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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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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 수정안, 노측 내리고 사측 올렸지만 입장차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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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적용될 최저임금 수준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고 있지 못하는 노동계와 경영계가 최초 요구안에 대한 수정안을 각각 제시했다. 노사가 수정안에서 제시한 최저임금 수준이 최초 요구안과 별반 다르지 않아 최종 확정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모양새다.노동계와 경영계는 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10차 전원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내년도 최저임금 수정 요구안을 준비해왔다.앞서 내수 소비 활성화, 임금 불평등 해소, 실질임금 감소 등을 이유로 올해보다 26.9% 인상한 시급 1만2210원을 요구했던 노동계는 수정안으로 시급 1만2130원을 제출했다. 월급(월 209시간 노동 기준)으로 환산하면 253만5170원이다.올해 최저임금(시급 9620원·월급 201만580원)보다는 26.1% 높고 최초 요구안보다는 0.7% 낮은 수준이다. 이는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할 때 활용하는 기초자료인 비혼 단신 근로자 월평균 실태생계비(시급 1만1537원·월급 241만1320원)에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더한 것이다.반면 영세사업장의 임금 지급 능력, 최저임금 인상률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생산성 증가율, 뚜렷하지 않은 소득분배 개선 효과 등을 언급하며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입장인 경영계는 수정안으로 시급 9650원·월급 201만6850원을 내놨다. 최초 요구안보다는 0.3% 올린 금액이다.사용자위원들은 수정안에 대해 영세사업장과 소상공인 입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애당초 입장차가 컸는데 수정안에서도 자세를 고치지 않은 노사에 최저임금위가 재수정안 제출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졌다.최저임금 수준 논의는 노사가 각각 제출한 최초 요구안을 놓고 접점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노사가 평행선을 계속 그릴 경우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 촉진구간’ 범위 내에서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될 수도 있다. 지난해에도 심의 촉진구간 중에서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을 뺀 수치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확정했다.이미 법정 심의 기한을 넘긴 최저임금위이지만 남은 행정절차를 고려하면 7월 중순까지는 최저임금안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넘겨야 한다. 장관은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확정해 고시해야 한다.최저임금제를 도입한 1988년 이래로 법정 시한을 지킨 적은 9번밖에 없다. 지난해는 2014년에 이어 8년 만에 기한을 준수했다.

2023.07.0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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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890원 vs 9160원’ 최저임금 진통 예고…공익위원의 선택은?

산업 일반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최초 요구안을 제시하면서 본격적인 줄다리기에 돌입했다. 노동계는 지난 21일 최초 요구안으로 올해 최저임금(9160원)보다 1730원(18.9%) 높은 시간당 1만890원을 제시했다. 이에 경영계는 지난 23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할 것을 요구했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요구안의 간극을 큰 만큼 이번에도 공익위원의 손에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주휴수당 감안 1만3000원” vs “가파른 물가 상승 고려해야” 경영계는 지난 23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할 것을 요구했다.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근로자위원들이 내년 최저임금으로 1만890원을 제시했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유급 주휴수당을 감안하면 노동계 요구안은 1만3000원을 넘게 된다”며 “이러한 과도한 요구는 소상공인·중소영세기업에게 문 닫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면서 “2017년부터 5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44.6%에 달하는데, 같은 기간 1인당 노동생산성은 4.3%,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11.5% 증가에 그쳤다”며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최저임금 인상률에 현저히 미치지 못해 인상요인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은 “물가가 심각할 정도로 가파르게 계속 오르고 있다”며 “한국은행 총재까지 나서 어려워진 취약계층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상황”이라고 맞받았다. 앞서 노동계는 올해 적용된 최저임금보다 1730원(18.9%) 많은 1만890원을 최초 요구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월급으로 환산한 금액은 227만6010원이다. 노동계는 가구 생계비를 기준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며, 자체 산출한 적정 생계비인 시급 1만3608원(월 284만4070원)의 80% 수준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 법정시한 의결 위해 공익위원 움직임 빨라지나 노사의 최초 요구안 격차가 큰 만큼 추후 심의 과정에서 양측 간 격돌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주부터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여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최저임금 심의·의결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의 법정 시한은 오는 29일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매년 3월31일)한 이후 90일 이내인 6월 말까지 심의를 마쳐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각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최저임금위원회가 법정 심의 시한을 지킨 적은 1988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8번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최근 10년간은 2014년을 제외하고 매번 법정 시한을 넘겼다. 하지만 올해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공익위원들을 중심으로 법정 시한을 준수하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실제로 법정시한 안에 최저임금을 의결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우고 오는 28일, 29일 연달아 전원회의 일정을 잡은 상태다. 분수령은 오는 28일 열리는 제7차 전원회의다. 이날 노사 양측의 첫 수정안이 제시된다면 심의의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심의는 노동계와 경영계가 각각 제출한 최초 요구안을 놓고 그 격차를 좁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워낙 시각 차이가 커서 올해도 ‘캐스팅 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의 권고안으로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2.06.26 12:50

2분 소요
화물연대 총파업 일주일…'협상 결렬' 소식에 재계 조마조마

산업 일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정부와의 교섭 결렬 소식을 알리면서 재계는 파업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13일 입장문을 통해 "국토교통부에서 제시한 대로 국민의힘, 화주단체를 포함해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품목 확대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할 것을 약속한다'는 잠정안에 합의했지만, 최종 타결 직전 국민의힘이 돌연 잠정 합의를 번복했다"며 "교섭은 최종 결렬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강력한 투쟁으로 무기한 총파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운전자에 대한 사실상의 최저임금제다. 2020년 화물 운전자에게 적정 임금을 보장해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하겠다는 취지 도입한 제도다. 올해 말 폐지될 예정이었는데, 화물연대는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7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문제는 화물연대의 총파업으로 국내 경제 상황 악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경련,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 31곳은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에 대한 경제계 공동입장문'을 통해 "정부는 국민경제 전체에 미치는 막대한 파급효과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상황에 따라 업무개시 명령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업무개시명령은 정부가 강제로 파업을 중단시키는 것을 말한다. 화물연대 총파업이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자 강력한 대응을 요청한 것이다. 이는 재계가 파업에 대해 느끼는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11일 오전 기준 화주들로부터 접수한 애로사항은 155건으로 집계됐다. 수출과 관련한 문제는 102건(65.9%), 수입과 관련한 문제는 53건(34.2%)으로 조사됐다. 수출에서는 납품 지연 39건(25.2%)과 위약금 발생 34건(21.9%), 선적 차질 29건(18.7%) 등이 애로사항으로 지목됐다. 수입은 원자재 조달 차질이 24건(15.5%), 물류비 증가 15건(9.7%), 생산 중단이 14건(9.0%)으로 나타났다. 무협에 따르면 화학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판매하는 A사의 경우 수입 원자재 화물을 본사로 운송하지 못하면서 2억원 수준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트럭을 이용한 운송도 화물연대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화물연대 파업의 조기 협상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 파업으로 인한 화물연대와 정부의 협상이 단기간에 결론 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국제노동기구(ILO)에 이번 화물연대 파업사태에 개입해 달라고 요청하는 서안을 발송했다고 12일 밝혔다. 정부가 파업 시작 전부터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 행위'로 전제하고 공권력을 배치하면서 조합원들이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조합 및 단체교섭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화물연대 측은 "파업 돌입 후에는 참가자들을 체포해 ILO 87·98호 협약에 따른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ILO 협약 87호와 98호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와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지난 4월 20일부터 발효됐다. 이병희 기자 leoybh@edaily.co.kr

2022.06.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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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노무 실무자, 새 정부 노동 정책에 관심…긍정 평가 多

산업 일반

많은 기업이 새 정부의 기업 정책에 대해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의 인사·노무 실무자 조사 결과 34.9%가 새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이 전반적으로 기업 경영과 고용 창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8일 밝혔다. 이 같은 조사는 전경련이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한 결과다. 부정적인 의견은 9.3%로 조사됐다. 응답자들은 새 정부가 우선해서 다뤄야 할 노동 현안으로 ‘근로시간 유연화’(27.9%)를 꼽았다. ‘중대재해처벌법 보완’(24.0%), ‘균형 잡힌 노사법제 마련’(21.7%),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16.3%), ‘최저임금제 개선’(10.1%)이 뒤를 이었다.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해서는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정산기간 1년으로 확대’ 의견이 55.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별연장근로 사유(해외 사업장 등) 확대 및 절차 간소화’(20.9%),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18.6%), ‘전문직 직무, 고액연봉 근로자에 근로시간 규제 적용 제외’(3.9%), 기타(0.8% 주 52시간 완화 또는 해제 등)를 꼽은 응답자도 있었다. 최저임금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이 필요하다(34.9%)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자제’도 32.6%로 높았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 보완’(기업 지불 능력 등 고려)이 21.7%, ‘주휴수당 폐지’가 7.8%, 기타 3.0%로 조사됐다. 전경련은 “실업난이 지속하고 일자리 질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고용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최저임금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부분은 ‘안전·보건의무의 구체적 기준 마련’(34.9%)이었다. ‘종사자 안전 수칙 준수 의무화’(15.5%), ‘과도한 처벌 수위 완화’(14.7%), ‘의무주체 명확화’(11.7%), ‘원청책임 범위 명확화’(11.6%), ‘기업인 면책 규정 신설’(9.3%)도 기업에서 중요하게 보는 사안으로 나타났다. 전경련은 “기업들이 비용을 대폭 들여 안전관리에 투자하고있지만, 법령상 안전보건 의무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경영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며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라도 기업들이 지켜야 할 의무를 명확하게 제시해주면 기업 경영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재해 예방의 실효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코로나19 장기화,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이 많다”며 “일자리 창출과 경기회복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불합리한 규제들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2022.04.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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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노동자탄압·임금억제로 물가 안정…조작사건도 많아

정책이슈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향년 90세로 23일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현대사를 굴곡지게 만든 장본인이어서 각계 평가가 엇갈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국 경제에 남긴 명암을 짚어봤다. 전두환 정권의 철권통치 대상엔 노동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불순분자로, 그들의 파업·집회를 사회혼란으로 여겼다. 정권에 대항하는 노동운동가들을 삼청교육대에 강제수용하는 등 인권유린은 다반사였다. 심지어 근로자 임금 인상 억제를 강제해 국가 차원에서 물가 안정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전두환 정부(1980년 9월~1988년 2월)는 앞서 박정희 정부가 수립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96년 총 7차) 중 5차(1982~1986년)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경제개발 계획은 5차부터는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으로 이름을 바꿨다. 1960~1970년대에는 먹고 사는 생존이 중요한 과제였다면, 1980년대엔 자유·문화·복지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전두환 정부는 경제개발 계획을 이어나가 박정의 정부를 잇는 적통 정권임을 알리는 동시에, 사회 변화를 반영해 신군부에 대한 저항감을 줄이고 정권의 안착을 도모했다. 그 예로 국풍81 축제, 한국프로야구·축구 창설, 야간통행금지 해제, 학원 두발·복장 자율화 등을 진행했다. 사회·근로·연금·의료 관련 복지제도도 개선해나갔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농어촌을 떠나는 이농과 대도시 집중화가 심화하고, 소득불평등과 도시빈민이 증가하던 사회구조 변화도 복지 확충의 한 배경이 됐다. 근로복지 분야에서는 1984년 최저임금제 시행 방안, 1986년 의료보험 전국민 확대 방안과 국민연금제도·최저연금제 도입 방안, 1986년 최저임금법 제정, 부당 노동행위 처벌을 담은 노동조합법 개정 등을 발표했다. 최저임금제는 1953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근거를 마련했으나 기업주들의 반발과 사회여건 부족으로 보류됐다. 그러다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 1986년 국민복지 증진의 일환으로 도입을 결정, 그 해 연말에 법을 만들어 정권 말기인 1988년 시행에 들어갔다. 최저임금제를 통해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도록 강제성을 못박았다. ━ 사회복지망 확충으로 도시빈민·소득불평에 대응 전두환 정부는 사회복지제도도 확충했다. 당시 산업화를 좇아 농어촌을 떠난 사람들 대부분이 도시의 하층민을 형성하면서 소득불평등과 고령인구·도시빈민 증가, 도시화·핵가족화 확산, 부모부양의식 퇴조 등으로 사회보장 수요가 급증하던 때였다. 대책의 하나로 국민의 절반에 머무르던 의료보험 혜택을 모든 국민이 받도록 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 조기 정착’ 방안을 1987년에 제시했다. 이에 따라 의료보험을 1988년 농어촌으로, 이듬해엔 도시 전역으로 확대했다. 국민복지연금도 1986년 법 개정을 거쳐 수혜 폭을 넓혔다. 18~60세 미만 모든 취업연령층으로 확대,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우선 실시, 사용자와 근로자 균등 분담, 정부가 제도운영관리비 부담 등의 내용으로 개선했다. 1987년엔 근로자의 주거 안정과 목돈 마련을 지원하는 법도 만들어 이듬해 시행했다. 정권 마지막 해인 1987년엔 노동관계법·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 등을 개정했다. 이를 통해 행정관청의 재량권 남용 축소, 노동조합 요건 축소와 설립 자유화, 단체교섭권한 위임절차 간소화와 사후신고, 노사 간 세력 균형을 위한 근거 마련 등의 조치를 취했다. 같은 해에 노후생활 연금신탁제를 도입하고 남녀고용평등법을 만들어 여성차별 철폐 기반도 마련했다. 이렇게 전두환 정부 때 기틀을 마련한 사회·근로 복지정책들은 신군부 차기 정권인 노태우 정부 때도 계속 이어졌다. ━ 정권의 폭압에 청년 노동자들 분신자살 잇따라 하지만 전두환은 국민에게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자마자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로 정당·정치활동 금지, 국회 폐쇄, 영장 없는 구금 등을 강행했다. 정권 말기에 각종 복지제도 확충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려 했지만 항거하거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노동자의 파업과 시위는 철저히 분쇄했다. 산업·재벌을 앞세우고 노동·인권을 묵살하던 박정희 정권과 닮은꼴이었다. 옛 노동부(현 고용노동부)의 노사분규 통계를 살펴보면 1985년에는 노사분규 265건, 노사분규참가자 2만8700명, 노동손실일수 6만4300일 수준이었다. 하지만 정권 말기인 1987년엔 3749건, 126만2300명, 694만6900일로 급증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에 노동자·학생·시민들의 민주·자유 열망이 폭발한 것이다. 이렇게 억눌렸던 민심은 대통령직선제와 정당·언론 자유화를 추진한 차기 노태우 정부 때 봇물처럼 표출됐다. 이 때문에 전두환의 철권통치 때 적지 않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잇따랐다. 부산에서 상경한 김종태씨는 1980년 서울 신촌역 부근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학살 사건을 알리고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했다. 김씨는 앞서 2년 전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치는 야학을 운영하다 정부 감시에 걸려 강제 해산됐다. 1984년엔 택시운전사 박종만씨, 1985년엔 건설노동자 홍기일씨, 1986년엔 금속노동자 박영진씨 등이 노조탄압 규탄, 근로기준법 준수, 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했다. 이 밖에도 노동운동을 하던 수많은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의문사·행방불명·행려병자 등으로 사라져갔다. 당시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연금,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등 온갖 박해가 이어졌다. ━ 조작사건·경제정책에 희생되고 강제 수용되기도 전두환 정권은 정치범수용소라 할 수 있는 삼청교육대를 운영해 국가폭력과 인권유린을 자행했는데, 수많은 노동운동가들도 이곳으로 끌려갔다. 또한 1987년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일화로 유명한 박종철 고문치사 비극을 낳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은 집권 초기 1980년 12월에 ‘제3자 개입 금지’ 규정을 추가하는 등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을 개악했다. 제3자 개입 금지는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이나 노동운동 전개를 외부 세력이 돕지 못하도록 원천 금지한 조항이다. 제3자 개입 금지는 정부와 기업이 노동계를 탄압하는 주요 수단으로 악용됐다. 이후 정권이 바뀌고 일부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그 잔재는 20여년동안 이어졌다. 결국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반발로 2005년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에 채택돼 2006년에 결국 폐지됐다. 전두환 정권은 노동자 임금 인상 억제를 물가 안정 정책의 하나로 악용하기도 했다. 집권 초기 1980~1981년에 유가와 물가가 급등하자 인상을 부추기는 나쁜 심리를 내쫓자며 ‘부정적 심리 추방운동’을 벌였다. 그 대상 중 하나가 노동자 임금이었다. 국가 차원에서 임금 동결을 선언하며 노동자 임금 인상을 통제했다. ☞ 전두환 향년 90세로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31년 경남 합천 출생으로 1955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등 육군대장까지 지냈다. 유가족으로는 배우자 이순자(82)씨를 비롯해 아들 재국·재용·재만씨와 딸 효선씨가 있다. 1961년 박정희 육군 소장의 5·16 군사구데타 때 육사생도 지지시위를 주도하고 국가혁명위원회에 가담했다. 1979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10·26 사건을 조사하면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 신군부 정권을 출범시켰다. 1980년 신군부 퇴진과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던 전남도민들을 유혈진압했다. 간선제로 1980년 11대 대통령, 1981년 12대 대통령에 취임해 1988년 2월까지 집권하며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대통령직 퇴임 후엔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반란·내란죄, 광주시민 학살, 비자금 조성 등의 죄목으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1.11.24 10:00

5분 소요
‘단군 이래 최대 호황’…풍요 향수 남긴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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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거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향년 89세)이 대통령직을 떠난 지 28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가 재직 당시 도입했던 경제 정책들은 역대 정부들을 거쳐 지금까지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탈바꿈했다는 칭찬을 받고 있는데, 그 시작점이 노태우 정부 때였을 정도로 당시 한국 경제는 성황을 이뤘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다는 노태우 정부의 경제 성과는 앞서 박정희·전두환 정부가 만든 토대에서 나온 과실이라는 시선과, 당시 동아시아의 3저(저금리·저유가·저달러) 흐름을 잘 이용했다는 시각으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국민에겐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한 시기로 기억되고 있다. 자가용 대중화, 주식시장 활황, 해외여행 급증, 1인당 국민총소득(GNI) 5000달러 등으로 풍요를 안겨준 정권으로 향수에 남아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대외 국격도 크게 상승해 자부심도 일깨워줬다.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과 군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하고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탓에 대통령 임기(1988년 2월~1993년 2월) 내내 박정희·전두환의 바통을 이어받은 군사정권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안으로는 언론 자유화와 부동산시장 개혁으로 사회 분위기를 쇄신하고, 밖으로는 북방 정책과 대외교역 확대로 경제 성장을 이끌어 역대 정부와의 차별을 꾀했다. 2018년 서강대를 정년 퇴임한 손호철 전 정치외교학 교수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역대 정부들 중 가장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한 지도자”라고 평가한 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혁신적 부동산 정책들 시도 특히 노 정권이 도입한 부동산 정책들은 오늘날까지 역대 정권들마다 차용했을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그 중 하나가 ‘토지공개념’ 시도다. 토지공개념이란 토지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재화지만 동시에 국토의 일부이기 때문에 공공복리와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국가가 적절하게 규제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권 초기인 2018년 3월 헌법 개정을 통해 추진하려 했으나 야권의 공세에 보류한 정책이다. 1987~1988년에 경제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시중의 풍부한 유동 자금이 부동산 투기로 몰렸다. 그 전까지 안정세를 보였던 땅값은 노 정권의 주택 200만 가구 건설 공약, 서울 올림픽 개최, 급격한 도시화·산업화 등의 여파로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는 토지 공급 제약, 건축 가능한 대지비율 감소, 소득불균형·불로소득 심화, 물가 불안 등을 부추겼다. 이에 노 정부는 올림픽 직후인 1988년 8월 10일 부동산투기억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때 토지공개념 3법(택지소유상한·개발이익환수·토지초과이득세 관련 법)을 꺼내 토지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 했다. 개인 당 150평을 넘는 집을 갖지 못하게 하는 규제도 시행하려 했다. 건설업이 국가경제를 떠받치던 때여서 경제계와 건설업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도 안 된다”며 격앙했다. 정치권도 크게 반발했다. 이후 토지공개념 법안들은 위헌 결정으로 점차 폐지됐지만 부동산 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단골 정책으로 등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부동산 시장 규제책으로 지난해 12월 꺼낸 공시지가 현실화 정책도 1989년 노 정부에서 시작한 제도다. 공시지가는 정부가 땅값을 조사해 공시하는 제도로, 오늘날 국가가 국내 부동산을 관리하고 양도세·증여세·상속세·종합부동산를 매기는 중요한 척도로 자리잡았다. 노 정부는 이와 함께 대기업을 향해 5·8 부동산특별조치도 내렸다. 법인들이 토지를 과잉 소유해 막대한 개발이익을 독점하자 대기업들이 갖고 있는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각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부동산 폭등을 억제하기 위해 주택 200만 가구 공급과 수도권 1기 신도시 건설도 추진했다. 이러한 부동산 정책들은 노 정권 말기 때 부동산 시장의 폭등세를 꺾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차기 김영삼 정권 때도 이어졌다. ━ 중산층 확대 ‘마이카·주식투자·해외여행 시대’ 열어 노 정권은 최저임금제를 처음 시행한 정부이기도 하다. 최저임금제는 1986년 법률로 제정됐으며 노 정권 초기인 1988년부터 시행됐다. 당시 최저임금은 노 정권 초창기인 1988년 약 462원에서 정권 말기인 1993년 1005원까지 올랐다. 상승률이 약 117%에 이른다. 노 정권 시기는 경제 호황 덕에 중산층이 두터워졌다. 저금리·저유가·저달러라는 3저 흐름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한국 경제는 노 정부 임기 때 연 10% 안팎의 고도성장을 누렸다. 국제수지가 국가경제 틀을 갖춘 이래 처음 흑자를 기록했으며 실업률 2%대, 수출 600억 달러 돌파(1988년) 등을 나타냈다. 참고로 한국경제연구원(KDI) 조사 자료에 따르면 현 문재인 정부의 지난해 기준 전체 실업률은 4%, 청년 실업률은 9%를 나타냈다. 이 덕에 당시 국민들은 피부로 느낄 정도로 부를 쌓게 되고 구매력도 증가했다. 자가용을 구입하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마이카 시대가 열렸으며, 주식시장은 종합주가지수가 1989년 1000포인트를 넘고 주식투자 인구도 급증하면서 활황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당시 사회분위기는 국민들이 박정희·전두환 때 “우리도 잘 살아보세”를 외쳤다면, 노태우 땐 “나도 잘 살수있다”는 희망을 품었던 시기였다. 국가도 이 때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이르던 외채를 20% 밑으로 감축했다. 이와 동시에 그 동안 남의 나라의 도움으로 연명하던 빚쟁이에서 해외 빈국을 돕는 원조 국가로 탈바꿈하게 됐다. 한편, 국민적 호응을 얻은 민주화 정책은 노 정권의 발목을 붙잡기도 했다. 철권통치를 앞세웠던 전두환 정권과 달리 노 정권 때는 권위주의를 내리고 자율과 타협을 내세우다 보니 사회 곳곳에서 기강 해이, 공권력 훼손, 친인척 섭정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특히 경제민주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노 정권의 경제정책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일이 이어졌다. 또한 공권력을 어지간해선 집행하지 않다 보니 노동계에선 불법 집회와 사건사고 등이 끊이질 않았다. 역대 정부의 억압정치를 갑자기 없애면서 일각에선 사회 혼란을 야기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민간인 사찰 사건도 노 정권의 실정으로 꼽힌다. 국군보안사령부와 국세청을 통해 정계는 물론 경제계와 노동계 주요 정적들을 사찰한 사건이 노 정권 중반기에 드러났다. 이 일로 정권 퇴진 운동이 연일 이어졌으며 국군보안사령부는 기무사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1.10.2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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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파장④] 세계 각국에서도 “인상 vs 부작용”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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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을 9160원(시간당)으로 올해보다 440원(약 5.046%) 올린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에 경영계와 노동계는 모두 반발하고 있다. 경영계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지불능력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 우려했다. 노동계는 “저임금 근로자들의 사회안전망 확보가 무산됐다”며 문 정부의 1만원 초과 공약이 ‘희망 고문’이었다며 질타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은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심화된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근로자의 소득 증대에 기초한 소비 진작으로 침체된 내수를 끌어올리겠단 전략이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13일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의 ‘소득불평등과 최저임금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는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경기부양정책 일환으로 연방 최저임금인상을 추진했다. ━ 미국·유럽·영국·네덜란드 등 주요국 일제히 인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5달러(약 1만7235원)으로 2배 이상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따라 미국 민주당은 지난 1월 연방 최저임금을 2025년까지 5단계에 걸쳐 15달러 이상 인상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행정명령으로 연방정부 계약직 노동자 최저임금을 1095달러에서 15달러로 37% 인상했다. 미국 플로리다주 의회에서도 지난해 11월 8.56달러이었던 최저 시급을 2026년까지 15달러(약 1만7000원)까지 올리는 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힘입어 델라웨어·캘리포니아·코네티컷·매사추세츠·뉴저지 등 다른 미국 주들도 최저임금을 2025년까지 15달러 수준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도 최저임금 인상에 적극적이다. EU 집행위는 지난해 10월 EU 내 최저임금제 도입 방침을 발표했으며, 회원국 중 중위임금의 60%를 최저임금 하한선으로 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4월에 최저임금을 시간당 8.72파운드에서 8.91파운드(약 1만4000원)로 약 2.2% 인상했다. 독일도 지난해 9.35유로였던 최저임금을 내년 7월까지 10.45유로(1만4307원)로 인상하기로 했다. 뉴질랜드는 올해 최저임금을 20달러(1만6060원)로 지난해보다 약 5.8% 올렸다. 스위스에서도 지난해 10월 주민투표를 통해 최저임금을 처음 도입, 최저시급 23스위스프랑(약 2만8681원)으로 정했다. 지난해 최저임금을 1엔(약 10원) 올린 것에 그쳤던 일본도 전국 평균 시급 1000엔(1만원)을 목표로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일본 전국 평균 시급은 902엔(약 9173원)이고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도시는 도쿄로 1013엔(약 1만170원)이었다. ━ “기업 설비 자동화 부추겨 일자리 감소 악화 우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론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선 덴마크·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EU 차원의 최저임금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별도의 최저임금제 없이 노사간 단체 교섭을 바탕으로 최저임금 시스템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 등지에선 일부 고용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맞서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한 미국에서도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의 생산설비 자동화 증대를 부추겨 근로자 실업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미국 의회예산국은 “연방 최저임금을 2025년까지 15달러로 인상하면 14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을 정도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2021.07.1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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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의 도전과 시련] 거침없는 화법·정책 탓에 민심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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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총선 압승 후 권위주의적 통치… 경쟁력 회복, 일자리 창출 등 개혁과제 산적 2017년 5월 14일 프랑스 대통령에 오른 에마뉘엘 마크롱(41)이 취임 1년 7개월 만에 위기에 처했다. 그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지지율은 그야말로 형편없이 추락했다. 마크롱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지지율은 취임 초기인 2017년 5월 조사 결과 최고 66%에서 최저 45%에 이르렀다. 하지만 취임 1년을 맞은 지난 5월 최고 47%에서 최저 33%로 떨어졌다. 지난 11월에는 최고 32%에서 최저 18%로 추락했다. 12월 들어 이뤄진 두 건의 여론조사 결과는 20~23%의 초라한 지지율을 보였다. 반면 그에 반대하는 여론은 74~76%에 이른다. 대중이, 프랑스 국민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 여론조사 결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 취임 1년 만에 여론 등 돌려 사실 마크롱 대통령에게 타격을 준 세력은 좌파도 우파도 극우파도 아니었다. ‘노란 조끼’로 불리는 세력이었다. 노란 조끼 시위는 처음에는 운전기사들이 주도해 시작됐다. 이들은 정부의 잇단 유류세 인상에 항의해 11월 17일 파리를 중심으로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유류세 인상은 단순히 운전으로 먹고 사는 기사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름값 인상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서민들도 함께 불만을 토해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불만을 토로하던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시위에 동참했다. 그러면서 노란 조끼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격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12월 1일에는 폭력사태로까지 번졌다. 이날 파리 중심대로인 샹젤리제 주변의 상점이 줄줄이 약탈당하고 여러 차량이 시위대의 화염병 공격으로 불탔다. 개선문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지와 조각상이 훼손됐다. 토요일마다 열려온 노란 조끼 시위는 11월 17일 1차 집회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무려 29만 명이 참가했으나, 2차 16만6000명, 3차 13만6000명, 4차 12만 명으로 차차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의 주장에 공감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인터랙티브가 12월 2일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긴급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72%가 ‘노란 조끼’ 시위대를 지지했으며 90%는 정부 조치가 사안에 대응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결국 마크롱은 12월 10일 파리에서 생방송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시위대가 주장한 내년 유류세 인상 계획을 백지화하고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전기·가스 요금을 동결했으며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강화도 유예했다. 서민 생활과 관련한 부문에서 사실상 마크롱이 노란 조끼 시위대에 두 손을 든 셈이다. 마크롱은 노란 조끼 시위에서 나온 다양한 요구를 상당수 받아들이고 통치 과정에서 발생한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다. 이날 담화에선 마크롱이 취임 이후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여 줄기차게 추진했던 정책의 상당수를 철회하는 내용이 담겼다.가장 눈길이 가는 대목은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월 100유로씩 인상하기로 한 부분이다. 프랑스 최저임금은 2018년 기준 9.88유로(약 1만2630원)으로 풀타임으로 일할 경우 월 수령액이 세금공제 전 기준으로 1498.50유로(약 191만5600원)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마크롱이 내년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 올리겠다고 한 것은 6.67% 인상에 해당한다. 올해 최저임금이 2017년에 비해 1.24%, 액수로 월 18유로 올랐던 점에 비해 마크롱이 이번에 제시한 인상폭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지금까지 최저임금은 물가에 연동해 인상돼왔다는 점에서 마크롱이 제시한 최저임금 인상안은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마크롱이 다급했다는 증거다. ━ 유류세 인상 유보했지만 부유세 부활 거부 프랑스에서 1970년 처음 도입한 최저임금제는 줄곧 논란의 대상이었다. 빈곤을 줄이고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인권 보장 장치라는 주장과 고용을 줄어들게 하고 기업 경쟁력을 악화시킨다는 주장이 맞섰다. 최저임금제 옹호자들은 최저임금 적용 노동자가 대부분 미화원, 유통 업체 근무자, 경비원 등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과 무관한 일에 종사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게다가 대부분 사회에서 필수적인 직종이라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반면 반대론자는 최저임금 상승이 노동비용 상승을 불러 이에 압박을 느끼는 기업이 고용을 줄이게 된다고 지적해왔다. 아울러 최저임금이 오르면 사회 전반의 임금 인상을 압박하고 이는 다시 최저임금 인상 압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유발한다고 우려해왔다. 이런 논란 속에 중도 입장을 유지해왔던 마크롱이 물가상승률을 훨씬 넘어서는 최저임금 인상안을 제시한 것은 정책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크롱이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를 지향하며 소외 계층에 따뜻한 눈길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그의 노선에 변화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이번 사태로 마크롱이 완전히 물러선 것은 아니다. 그는 최저임금 문제에선 양보했지만 시위대가 요구한 부유세의 부활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랑스에선 1980년대 사회당 정권의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년, 재임 1981~1995년) 대통령 시절 분배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부유세(ISF)를 만들어 지난해까지 보유 자산이 130만 유로(약 17억원)를 넘는 개인에게 물려왔다. 이는 가장 많은 부자가 해외로 이주한 나라가 프랑스인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부자 이민 상황을 보도한 ‘뉴 월드 웰스’에 따르면 프랑스는 2016년 거주 주택을 제외한 순재산이 100만 달러를 넘는 부자 1만2000여 명이 해외 이주를 택해 이 부문에서 달갑지 않은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그 다음이 9000명의 중국과 8000명의 브라질, 6000명의 인도, 6000명의 터키다. 프랑스는 2015년에도 1만여 명의 부자가 해외로 옮겼다. 특히 사회당 정권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2012년 연소득이 100만 유로를 넘는 고소득자에게 최고 세율 75%의 세금을 물리기로 하자 유명 영화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부자 증세에 반발해 프랑스 여권을 반납하고 벨기에를 거쳐 러시아로 이주하기도 했다.마크롱은 부유세를 ‘부동산 자산세(IFI)’로 영역을 축소하고 대대적으로 개편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마크롱의 명분은 여력이 있는 부유층과 외국 부자의 프랑스 진입과 투자를 촉진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에겐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반갑지 않은 별명이 생겼지만 마크롱은 개의치 않았다. 규제를 개혁해 프랑스 경제를 되살리는 것은 마크롱의 핵심 공약이었고 그와 과거의 좌우파를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했다.사실 젊은 마크롱이 지난해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해 강력한 권력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좌·우파와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를 복기해보자. 2017년 4월 23일(1차투표)과 5월 7일(2차 결선투표)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마크롱의 화려한 대관식이자 유럽 정치사에서 ‘제2의 프랑스 혁명’으로 불릴 정도로 격변을 연출했다. 마크롱은 1차 투표에서 24%(865만6346표)의 득표율을 올려 1위에 오른 데 이어 2차 결선투표에서 무려 66.1%(2075만3798표)를 득표해 압승을 거뒀다. 결선투표에서 맞붙었던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가 득표한 33.9%(1065만 3789표)의 배에 가까운 득표다.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수립 이래 정치·경제·사회 발전 방향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하며 정국을 좌우했던 좌파와 우파 모두 정치적으로 국민에 의해 ‘정리해고’ 당했다. 대선 1차 투표에서 우파 공화당이 후보로 내세운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는 20% 득표에 그쳐 3위에 머물렀다. 좌파 사회당이 내세운 브누아 아몽 전 교육부 장관은 한자리수인 6.4% 득표로 5위에 그쳤다. 당시 사회당 소속의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는 갖은 실정으로 집권 마지막 시기 지지율이 2%를 오르내렸지만 그런 대통령을 몰아세우며 사회당이 새롭게 옹립한 후보도 별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 대신 극좌정당인 ‘불복하는 프랑스’ 후보로 나온 장뤽 멜랑송 유럽의회 의원이 19.58%를 득표해 4위에 올랐다. 5공화국 이후 프랑스 대선에서 좌파와 우파, 정확히 표현하면 합리적인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 모두가 결선투표에 오르지 못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이어 2017년 5월 11일(1차투표)과 18일(2차 결선투표) 치러졌던 총선은 마크롱에게 권력의 ‘절대반지’를 안겨줬다. 프랑스 총선은 대선과 마찬가지로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경우 상위 1~2위 득표자가 결선투표를 치른다. 이 선거에서 마크롱의 ‘레퓌블리크 앙마르쉬!(전진하는 공화국)’는 하원에 해당하는 국민의회 의원 전체 577석 중 단독 과반수인 308석(53.38%)을 확보하며 압승을 거뒀다. 앙 마르쉬는 42석을 확보한 중도주의 정당 민주동맹 (UDF)과 연합해 모두 350석(60.7%)의 의석을 거느리며 국민의회의 중도연합 집권여당을 이루고 있다. 민주동맹은 2007년 프랑수아 바이루가 창당한 정당으로 좌우에 속하지 않고 중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앙 마르쉬와 공통점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대통령 선거와 마찬가지로 총선에서도 전통의 좌우파가 모두 몰락했다.우파는 충격에 휩싸였다. 직전까지 194석(27.1%)의 의석을 차지했던 공화당은 82석이 감소한 112석 확보에 그쳤다. 1차 투표 득표율은 15.77%(357만 3427표)에 불과했다. 우파연합은 공화당 112석, 민주당-무소속연합 18석을 비롯해 모두 136석(23.57%)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간신히 숨만 쉬는 형국이다. 지난해 초까지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대통령이 몸담았던 집권 좌파 세력은 더욱 초라했다. 직전 국민의회에서 280석(29.4%)을 차지했던 좌파 사회당은 250석이나 줄어든 30석 확보에 그쳐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1차 투표 득표율은 한자리수인 7.44%(168만 5677표)에 불과했다. 좌파 연합은 군소좌파 정당 소속 12석 등을 합쳐 모두 45석 확보에 머물렀다. 그야말로 처절한 몰락이다.문제는 이런 정치적인 승리가 마크롱의 권위주의적인 통치와 자세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마크롱이 12월 10일 담화에서 자신의 단점으로 지적돼왔던 훈계조의 직설화법을 사과했다는 점이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직설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마크롱은 거침 없는 화법과 행동, 정책으로 프랑스에서 ‘마뉴피터’로 불리기도 했다. 마크롱과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신 주피터를 합성한 이름이다. 마크롱의 언행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때는 ‘당당함’으로 평가 받았지만 신뢰와 인기를 잃자 비난의 대상이 된 셈이다. ━ 2017년 대선·총선에서 프랑승 좌파·우파 모두 몰락 사실 대선과 총선을 통해 이런 마크롱이 등장한 배경에는 고장난 프랑스 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가 마크롱을 부른 셈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 프랑스 실업률은 무려 10%에 이르렀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25.9%나 됐다. 구직자가 600만 명을 넘었다. 일자리는 기근상태였고 실업자는 넘쳐났다. 영국이 4.65%(청년실업률 13.1%), 독일이 3.9%(6.4%)인 것과 비교해도 프랑스의 고용 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2016년 경제성장률은 1.2%에 불과해 영국의 1.8%, 독일의 1.9%보다 낮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의 명목금액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2조4632억 달러로 세계 6위다. 미국(18조5691억 달러)·중국(11조2182억 달러)·일본(4조9386억달러)·독일(3조4666억 달러)·영국(2조6291억 달러) 다음의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지난해 인도 다음인 7위로 밀려났다. 이런 열악한 경제가 만든 대중의 불만과 울분이 마크롱을 대통령 자리에 앉힌 원동력의 하나다. 대중은 생활고의 원인이 정파의 이익만 앞세워 정쟁에 몰두했던 좌우 정치인의 기득권에 있다고 보고 선거를 통해 이들을 몰아내고 마크롱을 옹립한 셈이다. 좌파와 우파 모두가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 희망도 주지 못하는 ‘정치적 무기력증’에 빠지자 국민이 새로운 정치실험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집권한 마크롱은 자신의 중도 정책을 실천에 옮겼다. 경제 정책에선 다분히 우파적이다. 과거 앵글로색슨 세계의 전유물이던 경쟁력 강화를 대놓고 외쳐왔다. 이는 국민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기반을 튼튼히 하려면 경쟁력 있는 프랑스 기업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사회정책에선 소외계층을 끌어안는, 프랑스적인 온정주의와 사회적 연대를 강조해 왔다. 프랑스 대혁명의 3대 정신인 자유·평등·우애와 일맥상통한다. 사회적으로는 다문화주의를 외치고 이민자와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선 좌파나 자유주의자들과 생각이 통한다. 그는 현실적으로도 이민자와 난민이 프랑스의 경쟁력 강화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실업난을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마린 르펜 같은 극우정치인과는 상극이다. 마크롱은 이런 중도정책을 통해 경쟁력이 우파의 전유물이 아니듯 온정주의도 좌파의 독과점 구호가 아님을 강조한 셈이다. 좌파의 정책이든, 우파의 기획이든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받아들이겠다는 점에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던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苗白描論)’을 떠올리게 한다.마크롱은 이를 위해 국가 예산을 고용을 늘릴 직업교육 등에 전략적으로 투입하는 대신 공무원·준공무원을 12만 명을 줄여 재정지출 축소를 시도해왔다. 규제완화와 국영기업 민영화의 깃발도 올렸다. 우파 신자유주의자와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과거 탄광을 폐쇄·민영화하고 노동조합을 해체하는 사회적 고통을 감내하면서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던 영국의 ‘매거릿 대처형 혁명’을 프랑스에서도 해보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런 혁명적인 치료주사를 맞지 않으면 프랑스가 빈사상태에서 회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실업률을 10%에서 7%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잡고 일자리 마련 정책을 최우선 순위에 놓았다. 그는 개혁하되 함께 앞으로 나가자고 외쳐 왔다. 문제는 그의 이런 정책에 좌파는 친기업적이라고 불평하고 우파는 온정주의라고 비판해왔다는 점이다. 아직 뚜렷한 정책 성과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좌우 양쪽에서 십자포화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가 등장하면서 마크롱은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됐다.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에서 마크롱만큼 정치적인 격변 속에 혜성 같이 등장한 정치인이 없었다. 그럼 점에서 마크롱이 겪고 있는 지지율 하락과 노란 조끼 시위 사태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마크롱이 이런 상황을 헤치고 계속 개혁의 깃발을 들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한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

2018.12.16 17:34

9분 소요
[헛도는 자영업자 대책] 정부 대책은 본질 외면한 대증요법

정책이슈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 소상공인 요구사항 빠져… 영업비용 증가보다 매출 감소가 더 큰 문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일자리안정자금 대상 확대와 근로장려금·사회보험료 지원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금융 지원 5조원을 제외하고도 혈세에서 직접 지원하는 액수만 ‘7조원α’에 달한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안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불 끄기에 급급한 임시방편에 매달린다는 비판이 거세다. 백화점식 대증요법이 아닌 자영업 구조조정과 이에 대비한 안전망 확충, 대체시장 확보 등에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영국 등지에서 논란인 ‘소매종말’이 자영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치밀한 연구·분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생태계가 흔들리는 위기의 자영업, 솔로몬의 해법은 무엇일까.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담 완화를 위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8월 22일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내놓으면서 꺼낸 말이다. 당정은 그러면서 이번 대책을 통해 2019년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7조1000억원 이상 지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4조8000억원보다 최소 2조3000억원 늘어난 규모다.그런데 숫자를 들이대며 ‘통 크게 썼다’는 정부의 생색과는 달리 현장의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하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도, 전문가들도 이번 대책을 두고 ‘효용성이 크지 않다’ ‘핵심이 빠진 응급처방이다’라고 비판한다. “몰락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살리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이라던 정부의 얘기와 정반대다. 왜일까. ━ 인건비·임대료·카드수수료에 초점 이번에 당정에 내놓은 자영업자 대책은 단기적인 자금 지원과 경영비용 부담 경감이 핵심이다. 장사가 안 돼 먹고 살기 힘든 자영업자들을 위해 재정을 투입해 각종 운영 비용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원 규모를 강조하기 위해 직접 지원과 간접 지원으로 분류하거나 편의상 관련 부처·법령별로 묶어 설명했지만, 정책 수용자 입장에서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를 보면 이런 특징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정부가 잡겠다는 자영업자의 첫 번째 영업비용은 인건비다. 이번 대책에서 여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부분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사업주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마련된 ‘일자리 안정자금’을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1인당 월 13만원에서 15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지원 대상도 늘린다. 현재 30인 미만 사업장뿐 아니라 30∼300인 사업장, 60세 이상 고용 위기지역 근로자, 30인 이상 장애인 직업 재활시설 근로자 등으로 확대한다. 지난해와 올해 잇단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 결정으로 불만이 커진 이들을 다독이려는 의도가 담겼다.두 번째는 임대료다. 이번 대책에는 환산보증금 상향 조정이 포함됐다. 환산보증금이란 자영업자가 상가나 건물을 빌릴 때 건물주에게 내는 보증금과 월세 환산액(월세×100)을 합한 금액이다. 이 금액에 따라 상가 임대차 보호범위가 결정된다. 보호 대상 상가에는 연 5%의 임대료 인상 제한이 있다.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기간도 현재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된다. 현재 서울시의 경우 6억1000만원이면 보호 대상이 된다. 정부는 서울 기준 환산보증금을 30∼50%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상가 임대차 보호대상을 늘리겠다는 것이다.세 번째는 대출 이자다. 정부가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저금리 대출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기업은행을 통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2% 미만의 초저금리 특별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1조8000억원 규모다. 카드 입금액으로 대출금을 자동 상환하는 특별대출도 2000억원 신규 제공된다. 또 소상공인 대상 지역신보 보증 규모를 올해 19조5000억원에서 내년 20조5000억원으로 확대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도 2조1000억원에서 2조6000억원으로 늘린다. 약 2% 수준인 특별대출로 3000만원을 빌리면 연 39만원,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을 통해 약 2.5% 이자율로 긴급융자자금을 7000만원 대출하면 연 48만원의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 ━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 네 번째는 세금이다. 공제 혜택을 늘리거나 사업자가 부담하는 준조세 성격의 사회보장비용을 줄여주는 방식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4000억원 증액해 두루누리(국민연금·고용보험료) 최대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일자리 안정자금 대상 건강보험 신규 가입자 보험료를 50% 경감하고 1인 자영업자의 경우 건강보험료를 줄인다. 또 음식점 등이 면세농산물 구입 시 적용하는 의제매입세액공제, 연 매출 10억원 이하 사업자 대상 카드매출 세액공제, 성실사업자의 의료비와 교육비 지출에 대한 15% 세액공제의 한도와 기한을 늘린다. 종합소득 6000만원 이하의 무주택 성실사업자도 월세의 10% 세액공제를 받는 방안도 담겼다.다섯 번째는 자영업자들이 카드사에 내는 가맹수수료다. 정부는 결제대행업체(PG)를 이용하는 영세·중소 온라인 판매업자에 대한 카드 수수료율을 3.0%에서 매출 규모에 따라 1.8∼2.3%로 인하하기로 했다. PG사를 이용하는 개인택시사업자의 수수료도 1.5%에서 1.0%로 내린다. 또 영세 사업자에 0% 수수료를 작용하는 소상공인 간편결제 ‘제로페이’를 내년까지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이용금액에 대해 40%를 소득공제 한다. 온누리상품권(2조원)과 지역상품권(3000억원) 등 상품권을 ‘제로페이 포인트’로 전환하도록 지원한다. 공무원 복지포인트를 ‘제로페이 전용 포인트’로 지급하고 공공기관의 업무추진비도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언뜻 보면 자영업자를 위한 꽤 많은 방안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현장의 분위기가 차가운 건 일차적으로는 최저 임금 차등 적용이나 카드수수료 인하 등 업계의 핵심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영향이 크다. 정부 대책 발표 후 소상공인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최저임금제도 개선의 직접적 방법인 5인 미만 규모별 소상공인 업종 최저임금 차등화 방안에 대한 대략적인 로드맵 제시도 없는 이번 대책은 본질을 외면한 일시적인 처방”이라고 혹평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 대책에 대해 “편의점주들이 요구 ‘편의점 매출에서 담배 세금 제외’ 등이 반영되지 않은 속 빈 대책에 불과하다”며 “한마디로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비판했다.그러나 이들 일부 자영업 단체·협회의 의견과는 별도로, 현장의 목소리와 통계를 통해 나타나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자영업자의 영업비용 감소를 통한 연명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작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나 구조조정의 안전망 확충에는 미흡했다는 점이다. 서울 영등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희영씨는 “직원들 월급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건 매상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이런저런 지원을 한들 지금처럼 장사가 안 되면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아무리 줄여봤자 자영업자의 매출 자체가 줄어들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 영세 도소매 업체 매출 2년 새 반 토막 실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분석을 보면 올 1분기 전국 자영업자 한 곳당 월평균 매출은 3372만원으로 지난해 1분기 월평균 3846만원에 비해 12.3%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주요 카드 3사로부터 받은 가맹점 매출액 통계를 기반으로 현금 결제 비중을 반영해 전체 매출액을 추산했다. 중기부는 이 통계에 대해 “소진공의 상권정보시스템은 신용정보회사 나이스(NICE)에서 조사한 매출흐름일 뿐 정확한 소상공인 통계자료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통계청 ‘도소매업조사’에 따르면 직원 5인 미만 도소매 업체의 매출은 2011~2016년 10% 증가했다. 음식점·숙박업의 매출은 31% 늘었다.하지만 자영업자를 매출 규모를 기준으로 보면 상황이 전혀 다르다. 같은 조사에서 연매출 5000만원 이하 영세 도소매 업체의 전체 매출액은 2016년 3조8000억원으로 2014년 7조8000억원(-51.4%)으로 떨어졌다. 연매출 5000만~1억원 사업자의 변동폭(-47%)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전체 전체 도소매 매출은 25% 증가했다. 도소매 업체 중에서도 연매출 10억원 이하 업체 매출이 감소하는 동안, 매출이 그보다 많은 업체의 매출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다. 음식점·숙박업 사정도 비슷하다. 같은 기간 연매출 5000만원 업체와 5000만~1억원 업체의 매출이 각각 60%, 50% 줄어드는 동안 1억원 이상 매출 업체의 매출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건 자영업자들의 영업이익이다. 정부의 설명대로 영업비용 증가가 자영업자 소득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이라면 매출보다 영업비용의 증가폭이 더 커야 한다. 실제 직원 5인 미만 도소매업은 2011~2016년 업체당 매출이 10% 느는 동안 영업이익은 14% 증가했다. 매출 규모를 기준으로 영세 도소매·음식점·숙박업을 보면 이들 업종의 연매출 1억원 이하 업체의 영업비용은 같은 기간 24% 감소했다. 매출 감소폭(-28%)보다 변동폭이 적은 만큼 영업비용 부담이 커진 셈이다. 또 본지가 통계청 서비스업조사를 토대로 2006~2016년 50개 생활밀접업종의 매출과 영업비용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자영업의 평균 매출이 75% 증가하는 동안 영업비용은 112%가 늘었다. 매출보다 영업비용이 훨씬 큰 폭으로 늘면서 평균 영업이익은 25% 감소했다. ━ 구조조정 안전망 확충하고 대체시장 물색해야 하지만 이게 단순히 영업비용만의 탓일까. 시각을 바꿔보면 영업비용이 늘어난 게 아니라 매출이 적게 오른 게 문제일 수 있다. 물가나 임금상승으로 인한 영업비용을 따라갈 만큼 매출이 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지금처럼 비용 줄이기에 ‘올인’하는 정부의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이런식의 지원은 오히려 자영업자의 공급 과잉을 부추기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계상황에 놓인 자영업자도 적기에 퇴출하지 못한 채 지원에 의지해 ‘좀비’ 형태로 유지될 수 있는 문제점도 갖고 있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은 연명치료를 위한 모르핀 처방은 되겠지만, 그 다음에 와야 할 경쟁력 강화나 자활·재활 방안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자영업 위기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김영란법’ ‘최저임금’ ‘갑질’ ‘미투운동’ 등 그때 그때의 이슈를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자칫 사회 갈등을 지나치게 키울 수 있다”며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다른 경제 연구기관 관계자는 “구조적 변화로 인해 시장에서는 이미 도소매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며 “자영업자들의 단기적인 요구를 받아서 자잘한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할 게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대신 여기서 탈락되는 이들을 흡수할 대체 시장과 안전망을 마련하는 데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자영업자 폐업의 주요 문제점 및 정책적 지원 방안’ 보고서는 “쇠퇴기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상공인재기지원 세부사업(희망리턴패키지, 재창업 패키지)의 확대를 통해 폐업위기의 영세 소상공인이 재창업 시에도 과밀한 업종으로 진입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소상공인 공제 가입확대 및 영세 소상공인 대상 사회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가입 확대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한편, 자영업자의 대표격인 도·소매업과 음식점·숙박업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진의 원인이 다르면 해결책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소매 자영업자의 부진은 온라인쇼핑과 대형마트 등으로 수요가 이동한 영향이 크다. 실제 국내 소매 판매액 중 온라인쇼핑의 비중은 2016년 6월 16.4%에서 올해 6월 23%로 증가했다. 2006~2016년 전체 도소매업 시장 규모는 110% 커졌는데, 여기엔 181% 커진 무점포(전자상거래 등) 업체의 영향이 컸다. 반면 오프라인 소매 점포의 폐업은 늘고 있다. 동네 철물점, 장난감가게, 이불가게가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이런 변화는 국내에서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이미 ‘소매종말’이라는 형태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상이다(관계 기사 34쪽).이에 비해 음식점·숙박업의 어려움은 온라인 쇼핑 같은 소비패턴 변화보다는 연쇄 효과로 인한 공급 과잉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된다. 도소매 업종에서 폐업하는 이들이 늘고, 다른 업종으로의 진출이 어려워지자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음식·숙박업으로 창업이 몰린 것이다. 더구나 베이비부머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늘어난 자영업자 대다수는 바뀌는 환경에 취약한 장년·노년층이다. 50대 이상 자영업자 비율은 2007년 8월 47.1%에서 지난해 8월 58.9%로 커졌다. 이들 간 차별되지 않은 자영업은 출혈경쟁만을 부추겨 수익성을 떨어뜨린다.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2014년 19만개에서 지난해 23만 개로 증가했다. 심지어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 업체도 소매업 부진을 피해 그나마 장사가 된다는 맛집으로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 도소매는 ‘소비패턴 변화’, 음식점은 ‘과당 경쟁’ 정부가 내놓은 이번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책에는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는 여러 방안이 ‘조용히’ 포함됐다. 다만 투입하는 예산의 규모나 비중을 봤을 때 핵심 대책에서는 벗어나 있다. 정부는 소상공인 교육 등 지원 규모를 내년에 200억원으로 올해의 두 배로 확대한다. 무분별한 창업을 막고 창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사업자등록 이전에 경영·기술 등 창업교육을 지원한다. 판로 지원을 위해 공영홈쇼핑 등에 소상공인 전용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홈쇼핑 입점 수수료도 내년에 기업당 1500만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편의점 과당 출점경쟁 자율 축소를 유도한다. 온누리상품권 발행을 늘리고, 정부와 지자체 구내식당 의무 휴무일을 늘리는 것도 자영업자의 경영개선안에 포함됐다.자영업자 일부를 노동시장의 편입시키려는 넓은 의미의 구조조정 대책도 담겼다. 전통시장 시설 지원에 3000억원을 투입하고 재창업·재취업 등 재기 지원을 위해 지원금을 올해 115억원에서 400억원으로 늘린다. 자영업자가 근로자로 전환할 때 지원하는 폐업·철거 비용과 대상도 확대한다. 전직 장려 수당은 75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한다.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중위소득 50% 이하)가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시 월 30만원 한도로 3개월 간 구직촉진수당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극심한 취업난이 지속되는 상황이라, 일자리 문제가 얼마나 빨리 개선되느냐에 따라 이 대책의 효과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2018.09.02 09:52

9분 소요
채인택의 혁신을 일군 아시아의 기업인(10)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전문가 칼럼

미국 포브스 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아시아 최고 부자는 중국 온라인 유통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 겸 CEO인 마윈(馬雲)이다. 리카싱 회장은 3위를 차지했다. 홍콩은 '리카싱의 도시'로 불릴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리카싱(李嘉誠·89, 이하 광둥어, 표준중국어로는 리자칭) 회장은 오랫동안 아시아와 중화권 제1의 부호로 이름이 높았다. 2017년 11월 현재에도 그는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인의 한 명이다. 추정 재산이 333억 달러에 이른다. 주가 등에 따라 매일 몇 억 달러씩 왔다 갔다 한다. 미국 포브스 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아시아 최고 부자는 중국 온라인 유통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 겸 CEO인 마윈(馬雲)이다. 재산이 435억 달러(약 48조 원)로 세계 14위다. 2위는 인도의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회장으로 재산이 348억 달러에 이른다. 리 회장은 3위를 차지했다. 홍콩 1위에 중화권 2위다. 이렇듯 리 회장은 중화권과 아시아의 대표적인 경영인이다. 특히 홍콩은 ‘리카싱의 도시’로 불릴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홍콩 사람들은 농반진반으로 “홍콩 사람이 1달러를 쓰면 그 중 5센트는 리카싱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는 거대한 기업제국을 이루고 있다.리 회장은 현재 3가지 직책을 보유하고 있다. 청쿵허치슨홀딩스(長江和記實業)와 청쿵그룹(長江實業集團), 그리고 리카싱재단의 회장이다. 청쿵허치슨홀딩스와 청쿵그룹 모두 지주회사다. 리 회장은 2015년 3월 청쿵실업(長江實業)과 자회사인 허치슨왐포아를 합병하면서 이 두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청쿵실업은 리 회장이 22세 때인 1950년 친척들로부터 5만 홍콩달러를 빌려 플라스틱 회사로 처음 창업한 기업이다. 허치슨왐포아는 리 회장이 1979년 인수한 영국계 글로벌 물류업체다. 두 공룡 기업의 합병 규모는 240억 달러에 이른다. 21세기 기업합병 사상 최대 수준인 ‘세기의 합병’이다. 합병 직전 미화를 기준으로 청쿵실업이 184억 달러, 자회사인 캐나다 허스키에너지가 75억 달러, 허치슨 왐포아가 13억 달러, 허치슨 텔레콤이 1억 7200만 달러, 청쿵인프라스트럭처가 4180만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현금과 기타 자산도 30억 달러에 이르렀다.리 회장은 두 공룡 기업을 합친 뒤 비부동산 부문의 지주회사는 청쿵허치슨홀딩스가, 부동산 분야의 지주회사는 청쿵그룹이 각각 맡게 했다. 청쿵허치슨홀딩스는 캐나다 허스키 에너지와 영국 이동통신회사 쓰리, 그리고 전 세계 50여 개 국에 있는 글로벌 자회사를 모두 맡겼다. 청쿵그룹은 과거 청쿵실업과 허치슨왐포아의 모든 부동산 자산을 담당하면서 홍콩 관련 사업을 전담하도록 했다. 영문 약자로 청쿵허치슨은 CKH로 청쿵은 CK를 쓴다. 청쿵실업의 지분 43.24%를 보유했던 리카싱 일가는 합병 이후 청쿵허치슨홀딩스와 청쿵그룹의 지분을 총 30.15% 얻었다. 리카싱의 거대한 제국이다. 당시 합병으로 홍콩증시에서 청쿵실업 주가는 13.5%나 올랐다.장남인 빅터 리(李澤鉅·51)가 청쿵그룹의 부회장을 맡아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리 회장은 지난 6월 90세가 되는 내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제 보이는 것 너머를 생각하는 완숙의 아시아 경영인이다. 리 회장의 차남 리처드 리(李澤楷·49)는 홍콩 통신회사인 퍼시픽 센추리 그룹(PCG)을 창업해 운영했다. 다국적 정보통신 지주회사인 PCCW(電訊盈科有限公司)의 회장도 맡고 있다. 13세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탠퍼드대를 다닌 차남은 자립하라는 부친의 지시에 맥도널드에서 일하거나 골프장 캐디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2세를 제대로 된 경영인으로 키운 것도 리 회장의 업적이다. ━ 22세에 창업해 플라스틱 조화 팔아 리카싱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빈손으로 출발해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다 근면성과 창의성으로 ‘아시아의 꿈’을 이뤘다. 리 회장은 1928년 광둥(廣東)성 동부의 차오저우(潮州)에서 태어났다. 리 회장은 중국 광둥(廣東)성 차오저우(潮州)사람이다. 차오저우는 상인과 화교로 유명하다. 역사적으로 ‘조주 상인’으로 이름 높았다. 조주 상인은 근면성과 개척정신, 그리고 신용에서 최고로 통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조선 고종 17년(1880년) 중국 차오저우 상인이 충청도 서부 비인현(지금의 서천군 비인면)에 표류한 기록도 있다. 조주 상인들은 중국 대륙 각지를 오가는 기존 항로에다 이른바 ‘香(홍콩)-星(싱가포르)-暹(태국)-汕(광둥성 산두)’ 항로 네트워크를 추가해 중국과 동남아 전역을 잇는 물자 교역을 활성화했다. 그런 조주 상인의 일부가 중국 북부에 와서 조선홍삼까지 구매해갔던 것이다.1928년생인 리 회장은 이런 차오저우의 선비 집안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청나라 말기 글을 읽는 선비였다. 아버지 리윈징(李雲經)은 교육자로 초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그런 집안에서 3남1녀의 장남으로 자란 리카싱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의 집안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으로 이주했지만 그해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살기가 힘들어지면서 1940년 홍콩으로 이주했다. 따지고 보면 리 회장은 홍콩에 난민으로 들어와 새 출발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주 2년 만에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졸지에 소년가장이 됐다. 학교는 사치가 됐다. 그의 정규교육은 중학교 1학년까지였다. 가게에서 장시간 근무를 하면서도 생활은 빈궁했다. ━ 성실과 개척정신, 신용의 조주 상인 22세가 되던 1950년 그에게 기회가 왔다. 친척들로부터 5만 홍콩달러를 빌려 플라스틱 회사를 차렸다. 조주 상인들은 젊은이에게 세 차례의 기회를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가장 긴 양쯔강(揚子江, 중국 표준어로는 창장(長江)이라고 함)처럼 길게 가라고 창업한 회사 이름을 청쿵공업유한공사(長江工業有限公司)로 정했다. 창장의 광둥어 발음이 청쿵(長江)이다. 그는 플라스틱으로 조화를 만들어 팔았다. 잡지에서 잘 만든 갖가지 조화의 사진을 보고 반해 장사가 될 것으로 보고 1957년 이탈리아까지 가서 플라스틱 조화 기술을 배워와 이를 사업화했다. 그의 예감은 적중해 사업은 갈수록 발전해 창업 7년 만에 회사를 세계 최대 플라스틱 조화 업체로 키울 수 있었다. 1971년 회사 이름을 청쿵실업으로 바꾸고 이듬해 홍콩증시에 상장했다. 홍콩증시 1호 기업으로 증시 번호가 ‘0001’이다.1979년 업종 다각화 작업에 착수해 영국계 물류업체인 허치슨왐포아를 사들이고 1985년에는 홍콩전력을 인수했다. 허치슨왐포아는 리카싱에 글로벌 기업인이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 전 세계 주요국의 항구에서 항만 컨테이너 사업을 벌이고 있다. 1979년 9월 리카싱이 인수한 허치슨왐포아는 전 세계 54개국에서 23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다국적 투자회사로 발전했다. 항만 관련 업무, 부동산과 호텔, 유통, 에너지와 인프라 및 투자, 통신의 다섯 영역에서 사업을 펼쳤다. 홍콩과 중국에 싱가포르와 동남아는 물론 전 세계로 투자와 사업 영역을 넓혔다. 페이스북에 1억20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 0.8%를 확보하기도 했다. 한때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다 2015년 합병으로 다시 태어났다.홍콩과 해외만 상대로 사업을 벌이던 리 회장은 1980년 광둥성 산터우(汕頭) 항만 개발을 시작으로 중국 본토로 영역을 확장했다. 1978년 시작된 덩샤오(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덩샤오핑은 시장경제 체제인 홍콩에서 기업을 일궈본 리 회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은 그의 경영 노하우와 커넥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개혁개방과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먼저 물류 인프라 구축이 시급했다. 그래서 리 회장을 통해 상하이 컨테이너 터미널, 경제특구의 핵심지인 광저우(廣州)-주하이(珠海) 간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그 뒤 선전 매립지 개발 사업을 시작으로 부동산 사업에도 활발하게 뛰어들었다. 이후 출판·방송·인터넷까지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 사업 다각화로 아시아 대표 기업인으로 중국은 리 회장에게 기회를 안겼고, 리 회장은 중국 경제발전을 위한 토대 구축을 도왔다. 리 회장은 1980년 리카싱 기금회를 설립해 의료·교육 등 중국의 공익 사업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리 회장은 특히 교육 분야에 많은 기부를 해왔다. 베이징·난징·뤄양·청두·톈진·광저우·시안·충칭·홍콩 등 수많은 대학을 설립하거나 지원했다. 베이징에 동양 최대 규모라는 둥팡광장(東方廣場)을 만들어 국가에 헌납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반가워할 수밖에 없다.주목할 점은 청쿵허치슨홀딩스와 청쿵그룹 모두 기업 등록은 조세 천국인 케이먼 군도에 하고 본사는 홍콩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중국의 간섭이 보다 덜한 나라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리 회장이 홍콩과 중화권을 떠나 글로벌로 사업영역 확대를 본격화하는 신호로 해석하기도 한다.실제로 리 회장은 최근 몇 년간 중화권에 대한 투자는 줄이는 대신 글로벌 투자를 계속 늘려왔다. 2013년 이후 중국 수퍼마켓 체인인 바이자(百佳)에서 손을 뗐고 상하이 루자쭈이 오리엔탈파이낸셜센터(OFC)와 베이징의 잉커센터(盈科中心)를 매각했다. 2013년 이후 부동산을 계속 팔아치우는 것은 물론 중국 기업 투자 비중도 조절해왔다. 중국 대기업인 창위안(長遠)그룹의 지분도 팔아버렸다. 반대로 호주와 아일랜드·네덜란드·캐나다 등에서 기업과 각종 자산 매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홍콩의 불안한 정치상황을 염두에 두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전략적으로 손보고 있을 수도 있다.홍콩에선 최근 들어 경제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의 입김 속에 홍콩 정부의 기업 관련 규제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신용보장제, 연금 의무가입제, 차별금지법, 정부의 모기지 지원방안 등 새로 도입된 제도가 수두룩하다. 본토 당국의 요구와 기준에 맞추기 위한 움직임이다. 홍콩은 오랫동안 규제를 줄여 일자리를 늘리는 게 빈곤층을 줄이는 최선의 복지정책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제가 없었지만 최근 이를 도입했다. 빈곤층의 최소한도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여전히 최저임금이 없다. 홍콩이 새로운 환경을 맞으면서 리 회장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난민으로 출발해 중화권과 아시아권의 최고 경영인으로 우뚝 선 리카싱 회장은 내년으로 90세를 맞는다. 그 나이에도 새로운 경영 환경에 맞춘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 장렬하다.리 회장은 ‘인간미 있는 경영인’으로 존경받는다. 조주 상인의 후예답게 성실하고 검소한 생활로도 유명하다. 젊어서 세탁소나 가게 점원으로 일할 때 항상 시간을 15분 정도 당겨놓고 거기에 맞춰 살았다. 그렇게 평생을 남보다 먼저, 일찍, 재빠르게 움직여왔다. 낡은 양복과 구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중국 공산당도 그런 그를 ‘자본주의 세계의 기업인’으로만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덩샤오핑이 그를 개혁개방의 홍콩 파트너로 삼은 까닭일 것이다.리 회장은 그렇게 아낀 돈으로 투자와 기부를 동시에 해왔다. 특히 제조업으로 번 돈으로 홍콩의 목 좋은 부동산에 투자해 돈을 불렸다. 영국 식민지 시절 도시를 확장할 수 없었던 홍콩의 부동산은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가격이 폭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의 예견은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홍콩에서 부동산으로 번 돈을 대륙에 투자해 중국 경제 발전의 초석을 쌓았다. 자신도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윈윈이다. 그와 함께 일한 사람은 모두 그의 덕을 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심지어 30년간 그의 차를 몰았던 운전기사가 그의 통화내용에서 얻은 부동산 정보를 바탕으로 조금씩 투자를 했더니 노후를 지내고도 남을 이익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온다.‘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욕심이 많고 인간미가 없는 사람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라는 그의 조언은 비즈니스의 금언으로 남았다. 갈수록 인간과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경영 환경이 정착하고 있는 요즘 특히 귀 기울일 대목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비롯한 미국과 유럽의 경영대학원에서 아시아의 대표 기업인으로 그를 연구한 이유일 것이다.※ 채인택은… 중앙일보 피플위크앤 에디터와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국제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기술, 혁신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다.

2017.11.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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