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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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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인사이트] 탄소 포인트를 현금으로? 상하이 녹색금융 환경 조성 박차

차이나 포커스

(중국 상하이=신화통신) "500만 위안(약 9억9천300만원)을 대출받는 데 연이율이 2.85%밖에 안 됩니다. 이번에 제정된 법규가 '단비'처럼 느껴졌어요." 천젠장(陳建江) 상하이 순저우(順舟)스마트과학기술회사 대표는 최근 중국공상은행 푸둥(浦東)개발구지점에서 비교적 저렴한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천 대표가 말하는 '단비'란 상하이시가 처음으로 제정한 녹색금융 법규인 '상하이 푸둥신구 녹색금융 발전에 관한 몇 가지 규정'을 가리킨다. 이 규정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기업의 탄소배출 정보와 개인의 녹색 저탄소 활동 정보 등을 탄소 장부에 기입하고 탄소 포인트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상품이나 서비스 혜택을 제공하고 기업이나 개인은 탄소 포인트를 현물로 바꿔 사용할 수 있다.상하이 순저우스마트과학기술회사는 첨단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도로나 공원 등의 장소에 에너지 절약형 저탄소 조명을 설치하는 회사다. 천 대표는 "400W(와트)짜리 가로등이 밤새 약 4㎾h(킬로와트시)를 소모한다면 에너지 절감 방식을 통해 2㎾h 이상을 절약할 수 있고 1년이 지나면 약 1천㎾h에 육박하는 전기를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공상은행 푸둥개발구지점 관계자는 "에너지 소모량이 많은 철강기업도 저탄소 자재 연구개발에 관련된 사업이라면 녹색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해당 규정으로 금융기관이 녹색금융 서비스를 제때 제공할 수 있어 녹색금융 상품을 개발하거나 탄소금융 업무를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이와 함께 금융기관에서도 녹색금융 종합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스타트업 기업인 후이두(灰度)환경보호과학기술(상하이)회사는 친환경 재활용 포장제품을 연구∙개발∙생산∙운영하는 과학기술기업이다. 회사는 자체 연구개발한 친환경 재활용 물류박스로 이미 수십 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수입과 실적이 없는 신생기업이라 은행의 신용대출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이런 상황에서 상하이 농상(農商)은행이 큰 역할을 발휘했다. 상하이 농상은행은 중소∙영세기업의 설립 초창기 성장을 돕자는 취지에서 회사의 신용도와 성장성을 평가해 '신용대출+스톡옵션'의 특별 혁신 융자상품을 제공했다. 본 상품의 신용대출 한도액은 1천만 위안(19억8천740만원)에 달한다. 바로 이 금융상품으로 경자산(Asset-light) 과학기술형 기업인 후이두는 융자 문제를 적시에 해결할 수 있었다.은행뿐 아니라 상하이 지역의 보험업계 역시 녹색기업과 녹색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며 녹색금융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얼마 전 상하이 환경에너지거래소는 중국태평양보험(CPIC), 선넝(申能)그룹, 교통은행과 손잡고 '탄소배출 할당량 담보대출' 보증 보험상품을 내놓았다. 본 상품은 '탄소 할당량+담보+보험"을 혼합한 모델로 만일 채무자가 만기일까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은행은 보험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선넝그룹 산하 선넝탄소과학기술회사는 이 상품을 통해 탄소배출 할당량을 담보로 교통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쑨후이(孫輝) 중국인민은행 상하이본부 부주임은 통계 작성 이래로 상하이 녹색대출 연평균 증가율이 24.1%에 달했다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상하이 전 지역의 위안화·외화 대출 증가율보다 14.8%포인트 높은 수치라고 밝혔다.

2022.10.17 10:06

2분 소요
[개발자 영입 전쟁] 골머리 앓는 창업가들…“인맥과 철학으로 영입? 전제는 연봉”

IT 일반

신생기업(스타트업)일수록 유능한 개발자가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장점이라는 효율적인 개발 로드맵을 이들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조직문화에 끼치는 영향도 적잖다. 그래서 창업자 사이에선 “멤버 텐(초기 멤버 10명)까진 데리고 오는 게 아니라 모셔오는 것”이라는 말도 한다. 문제는 영입이 되느냐다. 기업 비전과 창업자 철학을 보고 온다지만, 그것도 금전적인 조건이 맞춰질 때나 가능하다. 스톡옵션도 보통은 그리 매력적인 조건이 못 된다. 회사가 크게 성장하면 ‘대박’도 가능하지만,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다. 결국 이들을 영입하자면 요구하는 연봉을 맞춰줘야 한다. 한효승 리버스랩 대표도 창업 초기 이런 어려움을 겪었다. 한 대표는 2016년부터 학원 셔틀버스 공유 서비스인 ‘옐로우버스’를 운영해왔다. 운수업에 가까워 보이지만, 기술의 역할도 크다. 운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셔틀버스가 다니는 노선과 정류장 위치를 최적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텔코리아에서 인공지능 연구(컴퓨터 비전)를 해봤기 때문에 자신도 있었다. 문제는 함께 개발할 동업자를 찾는 것이었다. 한 대표 뜻에 공감한 대학 동기와 직장동료가 있었지만, 조건을 맞추긴 쉽지 않았다. 한 대표는 “7000만원 안팎의 연봉으로 초기 멤버 6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고 회사의 비전을 어필했을 때도 이만한 보상이 필요하단 뜻이다. ━ “신생기업 스톡옵션, ‘봉이 김선달’ 꼴” 실제로 7000만원 안팎은 많은 스타트업에서 경력 개발자에게 줄 수 있는 연봉 최대치로 여겨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스타트업 해외 진출 지원 기관인 ‘본투글로벌센터’가 지난 10월 회원사 47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그랬다. 가장 많은 17개(36.2%) 기업이 7000만~1억원을 꼽았다. 그러나 전제조건인 네트워크와 비전을 빼면, 이만한 액수도 인재를 영업하기엔 역부족이다. 네이버·카카오뿐 아니라 스타트업 중 대규모 벤처캐피털(VC) 투자를 받은 곳에서도 억 단위 연봉을 꺼내 들기 때문이다. 기업공개만 하면 마찬가지로 억 단위 차익을 볼 법한 스톡옵션도 덤이다. 개발자 사이에서 ‘토양어선’이라고도 불리는 토스가 대표적이다. 토양어선이란 송금·증권 등 핀테크 서비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로 이직하는 것을 원양어선에 빗대 부르는 말이다. 일이 많아 원양어선을 타는 것처럼 힘들지만, 그만큼 보상이 많다. 토스는 이직하면 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의 1.5배를 준다. 5000만원 상당의 스톡옵션도 더해진다. 상장 이야기가 나오는 스타트업이라면 연봉보다 스톡옵션이 더 매력적인 이직 조건이 되기도 한다. 지난달 코스피 시장에 입성한 카카오페이가 좋은 예다. 카카오페이 직원 831명에게 회사에서 부여한 스톡옵션 주식 총수는 399만1070주. 상장 첫날 종가(19만3000원)로 계산하면, 1인당 평균 9억2690만원을 번 셈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런 마당에 초기 스타트업에서 스톡옵션으로 인재를 영입한다는 건 대동강 물을 떠다 한양에서 팔겠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벤처캐피털에선 스타트업 투자를 결정할 때 대표가 어떤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느냐를 중요한 기준으로 본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기술창업기업 위주로 투자해온 이은세 541벤처스 대표는 “투자를 결정할 때 대표가 어떤 ‘탤런트 풀’에 접근할 수 있느냐를 본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말하는 탤런트 풀이란 좋은 직장이나 대학을 뜻한다. 이 대표는 “아이디어가 좋고 투자도 많이 받으면 사람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란 생각은 안일하다”며 “벤처캐피털에서 필요한 인재를 최대한 소개해주지만, 결국 창업자 본인이 믿고 동업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국비지원 교육 프로그램은 대안이 되질 못 한다. 전공자들이 4년 동안 배우는 내용을 6개월 안에 속성으로 익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계 민관 협력단체인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의 이기대 이사는 “네카라쿠배처럼 직원마다 역할이 분명하고, 조직문화도 정립된 곳에선 이들을 채용할만하다”며 “그러나 업무 전반을 새로 기획해야 하는 신생기업에선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국비지원 과정이 그렇진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하 기관인 정보통신기획평가원에서 주관하는 ‘소프트웨어(SW) 마에스트로’ 과정이 그중 하나다. 매해 SW 분야 연수생 180명(12기 기준)을 뽑아 1년간 가르친다. 모집 범위가 전국인 데다 코딩 실력을 보기 때문에 선발되기 무척 까다롭다. 하지만 그만큼 들어가면 우수한 인재들과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 SW 마에스토로, 비전공 출신에 열린 ‘좁은 문’ 이태규(27) 두들린 대표도 이 과정에서 동업자를 구했다. 이 대표는 올해 1월 기업용 채용관리 솔루션 ‘그리팅’을 개발해 론칭했다. 여러 채용 플랫폼에서 들어오는 지원자들을 한 곳에 모아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간 인사 담당자들은 엑셀 프로그램에 일일이 정보를 입력해야 했다. 편리한 기능 덕택에 회원사가 벌써 1000곳을 넘겼다. 그런데 이 대표는 한국외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왔다. 게다가 군대를 입대하기 전인 대학교 1학년 때까진 코딩을 접해본 적도 없었다. 제대한 뒤 친한 친구 손에 이끌려 코딩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SW 마에스트로 과정에 운 좋게 합격했다”며 “성적이 나쁘지 않아 5주 동안 미국에서 심화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때 친해진 동기 개발자와 함께 두들린을 창업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액셀러레이터(창업보육기관)인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를 만난 것도 이때다. 이 대표는 “우연히 견학 업체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 명함을 얻어냈다”고 회상했다. 또 이달 중엔 국내 창업자들이 가장 선망하는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알토스벤처스’로부터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교육 프로그램을 계기로 고급 인적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매해 배출하는 인력은 업계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주요 IT 분야에서 부족한 인력 규모를 9453명으로 추산했다. 게다가 연수 수료생 대부분은 대기업이나 빅테크 기업에서 ‘입도선매’한다. 수료할 때가 되면, 업체들에서 보낸 멘토들이 물밑에서 영입 경쟁을 벌이는 식이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업계에선 임시로라도 외국인 취업 조건을 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전 세계적인 개발자 구인난 탓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인도나 동남아, 혹은 동유럽 출신 개발자를 영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다. 그러나 현재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국내 취업을 확정 짓지 않는 외국인은 국내 취업비자(E7비자)를 발급받지 못한다. 업체 입장에서도 외국인 직원 수가 전체 직원의 20%를 넘어가면 안 된다. 해당 직무에서 한국인 직원이 5명은 있어야 외국인을 1명 뽑을 수 있다는 말이다. 평균 직원 수가 6명인 초기 스타트업으로선 맞추기 어려운 조건이다. 김영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실장은 “스타트업에 한해서라도 외국인 개발자를 좀 더 쉽게 채용할 수 있도록 중소벤처기업부에 건의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업계 관계자는 “비자 발급조건을 완화해달라는 건의는 수차례 해왔다”며 “주무 부처인 법무부에서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전했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1.12.09 15:00

5분 소요
적자에도 스톡옵션 지급…'임직원 기살리기' 나선 캐롯손보

보험

캐롯손해보험이 임직원들에게 스톡옥션을 지급하며 '우수 인재' 붙잡기에 나섰다. 카카오페이나 신한금융지주 등이 디지털손해보험사 설립을 추진 중이라 인재 확보 경쟁이 불가피해져서다. 캐롯손보는 여전히 적자상태지만 최근 주력상품인 퍼마일자동차보험이 순항 중이라 장기적으로는 성장이 기대되는 상황. 이번 내부 보상책을 통한 임직원 '기 살리기'로 성장세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 IT인재 유출 막기, 당근 제시한 캐롯 캐롯손보 측에 따르면 이달 말 캐롯손보는 임직원 50명에게 약 51억원 상당의 스톡옵션 102만주(액면가 5000원)를 지급했다. 회사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인 스톡옵션은 직원들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도 있지만 대체로 직원들 사기 진작, 복지차원에서 지급되는 편이다. 올 2월에도 캐롯손보는 회사 핵심부서인 IT관련 임직원들에게 46억원 상당의 스톡옵션을 지급한 바 있다. 다만 이번에 지급된 스톡옵션은 현재 액면가인 5000원의 두 배로 주식 가치가 상승하고 2027년까지 회사에 근속해야 받을 수 있다. 앞으로 6년간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캐롯손보 주식가치가 1만원을 넘어서면 스톡옵션 행사가 가능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캐롯손보가 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사실상 내부성과 보상책을 꺼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카카오페이를 비롯, 신한금융지주 등 공룡급 회사들이 디지털 손보사 설립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 IT인재 유치 경쟁도 다시 점화될 분위기다. 이미 디지털손보사 예비인가를 받은 카카오페이는 이달 본인가 신청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디지털 손보사의 경우 IT인재의 존재 유무가 회사 성과를 좌우할 수 있다. 캐롯손보가 보험사임에도 IT관련 인력이 전체 50% 이상을 차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출범한 캐롯손보는 보험설계사 없이 온라인으로만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임직원도 100여명에서 현재 약 280명으로 늘어나며 외형이 계속 확장 중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내부 당근책으로 잇따라 출범할 디지털 손보사들에게 우수 인재를 뺏기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스톡옵션 지급으로 성과에 대한 보상을 확실히 하겠다는 메시지를 임직원에게 전달하며 의욕을 더욱 고취시키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 '퍼마일 순항'으로 자신감…적자 털기 위한 비책 일각에서는 캐롯손보가 사업 초기,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한 보상책을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출범 2년차인 캐롯손보는 마케팅 등 초기 사업비용 탓에 지난해 38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도 266억원의 손실을 내며 올해도 사실상 적자가 유력하다. 다만 주력 상품인 퍼마일자동차보험의 실적이 순항 중이다. 캐롯손보의 올 3분기 누적 원수보험료는 1157억원으로 지난해 동기(141억원) 대비 8배가량 증가했다. 원수보험료 증가세는 주력 상품인 퍼마일자동차보험이 이끌었다. 퍼마일자동차보험의 올 3분기 누적 원수보험료는 94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97억원) 대비 약 980% 늘었다. 퍼마일자동차보험은 매달 주행거리만큼 보험료를 계산해 납부하는 상품으로 이달 기준, 가입 건수가 40만건에 육박했다. 업계에서 캐롯손보만 유일하게 이런 유형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가입자 유치에 유리할 수 있다. 우수 인재의 잔류와 함께 퍼마일 상품의 꾸준한 순항, 상품 포트폴리오 다변화 등이 진행되면 캐롯손보의 향후 흑자 전환이 더욱 앞당겨질 수도 있다. 캐롯손보 관계자는 "이번 스톡옵션 지급은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신생기업으로서 성장을 위한 동기부여 측면이 맞다"며 "또 퍼마일 상품이 잘 팔리는 상황에서 이번 스톡옵션 지급이 보다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2021.11.25 21:23

3분 소요
‘북유럽의 실리콘밸리’

산업 일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조선산업처럼 스웨덴 말뫼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 말뫼는 200여 신생기업이 입주한 창업보육지원센터 ‘미디어에볼루션’으로 활기에 차있다. 193개국 10만명 인재를 불러모아 도시 부활을 이끌고 있는 말뫼를 찾았다. 스웨덴 말뫼 서쪽 항구에 자리한 스카니아(Skania) 공원은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여가장소다. 2002년까지 코쿰스 조선소의 대형 크레인이 서있던 바로 그 자리다. 말뫼시는 현대중공업에 크레인을 팔기 직전인 2001년부터 이곳에 친환경 주거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현지 언론은 크레인의 해체 작업이 이뤄진 당시 상황을 두고 ‘말뫼가 울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당시 말뫼가 흘린 눈물은 ‘석별의 상징’에 불과했다.1960년대 호황을 누린 스웨덴 조선산업은 1970년대 중반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배의 대형화 추세를 따라잡지 못해 한국·일본 등 아시아 신흥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경영진과 노조를 참여시킨 협의체를 구성해 조선소를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말뫼의 코쿰스마저 1986년 폐쇄되자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20여 년간 조선업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말뫼에선 총 2만8000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3~4%대로 전국 최저 수준이던 실업률은 1990년대 초반 22%대로 치솟았다.일마 리팔루(73) 씨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말뫼 시장을 지냈다. 그는 취임 직후 상황을 얘기하며 “그때는 울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전임 시장이 세운 제조업 기반의 ‘25개년 도시 계획(1990~2015년)’을 전면 재검토했다. 더 이상 조선소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구상이었다. 리팔루 시장은 새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 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전통적인 공업도시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스카니아 지역에 들어선 유럽 최초의 친환경 주거시범단지도 리팔루 시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 20년 간 일자리 2만8000개 잃고, 6만3000개 얻어 ‘리팔루 시장의 마법’은 10년 만인 2000년대 중반부터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페아 안더슨 말뫼시 무역 산업국장은 “말뫼가 조선업을 포기하면서 20년 간 2만 8000여 개의 일자리를 잃었지만, 그 후 20년 동안 200여 신생기업과 6만3000여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1980년대 중반 22만 명까지 줄어든 도시 인구는 현재 32만 명으로 늘었다. 인구의 절반은 35세 미만 젊은이다.반면 1960년대 말뫼와 비슷한 경제규모를 자랑한 ‘철강의 도시’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는 같은 시기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50년 전 17만8000여 명이던 이 도시의 인구는 현재 7만8000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여전히 철강·화학 등 제조업을 주요산업으로 내세우는 이 도시는 최근 도시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돼 단돈 1달러짜리 집이 매물로 나오는 등 ‘유령의 도시’로 전락했다. 안더슨 국장은 “일찍이 변화를 감행하지 않았다면 말뫼도 게리처럼 쇠퇴했을 것”이라며 “위기 때 내린 용단이 지금의 말뫼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오비탈시스템즈 CEO 메하드 마쥬비(26)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실리콘밸리와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했다. 우주선 안에서 사용한 물을 곧바로 정화해 다시 쓰는 기술을 개발한 그는 2010년 창업을 위해 미국 생활을 접고 고향인 말뫼로 돌아왔다. 마쥬비는 “10년 전 말뫼였다면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뫼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우수한 인재와 뛰어난 창업 기반 시설, 국제공항과 가까운 입지 3박자를 갖춘 유럽의 실리콘밸리”라고 말했다.이 회사가 입주한 건물은 1986년까지 코쿰스 조선소가 있던 자리다. 말뫼시는 코쿰스 크레인을 한국에 보낸 직후 공장을 매입했다. 낡은 외벽과 골조만 남긴 채 내부는 최신식으로 개조했다. 2004년 리노베이션이 끝난 동시에 말뫼시는 시 예산 100%로 운영하는 창업보육지원센터 ‘미디어에볼루션’을 출범시켰다. 말뫼시 창업 전담 부서에서 철저한 심사를 거쳐 통과한 벤처기업만이 이 건물에 입주할 수 있다. ━ 혁신적 기술 갖춘 사업계획서 선정해 지원 마쥬비가 2012년 8월 창업할 당시엔 1인 기업이었다. 현재 이 회사에는 20개국에서 온 50여 명의 엔지니어가 근무하고 있다. 그는 전 직원과 스톡옵션을 나누고, 회사에 대한 오너십을 갖게 한다. 하루 세끼를 모두 구내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게 식대를 지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마쥬비는 “스타트업일수록 유능한 인재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며 “실리콘밸리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기술력을 가진 인재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코쿰스가 나간 자리엔 이제 오비탈시스템즈와 같은 신생기업 200여 곳이 생겼다. 이들은 쇠락한 옛 조선소 자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마쥬비는 “큰 나무가 죽으면 베고, 그 자리에 여러 그루의 새 나무를 심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며 “죽은 나무에 아무리 물을 줘도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걸 정부 관계자들은 코쿰스가 망하고 나서야 깨우쳤다”고 말했다.‘미디어에볼루션’의 모태가 되는 곳은 말뫼시가 2002년 세운 창업 인큐베이터 ‘밍크(MINC)’다. 시 예산 50%와 정부·기업 펀딩 50%로 운영된다. 한번 인큐베이터에 들어오면 대개 2~3년 동안 머물 수 있다. 첫 6개월은 입주비가 무료이고, 이후엔 한달에 3000크로나(약 42만원)만 내면 된다. 밍크 CEO인 모르텐 웨브릭은 “적은 비용으로 시제품을 만들 수 있고, 벤처캐피탈을 받을 수 있도록 투자자를 연결해주기도 한다”며 “매년 200개의 사업계획서가 들어오는데 이중 20개만이 선정된다”고 말했다.업종에 제한은 없지만 전에 없던 혁신적인 기술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특히 말뫼시가 성장동력으로 삼는 클린테크(친환경·신재생에너지) 분야와 교육·IT 관련 기업이 주를 이룬다. 지난 15년 간 120여 개 회사가 인큐베이터 과정을 거쳐 ‘탈출(EXIT)’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웨브릭은 “밍크에 머문 70%가 창업에 성공하고, 그중 20%는 큰 성과를 거둔다”며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Slowly but surely) 방법으로 도시를 성장시키는 힘”이라고 말했다. ━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 잡는 ‘균형 잡힌 도시’ 페아 안더슨 말뫼시 무역산업국장은 “현재 인구의 절반가량인 16만3000여 명이 여러 업종의 중소기업에 종사 한다”며 “과거 조선소 하나로 연명하던 과거와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일자리가 다양해지자 인구 구성도 달라졌다. EU에 따르면 말뫼의 1인당 GDP는 2014년 기준 2만4233유로(약 3230만원) 유럽 내 50위 규모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꼽은 가장 혁신적인 도시 4위 (2014년 기준)를 차지했다. 얀 학 말뫼시 도시발전전략국장은 “1960년대엔 인구의 5%만이 다른 국가 출신이었지만 오늘날엔 33%에 달한다”며 “193개국 출신의 시민이 만들어낸 문화적 다양성이 혁신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1995년 재정비한 말뫼의 ‘25개년 도시 계획’의 핵심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이다. 학 국장은 “제조업의 위기로 인해 도시의 생존 자체를 위협받은 탓에 자연스레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데 관심을 쏟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만큼이나 좋은 학교·극장·공원과 같은 문화기반 시설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웹디자인 전문회사 ‘화이트스페이스’의 CEO 엔더스 벵엘린(34)은 웁살라 대학 출신이다. 수도 스톡홀름과 가까운 대학도시인 웁살라는 스웨덴 내에서도 최고의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졸업자는 대부분 스톡홀름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엔더스는 고향과 멀리 떨어진 말뫼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벵엘린은 “말뫼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일 뿐 아니라 두 자녀를 키우며 살기에 좋은 여건을 갖춘 균형 잡힌 도시”라며 “도시 곳곳에 녹지공간이 풍부하고, 주거단지와 교육 환경 역시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 인재가 말뫼로 모이는 까닭은 단순히 기업 친화적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얀 학 국장은 “삭막한 공업도시이던 말뫼는 이제 스웨덴은 물론 유럽에서도 가장 ‘쿨’한 도시로 각광 받는다”며 “각종 콘서트·영화제를 개최하고, 북유럽 최대 규모의 쇼핑센터를 갖춘 국제적인 도시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신생기업입주단지로 바뀐 건물 맞은편에는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코쿰스의 공장 건물 한 채가 그대로 남아있다. 과거 선박을 건조·수리하기 위해 설치한 도크(dock)엔 물이끼가 잔뜩 꼈다. 20년 전까지 쉴 새 없이 배가 들고났을 이 공간은 이제 입주기업 직원들의 구내식당으로 활용된다. 점심시간이 되자 볕을 쬐러 나온 100여 명의 직원들로 식당 외부가 북적였다. 얀 학 국장은 “초창기인 2004년엔 옛 공장의 일부만 개조해 창업지원센터로 꾸몄지만 점점 더 말뫼에서 창업하길 원하는 기업이 늘면서 나머지 공장 터도 마저 개발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말뫼(스웨덴)=글·사진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2016.07.2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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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백만장자가 된 그래피티 아티스트

산업 일반

데이비드 최는 분명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떠올렸을 듯하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보니 자신이 괴물 같은 백만장자로 변신했으니 말이다(waking up to find himself changed in his bed into a monstrous millionaire). 7년 전 이 한국계 미국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캘리포니아주 팰로 알토에 있는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페이스북의 초기 건물 벽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377만주에 달하는 스톡옵션을 보수로 받았다. 지난주 페이스북은 기업공개(IPO)를 신청했다. 그리고 주당 예상 공모가가 53달러니까 계산해 보면 최의 순자산이 얼마인지 알 수 있다. 발표 다음 날 한 친구는 그의 페이스북에 “엄청 축하해! 데이비드”라고 썼다. “거 참, 한국사람들이 똑똑한 거야 뭐야(Goddamn, are Koreans smart or what)!”라는 글도 올랐다.그밖의 성취는 접어두고 최의 백만장자 변신은 뻔하면서도 항상 본질적인 문제로 직결된다. “데이비드 최가 위대한 아티스트냐 아니면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냐(Is David Choe a great artist, or the greatest artist)?”는 점이다(아마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작정이냐?”는 질문을 기대했을지 모르겠다. 그 문제는 관심 끄시라. 당신의 돈이 아니다.)혹시 궁금해 할까 말이지만 그의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2억 달러”다. 석유부국 카타르가 최근 구입한 세계 최고가의 미술품과 비교해 보자. 세잔느의 ‘카드 놀이 하는 사람들(Card Players)’로 구입가는 2억5000만 달러였다. 그 전까지 최의 수입에 가장 근접한 가격은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2006년 1억4000만 달러에 팔린 잭슨 폴록의 작품이었다. 빌럼 데 쿠닝의 작품이 같은 해 1억3750만 달러에 판매됐다. 구스타프 클림트도 1억3500만 달러. 반 고호, 르누아르, 피카소, 앤디 워홀도 비슷한 수준이다. 모두 내로라 하는 화가들이다. 최도 그런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당당히 은메달을 차지했다(엄밀히 말해 최의 작품은 경매에서 팔리지 않았으며 다른 개인 소유 미술품이 그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은밀히 주인이 바뀌었는지 알 길이 없다).197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인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최는 사춘기 시절의 분노를 자전거 절도와 좀도둑질(shoplifting)로 해소했다. 그러다가 버스 벤치와 뒷골목에 스프레이 낙서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으면서 그래피티를 알게 됐다고 온라인 잡지 픽셀서전에 말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연구논문의 자전적 에세이에서 “내 미술 수업 때 프랭크 시내트라의 손녀가 내 오른쪽에,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의 양아들이 내 왼쪽에 앉았다”고 썼다. 자신의 한국적 전통과 파괴적인 성향을 합리화하려는 욕구의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이 문맥에서 느껴진다. “나는 모두를 미워했으며 주로 겸손을 이해하지 못하는 특권계층 아이들을 향한 강한 반감과 분노로 가득했다 … 무정부주의 개념이 나를 지배했다 … 2주 뒤 그 모든 상상이 실현됐다.”2주 뒤 일어난 일은 1992년의 LA폭동이었다. 최는 불량배들과 함께 가게를 약탈하고 밴에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가게들이 강간을 당해 바닥에 나뒹굴었다(Stores were raped to the ground).”) 부모의 사업체도 그날 불타버렸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리고 “그 뒤 몇 년간 복지수당으로 살았다”고 그는 썼다.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를 본 사람이라면 길거리 미술의 불법적인 성격(the delinquent nature of street art)을 잘 알것이다. 이제는 그것이 성격이라기보다 하나의 정의로 굳어진 듯하지만 그건 더 엄밀한 재검토가 필요한 문제다. 어쨌든 최가 자기성찰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런 불법적인 쪽으로 더 방황을 많이 한 듯하다(he seems to have taken the cliché and run with it). 여러 해 동안 그는 정식 미술교육(캘리포니아 미술대학)을 받는 만큼 말썽을 일으키는 데도 열성을 보였다. 오클랜드에서 그래피티를 한 죄로 한 주 철창 신세를 지고 일본에선 비밀 보안요원에 주먹을 날린 죄로 3개월 동안 감방살이를 했다. 그러는 동안 만화, LA에서 피할 수 없는 섹스 문화(그의 페이스북에 실린 사진과 메시지는 그가 포르노 영화 스타들과 가까운 친구임을 보여준다), 도박에 취미를 들였다. 최는 앤디 워홀과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상업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다. 잡지와 음악 앨범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렸다(제이-Z와 린킨 파크의 2004년 앨범 ‘Collision Course’의 커버 아트를 담당했다). 그리고 ‘희망(Hope)’ 그래픽을 자신의 상징으로 만든 그래피티계의 선배 아티스트 셰퍼드 페어리처럼 최도 오바마 대통령의 ‘희망’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 포스터는 백악관에 걸려 있다고 전해진다.이 모든 요소를 고려할 때 최가 있어야 할 자리는 LA의 혼잡한 거리 한복판 어딘가인 듯하다. 어쩌면 대다수 다른 그래피티 아티스트보다 더 낫지도 더 못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의 최대 도박은 할리우드 마담으로 유명한 하이디 플라이스로부터 벽화 작업을 의뢰받은 뒤에 이뤄졌다. 2005년 냅스터의 공동창업자이자 당시 팰로 알토의 작은 신생기업 페이스북의 사장이었던 션 파커로부터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본사 건물 벽면을 장식해 달라는 요구였다. 최는 이 작업에 다소 완성되지 않은 스타일을 도입했다. 벽의 일부만 자신의 상징인 에로틱한 여성들로 덮은 뒤 그림 일부에 일본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의 2차원적 도안을 겹쳤다. 초현실적이고 터무니 없이 코믹한 모습들도 두드러진다.그러나 그는 스타일로 도박을 하지는 않았다. 최에게도 빌럼 데 쿠닝 같은 스타일이 있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의 도박은 보수를 받는 방식이었다. 수천 달러의 현금을 받는 대신 그는 당시 수천 달러 대에 불과한 스톡옵션을 받았다.그 탓에 이런 복잡한 문제가 생겼다. 스프레이로 칠한 일련의 벽장식 작업의 대가로 아티스트가 사실상 2억 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 금액은 2008년 데미안 허스트가 세운 기록을 능가한다. 그 영국인 인습타파주의자는 자신의 전시회(‘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 출품작 200품목가량을 모두 1억9800만 달러에 팔아 치웠다. 미술가 한 명의 경매로선 전례 없는 일이었다. 허스트의 사례는 최의 벽화작업 수입을 예외적인 일로 일축하기 어렵게 만든다(muddies the efforts to dismiss the Choe murals as an anomaly). 허스트 전시회의 특징은 비이성적인 거래가 연속됐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은 돈이 남아돌고 의욕 넘치는 영국인 구매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그러나 허스트와 최에게는 비교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우선, 허스트의 작품은 이미 소재 자체가 비싸다는 점이다. 포름알데히드의 수조에 넣은 뱀상어(a tiger shark)와 말 등 다수의 죽은 동물 등. 그리고 ‘황금 송아지(The Golden Calf)’는 황금 뿔과 발굽이 18캐럿 황금으로 만들어졌다. 허스트의 전시작품이 그렇게 잘 팔릴 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최의 경우엔 벽화 값이 비싼 게 아니라 페이스북 스톡옵션 가치가 그렇게 오를 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벽화 또는 최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미술품 값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과열된 미술시장에서 있었던 문제다(the hyperventilated market has already seen to that). 그보다는 미술이 때로는 상품이기도 하지만 오로지 상품으로만 취급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가격표는 분명히 중요하지만 그것은 작품 가치보다 당시의 시대상을 더 많이 말해준다.번역 차진우

2012.02.0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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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view ] 경영자들의 ‘벙커 심리’ 지나치다

산업 일반

기업들이 올리는 이익으로 보자면 지금 미국은 왕성한 경제회복을 누려야 마땅하다. 지난 경기침체기에 미국의 기업 이익은 3분의 1가량 줄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큰 하락폭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 이익의 증가소식이 보도된다. 지난 2분기 IBM의 이익은 전년도 대비 9.1% 늘었다. 올해 1분기의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기업 이익은 경기침체기에 줄었던 부분의 87%를 회복했다. 2분기의 공식 집계가 나오면 기업 이익은 지난번의 최고치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기업 이익의 반등은 좋은 조짐이라야 한다. 기업들이 족쇄에서 풀려나 더욱 공격적인 사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기업들은 막대한 현금 보유액을 자랑한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에 포함된 산업 부문 기업들(애플, 보잉, 캐터필러 등)의 현금 보유액은 3월 말 현재 8380억 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도 대비 26% 증가다. S&P의 분석가 하워드 실버-블랫은 “그들은 채용, 신규 투자, 배당금 증액, 인수합병 등 원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만큼 충분한 자금을 보유한다”고 말했다. 지난 역사를 보면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지면 고용도 증가했다고 컨설팅 업체 무디스 이코노미닷컴의 분석가 마크 잰디가 말했다. 신생기업을 제외하면 적자 기업은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다.그러나 희한하게도 현재의 상황엔 그런 역사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익 수준이 회복되는데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 2007년 말부터 2009년 말까지 취업 인구는 거의 840만 명이나 줄었다. 그 이래 미국 경제는 줄어든 일자리의 겨우 11%를 회복했다. 기업들이 근로자들보다 훨씬 배가 부르다는 사실이 지금 미국 경제의 특징이다.가장 명백한 이유는 (마르크스의 어휘를 차용하자면) 노동과 자본 사이의 관계 변화다. 자본의 힘이 세지면서 노동의 힘이 약해졌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경제학자 로버트 J 고든은 “경영진의 보수가 주로 스톡옵션으로 바뀌면서 임원들이 경기침체엔 더욱 열성적으로 비용절감에 나서고 회복 초기엔 고용을 더욱 꺼리게 됐다”고 주장했다. 감원은 이익을 회복하는 가장 신속한 방법이며, 결과적으로 회사의 주가를 올리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고든은 최근 논문에서 미국 경제의 그런 현상이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그 이전엔 기업들이 숙련된 근로자들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고용 없는 회복’이 표준이 됐다. 1990~91년 경기침체 후 약 1년 동안이나 고용 증가가 재기되지 않았다. 2001년 경기침체 후에는 그 시차가 거의 2년이나 갔다. 경영진의 스톡옵션 외에 고든은 허약해진 노조, 그리고 수입 상품과 이민자들로 인한 치열해진 경쟁이 근로자들의 입지를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여기서도 역사가 중요하다. 1981~82년의 혹독한 경기침체 당시 여러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그런 임사체험으로 경영진은 대규모 정리해고에 더욱 개방적이 됐다. 최후 수단으로 시작된 감원이 점점 일상적인 일로 변했다. 세대적 변화도 있었다. 고용 불안에 민감한 대불황기 시절의 CEO들이 은퇴했다. 그 뒤를 이은 젊은 경영진은 치열한 경쟁과 기업 사냥을 더욱 우려했다.돌이켜보면 2008년과 2009년의 대규모 감원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포인트 로마 나자린 대학(샌디에이고)의 경제학자 린 리저는 “금융 시스템의 붕괴로 기업들은 외부 자금에 기댈 수 없게 돼 필사적으로 현금을 아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일자리, 재고, 신규 투자(컴퓨터, 기계 설비, 공장)를 무자비하게 줄였다. 2008년 4분기에서 2009년 2분기까지 사업 투자는 연율로 24%, 50%, 24%가 줄었다. 적어도 1940년대 이래로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고든은 설명했다. 무디스 이코노미닷컴의 잰디는 “기업들이 비용을 줄여서 이익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투자와 고용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매출의 증가가 필요하다.” 일부 바람직한 조짐도 있다. 기업들이 노후된 컴퓨터 교체를 확대하는 듯하다. 그런 움직임이 새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연구개발(R&D) 예산이 2006년 이래 18% 늘었으며 배터리에서 박막 태양전지에 이르는 다양한 신상품 개발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기업 엘리트들이 경제위기로 받은 충격이 너무나 큰 나머지 계속 몸을 사리는 ‘벙커 심리(bunker mentality)’를 갖게 됐을까? 그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오바마의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만큼이나 그런 심리도 두려운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노동이 주눅 들고 자본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면 회복은 더욱 멀어질 뿐이다. ■

2010.08.06 11:20

3분 소요
경영도 군사작전처럼

산업 일반

암논 란단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방법을 이스라엘군에서 배웠다. 이제 그가 머큐리 인터랙티브를 더 높은 고지로 이끌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최정상으로 진격하는 것이다. 암논 란단(Amnon Landan)이 실리콘밸리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81년의 일이다. 이스라엘군에서 4년 동안 복무하며 테러리스트 소탕작전을 벌이다 22세에 전역한 후였다. 그는 당시 여자 친구 야엘(지금의 부인)과 미국을 여행 중이었다. 그들은 낡은 시보레 베가를 몰고 북미 전역을 돌아다녔다. 잠은 베가 뒷좌석에 매트리스를 깔고 잤다. 그런 불편쯤이야 란단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주 베이에어리어로 들어선 날 저녁, 그는 가장 가까운 캠프장이 레드우드쇼어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레드우드쇼어스란 지금 오라클(Oracle) 본사가 있는 곳으로부터 엎어지면 코 닿을 데”라고 농을 건넸다. 란단은 그 뒤 지금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을 다섯 차례 오가며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그가 이끄는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 소재 머큐리 인터랙티브(Mercury Interactive)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프트웨어 제작업체 가운데 하나다. 머큐리의 제품은 기업용 비즈니스 솔루션에서 버그를 잡아 잘 돌아가게 만들어준다. 정보기술(IT) 부서 운영 자동화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머큐리의 매출은 97년 이래 연평균 36%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신장률은 24%였다. 머큐리는 포브스 선정 ‘2003년 최우량 미국 중소기업 200’ 리스트에서 15위를 차지했다(138쪽 표 참조). 올해엔 매출 5억 달러에 순익 8,5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은행에 쌓아둔 자금만 10억 달러가 넘는다. 란단은 수년에 걸쳐 5,000만 달러의 주식을 매각했다. 2,500만 달러 상당의 옵션도 보유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IBM ·SAP 등 소프트웨어 업계의 ‘거인들’에 비하면 머큐리는 아직 작다. 물론 란단이 ‘작다’는 말을 좋아할 리는 없다. 실리콘밸리에서 금기시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작다’이다. 회사가 작으면 기업고객들은 전화조차 받아주지 않는다. 작은 회사들은 큰 회사에 인수되거나 큰 회사들 틈바구니에서 서서히 질식사하는 게 보통이다. 란단은 직원들에게 머큐리가 이미 대기업이라고 강조한다. 머큐리의 임원 4명도 그와 똑같은 목표를 주문처럼 외고 다닌다. 목표는 5대 소프트웨어 업체 반열에 올라서는 것이다. 5대 소프트웨어 업체 반열에 오른다는 것은 큰 모험일지 모른다. 하지만 꿈이 강력한 자극제로 작용할 수 있다. 첨단 기술업체들은 머큐리의 제품을 항상 필요로 한다. 게다가 머큐리는 업계 최악의 경기침체도 잘 헤쳐 나왔다. 란단은 요즘 머큐리의 소프트웨어를 숙취 해소제처럼 선전한다. 지난 98~2000년 많은 기업이 과음하듯 닥치는대로 온갖 소프트웨어를 사들여 아직 숙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그 기업들의 최고정보책임자(CIO)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이미 구입한 소프트웨어, 이미 끌어들인 인력에 대한 효율적인 활용법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들이 IT에 예산의 절반을 쏟아붓지만 그 가운데 20%는 낭비되고 만다. 머큐리는 이런 고민들을 없애주는 해결사다. 시장에 선보인 최신 애플리케이션 자동 테스트 프로그램 가운데 반이 머큐리 제품이다. 대다수 대기업은 판매 ·금융 ·네트워크 관리 ·생산 자동화 등 핵심 부문에 500~1,000개의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고 있다. 그러나 애플리케이션 제작업체들은 십중팔구 납기일을 지키지 못한다. 그 결과 실전에 배치되기 전 철저한 테스트를 거치는 애플리케이션은 평균 25%다. 그러다 보니 애플리케이션 프로젝트 가운데 40%가 원래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목표는 5대 소프트웨어 업체 머큐리는 99년 이래 이미 사용 중인 애플리케이션의 운영 효율성을 높여주는 시장으로 파고들었다. 지난 5월 2억2,500만 달러 상당의 현금과 주식으로 킨타나(Kintana)를 인수했다. 킨타나의 소프트웨어는 IT 프로젝트와 기타 자원을 추적해 고객업체들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머큐리는 현재 7,500개 고객기업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는 시스코 시스템스(Cisco Systems), GE 메디컬(GE Medical), 다우 케미컬(Dow Chemical), 찰스 슈왑(Charles Schwab)도 포함된다. 베이에어리어에는 매출 5억 달러에서 10억 달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은 기업이 숱하다. 로터스(Lotus) ·노벨(Novell) ·워드 퍼펙트(WordPerfect)가 대표적인 예다. 현재 머큐리는 기업 IT 부문의 효율성을 높여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는 IBM(매출 810억 달러) ·휼렛 패커드(HP ·매출560억 달러) ·시벨 시스템스(Siebel Systems) ·오라클 ·컴퓨터 어소시에이츠(Computer Associates)도 마찬가지다. 머큐리가 어떤 난관에 부딪히든 투자자들은 머큐리의 성장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머큐리 주가는 2000년 최고치에서 70%나 하락했지만 올해 예상 수익의 52배라는 거품 같은 가격에 머물러 있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머큐리의 위상은 계속 올라간다. 머큐리의 경쟁상대는 이름도 못 들어본 조그만 회사가 아니라 거대한 인프라 소프트웨어 업체들이다. 란단은 “과거 품질관리 담당 실무 직원들과 만났지만 요즘은 CEO갅IO와 주로 상대한다”고 밝혔다. 머큐리의 오늘날이 있기까지 인재와 인맥, 기회를 놓치지 않는 적극성도 있어야 했다. 란단은 텔아비브 인근의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다. 엔지니어이자 직업군인인 아버지가 그의 역할 모델이었다. 이스라엘 국민은 18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군에 입대해야 한다. 란단도 76년 입대해 공수대원으로 레바논 남부 완충지대에서 복무했다. 란단에게 군복무는 일종의 경영학 석사학위(MBA) 과정이었다. 그는 20세에 소대장으로 25명을 지휘했다. 21세에는 중대장으로 65명을 인솔했다. 대원들은 한솥밥을 먹으며 헬기로 야간 테러리스트 소탕작전에 함께 참여했다. 란단은 비밀 임무 수행 중 총격을 받은 적도 있지만 부상당한 적은 없다. 전사한 대원도 없다. 그가 기억하는 한 사람을 죽인 일도 없다. 많은 이스라엘인은 젊은 나이에 대원들을 지휘하고 총탄 속을 헤쳐 나가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고속 성장기업을 운영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필요할 경우 권위를 확고히 세우되 작전시 소대장들에게 충분한 재량권도 부여해야 한다. 란단은 임원들과 정기 모임을 갖지 않는다. 킨타나 인수 당시 란단은 최고 인수가만 정하고 나머지 세부사항들을 데이비드 머피(David Murphy) 부사장에게 일임했다. 란단은 “문제가 있어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 해결에 이미 실패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란단은 비밀작전 과정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적이 총을 쏘아대고 있다면 양자택일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는 바위 뒤에 숨는 것이다. 그러면 총에 맞을 염려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다른 하나는 한 엄폐물에서 다른 엄폐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러다 총에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리한 지점을 확보할 수도 있다. ” 이쪽 엄폐물에서 저쪽 엄폐물로 뛰어가는 것이 란단의 경영철학이다. 란단은 제대 후 미국 전역을 여행했다. 이스라엘로 돌아온 뒤에는 이스라엘의 매사추세츠 공과대(MIT)라고 할 수 있는 테크니온 이스라엘 공과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파트타임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85년 대학을 졸업한 후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소재 데이지 시스템스(Daisy Systems)에 들어가 이스라엘 출신 연구 담당자 밑에서 엔지니어링 관리업무를 맡았다. 당시 데이지는 각광받는 업체 가운데 하나였다. 데이지는 존경받는 이스라엘인 기업가 아리예 파인골드(Aryeh Finegold)가 설립했다. 파인골드는 워크스테이션을 약간 손질하면 칩 회로 설계와 테스트가 신속히 수행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80년 전무하다시피했던 데이지의 매출은 85년 1억2,200만 달러로 급증했다. 란단은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실리콘밸리로 자리를 옮겨 데이지 연구진과 함께 일하게 됐다. 란단은 “당시 아이 둘을 키우면서 골프도 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86년 신기술 개발이 지연되자 데이지의 매출은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가는 37달러에서 86년 중반 5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이사진은 파인골드를 내쫓았다. 파인골드는 신생기업 레디 시스템스(Ready Systems)에 안착했다. 그에게 란단을 프로그래머로 추천한 이가 바로 레디의 임원들이다. 파인골드와 란단의 첫 만남은 잘 풀리지 않았다. 란단은 레디에서 일하기로 계약했지만 아버지가 위독해 이스라엘로 급히 귀국했다. 그리고 마음을 바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파인골드에게 통고했다. 란단은 “당시 파인골드와 함께 일하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란단과 파인골드는 89년 데이지의 연례 주총에서 다시 마주쳤다. 좋지 않은 감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파인골드는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다. 그는 이미 사업안으로 550만 달러를 유치해놓은 상태였다. 유닉스용 애플리케이션 개발과정에서 매우 까다로운 몇몇 작업을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파인골드의 사업안이었다. 그것이 이른바 ‘회귀검사(regression testing)’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코드가 일부 정정될 때마다 전체 프로그램이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는지, 다른 코드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이스라엘군 복무 경험이 소중한 밑천 파인골드는 이스라엘에 있는 두 개발팀 가운데 하나를 란단에게 맡겼다. 그리고 고객중심 관행을 확립했다. 이는 머큐리가 아직 고수하고 있는 원칙이다. 여기서 란단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회사든 가장 뛰어난 인재를 연구 ·개발(R&D) 부서에 배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R&D팀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못 판단하곤 한다. 마케팅 부서에서 아무리 불평해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란단은 R&D 인력을 고객상담 센터로 돌려 고객의 불만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판매가 늘 수 있는지 직접 듣도록 조치했다. 그는 “이제 R&D팀이 가장 주력하는 것은 제품의 상업적 성공이지 최첨단 프로젝트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머큐리는 93년 처음 흑자로 돌아섰다. 유치한 투자금 1,150만 달러 중 절반이 아직 남아 있는 시점이었다. 같은 해 파인골드는 란단을 다시 실리콘밸리로 불러들였다. 란단은 2~3년 실리콘밸리에 머물다 이스라엘로 돌아가리라 생각해 집을 구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6년간 체류하면서 파인골드와 함께 머큐리를 설립했다. 95년 란단은 머큐리 사장 자리에 올라 세계 판매를 총괄했다. 머큐리는 이후 새로운 기술 물결에 민감하게 대응했다. 일례로 전사적 자원관리(ERP) 부문에서 머큐리 제품은 SAP ·피플소프트(PeopleSoft) ·오라클 패키지 프로그램의 표준 테스트 소프트웨어로 인증받았다. 98년 초반에는 밀레니엄 버그 해결 솔루션인 테스트수트2000(TestSuit2000)을 출시했다. 전자상거래 붐이 일자 관련 테스트 제품도 내놓았다. 99년 들어 9개월 만에 웹 기반 비즈니스 규모가 매출의 10%에서 70%로 폭증했다. 97년 7,600만 달러였던 매출이 2000년 3억 달러로 껑충뛰었다. 99년 파인골드가 떠나면서 란단이 CEO 자리를 이어받았다. 란단은 IT 거품 기간 동안 현실을 직시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2000년 9월 머큐리의 시가 총액은 112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는 이런저런 기안이 올라올 때마다 찬물을 끼얹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은 직원들 모임에서 란단이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주가가 많이 올랐으니 스톡옵션만 행사하면 떼돈을 벌 수 있는데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면 머큐리에서 스톡옵션를 행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란단은 졸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는 샌드힐로드에 몰려 있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으리으리한 부자 동네 애서턴이나 우드사이드가 아니라 조금 좋은 동네 로스앨토스에 산다. 아이들은 공립 고등학교에 보내고 있다. 회원제 골프 클럽은 이용하지 않는다. 대신 아침 일찍 마운틴뷰의 한 매립지 위에 건설된 대중 골프장을 이용한다. 란단과 함께 즐겨 라운딩하던 이들은 그가 소프트웨어 업계의 거부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몇 달 뒤에야 알았을 정도다. 거품경제가 한창일 때 란단은 흔치 않은 결정을 내렸다. 수익을 새로운 성장엔진에 재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새로운 성장엔진이란 기업에서 이미 사용 중인 이른바 ‘생산단계’ 애플리케이션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소프트웨어였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Gartner)의 애널리스트 테레사 라노위츠는 당시 결정에 대해 “시장이 다른 새로운 기술인데 잘 되겠느냐”며 “어쨌든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하지만 란단은 “일단 믿어보라”며 “개발과 생산의 간극이 좁혀지고 있다”고 응수했다. 결과는 란단의 완승이었다. 개발비 1억5,000만 달러가 들어간 애플리케이션 성능 모니터링 소프트웨어 토파즈(Topaz)와 액티브와치(ActiveWatch)는 현재 머큐리 제품들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란단은 “거품 속에서 대변화를 모색하는 기업이 거의 없었다”며 “거품 기간이야말로 변화의 최적기”라고 지적했다. 머큐리는 소프트웨어 업계 거인들과 경쟁하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사들였다. 킨타나를 인수한 지 두 달 후 1,500만 달러에 모티브 커뮤니케이션스(Motive Communications)와 기술 라이선스 계약도 체결했다. 애플리케이션 구동속도가 느려지는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하는 기술이었다. 이번 계약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최종 계약이 체결된 것은 목요일이었다. 하지만 다음주 월요일 이스라엘에서 머큐리의 인력이 이미 공수돼 있었다. 고객들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머큐리의 효율성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마스터 카드(Master Card)는 지난 5년간 머큐리의 제품을 많이 이용해왔다. 마스터 카드는 기존의 7개 핵심 애플리케이션을 교체하는 데 1억6,000만 달러나 들였다. 한 번은 하루 최고 결제 건수인 6,500만 건이 몰리는 상황을 설정해 테스트에 들어갔다. 그 결과 머큐리의 새로운 결제 시스템에 아무 문제 없음이 확인됐다. 온라인 꽃배달 업체 1-800-플라워스닷컴(1-800-Flowers.com)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엔조 미칼리(Enzo Micali)는 머큐리 제품으로 하루 10만 회 성과를 측정한다. 그 사이 고객의 각기 다른 행동을 15가지나 파악할 수 있다. 미칼리는 “어디서든 장미를 검색하는 데 몇 초밖에 안 걸린다”고 말했다. 이런 데이터에 따라 1-800-플라워스닷컴의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조정한 결과 지난 5월 ‘어머니 날’ 주문이 97만 건이나 소화됐다. 하드웨어에 대한 특별한 신규 투자 없이 처리 건수를 지난해보다 8% 늘렸던 것이다. 오토원(AutoOne) 보험은 뉴욕주에서 위험수준이 높은 운전자들에게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오토원은 2001년 화이트 마운틴스(White Mountains) 보험 그룹이 설립한 업체다. 오토원은 영업허가를 받기 위해 1월까지 주 당국에 신청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한 해를 공쳐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오토원은 3개월 라이선스 조건에 따라 보험 계약 체결 및 보험설계사 서비스 소프트웨어를 머큐리 제품으로 테스트했다. 당시 오토원은 자체 프로그램이 사용자 수천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무 수정 없이 실시한 첫 시뮬레이션 테스트에서 동시 사용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메모리 활용도, 비효율적인 프로그래밍, 부적절한 네트워크 위상을 추적하는 머큐리 제품으로 3개월간 테스트한 뒤부터 한꺼번에 1,000명이나 수용할 수 있었다. IBM 등 대기업들과 한판 승부 불가피 머큐리의 성공은 칼의 양날과 같다. 머큐리가 계속 연간 15% 이상 성장해 나아간다면 컴퓨터 어소시에이츠갎P갏BM 등이 저가공세나 R&D겦뗑첼?대한 막대한 투자로 압박해올 것이다. IBM은 지난 2월 20억 달러에 머큐리의 경쟁사 래셔널 소프트웨어(Rational Software)를 인수했다. IBM은 애플리케이션 성능 관리 부문에서 머큐리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티볼리(Tivoli)도 이미 인수한 바 있다. IBM 래셔널(IBM Rational)의 마이클 데블린(Michael Develin) 본부장은 “애플리케이션 테스트 분야에 경쟁사보다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란단은 “R&D에 경쟁사보다 2~3배 더 투자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응수했다. 그는 R&D에 연간 3,700만 달러를 투자해왔다. 그는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의 인건비 반 정도로 이스라엘에서 인재를 공수해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란단은 머큐리가 최근 기업 인수에 사용한 2억5,000만 달러도 R&D 비용으로 간주하고 있다. 일부 애널리스트가 제기한 머큐리의 수익문제에 대해 란단은 얼토당토않다며 일축했다.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계상할 경우 파급효과에 대해 검토해보자는 안건이 올해 주총에서 부결됐다. 현재 이사회는 이에 대해 검토 중이다.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계상했다면 머큐리의 올 상반기 실적은 흑자 3,700만 달러가 아니라 적자 3,000만 달러였을 것이다. 머큐리는 2년 전부터 고객에게 소프트웨어 구입보다 1~3년 라이선스 사용을 적극 권하고 있다. 요즘 신규 계약의 40% 정도가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고객은 라이선스 계약으로 소프트웨어 사용영역이 줄어들지만 비용부담은 줄일 수 있다. 한편 머큐리는 라이선스 계약시 선불 사용료(평균 13만 달러)를 모두 받지만 대차대조표에는 이연수익으로 잡힌다. 고객들이 내는 사용료 중 일부가 분기마다 수입항목에 기재되는 것이다. 애널리스트들 가운데는 이런 회계방식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도 있다. 이연수익이 실제 실적을 불투명하게 만들거나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베리사인(VeriSign)과 컴퓨터 어소시에이츠도 라이선스 계약방식을 택했다. 란단은 “머큐리가 증시에 상장된 지 10년이 됐다”며 “현재 월스트리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머큐리의 시장가치는 40억 달러다. 거대 기업에 인수되지 않고 5대 소프트웨어 업체 반열로 올라설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 군출신 CEO들 ▒ 이스라엘 군대는 경영대학원이라도 되는 것 같다. 앳된 10대들이 공군 ·첩보대 ·통신대의 주요 보직에 배치된다. 이들은 제대 후 이스라엘의 역동적인 기술부문으로 진입한다. 아래 소개한 CEO들말고도 군출신 기업가로 체크 포인트(Check Point)의 질 슈웨드(Gil Shwed), 컴버스(Comverse)의 코비 알렉산더(Kobi Alanxander)가 있다. ―Lea Goldman 기자 요시 바르디(Yossi Vardi ·61), 벤처캐피털리스트, 61~64년 공군 복무, 상사로 예편 “재계에 기술과 관리능력을 겸비한 인재가 없다. 군은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재 양성소다. 일류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을 군에서도 배울 수 있다. 군은 젊은이에게 수백만 달러 상당의 프로젝트를 맡기고 주요 사안에 대한 결정권까지 부여한다. 과거 법대에 진학하는 젊은이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어머니들은 법대가 아닌 신생 벤처기업을 권한다.” 로이 지사펠(Roy Zisapel ·32), 래드웨어(Radware) CEO, 89~94년 첩보대 복무 “이스라엘인의 사고방식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르다. 이스라엘은 신생국가다.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인 태도도 취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작은 나라이다 보니 처음부터 글로벌한 사고방식을 갖게 됐다. 내수시장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처음부터 해외 지사를 개설한다. 하지만 R&D 부서는 이스라엘에 유치한다. 이스라엘에 우수한 인재가 많기 때문이다.” 샤브타이 아들레르스베르크(Shabtai Adlersberg ·50), 오디오코즈(Audiocodes) CEO, 74~83년 통신대 복무, 소령 예편 “군대는 온실과 같다. 군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와 바깥 세상에서 직면하는 문제는 다르다. 군에서는 심도 있는 기술교육을 받고 최첨단 장비까지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예산의 제약을 받고 마감시간에 쫓긴다는 점에서 군이나 바깥 세상이나 똑같다.”

2003.12.0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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