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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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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커진 적대적 M&A...해외는 어떻게 방어하나

증권 일반

최근 고려아연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PEF)의 단기 수익 극대화를 위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가 경영개선보다는 비용 절감과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자를 해고하는 등의 방식으로 단기 차익을 실현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금융시장과 산업계에서는 이를 견제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해외 주요국들은 이러한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방어 장치인 ‘포이즌 필(Poison Pill)’ 제도는 인수자가 일정 지분을 확보할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신주를 저렴한 가격에 발행해 인수자의 지분율을 희석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가장 일반적인 수단으로, 기업의 경영권이 갑작스럽게 장악되는 것을 방지하고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해외선 포이즌 필·신주예약권 등으로 경영권 방어대표적인 사례로 2022년 트위터(현 엑스)가 일론 머스크의 적대적 M&A 시도에 맞서 포이즌 필 전략을 사용한 바 있다. 당시 머스크는 트위터 지분 9%를 확보한 뒤, 경영권 장악을 시도하며 추가 지분 인수를 발표했다. 이에 트위터 이사회는 주주들에게 더 낮은 가격으로 추가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포이즌 필을 발동했다. 구체적으로 머스크가 1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경우 다른 주주들이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결과적으로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에 성공했으나, 전략을 수정해 경영진과의 협상을 통해 인수 절차를 마무리해야 했다. 일본에서는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신주예약권을 활용하는 전략이 사용됐다. 2007년 미국계 사모펀드 스틸파트너스(Steel Partners)가 일본 식품업체 불독소스(Bulldog Sauce)의 경영권을 인수하려 했을 때, 사측이 신주예약권을 활용해 이를 방어했다. 당시 스틸파트너스는 불독소스의 지분 10% 이상을 확보한 뒤, 추가 지분 인수를 통해 경영권을 장악하려 했다. 이에 불독소스는 모든 주주들에게 신주예약권을 무상으로 배정하고, 스틸파트너스가 보유한 신주예약권은 회사가 금전 보상을 하고 취득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이러한 조치는 적대적 인수자의 지분율을 희석시키면서도 기존 주주들에게만 신주 인수 기회를 제공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스틸파트너스는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해당 조치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으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불독소스의 신주예약권 발행이 정당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고 판결했다.캐나다에서는 정부가 직접 개입해 전략적 산업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적대적 M&A를 방어한 사례가 있다. 2008년 미국 방위산업체인 얼라이언트 테크시스템(ATK)가 캐나다 우주기업 MDA 스페이스(MDA)를 13억불에 인수하려 하자, 캐나다 정부와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가 개입해 이를 저지했다. MDA는 위성 및 항공우주 기술을 보유한 핵심 기업으로, 국방과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이다. 캐나다 정부는 외국인투자법을 적용해 매각을 막고, 국가 전략산업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적대적 M&A가 단순한 기업 인수 경쟁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전략산업을 보호하고 자국 기업의 기술 및 혁신 역량을 유지하기 위한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럽에서는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규제 기관을 활용해 인수 기업에 부담을 가중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6년 독일 에너지 기업 E.ON이 스페인 최대 전력회사인 엔데사(Endesa)를 인수하려 하자, 스페인 정부는 국가 에너지 위원회(CNE)를 통해 엄격한 조건을 부과했다. CNE는 E.ON이 엔데사를 인수할 경우 ▲전력 생산량 제한 ▲송전망 사업 분리 ▲에너지 요금 규제 준수 등의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이 같은 규제는 E.ON의 인수 부담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결국 E.ON은 인수 시도를 철회했고, 이후 스페인 기업 악시오나(Acciona)와 이탈리아의 엔엘(Enel)이 엔데사를 공동 인수했다. 이 사례는 스페인 정부가 직접 법률을 동원해 인수를 금지하기보다는, 규제 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수 기업의 부담을 높여 전략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를 통해 스페인은 자국의 핵심 에너지 기업이 외국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막으면서도 국제적인 무역 분쟁을 피할 수 있었다.고려아연 사태로 국내도 논의 본격화…다각도 검토 필요최근 국내에서도 적대적 M&A의 부작용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고려아연 사태를 비롯해 사모펀드의 적극적인 경영권 개입이 확산되면서, 기업의 핵심 자산 매각과 단기 차익 실현을 우선시하는 경영 방식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까닭이다.이에 지난 1월 8일 국회에서는 사모펀드의 적대적 M&A에 따른 국가 기간산업 보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사모펀드의 적대적 M&A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간담회가 열리기도 했다. 간담회에서는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한 후 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참석자들은 국가 기간산업 보호와 노동자 권익 보장을 위한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최성호 경기대학교 교수는 간담회에서 “포이즌 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적대적 M&A에 대해 산업 경쟁력과 고용 안정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 개입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일각에서는 적대적 M&A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 초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적대적 M&A가 기존 경영진에 대한 감시 기능을 수행하고 내부 비효율성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사례에서도 적대적 M&A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가 정비되고 주주 이익이 증대된 경우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시장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적대적 M&A는 사례마다 특성이 달라 단순히 좋다 나쁘다라고 얘기하기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분명히 어떤 경영의 비효율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M&A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어 적대적 M&A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국내 시장에서는 조금 상황을 지켜보고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2025.02.11 09:00

4분 소요
R&D 예산 삭감한 尹 정부…K-바이오, 이제 찬밥신세?

바이오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의 핵심인 연구개발(R&D) 지원 비용을 줄이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상 민간 투자가 메마른 가운데 정부 지원이라는 ‘동아줄’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일부 부처는 R&D 분야 예산을 늘리기도 했지만, 초기 단계이거나 백신 등 특정 분야의 기업들만 혜택을 볼 수 있는 정책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부처별 지원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직도 아직 발을 떼지 못한 만큼 이번 정부가 약속했던 산업 지원 방안을 제대로 시행해달라는 의견이 나온다.정부가 최근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R&D 분야의 예산은 25조9000억원이다. 올해 R&D 예산이 31조100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6.6% 줄어들었다. 기초연구 분야 예산은 6.2%,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이 10.8% 삭감됐다. 과학기술 연구 부문에 주로 투입되는 주요 R&D 예산 규모도 올해보다 13.9% 줄어든 21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R&D 예산을 줄인 것은 1991년 이후 처음이다. 과학기술 역량을 강조했던 정부가 33년 만에 R&D 예산을 큰 폭 줄인 셈이다.삭감한 R&D예산, 첨단산업·복지 예산으로 제약바이오산업과 관련 있는 부처의 내년도 예산도 상당 부분 줄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의 내년도 예산은 18조3000억원으로 올해 18조9000억원 대비 6000억원 감소했다. 이중 R&D 예산은 8조8000억원이며 올해 9조8000억원과 비교해 1조원 쪼그라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전체 예산 규모를 늘렸지만 기존에 R&D 분야에 투입했던 예산은 올해보다 적게 편성했다. 올해 R&D에 5조4000억원을 투입하지만 내년에는 4조7000억원을 쏟는다. 보건복지부(복지부)는 R&D 예산을 올해 6900억원에서 내년 7800억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산업 육성 예산은 규모를 다소 줄이는 등 아쉬운 점이 많다.R&D 예산이 줄어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갈라먹기식 R&D를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다. 내년도 R&D 예산이 크게 줄어든 것이 수개월 사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며 “미래 사회에 대응하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R&D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당시까지만 해도 내년도 R&D 예산은 올해보다 8000억원가량 늘어날 예정이었다. 올해 3월 예산안 편성 지침이 나오기까지 이런 기조는 이어졌다.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이후 분위기는 반전했다. 정부는 부처별 예산을 전반적으로 줄이는 가운데 주요 연구기관에 투입하는 예산을 중점적으로 손봤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해 나랏돈이 들어가는 과학기술 기관들이 대상이었다. 예산을 삭감하자 정부 총지출 대비 전체 R&D 예산의 비중도 3.9%로 떨어졌다. 정부는 앞서 R&D 분야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이를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삭감한 예산은 첨단산업이나 복지 예산으로 흘렀다. 정부가 R&D 지원 금액은 줄였으나 의과학자를 양성하는 ‘보스톤-코리아’ 프로젝트나 데이터 구축 프로젝트 ‘한국형 ARPA-H’에 각각 604억원, 495억원을 쏟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신약 개발 장기전인데…“연구 중단하거나 규모 축소해야” 하지만 산업계에선 정부의 예산 편성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인해 진행 중인 연구를 중단하거나 규모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특히 신약은 통상 개발하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개발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또 제약바이오산업은 과기정통부와 복지부, 산업부 등 여러 부처가 육성을 지원하고 있어 기관 간 연계가 부족하거나 정부 지원이 겹치는 분야이기도 하다. 예산 삭감의 칼날이 드려질 가능성이 컸다는 의미다. 보스톤-코리아 프로젝트와 한국형 ARPA-H 등 정부가 예산 삭감 대신 내놓은 지원정책은 신약 개발 단계가 초기인 기업들이 대상이거나 신약 개발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실제 정부 사업에 의존해온 백신 개발 기업들은 정부가 예산을 줄이자 R&D를 중단해야 하냐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는 동안 국산 백신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사업단을 꾸려 이들 기업을 지원했으나 수백억원 규모의 자금이 투입된 사업 예산이 내년부터 절반 정도 줄어들자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마무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산업계에서는 정부 과제에 참여하고 있는 백신 기업의 90%는 R&D를 지속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상 지연 등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 과제를 통한 자금 지원에 의존했던 연구인력도 해당 기업들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와 관련해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과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등 10여 개의 단체는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를 출범하고 “(정부의) 일방적인 예산 삭감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R&D 예산을 삭감하기 전 관련 업계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사실상 과학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조치라는 판단에서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도 앞서 성명서를 통해 “예산 삭감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한 공공 부문 연구기관을 상시적 구조조정 상태로 몰아넣겠다는 선언”이라며 “R&D를 둘러싼 카르텔이 있다면 부처 이기주의와 권력 유지에 급급한 정부 관료, 전문성 없는 정치권과 일부 관변 과학기술자”라고 지적했다. 또한 “R&D 제도를 정말 혁신하려면 정부 관료 중심의 상명하달식 정책은 효용이 없다”며 “연구 현장에 종사자는 사람들의 의견과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과 제도를 수립하라”고 주장했다.

2023.09.10 07:00

4분 소요
“기업 부담 낮추자”…규제완화 카드로 M&A 물꼬 튼 당국

증권 일반

기업 인수합병(M&A) 시장 활성화를 위한 금융당국의 의지도 강해지고 있다. 사모펀드(PEF)에서 공개매수에 나설 경우 자금확보 능력을 사전에 증빙해야 할 의무를 폐지하고, 증권사 기업금융(IB) 부서의 기업인수 합병 자금 조달을 위한 리파이낸싱 대출 여력을 확대하는 등 기업 경영권 시장의 불합리한 규제를 정비할 방침이다. 당국 차원의 직접적인 유동성 공급과 투자자 보호책도 함께 마련된다. 1조원 규모 기업구조혁신펀드를 조성해 국가 전략산업 분야 등 유망 업종의 벤처·스타트업의 사업확대를 위한 M&A에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 그러면서 기업 합병과 관련한 공시 의무를 강화하고, 간이합병을 우회상장 심사대상에 포함하는 등 투자자의 알권리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19일 IB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이같은 내용을 담은 ‘기업 M&A 지원방안’을 공개했다. 지원방안은 크게 ▲기업 M&A 규제 개선 ▲M&A를 통한 기업구조조정 지원 강화 ▲투자자 보호를 위한 M&A 제도의 글로벌 정합성 제고 ▲산업재편 수요에 대응한 전략적 M&A 지원방안 확대 등 4개 주제로 구성됐다. 향후 금융위는 법무부와의 협업을 통해 올해 하반기 중에 기업 M&A 지원과 관련된 추가 정책과제를 발굴해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다. 그간 금융당국은 M&A 시장의 불합리한 규제 완화를 위해 학계, 산업계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청취해왔다. 지난달 발표된 기업 M&A 지원방안 역시 3월 열린 ‘M&A 지원 세미나’와 4월 개최된 ‘금융발전심의회 자본분과 회의’ 등에서 나온 내용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마련된 것이다. 학계·산업계 의견 골고루 반영…“활성화 기대”우선 공개매수 시 사전 자금확보 부담은 지난 4월부터 개정 시행된 ‘기업공시실무안내’를 통해 경감되기 시작했다. 기존엔 공개매수 필요금액 이상의 예금 잔액 증명서 등을 제출해 실제로 기업이 공개매수에 투입할 자금이 있는지를 사전에 증빙해야 했다. 4월 1일 부터는 인수금융기관 등의 대출확약, 신뢰성 있는 기관투자자(LP)의 출자이행약정서(LOC) 등이 있으면 공개매수 여력이 있다고 보고 사전에 조달할 의무가 사라졌다. 증권사 IB의 M&A 리파이낸싱 대출은 향후 자본시장법 또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이후 신용공여 적용 대상으로 인정해 대출 여력을 확대할 방침이다. 신용공여는 증권사가 자산이나 신용을 기반으로 투자자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현재 IB의 M&A 리파이낸싱 대출은 추가신용공여 대상이 되지 않아 적극적 대출에 제약이 있었다. 이를 추가 신용공여 적용대상으로 인정하고 자기자본의 100% 한도 내에서 자유로운 지원이 가능하게끔 한다. 금융당국은 현재 종투사에 기업금융 업무 관련 대출과 중소기업 대출에 대해 자기자본의 100%를 추가신용공여 한도로 부여하고 있다. 이번 제도 개편으로 이 한도가 늘어난다. 가령 M&A 이후 3년 내 리파이낸싱 대출은 전액을 신용공여 적용대상으로 인정하고, M&A 이후 3~5년 중 리파이낸싱 대출은 50%를 신용공여 대상으로 인정하는 식이다. 분할 또는 분할합병 시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전환처리 절차도 전자증권법 개정을 통해 간소화를 추진한다. 기존엔 기업분할 과정에서 CB, BW의 투자자 정보를 회사가 증권사로부터 받아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해 상당한 비용이 수반됐다. 앞으론 한국예탁결제원이 투자자 정보를 증권사로부터 직접 받아 전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간소화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발표된 의무공개매수제도도 기준을 완화한다. 의무공개매수제도란 M&A 과정에서 피인수기업의 일반주주 보유 지분을 보호하기 위해 지배주주와 동일한 가격으로 총 지분의 50%+1주 이상의 매수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이때 기업 구조조정 등 정책목적상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의무공개매수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키기로 한다. 다만 합병 기업이 기업결합 신고대상의 경우 의무공개매수 시점을 유예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회의 임의적 사전심사를 거쳐 승인 의견을 받은 경우나, 의무공개매수 시한을 기업결합 심사결과 통지 이후로 늦춰주는 식이다. 이는 향후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된 후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1조원 규모 기업구조혁신펀드를 통한 유동성 공급도 시행될 예정이다. 금융위는 올해 상반기 중 펀드 추가 조성을 시작해 2027년까지 5년간 총 4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펀드는 캠코가 모펀드를 운용하도록 해 캠코의 자체적인 기업지원 프로그램과 펀드투자를 연계해 피투자기업의 정상화에 활용될 예정이다. 해당 펀드의 자펀드를 운용할 운용사는 이달 중 선정을 마무리해 연내 구성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규제 완화와 함께 투자자 보호책도 마련된다. 주요사항보고서 및 증권신고서 공시 항목을 구체화해 합병 진행과정 및 이사회 검토내용을 보다 투명하게 반영하도록 개선한다. 또 기업은행이 ‘벤처·중소기업 인수금융 특별대출 프로그램’ ‘중소기업 M&A 전용펀드’를 연내 신설해 유동성을 공급한다. 자문·컨설팅 등을 통해 해외 기술기업 인수 및 해외진출도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 개선안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감도 크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상장법인 합병 시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자율화하면 자유로운 교섭으로 합병가액이 결정돼 M&A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수원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우리 기업의 경우 M&A 빅딜이 성사된 이후 자금조달이 어려워 새 사업 진출이나 시장 선점을 놓치는 사례가 있다”며 “단기적으로 정책금융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 해외 M&A 활성화를 위해 산업·금융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023.06.26 08:00

4분 소요
발행호수_1668호(20230109)[80] 팬데믹 수준으로 회귀한 2022년 M&A 시장을 보며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전문가 칼럼

2022년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 폭풍이 강타했다. 41년만의 높은 인플레이션, 급격한 금리 인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가능성,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중국의 도시 봉쇄 등이 휘몰아쳤다. 그 결과 2022년 체결된 인수합병(M&A) 건수는 2021년 대비 38%나 감소했다. 이는 2001년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지난해 상반기 M&A 금액이 2조367억 달러(약 2643조원)에 그치며 전년 동기 대비 36%나 줄었을 때 그런 징조가 보였다. 당시 건수 기준으로는 2021년 상반기보다 26% 줄어든 2만3800건에 머물렀다.지난해 하반기 인수 합병 물량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2022년 하반기로 갈수록 인수 합병을 위한 자금 조달 비용이 너무 높고, 저렴한 자금조달 환경이 종언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건수 기준으로 2018년, 2019년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한 2020년 수준을 소폭 상회했다.2021년 M&A 시장 규모 폭발적 증가그나마 역사적 평균 수준이라니 다행이고, 2023년 시장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M&A는 기업이 새로운 시장과 제품군에 진출하고,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고, 새로운 역량을 구축하도록 지원해준다. 이로써 기업은 수익을 증대하고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다.여전히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M&A 시장이 완전히 문을 닫은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돌이켜 보면 2021년 M&A 시장에서 거래 규모와 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0년 집계이후 최대치로 새 역사를 썼다. 특히, 미국은 2021년에 2020년 대비 거래액과 거래량이 각각 88%, 27% 증가해 M&A가 가장 활발한 국가였다. 2021년에는 조 단위의 빅딜이 쏟아졌다.우리나라에 있었던 랜드마크 딜을 보자. 우리나라 반도체 대표 기업인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사업부를 인수한 것이 먼저 떠오른다. 조 단위 거래 뒤에 대형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의 굳건함이 존재했다. 특히 2021년 4/4분기 거래 건수와 규모가 급등하면서 전체 규모를 키웠다.연말에 빅딜이 크게 집중되었다. 2022년과 2021년 현재까지 가장 활발한 분야는 기술(특히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서비스), 에너지(주로 석유와 가스), 의료(제약과 생명공학 주도)였다. 또 다른 활발했던 분야는 금융 서비스, 부동산, 인프라를 들 수 있다.많은 영역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지정학적 긴장이 거래를 촉진했다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많은 회사들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고자, 사업을 러시아 현지 투자자들에게 매각하거나 다른 방식의 형태로 이전하려 했다. 러시아 기업들과 투자자들은 서구 국가들에 대한 투자를 종료하려 했다. 예를 들어, 소비에트 연방의 석유사업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제재 명단에 올랐고, 압박 끝에 3월 초 첼시 매각을 발표했다. 영국 내 자산이 동결되며, 첼시는 19년간의 로만 체제에 작별을 고하고 새 구단주 토드 볼리 주도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게 되었다. 2003년 1억4천만 파운드(약 2200억원)에 첼시를 인수한 러시아 신흥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19년 만에 구단을 떠나게 됐다. M&A를 주도하는 미국과 2023년 전망 2022년 미국 M&A 시장은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금액 면에서 글로벌 물량의 절반 수준을 차지했다. 영국도 평균 이상이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형 게임업체 액티비전블리자드를 인수하는 발표가 있었지만, 헬스케어 등 다른 산업에서 M&A가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다. 유럽, 일본, 중국은 미국보다 감소폭이 훨씬 컸고 중국이 가장 많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에 최고치를 기록한 중국의 M&A 활동은 코로나 19 봉쇄의 재발로 침체되었다.2015년 이전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투자자들이 유럽 회사들에 대한 M&A를 적극 추진했다. 당시 역사상 유례없는 금융·경제 위기로 유럽에 큰 M&A 장터가 열렸다. 경제성장과 해외투자로 두둑한 현금을 확보한 중국 기업이 유럽 M&A 시장의 큰 손으로 나섰다. 유럽은 아시아 기업이 유럽 기업을 사는 이례적 현상인 ‘리버스(reverse) M&A’에 주목했다. 중국에서 이러한 현상은 ‘역 마르코폴로 현상’으로 회자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기술 및 노하우 확보, 시장점유율 확대, 브랜드 인지도 확보 순으로 대형 M&A를 중시했다.2022년 우리나라에서도 재계 순위 상위권을 차지한 굵직한 기업이 잇따라 M&A 시장에 뛰어들었다. 2023년 새해에도 산업계의 지각변동에 대응하고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려는 기업의 움직임은 이어질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동박 소재 기업 일진머티리얼즈, 한국조선해양은 선박용 엔진 제조업체 STX중공업 인수를 각각 추진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은 지난해 시작돼 현재진행형이다.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본계약 체결로 마무리 단계다.2022년 M&A에 뛰어든 기업 중에는 ‘승자의 저주’와 마주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승자의 저주란 경쟁에서 이겼으나, 경쟁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이나 대가를 치르는 바람에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는 현상을 말한다. M&A업계에서는 인수 기업이 피인수 기업과 시너지 효과가 나기는커녕 유동성 위기와 재정난 등을 초래해 모기업이 휘청이는 상황을 일컫는다.역사적으로 돌이켜보면 승자의 저주의 대표주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2000년대 중반 금호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며 재계 8위까지 순위가 뛰어올랐다. 그러나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룹이 동반 부실에 빠졌다. 대우건설 주가가 급락하면서 재무적 투자자(FI)에게 갚아야 할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인수 2년 반 만인 2009년 6월 대우건설을 다시 팔았다. 연이어 대한통운과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같은 핵심 회사를 모두 내다 팔았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중견기업 수준으로 전락한 상태다.최근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M&A에 나서기보다는 공급망 안정이나 재무 상황 등 자사의 내부 과제를 챙기는 데 경영의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식 시세가 내림세를 보이면서 기업 가치가 내려가고 주식 교환을 통한 기업 매각 움직임이 둔화됐다는 견해도 있다.기업공개(IPO) 시장이 얼어붙으며 자금조달이 급한 기업들이 증시 입성을 위해 스팩(SPAC)에 몰리고 있지만 스팩주를 향한 투자심리마저 악화됐다. 2022년 스팩 신규상장 건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스팩주의 기대수익률이 낮아졌다.앞으로 1년 동안의 거시 경제 상황은 M&A 시장의 회복력을 시험할 것 같다. 지정학적 긴장, 공급망 혼란, 인플레이션, 금리 상승과 관련된 나쁜 경제 뉴스는 M&A 열기를 약화시킬 것이다. 기업은 불경기의 불길한 위협을 감안해 수익이 비용 상승을 따라가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M&A와 투자에 보다 신중한 접근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높은 이자율은 거래 자금 조달을 더 비싸게 만든다. 기업의 현금 보유 경향이 인수 자금을 제한하고 있다.이 와중에 메가 딜로 인식되는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는 테슬라 주가 하락과 함께 여러 잡음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테슬라의 생태계속에서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트위터가 어떤 시너지를 낼지 세상이 주목하고 있다. 싸게 사는 것 못지않게 M&A 이후의 기업 간 조화란 하모니가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2023.01.04 17:15

5분 소요
사임 의사 밝힌 이동걸 산은 회장...엇갈리는 4년 7개월 평가

산업 일반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문재인 정부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떠난다. 2017년 9월 산은 회장으로 취임해 연임을 거쳐 4년 7개월 동안 산은 수장으로 지낸 그는 임기를 1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 빠른 유동성 지원으로 두산중공업 초고속 채권단 졸업 5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국책 금융기관의 수장으로서 그가 보인 성과는 엇갈린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의 역할인 산업계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투자은행으로의 산은 체질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GM, STX조선, 금호타이어, 대우건설 등 굵직굵직한 구조조정 이슈가 산적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결정으로 인한 구조조정 성공사례는 금호타이어, KG동부제철, HMM, 대우건설 등이 꼽힌다. 특히 두산중공업의 경우 단기간에 구조조정에 성공, 23개월 만에 채권단 관리 체제를 졸업하기도 했다. 2020년 초 당시 두산중공업은 코로나19팬데믹에 따른 금융시장 경색으로 단기채(전단채, CP 등) 차환이 막히면서 유동성 부족에 직면했다. 이에 산은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은 두산중공업 부실이 국가 에너지공급계획 등 경제 전반에 미친다고 판단, 2020년 3월과 5월에 3조원 규모의 긴급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신속한 유동성 수혈이었다. 이후 두산인프라코어 등 핵심 계열사 자산(3조1000억원)의 자산을 매각하며 재무구조개선에 나선 두산그룹은 친환경·신재생 에너지 중심의 미래형 사업구조로 사업구조를 개편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3월 사명을 ‘두산에너빌리티(DoosanEnerbility)’로 교체하며 ▶가스터빈 ▶수소 ▶해상풍력 ▶소형모듈원전(SMR)을 성장사업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투자 결실도 대폭 늘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에 대출 및 투자에 적극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 취임 당시 관련 투자 규모는 10조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산은이 미래 신산업 육성·차세대 유망기업 지원을 위해 조성·운용한 펀드의 규모는 33조6000억원이다. 아울러 혁신성장 생태계 확장을 위해 넥스트원(NextONE), 넥스트라운드(NextRound), 넥스트라이즈(NextRise) 등 벤처 지원·육성 플랫폼을 매년 확대 운영하고 있다. 넥스트라운드를 통해 성장한 기업은 마켓컬리, 직방, 브릿지바이오, 왓챠, 패스트파이브 등이다. ━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KDB생명 매각 실패로 책임론 하지만 실패작도 뚜렷하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빅딜’ 무산이다. 이 회장은 3년 전부터 현대중공업을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으로 낙점하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의 구조조정 기조인 ‘될 기업에 몰아주자’는 철학이 잘 반영된 사례다. 이에 매각 계약 기한 만료에도 수차례 연장을 거듭하며 두 회사의 합병을 주도했다. 하지만 결국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은 독과점이 우려된다고 보고 이 둘의 기업결합을 불허하며 실패로 끝났다. 최근에는 KDB생명 매각이 무산되면서 ‘이동걸 책임론’이 부각되기도 했다. 최근 산은은 사모펀드 운용사 JC파트너스와 체결했던 KDB생명 매각에 대한 주식매매계약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KDB생명의 예비인수자인 JC파트너스가 보험사의 대주주 요건에 충족시키지 못하면서다. 앞서 금융당국은 JC파트너스가 보유한 또 다른 보험사인 MG손해보험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했는데,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등에 따르면 부실금융기관 대주주는 KDB생명 대주주가 될 수 없다. KDB생명 매각이 불발되면서 산은이 애초부터 여러 논란이 있던 JC파트너스에게 헐값으로 팔려고 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낮은 자금 회수율도 논란이다. 지난달 20일 ‘정책금융의 문제점과 혁신과제-산은의 역할재편을 중심으로’ 토론회를 주최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산은이 주도했던 쌍용차, 대우조선해양, 아시아나항공, KDB생명 등 굵직한 매각이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며 “자금투입 회수율도 20~30%에 불과해 산은이 되려 정부 지원 부담만 늘리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이 회장은 이미 알고 있던 모습이다. 그는 지난 1월 신년사에서 “구조조정은 끝나지 않을 숙제며, 더 많은 한계기업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시장은 물론 지역사회와 노조, 언론이 원칙을 이해하고 기대하도록 하고 국가 전체의 회수율 제고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우조선해양 박두선 사장 선임과 관련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부터 ‘알박기’ 인사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산은이다. 이에 인수위는 산은에 대한 감사원 조사와 직권남용 가능성을 들며 압박하기도 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2.05.02 18:00

3분 소요
무늬만 ESG인 투자에 대한 경계, '그린 워싱'과 '그린 버블'

전문가 칼럼

2021년 3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유엔환경계획과 옥스포드대학이 주최한 온라인 패널 토론에서 "환경과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담보 없이는 거시경제와 재정의 안정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 기후변화가 산업을 넘어 거시경제 안정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됐다. 그가 제시한 적절한 탄소가격은 얼마일까. IMF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평균 탄소 가격은 톤당 2달러 정도이다. 그는 톤당 75달러를 적정가격으로 제시했다. 만약 이 가격이 국제적으로 적정가격이 되고 국경 간 재화의 이동에 탄소세가 부가된다면 누군가(어떤 나라)는 이득을 보고 누군가(어떤 나라)는 손해를 볼 수 있다. 국제사회는 탄소가격을 올리는 환경친화적 정책으로 방향성을 잡고 있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경쟁력과 성장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IMF 세계경제전망(WEO) 2020년 10월호와 4월호 보고서를 보자.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환경친화적인 인프라 투자 확대는 2035년 까지 매년 세계 평균 국내총생산(GDP)를 0.7%까지 올릴 수 있다고 본다. IMF는 2100년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기후변화 정책을 도입할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13%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양광과 풍력을 필두로 하는 재생에너지 기반 전기 생산,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투자는 화석 연료 기반 전기 생산보다 더 노동집약적이다. 게다가 이러한 분야에 대한 투자는 높은 승수효과로 경제성장에 기여 하는 바도 커서 일자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린으로 대별되는 산업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공공 투자의 승수 효과를 제대로 살펴보라는 게 IMF의 취지다. 물론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공공 투자 전략과 정책 패키지는 산업의 니즈와 가용성에 맞게 조정될 필요는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올 6월 의결한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저탄소 경제 정책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쪼그라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향후 30년 동안 GDP가 최대 7.4% 감소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한은의 ‘기후변화 이행리스크를 고려한 은행부문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온실가스 저감 비용이 빠르게 상승하는 2040년 이후 기후변화 이행리스크가 실물경제와 국내 은행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급격히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GDP가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고탄소 기업의 재무건전성 악화에 따라 부채 부실화가 진행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경우 국내 은행의 자본 건전성도 하락하게 된다. 국내은행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 하락폭은 2.6%포인트~5.8%포인트 수준으로 추정됐다. 연평균 하락폭은 0.09포인트~0.19%포인트 수준이다. 신규 온실가스 저감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고탄소 산업 비중이 축소되는 경우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행리스크는 상당폭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은행시스템의 안정성 훼손 방지를 위해 은행들은 기후변화를 고려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활성화를 통해 기후변화 이행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온실가스 저감기술 개발 노력을 강화하고 고탄소산업 의존도를 축소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무늬만 ESG인 투자에 대한 경계를 해 본다. ━ 녹색금융의 방향과 그린워싱 경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증가한 녹색금융의 물결은 가히 폭발적이다. 미국 최대 투자 중계회사인 찰스 슈밥(Charles Schwab)은 “주식 시장의 다음 거품은 녹색 인프라에 묶여 있는 주식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미국, 유럽, 중국의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 계획에 의해 녹색 분야의 성장이 과도하게 부풀려질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버블을 논한다면 그만큼 투자가 유망하다는 반증 아니겠나. 세계 각국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스토리는 뒷받침된다고 하겠다. 주목할 점은 한 부문과 한 국가에 집중된 버블 가능성이 아니라 그 버블이 전 세계의 많은 부문과 시장에 동시다발적으로 걸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녹색 테마 주식은 단순한 대체 에너지 회사 주식을 넘어선다. 녹색 인프라 테마를 예로 들자면 여기에는 산업기계, 전기 유틸리티 차량, 반도체, 전기장비 등 전통산업도 다수 포함돼 있다. 여기에 금융권이 가세하는 분위기다. 그린 파이낸스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자원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환경을 개선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에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녹색성장을 지원하는 활동이다. 둘째는 환경을 파괴하는 활동에 자금이 공급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자율적인 심사와 감시체계를 강화하는 활동이다. 물론 녹색금융을 ‘녹색성장을 위한 금융지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녹색금융 상품을 통한 환경개선과 신금융상품 개발, 리스크 관리 기법 개선으로 금융산업 발전까지 추구하는 새로운 금융 형태’로 정의할 수도 있다. 주목할 것은 ‘녹색’의 의미를 ‘친환경’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되, 녹색금융을 녹색성장을 지원하는 금융을 넘어 더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금융이 고도성장을 지향하는 환경에서는 수익-위험 간의 최적 균형을 달성하는 게 주된 목표였다. 이제 녹색성장을 지향하는 환경에서는 수익률과 위험을 추정하는 과정에 환경요인을 항상 고려해 자산을 운용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녹색금융의 범위를 세부적으로 정의해보자. 우선 녹색기술과 녹색 산업의 육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관련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선도해야 한다. 금융지원 없는 신기술 개발과 산업의 육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자금 투입 경로는 산업화의 정도와 위험 정도에 따라 자본시장을 통한 투입과 은행을 통한 자금 공여로 구별될 수 있다.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 대상에 대해서는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공급이 상대적으로 적합한 수단이다. 다음으로 기업과 개인의 생산활동과 소비활동이 친환경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녹색금융상품을 개발하고 보급을 활성화해 국가 경제 전체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환경훼손 방지를 유도하는 것이다. 거래 고객에게 친환경 활동의 유인을 제공하자는 의미다. 은행들이 에너지 효율 시설 투자를 통해 친환경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들이나 그린카, 그린주택 등을 구매하는 개인 고객들에게 금리를 우대하거나 수수료를 감면해주는 게 그 예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산업환경 변화와 탄소 배출권 시장 형성 등에 대응해 금융기업이 새로운 수익원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벤처투자에서부터 펀드, 프로젝트 파이낸싱, 여신까지 다양한 금융 지원 프로그램 구성이 가능하다. 과거 성숙 단계의 기업을 대상으로 한 단순한 여신 제공에서 탈피해 인큐베이션 과정에서부터 기업 상장, 해외 진출, 인수 합병까지 사업 모델을 확장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성장잠재력이 높은 우수기업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 사회가 파리협정을 맺고 기후 정상회의에서 약속한 내용을 이행하려는 움직임이 화두가 되자 글로벌 금융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자산운용은 모범 사례다. 이 회사의 래리 핑크(Larry Fink) 대표는 매년 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2020년 서한에서는 기후와 관련된 위험을 이렇게 강조했다. “기후 관련 위험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어 자본 배분을 곧 바꾸겠다.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화석 연료 관련 기업들을 대폭 빼고 ESG 추종 상장지수펀드를 두 배로 늘리겠다.” 그는 투자 대상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에게도 서한을 보내 “모든 기업이 기후변화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지속 불가능한 사업 활동에 분노하면서 기업의 미래 자산·수익 가치가 크게 훼손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한 “시장이 ‘지속가능한 투자’를 향한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고 선언했다. 지속가능한 투자는 무기 제조나 담배 회사 같은 외부비경제(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를 생산하는 기업을 배제하고 투자하는데 산업 전반에 걸쳐 최고의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체제를 구축한 기업을 적극적으로 찾아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계 투자자들의 움직임은 이런 추세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의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2015년에 이 펀드는 매출이나 전력 생산량의 30퍼센트 이상을 석탄에서 얻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2020년에 추가로 13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철회 기업 대상을 발표했다. 이렇게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매년 투자 제외 기업 리스트를 발표한다. 우리나라는 기후 위기와 관련한 금융 기능을 작동시키는 데 있어서 국내 금융 산업의 역할을 제고하는 기능이 늦고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투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금융시장은 자금 조달자와 공급자 간에 중개와 배분 기능을 맡으며 산업 발전과 구조조정을 주도해왔다. 기후 위기 대응과 경제성장을 공존시켜야 하는 소위 신기후경제 시대에도 그런 금융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산업계는 물론 금융산업 역시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 그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금융산업의 관점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된다. 한편에서는 자금 수요자의 자금 수요 패턴이 바뀌고 있는 현실을 목도해야 한다. 기업 측면에서는 저탄소 시설과 공정에 많이 투자하고 있고, 건물과 공장의 에너지 효율화에도 자금 수요가 예상된다. 재생에너지 분야도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자금을 공급하는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같은 수익률이면 평판이 좋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하려고 한다. 그래서 채권·주식 시장에 관련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좌초자산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좌초자산이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면서 탄소집약도가 높은 금융자산의 가치가 하락해 상각 대상이 되는 자산을 말한다. 금융 당국도 그린 파이낸스와 관련한 새로운 제도와 전체적인 틀(프레임워크)을 마련해야 한다. 무늬만 기후고 환경인 소위 그린워싱(green washing, 위장환경주의)에 불과한 투자나 파이낸싱이 아직도 많은데 이를 극복해나가야 한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지속가능 금융의 역할과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 지평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해야 할 그린 버블 앞에서 잠시 다룬 ‘녹색 거품(Green bubble)’ 우려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투자자들은 친환경 관련 투자에 막대한 현금을 쏟아부으며 오히려 기업 가치를 과도하게 높여 거품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둔 투자조사기관 모닝스타(Morningstar, Inc.)의 자료를 보면 ESG와 연계된 글로벌 펀드는 2019년 1650억 달러에서 2020년 3500억 달러로 급증했다. 블룸버그 NEF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업·정부·가계가 재생에너지와 전기차에 쓴 돈은 5000억 달러 이상이다. 친환경 투자가 증가한 건 소비 수요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짚었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속속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선언에 동참하고 있는 만큼 친환경 부문에 대한 투자 수요는 더 커질 전망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수조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했으니 방향성은 옳다. 문제는 속도인 것 같다. ESG 마니아들은 친환경 투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친환경 관련주들이 과열되기 시작했다고 우려한다. 투자 거품은 속성상 경기 침체기가 원인을 제공한다. 어쩌면 녹색 열기는 코로나19 같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여파에서 경기부양으로 마련된 자연스러운 정책의 부산물일 수 있다. 풍성한 유동성에서 태어나고, 스토리가 전염성 있는 테마로 엮여 투자가들이 가야 할 방향이라며 높은 신뢰에 힘입을 때 투자는 어느새 투기가 돼 과도한 성장기를 거치며 주가는 크게 뛰어오르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국에는 내재가치와 단절되고 형성된 버블은 붕괴된다. 문제는 버블이 터지는 시점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폭탄 돌리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친환경적인 기업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보지 않고 이성적 판단을 저 멀리 성층권으로 보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품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부채질해 판단 유보 결정을 더 멀리 보내면서,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 현금을 계속해서 쏟아 붓고 있다면 어떤 경고를 해야 할까. 재생에너지 업종 기업 주가 수준이 상당히 오르자 일부 전문가들은 말도 안 된다며 거품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린버블이 100퍼센트라고 과감히 주장하는 투자 전문가들도 있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 그들은 거의 모든 태양광 회사들의 실적이 나빠졌는데 주가가 몇 배 올랐다며 공매도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2020년의 경우 30개 주요 신재생에너지 기업 주가를 반영하는 S&P글로벌청정에너지 지수를 보더라도 미국 증시 우량주를 대표하는 S&P500지수 상승에 비하면 주가 상승이 과도할 수 있겠다. 미국 증시의 랠리를 부추긴 ‘스팩’(SPAC,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바람도 친환경 투자를 부추겼다. 스팩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회사로서 기업인수합병을 목적으로 한다. 단지 IPO로 조달한 자금이 전부인 껍데기 회사(shell company)가 상당하다. 이런 이유로 비상장 기업 인수로 ‘묻지마 투자’를 유발해 시장 과열과 거품을 부추긴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 가장 유망한 그린 투자는? 스팩인사이더(SPACinsider)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부문은 스팩들이 2020년 인수한 기업 업종 가운데 4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였다. 2021년 5월 홍콩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따르면, 중국에서 전기차 등 지속가능성을 투자 테마로 삼은 뮤추얼펀드로의 투자 급증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펀드 정보 제공 업체 모닝스타가 진단했다. 투자리서치 기업 모닝스타(Morningstar) 자료를 보면 2020년 친환경 부문으로 유입된 주식형 펀드 자금이 2300억 달러에 달한다. ESG로 평가하면 환경, 사회, 지배 원칙과 연계된 글로벌 펀드는 2019년 1650억 달러였던 것이 지난해 3500억 달러에 육박했다. 모닝스타는 중국 정부가 발표한 탈탄소화 정책이 제품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에게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예상한다. 중국 정부가 기후변화를 막는 데 선제 조치를 하고 국가 차원의 정책을 발표하면서 탈탄소 관련 분야인 전기차와 재생에너지의 장기적 성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본다. 돈의 힘으로 주가가 올랐는데 앞으로 더 간다니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반신반의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직 미래는 도달도 안 했다고 반박을 할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이 오면 성장주들은 할인율이 높아져 가격하락이 불가피하니 실적이 받쳐줘야 한다며 투자 신중론을 펴기도 한다. 그래도 전문가들은 ESG 투자를 지각변동(tectonic shift)에 비유하며 시류에 편승할 것을 권하고 있다. 신기루일지 신세계일지 모르나 그게 비트코인처럼 활활 타오르고 거품 붕괴와 형성을 지난하게 겪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래도 국제에너지기구(IEA)나 IMF의 전망을 보면 진정한 그린 투자 기업의 주가 상승이 높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울산의 부유식 해상 풍력을 바라보며 해상풍력의 성장가능성과 해상풍력 아태지역 허브를 만들어가겠다는 구상을 더욱 구체화해야 하겠다는 각오를 해 본다. 전 세계적인 해상 풍력의 기조 하에서 관련 주식의 미래도 밝다. 바이든 행정부가 2021년 5월 미국 전역에 풍력 에너지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프로젝트를 최종 승인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바인야드 풍력 프로젝트(Vineyard Wind project)는 최대 84개의 터빈을 대서양에서 약 12해리 떨어진 곳에 설치한다. 약 800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고, 약 40만 가정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이 대형 프로젝트가 출범함에 따라 버지니아와 로드아일랜드 앞바다에 현존하는 두 개의 풍력 발전 단지 규모는 축소될 것이다. 두 곳은 합해서 42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하는 수준이다. 바인야드의 풍력 외에도, 연방정부는 동해안을 따라 12개의 다른 해양 풍력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의 세월이 흐른 미국을 상상해보자. 미국 내무부(The Interior Department)의 예측대로 약 2000개의 터빈이 매사추세츠주에서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바람의 흐름에 따라 돌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는데 내무부 장관의 목소리가 진지하게 들린다. “미국에서 깨끗한 에너지의 미래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 프로젝트의 승인은 기후변화와 싸우고 미국에 힘을 실어주면서 좋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정부의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실험이다. 더 많은 미국인에게 경제적 기회의 문을 열기 위해 취한 중대한 결정이다.” 방향은 정해졌다. 정해진 미래를 향해 우리는 달려가야 한다. 울산의 부유식 해상풍력은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울산 경제부시장이다.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조원경

2021.06.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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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10만명’ 진입, 심화된 ‘양극화’- (1)산업계] 반도체·가전 수요 폭발… ESG는 위기이자 기회
비대면·대면 운명 갈려… 자동차·조선은 수성 속 변화 추진 과제 사상 초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산업계 전반을 흔들었다. 가장 큰 영향은 ‘양극화’다. 대면업종과 비대면 업종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물론, 동일 업종 내의 기업간 양극화도 나타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 역할을 했던 산업군에서 ‘구조조정’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이런 산업 구조조정은 코로나19가 입힌 수요의 타격에 따라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이 도태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자본시장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자본시장의 방향성은 새로운 성장산업에 집중됐다. 전통적인 제조·서비스 업종 기업들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 반도체·가전·배터리, 코로나19가 만든 ‘퀀텀 점프’ 코로나19로 인해 급증한 비대면 서비스 수요는 반도체와 가전에 집중됐다. 특히 반도체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자동차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서 ‘품귀’현상이 빚어질 정도로 수요가 몰렸다. 반도체업계에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수년간 이어질 ‘슈퍼 사이클’이 도래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주력 생산품목인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는 올 한 해 두 자릿수의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는 생산설비를 모두 가동하고 있음에도 밀려드는 주문을 다 받지 못할 정도로 호황이다.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올해 반도체 시장의 지난해 대비 성장률을 기존 12%에서 19%로 7%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예상 매출액도 기존 4524억 달러(약 516조6408억원)에서 4799억 달러(약 548조458억원)로 275억 달러(약 31조4050억원) 높였다. IC인사이츠는 “코로나19 이후로 반도체 제품에 대한 수요가 견조했다”며 “올해 1분기에도 강한 수요가 이어지면서 반도체 기업들이 호실적을 예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반도체 가격 상승도 지속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D램 가격 상승세가 2분기부터 본격화되고, 낸드플래시는 하반기부터 가격상승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 전반에 가격상승이 나타나고 있지만, 단기간에 공급이 늘어나기는 어려워 구매자들의 재고 축적 수요가 강하다”며 “D램뿐만 아니라 낸드 가격 반등 시기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돼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개선 폭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비대면의 확대는 가전제품 수요를 폭발시켰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비대면 근무를 위한 노트북 수요 증가 등이 이뤄졌는데, 사태가 장기화하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프리미엄 가전제품과 의류 관리기 등 신가전 매출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지난해 삼성전자 CE부문 경영실적은 매출 48조2000억원, 영업이익 3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모두 증가했다. 같은 기간 LG전자 매출을 보면 H&A부문 22조2691억원(10.6% 증가), HE부문 13조1798억원(7.4% 증가)으로 총 35조4489억원으로 집계됐다. H&A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역대 최대 실적이다.삼성전자는 인테리어에 중점을 둔 비스포크 라인업으로 주목을 받았고, LG전자는 ‘트루 스팀’을 앞세운 새 가전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 업계에서는 ‘집콕’ 장기화 상황에서 여행 등에 대한 제약이 지속되며 보복 소비, 이른바 ‘펜트업’ 현상이 본격화 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특히 두 회사는 프리미엄 시장에서 우수한 품질과 기술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북미 시장이나 유럽 시장 등에서 TV나 스마트폰, 건조기, 세탁기 등 대부분의 프리미엄 가전제품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프리미엄 제품군도 최근 하이얼 등 중국 로컬기업들의 잇따른 진출로 경쟁 심화가 예상되며, 핵심인력과 기술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어 꾸준한 격차 유지가 국내 기업의 과제로 떠오른다.전기자동차 밸류체인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 산업도 코로나19 사태를 타고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하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ESG 경영 확대에 따라 내연기관 중심이었던 자동차 회사들의 전기차 전환이 속도를 받게 됐다.이에 그간 ‘투자’의 기간을 거쳐 온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는 사이클에 진입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최대 배터리 생산능력을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사상 첫 흑자 전환에 이어 분사까지 성공하며 성장 기반을 확보했다. ━ 자동차·조선·철강 ‘친환경’에 사활 걸어 반도체와 가전 등이 코로나19 국면 속 호황을 맞는 가운데, 국내 주요 제조업의 또 다른 한 축인 자동차와 조선, 철강 등은 위기감이 큰 상황이다.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자동차 생산은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16년 만에 최소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생산은 전 년보다 11.2% 감소한 350만6848대다. 이는 2004년(346만9464대) 이후 가장 적다. 적극적인 신차 출시와 정부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 등에 힘입어 국내 시장에선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해외 자동차 시장이 거의 마비되면서 수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동차 수출은 188만6831대로 전년 대비 21.4% 감소하며 2003년(181만4938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전체 생산 감소보다 주목할 것은 산업군 내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점이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해외 수출이 감소하는 가운데에서도 내수에서 점유율을 높이며 선전했지만 외국계 완성차업체 3사인 한국GM·르노삼성차·쌍용차의 생산 감소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한국GM생산은 35만4800대로 2004년(30만346대) 이후 16년 만에 최소치, 르노삼성차는 11만4630대로 2003년(8만906대) 이후 17년 만에 최소치를 각각 기록했다. 쌍용차는 지난해 10만6836대를 생산하며 전년(13만2994대) 대비 19.7% 감소했다. 2010년(8만67대) 이후 10년 만에 최소치다. 쌍용차는 특히 지난해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유일하게 내수 판매도 줄어들어 위기감이 커졌다. 적자가 누적된 쌍용차는 모기업인 인도 마힌드라가 매각을 추진 중인데, 이 마저도 진행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좌초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수년간의 어려움을 겪다가 경기 회복 진입을 기대하던 조선업종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타격을 입었다. 경기 침체와 유가 급락은 선주들로 하여금 선박 투자에 대한 동력을 상실케 했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수주들이 지연되는 등 어려움이 심화했다. 다행인 것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수주랠리가 이어지며 재기의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이다.주요 매출처인 자동차와 조선의 부진은 철강업계의 어려움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포스코가 지난해 상반기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할 정도였다. 포스코는 하반기 이내 흑자로 돌아섰고, 올해 1분기 다시 1조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등 회복세로 돌아섰다.자동차와 조선, 철강 업종은 코로나19 위기에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기존 사업모델로는 코로나 이전으로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19 시대가 앞당긴 ESG 경영, 이 중에서도 친환경 부문에 전사적인 역량을 쏟고 있다.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빠른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테슬라가 시장의 판을 흔들었고, 코로나19가 자본시장의 변화를 앞당겼다. 감소하는 내연기관 시장에서 최대한 ‘수성’하고 전기차 시대로의 도약에 앞장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기업 중 현대차·기아는 최근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등 전용플랫폼 전기차를 내놓는 등 친환경차 시대로의 변화에 비교적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으며, ‘자동차 제조’에서 ‘모빌리티 서비스 프로바이더’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설정해 대응해 나가고 있다.문제는 이런 환경 변화에 주체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외국계 3사다. 이 회사들은 글로벌 본사의 전략에 따라 언제라도 철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미래자동차학부)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완성차 기업 입장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되더라도 협력업체와 고용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조선업과 철강도 ESG 경영이 가장 주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조선업에선 대우조선 인수를 추진중인 현대중공업그룹이 ‘친환경 선박 개발’과 수소관련 사업으로 신성장 역량을 모두 집중하고 있다.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업종인 철강업도 탄소 배출 억제가 가장 큰 과제다. 여기에 수소 생산 및 유통 등의 분야에 속속 나서며 ESG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철강업계는 제품 경쟁력에선 글로벌 수준이지만 유럽·일본 기업 등에 비해 환경영향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선진국 수준의 친환경 생산구조를 구축하지 못하면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 손님 없는 여객운송, 손 없는 화물 운송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양극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건 운송시장이다. 비대면 시대로의 전환으로 ‘화물 운송’ 중심인 해운, 물류업종은 역대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여객을 중심으로 하는 항공은 수요가 전멸한 상태가 지속되며 정부의 지원 없이는 단 한 곳도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수년간 성장세 속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항공사들이 정리되는 수순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항공업은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직접적이고 큰 피해를 입은 산업군이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결국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들에 소속된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 저비용항공사(LCC) 통합도 논의 중이다.문제는 통합 논의에 포함되지 못한 LCC들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스타항공은 매수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은 유상증자를 통해 버티기를 이어가고 있다.물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항공사는 향후 여객 운송이 회복세를 맞으면 급격한 성장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이휘영 인하공업전문대학교 교수(항공경영과)는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된 이후 항공여객의 호황이 이어지더라도 코로나 사태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며 “규모의 경제에 몰두하기보단 사업다각화 등 항공업의 구조적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경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여객과 달리 화물 운송 시장은 일대 호황이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19 발발 후 전 세계적 화물 수요가 오히려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년간 이어졌던 글로벌 해운기업들 간 치킨게임도 정체되며 운임도 올랐다. 이에 힘입어 원양 컨테이너 국적선사인 HMM도 지난해 흑자 전환했다. 발주했던 대규모 선박들이 속속 도입되며 올해 전망도 밝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경기 회복 국면 진입에 따라 해상운임 강세는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2021.03.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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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도 ‘초대형 인수합병 시대’] 독과점 특혜일까, 산업경쟁력 강화일까

정책이슈

“최악 아닌 차악” 평가에 “독과점 해소 위한 재매각 필요” 지적도 정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을 추진하면서 정부 주도의 초대형 인수합병에 대한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정부가 특정 기업에 독과점 특혜를 용인했다는 지적과 부실기업 회생, 산업경쟁력 강화 등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항공업계와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촉발된 항공업 위기 상황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독과점 문제 등 특혜 시비가 불거지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산업은행은 지난 11월 16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 추진을 위해 한진칼과 총 8000억원 규모의 투자계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5000억원을 투입하고, 3000억원의 교환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주주가 아닌 제3자에 신주인수권을 주고 이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유상증자를 말한다. 교환사채는 투자자가 보유한 채권을 일정 시일 경과 후에 발행회사가 보유한 다른 회사 유가증권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채다. 대한항공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한진칼 사채라는 얘기다. 이를 통해 산업은행은 한진칼 지분 약 10.7%를 보유하게 된다.이후 대한항공이 2조5000억원 규모의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하면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을 확보한 한진칼이 유상증자에 7300억원을 투입하는 구조다. 대한항공은 유상증자로 끌어들인 자본 중 1조8000억원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사용한다. 아시아나항공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1조5000억원을, 영구채 인수에 3000억원 등을 쓰겠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양대 항공사 통합 추진의 배경에는 글로벌 항공 산업 경쟁 심화 및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항공업 구조 재편 등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 노력 없이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국적 항공사의 경영 정상화가 불확실하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밝혔다.재계에선 “정부가 특정 기업에 인수 자금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형태의 초대형 인수합병을 비공개 합의로 결정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초대형 인수합병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기아자동차 매각은 공개입찰로 진행됐다. 당시 산업은행은 기아차를 현대차에 매각하면서 약 7조원의 부채를 탕감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인수합병은 특혜 시비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자동차업체로 도약했다는 측면에서 초대형 인수합병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다만 국내 자동차 시장에 대한 양사의 독점적 지위 등에 대한 지적은 여전하다. ━ 초대형 인수합병 지원하는 정부 그동안 정부는 특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기조로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산업경쟁력보다는 금융 논리가 우선 순위였다. 2017년 파산한 한진해운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진그룹은 2014년 한진해운이 위기에 빠지자 에쓰오일 지분 매각, 대한항공 유상증자 등을 통해 한진해운 경영정상화에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했다. 2016년 8월에 총 5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 방안 등이 포함된 한진해운 자구 계획안을 채권단에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해운업계에선 “글로벌 7위의 한진해운을 파산시키면 국내 해운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이에 따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현 HMM)의 인수합병에 대한 목소리가 쏟아졌으나 정부는 한진해운 파산을 선택했다. 이를 두고 산업계에선 “정부가 산업경쟁력에 대한 고려 없이 금융 논리에 매몰된 정책 결정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금융 논리를 앞세운 정부 기조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9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취임 이후부터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 결정이다. 당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전량(55.7%)을 현물 출자해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대우조선 등 4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중간지주사(한국조선해양)의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의 인수합병을 발표했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지분을 한국조선해양에 넘기는 대신 한국조선해양 신주를 받겠다는 것이다. 한국조선해양은 1조5000억원으로 대우조선 지분 68.35%를 확보하고, 산업은행은 한국조선해양의 지분 18%를 확보한 2대 주주에 올라서는 구조다.조선업 빅딜과 양대 항공사 인수합병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정부가 우회적인 지원을 통해 초대형 인수합병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정부는 한국조선해양 지분 확보로 대우조선 매각가격을 낮췄고, 이번엔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자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을 지원했다. 독과점 특혜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도 비슷하다. 산업은행 측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인수합병 발표 당시 한국조선해양 2대 주주로 독과점 우려 등에 대해 관리·감독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번엔 한진칼 지분 10.7%를 통해 한진그룹 경영진을 감시한다고 설명했다. 지주사 지분 확보로 인수합병을 지원하고, 확보된 지분으로 독과점 경영을 견제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 부실기업 살리고 구조조정 부담 피한 ‘묘수’ 금융권 안팎에선 이동걸 회장 취임 이후 성사된 2건의 초대형 인수합병은 이동걸 회장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청와대 재가는 있었겠지만, 초대형 인수합병의 아이디어는 산업은행으로부터 시작됐을 것이란 분석이다.그러나 재벌 개혁론자로 알려진 이 회장은 산업은행 취임 전부터 정책 금융을 통한 부실기업 지원을 비판해왔다. 이 회장은 2017년 9월 취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구조조정 중인 기업은 채권단의 지원 없이 독자생존이 가능한지 최우선으로 봐야한다”며 “그 후 지원이나 매각을 통해 정상화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실기업 살리기를 위한 맹목적인 지원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항공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양대 항공사 체제를 유지하는 것보다 양사를 합병하는 것이 정부 지원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분석이 많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에 기간산업안정기금 등을 포함해 최근 2년간 5조7000억원의 지원이 이뤄졌지만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지원이 불가피하다”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로 공적 자금이 투입돼야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상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둘 다 살리려면 훨씬 더 많은 재정 지원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은 정부와 한진그룹, 금호그룹 모두가 만족할만한 제안이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번 합병으로 한진칼 지분 10.7%를 확보한 산업은행이 경영권 분쟁 상황인 조원태 회장 측의 백기사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조원태 회장쪽에 서면,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종결된다. 금호그룹의 경우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해 아시아나항공발(發) 연쇄 부실을 막을 수 있게 됐다. 정부 입장에선 양대 항공사에 대한 과도한 지원에 따른 혈세낭비 논란을 줄일 수 있고, 정부가 나서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부담도 피하게 됐다.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는 “이번 인수합병으로 대한항공은 경영권 분쟁에서 승기를 잡게 됐고, 독자생존이 불가능했던 아시아나항공은 기사회생 하게 됐다”며 “산업은행은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동시에 아시아나항공 회생을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부담을 대한항공에 떠넘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황 교수는 “양대 항공사의 인수합병은 케이씨지아이(KCGI)를 제외한 다수의 이해당사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물인데, 다수 이해당사자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방안이라는 것은 결국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양대 항공사의 인수합병은 고육지책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방안”이라고 했다. ━ 한진그룹 ‘공기업’ 전락 우려도 문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이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방어, 부실기업 아시아나항공 회생 등에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점이다. 항공업계와 재계에선 조원태 회장이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인수합병이 결렬된 이후 사실상 독자생존이 불가능해 정부 지원을 받아도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며 “아시아나항공 구조조정 과정에서 에어부산 등이 분리 매각되거나 장거리 노선이 정리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대한항공은 기다리면 되는 입장이었다”고 분석했다. 실제 산업은행 측도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실패한 이후 구조조정과 분리 매각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경제개혁연대 측은 11월 17일 논평을 내고 “이번 인수합병이 한진 총수일가의 그룹 지배권을 안정시키고 향후 항공 산업 재편으로 인한 독점적 지위까지 추가적으로 보장해주는 ‘재벌 특혜’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교환사채 인수를 통해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을 택할 경우, 한진칼의 대한항공 지분은 다소 희석될 수 있으나 지주회사 의무지분율 요건(상장회사 20% 이상)에는 문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경영권 분쟁 중인 조원태 회장에만 유리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도 조 회장에 유리한 인수합병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재계에선 이번 인수합병으로 정부가 한진그룹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선 “한진그룹이 사실상 공기업이 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가 최대주주인 KT나 포스코처럼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산업은행의 의중에 따라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하거나 박탈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며 “한진그룹이 KT나 포스코처럼 공기업 민영화 형태의 회사가 됐다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산업은행은 양대 항공사의 인수합병이 완료되지 않은 현 시점에 이미 한진그룹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산업은행은 양대 항공사 인수합병을 발표하면서 인수합병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밝혔다. 양사가 보유한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의 저비용항공사(LCC)를 단계적으로 통합하는 방안 등도 거론했다. 인수 주체가 아닌데도 양대 항공사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언급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조원태 회장은 산업은행 발표 이틀 뒤인 11월 18일에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는 뜻을 밝혔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는 “진에어 등 자회사 통합 문제나 인력 구조조정은 인수자(한진그룹)가 할 일”이라며 “정부가 인수합병 전에 경영정상화 방안을 언급하는 것은 과도한 경영 개입”이라고 했다. 양준모 교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채권단이 불가피하게 인수한 지분은 경영정상화 이후 조기 매각해 민영화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산업은행이 지분 소유로 경영 개입을 한다면 그 자체로 불법”이라고 했다.전문가들은 정부가 한진그룹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문제지만,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독과점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한 관리·감독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상인 위원장은 “산업은행의 의견을 전달하는 수준의 사외이사가 아닌 독립적이고 전문성이 있는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항공사의 독과점 문제는 노선 전체의 점유율이 아닌 노선별 점유율을 따져야 하는데, 양대 항공사가 합쳐지면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을 독점하게 된다”며 “다른 LCC에 장거리 노선을 배분하거나 통합 후 진에어나 에어부산 등을 매각해 대한항공과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양준모 교수는 “향후 노선별 편중이나 항공료 운임 인상 등 독과점의 폐해가 발생할 경우 분할 명령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산업은행은 양대 항공사 통합에 따른 독과점이나 총수 일가 갑질 등의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등 7개 의무 조항을 한진칼에 부과했다. 주요 조항은 산업은행 지명 사외이사 3인 및 감사위원회위원 선임,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대한항공 주식 등에 대한 담보 제공·처분 등의 제한이 있다. 또한 투자합의서의 중요 조항을 위반할 경우 5000억원의 위약벌과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이를 담보하기 위해 대한항공 발행 신주에 대한 처분 권한 위임 및 질권을 설정할 의무를 가진다. 질권은 채무자가 돈을 갚을 때까지 채권자가 담보물을 간직할 수 있고,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으면 담보물로 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2020.11.22 09:36

8분 소요
[조원경의 알고 싶은 것들의 결말(13)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형 뉴딜의 향방은] 디지털 기반으로 경제 회복탄력성 발휘 기대

전문가 칼럼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 강조... 비대면화, 사회간접자본의 디지털화도 화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한 지도 석 달이 지났다. 일부 국가는 코로나19 통제에 모범적이나 브라질·러시아·멕시코·인도 등지에서는 확진자 수가 계속 늘고 있다. 각국은 전례 없는 위기 극복 정책을 추진 중이나 세계 경제의 역성장은 불가피해 보인다.문득 2년 전 10년 위기설을 무색하게 하는 신문 기사가 생각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근원지였던 미국은 위기 직후 1년 만에 곧바로 활력을 되찾아 올 2월까지 역사상 최장기 호황을 누렸다. 2월에 사상 최저의 실업률(3.5%)을 기록했지만 코로나19 발발로 4월 실업률은 역대 최고인 14.7%를 기록했다. 구직자가 거의 모두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완전고용에 이르러 경제학자들이 꿈꾸는 ‘자연 실업률’에 도달했다고 노래한 것이 엊그제 같다. 지난해에는 한국의 13배 수준인 거대한 경제가 한국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놀라움을 선사했다. 성장·고용뿐 아니라 미국 경제의 엄청난 ‘회복탄력성’에 세계가 놀라워했다. 미국 경제는 10여 년의 호황기 속에서 엄청난 구조조정과 함께 신사업이 급속히 확대되며 가파른 V자형의 회복탄력성을 보여준 것이다.그런 회복탄력성에 대한 추억 때문일까? 2월의 실업률 수준으로 도달하려면 수년이 걸릴 지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뒤로하고 미국 주식시장은 가파른 회복을 보여줬다. 특히 나스닥은 엄혹한 경제 현실에도 5월 15일(현지시간) 9000을 상회하며 등락하고 있다.다우지수가 연초 이후 여전히 10% 중반 넘게 빠진 상태인 반면 나스닥 지수는 지난해 종가 수준을 넘어서며 연초 이후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왜일까?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감이 여전히 주식시장을 짓누르고 있지만, IT주가 선방하면서 나스닥 지수의 상승 전환을 주도한 것이다.나스닥 지수가 유독 회복이 빨랐던 이유는 상장 종목들이 IT기반 기술주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애플과 아마존닷컴, 페이스북, 알파벳, 넷플릭스 같은 대형 IT주들이 코로나19 속에서도 두드러지는 상승 흐름을 유지하며 나스닥을 이끌고 있다. 넷플릭스·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는 연초 대비 두 자리 수의 급등을 보였으며 애플과 페이스북도 연초 기준으로 소폭의 상승 흐름을 보였다. 코로나19 우려로 디지털 기반의 언택트(비대면) 산업, 의약·바이오산업이 포스트 코로나를 선도할 유망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봉쇄령으로 많은 국가에서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기술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나스닥의 상대적인 주가 호조를 보였을 수 있다.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기술 제품에 대한 수요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나스닥의 급격한 반등은 이런 산업 트렌드를 선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2차 대유행을 걱정하는 전문가도 있어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으나 코로나19 상황이 최악을 넘겼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경제 재개에 나서고 있는 만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증시에 먼저 반영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2분기 경제 상황이 좋든 나쁘든, 시장은 3분기 경제지표가 어떻게 나올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 3분기 경제지표에 초점 우리 정부 역시 2차례 추경과 시장 안정책에 이어 디지털 뉴딜을 중심으로 하는 3차 추경 의지를 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판 뉴딜로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린뉴딜을 통한 일자리 창출 방안도 강조했다. IT 전문가들은 디지털 뉴딜이 경제 회생은 물론 4차 산업혁명시대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목적이라 과감한 발상 전환과 함께 대기업의 공공 IT사업 참여 제한과 같은 규제 완화도 적극 재검토해야한다고 강조했다.디지털 뉴딜은 장기적 국가혁신과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꾸려져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나 전자투표시스템, 전자주민증, 에듀테크 등 재원 문제나 각종 이해관계로 추진이 어려웠던 디지털 기반 대형 IT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 경제의 회복탄력성이 증가되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좋겠다. 전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구축사례로 과거 전자정부를 한국이 주도한 것처럼 IT 기업과 인력이 경험과 자산을 쌓고 해외에도 진출하는 교두보를 만들면 얼마나 좋겠나. 디지털 뉴딜과 그린뉴딜이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대기업의 인프라 투자를 적극 유도하고 이러한 사업에 중소·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이 제대로 참여해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 구도를 구축해야 한다.지금은 코로나19 여파로 경제 충격이 전 영역에 걸쳐 현실화하는 경제 전시 상황이다. 경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위기 이전을 넘어서는 선순환 구조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산업과 기업의 체질을 점검하고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맞는 미래 산업을 육성할 수 있어야 한다. 위기에 맞서 경제 전반에 대한 재점검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이미 우리 정부는 데이터(Data), 네트워크(Network), 인공지능(AI) 즉, DNA를 강조해왔다. 디지털 산업으로의 전환은 고용 감소를 유발할 수 있지만, 전환 과정에서 데이터 입력 등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는 단순노동 수요도 있어 고용이 증가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그 근저에 해당하는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해보자.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등 데이터 3법의 통과는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이는 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관련이 크다. 데이터의 수집과 거래를 활성화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금융·의료·교통·공공·산업·소상공인을 데이터 활용 활성화 6대 분야로 선정했다. ━ 네이버·카카오·NHN 등 각광 이와 관련해 금융 부문의 ‘마이데이터’ 사업을 예로 들어 보자. 다양한 금융회사에 분산된 특정 고객의 금융정보를 고객의 요구만 있으면 관련 사업자가 일괄 수집·관리할 수 있다. 특정 고객의 종합적인 금융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에 맞는 맞춤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투자성향, 연령, 투자목적 등에 맞게 펀드의 가입, 보험 설계, 대출 등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것이다. 종전에는 금융·신용정보는 금융회사가 독점해, 개인의 금융 정보가 각 상품 가입 금융회사별로 분산돼 종합적인 관리가 어려웠다. 그러나 데이터 3법 중 신용정보법 통과로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종합 관리할 수 있게 됐다.네이버·카카오·NHN과 같은 기업 주가의 가파른 상승세는 이런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투자증권이 카카오와 손잡고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를 성공시켰다. KT가 시작한 케이뱅크가 지지부진한 반면 카카오뱅크는 젊은층의 입맛에 맞는 각종 금융상품을 내놓고 핀테크 산업을 제대로 순항시키고 있다. 미래에셋은 네이버와 손을 잡고 네이버파이낸셜을 출범시켰다. 국내 IT 산업의 양대 산맥이었던 네이버와 카카오가 경쟁 금융그룹과 연합을 맺고 한판 대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네이버와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코로나19에도 연초 대비 크게 늘었다. 인공지능과 네트워크 플랫폼은 후술하기로 한다.정부는 DNA와 함께 US, 즉 비대면화(Untact), 사회간접자본의 디지털화(SOC Digitalization)를 한국판 뉴딜로 추진하고자 한다. 뉴딜의 기원은 미국 민주당 출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대공황 이후 미국을 재건하겠다는 슬로건으로 뉴딜을 약속하면서 대명사처럼 굳어졌다. 당시 뉴딜 정책 목적은 ‘3R’로, 빈곤층 구제(Relief), 경기 회복(Recovery), 시장 개혁(Reform)이었다. 뉴딜이라는 일자리 프로젝트, 과감한 재정 투입이라는 방법은 같을지 몰라도 디지털 시대에 방향은 다를 수 있다. 뉴딜의 목적은 경기 부양이고 이는 결국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하나, 그런 과정에서 기업과 제대로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기업이 마음껏 뛸 수 있는 환경과 운동장을 조성해 경기 회복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코로나19로 사람 간의 접촉을 잘 하려고 하지 않는 현상이 가속화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정착되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먼저 US에서 U를 보자. 부정의 의미인 Un과 접촉(Contact)이 합쳐져 언택트, 즉 접촉하지 않는다는 ‘비대면’이란 말이 생겼다. 인구와 세대 구조가 변화하면서 점차 대인관계를 꺼리는 현상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문자와 데이터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면서 직접 대면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런 현상은 젊은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코로나19는 문명의 전환으로 언택트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산업에서도 언택트 비즈니스가 뜨고 주식시장에서 언택트 관련 주가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로 가속화됐지만 언택트의 조짐은 이미 있었다. 기술의 발달로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쉽게 연락하고 소통할 수 있는 초연결 사회가 펼쳐진 지 오래다. 이제 초연결 사회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져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고, 이는 세계적 추세로 자리를 잡고 있다. 사람과의 대면에 피로를 느껴 혼자만의 언택트 세계에 빠지는 경향이 늘고 있다.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동네 곳곳에 있다. 바코드로 물건을 사고 카드나 QR코드로 지불한다. 물론 기계가 감시를 하고 있다는 점을 고객은 알고 있다. 대학가 주변에는 무인 편의점, 무인 카페, 무인 쇼핑몰 등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패스트푸드, 영화관, 버스·열차 매표소에서는 이미 키오스크(무인 단말기)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키오스크 설치로 인건비를 줄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이다. 사람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기계를 통해서만 생활하게 되면 부작용은 없을까? 소통의 단절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클 수 있겠다. 젊은층은 자신이 원하는 접촉만을 추구하면서 사회적인 갈등을 인내하기가 힘들 수 있다. 디지털 커뮤티케이션이 발달하면서 SNS·메신저를 활용한 소통이 활발해지고 전화통화를 기피하는 현상이 생겨 ‘콜포비아(전화통화 기피증)’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어버이날에 젊은층에서 부모님 댁을 방문하지 않고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은 채 문자나 카톡을 날리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해 본다.산업계에서 비대면은 무인을 넘어서 손대지 않는다는 언택트의 개념 자체로 진화하고 있다. 언택트를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마케팅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고객이 변하면 새로운 사업이 탄생하고, 기존 사업체들은 몰락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유통점인 대형마트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주문하기에 아마존 주가는 코로나19에도 상승했다. 집 앞에 이마트가 있어도 사람들의 태도와 습관이 변했기 때문에 쿠팡으로 주문하는 게 늘고 있다. 소비자들은 사람 만나는 것을 불편해하고 빨리 원하는 제품을 사고 싶어 한다. 배달의민족으로 주문한 음식을 문 앞에 두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른다.언택트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에게는 모르겠으나 중년층이나 20~30대에게 언택트는 편리함 그 자체다. 스타벅스에는 사이렌 오더가 있다. 점원에게 주문하지 않고, 자리부터 잡고 앉아서 앱으로 주문한다. 줄 서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내 음료가 나오면 점원이 별명을 불러준다. 자리로 곧바로 음료를 가져오면 그만이다. 맥도날드에는 드라이브 스루와 배달이 급증하고 있다. 모두 언택트 서비스이다. 계산대에서 점원을 만나지 않아도 되기에 훨씬 편리하고 빠르다. 언택트는 앱과 가상현실(VR) 서비스를 활용한 가상 서비스 체험, 로봇을 활용한 쇼핑, 가사, 노동 등 더욱 진화된 서비스로,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화상통신과 앱을 활용한 보건소 등의 원격진료, 의료기관의 방문 건강관리 서비스, 인공지능 원격교육 플랫폼 등을 비대면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한다.다음으로 US에서 S를 보자. 예를 들어 노후 도로와 철도를 전산으로 관리하고 첨단 물류센터를 확충하는 SOC 디지털화는 성장과 일자리 모두에 득이 될 수 있다. 기존 공공사업이 정부 주도형으로만 이뤄지다 보니 나라 돈을 쓰는 뉴딜사업도 대기업만 과실을 따먹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이 있었다. 만약 그런 우려가 있다면 일반 SOC 사업처럼 민간 투자형 공공사업을 도입해 대기업이 자본과 인프라에 투자하고 중소기업과 협력해야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코로나19로 국가적 위기상황인 만큼 IT 대기업이 축적한 자산과 경험을 널리 활용하고 대기업 중소기업의 상생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한국판 뉴딜의 ABCDE 이런 한국판 뉴딜을 바탕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산업을 알파벳으로 풀어보자. 우선 DNA에서 강조하는 A의 인공지능이다. 데이터 기반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공지능은 모든 산업에 필수가 되고 있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는 미래 전략에 몰두하면서 인공지능에 집중했다. 이세돌과 세기의 바둑대결을 펼친 알파고의 산실인 딥마인드와 인공지능 핵심 기술을 갖고 있는 DNN리서치를 인수하고 ‘구글=인공지능 기술 선두’라는 등식을 업계에 전파했다. 이제 제조를 위한 인공지능 개발·확산(AI for Manufacturing)이 대세다. 조선, 자동차, 뿌리 산업 등 전통 제조업에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술을 접목해 품질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은 산업 환경 전반으로 변화될 것이다. 제조 관점에서 살펴보면, 인공지능은 축적된 데이터 분석으로 제조 공정의 최적 운영 방안을 제시하고, 작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제조설비 이상 감지, 불량제품 자동검사, 안전관리, 시장 수요 예측 등 생산 최적화가 가능해진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다양한 불량 사례를 학습함에 따라 공정 불량률이 급감하게 된다. 아울러 더 정확한 분석과 시장 예측이 가능해진다. 조달물류 측면에서는 AI가 물류창고 내 특정 시점, 특정 구역의 혼잡도를 미리 예측해 작업을 할당하고, 최적 경로를 제시해 운송시간을 절약하게 된다.다음으로, B인 바이오산업을 보자. 유전정보 바탕 생물정보산업(Bioinformatics based on Genome)의 번성이다. 게놈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수행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유전자 분석, 치료 물질 개발, 맞춤형 치료 산업 확대가 새로운 바이오산업의 미래를 열 것이다. 게놈을 기반으로 하는 맞춤형 바이오메디컬 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한 헬스케어 등의 융합을 통해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정밀의료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시장성과 성장성을 갖춘 게놈 산업을 신수종산업으로 발전시켜 경제 활성화를 이끌 수 있다. 바이오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핵심 기술인 게놈과 생명, 의료, 농업, 식품 등 다양한 연관 산업에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가진 게놈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바이오 헬스 산업 육성으로 지역 상업 체질을 강화하고, 다가오는 글로벌 바이오 경제시대에 대비해 나가야 한다.다음으로 C, 즉 화학산업을 보자. 미래 첨단 소재 생산을 위한 석유·정밀화학산업(Chem for High Advanced Materials) 육성이다. 미래 먹거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부품산업 창출과 산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산업적 파급 효과가 큰 핵심 소재산업에 대한 연구개발을 늘려야 한다. 반도체와 함께 급격한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2차전지 소재와 친환경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 개발도 중점 추진하고 불소 산업단지 조성, 그래핀 산업활성화 등도 그 예가 되겠다. 큰 발전이 예상되는 2차전지와 관련 소재 산업을 들여다보자. 2차전지란 한 번 쓰고 버리는 1차전지와 달리 충전해서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전지다. 친환경 부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니켈-카드뮴, 리튬이온, 니켈-수소, 리튬폴리머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1차전지가 재사용이 불가능하고 전지의 수거나 재활용 등에 드는 비용이 많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2차전지는 여러 번 충전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2차전지는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전화, 캠코더 등 들고 다니는 전자기기뿐만 아니라 전기자동차의 핵심 소재이며, 부가가치가 높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와 함께 21 세기 ‘3대 전자부품’으로 꼽힌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관련 소재 공급망은 취약하다. 장기적으로 국내 2차전지 소재 생태계 육성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의 국산 점유율이 모두 10% 미만이다. 이들 소재 분야에서는 국내 업체가 존재하지만 이를 만드는 원료 단계로 내려가면 국내 독자 생태계가 전무하다는 점을 업계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전략적으로 자국 소재 업체를 키우기보다는 품질이나 원가 경쟁력이 우수한 일본이나 중국 제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재 산업 육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다음으로 D, 즉 디지털산업화를 보자. 성숙한 기존 산업에 4차 산업혁명 기술 접목(Digital Transformation for Mature Industry)을 활성화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해 통신, 소프트웨어, 로봇 등의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성숙하고 발전이 더딘 기업 및 산업을 대상으로 적용하고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성장한계에 직면한 기존 산업을 디지털로 대전환한다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 제조, 금융, 유통, 의료 등 전통 분야를 디지털 기반으로 신속하게 전환할 수 있는 청사진과 맞물려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디지털 기반 기술과 적응력이 뛰어난 산업생태계를 확인했다. 한국판 뉴딜은 산업 지형을 디지털 중심으로 바꾸는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 환경친화적 그린뉴딜 마지막으로 E, 즉 에너지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산업화하는 에너지 허브(Energy Hub based on New Resources) 육성이다. 수소산업화 추진, 동북아 오일가스허브 착공, 해상풍력단지 조성, 에너지기관 간 협력사업을 통해 에너지 허브 도시를 육성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와 석유공사, SK가스가 함께 울산 북항을 동북아 오일가스허브로 개발하는 사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울산 북항 내 대규모 상업용 석유제품·천연가스에 대한 탱크터미널 조성과 운영을 조속히 추진하는 것이다. ABCDE를 되내이며 스마트하게(스마트 뉴딜), 인간의 편의를 생각하며(휴먼 뉴딜), 환경을 생각하며(그린뉴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울산 경제부시장이다. 대한민국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2020.05.24 12:51

11분 소요
[항공 산업 재편 시나리오] 1강(대한항공) 1중(제주항공) 체제 오나

항공

진에어 생존… 나머지 LCC 줄도산 위기 국적 항공사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향후 항공 산업계에 광범위한 재편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항공업계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여부에 따라 항공 산업 재편의 방향도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FSC) 2강 체제가 기존대로 유지되는 반면, 인수 포기 땐 대한항공 1강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국적 저비용항공사(LCC) 중에는 재무 상태가 양호한 진에어의 생존 확률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티웨이항공·에어부산 등은 올해를 버틸만한 여력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 ━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할 경우 항공업계 관계자들과 항공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HDC 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여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아시아나항공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이 HDC현대산업개발이 만족할만한 파격적인 협상 조건을 제시하면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성사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반면 HDC현대산업개발이 코로나19 사태 등 항공업계 위기 등을 고려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할 것이라는 신호를 지속 내비치고 있다는 의견도 많다.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국적 FSC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2강 체제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아시아나항공 계열회사 LCC인 에어부산은 분리 매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경영 정상화를 위해 수조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에어부산까지 안고가긴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에어부산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지난해부터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려 왔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일본 노선 항공 여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에어부산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378억원이다. 한태근 에어부산 사장이 지난해 10월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일본이 살아나지 않으면 타개책은 특별히 없다”고 말할 정도다. 일본 노선 항공 여객 감소에 올해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에어부산의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은 385억원이며, 1분기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99억원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에어부산은 부분 자본잠식 상태로, 자본잠식률은 11%다.여기에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에 에어부산 지분율을 10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도 분리 매각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주사 손자회사는 자회사(지주사 증손자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하는데, 지주사 체제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아시아나항공은 HDC의 손자회사, 에어부산은 증손자회사로 각각 편입된다. 아시아나항공의 에어부산 지분율은 44.17%다.에어부산이 매물로 나올 경우, 대한항공의 인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이스타항공 인수를 추진 중인 제주항공이 에어부산까지 사들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존 항공사가 아닌 신규 사업자가 에어부산 인수에 뛰어들 수도 있지만 기업 간 유기적 결합, 인수·합병(M&A) 이후 시너지 등을 고려하면 국적 항공사 간의 결합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할 경우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할 경우 항공 산업 재편도 급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을 다시 떠안은 산은이 기존과 동일하게 아시아나항공을 통으로 매각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항공 산업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어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항공업계 안팎에서는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실패하면, 아시아나항공의 몸집을 대폭 줄이는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일각에서는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에어부산을 분리 매각하고 에어서울의 청산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태와 항공업계 위기 등을 감안하면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재매각에 곧바로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산은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의 가치 상승을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에어서울 등은 청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에어서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본 총계가 마이너스 57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2강 체제가 대한항공 1강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격차를 벌리는 가운데 분리 매각되는 에어부산마저 인수하면, 진에어·에어부산을 아우르는 ‘LCC 라인’을 갖추게 된다. 대한항공이 장거리 노선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중단거리, 장거리 등 국내 항공 수요 전반을 충족할 수 있는 항공사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 가능성 희박 항공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HDC현대산업개발과 제주항공이 각각 아시아나항공, 이스타항공 주식 취득 예정일을 연기했지만 양사의 사정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놓고 심각하게 저울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를 놓고 고민하는 분위기가 아니다”며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주식 취득 예정일을 연기한 것은 제주항공 ‘입맛’에 맞을 정도로 이스타항공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실제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주식 취득 예정일 변경을 공시하면서 “주식매매계약의 선행조건 미충족에 따른 취득 예정일 변경”이라고 했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주식매매계약 내용은 외부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항공업계는 계약서에 대규모 구조조정 등 ‘다운사이징’에 대한 선행 조건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제주항공이 꽤 오래전부터 이스타항공 인수를 타진해온 것으로 안다”며 “인천국제공항 등 주요 공항의 슬롯(시간당 항공기 운항 가능 횟수)이 포화 상태라 기존 사업자 인수를 통한 슬롯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제주항공이 중국 노선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만큼 ‘알짜’ 중국 노선 운수권을 확보하고 있는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실제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5월에 인천과 제주에서 출발하는 상하이 노선 운수권을 확보했고, 지난 5월 15일에도 청주~상하이·장자제 운수권을 받았다. 오는 6월 말까지 국내선과 국제선을 운항하지 않는 항공사임에도 신규 중국 노선 운수권을 챙긴 것이다.제주항공은 중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주목해왔다. 산둥성, 하이난성 노선처럼 운수권 제한 없이 무제한 취항이 가능한 ‘완전 항공 자유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항공업계에서는 한중 간 완전 항공 자유화가 이뤄질 경우 중국 항공사의 저가 공세 등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제주항공은 완전 항공 자유화가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5월 AK홀딩스 대표로 자리를 옮긴 이석주 대표는 제주항공 사장 시절이던 2018년 3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과 중국의 전면적인 항공 자유화에 대해 “위협이자 기회”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중국이라고 하는 커다란 수요처를 간과하거나 경쟁을 두려워한다면, 수익성 있는 성장이라고 하는 부분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의문이다”고도 말했다.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면 국내서는 처음으로 ‘메가 LCC’가 탄생하게 된다. 지난해 진에어가 국토교통부 제재를 받는 사이에 1등 LCC로 성장한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마저 흡수하면, 국적 LCC 시장 점유율이 40%에 육박하는 초대형 LCC로 거듭나게 된다. ━ 진에어 생존 확률 높고 티웨이 생존 가능성 분분 제주항공을 제외한 국적 LCC 중에는 진에어의 생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면 티웨이항공의 생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지난해 3월 국제항공운송면허를 받은 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등 신규 LCC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분기 말 기준 진에어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070억원이다. 같은 기간 제주항공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680억원이며, 티웨이항공은 334억원에 불과하다. 티웨이항공은 부분 자본잠식 상태로, 자본잠식률은 12%다. 지난해 말 기준 플라이강원의 자본잠식률은 49%에 달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재무 상태 등을 보면, 진에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LCC는 올해를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정부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FSC 중심의 항공사 지원 정책을 발표한 것도 국적 LCC의 생존 확률이 낮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부는 5월 20일 ‘기간산업 안정 기금 운용 방안’을 의결하면서 항공업과 해운업 가운데 총 차입금 5000억원 이상, 근로자수 300명 이상인 기업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에어부산 등을 제외한 나머지 LCC는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정부가 지원 대상에 일부 예외적으로 추가되는 기업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긴 했으나, 국적 LCC에 대한 추가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지난 2월 국적 LCC에 3000억원의 긴급운영자금을 지원했는데, 당시 LCC 안팎에서는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신규 LCC는 지원 자금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과)는 “정부가 항공업 지원과 관련해 대기업 중심으로 지원하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초 체력이 부족한 LCC들이 다른 항공사에 흡수되거나 최악의 경우 청산되면서 대한항공 등 대기업 중심으로 항공 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부)는 “전 세계 항공 시장과 비교하면 국내에 항공사가 많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는데, 전 세계 항공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국내에는 FSC 1개와 LCC 2~3개 정도가 적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결국 대한항공 1강 체제로 항공 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황 교수는 또 “국토교통부 내부에서도 국내 시장에 항공 사업자가 많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지난해 지역 여론 등에 밀려 ‘울며 겨자 먹기’로 신규 LCC에 면허를 발급해준 것으로 보인다”며 “항공사에 수백조원을 지원하는 영국, 독일 등과 비교하면 우리 정부의 지원 규모가 작은 편인데, 결국 대한항공 등 ‘대마(大馬)’만 살리는 쪽으로 항공 산업 재편 방향을 잡은 것 같다”고 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2020.05.2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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