버락 오바마는 케냐 국적자이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직 수행이 불법이다, 주지사들이 개발한 교육 표준은 어린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드는 반기독교적인 공산주의 음모의 일환이다, 실업률과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법) 가입자 통계는 백악관이 꾸며낸 거짓말이다,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해도 어린이들의 충치를 막지 못하며 거기에는 갖가지 악의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 등등...미국 헌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미국 사회의 씨줄과 날줄 속에 음모론이 섞여 들었다. 과거에는 그런 음모론이 피해망상증 환자들의 정신 나간 소리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근년 들어선 도를 넘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요즘엔 망상과 허구의 이야기, 광기가 정부 정책의 숨통을 조이고 전국적인 건강 위험을 야기한다.“미국 내에서 이성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정상이지만 이런 음모론은 이성적인 토론을 모두 완전히 왜곡하는 효과가 있다.” 남부빈민구제법센터의 선임 연구원 마크 포톡이 말했다. 그는 최근 이른바 ‘의제 21(Agenda 21)’ 음모론의 영향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런 음모론이 요즘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음모론의 숫자와 비중이 근래 들어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정 부분 인터넷 채팅방, 트위터, 그리고 기타 소셜 미디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빠르게 널리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공론의 장에서 음모론이 예전보다 보편화됐다.” 그 현상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한 시카고대 정치학과 에릭 올리버 교수가 말했다. “한계를 넘어선 듯하다.”‘의제 21’에 대한 우려가 대표적인 예다. 1992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세계 177개국 정상이 서명한 구속력 없는 의향서다. 취지는 간단했다. 유엔의 후원 아래 도시개발과 토지활용 정책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관리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다. 당시 주류 보수파와 진보파 정치인들은 대수롭지 않은 개념이라고 간주했다.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극단주의 단체들이 ‘의제 21’을 물고 늘어졌다. 유엔과 ‘새로운 세계질서’가 사유재산을 몰수해 공산주의를 확대하고 반대파를 모두 탄압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한다. 어느 곳에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허용할지 결정하는 생사지도도 만들어진다고 일부 음모론은 주장한다. 나무에게 인간들과 똑같은 권리가 주어진다느니 전력회사들이 고객들을 사찰한다느니...2012년에는 공화당전국위원회(RNC)가 ‘의제 21’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식으로 부의 재분배를 강요하려는 교활한 술책”이라는 내용이었다. 공화당 대통령이 ‘의제 21’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간과한 행동이었다.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릴 즈음엔 어조가 누그러졌다. 그러나 그에 관한 터무니없는 주장들은 여전했다. 자금지원도 거의 받지 못하고 강제력 없는 선언인데도 “교활하며 미국 주권을 좀먹어 들어간다”고 주장했다.오늘날 ‘의제 21’ 음모론이 미국 각지에서 고개를 든다. 도시계획 위원회가 환경영향을 고려하는 한편 난개발을 통제하는 개발계획을 채택하려는 시점이다(도시계획 위원 다수는 그 유엔 성명을 들어본 적도 없다). 볼드윈 카운티 건의안도 ‘의제 21’ 우려로 폐기됐다. 메인주의 교통정체 완화 목적으로 구상된 자동차 전용도로 건설 프로젝트도 취소됐다. 버지니아주 굴 양식장 복원 구상도, 플로리다주의 고속철도 신설안도 마찬가지였다. 자전거 도로 건설 공사조차 사악한 국제적 음모라며 시위를 벌이는 현지 주민들의 공격을 받았다.클라이븐 번디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도 마찬가지다. 연방 국유지에 소를 방목할 때는 법에 따라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네바다주 목축업자인 그는 돈을 못 내겠다며 버틴다. 이 논란도 유엔과 관계가 있다. “유엔 ‘의제 21’을 조사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가 그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용도구역 변경을 통해 주민의 땅과 권리를 빼앗으려는 목적이다.” 아이다호주의 한 주민이 번디 건에 관해 지역 신문 쾨르달렌 프레스에 편지를 썼다. “유엔은 개인 재산권을 모두 박탈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그 편지는 매일 언론 매체에 쏟아지는 다른 해괴한 음모투성이 문서들과 함께 휴지통에 던져지지 않았다. 대신 ‘번디 사건, 모두 유엔 의제 21의 일환’이라는 제목 아래 활자화됐다. 공유지 방목 수수료가 ‘의제 21’이 채택되기 약 60년 전인 1934년에 도입됐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었다. 다른 목축업자들이 아무런 세계적인 음모 없이 1만8000건의 방목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도 외면 당했다.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무서운 확신이 정치논쟁의 한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가 이런 것들을 믿는가? 모두가 믿는다.” 시카고대의 올리버가 말했다. “음모론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뛰어넘는다.”조지 W 부시 정부에 관한 음모론의 예를 들어보자. 부시가 9·11 테러를 핑계 삼아(또는 심지어 그것을 획책해) 전쟁을 벌이고 국가의 보안 기반시설을 확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딕 체니 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기획해 수백만 달러의 재건 계약을 그의 전 직장 핼리버튼에 안겨줬다느니, 정부가 오하이오주에서 부정행위로 2004년 대선을 조작했다느니 등등...이같은 주장은 다수의 일반 시민이 제기했다. 하지만 전국 무대의 정치인들도 한몫 거들었다. 각각 키스 엘리슨 민주당 하원의원, 공화당의 자유주의 일파와 관련된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로 현재 진보파 라디오 대담프로 진행자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등이다.실제로 부시 정부를 공격하는 일부 음모론자들의 높은 지명도는 더 심각한 추세를 보여준다. 전국 무대의 정치 지도자들이 일말의 근거도 없이 비밀 책략과 배반설을 설파한다는 점이다. 오바마가 출생증명을 숨기고 있다는 주장에 많은 정치인이 힘을 실어줬다. 그가 케냐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의 밑바탕을 이루는 가설이다.뉴스 보도에 그런 취지의 발언이 인용된 인사로는 리처드 셸비 상원의원, 로이 블런트 당시 하원의원, 네이선 딜 당시 하원의원 등이 있다. 신시아 맥킨니 전 하원의원은 9·11 음모론의 지지자였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의제 21’에 골프장과 포장도로를 없애려는 시도가 포함된다고 말했다.저명한 기업인과 지식인들도 근거 없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잭 웰치 전 회장 겸 CEO도 그 중 하나였다. 2012년 대선 전 정부가 발표한 실업률 감소 통계는 사실이 아니라고 공언했다. 딕 모리스를 비롯한 정치 평론가들도 비슷한 경우다. 그들은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의 승리를 점치는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들끼리 공모한 결과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폭스 뉴스의 인터뷰 전문 기자이자 프로듀서인 제시 와터스는 오바마케어를 두고 그런 주장을 했다. 백악관이 발표하는 통계에서 오바마케어 아래의 건강보험 가입률이 높게 나타날 때는 정부가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요즘 왜 그렇게 많은 국가적 유명인사들이 사악한 음모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걸까? 음모론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딱 부러진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분명 자신이 솔직히 믿는 수준보다 몇 걸음 더 나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영국 윈체스터대에서 음모론의 심리학을 가르치는 강사인 마이클 우드 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음모론 관련 아이디어들이 정치 고위층에 뿌리내렸을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전혀 끌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저명인사들은 정적들이 부정행위를 한다고 암시하기도 한다. 그럴 때 종종 사람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문제를 제기할 뿐이라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게 음모론을 띄우는 한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는 공식적인 설명에 관해 ‘단순히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영국 ‘사회심리학 저널’의 공동편집자이자 켄트대에서 음모론을 연구한 중진 학자인 캐런 더글라스가 말했다. “논리학적으로 상당히 강력한 방식이다. 어떤 알맹이도 필요 없이 공식적인 이야기에 의혹만 제기하면 되기 때문이다.”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낭설에 근거해 심각한 비리를 저질렀다고 정적을 비난할 때는 사회 담론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 터무니없는 소문을 토대로 서로 상대방을 테러리스트, 반미주의자, 살인자, 인종차별주의자 등이라며 공격하는 식이다. 그럴 때는 사회 분열로 인해 기본적인 통치체제가 마비된다.“음모론과 그릇된 정보에 관해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토론 자체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음모론에 관한 리서치를 실시한 다트머스대 행정학과의 브렌던 나이한 조교수가 말했다. “공인들이 논의해야 하는 진짜 이슈와 관심사로부터 엉뚱한 곳으로 관심을 이전시킨다.”공교육의 ‘공통학력표준(Common Core, 미국 연방정부의 학력표준 향상책의 일환)’으로 알려진 문제에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전국 주지사 협회가 주 교육감 단체와 공동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교육의 표준을 수립하고 각 학년의 모든 학생이 갖춰야 하는 수학 및 독해 능력을 설정하려는 취지였다. 그 표준은 현재 44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공통학력표준을 찬성 또는 반대할 만한 뚜렷한 이유들이 있다. 그것이 미국의 학교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올바른 길인지는 선의의 참여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 표준이 적절한 검증을 거쳤느냐 또는 학생들의 공통학력표준 시험 성적을 토대로 교사들을 평가해야 하느냐에 관해서도 당연한 의문이 존재한다. 불행히도 그런 논의는 그 표준에 관한 음모론으로 탈선하고 말았다. 거짓, 오해, 그리고 해괴하고 은밀한 음모에 대한 믿음이 그 토대를 이룬다.저명한 보수파 논객 글렌 벡은 2013년 한 TV 프로그램에서 공통학력표준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그건공산주의다. 우리는 악을 상대하고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할 때가 온다. 그것은 악이다.” 이번에도 그런 식의 비난이 정치적 절차에 끼어들었다.오마바 정부가 그 표준을 짜맞췄다는 주장과 함께였다.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휘말려 반대파들이 그것을 ‘오바마코어(Obamacore, 오바마와 Common Core 를 합성한 조어)’로 간주하게 됐다. 남부빈곤구제법센 터가 최근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음모론은 지난 4월 앨라배마주 상원 교육위원회의 한 공청회에서 흘러나왔다. 지역 교육청들이 공통학력표준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관한 공청회였다.“우리는 아이들이 반기독교, 반가톨릭, 반미주의로 교육 받기를 원치 않는다.” 티파티(Tea Party, 보수파 시민운동) 운동가인 테리브래튼의 말이 보고서에 그대로 인용됐다. “우리 아이들이 순결함을 잃게 만들고 싶지 않다. 취학 전 또는 유치원 때부터 동성애가 좋은 것이며, 일찍부터 경험을 가져야 하고, 동성 결혼도 아무 문제 없다고 배우기를 원치 않는다.”공통학력표준에선 그런 것들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실상 거의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교과과정이 없고, 요구하는 학습방법이 없으며, 공부해야 할 책도 없다. 공통학력표준에서 모든 학생에게 읽도록 권장하는 교재는 미국 헌법 전문, 권리장전, 독립선언문, 에이브러햄 링컨의 2기 대통령 취임연설이 전부다.공통학력표준은 과목이 아니라 학업능력을 의미한다. 예컨대 초등 4학년생 독해 표준의 경우는 이렇다. “본문의 주제를 파악하고 주요 세부 정보들이 그것을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학생들이 읽을 만한 추천 도서 목록이 포함되기는 한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필독서는 아니다. 교사나 지역 교육청이 이들 추천 도서 모두나 일부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전혀 선택하지 않아도 여전히 공통학력표준 과정에 속할 수 있다.그렇다면 공통학력표준은 가치 있는 국가적인 과업인가? 그 답은 영영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미국주의원협의회에 따르면 미국 각지의 의원들이 공통학력표준과 관련해 200건 이상의 법안을 제출했다. 그중 절반 가량이 그 표준의 도입을 지연 또는 중단시키려는 목적이다. 전염성 강한 음모론음모론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비주류파들이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더 신뢰성 높은 정보공급원들이 그것을 채택한 뒤 궁극적으로 대중매체에까지 이르게 된다. 남부빈곤구제법센터의 포톡은 이른바 ‘아즈틀란 음모(Aztlan Conspiracy)’를 예로 든다. 멕시코가 미국을 침공해 남서부의 7개 주를 되찾으려 은밀히 계획 중이라는 설이다. 대여섯 명의 미국인들로 이뤄진 급진 반이민주의 단체가 그 음모론의 출처임을 남부빈곤구제법센터가 밝혀냈다. 갈수록 더 규모가 큰 단체들로 퍼져 나가다가 마침내 당시 CNN 소속이던 저명 방송인 루돕스가 언급하기에 이르렀다.“그런 식으로 음모론이 퍼져나간다”고 포톡이 말했다. “비주류 단체에서 출발해 어느새 전국 TV에서 방송된다. 이는 이민에 관한 진지한 론을 아주 어렵게 만든다.” 뉴스 매체의 증가가 분명 음모론의 확산에 기여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의 영향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같은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온라인에서 폐쇄적인 아리를 형성할 수 있다.상반된 정보에는 귀를 닫고 음모론만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한다. “서로 대화가 되는 사람들의 소셜네트워크를 갖고 있을 경우 음모론이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다.” ‘음모론과 기타 위험한 발상들(Conspiracy Theories and Other Dangerous Ideas)’을 저술한 하버드대 로스쿨의 캐스 선스타인 교수가 말했다. “말그대로 전염병 같다.”일각에선 음모론자들을 무지하고 불안정한 사람들이라고 일축할지도 모른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멍청한 사람만 이런 음모론을 믿는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다트머스대의 나이한이 말했다. “실상은 더 알 만한 사람들도 이 같은 주장에 넘어갈 수 있다. 자신이 기왕에 믿고 싶어하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방편이 되는 경우다.”과학자들의 의견도 같다. 사회 각계각층 사람들이 삶의 혼돈을 수습할 길을 찾는 과정에서 음모론을 지지한다. 때로는 그저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음모론을 퍼뜨린다. “우리 주변 세상은 갖가지 이유로 더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고 나이한이 설명했다. “음모론은 통제와 질서가 회복된 느낌을 얻는 한 방편이 된다.”음모론에 빠져드는 사람들에 관한 연구 결과는 당혹스러울 수 있다. 예컨대 한 연구에선 1997년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살해당했다고 믿는 사람은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컸다. 2011년 미국 해군 특수부대가 오사마 빈 라덴의 은거지를 급습하기 전에 그가 이미 숨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가 피신했다고 믿을 가능성 또한 크다.두 가지 상반된 사고를 동시에 품는 이 같은 성향이 음모론과 그 추종자들의 특성을 이룬다. 심리학 연구에선 어떤 사람이 음모론을 믿을 확률을 일관되게 나타내는 속성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 사람이 다른 음모론들도 믿는 경우다.이들 종종 대단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믿는 사람 숫자가 대단히 많다. 2013년 여론조사 업체 ‘퍼블릭 폴리시 폴링’이 전국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비밀 지배계급이 권위주의적인 글로벌 행정체제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 음모를 꾸민다고 믿는 미국인이 28%, 정부가 TV 방송에 ‘마인드 컨트롤’ 기술을 추가한다고 믿는 비율이 15%, 1980년대 미국의 도심 빈민가에 코카인 마약을 퍼뜨리는 데 중앙정보국(CIA)이 일익을 담당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14%였다.의료 음모론에 관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그리고 때로는 더 극단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지난 3월 미국의학협회저널은 올리버와 우드 교수가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의학 음모론을 믿는 응답자 비율이 49%, 3가지 이상을 믿는 비율은 18%에 달했다. 응답자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음모론은 암 치료, 백신, 휴대전화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빠져드는 주제들이기도 했다.미 식품의약국(FDA)이 제약회사들과 공모해 암의 자연치료를 저지하려 한다고 믿는 비율이 37%였다. 한편 20%는 휴대전화가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정부가 발표하지 못하도록 기업들이 방해한다거나, 의사들이 내심 백신이 위험하다고 믿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사용하려 한다고 생각했다.“사실이 아니라면 왜 부정하는가?”정치적 음모론과 마찬가지로 의학적 음모에 관한 우려도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음모론을 더 강하게 믿던 사람들은 자외선 차단제나 건강검진을 받는 비율이 크게 떨어졌다. 조사팀이 응답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피해망상, 일반적인 사회적 따돌림을 감안해 조정했을 때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캐런 더글러스와 켄트대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인 대니얼 졸리가 비슷한 연구를 실시했다. 예방접종에 관한 음모론에 노출된 사람들은 대조군보다 “예방접종을 더 기피했다.”이처럼 정책·정치·국민건강에 관한 음모론은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 같은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시도는 모두 하나의 큰 어려움에 부닥친다. 음모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사실을 제시한다 해도 음모론자들이 옳다는 확신만 더 굳혀줄 뿐이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올바른 데이터와 정보를 제시해도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설득하지 못한다는 말이다.“사람들의 그릇된 믿음을 바로잡으려 해도 그 믿음을 더 굳혀주기만 할 수 있다”고 하버드대의 선스타인이 말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왜 굳이 부정하려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갖는 사람도 있다. 다시 말해 부정은 음모론이 사실이라는 증거라고 여기는 셈이다.”예를 들어 보자. 나이한 등이 실시한 연구에선 ‘사망 심사 위원회’에 관한 세라 페일린의 주장에 피험자들을 노출시켰다. 그뒤 그런 주장들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는 정보를 제시했다. 페일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또는 그녀를 좋아하지만 정치적 지식이 없던 사람들은 기꺼이 그 정정을 받아들였다.그러나 피험자들에게 사실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 역효과를 초래한 대상도 있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정치에 밝은 페일린 지지자들이었다. 그들은 정정을 받아들이더라도 여전히 ‘사망심사 위원회’를 믿으며 개혁을 강력히 반대할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들이었다.”다시 말해 일부 음모론의 경우 어떤 명백한 사실로도 시정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음모론을 반박하려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시도조차 또 다른 음모론을 불러올 수 있다. 예컨대 선스타인은 2008년 음모론과 정부, 그리고 온라인에서 진정한 추종자들과 만 대화하려는 음모론자들의 문제에 관한 글을 썼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가령 일단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기타 극단주의자들이 폭력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경우는 어떨까?그런 경우에는 “극단주의 단체들에 대한 인지적 침투(cognitive infiltration)”가 한 가지 가능한 전술이라고 선스타인은 말한다. 정부 요원들이 채팅방에 들어가서 이런 위험한 음모론이 확산되는 소셜 네트워크에 가담해 그에 관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의 정보를 퍼뜨린다는 의미다. 요원들은 자신의 신분을 공개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각 옵션에는 다른 위험과 보상이 따른다고 선스타인은 말했다.그러자 음모론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를 공격했다. 선스타인이 반대 의견을 탄압하려 시도한다고 그들은 공언했다. 어쩌면 그가 온라인에서 정부 비판자들의 추적을 도울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같은 음모를 새로 제기하는 음모론자들은 선스타인이 분명 일종의 정부 끄나풀이라고 말했다. 그가 백악관 정보·규제문제국 행정관 출신이라는 사실을 이유로 들었다.“그는 백악관에서 나오는 정보의 배포자였다!”고 그들은 말한다. (온라인 검색을 하거나 아마존닷컴에서 선스타인의 저서에 대한 독자 서평만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선스타인은 정부 요원” 음모론이 도처에 깔려 있다.)진실이 뭐냐고? 선스타인의 일은 스파이 활극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정부의 서류작업을 줄이고 규제가 법과 일치하도록 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제임스 본드보다는 고급 본드 용지에 더 가까운 일이었다. “이들 중 다수는 내가 어떤 정치적 선전활동에 참여했으며 그것이 내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서류업무 부담을 줄이도록 하는 일이 전부였다.”선스타인만 그런 공격을 받은 건 아니었다. 남부빈민제법센터가 ‘의제 21’에 관한 보고서를 공개하자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배계급의 음모에 속아넘어간 우리가 얼마나 멍청한지 좋은 의도로 훈계하는 사람들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포톡이 말했다. 따라서 그런 일은 한없이 돌고 도는 음모론과 함께 계속 된다.바로잡을 수도, 뿌리뽑을 수도 없다. 어떤 광적인 사고를 반박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그 음모에 연루되게 된다. 실제로 이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전문가 대다수는 한 가지 사실에 동의했다. 일단 기사가 나가면 뉴스위크가 음모에 가담했다고 비난 받으리라는 점이다.

2014.05.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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