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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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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와 카카오뱅크가 일궈낸 브랜드 혁신을 보라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전문가 칼럼

#1 지하철 안에서 대출이 완료됐다. 30대 직장인 김 씨는 퇴근길 스마트폰으로 토스뱅크 앱을 열어 신용대출을 신청했다. 몇 가지 정보를 입력하자 1분 만에 심사 결과가 도착했고, 300만원이 즉시 계좌로 입금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은행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서류를 제출하고 며칠을 기다려야 했던 과정이, 몇 분 만에 지하철 안에서 이뤄졌다.#2 새벽 3시, 어머니는 호주 유학 중인 아들에게 급히 500달러를 송금해야 했다. 토스뱅크의 '평생 무료환전' 서비스로 수수료 걱정 없이 호주 달러를 구매하고 즉시 송금했다. 영업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은행 지점을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호주에서 아들이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벌써 돈이 들어왔어요!"#3 동창회 모임이 끝난 후 총무는 카카오뱅크 모임통장 연결 카드로 식당 계산을 마쳤다. 누군가 "회비 걷느라 고생 많지?"라고 묻자 총무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누가 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고, 모두가 통장 내역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서 투명해. 회비 알림도 자동으로 가니까 총무 맡은 지 2년 됐는데 스트레스가 사라졌어."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고리타분했던 은행 업무가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와 일상에 녹아들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 혁신적 변화의 중심에는 토스와 카카오가 있다. 창립 10년, 출범 8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들은 어떻게 한국 금융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았을까?숫자보다 중요한 소비자 경험의 혁명2024년 말 기준, 토스의 월간활성이용자 수(MAU)는 2480만명, 카카오뱅크는 1800만명, 카카오페이는 2402만명에 달한다. 국내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들 앱을 매달 최소 한 번 이상 이용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불러온 경험의 혁명이다.토스의 출발점은 단순했다. 공급자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는 모든 금융 프로세스를 소비자중심으로 바꾸자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바로 '금융을 쉽고 간편하게'라는 브랜드 이념이다. 2015년 간편송금 앱 토스를 출시하며 당시 금융거래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를 과감히 걷어냈다. 여섯 자리 비밀번호만으로 송금할 수 있는 이 혁신은 금융의 진입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이것이 소비자 중심의 첫 번째 혁신이었다토스의 브랜드 DNA는 '금융의 모든 불편함(페인포인트)을 해결한다'이다. 이것이 토스의 모든 서비스 개발과 마케팅 전략의 근간이다.토스뱅크의 '평생 무료환전'(25년 3월 말부터 700달러 이상은 수수료를 받음) 서비스는 금융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환전 수수료 부과가 당연했던 외환 시장에 수수료 무료 경쟁을 촉발한 것이다. 출시 1년도 안 돼 200만 고객을 확보했다. "왜 환전할 때 수수료를 내야 하나요?"라는 단순한 의문이 시장 판도를 바꾼 셈이다.또한 토스뱅크가 선보인 '함께대출'은 서로 다른 두 은행이 공동으로 자금을 조달해 소비자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상품으로,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기존 은행들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파격적 발상이었다. 카카오의 출발도 다르지 않다. "왜 사용자가 불편을 감수해야하죠?"가 첫 번째 질문이다. 이런 철학이 반영된 것이 카카오 모임통장이다. 카카오뱅크의 '모임통장'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은 모임 문화에 주목한 상품이다. 통장 하나로 회비 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총무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미 85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대표 서비스로 성장했다. 14~19세 Z세대를 위한 카카오뱅크의 '미니뱅킹'도 빼놓을 수 없다. 통장 없이도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 '미래의 고객'을 선점했다. 엄마 카드를 쓰던 10대들에게 '내 카드'라는 자부심을 심어준 건 물론이고 미래고객을 묶어두는 록인(rock-in)효과를 톡톡히 보고있다.패러다임을 바꾼 조직과 문화토스와 카카오 금융이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존 금융권과는 다른 조직 문화가 있다. 가장 보수적인 은행산업에서 후발 주자지만 변화를 만드는 '메기'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익숙한 '또 하나의 은행'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일례로 토스뱅크는 '도메인-트라이브-스쿼드'라는 조직 구성을 통해 각 영역이 온전한 책임을 갖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은행은 기획부서와 개발부서가 분리돼 있지만, 토스뱅크는 하나의 스쿼드에 ▲상품 전문가 ▲디자이너 ▲개발자 ▲데이터분석가가 모두 속해 있다. 이런 구조가 빠른 의사결정과 고객 중심의 서비스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이들의 고민은 "은행은 원래 이렇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보다 '고객입장에서 불필요한 이 일을 아예 없앨 수는 없을까?'라는 근본적인 생각을 했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토스와 카카오 금융의 성공은 100년 이상을 이어온 공급자 중심의 시장을 단기간에 소비자 중심으로 만든 '브랜드 혁신'(Brand Innovation)의 사례다. 이들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금융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과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브랜드 경험 혁신'을 일궈냈다.현재 두 기업의 자산 규모는 시중 대형 은행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고객 접점과 디지털 혁신 역량에서는 이미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금융업의 미래를 좌우할 MZ세대와 Z세대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어, 미래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평가다.토스는 2013년 창업 이후 금융 규제 속에서도 혁신적인 간편송금 서비스로 시장에 도전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IT와 금융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가운데, 토스는 단순한 금융 서비스를 넘어 생활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꿈꾸고 있다.카카오페이는 2025년 핵심 전략으로 데이터 수익화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최다 수준의 마이데이터와 자사 보유 데이터를 활용해 생성형 인공지능(AI)를 결합한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개인화된 금융 어드바이저로서의 입지를 굳히겠다는 전략은 금융의 미래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그널이다.이들 두 금융브랜드의 디지털 금융 혁신 사례는 글로벌 금융업계가 주목하는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이들이 추구하는 '불가능을 삭제한 사용자 경험(UX)'은 금융을 넘어 다양한 산업에 영감을 주고 있다. 토스와 카카오 금융, 이들의 행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2025.04.26 10:01

4분 소요
타임트리 출시 10년 맞이, 공유 캘린더가 바꾸는 일상의 풍경

산업 일반

디지털 시대의 소통 방식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가운데, 일정 공유 서비스 타임트리(TimeTree)가 출시 10주년을 맞이했다. 일본 지역에서의 타임트리 앱 내에서는 10주년을 기념하여 앱 아이콘 리뉴얼 및 사용자가 각각의 축하에 사용할 수 있는 스티커가 추가된다. 타임트리는 2015년 첫 선을 보인 이후 벽걸이 캘린더의 디지털 진화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6천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글로벌 서비스로 자리매김한 타임트리의 성공은 그저 기능적 우수성이 아닌 '공유'와 '소통'이라는 가치에 대한 재해석에서 비롯됐다.즉 타임트리의 혁신은 기존 캘린더 앱이 놓친 사각지대에서 시작되었다. 개인 일정 관리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 캘린더와 달리 타임트리는 '함께 쓰는 캘린더'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흔한 기능 추가가 아닌 일정 관리의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가족 간 일정 조율, 프로젝트 팀 업무 스케줄링, 팬 커뮤니티, 이벤트 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타임트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사람들의 소통을 더욱 원활하게 만들었다.특히 주목할 점은 타임트리가 일정 관리 도구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직관적인 UX/UI와 안정적인 서비스 운영을 바탕으로 일본, 북미, 유럽, 한국 등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사용자층을 확보했다. 이는 앱으로써의 성공을 넘어 사람들의 일상이 디지털 환경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또한 타임트리의 10년은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의 역사였다. 2024년 10월 기준 6천만 명을 돌파한 등록 사용자 수는 이 서비스가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견고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공개 캘린더 기능을 통해 기업, 단체, 아티스트 등과 협업하며 공식 일정 공유 플랫폼으로 활용되는 점은 타임트리가 단순한 앱 서비스를 넘어 하나의 소통 인프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타임트리는 앞으로의 10년,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AI 및 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일정 관리, 비즈니스 및 커뮤니티를 위한 확장된 서비스 등 큰 새로운 변화가 고려되고 있다. 이는 캘린더라는 일상적 도구를 통해 사람과 시간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려는 비전을 보여준다.타임트리에게 10주년은 정기적 기념일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소통 방식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되돌아보는 시점이다. '함께'라는 가치를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해낸 타임트리의 혁신은 앞으로도 우리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시간이라는 가장 소중한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그 가치를 타인과 나눌 수 있게 한 타임트리의 여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5.03.24 15:00

2분 소요
끝없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혼란 속 핵심은 ‘성장 동력’

산업 일반

고라아연과 영풍·사모펀드(PEF) 운용사 MBK의 ‘경영권 싸움’에 한국 자본시장이 들썩였다. 분쟁의 중심 고려아연의 주가는 연일 롤러코스터를 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일 오전 9시 29분 기준 고려아연의 시가총액은 44조5212억원까지 올라, 시가총액 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시가총액 42조8256억원 현대자동차를 넘어선 수치다.영풍·MBK ‘장군’, 고려아연 ‘멍군’오르내리는 주가만큼, 지분 확보를 위한 양측의 싸움도 치열했다. 시작은 영풍·MBK다. 영풍·MBK 측은 지난 9월 13일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를 공식화했다. 초기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66만원이었으나, 이후 9월 26일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75만원으로 인상하는 등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영풍·MBK가 던진 승부수인 셈이다.고려아연도 방어에 나섰다. 지난 10월 2일 고려아연은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매입 계획을 결의했다고 공시했다. 베인 캐피탈과 함께 주당 83만원에 자사주 공개 매수를 추진한 것. 이는 당시 영풍·MBK 측의 공개매수가 보다 8만원 높은 금액이었다. 고려아연이 움직이자, 영풍·MBK도 쫓아왔다. 영풍·MBK 측도 지난 10월 4일 공개매수 가격을 83만원으로 인상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다시금 매입가격 인상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당시 고려아연이 택한 공개매수가는 89만원이었다. 고려아연과 영풍·MBK의 과감한 배팅으로 인해 양측의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쩐의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결국 금융감독원까지 나섰다. 지난 10월 8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양측의 분쟁이 과열됨에 따라 공개매수와 관련된 불공정 거래 관련 조사 착수를 지시했다. 당시 이 원장은 투자자들의 오해를 초래할 수 있는 풍문과 주가 형성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 등에 대한 단속을 주문했다.그럼에도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고려아연 공개매수 종료 후, 유통물량이 급감함에 따라 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또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 될것이라는 투자자들의 기대도 맞물려 비정상적 주가 변동도 발생했다.당초 업계는 자사주 공개매수 종료 전일인 10월 22일 주가 안정을 예상했다. 다만, 해당 날짜에도 주가는 하락하지 않았다. 여전히 공개매수가액인 89만원 수준을 유지했다. 이후 10월 29일 고려아연의 주가는 154만3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진화에 나선건 고려아연이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지난 10월 30일 유동성 제약 및 주가 급등 문제 해결을 위해 신주 발행을 결정했다. 신주 발행 규모는 발행 주식의 20%에 해당하는 373만2650주다. 주당 가격은 67만원으로, 일반 공모 형태였다.다만, 시장과 일부 주주들은 일반 공모로 인한 지분 희석으로 주주가치 하락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지난 11월 13일 이사회 결의로 일반공모 계획을 철회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경쟁력 지표 ‘성장 동력’ 살펴보니고라아연과 영풍·MBK의 경영권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혼란스러운 주가와 양측의 법적 공방 속에서도 핵심은 결국 ‘성장동력’이다. 고려아연과 영풍·MBK의 성장동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는 ‘미래 신사업’과 ‘실적’이 대표적이다.먼저 고려아연이다. 고려아연의 성장동력 핵심은 ‘트라이카 드라이브’다. 트로이카 드라이브의 핵심은 3가지다. 바로 ▲신재생에너지·수소 ▲이차전지▲자원순환 등이다. 고려아연은 이 3가지를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고 투자를 진행 중이다.친환경을 겨냥한 고려아연의 선택은 적중한 모양새다. 고려아연의 올해 3분기 동(Copper) 매출액은 지난해 보다 37%(280억원) 증가했다. 올해 3분기 총 8332톤의 동을 판매해 약 100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고려아연은 동 정광 구매 원료가 아닌 아연과 연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과 폐전자제품의 인쇄회로기판(PCB) 등으로 동을 생산한다. 이러한 이유로 고려아연의 동은 지속가능경영(ESG)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영풍이 추진 중인 신사업은 당장은 없다. 영풍은 현재 기존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핵심 사업 중 하나로 평가받는 영풍 제련소가 위태롭다는 점이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연간 아연 생산량이 40만톤(t)에 달해 단일 제련소 중 세계 4위급인 거대 제련소다.지난 10월 24일 장형진 영풍 고문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종합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바 있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카드뮴 오염수를 낙동강에 불법으로 배출하다 적발되거나 황산 유출 등 각종 환경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또 1997년 이후 석포제련소에서 산업재해로 노동자 15명이 사망했으며, 최근 9개월간 노동자 3명이 숨져 박영민 영풍 석포제련소 대표 등이 구속된 바 있다.가동률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연간 공장 평균 가동률은 100%를 유지중이다. 다만, 영풍의 가동률은 지난 5년간 80% 안팎을 유지하다, 올해 상반기 58.4%까지 급락했다. 실적도 극명하게 갈린다. 고려아연의 연결기준 연간 매출은 지난 5년간 6조원 대에서 1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영업이익률도 10% 안팎을 기록 중이다. 이에 반해 영풍은 하락세다. 영풍은 지난해 약 1700억원에 달하는 영업 적자를 냈다. 별도 기준으로는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사모펀드 MBK의 ‘경영 능력’은 MBK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나온다. MBK는 고려아연 인수 명분으로 ‘기업 구조 개선’을 내세웠는데, 과거 인수 기업들의 실적 악화 및 노사 갈등 문제가 수면 위로 다시금 드러나면서다.먼저 롯데카드다. 롯데카드는 지난 2019년 MBK에 인수됐다. 올해 상반기 기준 롯데카드의 순이익은 628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3060억원 대비 79.5% 감소한 수치다. 홈플러스도 문제다. 앞서 MBK는 지난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약 7조원에 달한다. 인수 이후 8년만에 약 1만명 가량의 직원이 홈플러스를 떠났다.이는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홈플러스의 영업손실은 1994억원이다. 지난 2021년의 경우 1335억원, 이후 2022년에는 260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최근 3년간 총 593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셈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MBK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 분석결과에 따르면 MBK파트너스 인수 기업들의 ROE는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아연의 경우 지난 2022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대표이사 취임 후 ROE는 8.1%에서 2년후 8.6%로 상승세다. 또, 매출액 증가율에서도 최 회장 취임 첫해 7조5819억원에서 지난해 11조2193억원으로 48.0% 상승했다.

2024.12.20 08:00

4분 소요
“공개매수가 상향 없다더니” MBK 말 바꾸기 우려하는 이유

산업 일반

“공개매수가를 올릴 계획이 없다더니 며칠 후 상향했다. 중국에 안 판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나?” 글로벌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놓고 영풍·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현 경영진 간의 분쟁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등 해외 매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영풍·MBK는 경영권을 확보해도 “중국에 안 판다”고 말하고 있지만, 고려아연 측은 MBK의 ‘공개 매수가 말 바꾸기’와 과거 행보를 보면 믿을 수 없다며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강성두 영풍 사장은 지난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MBK와 영풍이 공개매수에 성공할 경우 중국 등 해외에 고려아연을 매각할 것’이라는 일부 전망에 대해 “저와 MBK 김광일 부회장이 회사에 존재하는 한 고려아연을 중국에 안 판다. 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강 사장은 최근 중국 자본 논란에 이어 국가기간산업 고려아연과 보유한 핵심기술 등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적극 해명한 것이다. 강 사장은 또 고려아연 직원들에 대한 인위적인 구조조정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MBK도 앞서 지난 24일 “핵심기술이 유출되고, 심지어 인수 후에는 중국에 매각될 것 같이 말하고 있다”며 “근거 없는 억측이며,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영풍과 MBK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가시지 않는 것은 “MBK가 운영하고 있는 블라인드 펀드 대부분에 상당수가 중국계 자본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고려아연 측의 주장이다. 이번 고려아연 인수전에 사용된 6호 펀드에서 일부 중국 자금이 포함돼 있다. MBK 측은 다른 나라 자금 등 펀드 구성이 다양하다고 밝혔지만, 우려는 여전하다.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회사를 중국에 매각하지 않겠다는 것을) 절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고려아연이 중국에 매각될 경우 그 파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은 핵심 소재와 희소금속인 아연과 연·금·은·동·인듐 등을 생산하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 중국 중심의 광물과 에너지 시장에서 자유 진영의 공급 및 가격 안정에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뿐만 아니다. 고려아연의 미래성장동력 중 하나인 이차 전지 분야의 경우 탈중국 글로벌 공급망 구축의 핵심적인 위치에서 이탈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고려아연이 투입한 수많은 투자금도 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해외 사업 곳곳에서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다. 국내 자본과 기술력으로 성장한 고려아연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수혜기업에서 제재기업의 중심에 설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에너지 안보 분야 싱크탱크로 미국 에너지 관련 정책을 건의하는 SAFE(Securing America’s Future Energy)가 영풍·MBK의 고려아연 공개매수 시도를 ‘적대적 인수’로 규정하고, 이번 사태로 인해 글로벌 핵심 광물 공급망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우려가 불식되지 않는 데에는 MBK의 말 바꾸기 행태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당초 MBK 측은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가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지만 곧바로 말을 뒤집었다. 김광일 MBK 부회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매수가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26일 기존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상향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에 맞서 주당 2만원에 공개매수할 때도 인상 가능성을 부인했으나 결국 인상한 바 있다. 다른 기업의 인수 사례에서도 말 바꾸기가 등장한다.MBK는 기업 인수합병을 시도할 당시에는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지만 홈플러스를 비롯해 ING생명 등 과거 MBK의 ‘적대적 M&A’ 등을 통해 인수한 기업들에서 사업축소와 자산매각, 사업분할매각 등을 통해 많은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바 있다. 앞서 MBK가 인수한 ING생명은 인수 6개월만에 임원 32명 중 18명이 회사를 떠나고, 일반직원의 30%에 달하는 270명 감축을 목표로 희망퇴직을 받은 바 있다. 또 우량자산 매각을 넘어 홈플러스 분할 매각에 따른 노조와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MBK는 2015년 약 7조원에 홈플러스를 인수 후 인위적인 인력감축, 구조조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경영권 인수 이후 2015년 2만5000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2만명으로 5000명 가량 줄어들었다. 홈플러스 노조는 “지금까지 사측의 결정으로 안산선부점과 동청주점을 포함해 모두 11개 점포가 폐점이나 매각을 앞두고 있다”며 “오는 2027년과 2028년에는 각각 8개 점포의 임대 계약기간이 종료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이번 경영권 분쟁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민병덕·박희승·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BHC·ING생명·한국타이어 등에 이어 이번에는 고려아연에 대해 ‘약탈적 M&A’를 시도하고 있다”며 “투기자본 이익에만 충실한 채 기업과 지역, 근로자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행태를 강하게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2024.09.29 07:00

4분 소요
베를린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의 허브가 된 이유는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Poor but sexy(가난하지만 섹시하다).” 독일 수도 베를린이 내세운 구호이다. 아직 이보다 매력적인 도시 슬로건을 본 적이 없다. 내용도 인상적일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어서다.베를린은 유럽을 대표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이다. 2022년 스타트업 히트맵 서베이(Startup Heatmap Survey)가 발간한 보고서에서 베를린은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영국 런던 등을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선진화된 스타트업 생태계로 선정됐다. 베를린이 처음부터 글로벌 무대에서 스타트업 생태계 모범 도시로 이름을 드높인 것은 아니다. 통일 독일 이전 베를린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경제 선진국들과 지리상 분리되어 있어서 경제 발전이 더딘 데다, 대표적인 슬럼 지역이었다. 경제 성장에 대한 희망이 없던 베를린은 어떻게 변화의 물꼬를 텄을까. 변화의 마중물을 부은 이들은 다름 아닌 창업자와 스타트업이었다.베를린 4T: technology·talent·tolerance·techno베를린이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로 발돋움한 때는 밀레니엄 이후 21세기이다. 서독과 동독이 정식으로 통일한 1990년 전후 베를린은 낙후된 도시였다. 독일 수도였지만 뮌헨(München), 프랑크푸르트(Frankfurt)와 같은 다른 독일 대도시와 비교하면 경제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치안까지 불안해 독일인들은 베를린에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신 이민자와 성 소수자 같은 이방인들이 베를린으로 몰려들었다. 생활 물가가 낮았고 새로운 성장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유하지 않았지만 개성만은 뚜렷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이면서 도시에는 다른 것을 포용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진취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독일인들이 베를린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베를린은 다양한 문화와 기술 혁신이 공존하는 메가시티로 차츰 변모했다. 베를린이 가진 기술과 문화의 혼종을 대표하는 상징이 테크노(techno) 음악이다. 오늘날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으로 잘 알려진 테크노 음악은 베를린에서 탄생했다. 이는 다른 것을 차별하지 않는 베를린의 포용적인 문화를 상징한다. 밀레니엄 전후 급성장한 IT 기업과 스타트업은 베를린 특유의 개방된 환경을 선호했다. 특히 베를린에서 창업한 로켓인터넷(Rocket Internet)이 거둔 대성공은 베를린을 유럽을 대표하는 스타트업 도시로 알린 계기였다. 로켓인터넷은 북미 지역에서 급성장하는 스타트업 사업 모델을 재빠르게 복제해서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혁신적인 스타트업과 손잡고 성장하는 베를린은 이른바 창조 계급(creative class)이 가득한 도시로 평가받는다. 창조 계급은 세계적인 도시 연구학자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가 제시한 개념으로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시민 집단을 의미한다. 이들은 도시와 지역 성장을 이끄는 핵심 집단이다. 그는 창조 계급 형성에 미치는 여러 변수를 제시하면서, 이들 변수를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으로 분류하였다. 이른바 3T(technology·talent·tolerance) 이론이다. 오늘날 베를린은 3T 측면에서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베를린은 고등 교육 과정을 이수한 수준 높은 인재가 많다. 이들의 비율은 독일 평균 이상이다. IT 인재들이 많아 관계 인력 수급이 편리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또한 베를린 시민의 약 20%가 외국인이고, 스타트업 내 외국인 근로자 비율은 40%가 넘는다. 국적도 매우 다양하다. 스타트업에서 활동하는 창조 계급들은 베를린을 글로벌 스타트업 도시로 이끈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를린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 유치에 기울이는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베를린에서 한국과 독일의 창업 생태계를 연결하는 123 팩토리(123 Factory) 이은서 대표는 “베를린은 국제적이고 개방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외국 인재들에게 행정적으로도 매우 열려 있는 편이라, 최근에는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개발자들을 활발히 고용한다.”라며 베를린의 개방적인 문화를 강조했다. 스타트업과 함께 더는 가난하지 않은 베를린지난 6월에 열린 국내 스타트업 행사 넥스트라이즈(NextRise)에서는 베를린 스타트업 생태계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베를린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주도하는 아시아베를린(AsiaBerlin)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와 연결할 기회를 모색하고자 한국을 직접 방문해 준비한 자리였다. 아시아베를린은 아시아와 베를린 스타트업 생태계 교류 목적으로 설립된 베를린 산하 비정부기구(NGO)로 베를린 정부를 대신해 일하고 있다. 이들은 베를린의 공식 경제 개발 기관인 베를린 파트너(Berlin Partner)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연결하고 있다.그들이 보여준 베를린 스타트업 생태계 성과는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베를린에는 6천 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활동하고 있고, 현재까지 25개 유니콘 스타트업들이 배출되었다. 이는 2024년 기준 국내 총 유니콘 기업(22개)보다 많다. 또한 베를린에는 수백 명의 초기 투자자들과 200여 개 벤처 투자사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는 한 도시가 이룬 스타트업 생태계 성과가 대한민국이 거둔 업적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아시아베를린이 진행한 마지막 발표 자료 한켠에 흥미로운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We are poor but sexy except that we are not poor anymore(우리는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그런데 사실 이제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베를린의 슬로건을 유머 있게 바꾼 문장 속에는 지역 스타트업에 대한 그들의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베를린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중심으로 도시 발전을 이룩해 왔다. 한 세대라는 짧은 기간에 의미 있는 과정을 거쳤고,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많은 국내 도시들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향하고 있다. 베를린 사례에서 참고할 유용한 교훈이 적지 않아 보인다.

2024.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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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 10년… 피크 코리아와  슈퍼 에이지 [스페셜리스트 뷰]

증권 일반

한국 경제에 대한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2013년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GI)가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로 묘사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왔던 사례가 기억난다. 실제로 2013년 이후 수년간 한국 경제는 대중국 수출 부진으로 성장률 둔화와 박스피(박스권+코스피)라는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2013년 뜨거운 물 속의 개구리로 지칭되던 한국 경제가 이제는 ‘피크 재팬’과 ‘피크 차이나’에 이어 ‘피크 코리아’(Peak Korea·한국 경제 성장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현상)를 우려해야 하는 국면까지 이르렀다. ‘파이낸셜 타임즈’(FT)마저도 ‘한강의 기적은 끝나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 경제가 직면해 있는 구조적 리스크를 다룬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 경제의 모습이 역동경제에서 피크 코리아로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물론 피크 코리아 리스크는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수년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이 해소되기보다 오히려 누적된 결과물이다.왜 이 시점에 피크 코리아를 고민할까가장 먼저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특징인 수출주도 성장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는 글로벌 저성장 고착화도 있지만 이전과 달리 글로벌 내 다양한 갈등이 잇따르고 있음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중 패권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및 자국 우선주의, 부의 불평등 심화에 따른 사회갈등 등 지구촌에 다양한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 및 산업은 여타 국가보다 글로벌 경제가 안고 있는 리스크에 빠르고 광범위하게 노출되는 구조라는 것이 큰 고민거리다.글로벌 수요와 투자의 구조적 변환도 우리에게는 악재다. 국내 수출과 산업이 반도체 등 정보기술(IT)업종에 강점을 지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타 중후장대 산업이 국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주요국 증시가 인공지능(AI) 사이클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 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한국 증시는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답답한 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그 이유 역시 글로벌 산업 패러다임에 한국 경제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피크 차이나도 한국 경제에 악재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는 있지만 단기적으로 탈중국은 쉽지 않은 과제다. 중국 수출 감소분을 미국과 유럽연합(EU) 수출로 메우기가 벅차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과 한국 산업간 관계 변화 역시 한국 경제의 저성장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과 중국이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 즉 경쟁관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대외적 요인과 더불어 전 세계 1위 수준의 대내 리스크도 피크 코리아를 압박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 성큼 다가선 인구사이클, 한계에 이르고 있는 부채 리스크, 사회적 갈등 심화와 함께 취약한 내수 기반 등은 피크 코리아 시기를 앞당기는 요인이다. 주요국 정책기조 전환에서 소외된 한국피크 코리아 리스크와 관련해 최근 주목되는 이슈는 미국 등 주요국의 경제 정책 기조 전환에 대한 한국의 더딘 그리고 미온적인 대응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주요국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라는 양 축의 통화정책과 각종 재정 부양 정책을 동원해 총수요를 자극하면서 그나마 저성장 경제를 지탱해왔다. 그러나 총수요 정책은 한계에 부딪혔다. 돈 풀기 정책은 모든 경제주체에 막대한 부채를 유발시켰고 고금리 현상마저 나타나면서 한계에 이르렀다. 그동안 초완화 정책의 마지막 보루였던 일본마저도 긴축으로 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서 총수요 정책의 종료가 확인되고 있다.이에 미국 등 주요국은 생산능력 확대와 더불어 생산성을 개선할 수 있는 생산요소(노동·자본·기술) 향상을 위한 공급 혹은 산업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공급 정책 강화 배경에는 기술혁신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미중 패권 경쟁 격화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리쇼오링(Reshoring·해외 생산시설을 자국 내로 이동하는 현상), 니어쇼오링(Nearshoring·기업의 생산이나 서비스 업무를 본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로 이전하는 전략) 등에 기반한 자국 산업 육성 정책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동시에 기술혁신 사이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재정 정책 초점을 총수요 확대보다 제조업과 같은 산업 육성 등 공급 확대에 두기 시작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일본 경제와 정책 역시 미국과 맥을 같이한다. 공급경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기시다 내각의 신자본주의 5대 중점 전략인 ▲인재 ▲과학기술 및 혁신산업 ▲스타트업 ▲녹색전환 ▲디지털전환 역시 생산요소의 질적 및 양적확대라는 공급경제 정책이 기저에 깔려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은 미국과 분업적 산업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 주도의 공급망 정책에 편승하고 있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른바 시코노믹스(시진핑+이코노믹스) 중심에는 국가 자본주의가 있다. 해석이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생산요소, 즉 노동·자본 및 토지 그리고 기술(데이터)을 국가 통제 하에 두고 기술혁신 관련 공급 능력과 생산요소 향상을 중장기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기조로 해석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실행전략이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고품질발전이다.문제는 한국 경제 및 산업의 경우 2010년대에 들어 공급능력 확대 정책보다는 글로벌 총수요에 기반한 수출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전략을 유지하면서 최근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 정책 패러다임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제조업의 위기이자 피크 코리아 리스크를 증폭시키고 있다. 차이나 쇼크 가시화논란이 있겠지만 중국 경제의 급격한 성장은 한국 경제에 그 동안 실보다 득이 돼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중국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소위 차이나 쇼크를 한국 경제가 우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돌변하고 있다. 우선, 흔들린 한중 교역구조가 다시 복원되기 쉽지 않다. 중국이 안고 있는 각종 구조적 리스크로 중국 경제의 빠른 정상화를 바라기 어렵다는 점도 있지만 미국의 ‘대중 칩(Chip·반도체) 포위망’ 강화 움직임은 가뜩이나 꼬여 있는 한중 무역을 더욱 어렵게 할 공산이 크다. 한중 교역이 자칫 피크 코리아에 큰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중국 내 한국산 제품의 수요 둔화는 교역구조 측면에서 한중간 분업구조 변화에 기인한다. 중간재와 자본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은 이를 최종 완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하던 구조가 약화됐다. 이를 반영하는 것이 대중국 중간재와 자본재 무역수지다. 대중국 중간재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큰 폭으로 축소됐고, 자본재 무역수지는 이미 적자로 전환됐다. 반면 한국의 중국산 중간재와 자본재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산 제품이 한국 제품과 경합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한중간 산업구조가 보완적 관계에서 경쟁관계로 전환되면서 한국 경제가 받게 될 충격이 더욱 커질 것 이다.중국 이커머스 업체의 한국 시장 침투도 심상치 않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가 지난해부터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이후 시장 점유율이 무섭게 상승 중이다. 알리익스프레스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자 수는 올해 2월 기준 818만명으로 지난해 2월 대비 약 130% 증가했다. 지난해 7월 한국에 진출한 테무 앱 사용자수는 1년도 안돼 581만명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초저가 공세가 한국 내수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음은 한국 수출 기업은 물론 내수 기업에도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소비가 주로 이커머스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이커머스 업체의 한국 침투가 또 다른 차이나 쇼크를 촉발할 전망이다. 중국 성장률 둔화 등으로 한국 수출 및 산업이 차이나 쇼크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산업 발전 혹은 경쟁력 강화가 한국 경제에 제2의 차이나 쇼크를 유발할 위험은 이미 현실화됐다. 너무 빠른 인구절벽 리스크…곧 내수절벽피크 코리아 리스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근거가 극단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인구 사이클이다. 한국 인구 사이클에 대한 비관론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한국 인구절벽 시 나리오가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주요 선진국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이 되는 현상인 ‘초고령화’ 시대, 즉 슈퍼 에이지(Super Age)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장래 한국 인구사이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 한국 인구 비관론을 얘기할 때 단골 메뉴는 고령화 속도지만 이보다 인구가 감소하는 인구절벽과 관련해 주목할 데이터는 신생아 수다. 결론적으로 신생아가 태어나지 않고 있다. 2022년 출생아 수는 25만명에 불과하다. 1970년 신생아 100만명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더욱이 신생아 수 감소세가 2010년대 중반부터 가파르다. 2016년 40만명이었던 신생아 수는 3년 만인 2019년 30만명으로 10만명 줄어들었다. 또 3년 만에 25만명(2022년)으로 감소했다. 신생아 절벽 사이클은 이미 시작됐다. 이처럼 한국의 초저출산이 유례없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한국 인구 감소 전망은 시나리오로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한국 인구고령화의 주요 요인인 초저출산 현상의 배경에는 각종 경제적·사회적 불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득(고용) 불안, 높은 주택가격에 따른 주거 불안, 양육환경과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가 결혼·출산 연기 및 포기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 우스갯소리지만 이전 세대에 자녀는 필수 소비재였지만 현 세대에게는 사치재라는 말이 있다. 자녀 출생과 양육에 드는 과도한 경제 그리고 인적 비용이 자녀를 기피하게 하는 안타까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2018년을 기점으로 이미 고령사회의 문턱을 넘어섰고 이후 7년 만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이다.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46년께 한국의 고령인구 비율은 일본마저 앞서게 된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의 인구 고령화 속도라는 점에서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크고 예측도 쉽지 않다. 참고로 고령사회는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을, 초고령사회는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을 차지할 때 이르는 용어다.인구 고령화 리스크를 얘기할 때 일본의 사례를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다. 일본 장기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이 고령사회에 진입한 것도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이다. 인구 고령화가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따른 성장률 둔화와 더불어 주택가격 등 자산가격 하락 그리고 정부 부채 급등이 일본 경제 잃어버린 30년의 결정적 이유로 작용한 것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독일 등 유럽국가의 저성장 추세와 정부 부채 급증 역시 고령화 추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본의 사례를 비춰볼 때 한국 경제 역시 인구 사이클에 따른 성장률 둔화 압력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고령화 수준보다 더 큰 문제는 고령화 속도다. 일본의 경우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데 15년 정도가 소요됐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동 기간이 7년에 불과할 전망이다. 당장 내년인 2025년에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더욱이 향후 5년마다 한국의 65세 이상 비중은 5%씩 증가하는 유례를 찾기 힘든 고령화 속도를 기록할 것이 자명하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잠재성장률에 대한 노동투입의 기여도가 2011~2015년 0.7%포인트(p)에서 2016~2020년에는 0.2%p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2021~2022년에는 -0.2%p까지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구 사이클이 성장에 기여하기보다 성장을 잠식하는 생산요소가 된 것이다.물론 일본 고령화 사례를 한국에 직접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일부 한계도 있다. 일본 경제 구조는 기본적으로 내수 중심이지만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적 구조이다. 인구에 큰 영향을 받는 내수보다 해외 수요에 더욱 큰 영향을 받는 구조가 인구 고령화 충격을 일부 상쇄시켜 줄 여지는 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가 이전과 달리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고 공급망 이분화 그리고 중국의 추격 등 한국을 둘러싼 수출 환경은 우호적이지 못하다. 결국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 수출 둔화 리스크와 인구 충격에 따른 노동기여도 추락은 시간이 갈수록 피크 코리아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K-부채 리스크도 피크 코리아 위험 높여 2000년 이후 부채 사이클을 보면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기간이 3차 가계 부채 급증 국면이다. 부채를 좋은 부채와 나쁜 부채로 구분하기 어렵지만 2000년 이후 K-부채 사이클은 수출경기와 부동산 가격이 운 좋게 맞으면서 사후적 평가지만 좋은 부채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그러나 K-부채 사이클이 한계를 맞이하고 있고 과거와 달리 경제와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더 이상 조력자 역할보다 악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K-부채 사이클의 좋은 측면은 사라지고 나쁜 부채 리스크만 부각되는 현실은 피크 코리아 리스크마저도 덩달아 높이고 있다. K-가계 부채의 청구서를 우려하는 첫 번째 이유는 가계부채 규모이다. 한국 가계 부채 순위가 빠르게 상승 중이다. 2010년 주요 43개국 중 14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던 K-가계 부채 순위가 2020년에는 7번째를 기록했다. 그리고 2022년 4분기 기준으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5.5%로 스위스(128.3%),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K-가계 부채의 또 다른 위험은 물가와 금리의 패러다임 변화에서도 감지된다. ‘중물가-중금리’는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무엇보다 중금리 장기화로 인한 경기침체가 고용절벽과 자산가격 폭락으로 이어져 부채 리스크 현실화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피크 재팬 사례에서도 알고 있듯이 피크 재팬은 부채 버블에서 비롯됐고, 현재 진행형인 피크 차이나도 부동산 부채에서 촉발됐다. 그리고 피크 USA는 아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역시 서브프라임발 가계 부채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피크 차이나를 제외하고 부채 리스크의 도화선은 영원할 것 같았던 저금리 환경 파괴에서 비롯됐다. 한국 정책당국도 부채를 통한 부양에 더 이상 나설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오히려 K-가계 부채 연착륙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강화될 것이다. 다행히 가계 부채 관리 혹은 연착륙에 성공한다면 피크 코리아를 피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를 장담하기 어렵다. 오히려 과도한 부채사이클의 종착역은 자산가격 급락을 동반한 부채사이클 경착륙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중물가-중금리 패러다임 지속은 K-가계 부채의 경착륙과 이에 동반한 피크 코리아 위험을 높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사회적 갈등 비용도 무시하면 안 된다한국 경제와 사회가 안고 있는,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피크 코리아 요소는 ‘갈등’이다. 체감적으로 한국 내 갈등 정도는 근래 들어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이념·젠더·세대·소득·교육 등 사회 각 부문에 걸쳐 갈등이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이 갈등 문제에 있어 전 세계 상위 수준에 위치해 있음은 각종 자료와 지표를 통해 설명되고 있다.2021년 영국 킹스컬리지가 발간한 보고서(Cultural wars around the world: how countries perceive divisions, 2021)에 따르면 한국은 12가지 갈등 항목 중에 7개 부문에서 1등을 차지했다. 사실상 조사대상 17개국 중 한국 국민들이 느끼는 갈등 정도가 가장 심한 것이다. 갈등지수뿐만 아니라 체감적으로 갈등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으며 이러한 갈등을 부채질하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은 여타 선진국보다 소득불균형이 심각한 국가다. 2021년 OECD의 소득불균형 지수를 보면 한국이 OECD 국가 중 4번째로 높은 소득불균형 지수를 보이고 있다. 부의 불평등 혹은 소득불균형도 문제지만 부가 세습되면서 소득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해 1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물려준 피상속인이 4년 새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간 부의 격차 그리고 일자리 혹은 고용갈등도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갈등이다. 갈등 해소를 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허비하면서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자원 배분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의대 진학이 어느 학과 진학보다 각광받고 있는 현상은 사회갈등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다. 사회갈등지수가 전 세계 상위권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다면 제 발로 피크 코리아 국면에 진입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전 세계 주요국은 저성장 국면에서 좀 더 큰 성장의 파이를 차지하는 동시에 공통 문제인 고령화·부채 리스크 등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생산요소(노동·자본·기술) 향상과 관련한 무한 정책 경쟁에 돌입했다. 그 중심에는 기술혁신 사이클이 있지만 승자 독식의 게임 법칙이 지배하는 기술혁신 특성상 글로벌 기업간 및 국가간 치열한 생존게임은 격화할 것이 분명하다. 만약 생산요소 우위 경쟁과 생존게임에서 한국이 지금처럼 밀려난다면 피크 코리아를 정말 피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는 여타 주요국과는 달리 구조적 리스크로 인한 내수 절벽이라는 잠재적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경제, 피크 코리아의 돌파구이자 장애물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디지털 관련 인프라, IT 산업 및 디지털 문화에 쉽게 순응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은 디지털 경제 시대의 생산요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잠재력으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팬데믹 이후 급속히 확산하는 디지털 패러다임 전환 국면에서 한국은 그래도 주요국과 어느 정도 보폭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국가별 혁신 순위에서 한국이 밀려나고 있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미국과 비교해 한국의 디지털 관련 투자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미국은 4차 산업혁명 붐이 시작된 2010년 중후반부터 관련 투자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미국 경제의 강한 성장률을 지지해주었다. GDP 대비 설비투자(유형자산 투자)와 지식재산생산물 투자(무형자산 투자)도 이미 역전됐다. 미국 내 모든 투자가 무형자산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불안하다. 설비투자 부진 속에 딱히 지식재산생산물투자가 강한 모멘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AI 등 디지털 산업이 자칫 잘못하면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이 아닌 갑자기 뜨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가 될 처지에 직면해 있다.결론적으로 피크 코리아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경제 주체들의 총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산업 및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 변화 시대에서 확고한 입지를 빨리 찾는 것이 급선무다.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요소의 질적·양적 개선을 병행하는 정부 정책도 필요하다. 기회는 남아 있지만 이를 서둘러 활용하지 못하면 새로운 기술혁신 시대에서 피크 코리아 늪에 빠져 허덕일 것이다. 박상현 전문위원은_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 수석 이코노미스트(Chief Economist)이다. 성균관대학원 경제학 석사를 졸업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대우경제연구소 해외지역팀, 루마니아 대우은행,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이코노미스트 등을 거쳤다. 현대중공업 외환정책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저서로는 경제흐름을 꿰뚫어 보는 금리의 미래 (2018년), 테크노믹스 시대의 부의 지도 (2020년) 등이 있다.

2024.06.09 08:00

12분 소요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대표, 글로벌 영역 확장 자신감 [피플&피플]

증권 일반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가 ‘아시아 넘버원’을 향한 글로벌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김성환 대표는 한국투자증권에서 PF·채권운용·투자은행(IB)·경영기획·리테일 등을 두루 총괄하며 금융투자업 전 부문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국내에서 쌓은 성과와 자신감은 글로벌 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발판이 되고 있다. 김 대표는 올 초 신년사를 통해 전 사업부문의 ▲글로벌화 ▲디지털화 ▲선진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 구축 등을 추진해 아시아 최고 금융회사로 도약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 중 김 대표는 미래 먹거리 사업 중 하나로 글로벌 영역 확장을 꼽았다. 김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투자기회를 발굴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해 우수한 상품과 딜을 적극적으로 런칭하고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겠다”며 “이를 통해 다른 기업과는 완전히 차별되는 국내시장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더 나아가 글로벌 IB로 발돋움하겠다”고 말했다.한국투자증권의 글로벌 영역 확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은 해외 현지법인 7개, 해외 사무소 2개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중이다. 회사는 미국뿐만 아니라 베트남·홍콩·싱가포르 등 법인을 설립해 현지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해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기존 글로벌사업본부와 담당은 각각 그룹과 본부로 격상하고 현지법인의 법률 자문 등 운영 전반을 지원하기 위해 글로벌사업지원부를 신설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고객에게 안정적이고 다양한 투자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내 개인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려웠던 글로벌 투자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데 힘 쏟고 있다. 이를 위해 매년 5조원 이상의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글로벌 상품 개발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오는 2030년까지 개인자산 중 글로벌 상품의 비중을 30%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글로벌 상품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해 한국투자증권의 글로벌 네트워킹 확장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해외 자산운용사와의 네트워킹 접점을 만들기 위해 해외 자산운용사 수십 곳을 찾아가 직접 한투증권의 강점과 브랜드력을 알리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9월 미국 금융사 스티펄파이낸셜과 합작해 설립한 ‘SF 크레딧파트너스’를 통해 미국 인수금융 및 사모대출 부문에 진출해 활동하게 됐다. 글로벌 네트워킹 확장에 직접 나서…해외 서비스 출시 박차 이러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새로운 해외 투자 서비스도 선보였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스티펄 파이낸셜의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주요 리포트를 선별해 국내 개인 고객에게 제공하는 '슬립리스인유에스에이(Sleepless in USA)'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 주식 장전(프리 마켓), 장후(애프터 마켓) 시장에 맞춰 1일 2회 보고서를 제공해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지난해 10월에는 글로벌 운용사 칼라일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3억 달러의 투자를 확약하고, 연간 약 40억 달러 규모의 해외 크레딧 상품 소싱 기회를 약속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내 증권사 최초로 홍콩거래소에 파생워런트 상품도 상장했다. 앞서 김 대표는 지난해 11월 23일 그룹 계열사 별 이사회를 통해 한국투자증권의 새로운 수장으로 발탁됐다. 2019년부터 5년 간 한국투자증권을 이끈 정일문 전 대표는 증권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김 대표는 1969년생으로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에서 부동산금융학 석·박사를 수료했다. 2001년 LG투자증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팀을 거쳐 2005년 한국투자증권에 합류했다. 2012년에는 최연소 전무로 승진했다. 특히 김 대표는 국내 부동산 PF 시장을 구축한 초기 1세대로 꼽히는 인물이다. 한국투자증권 초대형IB 지정과 단기금융 업무 인가 발행어음 사업 안착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김 대표는 2016년 투자은행(IB)부문 그룹장 시절 흩어져있던 PF, 기업금융, 퇴직연금본부 등 IB 사업이 통합되면서 최초로 IB그룹을 이끌었다. 그의 탁월한 판단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성장한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11월 초대형 IB를 인가 받았다. 당시 김 대표가 경영기획 총괄로 취임한 지 1년이 안된 시점이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으면서 김 대표는 한국투자증권 차기 대표로 이전부터 낙점될 만큼 그룹 내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정 전 대표가 선임됐을 당시에 이미 또 다른 후보로 거론됐다는 뒷얘기도 들린다. 한편 지난해 한국투자증권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6648억원으로 전년 대비 66.2%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매출은 21조5403억원으로 전년 23조7575억원과 비교해 9.3%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597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1.5% 증가한 것이지만,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이 6232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4분기 258억원 순손실을 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국내외 부동산 시장 업황 악화에 따른 충당금 및 평가손실 증가에도 위탁매매(BK) 거래대금 확대와 자산운용 부문 이익 호조로 업계 최고 수준의 실적을 이어갔다”고 설명했다.이어 “미국 IB 법인과 홍콩 법인, 베트남 법인 등 글로벌 사업 부문에서도 양호한 성과를 내며 실적 향상에 기여했다”면서 “향후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통해 고객의 가치를 보호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2024.03.26 13:57

4분 소요
‘망 사용료’ 일갈 후 떠나는 트위치, 네이버·아프리카TV 수혜…스트리머 확보 ‘관건’

산업 일반

가장 높은 산의 주인이 사라졌다. 네이버·아프리카TV가 이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기 위한 경쟁에 나섰다. 방송을 켤 때마다 1만~2만명의 이용자를 동원할 수 있는 대형 스트리머 확보가 등반의 속도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1위 스트리밍 방송 플랫폼 트위치(Twitch)가 철수를 결정하면서 670만명 규모의 이용자가 플랫폼 이동을 앞두고 있다. 이들을 끌어안기 위한 스트리밍 플랫폼 전쟁이 치열하다.‘한국 1위’ 스트리밍 플랫폼 철수…왜?트위치는 아마존 자회사가 운영하는 외산 스트리밍 방송 플랫폼이다. 게임 스트리머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면서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게임 특화’를 내세우지만 사실상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스트리머에게 ‘활동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트위치는 2017년 7월 국내에 상륙했다. 시장조사기관 월드포퓰레이션리뷰가 추산한 트위치의 2023년 12월 국내 이용자 수는 약 670만명이다. 트위치 전체 이용자 중 국내 비중은 2.61%에 불과하지만, 한국어 방송 시청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전체의 6% 수준에 달한다.아이지에이웍스의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 조사에서도 트위치 애플리케이션(앱)의 2022년 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월간활성이용자수(MAU) 평균은 232만명을 기록했다. 한국 철수를 공식화한 2023년 12월에도 MAU 216만명을 써내며 국내 스트리밍 앱 1위를 유지했다.트위치는 그런데도 지난해 12월 6일 국내 사업 철수를 공식화했다. 국내 서비스 운영 기간도 2월 27일까지로 못 박았다. 표면적 이유로는 한국의 과도한 망 사용료를 꼽았다. 회사는 당시 공지를 통해 “대부분의 다른 국가에 비해 10배가 더 높은 망 사용료로 사업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댄 클랜시 트위치 최고경영자(CEO)도 실시간 방송 켜고 “한국 시장이 성장하고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더 큰 손실이 발생했다”며 “해외서 서비스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는 지연시간이 늘어나 적절하지 않고 규제 문제도 있다”고 토로했다.망 사용료는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의 인프라를 이용하는 대가로 내는 비용을 말한다. 트위치·넷플릭스·네이버·카카오·아프리카TV와 같은 기업이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때, SK브로드밴드·KT·LG유플러스가 마련한 인터넷망을 거치기에 내는 비용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통상 콘텐츠 전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양을 기준으로 각 기업의 비용이 책정된다. 그러나 정확한 금액은 CP-ISP 간 기밀유지협약(NDA) 체결 때문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트위치는 국내 망 사용료를 이유로 2022년 9월 최대 영상 해상도를 1080p에서 720p로 축소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주문형비디오(VOD)도 중단한 바 있다. 이 같은 조치에도 여전히 망 사용료는 부담으로 작용했고, 이에 한국 사업이 어려워져 발을 빼겠다는 게 트위치의 주된 논리다.트위치가 철수의 주된 원인 제공자로 국내 ISP 3사를 거론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트위치 이용자는 물론 스트리머들도 ISP 3사에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ISP 기업들은 트위치의 ‘10배 망 사용료’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하소연한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해외 CP의 망 사용료 단가는 국내 CP보다 15% 안팎 낮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트위치는 어느 국가를 기준으로 망 사용료 10배를 산정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업계에선 이 때문에 한국 철수 배경으로 ‘트위치 자체 문제’를 꼽는다. 트위치의 헐거운 사업 모델에 따른 경영 위기가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는 견해다. 트위치의 주된 수익원은 스트리머 후원 수수료와 광고 수익이다. 다른 외부 업체(서드파티)를 통한 스트리머 후원은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고, 광고의 경우 국내에선 유튜브·아프리카TV 존재 때문에 수요가 크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트위치가 명분으로 내세운 망 사용료의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주된 이유가 되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고 했다. 트위치가 한국 철수 발표 한 달 만에 ‘규모 적정화’를 이유로 500명 넘는 인력 감축을 직원들에게 통보하면서 ‘망 사용료는 핑계’란 해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대형 스트리머 영입 경쟁 치열이유야 어찌 됐든 외산 플랫폼 트위치는 오는 2월 한국을 뜬다. 이에 따라 토종 플랫폼 아프리카TV가 곧장 수혜기업으로 꼽혔다. 양사의 앱 기준 MAU 차이는 약 17만명(2022년 1월~2023년 11월 평균치)에 불과하다. 트위치와 차이가 크지 않은 2위 기업이라 이용자 유입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졌다.그러나 현재 아프리카TV 상황은 그리 여유롭지 않다. ‘누워서 떡’을 먹을 수 있었던 아프리카TV의 입을 네이버가 막아섰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12월 19일 베타(시험) 버전으로 ‘치지직’(CHZZK)을 내놓으면서 스트리밍 플랫폼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플랫폼 성격도 ‘게임 특화’를 내걸며 트위치 공백을 노리겠단 의지를 드러냈다.아프리카TV 수혜는 치지직의 등장으로 요원해졌다. 실제로 아프리카TV 앱 MAU는 2023년 12월 기준 189만명으로, 평균치(215만명)보다 되레 줄었다. 치지직 앱은 이 기간 99만명을 기록했다.신규 먹거리 마련에 나선 네이버와 시장 확대를 노리는 아프리카TV의 격돌은 현재 진행형이다. 양사 모두 스트리머와 시청자 구독 정보를 이어받는 트위치 승계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서비스 고도화는 물론 이용자 유입의 가장 중요한 지점인 스트리머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물밑에서 대형 스트리머 영입 협상을 진행 중인 양사의 성과가 속속 공개되면서 이용자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팬심M·스테리가 공동으로 개발한 ‘어디가’와 같은 트위치 스트리머 이적 정리 커뮤니티도 등장했다. 해당 사이트에 따르면 트위치에서 활동 중인 스트리머의 이적 플랫폼(동시 송출 포함 복수 집계)의 선택 수는 1월 24일 기준 ▲치지직 979명 ▲유튜브 327명 ▲아프리카TV 320명으로 나타났다.아프리카TV의 최대 성과로는 ‘우왁굳’ 영입이 꼽힌다. 트위치 팔로워 104만명을 거느린 대형 스트리머다.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선수 ‘페이커’(Faker) 이상혁을 제외하면 국내 트위치 스트리머 중 팔로워 수가 가장 많다. 우왁굳이 기획·발굴한 이세돌(이세계 아이돌) 멤버 6명의 방송과 왁타버스(메타버스 중심 콘텐츠)의 실시간 송출도 아프리카TV에서 이뤄진다. 이들의 평균 시청자 수 단순 합산치는 15만명에 달한다. 이 밖에도 ▲악어 ▲꽈뚜룹 ▲뽀구미 ▲고라니율 ▲박틸다 ▲우정우정우정우정 ▲윤개굴이 ▲하루짱 ▲코뚱잉 ▲끠끼 등 유명 스트리머가 아프리카TV를 택했다.치지직의 확장도 만만찮다. ▲서새봄냥(68만명·이하 트위치 팔로워) ▲한동숙(66만명) ▲풍월량(62만명) 등이 대형 스트리머가 치지직행을 발표했다. 치지직은 이 밖에도 ▲옥냥이 ▲탬탬버린 ▲김도 ▲공혁준 ▲쌍베 ▲녹두로 ▲울프 ▲레바 등을 품었다. 네이버는 특히 농심 레드포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소속 LCK 선수단을 포함해 팀 전속 스트리머 ▲얏따 ▲농관전 등도 확보했다.치지직과 아프리카TV의 대결 구도가 형성될 때부터 대중의 관심이 쏠렸던 ‘트위치 최대어’ ▲침착맨(유튜브 구독자 231만명) ▲슈카(유튜브 구독자 298만명)는 일단 두 플랫폼의 동시 송출을 결정한 상태다.

2024.01.28 06:00

5분 소요
한때 황금알 낳는 거위였는데…증권사 IB조직 축소 잰걸음

증권 일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기로 자본시장이 급격히 냉각되면서 증권사들의 투자은행(IB) 부문 축소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자산 버블이 꺼지며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증권사들이 소위 ‘돈 안 되는’ IB 부문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PF 위기가 현재진행형인 만큼 증권사들의 IB 부문 구조조정 행보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PF 위기와 대체투자, 인수합병(M&A) 등 IB 수요 감소가 두드러지면서 관련 조직 효율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일부 임직원들의 전환사채(CB) 불공정거래로 홍역을 치른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11월 20일 대표이사를 전격 교체하는 임원 인사와 함께 IB 부서 3곳을 통폐합해 단일 본부 체제로 전환했다. 기업금융과 부동산금융, PF로 구분했던 기존 IB 3본부가 1사업본부에 통합됐다. 이에 1본부장을 겸임했던 이세훈 부사장이 IB사업총괄본부장으로 선임됐다. 총괄본부가 IB사업과 리스크를 총괄하게 되면서 2본부와 3본부의 규모도 사업팀 수준으로 축소됐다. 업계에서는 PF 시장 한파로 3본부의 신규 딜이 감소한 것이 통폐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향후 부동산 PF 등 리스크 관리와 내부 통제 강화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하이투자증권은 PF 관련 징계성 인사를 단행하는 등 IB부문 개편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연봉킹’으로 유명했던 김진영 전 투자금융총괄사장 등 2명을 면직 처분했다. 이와 함께 부동산 관련 조직은 총괄, 본부장 조직이 사라지고 실 4개 체제에 대표이사 직속으로 개편됐다. 해당 자리에 진태우 프로젝트금융실장, 홍원표 구조화금융실장, 함재두 부동산금융실장, 민재훈 투자금융실장 등이 신규 선임됐다.미래에셋증권 역시 지난해 11월 7개로 나뉘었던 부동산PF 사업부를 4개로 축소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한 달 뒤인 12월에는 기업금융과 부동산금융, PF 등 3곳으로 분리해 운영했던 IB부서를 단일 본부 체제로 통합했다. SK증권도 조직개편을 통해 대체투자사업부 및 산하 본부를 폐쇄하고 구조화1·2본부와 통합, ‘구조화본부’로 일원화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IB조직을 무조건 통폐합하기보다 효율화에 방점을 두고 역점 사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실제 하나증권은 주식자본시장(ECM)과 채권자본시장(DCM) 등 전통 IB 부문은 강화하는 한편 PF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부동산 부문은 효율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 하나증권은 IB부문의 균형 성장과 수익 정상화를 목적으로 IB1부문과 2부문을 신설했다. IB1부문은 전통IB 강화를 목적으로 기업금융 조직을 확대하고, ECM본부 등을 신설해 수익력을 증대한다는 계획이다. 이 일환으로 박병기 IB1부문장을 선임했다. IB2부문은 부동산금융 조직 정비와 수익성 제고를 위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강화해 조직을 재편할 예정이다.IB본부를 IB1부문과 IB2부문으로 나눈 한화투자증권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IB2부문에 전사적으로 힘을 실어왔던 기업공개(IPO) 업무를 맡긴 것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올해 티이엠씨와 한화플러스제4호스팩을 상장시킨 데 이어 내년에도 관련 비즈니스를 확대하면서 상장 추진 역량을 쌓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IB 한파 올해 말까지 지속시장에서는 증권사들의 IB 조직 축소 행보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PF 위기가 올해부터 본격화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옴에 따라 증권사들도 몸을 움츠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기업평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금융업권 부동산PF 리스크 점검’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23개 증권사의 PF 익스포저 가운데 올해 6월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채권 및 채무보증 규모가 약 12조원에 육박한다. 전체 익스포저의 50%에 달하는 규모다. 한기평은 특히 브릿지론 규모를 7조3000억원으로 추산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지난해 말 컨퍼런스에서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PF 규모가 14조원이며 그 중 58.4%가 브릿지론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한신평도 입지가 취약한 지방 익스포저 규모가 큰 증권사의 경우 손실위험에 먼저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특히 증권사의 경우 부실 PF에 대한 대응력을 키우지 않을 경우 타업종으로 위기가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증권사의 신용공여는 단기자금 시장의 뇌관으로 지목되기도 했다정효섭 한기평 책임연구원은 “증권사의 PF 익스포저가 발생한 것은 보증능력에 대한 의심이 확대됐기 때문”이라며 “대응력 저하가되기 시작하면 PF 전반에 유동화 의심이 퍼져 자금시장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어 “이는 하나의 시그널로 작용해 다른 업권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본다”며 “부동산 시장 회복이 지연되고 자금경색이 재현되면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2024.01.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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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가치, 브랜드 기회로 만들어야”

전문가 칼럼

올 한해를 빛낸 브랜드 중 하나는 농심의 ‘먹태깡’이다. 먹태깡은 지난 6월 출시 직후 품절 대란을 이어갔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먹태깡의 품절 대란을 보며 ‘한정판 마케팅’, ‘헝거 마케팅’의 승리라고 평가한다. 이 마케팅 전략은 제품을 한정된 물량만 판매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을 말한다.농심이 한정판 마케팅을 통해 먹태깡의 인기를 높인 것이라면 다른 제품도 기업이 공급을 줄였을 때 성공해야 한다. 먹태깡이 성공한 것은 단순히 마케팅 전략 때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기업이 소비자의 가치가 변화하는 흐름을 주시하고, 변화에 맞게 창조적 아이디어를 제품에 반영한 결과라고 이해해야 한다. 실제 국내 과자(스낵) 시장은 아동·청소년이 중심인 시장에서 성인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의 인구 구조도 아동·청소년의 수가 줄고 고령자의 수가 늘어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기도 하다. 스낵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생존하려면 해외 시장에 진출하거나, 주 고객을 성인으로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이 맥주 등 주류 안주로 먹태깡을 찾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농심은 머천다이징(제품 기획·마케팅·판매 등)을 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기업들도 그동안 안주용 스낵을 출시했지만 먹태깡의 성공은 남다르다. 우선 먹태깡은 사내 공모를 통해 만들어졌다. 먹태는 주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안주인데 이를 스낵에 연계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제품에 아이디어를 더해 상품화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며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점도 먹태깡이 인기를 얻는 데 한몫했다. 집에서 술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를 잡자 먹태와 같은 간단한 안주용 과자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 농심의 노력도 빛을 발했다. 농심이 사내 공모를 통해 먹태깡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뒤 1년 동안 제품을 개발했다.특화 영역 구축한 브랜드 눈길…“시장 꿰뚫는 눈 필요” 소비자들의 생애주기에 주목한 브랜드도 올 하반기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한화손해보험의 ‘한화 시그니처 여성 건강보험’이 대표적이다. 이 보험은 생리와 임신·출산·갱년기·폐경 등 여성 소비자에 특화한 항목들을 보장한다. 한화손해보험은 유방암과 갑상선암, 난소·자궁암 등 고위험 질병군에 노출된 여성을 연구해 이 제품을 만들었다. 소비자들의 호응도 뜨겁다. 한화손보는 이 제품을 출시하자마자 월 평균 1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여성의 생애주기와 건강을 고려한 제품을 내놓은 덕이다. 한화손보가 시장의 변화를 잘 읽었다고도 볼 수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산다. 여성의 사회 진출도 빨라지고 경제와 산업 분야에 기여하는 정도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보험 시장의 제품 상당수는 남성 소비자에 맞춰져 있다. 이를 선제적으로 꿰뚫어 본 기업이 한화손보다. 실제 한화손보가 한화 시그니처 여성 건강보험을 출시한 뒤 경쟁사들은 너나없이 이 시장에 달려들었다. 한화손보는 이후 여성 특화 자동차 보험과 상해 보험 등을 개발해 여성 특화 보험사로 자리매김했다. 한화손보는 특화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연구와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앞서 여성과 관련한 질병과 여성의 생애주기를 연구하는 ‘라이프 플러스 팸테크 연구소’를 출범시켰다. 여성병과 불임 치료 등에 특화된 이화의료원, 차병원과 업무 협약을 맺는 등 기존 손보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아이디어를 현실로…발상의 전환이 만든 브랜드 발생의 전환으로 올 한해 자사 브랜드를 성공시킨 기업도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처럼, 갓 튀긴 맛을 내는 치킨을 집에서 만들 수는 없을까?”는 CJ제일제당이 ‘고메 소바바 치킨’을 개발하게 된 질문이다. 국내 치킨 시장의 규모는 5조원에 달한다. 배달 치킨의 가격은 3만원에 육박한다. 소비자들도 자연스럽게 집에서 만 들어 먹는 치킨을 생각하게 된다.CJ제일제당은 에어프라이어로 조리해도 갓 튀긴 듯한 바삭함을 맛볼 수 있는 치킨을 개발하기로 했다. 특히 좋은 소스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프랜차이즈 치킨처럼 두 번 튀긴 뒤, 회사가 직접 개발한 소스 코팅 기술을 적용했다. CJ제일제당이 고메 소바바 치킨을 출시한 지 한 달여 만에 이 제품은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출시 6개월 후 곧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CJ제일제당은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도 주목했다. 치킨은 국민 배달 음식이지만, 최근 외식비와 배달비가 올라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회사는 여기에서 사업 기회를 발견했다. 고메 소바바 치킨을 전략 제품으로 선정해 새로운 K-푸드 항목으로도 성장시킬 계획이다.프리미엄 전략으로 시장 지배…아트 캠페인 등 눈길동아제약의 프리미엄 비타민 제품 오쏘몰 이뮨의 성장도 놀랍다. 건강기능식품은 통상 주요 매체의 광고나 전문가의 추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판매됐다. 동아제약은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 소셜커머스나 올리브영과 같은 유통 채널을 통해 오쏘몰 이뮨을 ‘비타민계의 에르메스’로 만들었다. 이 제품을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단번에 안착시킨 것이다. 매출도 놀랍다. 오쏘몰 이뮨은 올해 1000억원대의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성적 뒤에는 제약사가 시도하지 않은 협업 전략이 눈에 띈다. 동아제약은 젊은 예술가 40명과 아트 캠페인을 진행했다. 세계 최초의 만년필 메이커인 독일 라미와도 협업했다. 이외 다른 기업과 제작한 한정판 패키지는 젊은 세대의 눈길을 끌었다.

2023.12.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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