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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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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글로벌 무대 누비며 부산엑스포 유치 총력

산업 일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글로벌 무대를 누비며 2030 부산 세계박람회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주미한국대사관 주관으로 열린 아프리카 및 카리브해, 태평양 연안 주요국 주미대사 초청 행사에 참석했다.정의선 회장은 조태용 주미한국대사와 함께 각국 대사들에게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를 추진하는 한국과 부산의 비전을 강조하며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요청했다.주미한국대사 관저에서 열린 초청행사는 아프리카 및 카리브해, 태평양 연안 국가들과 교류협력을 돈독히 하고, 부산세계박람회 주제와 개최 의의 등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다.아프리카에서는 말라위, 말리, 모리셔스, 부룬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토고,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가이아나, 바베이도스, 바하마, 세인트키츠네비스, 앤티가바부다, 태평양 연안에서는 마셜제도 등 12개국 주미대사들이 참석했다.조태용 주미한국대사는 환영사를 통해 “부산은 대규모 국제행사 경험이 많은 준비된 국제 도시로서 정부, 기업, 시민 등 다양한 국제사회 일원들과 함께 2030년 해양과 기후변화에 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과 각국간 우호협력 확대 및 부산세계박람회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부탁했다.정의선 회장은 각국 대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부산세계박람회 개최의 공감대 형성에 주력했다. 현대차 장재훈 사장, 호세 무뇨스(Jose Munoz)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사장), 신재원 사장도 자리를 같이했다.정의선 회장은 “세계는 기후변화 위기와 국가 간 격차 확대 등 복합적인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할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며,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를 주제로 준비 중인 부산세계박람회가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이어 “한국은 다양한 위기극복과 단기간에 경제성장 등을 이뤄낸 경험을 바탕으로 신흥국과 선진국 사이에 교량역할이 가능하다”며 “한국의 경험과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글로벌 과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 협력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경쟁력 강조한 정의선정의선 회장은 이어 부산의 경쟁력을 소개하며, 부산이 세계박람회 의미 구현을 위한 최적의 도시임을 설명했다.부산은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교통과 물류의 핵심 허브인 동시에 세계적 수준의 관광 인프라와 K-컬처 등의 문화콘텐츠 허브로 2002년 아시안게임을 비롯해 2005년 APEC 정상회의, 2014년과 2019년 한·아세안 정상회의 등 다수의 대형 국제행사 개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이와 함께 정의선 회장은 행사에 참석한 각국 주미대사들과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광범위한 협력, 그리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전동화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미래 자동차산업 등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눴다.고품질의 친환경 전기차 보급, 충전 인프라 구축 등 글로벌 전기차 생태계 확산을 위한 현대차그룹의 리더십도 소개했다.또 자동차 인재 육성을 위한 현지 유수 대학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과 교보재 지원 등의 산학협력과 보건,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공헌 방안 등을 논의했다. 민간 외교관 역할 톡톡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10월 현대차·기아의 유럽 생산거점이 위치한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연이어 방문해 양국 총리를 만나 부산세계박람회 유치활동을 벌였다.현대차그룹은 해외 현지방문과 방한인사면담 등을 통해 20여 개국 고위급 주요 인사들을 40여회 이상 접촉해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전폭적인 지지를 부탁했다.현대차 장재훈 사장은 지난해 10월 바하마, 파라과이, 칠레 3개국을, 기아 송호성 사장은 지난해 9월과 10월에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모잠비크, 짐바브웨, 세르비아, 알바니아, 그리스 등 6개국을 방문했다.현대차그룹은 다음 달 2일~7일까지 예정된 국제박람회기구(BIE)의 부산 현지실사 기간에는 그룹의 온·오프라인 역량을 가동해 전국적인 관심과 열기를 결집하는 데 집중한다는 계획이다.세계박람회 실사단은 후보국의 유치역량과 준비수준 등을 심층 평가해 실사 보고서를 작성하며, 여러 평가 항목 중에서도 유치 지원국의 국민적 열기와 지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유치 위해 글로벌네트워크 전방위 활용정의선 회장의 적극적인 홍보와 함께 현대차그룹 역시 회사 차원에서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21년 8월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그룹차원의 전담조직인 ‘부산엑스포유치지원TFT’를 구성했으며, 전 세계에 펼쳐져 있는 그룹 글로벌 네트워크와 전세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국제 행사 등을 활용해 부산 유치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현대차그룹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3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 일명 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 제네시스 G80·GV70 전동화 모델 등 총 58대를 행사 운영 차량으로 제공했으며, 차량에 부산세계박람회 홍보 문구를 랩핑해 포럼에 참석한 각국 주요 인사와 현지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세계박람회 개최 후보지인 부산을 알렸다.또 2030 부산세계박람회 비전과 한국 문화를 알리는 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행사에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 로고가 부착된 투명 유리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그 안에 콘셉트카 제네시스(Genesis X)’를 특별 전시해 부산 유치활동에 힘을 더했다.작년 11월 파리에서 개최된 제171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기간에는 파리 시내 주요 관광 명소에서 아이오닉 5, 코나 일렉트릭 등 부산세계박람회 로고를 랩핑한 친환경 차량을 운행하는 한편, 현지 판매 거점에 부산세계박람회 홍보 영상을 상영하는 등 현지 우호 분위기 조성에도 적극 나섰다.디지털 영역에서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링크드인 등 SNS 채널을 활용해 부산의 경쟁력과 미래비전 등을 담은 콘텐츠를 영문과 국문으로 지속 발행해 부산 유치를 위한 글로벌 붐을 조성하고 있다.현재까지 숏폼영상, 카드뉴스 등 부산이 세계박람회 개최 최적 도시임을 알리는 총 30개의 콘텐츠를 발행했으며, 글로벌 홍보 콘텐츠의 총노출수가 1억 2천만을 넘어서는 등 전 세계 네티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특히 미래세대의 상상력과 부산세계박람회 비전을 주제로 제작된 스토리텔링 영상 ‘씨앗들의 박람회’는 차별화된 유치 메시지로 유튜브 등의 SNS채널 노출수가 1천 5백만 회를 돌파했으며, 이 중 해외노출수가 1천만 회에 달하는 등 부산 유치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공감대 형성과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23.03.01 09:00

4분 소요
‘애플페이’ 韓 진출에…삼성전자, 삼성 페이 지원국 늘린다

산업 일반

삼성전자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삼성페이'와 생체인증 서비스 '삼성패스'를 통합한 '삼성 월렛'을 연내 13개국에서 추가로 선보인다고 14일 밝혔다. 출시 대상 국가는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스위스, 카자흐스탄, 쿠웨이트, 바레인, UAE, 오만, 카타르, 남아프리카공화국, 베트남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이 서비스를 지난 6월 한국, 중국,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먼저 출시했다. 국내에서는 기존 '삼성페이' 애플리케이션에 삼성패스 서비스를 통합하는 형태로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삼성 월렛은 ▶집이나 자동차 열쇠를 대체하는 '디지털 키' ▶가상자산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 ▶항공권·영화표 등을 보관하고 사용할 수 있는 '티켓' 기능 등을 제공한다. 모든 기능은 자체 보안 플랫폼인 '삼성 녹스'에서 보호하며, 민감한 개인정보는 기기 내 별도의 보안 영역에 저장한다. 앞으로 삼성전자는 신뢰할 수 있는 다양한 파트너·개발자들과 협력으로 월렛 생태계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지니 삼성전자 MX 사업부 디지털라이프팀 부사장은 "더 많은 갤럭시 사용자들이 디지털 월렛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건엄 기자 Leeku@edaily.co.kr

2022.10.14 17:04

1분 소요
북한 유엔 대표부 “대사급 관리 신변 위협받았다”

CEO

지난 4월 정체불명 남자가 뉴욕의 아파트에 소포 남기고 사라졌다며 주재국인 미국의 안전조치 미흡에 항의 유엔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는 자국의 고위 외교관 중 한 명이 지난 4월 뉴욕에서 신변을 위협받았다고 주장했다. 유엔 본부 주재국으로서 미국의 역할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조사하는 유엔 주재국과의 관계위원회(Committee on Relations with the Host Country) 보고서는 지난 6월 13일 열린 293차 회의에서 “북한 대표부와 관계 인사들의 안전”과 관련해 북한 대표가 항의했다고 전했다.보고서는 이렇게 기록했다. “관계위원회의 북한 대표는 지난달(5월) 북한 대표부가 대사급 고위 인사가 당한 사건과 관련해 관계위원회 회의를 소집해달라고 긴급히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4월 29일 저녁 정체불명의 남자가 (북한 대표부의) 고위 관계자가 거주하는 빌딩에 들어가 아파트에 작은 상자를 놓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으며, 그 상자에 협박 편지와 알코올이 담긴 작은 병 2개, 고위 관계자가 이용하는 주차장에 분필로 ‘X’ 표시가 된 사진 3장이 들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편지는 고위 관계자가 비밀 연락원을 통해 특정 단체와 협력할 것을 요구했으며, 응하지 않을 경우 그의 신변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협박 편지를 받은 북한 인사는 즉시 뉴욕 경찰에 신고하고 사건 관련 형사와 여러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 대표부는 두 차례 편지로 수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지만 “수사에 관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보고서는 “관계위원회의 북한 대표는 또 이 사건이 북한 대표부의 고위 관리를 위협하는 명확한 도발 행위이며 대표부와 소속 인사들의 안전과 직결됐다며 우려를 표했다”고 기록했다. “그는 유엔 본부 주재국으로서 미국이 모든 유엔 대표부 관계자들의 개인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북한 대표부의 확고한 믿음이라고 언급했다.”관계위원회 회의에서 북한 대표는 “범인을 색출해 법정에 세우기 위한 즉각적인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은 뉴욕시에 주재시의 지위를 부여한 1947년의 유엔 본부 협약과 외국에서 외교관에게 특별보호를 제공하는 1961년의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의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북한은 두 협약에 모두 서명하고 비준했다. 이어 북한 대표는 “관계위원회는 이 사건에서 비롯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주재국에 물어야 한다. 주재국은 한가롭게 있을 게 아니라 즉각적인 수사를 통해 범죄자를 추적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시리아·쿠바·이란·러시아·볼리비아 대표도 북한의 우려에 동조하며 공식 조사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함께 자국 외교관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미국의 비자 제한 정책도 비판했다. 미국 대표는 “주재국으로서 유엔 본부 협약 아래 유엔 관계자들의 안전과 주재국의 의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우려가 제기된 경우 현지 사법 당국과 일상적으로 조율해왔다”고 말했다. 또 북한 관리가 관련된 이번 사안의 경우 뉴욕 경찰이 수사를 개시했다고 설명했다. 뉴욕 경찰의 국제 문제 책임자도 같은 취지의 반응을 내놨다.관계위원회의 코르넬리오스 코르넬리우 위원장(키프로스)은 미국 대표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의 반응을 환영하면서 수사를 독려하고 관련 정보를 관계위원회에 통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엔 관계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주재국의 노력을 인정하고, 주재국이 유엔 대표부의 기능 저해를 방지할 모든 조치를 계속할 것을 기대한다.”올해 들어 북한 외교관이 해외에서 표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하노이 정상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 대사관에 흉기와 모형 총기를 든 복면 괴한들이 침입해 대사관 직원들을 결박하고 컴퓨터 하드드라이브와 휴대전화, 이동식 메모리(USB)를 탈취했다.스페인 언론은 처음엔 공식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배후로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나중에 북한 반대 단체인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이 스페인의 북한 대사관 습격 당시 장면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며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자유조선은 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암살된 뒤 그의 아들 김한솔을 제3국으로 피신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타도를 외치는 이 단체는 나중에 ‘해방 이후 자유조선’을 방문할 때 필요하다며 익명의 블록체인 비자도 발급했다.그러나 자유조선은 최근 들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지난 9월의 마지막 글은 “Crocus 383765 459165 453666 486023 001000 Aster 826757 909256 195647 197706 150214”라는 수수께끼의 단어와 숫자 나열이 전부였다. 전문가들은 그것이 조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자유조선 일원인 크리스토퍼 안은 지난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침입한 혐의로 스페인 법원에 의해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가, 지난 4월 미국에서 체포된 뒤 보석으로 석방됐다.-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 “조미 대화의 창구 점점 더 좁아져” - 북한 외무성, 미국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비핵화 협상 가로막는다고 반발 미국과 북한은 여러 차례의 좌절을 겪으면서도 비핵화·평화를 위해 계속 대화하려고 애쓴다. 수십 년의 상호 적대감을 해소하기 위한 역사적인 평화 프로세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싱가포르와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초 양국의 실무협상이 다시 결렬됐다.양측의 불협화음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건으로 지난 11월 1일 미국 국무부는 ‘2018년 국가별 테러보고서’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테러지원국은 ‘국제 테러리즘 행위에 반복적으로 지원을 제공하는 국가’를 의미하며, 미국은 현재 이란·북한·수단·시리아 4개국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2017년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9년 만에 재지정한 후 3년 연속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과 김정남 암살의 배후 등의 이유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올해 테러지원국 지정 유지 사유로는 ‘국제 테러 행위에 대한 북한의 반복적 지원’을 제시했다. 그러자 북한 외무성은 지난 5일 대변인의 기자회견문을 통해 “온갖 형태의 테러와 그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반대하는 것은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면서 “테러의 온상이며 왕초인 미국이 ‘테러 재판관’ 행세를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적반하장”이라고 미국을 비난했다. “온갖 허위와 날조로 일관된 미국의 ‘2018년 나라별 테러보고서’를 우리에 대한 엄중한 정치적 도발로 단죄하면 전면 배격한다”며 반발했다.“조미 대화가 교착상태에 놓인 지금과 같은 민감한 시기에 미국이 ‘테러지원국’ 감투를 계속 씌워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는 것이야말로 대화 상대방인 우리에 대한 모독이고 배신이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와 입장으로 하여 조미 대화의 창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그러나 아직 대화의 문은 열려 있는 것 같다. 김 위원장이 다음 달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여는 것을 목표로 이르면 이달 중 미국과 실무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최근 한국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지난 11월 4일 서훈 국정원장은 국정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 비공개 국정감사에서 “북미 실무회담을 11월 중, 늦어도 12월 초에는 개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했다고 참석 국회의원들이 전했다. 그들의 말을 종합하면 서 원장은 “북미가 지난 10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무협상을 갖고 한반도 비핵화·평화구축 관련 입장을 확인했는데 최소 한 번의 추가 실무협상도 없이 이대로 판을 깨기엔 양쪽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 입장에선 연말까지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목표일 테니 그 이전에 실무협상을 해야 할 것이다.”- 웨슬리 도커리 아이비타임즈 기자

2019.11.1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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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를 다시 위대하게’?

산업 일반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대담한 현대화와 개혁 선언으로 서방의 환심 샀지만 인권 무시하고 지역 패권과 권위주의 질서 확립 노려 무함마드 빈 살만(32, 이하 ‘MBS’)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남의 기분을 맞출 줄 안다.지난 3월 초 MBS는 영국을 방문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오찬하기 위해 버킹엄 궁을 찾았다. 첫 영국 공식방문이었다. 언론은 그를 극찬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신문은 “MBS는 혁명가!”라고 불렀다. 영국의 보수파는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를 민영화하고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하려는 그의 제안을 환영했다. 맥 빠진 영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경제 개혁가’라는 그의 평판이 올라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몇 주 뒤 MBS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백안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그 후 그는 로스앤젤레스·뉴욕·휴스턴·실리콘밸리·시애틀에 들러 오프라 윈프리, 일론 머스크, 구글 경영진 등 할리우드와 IT 업계 엘리트를 두루 만났다.이런 거창한 순회방문을 통해 MBS는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지난해 그의 부친 살만(82) 국왕은 MBS가 2016년 제시한 야심찬 사우디 개혁 프로젝트 ‘비전 2030’을 극찬하며 일부 권력을 그에게 넘겼다. ‘비전 2030’은 사회·경제적 자유화가 골자였다. 적어도 공개적인 성명에 따르면 MBS는 대외적인 ‘수표책 외교(checkbook diplomacy, 경제적 지원과 투자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외교 전략)’와 대내적인 복지 정책으로는 사우디의 영구한 존립을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개혁 목표는 석유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교육·엔터테인먼트·관광에 투자하며, 여성 인력을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는 칙령(지난 6월 발효됐다)은 개혁가로서 그의 국제적 평판을 드높였다. 지난해 11월엔 정부 사업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누리는 왕족들과 전·현직 장관 등을 구금 또는 소환해 부패 혐의를 3개월간 조사함으로써 국제적인 부패척결 의지를 보이는 동시에 그들로부터 약 1억 달러를 환수해 자신의 통제 아래 있는 기금에 추가했다(사우드 왕가의 전체 자산은 1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MBS의 세계 순방과 그의 ‘진보 성향’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신중하게 연출된 홍보는 사우디가 안고 있는 주요 난제 중 하나를 해결하려는 공격적인 전략의 일환이다. 그 난제란 9·11 미국 본토 테러공격 후 사우디의 이미지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공격은 대부분 사우디 국적자들에 의해 실행된 것으로 드러났다.기밀 분류에서 해제된 2016년도 미국 의회 보고서(사우디는 해제를 막으려고 애썼다)는 9·11 당시 테러리스트들이 사우디 정부와 연결된 인물들의 지원을 받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2009년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외교 전문엔 ‘사우디에서 나온 테러 자금을 전략적 선행과제로 취급하도록 사우디 관리들을 설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현안’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그렇다면 MBS 자신의 전략적 선행과제는 뭘까? 새로운 주제로 관심을 돌려 그 이야기를 묻어버리는 것이다. 사우디는 ‘미국의 투자를 원하고, 공동의 적에 맞설 미국의 무기를 구입하고자 하는, 서양화되고 소비자주의적인 국가’라는 주제를 말한다. 그는 미국 방문 중 대부분의 행사에서 전통 사우디 왕족 의상을 입지 않았고,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를 만날 땐 청바지까지 입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그 과제를 수행하려는 모습을 보였다.MBS가 미국에서 어디를 가든 언론이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였다. 폭스 뉴스는 그의 ‘사우디 현대화 노력’을 극찬했다. CNN은 사우디를 “현 시점에서 가장 유망한 신흥시장”이라고 불렀다. 아메리칸 미디어(트럼프 대통령의 친구인 데이비드 페커가 CEO인 언론사)는 MBS 특집 잡지를 발행했다. 기자 중 어느 누구도 사우디 정부가 사마르 바다위·나시마 알사다 등 여성 운전권을 쟁취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던 여성들과 수십 명의 민권 운동가를 구금하고 있는 문제에 관해선 질문하지 않았다.또 기자들은 사우디가 예멘 내전에 개입해 인도주의 위기를 일으킨 문제도 건드리지 않았고, MBS가 기금 수억 달러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 그가 말하는 책임 있는 경제 개혁에 부합하는지 묻지도 않았다. 사우디 역사에 관한 저서를 여러 권 펴낸 사우디 인류학자 마다위 알라시드 교수는 “사우디 정부는 아랍 세계의 민주화 충동을 억누르는 데 모든 자원을 쏟아 붓는다”고 말했다.MBS는 아무리 자신이 개혁가라는 이미지를 홍보해도 결국은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독재 정권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우디 블로거 라이프 바다위는 자신의 변호사와 저명한 인권 운동가 왈리드 아불하이르 등과 함께 수감됐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동영상을 SNS에 올린 여권 운동가 노하 알발라위도 지난 2월 체포됐다. 사우디 검찰은 평화 시위에 참석한 또 다른 여성 인권 운동가 이스라 알곰감의 참수형을 구형했다. 그녀는 변호사 접근이 금지된 채 32개월째 감금돼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시아파 무슬림과 기독교인·유대인의 살해를 승인하는 급진적 신학을 퍼뜨리는 성직자는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게다가 사우디는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이슬람 원리주의 와하비즘을 이슬람권 전역에 전파하고 있다.오일 머니로 부유한 사우디 동부 지역엔 시아파 피해자가 많다. 라시드 교수는 “그들이 고문당하거나 처형되거나 실종된다”며 “MBS는 그들의 생각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며 정부 비판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민주주의는 MBS의 안중에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아랍의 봄’(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아랍 중동 국가 및 북아프리카로 확산된 민중봉기) 동안 잠시 깜빡였던 민주주의 불꽃을 짓밟아 꺼버린 반혁명의 화신이다. 그와 중동의 다른 독재자들은 와하비즘을 중심으로 권위주의적인 중동 질서를 재확립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행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고 외치듯이 그들은 ‘아라비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생각한다.MBS의 인상적인 이미지 홍보를 이해하려면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부터 살펴봐야 한다. 서방의 상상 속에선 UAE는 두바이의 유리강철 마천루나 호화 쇼핑몰, 실내 스키 리조트로 상징된다. 그러나 그 나라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나흐얀(57, 이하 ‘MBZ’)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그가 바라는 바다.미국의 외교 전문에서 ‘카리스마 강하고 세상 물정에 밝으며 서방을 잘 안다’고 묘사된 MBZ는 미국이 한때 선호했던 UAE 왕위 계승자였다. 그러나 그의 형 할리파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형의 신병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MBZ가 UAE의 실질적인 통치자요 군통수권자였다.비행기 조종사 출신인 MBZ는 UAE의 국방 지출을 대폭 늘리고 방위산업을 급속히 확장했다. 그 결과 UAE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된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MBZ의 적극적인 언론 조작 덕분에 흔히 UAE는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며 다문화적이고 진보적인 나라로 인식된다. 사우디의 MBS도 바로 그런 이미지 조작 전술을 배운 게 분명하다. MBZ가 MBS의 멘토라는 얘기다.2010년 말 ‘아랍의 봄’이 튀니지에서 시작해 순식간 이집트로 번졌다. MBZ는 중동이 민주주의 바람에 휩쓸리면서 아랍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정치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 득세할 가능성을 심히 우려했다. 그는 민주화 시위자들이 개혁이 아니라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강제로 도입하려 한다는 주장으로 그들을 견제하고 나섰다. 미국 워싱턴 D.C.의 홍보기업 하버 그룹과 캠스톨 그룹이 그의 광범위한 로비를 지원했다.2012년 UAE의 안와르 가르가시 외교담당 국무장관은 서방 기자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UAE를 위험하고 불안한 지역 안에 있는 ‘안정과 관용의 섬나라’로 묘사했다. UAE 국가미디어위원회는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이집트 정부(2011년 처음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됐다)를 집요하게 비판했다. MBZ는 이집트 국민의 그런 선택을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집트에 군부 통치를 복귀시키려고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결국 2013년 이집트의 반정부 세력 연합체인 ‘타마로드’가 주도한 시위를 빌미로 쿠데타가 발생했다. 타마로드는 시민단체처럼 보이지만 실은 UAE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세력이었다.그 쿠데타로 국방장관이던 압델 파타 엘시시가 이집트 대통령에 올랐다. 그는 신속히 헌법의 효력을 중지시켰다. 쿠데타 성공 한 달 뒤 엘시시 대통령은 1000명에 이르는 평화적인 민주화 시위자들과 무슬림형제단 운동가들을 라바 광장에서 학살하도록 지시했다. 2014년 5월이 되자 이집트 교도소에 수감된 정치범은 4만1000명에 이르렀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처음엔 이집트의 민주화를 지지했지만 엘시시 대통령의 국가주도 폭력에 대해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엘시시 대통령을 위한 지원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2014년 MBZ의 핵심 참모인 술탄 알자베르와 이집트의 압바스 카밀 대장 사이의 통화 녹취록이 공개됐다. 거기엔 카밀 대장이 이집트의 경제난을 수습할 수 있도록 UAE에 더 많은 재정 지원을 호소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튀니지의 민주주의를 음해하는 데도 비슷한 방법이 동원됐다. 친UAE 신흥재벌이 소유하는 TV 채널은 2011년 튀니지의 첫 자유선거에서 승리한 온건 이슬람 정당 엔나다가 샤리아를 강제 도입하려는 무슬림형제단의 음모에 연루됐다는 억지 주장을 폈다(그럼에도 엔나다는 계속 집권 여당의 지위를 유지한다).UAE는 국내에선 현지 무슬림형제단 연계 조직인 알이슬라를 테러단체로 지목해 탄압했다. 2013년엔 변호사·판사·블로거·학생·왕자 1명 등을 포함해 UAE 운동가 94명이 음모 혐의로 구금됐다. 2015년 사우디의 압둘라 국왕(MBS의 조부)이 사망하면서 UAE의 MBZ는 걸프 지역의 오랜 외교 모델(얌전하고 신중하며 통일된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한다)을 교체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MBS는 십대 시절부터 MBZ와 가깝게 지내면서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그들은 부모 세대의 소심함을 배격하고 지역적 도전에 좀 더 공격적인 반응을 추구했다. 그러나 MBZ는 MBS의 호전적인 본능에 서방의 환심을 사는 재주를 더했다. 그는 로비스트와 홍보회사들을 동원해 UAE와 사우디가 아랍권의 개화된 지도자로서 무슬림형제단과 이란을 제압한다는 이미지를 계속 그려냈다.MBS가 부상하면서 안일한 PR 투자의 시대는 끝나고 적극적인 공세가 시작됐다. 미국 정치 웹사이트 더 힐의 보도에 따르면 2016년 사우디는 미국에서 10개 로비업체를 고용해 월 약 130만 달러를 지급했다. 그중 킹 앤 스폴딩은 이른바 ‘9·11 소송법안’(JASTA, 테러 지원국에 맞서는 정의 법)에 물타기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법안에 따르면 9·11 희생자 유가족은 사우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그 로비 작전에 반이슬람 미디어 캠페인 경험이 있는 캐피털 미디어 그룹이 동원됐다. 그들은 참전 미군 수십 명을 워싱턴 D.C.의 의사당으로 보내 JASTA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도록 주선했다. 그러나 결국 그 법안은 통과됐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시도도 무력했다. 지난 3월 MBS의 영국 방문에선 광고판과 신문 전면 광고와 함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좀 더 은밀한 노력도 더해졌다. 영국의 비영리 언론단체 탐사보도국(Bureau of Investigative Journalism)은 영국의 고위 외교관이 사우디의 런던 주재 기업 컨설럼에서 일한다고 폭로했다. 영국 납세자의 돈으로 사우디 독재자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의미였다. 2016년 미국 대선 기간에 페이스북에서 회원 정보를 불법 유출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후보를 지원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 데이터 분석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모기업인 SCL 그룹도 MBS의 팀을 도와 사우디 사회에서 그에게 반기를 들 가능성이 가장 큰 집단을 확인하려 했다.사우디 국내 상황이 더욱 억압적이 되면서 PR 공세는 더 심해졌다. 반정부 인사와 여성 운전권 운동가 수십 명이 구금 상태이고, 지난 5월엔 여성 운전 금지령과 남성 후견인 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여성 인권 운동가 루자인 알 하스룰도 다시 구속됐다. 사우디 여성은 아직도 남성 후견인의 허락 없이는 여행할 수 없으며, 아버지와 오빠들은 그런 후견인 제도를 이용해 딸과 여동생을 남편으로부터 강제로 떼어놓을 수 있다. 미국으로 망명한 사우디인으로 워싱턴 D.C.의 걸프문제연구소 소장인 알리 알아메드는 “절대 군주제로 인해 사우디 여성이 노예로 전락했다”고 말했다.예멘 문제도 있다. MBS는 2015년 국방장관으로서 ‘예멘 내전의 간판’(미국 부르킹스 연구소의 표현)이 됐다. 사우디는 아랍연합군을 구성해 예멘의 후티 반군을 상대로 대규모 공습을 계속한다(사우디 정부는 후티 반군을 이란의 대리세력으로 판단한다). 예멘 내전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으며, 100만 명 이상이 콜레라에 감염됐고, 1800만 명이 기아 직전인 상황이다. 사우디는 예멘에서 현재 세계 최대의 인도주의 재앙을 만들어내면서도 후티 반군을 격파하지 못하고 있다.AP 통신의 탐사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와 UAE는 예멘의 알카에다 전사들과 비밀거래를 했다. 무기와 장비, 약 1억 달러의 약탈 현금을 갖고 철수할 수 있도록 퇴로를 보장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알카에다 전사 다수는 사우디 주도 아랍연합군에 가담했다. 9·11 공격을 감행한 가장 위험한 극단주의 단체인 알카에다의 입지를 강화해주는 거래다. 미국 관리들은 예멘에서 활동하는 알카에다 전사가 약 8000명이며 계속 늘어난다고 추정한다. 이 같은 알카에다-사우디 동맹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사우디-무자헤딘 동맹과 섬뜩하게 닮았다. 실제로 알카에다의 탄생도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참혹한 전쟁과 의심스러운 무기 거래 소문으로 사우디를 지지하던 동맹국들도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다. 유럽 의회는 2016년 사우디를 상대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무기 금수조치 법안을 통과시켰다. 노르웨이도 아랍에미리트에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미국 정가의 사우디 지원도 약해지고 있다. 지난 3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끄는 초당적인 노력으로 상원의원 100명 중 44명이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즉시 중단하는 데 찬성했다. 아직은 과반수를 넘기지 못했지만 그들은 표결을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만약 사우디 주도 아랍연합군의 전투기가 발사한 미국 미사일로 예멘 어린이가 숨지는 영상이 언론에 나온다면 MBS의 공세는 여지 없이 무너질 것이다. 그런 건 MBS가 원하는 홍보가 절대 아니다.- 룰라 제브리얼※

2018.09.16 15:31

9분 소요
급증하는 신종 금융범죄 - ‘나는 안 속아’ 자신감이 최대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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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 3월 인터넷을 하려고 컴퓨터를 켠 배우 이해인씨는 ‘금융감독원 개인정보유출 2차 피해 예방등록’이라는 창이 뜨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해당 사이트에서는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며 개인정보를 입력하도록 했고, 금감원이라는 말에 이씨는 의심 없이 지시에 따랐다. 보안카드 번호까지 입력하자 갑자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1500만원, 1000만원, 2500만원 등 총 5000만원이 출금됐다는 메시지였다. 당황한 이씨는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차렸지만 힘들게 모은 아파트 월세 계약금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 뒤였다.#2 얼마 전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전화를 받고 입금 직전까지 갔다는 김명순씨는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금감원 직원이라며 걸려온 전화를 받았더니 상대방은 ‘계좌가 해킹당했으니 재설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 계좌번호를 불러주면서 전액을 이체하라기에 약간 의심했지만 희한하게도 그는 계좌번호와 계좌 잔액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급하게 은행 ATM 기기에 가서 이체를 하려던 김씨는 예금주를 보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금감원인데 예금주가 개인 이름일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송금을 중단하고 통화했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불통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1200만원을 날릴 뻔했다.신종 금융범죄가 속출하면서,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사이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발생건수는 245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16건에 비해 86%나 증가했다. 검거인원도 지난해 958명에서2239명으로 급증했다. 2006년 우리은행 고객이 국세청을 사칭한 전화를 받고 800만원을 송금한 사건이 발생한 후부터 공식집계된 전화금융사기는 현재까지 총 5만2451건이 발생했다. 피해액은 5731억원에 달한다. 2008년과 2011년 각각 8000건 넘게 발생해 절정에 달했다가 2012년 5709건, 2013년 4765건 등으로 감소하는 듯했지만 지난해 7635건으로 다시 늘었다. 올해는 증가세가 더욱 가파르다. 역대 최대치였던 2008년(8454건)보다 훨씬 빠른 추세다. ━ 터무니없는 거짓말에도 넋 놓고 당해 남의 일로 간단히 넘기기엔 피해 대상이 너무 전방위적이다. 나이·학력 등과 무관하게 ‘넋 놓고 당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다. ‘당신도 언젠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보이스피싱은 주로 노년층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피해자를 분석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 7635건을 세대별로 살펴보면 의외로 30대(19.5%) 비중이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은 20대(18.8%)였다. 갈수록 범행 기법이 교묘해지고, 패턴 역시 다양해지는 추세여서 ‘수사기관이 하나를 막으면 두 개의 새로운 방법이 탄생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경찰이 분류하는 신종 금융범죄는 크게 피싱(Phishing)·스미싱(Smishing)·파밍(Pharming)·메모리해킹 4가지로 나뉜다. 피싱은 전화로 유인해 돈을 갈취하거나 이메일로 가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도록 한 후 보안카드 번호를 입력하게 한 뒤 금융정보와 예금 잔액 등을 인출해가는 수법이다. 이 중 가장 흔하고 익숙한 게 보이스피싱이다. 너무도 뻔한 거짓말부터 알고도 당할 수 밖에 없는 기발한 사기까지 수법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박순영(77) 할머니에게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찾아 왔다. 금감원 신분증을 내민 그는 김 할머니에게 “계좌정보가 노출됐다”며 “안전한 곳으로 돈을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전 재산 2300만원을 은행 예금에 넣어둔 김 할머니는 덜컥 겁이 났고, 돈을 인출해 두라는 젊은이의 말을 따랐다. 다음날 오전 젊은이는 다시 찾아와 새 현금카드를 건네주면서 “이 통장으로 돈을 옮겨두겠다”며 “오후쯤 은행에 가서 확인해 보시라”고 말했다. 인출한 돈은 젊은이가 들고 떠났다. 오후에 은행을 방문한 김 할머니는 “사용할 수 없는 카드”라는 얘기를 듣고 망연자실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흉내 낸 보이스피싱도 등장 자녀의 납치나 사고를 빙자해 ‘급히 돈을 보내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고전에 속한다. ‘대학에 추가 합격했으니 등록금을 입금하라는 전화를 받고, 사기범이 불러주는 계좌에 500만원을 보낸 19살 여학생도 있다. 최근엔 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을 사칭해 돈을 뜯어내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얼마 전 안심전환대출 대란 때는 기존 주택담보대출을 안심대출로 전환하려면 신용등급을 올려야 한다면서 거액을 빼간 사기단도 있었다.너도 나도 당하니 유명인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영화배우 탕웨이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장시간 머문 일이 있었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한 것도, 남편인 김태용 감독과의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한 TV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 그가 보이스피싱에 당한 사실이 재차 언급됐기 때문이다. 당시 영화 촬영 중이던 탕웨이는 중국 공안을 사칭한 사기 전화를 받고 21만 위안(약 380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해설가 하일성씨, 배우 오현경씨 등도 비슷한 피해를 입었고, 3월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목소리를 흉내 낸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활개를 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택배·건강검진·연말정산 등 시선을 끌만한 내용을 문자로 보내 사용자가 해당 링크를 클릭하면 악성코드를 설치한 뒤 소액결제에 필요한 인증번호나 개인정보를 빼가는 스미싱도 더 지능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파밍이나 메모리해킹과 같이 컴퓨터를 이용한 금융범죄 역시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배우 이해인씨 사례가 대표적인 파밍이다. 파밍은 이용자의 PC를 악성코드에 감염시켜 호스트 파일을 변조하는 방법 등으로 피싱사이트를 진짜 사이트로 오인하게 만들어 접속하게 한 뒤 금융거래 정보를 빼가는 수법이다.지난해 한 인터넷쇼핑몰에서 옷을 구매한 강모씨는 결제수단 중 실시간 계좌이체를 선택했다. 클릭했더니 결제창이 열리면서 그가 주로 거래하는 은행 사이트가 함께 열렸다. 강씨는 보안카드 번호 전체와 계좌 비밀번호, 인터넷 뱅킹 아이디 등을 새로 작성하라는 지시에 따랐지만 알고 보니 이 사이트는 피싱사이트였다. 강씨는 “계속 정상적인 결제가 안됐고, 그때서야 범죄를 의심했지만 사기범이 알아낸 금융거래 정보로 공인인증서를 재발급 받고 계좌 잔액(80만원)을 모두 인출해 간 뒤였다” 고 말했다. 강씨의 경우는 비교적 소액이었지만 이해인씨처럼 은행을 가장한 피싱사이트에 속아 수천 만원을 날린 피해자도 수두룩하다.파밍에서 더 진화한 게 메모리해킹이다. 정상적인 계좌이체 과정에서 금융 거래 내용을 실시간으로 위·변조하는 기법이다. 이 역시 출발은 악성코드다. 보안카드 번호 전체를 유출한 적이 없고, 정상적으로 인터넷 뱅킹을 마쳤는데도 돈이 다른 데로 샜다면 메모리해킹일 가능성이 크다. 흔히 인터넷 뱅킹을 할 때 설치하는 보안프로그램은 비밀번호 등 중요 정보를 암호화하지만 계좌번호, 이체 금액 등은 암호화하지 않는다. 사기범이 비밀번호는 알 수 없으니 악성코드를 심어두고 이용자가 인터넷뱅킹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실시간으로 이체 대상이나 금액 등을 바꾸는 것이다.심상찮은 신종 금융범죄 증가세에 금감원은 4월 10일 금융사기 척결 특별대책을 내놨다. 우선 금감원은 장기(1년 이상) 미사용 계좌의 비대면거래(은행 창구를 방문하지 않고 인터넷이나 전화 등을 이용한 거래) 제한을 강화하기로 했다. 기존에 정상적으로 발급된 예금계좌가 대포통장(제3자 명의를 도용해 만든 통장으로 사용자와 명의자가 다르기 때문에 금융실명거래법상 차명계좌)으로 불법 유통·활용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 조치다. 조성목 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지원국장은 “현재 4대 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이 1년 이상 장기 미사용 계좌의 1일 인출 또는 이체 한도를 7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전 금융권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잔고가 일정금액 이하인 미사용계좌는 아예 비대면 거래를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 업무시간 이후 은행이라며 걸려온 전화, 의심부터 해야 대포통장 관련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기로 했다. 연 2회 이상 대포통장 명의자로 은행연합회에 등록되거나 대포통장임을 알고도 중개·알선하는 등 대포통장 발급·유통에 협조한 경우 금융질서 문란자로 등록할 방침이다. 금융질서 문란자가 되면 7년간 금융거래가 제한되고, 5년간 기록을 보존하게 돼 있다. 최장 12년간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어려워진다는 의미다.금융범죄 피해 자금의 지급 정지 제도도 손본다. 이제까지 전화를 이용했던 금융회사 간 지급 정지 요청을 전산 통보 방식으로 바꾸고, 현재 300만원 이상을 이체할 때 10분인 지연인출시간을 30분 정도로 늘릴 계획이다. 올해 10월 시작하려던 ‘지연이체 신청제도’는 시행을 앞당기기로 했다. 지연이체 신청제도는 고객이 원할 경우 이체의 효력을 일정시간 지연할 수 있는 제도다. ‘신(新)안심통장’에 가입한 고객이 이체 지연을 신청한 경우 금융범죄 피해가 발생(고객에게 고의성이 없는 경우)해도 금융회사가 일정 한도(1000만~3000만원) 내에서 전액 보상해주는 방식이다.거창하게 ‘척결’이란 이름을 붙이긴 했는데 금융범죄를 근절할 근본적인 대책은 사실상 안 보인다. 범죄를 막을 대책이라기 보단 피해를 최소화하는 보완책에 가깝다. ‘그동안 제기된 민원을 수집한 수준’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자신 있게 내세운 지연이체 신청제도도 속을 들여다보면 의문점이 많다. 금융범죄 피해금 환급비율은 2013년 19.5%, 2014년 24.7%로 점차 개선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전체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피해금의 3분의 2는 피해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이런 상황에서 명확한 보상 규정도 없이 ‘신(新)안심통장’으로 금융회사에 책임을 넘긴 모양새다. 금융회사도 자신들의 책임이 커지는 것이니 달가울 리 없다. 앞장서 홍보하길 꺼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안심통장이 아니면 보상을 못 받는다는 것인지, 고객의 고의성을 어떻게 따질것인지 애매하다”며 “소비자의 모든 금융자산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금융회사가 특정 통장만 안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지 않느냐”고 반문했다.어차피 최선의 예방은 금융범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안전 조치가 제법 많다. 가장 중요한 건인식과 자세다. ‘대체 왜 속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방심하면 도리어 금융범죄에 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피해자 중에 금융범죄인 줄 알고 속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문가들은 “‘나는 안 속아’라는 과한 자신감이 최대의 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업무시간 이후에 금융기관이라며 걸려온 전화는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금융기관은 보안카드 번호 전체를 요구하지 않는다. 특히 유선상으로 보안카드 번호를 불러달라는 경우는 아예 없다.금융거래 습관도 바꿔야 한다. 보안카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사진 파일로 보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보안카드 대신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로 바꾸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최근엔 휴대하기 편하게 카드 형태로 만든 OTP도 등장했다. 또한 출처가 불분명한 이메일은 아예 열지 말고 삭제해야 한다. 문자메시지의 사이트 링크도 마찬가지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실시간 백신프로그램을 활용하고, 공인인증서는 하드 디스크보단 이동식 디스크에 보관하는 게 좋다. ━ 미지정 계좌 이체한도 제한 서비스 활용할 만 지난해 9월 도입한 ‘신입금계좌지정제’도 활용할 만하다. 보통은행과 거래할 때 1일 이체한도를 500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설정해두는 경우가 많은데 신입금계좌지정제는 사전에 등록한 입금계좌가 아니면 1일 최대 100만원 이하로만 송금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금융범죄에 속더라도 피해규모를 최소화 하자는 취지다. 자주 돈을 주고 받은 가족이나 지인의 계좌는 미리 등록해두면 되고 이 계좌로는 현재와 같이 이체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송금할 수 있다. 갑자기 미지정(사전에 등록하지 않은) 계좌로 돈을 보내야 할 일이 생겼을 땐 지정계좌로 한번 이체를 했다가 미지정 계좌로 송금하면 된다. 이체 과정이 한번 더 늘어난 것이니 약간의 불편함이 있겠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안전장치라 생각하고 가입하는 것이 좋다. 새로 통장을 개설할 필요도 없고, 은행을 방문할 일이 생겼을 때 신청만 하면 된다. 좋은 취지에도 홍보 부족으로 지난해 이용자가 3000명에도 못 미쳤다.

2015.04.19 11:29

8분 소요
쿠바의 빛과 그림자

산업 일반

미국 마이애미에서 쿠바 아바나로 가는 비행기 여행은 결코 깔끔하지 않다. 인내심, 잔꾀, 유머, 그리고 새치기를 주저하지 않는 무모함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나는 알베르토 마냥(53)과 동행했다. 그가 ‘힘깨나 쓰는 사람’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려고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마냥은 쿠바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그곳을 떠났다. 이후 스페인에 잠시 체류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뉴욕에 살았다. 그와 아내 다라 메츠는 맨해튼 남서부 첼시에서 마냥메츠 화랑을 운영한다. 주로 해외 화가, 특히 쿠바 화가가 전문이다.비행기 이륙 90분 전 우리는 2시간 전부터 줄을 늘어선 승객들을 느긋하게 지나쳐 탑승권 발행 카운터로 직행했다. 거기서 마냥은 직급이 상당히 높아 보이는 한 여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 여성은 내 여권을 받아 들고 사라졌다. 마냥은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기다리는 동안 마냥은 나를 아바나 항공의 마크 엘리아스 사장을 소개했다. 엘리아스 사장은 마이애미-쿠바 전세기의 경우 수년 전부터 긴 줄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경우 탑승권을 받으려면 체크인 포인트를 서너 차례나 거쳐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한 시간 반 안에 탑승을 완료할 수 있다.”다행히 내 여권을 가져간 여성은 약 20분 뒤 다시 나타나 내게 직사각형 폴더를 건넸다. 탑승권, 돌아오는 비행기표, 여권, 쿠바 안내 책자가 들어 있었다. 맨 뒤에 휴지처럼 보이는 빛 바랜 청색 종이가 끼어 있었다. “그걸 잃어버리지 마세요.” 그 여성이 말했다.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 여성과 마냥이 거의 한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잃어버리지 말라니까요.”이륙 후 1시간도 채 안 돼 아바나에 도착했다. 활주로에 비행기 바퀴가 닿자마자 조종사가 기내 방송을 했다. “아바나에 도착해서 기쁘다면 박수를 치세요!” 객실에서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호텔에 짐을 풀자 저녁이었다. 우리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 야윈 택시기사 라파엘(50)을 고용했다. 원래 의사였지만 4년 만에 그만두고 택시를 몬다고 했다. 그는 우리를 아바나 구시가의 산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광장 입구에 내려줬다. 서너 발짝을 걷자 택시기사 대여섯 명이 우리를 에워쌌다. 택시 필요해요? 미국인이세요? 어디 가세요? 나는 머리를 흔들어 거절하고는 밝은 조명 아래 사람들로 가득한 넓은 조약돌 광장으로 향했다.유적지와 건축을 구경하려고 관광객이 밤낮으로 찾는 곳이다. 길 건너 아바나의 해변도로 말레콘이 보였다. 그곳 역시 밤낮으로 젊은이들이 바글거린다. 한 달 월급으로 팔라다르(paladar, 자영업 식당으로 정부가 보조하고 영업과 임금을 결정하는 수많은 관영 식당과 구분된다)에서 한끼 식사를 할 수도 없는 사람이 대다수인 나라 쿠바에서 말레콘은 주민에게 뭔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광장을 가로질러 한 건물의 아담한 로비에 들어섰다. 문 옆의 경비원을 지나 안쪽 책상 뒤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마냥은 스페인어로 그 여성과 이야기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설득력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 여성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마냥, 그의 친구 몇 명과 함께 작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누군가 마냥에게 무슨 사건에 관해 물었지만 그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며 천장을 가리켰다. 누군가 엿들을지 모른다는 제스처였다. 우리 모두 입을 다물고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다.문이 열리자 2층짜리 고급 아파트의 옥상이 나타났다. 아바나 구시가가 내려다보였다. 마치 마이애미 일류호텔인 듯했다. 세련된 하얀 의자와 소파, 우아한 꽃꽂이, 모든 술과 음료가 완비된 바. 한쪽에선 인근 건물 벽면을 스크린 삼아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30분 뒤 손님들이 안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갔다.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자 넓고 호화로운 거실이 나타났다. 두꺼운 벨벳으로 만든 대형 해먹, 공들여 장식한 바닥 카펫. 돌출 촛대와 미술품으로 장식된 벽면 앞엔 거대한 화초가 서 있었다. 옆 방에는 당구 테이블이 놓여 있고 뷔페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복도 아래에는 자연 그대로인 듯한 목욕탕이 마련돼 있었다. 샤워기 옆의 선반에 놓인 뭉툭한 조각상은 영락없는 남근의 형태였다. 손님들은 모두 옷을 잘 차려 입었다. 나이 지긋한 여성은 가운, 젊은 모델은 몸에 딱 붙는 드레스, 남성은 각 세운 정장과 모자, 반짝이는 구두 차림. 이곳엔 나이도 공산주의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나이 든 손님들이 젊은 무리와 어울렸고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바로 쿠바의 지식인과 문화 엘리트였다.쿠쿠 디아만테스(유명한 쿠바계 미국인 가수 겸 배우)와 남편 안드레스 레빈(베네수엘라 태생으로 줄리아드 음대를 나온 미국인 음반 제작자이자 영화감독)을 만났다. 레빈은 지난해 11월 TEDxHavana(아바나에서 열린 기술, 오락, 디자인 강연회)를 처음 개최했다. 그는 디아만테스와 함께 퓨전 밴드 예르바 부에나를 만들어 2003년 데뷔 앨범으로 그래미상 후보작에 올랐다. 레빈은 유명한 쿠바 배우와 음악가들을 소개해줬다. 심지어 카스트로 가문 사람도 몇 명 있었다. 담배와 시가 연기가 가득했다.1960년대 초 시작된 미국의 금수 조치로 미국인의 쿠바 투자가 금지됐다. 그러나 미술품, 책, 음악은 금수 조치에서 면제돼 예술가들은 정부의 감시 아래서 약간의 돈을 벌고 해외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부동산 재벌도 헤지펀드 큰손도 없는 쿠바에서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1%’ 부유층을 형성했다.사실 그건 대다수 관광객이 보는 아바나가 아니다. 대다수 쿠바인이 아는 아바나도 아니다. 그런 사교모임에 관해 글을 쓰는 것조차 쿠바 정부가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혁명 정신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쿠바에서 보낸 나머지 시간에 대다수 외국인이 마음 속에 그리는 아바나를 직접 볼 수 있었다. 테일핀(날개 모양의 자동차 꼬리 부분)이 녹슨 고색창연한 쉐보레 컨버터블, 건물 벽에 빛 바랜 붉은 색 글자로 ‘혁명은 무적’이라고 적은 선전 포스터, 허물어져 가는 저택과 부서질 듯한 자전거 택시, 피한객(겨울철 추위를 피해 쿠바에 온 노인 관광객)들이 가득한 시가 상점, 관광객을 졸졸 따라다니며 어디서 왔는지 묻고 뉴욕에서 왔다고 하면 “뉴욕 양키!”라고 외치는 아이들.그처럼 수 세대 동안 거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듯한 쿠바지만 확실히 달라진 면도 눈에 띄었다. 아바나 곳곳에 있는 건설공사 현장의 기중기들. 거의 매주 생겨나는 새로운 팔라다르 식당과 작은 피자 가게. 관광객으로 가득한 호텔. 내가 묵은 멜리아 코히바에선 뉴욕시 거리를 걸으며 듣는 것보다 더 많은 미국식 영어가 들렸다.쿠바가 50여 년 만에 처음 문호를 개방하면서 희망과 투지, 돈이 공중에 떠다니기 시작한다. 무엇이든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가 될 수 있다. 부동산, 건설, 통신, 관광 등. 자전거·자동차 수리점부터 배관공사, 식당, 택시까지 소규모 비즈니스가 전부 성장할 태세다. 2012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쿠바인이 인구의 5%에 불과한데도 (쿠바인 중 23%는 정부가 허가한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가 최근 쿠바 진출을 발표했다. 지난 2월 코넌 오브라이언은 1962년 이래 쿠바에서 심야 TV토크쇼를 찍은 첫 미국 연예인이 됐다. 그 다음은 어떤 대형 미국 브랜드가 진출할까? 홈데포? 베스트바이? 맥도널드? 로열 캐리비언 인터내셔널? 도널드 트럼프?잠들어 있던 쿠바에 갑자기 잠재력이 넘치는 듯하다. 과도 정부가 억누르곤 있지만 쿠바인은 근면하며 희망에 차 있다. 그 상황에서 과연 누가 수혜자가 되고 누가 뒤처질까? 쿠바의 미래는 새로운 자메이카일까? 체게바라 T셔츠와 카스트로식 군모 차림의 봄철 휴가객과 미혼 남녀가 가득한 곳 말이다. 그게 최상의 시나리오일까 최악의 시나리오일까? ━ 미술이 불러온 변화 마냥은 이렇게 말했다. “일곱 살 때 방과 후 어머니가 날 데리러 와서는 ‘24시간 안에 떠나야 해. 여행가방을 꾸려. 해외로 나갈 거야’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겁이 더럭 났다.”46년 전 마냥의 어머니(미술 교수)와 아버지(담배공장 회계사)는 자동차, 가구, 보석 등 아바나에서 소유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쿠바를 떠났다. 당시에도 마냥은 수집가였다. 야구 카드, 우표, 동전, 스티커를 모았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미술을 공부하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쿠바 어머니는 아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마냥은 결국 미술품 거래상이 됐다.마냥은 쿠바 화가들의 작품 전시로 유명하다. 인종, 종교, 아프리카계 쿠바인의 뿌리를 탐구하는 화가 로베르토 디아고, 쿠바 출신의 전시 작가로 구성된 현대미술 그룹 로스 카르핀테로스의 창립 회원인 알렉산드레 아레체아, 201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쿠바 대표 화가 글렌다 레온 등.1997년 마냥은 쿠바를 다시 찾았다. 1991년 소련 붕괴로 시작된 초유의 경제위기(쿠바인은 ‘특별한 시기’라고 부른다)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교통, 식량, 전기, 자동차, 교체 부품, 치약 등 모든 것이 부족했다. 호화롭던 주택들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화가들에게 빠진 것은 그 어려운 시기에 그들이 아주 특별한 작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제대로 된 물감도 없었다. 금속, 천, 자루걸레 등 닥치는 대로 캔버스로 사용했다. 그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다 작품을 만들었다. 나는 ‘세상에! 미국 수집가들이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반드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요즘 마냥은 쿠바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논란 많은 미술 행사를 주최한다. 2009년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아바나를 방문한 첼시’ 전시회가 대표적이다. 혁명 이래 쿠바에서 열린 미국 화가들의 첫 전시회였다. 제10회 아바나 비엔날레의 일환이었다. ‘비엔날레’라고 하지만 2000년부터 3년에 한 번씩 열린다. 마냥은 “그 행사가 쿠바-미국 관계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미술이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지난 몇 십 년 동안 쿠바인과 쿠바계 미국인 몇 명이 드러내지 않고 문화대사로 활동했다. 미술에 초점을 맞춰 양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그중 한 명이 마냥이다. “아바나는 건재하다”고 그는 말했다. “화가들이 놀라운 일을 해내고 있다. 그들은 쿠바에 남아서 계속 활동한다. 미술과 문화를 통해 일어난 변화가 다른 분야에서도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아바나에서 이틀째 우리는 쿠바인 큐레이터 후아니토 델가도를 찾아갔다. 그의 아파트에서 말레콘이 내려다 보였다. 그는 “좋은 작품을 만들면 정치적인 문제가 숱하게 제기된다”고 말했다. “정치를 미술로 만들지 말고 미술을 정치화해야 한다. 그러면 대화가 이뤄진다.”2012년 델가도는 말레콘을 11회 아바나 비엔날레의 전시회장으로 활용했다. 아를레스 델 리오의 ‘날아가다’라는 작품은 방파제 끝자락에 쳐진 대형 직사각형 철책선에서 비행기 그림자 모양을 잘라낸 것이었다. 라첼 발데스 카메요는 강물을 마주보는 대형 거울을 설치하고는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 1번’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미술이 사회를 움직이고 사람을 움직인다”고 델가도가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곳 문화계를 도와주면 좋겠다. 책을 만들고 전시회를 열고 화가들이 작품을 알릴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해주기 바란다. 또 아바나의 극장이 관객으로 가득 차면 좋겠다.”쿠바와 미국 사이의 거리는 약 145㎞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게릴라 부대를 이끈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타도한 1959년 이래 쿠바에선 사실상 시곗바늘이 멈춰섰다. 카스트로의 공산주의 통치 아래 교육과 의료는 무료였지만 경제가 무너지고 빈곤이 확산됐으며, 쿠바인은 해외 여행을 거의 할 수 없었다. 카스트로는 오랫동안 비판자들을 처벌하고 탄압했다. 쿠바 인권재단에 따르면 2013년 임의구금된 인권운동가가 6000명을 넘었다. 표현의 자유는 아예 없었고, 국가가 모든 공식 미디어를 소유했다. 정부는 블로거를 위협했고 언론인을 구금했다.1982년 이래 쿠바는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다. 2013년 미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쿠바는 스페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대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고, 미국이 수배한 탈주자들을 숨겨줬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서 쿠바인은 미국과 금융거래를 할 수 없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 지위를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화당은 그런 조치에 완강히 반대한다.2008년 쿠바 정권은 피델 카스트로에게서 동생 라울로 넘어갔다. 지난 몇 년 동안 라울은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했다. 쿠바인이 해외 여행을 더 쉽게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하고, 자동차와 주택 매매를 허용하고, 100여 가지 자영업을 합법화하고, 쿠바인의 국제호텔 숙박을 허용했다. 그동안 쿠바인의 고급 호텔 숙박이 불허된 것은 호텔에서 외국인용 화폐(CUC)만 받았고, 호텔이 정부가 마약과 매춘의 온상이 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라울의 개혁이 칭찬을 받긴 했지만 대다수 쿠바인의 경제적 현실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대다수는 그런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 ━ 미진한 개혁과 지하경제 2000~2004년 미국 정부의 라틴아메리카 정보 관리를 지냈고 현재 아메리칸대학 라틴아메리카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풀턴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했다. “개혁이라고 하지만 열의가 없었고 걸핏하면 중단됐으며 국소적으로 이뤄졌을 뿐이다. 새로운 자본의 유입과 무역이 없으면 기회가 있다고 해도 그런 기회를 활용하는데 필요한 자원이 없다.”쿠바인의 월 평균 소득은 20달러(약 2만2000원)도 채 안 된다. 지난해 몇몇 의사의 경우 월급이 26달러에서 67달러로 올랐다고 알려졌다. 내가 들어가본 가전제품 상점에선 전자레인지 한 대가 72.60달러, 커피메이커가 30달러에 팔렸다. 내가 먹은 식사는 대부분 1인당 약 30달러였다.이제 미국에서 쿠바로 연간 8000달러를 송금할 수 있게 됐다(지난해 12월 오바마 대통령의 관계 정상화 발표 전에는 2000달러가 송금 상한선이었다). 그러면서 흑백 인종 사이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쿠바의 백인이 해외 친척의 재정지원을 받을 가능성은 흑인의 2.5배다. 그만큼 백인이 사업을 시작하기가 쉽다는 뜻이다. 반면 시골에 사는 쿠바의 백인은 흑인처럼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암스트롱은 설명했다.쿠바 인구는 1100만 명이다. 그중 다수는 미국-쿠바 관계의 해빙으로 혜택을 볼 듯하다. 상인, 농민, 해외 거주 친척의 송금을 받아 자영업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했다. “쿠바의 비공식 경제는 그 규모가 거대하다. 사회의 많은 부문이 거기서 기업가 정신을 연마할 수 있다. 화가 등 일부는 수십 년 전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수완이 아주 좋다. 그러나 성격 때문이든 당과 기관의 엄격한 감시 때문이든 바른 길만 걸어온 사람은 암시장을 잘 모른다. 그런 사람은 출발이 약간 늦을 수 있다.”패자는 언제 어디서나 잘 패하는 사람들이라고 암스트롱은 말했다. 학력이 낮고 나이가 많으며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 향수를 일으키는 바다 내음 쿠바의 관영 여행사 산크리스토발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메일린 베르날(32)은 “변화는 언제나 어떤 사람에겐 좋고 어떤 사람에겐 나쁘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갖고 그 소득에 따라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누가 기뻐하지 않겠나. 고생하지 않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택시기사 라파엘은 아바나 시내를 통과하면서 지나가는 자동차의 이름을 외쳤다. “저건 러시아제! 저 검은색 차는 쉐보레 1953년도 모델. 나도 과거 저런 차를 몇 대 몰았지요. 저기 녹색 차는 쉐보레 52년 모델이고 저건 머큐리 51년 모델이네요. 저건 네덜란드제 58년 모델이고… 저곳은 혁명 전엔 셸 주요소였죠.”우리는 교외에 있는 달동네 파라가로 향했다. 차로 약 30분 거리였다. 시간을 떼우려고 라페엘에게 왜 의사를 그만뒀느냐고 물었다. “벌이가 좋지 않아서요”라고 그가 대답했다. 라파엘은 의사로 월급 12~15달러를 받았다고 말했다(요즘 의사는 그 4배를 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하지만 택시를 몰면서 한 달에 약 200달러를 번다. “처음엔 의사 일이 그리웠지만 오랫동안 택시기사를 하다 보니…” 그가 말꼬리를 흐렸다.“후안 카를로스가 지난해 7월에 치대를 졸업했어요.” 라파엘이 배다른 동생(24)을 두고 한 말이다. “후안은 날 위해 일주일에 이틀씩 일하고 하루 30달러를 벌었죠. 치과의사 월급보다 많아요. 후안은 미국에 가고 싶어 영어를 배우고 있어요. 그가 미국에 가면 돈을 좀 부쳐 주려고 해요. 여기선 미래가 없거든요.”우리는 조용한 거리에 차를 대고 나를 안내해주기로 한 아바나대학 심리학 교수인 산드라 소카 로자노(28)를 태웠다. 로자노는 역시 심리학자인 어머니, 은퇴한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한 번도 쿠바를 떠난 적이 없다고 로자노는 말했다. “조국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내가 외동딸이기 때문에 떠나고 싶지 않아요.”로자노는 대학에서 수업이 없으면 어린이와 청소년 암환자를 돕는 자원봉사활동을 한다. 하지만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를 지키는 쿠바인처럼 월급은 쥐꼬리만하다(30달러). (암스트롱은 “모든 쿠바인은 암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아 돈을 번다. 월급 30달러가 유일한 소득이 아니다. 착각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로자노는 차를 사고 친구들과 살사춤을 추러 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두 가지 다 그에겐 사치다. 동료들이 해외에서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은 더 심해진다. “해외에 간 친구가 많은데 그들은 4개월만 지나면 차를 사요. 집도 있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가요. 우리 부모는 뼈 빠지게 일하느라 그런 여행은 꿈도 못 꿔요. 어머니는 이집트에 가서 피라미드를 구경할 수 없어요.”우리는 드라이브를 계속했다. 버려진 주유소, 사람들이 바글대는 버스 정류장, 배도 없는 옛 항만을 지나쳤다. 로자노에게 가족을 제외하고 쿠바의 어떤 측면 때문에 떠나지 않는지 물었다. “사람과 장소죠. 물론 거리는 형편없고 거물은 낡아빠졌어요. 하지만 바다 내음이 너무 좋아요. 난 언제나 바다 근처에 살았어요. 내가 좋아하는 특별한 냄새죠. 이곳은 태양도 달라요. 또 도움을 주고 무엇이든 함께 나눌 사람을 언제든 찾을 수 있어요.” “저건 올즈모빌 1955년 모델!” 라파엘이 다시 자동차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루야노 동네를 통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관 계단에 앉아 있거나 보도에 서서 공동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리 위에는 ‘고마워요 피델!’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갈수록 길이 험해졌다. 몇 차례 더 우회전 좌회전을 한 뒤 움푹 패인 곳이 많은 넓은 거리에 도착했다. 차는 다니지 않았고 군데군데 쓰레기가 가득했다.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었고 개들이 보도를 어슬렁거렸다. 서로 겹쳐진 작은 집 주변에 알루미늄판 담이 쳐졌다. 달동네 파라가였다. 관광객도 이곳은 찾지 않는다. 수돗물도 가끔씩 공급된다. 한 친구가 아바나 빈민촌 삶의 단면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줬다.후스티나 코르데로 메사(90)가 현관에서 주름진 야윈 손을 내게 내밀며 볼에 입을 맞췄다. 날염된 흰색 원피스, 짙은 녹색 양말, 검은 샌들 차림이었다. 흰머리를 아무렇게나 말아 올렸고 솜털 같은 하얀 눈썹이 눈꺼풀 위에 걸려 있었다.우리를 집안으로 안내한 메사가 소파와 의자를 가리켰다. 로자노, 마냥, 내가 앉았다. 좁은 거실이었다. 밝은 갈색 벽과 타일 바닥은 금이 가고 얼룩이 져 있었다. 한쪽 구석의 작은 테이블 위엔 조그만 크리스마스 트리와 대형 라디오가 놓여 있었다. 다른 테이블엔 피델 카스트로의 액자가 있었다.메사는 쉰 목소리로 얼마 전 창문 넘어 들어온 도둑이 TV를 가져갔다고 말했다. 도둑을 잡았는지 묻자 메사는 그냥 씩 웃었다.메사의 집은 작고 어둡고 파리가 들끓었다. 거실 뒤에는 나무 식탁과 냉장고를 갖춘 작은 주방이 있었다. 더 작은 부엌엔 임시 조리대 위에 우그러진 양동이, 컵, 사발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조리용 철판 부근에 닭뼈를 담은 접시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조리기구 몇 개가 걸려 있었다. 천장은 다른 방들과 마찬가지로 낮았다. 부엌의 작은 문은 뒷골목으로 연결됐다. 메사는 그곳에서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한다.“손자가 나와 함께 살려고 자기 집과 이 집을 합쳐 더 큰 집과 바꾸고 싶어하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60년 이상 이곳에서 산 메사가 말했다. 경찰이었던 남편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외아들은 쿠바에 살고, 동생과 조카는 미국에 산다. “동생이 나를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어했지만 난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가족 때문이었다.”이제 미국의 쿠바 금수 조치가 해제됐기 때문에 파라가의 생활이 더 나아지리라 생각하는지 메사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바뀐 건 없다. 매일 더 나빠진다. 물가가 계속 오르기 때문이다. 난 귀도 눈도 어둡다. 난 진짜 아주 늙었다. 이미 볼 건 다 봤다.”뉴욕으로 돌아간 뒤 로자노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로자노는 메사의 삶을 보는 게 힘들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메사는 쿠바인의 전형이다. 어려운 조건에서 살면서도 쿠바를 떠나려 하지 않고, 조국을 사랑하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가진 것이 없고 늙어도 독립적이며 가족을 끔찍이 생각한다. 난 그게 쿠바인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늘 다른 사람을 걱정하며 언제나 굴하지 않고 잘 모르는 사람도 도우려고 애쓴다.”아바나의 도심 베다도는 파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쿠바계 미국인 사업가 우고 칸시오(50)는 베다도에서 서서히 미디어 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상업, 미디어, 통신, 부동산, 여행 사업을 하는 푸에고 엔터프라이즈의 설립자 겸 CEO다. 몇 년 전 그와 아내는 미국인 약 40명과 함께 마이애미에서 아바나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미국인 탑승객들이 쿠바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쿠바는 군국주의 국가인가?” “거리에 기관총을 든 군인이 있을까?” “그들이 피델 카스트로를 헐뜯는 사람을 구타할까?”칸시오 CEO는 이렇게 돌이켰다. “아내는 ‘쿠바가 어떤 나라인지 그들에게 가서 말해주라’고 했다. 나도 화가 났다. 쿠바가 카스트로와 반체제 인사만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아름다운 나라다. 그들에게 다가가 쿠바에 관해 자세히 알려줬다.” 20분 뒤 그가 좌석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쿠바 안내책자를 만들어 아바나행 비행기 탑승객에게 나눠주자는 것이었다. “뭐라도 해보자”고 아내가 말했다고 칸시오 CEO가 돌이켰다.칸시오 CEO는 안내책자 대신 쿠바에 관한 최초의 이중언어 잡지 ‘온 쿠바(On Cuba)’를 창간해 미국과 쿠바에서 팔기 시작했다. 그 웹사이트 방문자는 한 달에 60만~120만 명이다. 그와 함께 지난해 6월엔 자매지 ‘쿠바의 미술(Art On Cuba)’도 창간했다.칸시오는 아바나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모니카 레티시아는 유명한 가수였고 아버지 미겔 칸시오는 1960년대 쿠바의 비틀스로 알려진 4인조 밴드 ‘로스 자피로스’를 공동 조직했다. 1980년 카스트로가 미국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떠나라고 선언한 그 유명한 ‘마리엘 난민탈출 사건’으로 쿠바인 12만5000명이 작은 배 1700척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16세였던 칸시오는 어머니, 13세 여동생과 함께 쿠바를 떠났다. 그 얼마 전 그는 일류 고등학교에서 카스트로에 관한 농담을 하다가 퇴학당했다. 칸시오 CEO는 이렇게 돌이켰다. “어머니는 ‘이곳에선 네 미래가 없어. 우린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마이애미에 도착했지만 친척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그들은 오렌지볼 스타디움에 마련된 임시 수용소에서 3주를 지낸 뒤 사우스비치의 작은 단칸방으로 옮겼다. “3년 동안 어머니는 소파에서 주무셨고 나는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잤다. 어머니는 수년 동안 쿠바를 떠난 걸 후회했다.”쿠바에서 칸시오의 아버지는 문화부 산하 기관에서 일했지만 가족을 떠나보냈다는 이유로 실직당했다. 그 후 거리 청소부로 일하다가 공사판에서 일했다. “나는 정장을 입은 유일한 공사장 일꾼”이라고 아버지가 편지에 썼다고 칸시오는 돌이켰다. 몇 년 뒤 아버지도 쿠바를 떠났다.지금 칸시오 CEO는 미국, 특히 마이애미에서 쿠바 음악과 미술을 전파하는 문화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는 콘서트 약 140건, 뮤직 투어 30건을 기획했다. 그의 이력서는 쿠바-미국 문화전쟁의 입문서처럼 보인다. 1999년 칸시오는 유명한 쿠바 밴드 로스반반의 마이애미 콘서트를 기획했다. “우익 쿠바인들이 밖에서 달걀과 깡통을 던지는 동안 그들의 아들 딸은 안에서 춤을 췄다”고 칸시오는 돌이켰다.칸시오는 영화 ‘자피로스, 푸른 광기’도 제작했다. 아버지가 만든 밴드 로스 자피로스의 부상을 소재로 한 영화로 쿠바계 미국인이 쿠바에서 찍은 사상 최초의 작품이었다. 그 영화는 1997년 아바나 영화제에 출품돼 호평을 받아 6개월 동안 아바나의 극장에서 상영됐다. 그 영화를 마이애미로 가져오자 수천 명이 극장 밖에서 상영 반대 시위를 벌였다. “어머니는 내가 더 자유롭고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도록 나를 미국으로 데려왔다”고 칸시오 CEO는 말했다. “쿠바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나를 미국으로 데려다줬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민주국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가진 일을 하지 못하도록 어떻게 막을 수 있나?”미국-쿠바 관계가 변하면서 칸시오 CEO는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쿠바 건축과 지역 정보에 초점을 맞춘 부동산 잡지가 곧 발간될 예정이다. 그 외 여행 잡지와 웹사이트, 송금 서비스 사업도 시작할 생각이다. 미국의 대형 통신회사 두 곳과 제휴해 쿠바인에게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보급할 계획도 있다.칸시오 CEO는 “쿠바계로서 미국의 쿠바 정책을 변화시키려고 오랫동안 투쟁해왔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말했듯이 미국의 쿠바 정책은 비인도적이며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하는 모든 사업으로 과연 누가 혜택을 볼 수 있을까? 나는 그에게 심리학 교수 로자노와 메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미래가 어떨지 물었다.“물론 연줄이 좋은 사람이 가장 먼저 혜택을 볼 것이다. 아주 긴 여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공기가 달라졌다. 우리 잡지를 만드는 직원들에게서 그런 점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처음 우리 잡지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와 지금은 아주 다르다. 더 행복해졌다. 그들은 살 집도 다시 짓고 멕시코나 온두라스로 여행 가려고 돈 모을 생각도 한다.”토요일 아바나에 있는 잡지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 편집장 타히미 아르볼레야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르볼레야는 컴퓨터 몇 대가 둘러싼 책상에 앉아 있었다. 컴퓨터에선 G메일과 페이스북이 펼쳐져 있었다. 쿠바를 여행하는 동안 그런 웹사이트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작동되는 컴퓨터도 거의 보지 못했다.아르볼레야는 이렇게 말했다. “쿠바인과 미국인에게 쿠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주는 것이 우리에겐 매우 중요하다. 쿠바인의 현실이 어떤지 정확한 정보를 줘야 한다. 미국에서 접하는 쿠바 정보는 양극화를 초래하지 않는가?”아바나에서 보낸 마지막 밤 우리는 저녁식사에 로자노를 초대했다. 처음엔 내키지 않은 듯했다. 친구들과 살사춤을 추러 가기로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살사 클럽에 도착해서 만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우리 식사에 합류하기로 했다. 택시기사 라파엘이 우리를 아바나 미라마르 구역의 강가에 내려줬다. 웅장한 흰색 건물로 들어가는 통로 끝에 기도가 서 있었다. 마냥이 그와 이야기를 했다. 서로 아는 사이인 듯했다. 곧 우리는 알멘다레스강이 내려다 보이는 해산물 식당 리오 마르로 들어갔다.짙은 푸른색 차양이 쳐진 테라스의 긴 테이블에 앉았다. 주변 테이블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미국인, 프랑스인,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발코니의 밝은 조명이 맑은 잔과 아콰 파나 생수병을 비췄다. 로자노는 생수 맛이 너무 깨끗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블루치즈를 먹어본 적이 없다며 블루치즈 소스를 얹은 닭가슴살 요리를 주문했다. 디저트가 나오기 전 로자노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 웨이터 한 명과 사진을 찍었다.로자노는 나중에 내게 보낸 이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그 식당은 마치 마법의 세계 같았다. 다른 나라나 다른 시대로 옮겨 간 듯했다. 내 미래, 부모님, 가족, 조국이 생각났다. 하지만 보건과 교육 같은 공공시스템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운 우리 나라 경제의 현 상황에선 교육 분야에서 일하면 나 혼자선 그런 식당에 갈 수 없다. 다른 누군가 초대해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로자노는 “쿠바에선 어디를 가나 빛과 그림자가 있다”고 덧붙였다. “빛과 그림자 중 어느 것을 보여줄지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 둘 다를 보여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번역 이원기

2015.03.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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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실로 뜬 무언가엔 온기가 실린다. 털실을 한 코 한 코 손가락에 감고 꿰는 동안 한 사람의 마음도 고스란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정을 담은 털모자가 몇 년째 아프리카 대륙의 갓난이들을 살리는 데 쓰이고 있다. 비영리 국제아동권리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의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이하 ‘모자뜨기’)을 말한다. 모자뜨기는 세이브더칠드런 각국 지부가 공동으로 펼치는 국제 보건·의료 지원사업 중 하나다. 한국지부도 2008년부터 동남아와 아프리카 몇몇 가난한 나라에 털모자 20만 개를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방송인 박경림, 뮤지션 김윤아 등 유명인사도 이 사업에 동참한다.특히 한국지부는 지난 2년간 말리에 17만 4000개의 모자를 전달해 왔다. 사하라 사막 서부에 있는 말리는 아프리카에서도 보건·의료 시설이 가장 열악한 나라로 꼽힌다. 지난 1일 토머스 존 매코맥(48) 세이브더칠드런 말리지부장이 한국을 방문한 것도 모자뜨기에 대한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다.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에서 ‘뉴스위크 한국판’과 만난 매코맥 지부장은 “모자뜨기야 말로 진심이 담긴 정성스러운 후원(genuine heartfelt expression of support)”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스미고 짜여 지구 반대편의 생명을 살리는 털모자의 가치를 담은 표현이다. 그는 “모자뜨기는 매우 직접적인 지원 방식”이라며 “한국인들의 따뜻한 손으로 직접 뜬 모자가 아프리카 신생아들을 살린다”고 말했다.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의 생긴다. 아프리카처럼 무더운 곳에서 털모자가 얼마나 쓸모가 있겠느냐는 궁금증이다. 그것도 신생아들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실제 말리의 갓난이들에겐 털모자가 ‘필요’를 넘어선 ‘생존’의 도구다. 말리에선 10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는 미숙아가 많은 탓에 신생아들이 저체온증에 노출되기 쉽다. 그런 이유로 5세 미만 영·유아 5명 가운데 1명(19.6%)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이 그래서 고안해 낸 게 털모자다. 털모자는 아기의 체온을 2도 이상 높여줘 저체온증을 막아주는 고마운 존재다. 미숙아들에게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털실 한 움큼으로 짠 손바닥만 한 모자가 이런 위대한 일을 한다. 그래서 이를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모자’라고 부른다고 한다.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는 2008년부터 말리 등 아프리카 국가에 털모자를 직접 짜서 보내는 모자뜨기 캠페인을 해왔다. 한국지부의 한 관계자는 “장애가 있는 여고생, 뜨개질이 서투른 초등학생, 치매노인 보호센터 노인, 수술 때문에 절반만 모자를 떠서 보낸 녹내장 환자 등 각계각층이 참여한다”고 설명했다.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 홈페이지(www.sc.or.kr)의 ‘모자뜨기 후기’ 게시판을 읽다 보면 털모자의 따뜻한 뜻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올해 이 캠페인에 처음 참여했다”는 고윤지씨는 이렇게 말했다. “꼬박 3일 동안 모자를 떴어요. 뜨개질이 처음이라 실수도 많았지만 이 작은 털모자가 어린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훈훈해졌어요. 모자를 받는 아이가 행복한 꿈을 꾸며 건강하게 자라길 바랍니다.” 윤성희씨도 “한 땀 한 땀 뜨면서 내 아이에게 바라듯 말리의 아기들이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며 “작은 정성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썼다.매코맥 지부장은 “재정적으로 큰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기들을 생각하며 직접 모자를 만들어 보낸다는 의미에서 이 캠페인은 매우 감동적인 것”이라며 “말리인들은 이런 한국인들의 마음과 후원에 크게 감사한다”고 말했다.그는 말리의 열악한 육아 실정도 설명했다. 말리의 부모들은 대부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아기를 안는 법이나 아팠을 때 응급처치를 하는 법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의료시설도 드물어 지역 보건소에 가려면 2~3 달러의 차비를 들여 30㎞를 가야 하는 실정이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기 다반사다. 그는 “세이브더칠드런 말리지부는 각국 지부의 지원을 받아 육아교육과 의료서비스 확충, 깨끗한 식수 공급 등의 사업을 벌인다”며 “그동안 한국 정부, 한국 국제협력단(코이카), 한국 기업들이 큰 도움을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미국 국적인 매코맥 지부장은 지난 2009년부터 세이브더칠드런 말리지부장을 맡았다. 세계 최빈국 10개국이 모여 있는 서사하라 사막지역의 식량안보와 구호활동 전문가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는 미국 민간구호단체인 ‘머시코(Mercy Corps)’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카자흐스탄, 르완다,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활동했다. 이번이 첫 방한인 매코맥 지부장은 지난 3년간 모자뜨기 캠페인을 후원해온 ‘GS샵’을 방문해 감사패를 전달하는 등 7박 8일간 한국에 머문 뒤 말리로 돌아간다.모자뜨기 캠페인은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를 통해 털실과 설명서가 들어 있는 ‘모자뜨기 키트’(1만 2000원)를 사서 참여할 수 있다. 매년 3~4월에 아프리카 등 지원국으로 전달된다. “말리에선 매일 아기들이 태어난다. 한국에서도 모자뜨기 캠페인이 멈추지 않고 계속 되길 희망한다”고 매코맥 지부장은 말했다.

2010.08.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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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missiles - 북 미사일 시위에‘대포동 2호’가 빠진 이유

산업 일반

경기도 파주 통일전망대를 찾은 방문객이 북한 미사일 관련 현황판을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월 2일과 4일 단거리 미사일 11기를 잇따라 발사해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 축제 분위기에 흠집을 내려 했다. 북한이 사정거리가 미국 본토에 이르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리라 예상됐지만 미국 행정부의 전문가들은 독립기념일 이전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했었다.사실 지난 몇 주간 오바마 행정부와 여타 서방국 정부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성능을 가진 대포동 2호(북한에선 은하 2호로 불린다) 같은 대형 로켓을 발사하리라 예상했다. 미국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은 3단계 로켓이 완벽하게 작동하거나 적어도 완벽에 가깝게 작동한다면 알래스카, 하와이 그리고 미 대륙의 일부까지 사정거리에 들어간다고 말한다.북한이 지난 4월 2일 발사한 대포동 2호로 추정되는 로켓은 일본 상공을 통과했지만 3단계 추진체 분리에는 실패했다고 알려졌다. 최근 북한은 미국과 여타 국가를 향한 엄포의 수위를 높여왔다. 추측하건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을 둘러싼 권력 투쟁의 여파일지 모른다. 미 국방부는 독립기념일에 즈음한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가능성에 대비해 하와이 주변의 미사일 방어망 확충 등 방어 태세를 강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2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4기 발사 직후 미 국가안보 담당 관리 2명은 미 독립기념일을 겨냥한 대포동 2호 발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북한이 로켓을 조립하지도, 발사대에 세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내 전문가들은 대포동 2호 조립 준비와 관련한 북한 내 동향을 감시해 왔다. 대포동 2호 로켓은 여전히 조립되지 않은 부품 상태로 있으며 조립에는 며칠, 심지어 몇 주가 걸릴지 모른다고 미국 관리 두 명이 귀띔했다(민감한 정보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했다). 또 발사대에 세워진 뒤에도 액체 연료를 주입하는 데 며칠이 더 소요된다고 관리들은 덧붙였다. 이런 유형의 로켓 조립과 연료 주입 과정은 비밀리에 운용되는 정탐 위성, 미국과 여타 서방국의 항공기는 물론 상업 회사가 운용하는 사진 촬영용 위성으로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고 두 관리 중 한 명이 말했다.이런 근거에 비춰볼 때 북한이 설령 대포동 2호의 발사 준비를 해왔더라도 7월 4일까지는 발사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는 말이다. 발사 준비를 서두른다 해도 대형 미사일 발사는 일러야 수주 후에나 가능하다. 따라서 독립기념일에 하와이, 알래스카, 미국의 서부 연안 상공을 밝힌 불꽃은 북한 미사일 실험과는 무관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만약 그리고 실제로 북한이 대포동 2호(미국 전문가 대부분이 이를 ICBM의 시제품으로 여긴다)를 발사한다 해도 여전히 미국 본토에 도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하는 미국 관리가 많다. 아무튼 미국 전문가 대다수는 북한의 발언이 아무리 강경해도 로켓을 하와이나 미국 내 다른 영토를 작심하고 겨냥하리라고 보진 않는다. 일부 관리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오바마의 참모들이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비한 미사일 방어체제 강화를 논의한 일도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중 보수파 등 주로 국내 여론을 의식한 행위라고 말한다. 이들 양당의 지지자들은 국방부 미사일 방어 프로그램의 일부를 줄이려는 행정부 계획을 우려했던 사람들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의 공식 웹사이트는 미국 정부가 미사일 방어 계획을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다소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 사이트는 “오바마-바이든 행정부가 미사일 방어계획을 지지한다”고는 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이 뒤따랐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사일 방어 계획이 실용적인지, 비용 면에서 효과적으로 개발되는지 확인하겠다. 무엇보다 미사일 방어 기술이 미국민을 보호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다른 시급한 국가안보 관련 예산을 끌어다 쓰지 않도록 하겠다.” 뉴스위크가 올해 초 보도했듯이 이런 문구와 유사한 내용이 오바마 취임 후 백악관 웹사이트에도 게재됐다. 하지만 최근 백악관 홈페이지 검색창에 ‘국가 미사일 방어’라는 단어를 입력해 보면 미사일 방어 계획을 한층 지지하는 듯한 행정부 정책이 나타난다. “우리 군대와 동맹국의 군대를 더 확실히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최종 단계 고도 지역 방어 시스템(the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과 ‘표준 미사일3 프로그램(Standard Missile 3 programs)’을 포함한 최고의 전역 미사일 방어망을 배치하려 한다. 이지스함도 탄도 미사일 방어 기능을 증강하도록 개조할 생각이다.” 행정부의 달라져 보이는 정책이 최근 북한 관련 사건의 산물인지, 해외 다른 지역에서 비롯된 결과인지는 분명치 않다. 7월 4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야기한 위협과는 무관하게 미 국방부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우리는 북한 미사일 관련 활동을 지속적으로 일일이 감시할 것”이라고 국방부 제프 모렐 대변인이 말했다. “비록 과거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는 실패했지만 게이츠 국방장관은 만일의 사태에도 철저히 대비한다. 게이츠는 최근 하와이에 추가 설비를 갖춰 미국의 다층 미사일 방어체제를 강화했다. 그런 시설은 북한이 또다시 국제사회에 도전하거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시도할 경우 우리 시민들을 보호해 준다. ” ■ 북한의 잇단 도발 북한은 7월 4일 탄도 미사일 7기를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이는 군사적 무력을 과시하려는 취지지만 유엔의 대북 결의안 위반이자, 국제사회의 비난과 우려를 자아내는 일이다. 미사일 발사는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집중됐다. 이번 무력 시위는 3년 전의 미사일 발사 때와 판박이다. 그때도 미국인들은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으로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독립기념일을 맞았다. 발사한 미사일 수도 같다. 다만 2006년엔 발사 후 1분도 안 돼 산산조각 나면서 동해상에 추락하긴 했지만 장거리 로켓도 발사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토요일 발사된 북한 미사일이 400㎞ 이상을 날아 동해에 떨어진 듯하다고 밝혔다. •1998년 8월 31일 북한 발사 미사일 추정 물체 일본 영공을 통과해 태평양에 추락. 북한은 인공위성이라고 주장. •1999년 9월 13일 북한,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동결 약속. •2003년 3월 10일 동해상으로 지대함 미사일 발사. 10월 지대함 미사일 2기 발사. •2005년 5월 동해상 단거리 미사일 발사. •2006년 3월 8일 단거리 미사일 2기 발사. 7월 5일 동해상 미사일 7기 발사.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도 포함. 7월 15일 유엔 안보리, 북한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요구하는 결의안 1695호 채택. 10월 9일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핵전쟁 위협’을 받는다는 이유로 지하 핵실험 실시. 10월 15일 유안 안보리, 1718호 결의안 채택. 이 결의안은 북한 핵실험을 비난하고 무역 제재 조치를 부과하며, ‘운송 수단’을 포함하는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련된 북한의 활동을 금지. •2007년 7월 14일 영변원자로 가동 중단. 불능화에 착수. •2008년 9월 19일 주요 원자로 복구 중임을 언급. 10월 11일 미국,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 삭제. •2009년 4월 5일 장거리 로켓 발사. 4월 13일 유엔 안보리, 북한 로켓 발사 비난하는 의장 성명 채택. 4월 14일 유엔 성명에 항의하는 뜻에서 북핵 6자회담 불참과 핵시설 재가동 선언. 5월 25일 두 번째 핵실험 실시. 6월 12일 유엔안보리, 핵무기 실험 관련 대북 제재 방안 담은 결의안 1874호 채택. 6월 18일 일본의 한 신문, 북한이 7월 초 하와이를 향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지 모른다고 보도.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하와이 주변에 더 많은 미사일 방어망을 배치했다고 언급. 6월 중순 군사훈련을 이유로 6월 5일부터 7월 10일까지 동해 연안에 항해 금지 수역 선포. 7월 2일 단거리 미사일 4기 실험발사. 7월 4일 단거리용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7기 발사.

2009.07.0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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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week Plus

산업 일반

Think Chic Talk Trendy 할리우드 스타들의 최신 화법Ewan McGregor on the Vatican, Kilts & His Accent“이번엔 성직자! 변신이 즐겁다” 유언 맥그레거는 장르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한 ‘다빈치 코드’의 속편 ‘천사와 악마’에서 사제복을 입고 수도회에 들어갔다. 니키 고스틴 기자가 얘기를 나눴다. Well, the church (Q1 좋아한다고 볼 수는 없지). The church didn’t like The Da Vinci Code, and I think it’s a carryover from that. There’s nothing anti-Catholic or anti-church. 글쎄, 교회가 좋아한다고 볼 수는 없지. 교회야 ‘다빈치 코드’를 싫어했으니 그 연장일 게다. 하지만 영화는 반교회적이지도 반가톨릭적이지도 않다. Is it easy to lose your accent for movies? No, I don’t ever lose my accent. I just put on another one. Hah, (Q2 한 방 먹었군). Is it hard to put on another accent? 영화를 찍을 때 특유의 액센트를 없애는 게 어렵지 않나? Q1. 좋아한다고 볼 수는 없지 doesn’t exactly like it 사람들은 단정적인 표현을 꺼린다. 나중에 책임을 회피할 길도 없거니와 어감이 너무 강해 말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may, can, guess, suppose, think처럼 가능성이나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단어를 덧붙여 어감을 누그러뜨린다. 특히 상대방의 요청을 거부하거나 부정할 때는 더욱 조심스럽다. No라고 말하면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사표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언어에서나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으면서도 반대의사를 나타내는 표현들이 있다. 영어에서는 not exactly, not really, not necessarily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어떤 사실이나 주장을 가볍게 부정하는 표현들이다. 가령 Do you keep checking out my boobs? (너, 계속 내 가슴 훔쳐보고 있지?)라고 물었을 때 Not exactly라고 대답했다면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정도의 뉘앙스다. 뻔히 알고 묻는데 no라고 대답하기는 너무 뻔뻔하고 yes라고 대답하자니 속 보일 게다. I’m not exactly happy about it, but I don’t have a choice. (마음에 꼭 드는 건 아니지만 별 수 없잖아). not really는 좀 더 부정에 가까운 표현이다. 가령 “디저트 먹을래?( Do you want dessert?)”라고 물었을 때 Not really 라고 대답했다면 “사양한다”는 말이다. 보통 “저녁을 너무 많이 먹었어(I ate too much for dinner)” 같은 설명이 뒤따른다. Do you like this restaurant?(이 식당 좋아하냐?) Not really, I found a worm in my salad one time here(별로. 여기에서 샐러드 먹다가 벌레 나온 적이 있어). not necessarily는 not exactly에 가깝다. 약간 더 격식을 갖춘 문어적 표현이다. 가령 상대방의 주장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이 맞는지 잘 판단이 서지 않을 때 I don’t necessarily disagree with you, I’m just not convinced you are correct 라고 말할 수 있다. It’s my fault. I’m going to get fired(내 잘못이야. 회사에서 나를 내쫓을 거야). Not necessarily. You should talk to your boss(꼭 그렇지는 않을 거야. 상사와 의논해봐). Q2. 한 방 먹었군. touché 흔히 논쟁에서 상대방의 말에 대꾸하거나 반박할 말이 없을 때 “내가 졌다, 한 방 먹었다, 할 말 없다”고 하는데 영어에서는 흔히 you got me 라고 말한다. 요즘에는 똑같은 의미로 touché 라는 말도 많이 쓰인다. 펜싱에서 상대방에게 검으로 찔려 점수를 내줬을 때 투셰(touché)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닿았다(touched), 맞았다(hit)는 뜻의 불어다. A: You get old, you have grey hair(너도 늙었구나. 흰 머리가 나네). B; At least I’m not bald like you(그래도 나는 너처럼 이마가 벗겨지진 않았어). A: touché (내가 졌다). Lost in Translation? 번역의 세계Death in a Libyan Jail Cell리비아 송환 포로의 의문사MICHAEL ISIKOFF, MARK HOSENBALL 기자The Obama Administration is pressing the Libyan government to explain the reported prison death of a former CIA detainee1—an incident that U.S. officials fear could reopen questions about the agency’s “extraordinary rendition2” program and further complicate the president’s plans to shut down the Guantanamo Bay detention center. According to human-rights groups, the body of Ibn al-Shaykh al-Libi—once one of the U.S. government’s prize3 captives—was turned over to4 family members last week after they were told he had committed suicide at Tripoli’s Abu Salim prison by hanging himself with a bedsheet. But U.S. officials are skeptical about the supposed suicide, which was first reported in a newspaper owned by Libyan leader Muammar Kaddafi’s son. Two weeks earlier, al-Libi was visited for the first time by human-rights workers investigating allegations that he had been tortured into making false claims connecting Saddam Hussein’s regime and Al Qaeda. (Those claims, which al-Libi later retracted5, were used by the Bush administration to bolster its case for the Iraq War.) Al-Libi also had been identified recently by U.S. defense lawyers as a possible key witness in upcoming trials of top terror suspects. “We want answers,” said an administration official familiar with the case, who asked not to be identified discussing a sensitive matter. “We want to know what really happened here.”Al-Libi’s death highlights a predicament6 facing Obama officials: returning detainees to countries that practice torture. Seven Libyans remain at Guantanamo, and U.S. officials are loath to send home any more. Last year, President Bush resumed diplomatic relations with Libya and removed it from a list of “state sponsors” of terror. But a State Department human-rights report recently concluded that Libyan security forces “routinely tortured” prisoners by applying electric shocks, breaking fingers, pouring lemon juice on open wounds and burning them with cigarettes. The U.S. official said, “It’s not in the U.S. interest to send people back to countries where they’re going to be abused or end up7dead.”Although al-Libi was never held at Guantanamo, it is believed he was held at overseas CIA “black sites8” before being returned to Libya in 2006. A CIA spokesman said “it is American policy to seek assurances” from foreign governments that suspects will be well treated. But current and former U.S. counterterrorism officials say such assurances are often perfunctory9 and rarely put in writing10. The CIA has tightened its procedures, directing stations to visit rendered prisoners and personally verify that they have not been mistreated. But it’s unknown how many such visits have been made. A spokesman at Libya’s U.S. embassy said he had “no information.”오바마 정부는 미국 CIA가 억류하다 인도한 포로1의 옥중 사망 보도를 해명하라고 리비아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미 당국은 이 사건으로 CIA의 ‘특별송환2’ 프로그램에 대한 의문이 재개돼 관타나모만 수용소를 폐쇄하려는 대통령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한때 미국 정부의 일급3 포로로 손꼽혔던 이븐 알-샤이크 알-리비가 트리폴리의 아부 살림 수용소에서 침대 시트로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고 한다. 그의 시체는 5월 중순 그런 설명과 함께 가족들에게 넘겨졌다4. 그러나 미 당국은 자살설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 설은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아들이 소유한 신문에서 처음 보도했다. 그 2주 전 인권 운동가들이 처음 그를 방문했는데 그가 고문에 못 이겨 사담 후세인 정권과 알카에다가 연결돼 있다는 허위 자백을 했다는 주장을 조사 중이었다(부시 정부는 그 자백을 이라크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는데 알- 리비는 훗날 그 자백을 철회했다5). 또 최근 미국의 피고 측 변호사들은 앞으로 열리는 주요 테러 용의자 재판에서 알-리비가 핵심 증인으로 소환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는 진실을 원한다”고 그 사건에 정통한 미 정부 관계자가 민감한 사안이라며 익명을 전제로 말했다.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알-리비의 사망은 오바마 정부가 직면한 딜레마6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문을 자행하는 국가에 억류자들을 송환하는 문제다. 관타나모에는 리비아인 7명이 남아 있는데 미 당국은 더는 억류자를 송환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부시 전 대통령은 리비아를 테러 ‘지원국가’ 명단에서 삭제하고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최근 인권 보고서에서 리비아 치안군이 전기 쇼크를 가하고,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상처에 레몬 주스를 붓고, 담뱃불로 지지는 식으로 포로 “고문을 일삼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본국으로 송환한 사람이 고문을 당하거나 결국 죽게 되면7 미국에도 이롭지 않다”고 그 미 당국자는 말했다.알-리비는 관타나모에 수감된 적은 없지만 CIA의 해외 ‘비밀 수용소8’에 수용됐다가 2006년 리비아로 송환된 것으로 여겨진다. CIA의 한 대변인은 외국 정부로부터 용의자를 잘 처우하겠다는 “보장을 받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전·현직 테러대책 당국자들은 그런 보장이 형식적이며9 문서화되는10 일이 드물다고 말한다. CIA는 절차를 강화해 송환된 수감자들을 방문하고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는지 직접 확인하라고 각 지국에 지시했다. 그러나 그런 방문이 몇 번이나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의 한 대변인은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 Notes 1 detainee: (정치적 이유로 재판을 받지 않은) 억류자, 정치범. Ex. political detainee(정치범, 정치적 억류자). 2 extraordinary rendition: 어떤 사람을 체포해 무단으로 다른 나라로 인도 또는 송환하는 조치. 미국의 테러 용의자 무단 송환조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같은 이름의 영화도 있다. 3 prize: 굉장한, 귀중한, 상을 받을 만한. 4 turn over to: ~에게 인도하다. Ex. turn someone over to the police(신병을 경찰에 인도하다). 5 retract: 취소하다, 철회하다, 번복하다. Ex. retract one’s proposal(제안을 철회하다). 6 predicament: 곤경, 궁지. 빠져 나오기 어려운 상황. Ex. become entangled in a grave predicament(심각한 곤경에 빠지다). 7 end up: 결국 ~이 되다, ~으로 끝나다. Ex. end up a disappointment(실망스러운 결과로 끝나다). 8 black site: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미국 영토 바깥에서 CIA가 운영하는 비밀 수용소. 원래는 군사용어로 비밀 군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장소를 가리켰다. 9 perfunctory: 형식적인, 기계적인, 겉치레뿐인. Ex. give a perfunctory reply(건성으로 대답하다). 10 put in writing: 문서화하다, 증서를 남기다. Ex. put an agreement in writing(계약을 서면화하다). NEWSWEEK's Key Words 추세를 읽는 키워드1. Fishbowl Effects어항 효과. 바깥으로 혹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내 모든 것이 노출돼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는 상황을 말한다.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어린 딸들을 걱정하며 이 용어를 사용했다. 지금은 어리지만 나중에 사춘기가 되면 사생활이 노출된 상황을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걱정했다. 이 용어는 다양하게 사용된다. 통유리로 제작된 사무실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느끼는 감정, 사방이 확 트여 아무 데도 숨을 곳 없이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적을 속수무책으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을 빚댈 수도 있다. (5월 27일자 22쪽)2. Lipstick Index립스틱 지수. 2001년 9·11 테러 직후 화장품 회사 에스테 로더의 레오나르 로더 회장이 처음 언급했다. 당시 에스테 로더의 립스틱 매출이 11% 늘었다. 여성들이 명품 핸드백이나 구두는 부담스러우니 값싼 립스틱으로 기분 전환을 꾀한다는 설명이다. 그 뒤로 불황엔 립스틱이 많이 팔리기 때문에 립스틱 판매량으로 경기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하지만 최근의 경기위기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생겼다. 지난해 미국 백화점의 립스틱 매출이 전년보다 9% 하락한 것이다. 립스틱 지수가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 수단이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5월 27일자 40쪽)3. White Hat선량한 해커. 윤리적 해커(Ethical Hacker) 혹은 침투 테스터(Penetration Tester)라고도 한다. 일부러 시스템에 침투해 취약점을 찾아내는 게 주요 업무다. 그 반대는 악한 해커(Black Hat) 혹은 크래커(Cracker)로 불린다. 원래 서부영화에서 착한 주인공은 흰 모자, 악당은 검은 모자를 쓰고 나온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요즘 실리콘밸리는 포르노, 스팸, 피싱 등과 전쟁을 벌인다. 페이스북의 ‘사이트 청결단(Site Integrity)’이라는 부서는 시스템 취약성을 보완하려고 ‘선량한 해커’를 고용했다. 이들은 해커들이 드나드는 은밀한 인터넷 공간에서 ‘순찰’이나 ‘잠복근무’를 하기도 한다. (5월 27일자 51쪽)4. Prairie School프레리 양식.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유행하던 건축 양식. 가로 수평의 선이 강조되고 평평하며 넓은 처마가 달린 지붕, 주변 경관과의 일체감, 정교하지만 남용되지 않는 장식으로 유명하다. 수평의 선은 드넓은 대초원을 상징한다. 대표적인 건축가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루이스 설리번이다.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라이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06년에 설계한 프레리 양식의 주택인 ‘마틴 하우스’는 공예유리가 달린 작은 창문 한 짝이 지난해 12월 소더비 경매장에서 21만8500달러에 팔렸다. (5월 27일자 58쪽) Crossword Puzzle 꼭 맞는 단어 찾기The Ultimate Homework Assignment It happens to everyone, yet we rarely discuss it. Even before we experience it ourselves, relatives and close friends will. Gender, race, religion, sexual orientation, political preferences, profession, income are irrelevant. Bottom line: we all die. And yet, we have a hard time talking about death and dying. And when we do, there is discomfort and difficulty speaking about this topic. We are a death-denying culture and by not being open about death and dying, we leave ourselves unprepared to face other deaths and, ultimately, our own. “How are you,” well-intentioned friends, colleagues and neighbors asked after my father died. We all ask this question each day in interactions, fully expecting people to respond “fine,” “OK.” But I wasn’t fine. My father had just died of leukemia. I was with him throughout the dying process and his actual death. Part of me had just died, too, no longer able to converse with my dad or see him again. (관련 기사는 뉴스위크 한국판 2009년 5월 27일자 70쪽에 실렸습니다) Across 1. to reply or answer 3. a group of persons related by common descent or heredity 5. of, pertaining to, or belonging to oneself or itself (usually used after a possessive to emphasize the idea of ownership, interest, or relation conveyed by the possessive) 6. implying or symbolizing erotic desires or activity Down 1. infrequently; seldom 2. the total and permanent cessation of all the vital functions of an organism; the end of life 4. being near in relationship, based on a strong uniting feeling of respect, honor, or loveown joys. Quiz 지난 기사 떠올려 보기1. Every time one of these viruses is detected, writers and officials bring up the ______ epidemic of 1918 in which millions of people died. Indeed, during the last pandemic scare, in 2005, President George W. Bush claimed that he had been reading a history of the ______ to help him understand how to respond. (5월 27일자 World View)a. Asian flu b. Spanish flu c. Hong Kong flu2. During an exclusive interview with President Barack Obama on May 13, Newsweek’s editor Jon Meacham asked him whether he would read over a paragraph from his book, ______, and react to it. (5월 27일자 U.S. Politics)a. The Audacity of Hope b. Dreams from My Fathers c. Faith of My Fathers3. Newspapers from London to Seoul have begun heralding China’s emergence as a global hegemon, and journalist Martin Jacques recently predicted in the Guardian that ______ would soon replace New York as “the world financial center.” (5월 27일자 World Affairs)a. Hong Kong b. Shanghai c. Beijing 4. As the truism goes, when times get tough, women buy lipstick to make themselves feel better. In 2001, Estee Lauder chairman Leonard Lauder coined the phrase “Lipstick Index” to describe why lipstick sales rose by 11 percent in the months after 9/11. As Lauder put it, “In stressful times, many consumers are reaching out for those small indulgences that provide ______ pleasure.” (5월 27일자 Society) a. heavenly b. constant c. momentary Practical Business English 실용 비즈니스 회화 Stop breathing down my neck! 감시는 그만둬! Sue Every time I sit down at my desk, my boss comes over and starts breathing down my neck1! I’m going to quit if hedoesn’t back off2 soon, come what may 3! William I know why he is so stressed out4 these days. He has to answer for5 our current quality issues in production. The CEO received several communications from our clients and stockholders complaining about our braking system. This caused a ripple effect6 throughout the company, beginning in marketing and continuing on to us in production. Sue Why does he have to take it out on me? I don’t produce anything but the production statistics! William He isn’t exactly skilled in anger management. Last year he took a run at7 me because he received an ultimatum from his boss to either increase productivity by 10% or lose his job. I had nothing to do with the problem, but I happened to be in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8 and he vented his frustration on9 me. He was angry that I didn’t have a report finished early! Crossword Puzzle Answers: 1.B 2.A 3.B 4.C Notes 1 to breathe down someone’s neck: ~를 철저하게 감시하다(=to keep close watch on someone). 2 to back off: 물러서다(=to withdraw),그만두다(=to stop). 3 come what may: 무슨 일이 있어도(=whatever happens). 4 to be stressed out: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under so much stress), 스트레스로 매우 지친(=to suffer from high levels of stress). 5 to answer for something: ~에 대한 책임을 지다(=to take responsibility for something). 6. ripple effect: 연쇄 효과, 도미노 효과(=domino effect),연쇄 반응(=chain reaction). 7. to take a run at someone: ~를 공격하다(=to try to attack someone). 8. to be in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 운이 나쁜(=to be unlucky). 9. to vent frustration or anger on someone: ~의 좌절감이나 분노를 ~에게 표출하다(=to express someone’ frustration or anger at someone). On the Green 골프영어Out of Bounds(OB)김 맹 녕 골프칼럼니스트OB는 ‘out of bounds’의 약자다. 경기가 허용되지 않는 지역 또는 위원회가 그렇게 표시한 코스의 일부를 말한다. OB 표시는 흰 말뚝, 담장 또는 흰 선으로 표시한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OB가 나면 1벌타를 받게 된다. 결국 한 타와 거리 손해를 보게 되어 OB를 영어로는 ‘one stroke plus distance(스트로그와 거리에 따른 벌)’라고 한다.티잉 그라운드에서 친 공이 OB가 나면 플레이어는 원위치로 돌아와서 플레이를 해야 한다. 최초의 티샷 1타에 OB 1벌타를 합치면 2타가 되고 다시 치는 것 1타를 합하면 제 3타째가 된다. 미국인들은 OB가 나면 ‘Oh! Beautiful’ 또는 ‘Oscar Bravo’라고 익살스러운 표현을 한다. OB의 반대말은 ‘In Bounds’다. (At the teeing ground: 티잉 그라운드에서) A: Darn it! My tee shot went out of bounds to the left. 이럴 수가! 제 티샷이 왼쪽으로 OB가 났군요. B: Are you sure it’s OB? You’ll have to replay it from the tee. 티샷 볼이 OB난 게 틀림없죠? 당신은 티에서 다시 쳐야 합니다. (Through the green*: 스루 더 그린에서) A: I hit my second shot out of bounds. Do I drop it or place it? 두 번째 샷이 OB가 났군요. 드롭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플레이스를 해야 합니까? B: Whenever you’re playing through the green you have to drop it where it originally lied. 스루 더 그린에서 플레이 할 때는 언제나 최초로 공이 놓여 있던 자리에서 드롭을 해야 합니다. *스루 더 그린(through the green): 골프에서 티잉 그라운드(teeing ground), 그린(green), 해저드(hazard)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말한다.

2009.06.10 14:58

15분 소요
[이재광 전문기자의 역사를 알면 경제가 보인다① l 유가의 역사] 최근 고유가 ‘공급 부족 역사’의 줄기

산업 일반

1974년 1차 오일 쇼크로 주유소 앞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는 미국 자동차들. 이 상황은 1979년에 다시 한번 벌어졌다. 이재광 전문기자. 유가가 급등하면서 다시 1970년대 상황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유가 상승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자 70년대 1, 2차 오일 쇼크에 이어 세 번째 오일 쇼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최근 세계 유가의 기준이 되고 있는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값이 연속 최고가를 기록하며 60달러를 넘어섰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수년 내 100달러를 돌파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동산 두바이유 역시 55달러를 돌파해 역시 명목가로는 최고가를 유지하고 있다. 유가 급등의 원인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수급 불균형을 꼽는다. 중국이나 인도 등 구(舊) 대국의 급속한 산업화로 최근 수년 사이 석유 수요는 크게 늘었지만 공급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석유 공급은 수요를 하루 평균 80만 배럴 초과했지만 올 1분기는 거꾸로 수요가 공급을 20만 배럴 초과한 상황”이라며 수급 불균형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더 근본적인 이유를 든다. “석유자원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다. 찾아낼 유정의 수는 한정돼 있고 소비는 늘고 있으니 유가 급등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이들은 세계 석유 생산의 정점을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을 2조1000억 배럴로 가정했을 때 정점은 2003년 또는 2004년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간 큰일이 아니다. 수요는 커지는데 공급은 늘지 않으니 유가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하다. 프린스턴대 지질학과 교수였던 케네스 S. 데페이에스는 “세계의 석유 생산은 21세기 첫 10년 사이 정점에 도달할 테고 원유 생산은 감소해 다시는 증가세로 돌아서지 못할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 유가 동향과 그 분석을 보면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진짜 수급 불균형이 원인일까, 석유자원은 고갈되는 것일까, 수급 불균형이 주는 결과는 무엇일까, 언제쯤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70년대 상황은 이 질문에 상당한 힌트를 준다. 일단 70년대 1, 2차 오일 쇼크의 과정을 보자. 73년 10월 6일 터진 제4차 중동 전쟁으로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를 무기화했다. 일치단결해 유가를 한꺼번에 70% 인상하고 산유량을 매달 5%씩 감축했다. 여기에 이스라엘 지지국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를 단행함으로써 미국 등 서방 국가들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 73년 1월 배럴당 2달러59센트였던 원유 값은 74년 11달러65센트로 4.5배나 올랐다. 이후 70년대 후반까지 유가는 11∼15달러 선을 유지했다. 높기는 했어도 그런 대로 안정세를 보이던 유가는 78년 또 한 차례 요동쳤다. 그해 혁명으로 집권한 이란의 이슬람 원리주의자 호메이니가 반미·반이스라엘을 외치며 석유 수출 금지령을 내렸다. 79년 유가는 40달러까지 폭등했다. 실질가격으로 봤을 때 이때가 150년 유가 역사의 피크였다. 이후 83년까지 유가는 30달러대를 유지하며 고유가 체제를 이어갔다. 73∼83년의 10년 사이 유가가 10∼20배나 뛴 것이다. 오일 쇼크가 70년대에 온 까닭 “모든 나라는 지금과 같은 재정 수입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고 개발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희열의 순간에 우리의 기력은 쇠했습니다. … 우리의 가격은 세계시장에 비해 너무 높습니다." 83년 초 OPEC의 한 회의석상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메드 자키 야마니 석유장관은 이렇게 비통하게 말했다. OPEC의 유가 조정은 더 이상 힘들다는 의미였다. 그해 2월 말 영국의 국영 석유회사가 북해산 석유를 배럴당 3달러 내린 30달러로 시장에 내놓자 OPEC가 손을 들고 말았다. OPEC는 세계 유가를 배럴당 34달러 수준에서 유지하고 싶었지만 그해 3월 유가는 29달러로 떨어졌다. 이로써 73년 제4차 중동 전쟁과 79년 이란 혁명에서 비롯된 두 번의 오일 쇼크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혁명 직후 40달러까지 치솟았던 유가는 85년 11월 27달러까지 떨어졌다. 1, 2차 오일 쇼크의 원인 해석은 이제 거의 상식으로 굳어졌다. 중동 산유국들이 이스라엘 지원국인 미국을 겨냥해 석유를 무기로 썼다는 것이다. 만일 OPEC가 유가를 조종하지만 않았어도 오일 쇼크는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얘기에는 허점이 있다. 중동 산유국들은 그 이전에도 ‘석유의 무기화’를 시도했었다는 점이다. 결국 여러 차례의 시도 중 두 차례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50∼60년대만 세 차례의 위기 상황이 있었다. 전후 최초의 위기 상황으로 알려진 것은 51년. 이 해 4월 집권한 모하메드 모사데크는 다음달 세계에서 세 번째 원유 생산회사인 이란 내 영국계 석유회사 앵글로-이란을 전격 국유화해 버렸다. 56년에도 세계 석유시장을 떨게 만든 대사건이 발생했다. 이집트의 민족주의자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이 해 7월 일방적으로 영국과 프랑스 소유였던 수에즈 운하를 접수해 버린 것이다. 당시 수에즈 운하는 유럽에서 소비되는 석유의 3분의 2가 통과되는 절체절명의 요충지였다. 하지만 이 위기들은 큰 문제 없이 넘어갔다. 67년 제3차 중동 전쟁이 터졌을 때도 세계 석유시장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전쟁 발발 다음날인 6월 6일 아랍국 석유장관들은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국가들엔 석유 수출을 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즉각적인 수출 금지를 명령했다. 다음날부터 중동으로부터의 석유 공급은 무려 60%나 감소했다. 하지만 서방세계는 이 위기 역시 무사히 넘겼다. 50∼60년대 위기와 70년대 위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핵심은 바로 중동 이외 지역에서의 잉여 생산 능력이었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의 60년도 보고서에는 “중동에서의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 미국은 국내 생산중지 중인 유전들을 개발하면 대처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있다. 결국 세계 석유시장의 여유 생산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위기를 막는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이다. 67년 미국은 생산 중지 중인 유전을 가동시켜 하루 100만 배럴을 추가로 생산할 수 있었다. 이 추가 생산량은 베네수엘라의 추가 생산량 40만 배럴, 이란의 추가 생산량 20만 배럴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향후 20년간 고유가 시대 전망 석유를 처음으로 시추한 1851년 이후 120년 동안 석유는 대체로 여유 생산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일시적인 초과 수요도 없지 않았지만 석유는 대체로 공급 과잉이었다. 수요가 늘어 유가가 뛸 것으로 보이면 새로운 유정이 터져나왔다. 초기에는 미국 내부에서, 그리고 이후에는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대형 유전이 개발됐다. 석유 공급 부족이 우려될 때마다 튀어나온 일부 석유업자나 전문가들의 ‘자원 고갈’ 우려는 매번 ‘우려’로 끝났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석유 소비가 급격히 늘어 석유시장은 수요 초과 상태였다. 49∼72년 미국의 석유 소비량은 3배, 서유럽은 15배, 일본은 무려 137배나 늘었다. 세계 석유 생산량도 5.5배 늘었지만 소비를 감당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71년 “미국의 석유 생산 능력은 100% 가동되고 있다”는 텍사스 철도위원회의 발표는 이를 알려주는 상징이 됐다. 석유 생산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유럽은 경악했다. 국무부의 석유전문가 제임스 아킨스는 73년 “이번에는 진짜 늑대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위기에 대비한다며 석유비상대책팀까지 편성했다. 중동 산유국들 역시 이 사실을 알았다.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왕은 석유의 생산 중단이나 감산이 소비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연구할 것을 지시했다.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만일 OPEC가 석유 생산을 중단 또는 감산할 경우 미국 등 서방 제국이 입을 피해는 엄청나다”는 내용이었다. 4차 중동 전쟁이 터진 10월 6일 중동 산유국들은 유가를 100%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80년대 시장은 또 한 차례 변화를 보였다. 수요가 대폭 줄면서 다시 공급 과잉 시대가 돌아온 것이다. 70년대 세계 각국이 실시했던 ‘석유 덜 쓰기’ 정책도 주효했지만 무엇보다 유가 상승으로 세계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졌다. 공장 가동이 주니 석유 소비도 크게 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 2차 오일 쇼크를 경험한 선진국들은 수입선을 다변화했고 국제 석유회사들은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새로운 유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고유가에 신음하던 선진국들의 고육지책이 10년 만에 서서히 열매를 맺어갔던 것이다. 80년 9월 터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이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전쟁 직후 유가는 한때 배럴당 42달러까지 치솟았다. 전쟁 초기 세계 석유시장에서는 하루 400만 배럴의 석유가 공급되지 않았다. OPEC 생산량의 15%, 서방 제국 수요의 8%에 해당하는 것으로 제3차 오일 쇼크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상황은 오지 않았다. 치솟던 유가는 곧 꺼지더니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다. 86년에는 급기야 OPEC의 가격 카르텔마저 붕괴되며 유가는 대폭락을 기록했다. 86년 7월 유가는 8달러를 밑돌아 바닥에 이르렀다. 이제 80년대 초·중반 시작된 공급 과잉 시대는 끝나고 다시 ‘수요 초과’의 시대가 온 것일까? 대체로 ‘그렇다’는 해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투기자본의 침투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역사적으로 위기와 함께 유가가 오르면 늘 투기자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IEA는 주요 나라의 정부와 석유회사에 불필요한 구매를 자제할 것을 정식 요청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번 수요 초과 기간은 언제까지일까? 국제통화기금(IMF)은 “당분간 석유의 수급을 맞추기는 어렵다”며 “세계경제는 앞으로 20년간 고유가에 적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70년대 수요 초과기의 두 배다. 세계는 지난 70년대 고유가를 어렵게 이겨냈다. 불황을 겪으며 석유 소비를 줄이고 새로운 유정을 찾아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유정의 출현을 기대하지만 당분간은 그때의 노력과 고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5.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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