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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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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된 헤즈볼라 사령관, 美 ‘현상금 94억원’ 테러리스트였다

국제 이슈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레바논 표적 공습으로 사망한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최고 사령관은 미국이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리고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었던 인물로 드러났다.AFP 통신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브라힘 아킬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특수작전 부대 라드완의 지휘관으로, 헤즈볼라의 최고위 지도부 가운데 한명이다.이스라엘군에 따르면 아킬은 2004년부터 헤즈볼라 작전 책임자로 활동해왔으며, 대전차 미사일 부대와 방공 작전 감독 등을 맡았다.헤즈볼라와 가까운 한 소식통은 아킬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에 이은 서열 2위의 지휘관으로 묘사했다.미국은 아킬이 헤즈볼라의 최고 군사 기구인 ‘지하드 위원회’의 일원이자 350명 넘게 숨진 1983년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및 미국 해병대 막사 폭탄 테러의 배후에 있는 헤즈볼라 연계 그룹 ‘이슬람 지하드 기구’의 주요 일원이라고 밝히고 있다.아킬은 미국 해병대 막사 폭탄 테러 등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은 이 두 사건에서 그가 한 역할을 이유로 그를 “핵심적 지도자”라고 묘사하며 지명 수배했다.미국은 지난해 그의 발견, 위치 확인, 체포, 유죄 선고로 이어지는 정보 제공에 대해 최대 700만 달러(약 93억5000만원)의 포상금을 걸었다.또 미국은 아킬이 1980년대 말 레바논에서 있었던 미국인, 독일인 인질 납치를 지휘했으며 1986년 프랑스 파리 폭탄 테러에도 연루됐다고 밝혔다.미국 재무부는 2015년 아킬과 슈크르를 테러리스트로 제재했고, 미국 국무부는 2019년 아킬을 ‘특별 지정 국제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렸다.다른 대부분의 헤즈볼라 지도부와 마찬가지로 아킬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60대로 추정되는 그는 1980년대 헤즈볼라 창설 즈음부터 조직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며 앞서 여러 차례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바 있다.NYT는 이스라엘의 한 전직 장성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과거에도 여러 차례 아킬을 암살하려고 했으나 그는 매번 목숨을 건졌으며 2000년에는 이스라엘 헬리콥터들이 아킬의 차량에 포격을 가했지만 그는 경상만 입은 채 살아남았다고 전했다.잎서 이스라엘군은 20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겨냥한 ‘표적 공습’으로 헤즈볼라 특수작전 부대 라드완의 지휘관 이브라힘 아킬을 제거했다고 밝혔다.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아킬과 함께 최소 10명의 헤즈볼라 지휘관이 사망했다”며 “그들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삼아 다히예 중심부 주거용 건물 지하에서 이스라엘 북부의 민간인 테러를 모의하고 있었다”고 했다.몇시간 뒤 헤즈볼라도 아킬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살해됐다고 확인했다.

2024.09.21 15:51

2분 소요
퍼지는 ‘중동發 화약 냄새’에…정유 업계 ‘노심초사’

산업 일반

국제 유가가 출렁인다. 이스라엘과 이란·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전운이 고조되면서다. ‘중동 긴장’에 덩달아 국내 정유 업계도 긴장한다. 정제마진 하락으로 2분기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유가의 불확실성까지 얹어진 까닭이다. 문제는 하반기다. ‘중동 리스크’ 확대로 하반기에도 위험은 여전하다. 결국 정유업계는 국제 유가 전망이 어려워지면서 하반기 전망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지난달 31일 이란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암살됐다. 이란 입장에선 자국의 중심에서 하마스 수장이 암살된 셈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이번 암살과 관련해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국제 사회는 암살의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고 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보복을 고심하는 이유다.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로켓 약 25발을 발사했다. 헤즈볼라는 친이란 성격을 띤다.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고위급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를 잃은 바 있다. 이스라엘을 배후로 한 ‘암살’이 중동 화약고를 들썩이게 만든 핵심 계기가 된 셈이다. 롤러코스터 탄 ‘국제 유가’중동 정세가 급격히 불안해지면서 국제 유가도 덩달아 요동친다. 대표적인 예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다. WTI는 3대 유종 중 하나로 미국 서부 텍사스주의 중부 지역에서 생산된다. 주로 미국 내에서 거래된다. 다만, 세계 최대 선물거래소인 뉴욕상품거래소에 상장된 중심 유종으로 국제유가를 선도하는 가격지표로 많이 활용된다.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 종가 보다 3.22달러(4.2%) 올랐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큰 상승 폭이다. 다음날 13일(현지시간) WTI 종가는 전장보다 2.14% 하락한 배럴당 78.35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시장 참가자들은 ‘원유 수요 악화’에 주목했다. 중동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됨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원유 수요 악화가 원유 급등세를 진정시킨 셈이다.실제 전 세계 원유 수요는 계속 약해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분기 전 세계 원유 수요는 하루 71만 배럴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22년 말 이후 가장 작은 원유 수요 증가폭이다. 앞서 지난 12일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중국의 수요 감소를 원인으로 올해 글로벌 원유 수요 증가 전망치를 하루 13만5000배럴로 제시했다. IEA는 OPEC이 감산 조치를 유지하더라도 브라질과 캐나다, 미국 등의 산유량이 증가함에 따라 내년에도 원유 공급은 과잉일 것으로 전망했다. 흔들리는 정유 업계중동의 화약 냄새는 국내 정유 업계에게 뼈 아프다. 가뜩이나 정제마진 하락으로 인해 2분기 아쉬운 성적표를 받은 가운데, 유가의 불확실성이 더해지는 까닭이다.14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실적을 발표한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에쓰오일·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의 영업이익 합계는 396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분기와 비교하면 수익성은 곤두박질친 셈이다.지난 1분기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이익 합계는 1조8006억원이다. 불과 3개월 만에 영업이익이 약 78% 급감했다. 국내 정유사들이 부진한 실적을 받게 된 핵심 원인으로 본업인 석유 부문이 지목됐다. 2분기 들어 정제마진 약세와 함께 석유 수요 둔화 등이 이어지자 덩달아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탓이다.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값과 수송·운영비 등 비용을 제외한 것을 뜻한다. 주로 정유사의 수익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사용된다. 업계에서는 통상 4~5달러 선을 손익 분기점으로 본다.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 정유시장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올해 1분기 기준 7.3달러에서 2분기 3.5달러로 반토막 났다.이같은 상황 속에서 중동 지역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할 경우 원유 공급망은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원유 공급망 불안은 원유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다만, 수요가 부족한 상황 속 오르는 원유 가격이 오히려 정제마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하반기 전망도 불투명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최근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12대 수출 주력 업종의 매출액 1000대 기업 중 15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하반기 수출전망 조사’에 따르면 석유제품의 경우 올해 하반기 채산성이 더 악화할 것이라는 응답 비율이 100%로 모든 업종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호황기에는 국제유가와 석유 제품 수요가 함께 증가하는 까닭에 정제마진이 증가한다”면서도 “수요는 늘지 않고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유가만 상승 할 경우 오히려 제품 생산비만 증가해 정제마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 하반기 반등도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24.08.14 17:55

3분 소요
“동료가 절 무시하는 것 같아요”…망상에 빠지지 않으려면

전문가 칼럼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대통령 총격이 미국에선 ‘전무후무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 뉴스에서 봤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81년 3월 30일 오후 3시 30분, 레이건 대통령에게 총격이 가해졌다. 범인은 25세 청년이었던 존 힝클리 주니어다. 그가 쏜 총알 6발 가운데 한발은 방탄 리무진에 튕겨져 레이건 대통령의 겨드랑이를 뚫고 폐를 관통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총알은 심장 2.5㎝를 앞두고 멈춰섰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라면 귀가 아닌 머리에 피격을 당했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만큼이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였다.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토머스 매튜 크룩스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지만, 힝클리는 체포돼 범행 동기를 밝혔다. 그가 대통령을 쏜 이유는 황당하게도 여배우 조디 포스터 때문이었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을 죽이면 포스터가 자신에게 사랑 고백을 할 것이라 확신했다. 일종의 ‘연애망상’(erotomania)이다. 적어도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본다면, 대통령을 저격하는 일과 당대 최고의 여배우에게 사랑 고백을 받는 일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도 없다. 힝클리는 이후 판사로부터 교도소 수감 대신 무기한 치료감호를 선고받았다.생각에도 질병이 자리한다망상은 ‘생각의 질병’ 가운데 하나다. 생각의 조각들이 짜 맞춰져 사고(思考)를 이룬다고 보면 생각의 질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사고의 형식이 잘못된 경우다. 생각이 맞춰지지 못하고 잘못 짜인 셈이다. 생각의 내용과는 무관하다. 생각의 고리가 끝없이 이어져 종착점을 잃어버리거나(이탈(tangentiality) 혹은 탈선(derailment)), 생각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 못해 막히거나(지연(retardation) 혹은 차단(blocking)), 의미 없는 말들을 장황하게 읊조리는(음송증(verbigeration)) 등 모두 생각 형식에 문제가 생긴 경우라 할 수 있다.다른 하나는 연애망상과 같이 생각하는 내용이 잘못된 경우다. 관계사고(혹은 관계관념)가 대표적인 사고 내용의 병이다. 관계사고는 타인, 특히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의 말이나 행동을 끊임없이 연관시켜 생각하는 증상을 지칭한다.20대 후반의 사회초년생 K가 그랬다. 그는 “선배와 동료들이 입사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이 느껴져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옆 책상에서 일하는 다른 직원이 대화하면 내 험담을 하는 듯 느껴져 가슴이 두근거리고, 뒤에 앉은 과장님은 화난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것 같아 뒤통수가 찌릿찌릿하다는 설명이다. 모든 주변의 움직임, 소리 등이 나를 향한 메시지처럼 받아들여지니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한숨을 푹 내쉬던 그였다.K는 다행히 관계사고가 깊어지기 전 치료를 받아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었다. 만약 그가 관계사고를 방치했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 있었다. 관계사고가 관계망상으로 고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망상은 잘못된 생각에 자기 확신까지 더해져 굳어진 상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을 함에도, 스스로가 틀리지 않다고 신념에 차 있는 셈이다. 관계사고가 망상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일은 치료를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자신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잘못된 내용을 납득시키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미국 법원이 힝클리에게 무기한 치료감호를 선고한 이유가 심신상실로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망상 속에 빠져 정상적 사고가 불가능한 점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망상을 망상이라 인지하고 말할 수 있는 이상, 더 이상 망상을 하는 건 아닌 셈이다.개인 의지만으로 관계사고를 극복하긴 쉽지 않다. 상당 기간 남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고 소리에 민감해지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시간이 늘게 되는 등 정신적 고통 속 당사자가 관계사고를 식별할 만한 상태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K의 상황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가능성이 크다곤 할 수 없지만, 팀원들이 카카오톡이나 사내 메신저로 나 몰래 험담하는 상황은 얼마든 있을 수 있다. 가능성이 더 낮긴 하지만, 과장이 그날따라 기분이 나빴던 나머지, 괜히 막내 사원의 뒤통수를 노려봤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관계사고, 어떻게 극복할까관계사고를 벗어나려다 역으로 또 다른 ‘생각의 병’에 빠질 위험도 있다. 자아비판과 고뇌를 반복하는 강박사고다.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내 사고가 비합리적인 건 아닐까’ 끊임없이 되뇌는 일도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K 또한 “동료들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과 “동료들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했다고 언급했다. 관계사고로 문제가 생겼을 때 최대한 빨리 전문의를 찾아야 하는 배경이다.예방도 중요하다. 생각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기본’에 충실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적절한 운동과 과음 폭식 자제 등, 몸에 좋은 습관은 마음에도 좋다. 문제는 이 습관들이 처방은 쉽지만 실천하긴 어렵다는 점이다. 정신건강 증진에 앞장서야 할 나조차도 일에 치여 운동을 거르고 모임에 치여 음주와 폭식을 일삼곤 한다.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습관도 실천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모두가 행간에 하고 싶은 말을 숨겨두는데 나홀로 ‘눈치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본에 충실하기 어려운 만큼 최소한의 권유만을 남겨본다. 잠시 생각과 사고를 멈추는 시간을 가지길 추천한다. 현대사회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정신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변화가 빠른 만큼 고민도 많아진다. 장마에 주말농장 텃밭이 쑥대밭으로 변하진 않았을지, 인공지능 챗GPT(ChatGPT)가 아이들의 일자리를 빼앗지는 않을지, 미국이 고립주의를 선택하게 돼 투자를 받는데 지장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울 수 있다. 고민 속 생각을 이어가면 관계사고에 빠질 가능성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인위적으로라도 생각을 멈추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니 하루 두 번 15분씩이라도 생각을 비우고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관계사고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내가 이 고민과 생각 때문에 힘들구나”라고 깨닫는 계기를,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4.07.28 07:58

4분 소요
'트럼프 재선' 가능성에도…증권사

증권 일반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이 높게 점쳐지는 가운데 국내 이차전지 관련 종목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증권가는 대표적인 이차전지주로 꼽히는 ‘에코프로그룹주’들에 대해 신시장 확대 기대감을 반영하며 목표가를 상향 조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간 전기차 세액공제 내용 등이 포함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 가능성을 거듭 시사해 왔던터라 그의 재선 가능성은 이차전지업계에 악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고 나서면서 이차전지주 가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모습이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대표적인 이차전지주로 꼽히는 ‘에코프로그룹주’들은 일제히 상승 마감했다. #에코프로가 전날보다 3.70%(3500원) 오른 9만8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머티도 각각 1.79%, 0.97% 상승 마감했다. 이 밖에 이차전지주로 꼽히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3.11%)도 강세를 보였다. 다만 ▲#SK이노베이션(-3.17%) ▲#포스코퓨처엠(-0.20%) ▲#LG화학(-0.60%) 등은 소폭 하락 마감했다.이차전지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의 주가가 오르면서 장중 2800선이 무너졌던 코스피지수는 그래도 2820선 위에서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8.94포인트(0.67%) 내린 2824.35를 기록했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1.32% 하락한 2805.64에 개장해 장중 2799.02까지 내리기도 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3814억원을 팔아치웠다. 코스닥지수는 전날 대비 6.93포인트(0.84%) 하락한 822.48로 마감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기관이 830억원을 순매도한 가운데,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129억원, 771억원을 순매수했다. 증권가 호전망 상승 압력...현대차證, 한미반도체 목표가 30만원↑이처럼 이차전지 관련 종목들이 강세를 보인 배경은 증권가의 호전망이 상승 압력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증권은 한미반도체에 대해 시스템 반도체 고객사 확보를 통해 신규 시장 확대가 기대된다며 목표주가를 기존 26만원에서 30만원으로 상향했다. 투자의견은 매수를 유지했다.곽민정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은 AI 연산장치와 메모리간 물리적 거리를 좁히고 대역폭을 넓혀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는 특성이 강조되면서, 서버에서 온디바이스까지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 서버 내 그래픽처리장치(GPU)가 고대역폭메모리(HBM)과 데이터를 주고 받으며 AI 연산을 수행하는 것처럼 온디바이스 역시 HBM에 상응하는 메모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차전지주가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우려에 연초 이후 꾸준한 하락세를 보였으나 테슬라 반등 영향으로 밸류체인 전반에 저가 매수세가 유입됐다”고 부연했다.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차전지 업황의 1차 핵심 지표인 리튬·니켈 가격이 바닥을 확인했다”며 올해 하반기 이차전지 업계가 2차 상승 사이클을 맞이할 준비 단계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시장의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그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 폐기 등 전기차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공약을 이어왔다.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사건으로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차전지주에 악재로 여겨지고 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시 유세 현장에서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른쪽 귀에 총을 맞고 주저앉았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충격적인 대선후보 암살 시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세를 키우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고 나선 것이 이차전지주에 긍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머스크 CEO는 피격 사건 직후 소셜미디어 X에 “나는 트럼프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그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며 “미국이 이렇게 힘든 후보를 마지막으로 지지한 것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였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김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차전지는 IRA 폐기 공약 때문에 직관적으로는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럼에도 최근 머스크가 트럼프의 경제 참모로 거론되고 있고, 피격 사건 이후 공개적 지지를 보이고 있어 테슬라 밸류체인인 이차전지주들은 단기 강세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2024.07.18 17:41

3분 소요
독재로 억압받던 1984..위기 속에서 찾은 기회

산업 일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있다. 1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걸 4번이나 반복했다. 긴 시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지 가늠되지 않는다. 1984년 ‘푸른 쥐의 해’ 갑자년(甲子年)에 창간돼 국내 경제의 방향성을 제시했던 ‘이코노미스트’의 시간도 벌써 40년이 흘렀다.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했던 그 시절을 되짚어 보면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의 미래를 조금은 더 안정적으로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1980년대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했던 시기다. 1979년 제2차 석유 파동 여파와 국내 정치 불안 등이 맞물리면서 위태로웠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저금리·저유가·저달러 등의 영향으로 경제 성장에 속도가 붙었다. 일례로 1986년부터 3년간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1%를 상회했다.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4년은 침체기에서 회복 및 성장기로 가는 과도기였다. 경제 상황은 좋지 않았고, 서민들의 생활은 어려웠다. 기업들은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한 혁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2024년 현재 고물가·고금리·국내외 정세 불안 등의 영향으로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새로운 변화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40년이라는 세월의 격차가 있지만 1984년과 2024년은 어떤 점에서 닮은 부분이 있다.그 시절을 돌아보면 낯익은 것들도 눈에 보인다. 그해 처음 출시돼 현재까지 판매 중인 식료품들이 그렇다. 대표적으로 ▲농심 ‘짜파게티’ ▲동양제과(현 오리온) ‘고래밥’ ▲한국야쿠르트유업(2012년 계열 분리 팔도에서 판매) ‘팔도 비빔면’ ▲롯데제과 ‘칸쵸’ 등이 있다.당시 물가는 어땠을까. 시대별 물가 흐름을 볼 때 자주 거론되는 것이 짜장면 값이다. 이를 보면 그 시절 상황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때 고급 음식으로 분류됐던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한국물가정보 집계 기준)은 572원이었다. 현재 짜장면 한 그릇의 평균 가격은 7069원 정도다. 금값은 g당 1만517원, 쌀값은 80kg 기준 6만1428원이었다.1984년 어린 시절을 보낸 지금의 5060세대는 당시를 회상하며 “찢어지게 가난했다”라고 말한다. 물론 그 시절을 보내지 않은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해 1인당 국민총소득(Gross National Income·GNI)은 2300달러(약 317만원)에 불과했다. 국민총소득은 국민이 국내외 생산활동에 참여하거나 자산 제공을 대가로 받은 소득의 합계를 말한다. 국민 소득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만든 경제지표다. 당시 한국의 GDP 수준은 세계 상위 50위 내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한국은 1987년 이후부터 50위권에 포함됐다.소득 수준이 높은 그룹에 속하는 현대·럭키금성·삼성 등 대기업 신입의 월급(대졸 기준)은 29만원에서 30만원 사이였다. 이들을 제외하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당시 일용직 노동자의 일급은 500원에서 800원 사이였다. 하루 일하면 짜장면 한 그릇을 겨우 사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인 3만3745달러(약 4646만원)와 비교하면 격차가 상당하다. 현재 일용직 노동자의 일당은 14만~18만원 정도다.사회적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제5공화국, 당시 군부정권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이다. 12.12 군사 반란, 5.17 내란 등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이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작품 ‘1984’도 떠오른다. 독재 권력 아래 저항하다 처참하게 사라지는 개인의 모습을 매우 비관적으로 그려낸 디스토피아(유토피아의 반대말) 소설이다.해당 소설은 작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집필한 미래 소설이다. 전체주의(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강조해 모든 영역에서 통제하는 것) 체제를 비판한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사회주의자였다. 작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통치하기 원했던 소련식 체제에 회의감을 갖고 1984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1984년 한국의 모습은 이 소설과 비슷하다. 한국은 독재 정권 하에 통제당했다. 그 시절 지구촌엔 어떤 일이1984년은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굵직한 사건이 유독 많았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에 대항하기 위한 대학생들의 시위가 성행했다. 대표적인 사건은 ‘민정당사 농성 사건’이다. 1984년 11월 14일 전국민주화투쟁학생연합 소속 대학생 264명은 민주정의당 중앙당사를 기습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민주화를 외치며 노동악법 개정·선거법 개정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농성 약 12시간 만에 경찰병력 등의 투입으로 해산됐다.대규모 인명 피해를 불러온 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도 있었다. ‘서울 대홍수’ 사건이다. 1984년 8월 31일 서울·경기·충청 일대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태풍 준(June)의 영향으로 5일간 폭우가 계속된 것이다. 한강은 위험수위인 10.5m를 넘어섰다. 도로 곳곳이 침수됐고, 휴교령까지 떨어졌다. 이 사건은 사망자 189명·실종자 150여 명·재산 피해 1300억원·이재민 23만명이라는 최악의 결말을 불러왔다. 당시 인재의 요인이 많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사건 직후 북한이 수재 복구를 위한 지원품을 보내겠다고 제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정치적으로 보면 한일 관계 개선의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4년 9월 6일부터 8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합의 이후 대한민국 국가 원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공식 방문했다. 같은 해 7월 7일 한일 양국 외무장관들의 합의로 이뤄진 공식방문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가 1년 전 한국을 방문한 것에 대한 일종의 답방이었다.외교부가 2015년 비밀 해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대통령과 일본에서 만난 히로히토 일왕은 “양국의 불행한 역사는 진심으로 유감이다.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식민지배의 상징인 일왕의 말이라 의미하는 바가 더욱 컸다.이외에도 ▲88올림픽고속도로 개통(6월 2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5월 3~7일) ▲LA올림픽 종합순위 10위(7월 28일~8월 12일) ▲남북회담(11월 15일, 20일) ▲소련인 마투조크의 판문점 망명 사건(11월 23일) 등이 있었다.그해 해외에서도 굵직한 사건·사고가 많았다. 16년간 인도를 이끌어온 인디라 간디 수상(66세)이 10월 31일 시크 교도 경호원들에 의해 암살됐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11월 6일 선거에서 압승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11월 12일에는 미국의 유인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세계 최초로 고장난 통신위성을 회수하는 데 성공하며 우주개발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2월 3일 인도 보팔시에서는 유니언 카바이드라는 다국적 기업의 살충제 공장에서 유독가스가 누출돼 2500여명이 사망했다.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첫걸음경제적으로 보면 1984년은 대한민국의 성장을 위한 시동이 본격화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1981년 발표한 증권시장 국제화 계획을 차근차근 이행하고 있었다. 1984년 1월 재무부는 종합금융회사의 회사채 상장을 허용했다. 같은 해 8월에는 뉴욕 증권거래소에 코리아펀드가 상장됐다.표류하던 부동산 신탁제도가 다시 기지개를 켠 것도 1984년이다. 당시 정부는 모든 시중은행에 신탁업 겸업을 처음 허용했다. 당시 전체 신탁 규모에서 부동산 신탁이 차지하는 비중은 0.0001%로 크지 않았다. 남에게 자신의 토지·자산을 관리 및 처분하게 하는 것이 생소했던 것이다.1984년은 한국과 글로벌 기업의 반도체 격차를 단축한 시기다. 이전까지 10년 이상 벌어졌던 국내외 반도체 산업의 격차가 4~5년 수준으로 좁혀졌다고 업계는 평가한다. 그해 3월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은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에 대단위 초대규모집적회로(VLSI) 생산 공장을 준공했다. 국내 최초, 세계에서는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한국에서 가동한 첨단 반도체 공장이었다. 삼성반도체통신은 직전 해(1983년) 개발에 성공한 64K D램 반도체를 월 600만 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삼성반도체통신은 당시 화폐가치로 1000억원을 투자해 기흥 공장을 완성했다. 그해 말 럭키금성의 반도체 회사인 금성반도체는 64K D램 양산 및 판매를 개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이미 삼성반도체통신과 금성반도체가 안착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현대전자산업(현 SK하이닉스)도 빼놓을 수 없다. 1983년 설립된 이 회사는 1년 뒤인 1984년 경기도 이천에 반도체 1공장을 세웠다. 그해 말에는 자체 개발한 16K S램을 시범생산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표 제조업 중 하나인 자동차도 1984년에 한 단계 도약했다. 독자 기술이 없던 현대자동차는 자체 개발한 첫 번째 자동차 ‘포니’로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1976년 1월 시판된 현대차 포니는 단일 차종 기준 국내 최초로 생산 대수 50만대를 돌파했다. 8년간 포니는 국내 36만5207대, 수출 15만3281대 등 총 51만8488대가 생산·판매됐다. 한국의 포니가 세계의 포니로 발돋움한 해였다. 그해 현대차는 총 1억6600만 달러의 승용차를 수출했다. 자동차를 제작하기 위해 수입한 부품액(납품계열사 포함) 1억3200만 달러보다 3400만 달러를 더 수출한 것이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로서는 처음으로 무역 흑자를 달성했다.한국이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ICT)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된 해가 1984년이기도 하다. 당시 통신 불모지였던 한국에 이동통신 시대가 열렸다. 포문을 연 것이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텔레콤)다. 이 회사는 1984년 처음으로 카폰(차량 내 설치된 전화) 서비스를 공식 개시했다.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는 일찍이 카폰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 타이틀은 미국 벨시스템(AT&T)이 갖고 있다. 우리 정부는 196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 각료(장관) 관용차에 카폰을 도입했다. 당시 가격은 1000만원을 웃돌았다. 그로부터 약 20년 뒤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내놓은 카폰의 가격은 400만원 수준이었다. 이전보다 가격이 많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격 부담은 컸다. 당시 현대차 포니의 가격과 비슷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다소 무모했던 이 도전은 성공했다. 오늘날 SK텔레콤을 국내 1위 이동통신사업자로 도약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1984년은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현실이 됐다. 정확히 40년이 흐른 지금, 경제 위축·정치 갈등·세계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2024년.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의 위기도 우리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구절이다.

2024.05.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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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밀약 넘나드는 밀양과의 밀애 [ E-트래블]

여행

그들은 외쳤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시인 김춘수보다 훨씬 앞서, ‘꽃처럼 좀 봐 달라’고 그리 외쳤다. 하지만 밀양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였다. 밀양은 태양처럼 열정을 담아냈지만, 비밀스러운 무언가에 발목이 잡혔다. 이후에도 밀양아리랑의 구애는 멈추지 않았다. 그 부름에 끝내 화답한 것은 영화였다. 수심 가득한 전도연은 2007년 영화 ‘밀양’을 통해 ‘칸의 여제’가 됐지만, 물음표 가득하던 밀양을 난수표로 만들었다. 2015년 영화 ‘암살’은 반전이었다.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라 말한 조승우는, 금기와도 같은 ‘의열단’을 밀양에 아로새겼다. 사실 밀양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다수 배출한 항일의 산실이다.미스터리 비극 ‘아랑’이 시집갈 수 없는 현실에 목놓아 울었지만, 끝내 아리랑 고개 넘으며 해피엔딩이 됐듯…. 영화 ‘암살’은, 영화 ‘밀양’의 침잠함을 넘어 ‘의열기념관’ 등 새로운 콘텐츠를 밀양에 입식했다.동북아 3국에 오롯한 아우라를 각인한 영남루와,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을 땀방울로 드러내는 표충사비, 봄볕 내리 쬐도 얼음 고드름이 당당한 얼음골 등, 알수록 신비한 밀양이더라. 앞으로 벌일 밀양과의 밀당은 얼마나 자극적일까. 밀양과 손가락 걸며 나눈 밀약은 얼마나 짜릿할까. 밀양과 귀엣말로 속삭인 밀애는 얼마나 애절할까. 곳곳에 숨어있는 밀양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찾아 나섰다. 조선 후기 대표적 목조건물 영남루고려 공민왕 때(1365) 밀양 부사가 규모를 키워 중수했으며, 1844년 현재의 형태로 중건됐다.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다. 더불어 중국(명나라) 여행서 ‘삼재도회’에는 조선의 누각으로 상운정(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영남루를 ‘콕’ 집어 소개하고 있다. 영남루는 보물 제147호다. 국보와 보물로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했지만, 밀양시는 다시 국보로 복귀하길 염원하고 있다. 밀양강 변 절벽 위에 있어 밀양강과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밀양 시내 조망 뷰포인트 밀양읍성경남 밀양시 내일동의 석축 읍성으로 1479년에 축조됐다. 성벽의 길이 1㎞로, 높이는 1.8m 규모다. 대부분의 읍성이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쯤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세워진 것과 달리, 밀양읍성은 이보다 100년 앞서 완성됐다. 밀양읍성을 따라 산책로가 새롭게 조성돼 밀양강과 밀양 시내를 조망하는 뷰포인트로 사랑받고 있다.연리지·연리목 만날 수 있는 위양지신라 시대 때 공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저수지로 백성들을 위한다는 의미에서 위양지라고 이름 지었다. 저수지 가운데에 5개의 작은 섬과 완재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운치를 즐길 수 있어 밀양의 대표하는 사진 촬영 명소로 손꼽힌다. 이팝나무꽃이 만발할 때면 사람들의 발길이 꼬리를 문다. 산책을 하다 보면 연리지(連理枝)와 연리목(連理木)을 만날 수도 있다. 두 나무가 따로 자라다가 가지가 하나로 합쳐진 것을 연리지라 하고, 줄기가 합쳐진 것을 연리목이라고 한다. 예림서원…사림의 영수 김종직 기리는 서원예림서원(밀양향교)은 이 고향 출신으로 성리학적 정치 질서를 확립한 사림의 영수 정필재 김종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이다. 그의 말년은 안 좋아,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을 초나라 항우가 의제의 왕위를 찬탈한 것에 빗대 적은 조의제문으로 연산군 때 부관참시를 당했다. 이 가슴 아픈 사연은 밀양 사람들의 마음에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이를 한으로 승화시켜 예림서원에서는 ‘선비풍류’란 이름으로 문화 공연이 곧잘 열린다. 새터가을굿놀이와 밀양 백중놀이 중 하나인 ‘양반춤’, 여성 예술인 고운 자태로 벌이는 밀양검무, 정필재아리랑과 아리랑동동 등이 그것이다.의열단 김원봉 만나는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안동과 함께 독립운동의 성지이자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항일의 고장이다. 영화 ‘암살’ 이후 찾는 사람이 늘었고, 이를 특화 콘텐츠로 설정해 항일정신을 상징하는 거리인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를 만들었다. 앞서 금기어와 같았던 ‘의열단’과 ‘김원봉’이란 이름이 밀양의 곳곳에 내걸린 것도 영화 ‘암살’ 이후다. 밀양의 항일독립투쟁사를 소개하는 의열기념관과 체험형 공간인 의열체험관도 있다. 밀양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마을에 몰려 산 것도 테마거리로 조성된 이유다. 독립운동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밀양만의 사진 촬영 명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외계 생명 콘텐츠로 특화한 밀양아리랑 우주천문대외계 행성과 외계 생명에 대한 콘텐츠로 특화된 천문대다. 세계 최초 음성인식제어시스템이 설치된 70㎝ 반사망원경 등 관측 장비가 설치돼 있다. 천체투영관, 전시체험실이 준비되어 있다. 담당 해설자가 맛깔스러운 입담을 자랑해, 천문에 대한 이해가 단번에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우주에 흥미 있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에서부터 성인을 위한 강좌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현존 국내 최장 얼음골 케이블카영남 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는 현존 국내 최장 거리 왕복식 케이블카로 선로 길이가 1.8㎞에 달하고 상부 역사 해발고도 1020m 고지까지 10분 만에 도달할 수 있다. 케이블카 탑승 인원은 최대 50명이다. 정상부에는 데크 길 트레킹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고, 밀양을 조망할 수 있는 뷰 포인트도 있어, 가슴까지 확 뚫리는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다. 밀양온천은 시내의 아리나호텔에서 즐길 수 있다. 지하 1198m에서 끌어올린 온천수가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2023.05.20 09:00

4분 소요
알카에다 수장 제거로 본 표적 암살 공작의 국제정치학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미국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71)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드론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제거하면서 표적 암살 공작이 국제적으로 새롭게 주목받는다. 적의 우두머리나 주요 인사를 드론을 이용해 대놓고 제거하는 표적 암살 공작이 국제정치의 주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시각으로 7월 31일 오전 6시 18분(미국 동부 서머타임 기준 30일 오후 9시 48분)에 카불 중심부 셰르푸르 지역의 저택 발코니에 나와 있던 알자와히리를 드론(무인기)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제거했다. 이집트 안과의사 출신인 알자와히리는 2001년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의 오른팔로 테러를 사실상 설계한 인물로 알려졌다. 빈 라덴이 2011년 5월 미군 특수부대 DEVBRU(해군 특수전 개발단)의 공격으로 숨진 뒤 그 뒤를 이어 알카에다의 수장을 맡아왔다. 미국은 빈 라덴의 두뇌 노릇을 한 최측근이자 후계자인 알자와히리를 드론으로 제거하면서 21년 만에 알카에다 최고 지도부에 대한 보복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집트 남성의 2020년 기대여명인 69.88세를 이미 지난 알자와히리를 9·11 21년 만인 이제야 뒤늦게 표적 암살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회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AP통신·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블룸버그통신·NBC 등 미국 매체와 타임오브이스라엘·독일의소리(DW)·프랑스24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작전은 장기간의 공작으로 이뤄졌다. 알자와히리는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에 은신해 있었는데, 2021년 8월 30일 미군이 카불에서 완전히 철수한 뒤 가족이 먼저 카불로 옮겼다. 이들은 카불로 옮긴 뒤 탈레반 내 강경파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의 지도자인 시라주딘 하카니가 제공한 부촌의 저택에 머물러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한 주 전에 작전을 승인했으며, 2022년 초 알자와히리가 카불로 옮긴 뒤부터 정보당국이 그를 감시해왔다고 말했다. 미국이 알자와히리의 카불 이동을 2022년 초에야 인지했다는 이야기다. 의문은 최초 정보를 누가 제공했느냐로 향한다. 눈여겨볼 점은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공작 기관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네아 국장이 지난해 12월 5일 미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포스트와 타임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해 6월 취임한 바르네아가 맡은 가장 큰 임무는 이란핵합의(JCPOA) 복귀를 추진했던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알자와히리 가족의 카불 이주를 인지하고 감시를 시작했다는 올해 초가 바르네아가 워싱턴을 방문한 지 한 달쯤 뒤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스라엘로선 미국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카불에서 수집한 초특급 정보를 미국과 공유함으로써 미국의 JCPOA 복귀 포기나 연기를 설득하려고 시도했을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의 '시차'는 정보 소스를 감추기 위한 연막작전일 수 있고, 미국이 이스라엘이 제공한 정보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다. 바이든이 취임 뒤 처음으로 7월 14~15일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당시 많은 양보와 립서비스를 제공한 점도 이런 추측의 근거로 볼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밀접하지만, 바이든은 이번 방문에서 자신의 공약에서 상당히 후퇴해 이스라엘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바이든이 15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가진 모든 국가적 역량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구절을 넣었다는 사실이다. 바이든은 양국 정상회담에선 "외교가 최선의 방안임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스라엘 채널12와의 인터뷰에선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해 최후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 군사적 옵션의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 용인하는 미국의 의도 대선 공약으로 이스라엘이 반대해온 이란핵합의(JCPOA) 복귀를 외쳤던 바이든으로선 의외다. 이스라엘로선 대미 외교의 개가라고 부를 만하다. 바이든의 기존의 입장을 선회해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 가능성에도 고개를 끄덕여준 것은 미국 내 유대인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과 별도로 바이든이 이스라엘에 뭔가 신세를 진 게 있지 않으냐는 짐작을 낳게 한다. 아무튼, 미국 정보 당국은 알자와히리의 집을 6~7개월간 계속 추적한 결과 그가 가족과 함께 그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집은 2021년 8월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면서 빈집으로 있다가 탈레반 정부의 국방부 소유로 넘어갔으며, 최종적으로 하카니가 소유하게 됐다. 탈레반은 2020년 2월 29일 카타르의 도하에서 탈레반 측과 만나 미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탈레반이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과 관계를 끊고 자신들의 지배지역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는 ‘도하 합의’에 서명했다. 하지만 탈레반 내에서도 극단적인 주장을 펴온 하카니는 이를 무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확인된 자와히리의 위치는 올해 4월 초 바이든의 국가안보 부보좌관인 조내선 파이너와 국토안보 보좌관인 엘리자베스 셔우드랜돌이 상부에 알렸으며, 그 직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바이든에게 이를 보고했다. 미 정보 당국은 알자와히리가 집의 발코니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것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미국 당국은 집의 모형을 만들어 공격과 함께 다른 거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강구했다. 바이든은 이 모형을 7월 1일 직접 살펴봤다. 그는 미국 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국(DNI)의 에이브릴 헤인즈 국장과 중앙정보국(CIA)의 윌리엄 번스 국장, 국가대테러센터(NCTC)의 크리스틴 아비자이드 등 정보‧공작 최고책임자들과 공격을 논의했다. 바이든은 7월 25일 최종 보고를 받고 작전을 승인했다. 공격에는 드론이 동원됐다. 알자와히리가 아침에 발코니에서 나와 선채로 밖을 내다보자 상공을 은밀하게 선회하던 드론이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알자와히리는 현장에서 즉사했지만 같은 집에 살던 가족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AGM-114의 변형인 AGM-114 R9X는 미사일에 폭발물 대신 동역학 탄두를 장착했다. 발사 뒤 날카로운 대형 칼날이 여러 개 튀어나와 강력한 힘으로 목표물을 난자한다. 인간 목표물을 대상으로 사용하면서 이른바 ‘부수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특수 미사일로, ‘닌자 폭탄’ ‘나르는 긴수(미국의 유명 식칼 브랜드)’로 불려왔다. 미국 정보당국은 도·감청과 위성 사진 등으로 알자와히리의 사망이 확인된 뒤인 8월 1일에야 작전을 공개했다. 미국은 9‧11테러의 핵심 인물인 알자와히리를 제거함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한 것은 물론 지난해 8월 카불 철수에서 보여준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운 모습에 대한 만회 효과도 어느 정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바이든이 11월 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가안보 부문에서 어느 정도 점수를 얻었을 수 있다. 미국은 2020년 1월 4일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국제공항에서 드론 공격으로 암살했지만, 이라크는 미군과 정보기관이 주둔해 관련 정보 수집과 작전을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적진이나 다름없는 아프가니스탄이 카불에서 공작과 작전을 벌일 수 있는 능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차별화한다. 물론 드론은 과거 아프가니스탄의 대테러 목표물 공격을 위해 출격 기지로 사용해온 이웃 파키스탄 서남부의 비행장에서 이륙했을 가능성이 크다. 파키스탄은 중국과 가까운 나라지만 과거 미국과 사이가 좋을 당시 확보하거나 제3국에서 조달한 미국산 F-16 전투기가 127대 이상이 있어 이를 계속 운용하려면 미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친중 국가임에도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에선 드론 이착륙장을 제공하는 등 협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론 조종은 미 본토의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조정실에서 위성 통신을 이용해 했을 것이다. 조종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무인-원격 공격 시스템이다. 보복 악순환 부르는 표적 암살과 전쟁 기술 눈여겨볼 점은 2020년 솔레이마니 공격 당시 이란은 보복을 외치며 이라크의 미군기지에 미사일 발사했지만 결국 찻잔 속의 태풍으로 마무리됐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정면 대결을 할 수 없었던 이란은 이라크에서 벌어진 자국 주요 인사의 암살에 더는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실 미국 CIA의 대테러센터(CTC)는 2001년부터 아프가니스탄과 예멘 등에서 무인기를 이용한 표적 암살 작전을 수행해왔다. 미국은 CTC 등 다양한 기관의 대테러 조직을 연결해 국가 대테러센터(NCTC)를 구성했다. 하지만 CTC는 조직의 수장도 ‘로저’라는 암호명으로만 알려졌을 뿐 누구인지 비밀에 부치는 등 철저히 비밀리에 은밀한 작전을 수행해왔다. 이스라엘은 군과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를 앞세워 무인기를 통한 표적 암살 작전을 수행해왔다. 2004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정치‧군사 조직인 하마스의 창시자 아메드 야신을 가자지구에서 표적 암살했다. 이스라엘군은 무인기로 위치를 확인한 뒤 F-16 전투기를 인근에 보내 굉음으로 주의를 분산한 뒤 아파치 공격용 헬기를 출동시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해 야신을 암살했다. 2007년 이후에는 무인기로 가자지구의 로켓 발사대를 수색‧파괴하는 작전도 벌여왔다. 하지만 2021년 5월 6~21일 예루살렘 일부 지역 팔레스타인 주민의 강제 이주와 알아크사 사원에서의 충돌 이후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로 가한 로켓 공격을 막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로켓의 상당수를 아이언돔으로 불리는 방공 시스템으로 요격했지만, 완전히 봉쇄하진 못했다. 결국 하마스의 로켓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보복 폭격 속에서 256명의 팔레스타인인과 13명의 이스라엘인이 목숨을 잃었다. 표적 암살이 대를 이어가는 적개심을 부추긴 셈이다. 모사드는 최근 들어 이란의 핵 과학자를 상대로 암살 공작을 벌여왔다. 핵 개발을 추구하는 이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핵심 인력을 제거해 개발 속도를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역시 국가 수준에서 벌이는 표적 암살 공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는 오토바이 폭탄, 원격 조종 기관총 등 다양한 무기가 동원됐다. 드론을 활용한 표적 암살 공작은 은밀성·기동성·신속성을 확보한 데다 지휘부나 두뇌에 해당하는 뱀무리 제거로 인한 심리적‧정치적 효과가 크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물론 러시아‧중국 등 다양한 나라가 은밀하게 활용해왔다. 드론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더하고 여기에 무선통신기술, 원격제어기술 등 기술적 진보가 더해지면서 이는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적에게 우두머리를 잃는 상실감과 함께 언제, 어디에서 당할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줄 수 있어 상대를 효과적으로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 게다가 탄두에 폭발물 대신 칼날을 장착해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AGM-114 R9X의 활용으로 언론과 인권단체의 비난을 잠재울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이 작전의 활용을 부추길 수 있다. 표적 암살은 어둠의 전쟁에서 효과가 큰 작전으로 평가된다. 다만 정확한 정보와 정밀한 작전계획의 확보가 난제다. 아무나 벌일 수 있는 작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상대가 실력이 있는 경우라면 보복의 악순환도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런 우려에도 이젠 표적 암살이 국경을 넘어 글로벌 단위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시대가 됐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주권국가를 대놓고 침략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은 또 하나의 안보 충격이다. 뱀 머리가 아무리 제거돼도 지구촌은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8.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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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 모델로 거론되는 모사드의 피투성이 역사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1일 국가정보원 원장에 김규현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내정한 것을 두고 국정원을 해외와 대북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조직과 기능을 바꾸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 국정원장은 주로 대통령의 측근이나 중량급 정치인, 또는 북한과 직접 거래를 해본 인물을 중용해 왔지만 김 내정자는 외교관 출신이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해외·대북에만 국정원 업무 집중 기대 이에 따라 김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원장에 취임하면 국정원을 이스라엘 해외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처럼 해외 업무에 집중하도록 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내정자 본인도 주변에 ‘국정원이 모사드처럼 변화가 필요하며, 정보부서 본연의 기능으로 정상화해서 멀리,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이익이나 정치에 눈 돌리지 않고, 오로지 국가만 위해 일하는 투철한 신념의 기관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김 내정자는 대학 재학 중인 1980년 외무고시(14회)에 합격해 외교부에 입부했다. 외교부에선 북미1과장, 북미국 심의관,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와 공사 등을 맡으며 대미 관련 업무를 많이 맡았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2007년 국방부에 국제협력관으로 파견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 등 한·미 국방 현안을 다뤘다. 박근혜 정부에선 외교부 1차관과 국가안보실 1차장, 대통령 외교안보수석 겸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을 지내 국방 업무의 경험이 풍부하다. 안보실 1차장을 맡았을 때는 남북고위급 접촉 수석대표로 북측과 직접 대면했다. 외교는 물론 국방과 남북관계까지 경험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국정원장을 맡을 만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김 내정자 발탁은 평소 잘 알고 있던 ‘내 사람’이 아니더라도, 전문성과 함께 국제 감각을 갖춘 인재에게 정보기관의 수장을 맡기려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인선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김 내정자의 인선을 통해 자기 방식의 국정원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는 이야기다. 윤 대통령의 개혁은 국정원 본연의 정보 능력 강화와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여기엔 지난 정권에선 오로지 정치 개입 차단만 강조하면서 능력 강화는 도외시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대와 환경 변화에 따르는 사이버·테러·사보타지(파괴공작)·방첩·디스인포메이션·미디어전 등 다양한 국가안보 도전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충분한 예산 투자와 인력·조직·장비·교육·훈련 마련, 그리고 법률적인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인식도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을 해외와 대북 업무에 치중케 함으로써 이 분야에 대한 정치권의 발목잡기와 국민의 의심을 차단하자는 의도도 읽힌다. 국내 정보에는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해외 정보 수집과 분석, 정세 판단, 그리고 비밀공작만 맡는 대표적인 조직이 모사드이기 때문이다. 해외 정보·공작기관인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국내 보안기관인 신베트(Shin Bet, 샤박(Shabak)이라고도 부름)와 군 정보국인 아만(Aman)과 함께 음지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를 떠받히는 삼지창의 하나다. 이스라엘 밖에서 벌이는 정보수집과 암살·납치 작전은 모두 모사드의 임무다. 이스라엘 국내와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와 골란고원에서 벌이는 모든 정보수집과 작전은 신베트의 관할이다. 군은 별도로 활동한다. 예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거주하는 무장단체 지도자나 자폭공격에 쓸 폭탄이나 로켓 제조자를 아파치 헬기나 무인공격기, 또는 휴대전화 폭탄으로 표적 살해하는 공작은 모사드가 아닌 신베트나 이스라엘군이 맡아왔다. 모사드가 윤석열 정부 국정원의 롤모델로 떠오른 본질적인 이유는 정치와 활동의 분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정권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국민의 사활이 걸린 정보 수집과 정세 판단, 그리고 비밀공작으로 존재가치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갔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정보기관의 수장도 정권의 운명과 상관없이 자리를 계속 지켜왔다. 정보기관의 입장에선 정치적인 변화와 무관하게 오로지 국민과 국가를 위해 묵묵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 받을 수 있다. 이는 모사드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아울러 국민이 정치권이 아닌 정보기관을 더 믿고 지지하는 게 당연시되면서 정치권력은 정보기관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 이용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모사드는 실제로 전 세계의 정보기관 중 국민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는 조직으로 꼽힌다. 강력한 능력과 노하우, 그리고 전문 인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첩보수집과 공작활동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 강국 이스라엘을 받치는 조직이다. 특히 미국과 서방이 목말라 하는 이란·시리아 등 적성국의 정보를 어느 나라보다 풍부하게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리아 이란 등과 무기 거래를 해온 북한과 관련한 정보도 상당히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성과 능력을 모두 갖춘 해외 정보·공작 조직인 셈이다. 실적이 이를 말해준다. 이 따라 우방은 모사드에 손을 벌리고, 적성국은 모사드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 특수외교·정보수집·국민보호·무기조달 등 해외에 전념 이에 따라 윤 대통령과 김 내정자가 국정원 업그레이드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모사드가 과연 어떤 기관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모사드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독립투쟁 및 건국과 궤를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건국했지만, 모사드는 1년여 뒤인 1949년 12월 13일에 공식 설립됐다. 하지만 정보수집과 파괴공작, 요인암살 등 관련 활동은 이미 건국 1년 전인 1947년에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한 독립운동을 하면서 필요 때문에 활동이 벌어졌으며, 이를 통해 조직이 나중에 생긴 셈이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모사드의 모토는 이 기관의 정체성을 함축한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이 바로 모토다. 적을 색출하고 제거해 평화롭고 편안한 나라를 만들어 국민을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하는 게 조직의 목표라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건국 이념인 시온주의와 2000년간 유지해온 유대인 공동체의 정체성도 엿보인다. 모사드의 본부는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에 있다. 직원은 정확한 숫자를 알 순 없지만 일부 추정에선 1200명 정도라고 제시한다. 예산도 당연히 기밀이다. 모사드는 7대 목표도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모든 해외정보·공작 기관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외와 대북 업무에 집중할 윤 정부 시대 국정원의 실질적인 목표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다. 모사드의 첫째 목표는 해외에서의 비밀 정보수집이다. 이는 당연하고 평범한 목표다. 둘째 목표는 더욱 구체적이다. 적성국의 비재래식 무기 개발과 조달의 방지가 그것이다. 셋째 목표는 모사드의 정체성과 역사성, 그리고 유대 국가 이스라엘의 건국과도 연관이 있다. 바로 해외 이스라엘인에 대한 테러 예방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국민이라는 이유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국민과 같은 민족이 세계 곳곳에서 핍박이나 봉변, 그리고 잔혹한 일을 당해온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이를 막는 게 이스라엘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의 주요 업무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한국의 경우 해외 국민 보호는 외교부가 맡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시리아·예멘·우크라이나 등을 여행하는 것은 법에 따라 금지한다’고 고시하는 데 그친다. 이들 국가에 입국하려면 외교부의 특별입국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법적이 제재를 가한다. 특별입국허가를 받으려면 방탄차에 무장경호원을 확보하도록 요구해 큰 이익이 걸린 기업인이나 직원이 아닌 이상 힘든 게 사실이다. 이런 방식보다 이들 국가에서 국가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국민 안전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는 게 필요하다. 국제화되고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입국 금지만으로 해외 국민 안전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무모할 뿐이다. 해외 국민 보호라는 원칙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이스라엘의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모사드가 맡은 게 다를 뿐이다. 국민 안전을 확보하려면 국민의 활동을 틀어막는 것보다 정보와 무력을 가진 국가기관이 나서는 게 맞을 것이다. 모사드의 넷째 목표는 특수외교 및 여타 비밀 관계의 발전과 유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 교류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국익 확대 업무가 그것이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미국·영국 등 우방은 물론 전 세계 다양한 국가와 정보 교류를 한다. 모사드 활동의 특징은 은밀성에 있다. ‘우크라이나에 정보를 제공해 러시아군 장성을 표적 제거하도록 지원했다’는 기밀이 줄줄 새는 미국과 달리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기밀은 기밀로만 존재한다. 가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모사드가 했다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이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연안의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와 2020년 8월 13일 국교를 수립한 ‘아브라함 협정’은 누가 봐도 모사드의 작품이다. 모사드의 정보 수집과 공작이 외교 관계 수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요시 코헨 모사드 국장이 UAE로 날아갔다. 다섯째 임무는 유대인의 해외이민을 공식 허용하지 않는 나라로부터 유대인을 탈출시키는 일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건국 정신을 모사드에 투사한 것이다. 실제로 모사드는 에티오피아·예멘 등에서 유대인을 데려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섯째 임무가 전략·정치·작전 정보의 생산이다. 국가 전략을 마련하고, 국내에서 입법 활동 등 정치적인 행동을 하며, 안보나 보안과 관련해 무력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해외 정보를 모사드가 마련하는 것이다. 정치에 관여하는 게 아니라, 정치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모사드가 하는 것이다. 일곱째 업무는 겉으론 상당히 관료적인 표현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내용이다. 바로 ‘해외 특수작전 수립과 실행’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이스라엘의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높여준 암살 작전을 포함한 해외 공작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물론 이들 공작은 대부분 모사드가 한 것으로 짐작만 할 뿐 뚜렷한 증거가 없는 ‘도깨비 공작’이다, 아울러 이스라엘 정부와 모사드는 작전을 절대 시인하지 않는다. 내가 했노라고 자랑하거나 홍보하지 않는다. ━ 유대인 보호, 적성국 무기개발자 제거 등 대외안보 주력 그런 모사드가 그동안 벌여온 위험한 작전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살펴보자. 물론 모사드가 했다고 의심만 하는 사건이다. 첫째, ‘유대인을 해친 자는 반드시 보복 살해한다’는 원칙에 따른 공작이다. 대표적인 것이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 11명과 독일 경찰 1명의 살해에 가담한 팔레스타인 검은구월단 조직원을 일일이 찾아서 제거하는 복수 작전이다. ‘신의 분노’라는 이름의 이 작전은 영화 ‘뮌헨’으로 잘 알려졌다. 1992년 6월 8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스라엘 강경파 무장조직인 하마스의 지도자 아테프 브세이소가 두 명의 총잡이에게 처형 방식의 근접 사격으로 살해됐다. 브세이소는 뮌헨 학살 관련자다. 1983년 8월 21일엔 그리스 아테네에서 뮌헨 학살 관련자이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고위간부인 마문 메라이시가 오토바이를 타고 온 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숨졌다. 1979년 1월 22일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선 뮌헨 학살 기획자인 PLO 간부 알리 하산 살라메(별명 아부 하산)가 인근의 자동차 폭탄이 터지면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폭발 위치가 보이는 건물의 2층에 수년간 거주하며 저녁 시간이면 고양이를 데리고 베란다에 나왔던 할머니가 있었는데 살라메가 폭사한 뒤 사라졌다. 살라메 제거 작전을 몇 년 간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다. 살라메는 PLO 내의 확고한 정치적 위치 때문에 ‘PLO의 황태자’로 불리며 항상 무장 경호원을 여러 대의 차량에 싣고 다녔지만, 상대의 치밀한 작전 앞에 목숨을 잃었다. 1972년 10월 16일 이탈리아 로마에선 뮌헨학살 관련자로 PLO의 현지 대표이자 리비아 대사관 직원인 압델 와엘 즈바이터가 자신의 아파트 입구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아날로그 전화기로 통화하다 전화기 안에 숨긴 폭탄에 터지면서 숨진 경우도 있다. 이스라엘 국적기나 이스라엘인·유대인이 탑승한 여객기를 납치한 테러범의 상당수도 비슷하게 최후를 맞았다. 1960~70년대 여객기 납치에 관여했던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의 지휘관 와디 하다드가 거주해온 동독에서 1978년 3월 28일 독이 든 초콜릿을 먹고 한 달 뒤에 사망했다. 1971년 7월 8일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 작가이자 여객기 납치 관련자인 가산 카나파니가 자동차 폭탄으로 숨졌다. 1972년 7월 25일 같은 도시에 살던 여객기 납치 관련자 바삼 아부 샤리프가 배달된 책이 폭발하면서 손가락 네 개를 잃고 한 눈이 실명했으며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둘째, 모사드는 공작을 벌이면서 ‘이스라엘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무기 개발자는 살려두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해왔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험한 천적으로 통하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자가 우선 타격 대상이다. 실제로 이란 핵 과학자는 자신의 나라에서 줄줄이 살해됐다. 2020년 11월 27일 이란 수도 테헤란 인근의 소도시인 아브사드르에서 핵 과학자인 모셴 프크리자네는 경호원이 탑승한 두 대의 자동차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다 140m 거리에 주차된 픽업트럭에서 발사된 원격조종 기관총으로 살해됐다. 파크리자데는 헬기 편으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숨졌으며, 원격조종 기관총이 장착된 트럭은 원격조종 폭탄이 터지면서 파괴됐다. 2012년 1월 1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거리에서 핵 과학자인 모스타파 마흐말디 로샨이 자석 폭탄으로 피살됐다. 2011년 4월 9일엔 역시 테헤란에서 이란 핵 과학자인 다리우슈 레자이에가 오토바이에 탄 총잡이의 총에 맞아 숨졌다. 2010년 11월 29일엔 같은 도시에서 이란 핵 과학자 마지드 샤흐리아르가 자동차 폭탄으로 폭사했다. 이란은 물론 팔레스타인의 무기 조달책도 제거 대상이다. 2010년 1월 19일 UAE의 두바이에선 팔레스타인 강경파 무장조직인 하마스의 무기·폭탄 조달 담당인 마무드 알마부가 호텔 방에서 질식사했다. 당시 여러 명의 수상한 남녀가 호텔 CCTV에 찍혔지만, 유럽 국가 여권을 가진 이들은 당일로 항공편으로 이 나라를 떠났다. 1990년 이스라엘의 적인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위해 장거리 야포를 개발하던 캐나다인이 피살된 사건에도 모사드의 냄새가 난다. 1990년 3월 20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캐나다인 대포 개발자 제럴드 벌이 자신의 아파트 문 앞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벌은 사담 후세인을 위해 이라크에서 이스라엘을 직접 포격할 수 있는 최대 사거리 750km의 초대형 대포를 개발하고 스커드 미사일의 사거리와 정확도를 높이는 개량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1980년 6월 13일엔 프랑스 파리에서 이집트인으로 이라크 핵 개발 책임자였던 폐히아 엘마샤드가 프랑스 파리의 메리디앙 호텔 객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1962년 11월 28일 이집트 할루안의 로켓 공장인 팩토리 333에선 우편물 폭탄이 터져 로켓 엔지니어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62년 9월 11일엔 독일 뮌헨에서 이집트 미사일 개발을 돕던 서독 로켓 과학자 하인츠 크루크가 사무실에서 피랍된 뒤 영영 행방불명됐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1948년 독립전쟁, 1952년 수에즈 위기, 1967년 6일 전쟁,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등 4차례에 걸쳐 짧지만, 대대적인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양측은 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1978년 9월 17일 미국에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고 점령지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이 과정에도 모사드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알려지고 모사드가 한 것으로 의심을 받은 일만 이 정도다. 모사드가 했다는 증거가 따로 없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에 작전의 동기가 있으며, 모사드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공작일 경우 모사드가 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정보과 공작 세계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윤 대통령이 지향하는 모사드의 실체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역대 지도자들이 조직을 믿고 애정을 쏟았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사드나, 이 기관이 그동안 쌓아온 실적은 없었을 것이란 점이 명백할 뿐이다. 물론 국정원도 보안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실적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사드가 누리는 신뢰를 확보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적이 두려워하게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물론 멀고 험해도 가야 할 길이다. 국민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말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2.05.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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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바로크 패션 프랑스 루이 14세…네덜란드 시민복 영향 스페인 펠리페 4세

전문가 칼럼

‘탁, 탁, 탁’. 박자를 맞추며 무대 위로 한 남자가 올라온다. 날렵한 몸과 맵시 있는 자태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마치 꿈속에서 헤매듯 영혼을 불사르는 듯한 몸짓. 영화 ‘Le Roi Dance'의 주인공. 4살 때 아기왕으로 등극해 무려 72년 3개월 동안 태양왕이란 별칭을 얻은 루이 14세이다. ’짐은 곧 국가다‘라며 부르봉 왕조시대 절대 왕정의 전성기를 누렸던 그의 시대로 잠시 돌아가 보자. 우리가 흔히 부르봉왕조를 언급할 때 메디치가를 빼놓을 수 없다. 14세기 말에 시작된 메디치 가문은 잘 알다시피 엄청난 부와 명예를 축적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꽃피운 어지간한 예술가들을 죄다 후원했다(우피치 미술관만 봐도 알 수 있다). 메디치 가문의 숨은 일화 중 하나. 못생긴 외모로 항상 검은 옷을 입는 바람에 검은 왕비로 소문난 카타리나 드 메디치(그림 1)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부모를 잃고 작은 할아버지 교황 레오 10세가 그녀의 보호자가 된다. 그러나 레오 10세도 몇 년 안 되어 죽자 친척인 클레멘스 7세가 교황 자리에 올라간다. 메디치 가문 출신으론 두 번째 교황이다. 새 교황이 된 클레멘스 7세는 지참금을 준다는 달콤한 조건을 앞세워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차남 앙리 2세(그림2)와 카타리나를 정략결혼 시킨다. 정략적인 돈거래로 결혼식을 올린 1년 후.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죽자 교황청은 안색을 바꿔 결혼 지참금 지급을 거절했다. 못생긴 이탈리아 여자 카타리나는 프랑스인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는다. 남편인 앙리 2세는 더했다. 그에게는 무려 19세나 연상인 정부 디안 드 푸아티에(그림 3)가 있었다. 카타리나는 결혼 후 주변 모두로부터 굴욕적인 대우를 받았다. 왕실 행사 때마다 남편 정부 디안의 뒤를 시녀처럼 따라다녀야만 했다. 앙리 2세의 국왕 취임 때도 남편 옆자리는 왕비 카타리나가 아니라 연상의 애인 디안이 서 있었다. ━ 군주론 읽으며 모멸감을 씹다 카타리나가 누군가. 메디치가의 여인이다. 지독한 모멸감과 외로움을 꿋꿋이 견디어 냈다.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그녀를 지켜준 것은 한권의 책.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었다. 1559년 축제. 대표적인 축제 볼거리였던 마상 창 시합이 열렸다. 앙리 2세 역시 의기양양하게 말 타고 참가하였으나 그만 긴 창에 눈을 찔려 사망하게 된다. 때는 왔다. 마침내 왕비 카타리나의 섭정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대놓고 무시당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복수’의 기회다. 그녀를 그토록 멸시하던 신하들과 남편의 여자 디안은 언제 닥칠지 모를 피의 숙청을 생각하며 극도의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막상 카타리나가 내민 것은 복수 대신 용서의 카드.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반전이었다. 그토록 미웠던 남편을 저주하기는커녕 애도하는 의미로 평생 실크로 만든 옷은 입지 않았다. 대신 검은 색 옷만을 줄곧 입었다. 그때부터 검은 왕비라 불렸다. 그 뒤 아들 셋을 차례로 왕으로 등극시킨다. 남편 앙리 2세의 뒤를 이어 14세의 장남 프랑수아 2세가 즉위한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프랑수아 2세는 즉위 1년 만에 요절한다. 곧바로 차남 샤를 9세가 10살에 즉위하고 카타리나의 본격적인 섭정이 시작된다. 당시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위그노) 간의 격한 대립이 되풀이됐다. 골치 아픈 시절이었다. 카타리나는 딸 마르그리트(일명 마고)와 개신교의 지도자인 나바라의 앙리(후일 앙리 4세)와 결혼시켜 화해의 무드를 만들고자 애썼다. 그러나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나. 결혼식 날인 성 바로톨로메오 축일에 개신교도들의 대량 학살 사건이 일어난다(성 바로톨로메오 축일 학살). 평소에도 폐가 좋지 않아 비실거렸던 샤를 9세는 이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다가 결국 결핵으로 죽는다. 이어 셋째인 앙리 3세가 즉위하나 이번엔 1589년 어머니 카타리나가 죽는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해 8월 무더위 속에서 암살당한다. 원래 앙리 3세는 아들이 없었다. 그 바람에 법의 절차에 따라 사위인 나바라의 앙리가 앙리 4세가 되면서 부르봉 왕조가 시작된다. 새 부르봉 왕조 시대는 사위가 연 셈이다. 낭트칙령을 발표해 국민에게 신앙의 자유를 부여하기도 했던 앙리 4세는 잘 나가다가 광신적인 가톨릭교도의 칼에 찔려 어이없게 죽게 된다. 예상치 못하게 상황은 꼬인다. 그 당시 왕비는 마리 드 메디치. 왕비 마리의 섭정 아래 열살짜리였던 루이 13세가 즉위하게 된다. 루이 13세는 합스부르크가의 앤 도트리시와 결혼했다. 사이가 나빴는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20여년간 후사가 없다가 늦둥이로 힘들게 얻은 왕세자가 바로 루이 14세이다. 내 아들 맞나 의심도 돌았다는 후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삼총사’의 시대적 배경이 바로 이때다. ━ 베르사이유 궁전엔 악취왕이 살았는데 늦둥이를 본 아버지는 엄격한 예의 교육에 매달렸다. 사랑은 주지도 못하고 엄하게만 키우다 갑자기 죽었다. 또다시 4살짜리 아기왕. 어머니 앤의 섭정은 당연하다. 그 와중에 9세가 되던 1648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소위 ‘프롱드의 난’이다. 그 탓인가. 루이 14세는 커가면서 막강 군대를 만들었다. 귀족들이 대들지 못하도록 절대 군주제도를 지켰다. 군대 키우고 무기 사고 전쟁하고. 그 바람에 국고는 늘 텅텅 비었고 거리엔 거지들이 들끓었다. 당시 프랑스의 평균 수명이 25살 이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프랑스인들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상상이 간다. 국민은 거지로 사는데 루이 14세는 폼 잡는 일만 했다. 무려 24년에 걸쳐 베르사이유 궁전이 지어졌다. 돈으로 처바른 궁 안에다 모든 귀족 일가를 불러 살게 했다. 왜 그랬을까? 루이 14세는 9살 어린 시절 프롱드의 난을 겪으며 귀족들의 반항과 오만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경험 탓인지 귀족들을 입궁시켜 딴짓 못 하도록 자신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하기 위해서였다는 풀이다. 몽땅 모여 산 베르사이유 궁전의 일상은 어땠을까. 왕의 일과는 아침 8시에 시작된다. ‘누가 왕에게 옷을 입혔는가’ ‘변기는 누가 대령했는가’ 같은 소소한 일들로 아침부터 귀족 간 아첨 경쟁이 치열했다. 루이 14세는 대식가로도 유명했다. 특히 저녁 만찬은 파티에 참석하는 인원 외에도 몇백 명의 구경꾼들이 식사 장면을 지켜보며 수군거렸다. 왕의 식사를 보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었다. 매일 저녁엔 파티와 가장무도회가 열렸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체력이 없으면 얼마나 버티겠나. 루이 14세는 저질 체력이 된 귀족들에게 딴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림4〉는 이야생트리고가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화이다. 이 초상화는 루이 14세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먼저 그림에 전체적으로 부르봉 왕조 문양인 황금 백합 무늬가 보인다. 담비 털로 된 파란색 대관식 망토를 입은 위로는 성령 기사단의 훈장이 달린 금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머리에는 검은 가발(풀 버텀 위그)을 착용하고 큰 가발의 영향으로 칼라는 이전의 거추장스러운 러플 대신 레이스로 된 크라바트를 착용하고 있다. 안에 입은 블라우스와 바지는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형태인 리본 장식이 보인다. 발에는 빨간 굽이 달린 힐을 신고 있다. 왕의 오른손에는 백합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왕 홀을 쥐고 있고 허리춤엔 대관식용 검을 차고 있다. 백합 무늬의 방석 위에는 왕관과 정의의 손이 올려져 있다. 이 초상화는 루이 14세의 권위를 잘 나타낸 대표적인 초상화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루이 14세에게는 또 하나의 별명이 있었다. 바로 ‘악취왕’이다. 당시 아름다운 베르사이유 궁전에 수많은 사람이 살면서 배출한 오물로 악취가 진동했다. 하긴 궁 밖도 오물투성이. 마차가 지나가면 집 담벼락은 말똥과 사람똥이 뒤섞여 튀었다. 멋진 궁 안에서는 오물을 밟지 않으려 하이힐을 신었다. 또한 몸에 물이 닿으면 병이 생긴다는 이상한 미신이 돌아 몸을 씻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귀족들은 악취를 가릴 수 있는 향수를 진하게 뿌리고 다녔다. 루이 14세에게는 3명의 주치의가 있었다. 그중 소르본 의대 출신 주치의 ‘다캉’은 치아가 위험한 질병의 근원이라 믿었다. 물론 그 시절은 지금처럼 양치하지 않아 이가 썩는 고통을 당했고 그러다 보니 충치로 인해 마취도 없이 이를 뽑는 게 다반사였다. 주치의 다캉은 왕의 건강을 위해 이를 몽땅 뽑도록 건의했다. 지금도 프랑스 디저트는 마카롱처럼 달기로 유명한데 루이 14세 역시 단 걸 무척 좋아했다. 어차피 충치로 뽑을 거 미리 뽑아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 처방이었는데 왕은 오케이 했다. 마취도 없이 왕의 아랫니를 모두 뽑다 턱은 금이 갔다. 윗니를 뽑다가는 그만 입천장엔 큰 구멍이 뚫렸다. 뚫린 입천장은 쇠막대로 여러 번 지져 지혈을 시켜야 했다. 다행히 죽지 않고 금 간 아래턱은 완치되었으나 입천장은 그대로 뚫려 음식물을 먹을 때마다 코를 향해 뚫려 있는 구멍으로 음식물 건더기가 나왔다. 심한 악취가 나는 건 당연했다. 또한 치아가 없으므로 10~12시간 끓인 음식을 섭취했는데 씹지 않고 넘긴 음식물은 항상 소화불량을 일으켜 자주 변기에 앉아 일을 봐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속을 비워 두는 것이 좋다 하여 설사약 처방까지. 다캉은 현대 의학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방만 일삼았다. 계속되는 설사로 인해 항문에 생긴 커다란 종기는 마취 없이 잘라내는 수술을 반복해야 했으며 항상 두통과 통풍에 시달리는 등 평생을 신체적 고통 속에서 살았다. 의사가 개인 원한이라도 있었던 걸까. 생고생의 연속이었다. 죽음에 가까운 여러 번의 수술에도 루이 14세는 직무에는 소홀함이 없었다. 절대 왕정을 지키며 수많은 전쟁터에 직접 참전해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그럴수록 백성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재정도 위기를 맞았다. 절대 왕정. 재정의 파탄. 민생고의 연속. 때는 17세기에서 18세기 초로 넘어가고 있었다. 바로크 시대였다. ━ 금수저 꽃미남 화가 루벤스 바로크란 불규칙하고 일그러진 형태의 진주를 의미한다. 이 시기는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표현하고 정형화된 것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감정 분출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각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은 생동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바로크 미술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쳤다.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루벤스(그림 5)가 손꼽힌다. 루벤스는 돈 많은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화가가 살아있는 동안 가난을 면치 못한 반면루벤스는 부와 명예를 온몸 가득 안고 살아가던 몇 안 되는 금수저 화가였다. 루벤스의 그림은 풍부한 색상과 역동적인 선으로 인체를 실물보다 풍만하고 강렬하게 표현해 ‘Rubensian’이란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귀족적 분위기에 외모까지 잘생겨 주위의 부러움과 시선을 받으며 외교관과 화가로 인기를 끌었다. 궁정 매너까지 갖춘 금수저 꽃미남 루벤스는 경영마인드도 대단했던 것 같다. 당시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은 너도나도 루벤스에게 의뢰해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 달라고 매달렸다. 그림 주문이 쇄도하자 그는 화가들이 분업해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제작시스템을 활용했다. 그림 공장이라고나 할까.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치 역시 루벤스에게 자신의 일생을 그려 줄 것을 주문해 21점의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라는 연작을 남기기도 했다. 〈그림 6〉은 연작물 중 ‘마르세이유에 상륙하는 마리 드 메디치’라는 작품이다. 먼저 왼쪽 상단에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 보인다. 주인공인 왕비의 양옆에는 숙모와 언니가 시중을 들고 있고 그 오른쪽엔 신화적 내용을 첨가해 소문의 여신 파마가 쌍나팔을 불면서 마리를 맞이하고 있다. 하단 왼쪽으론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그의 아들 트리톤, 3명의 딸이 배를 끌고 온 것처럼 표현했다. 루벤스는 마리를 신격화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신의 보호를 받는 모습으로 표현해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대단한 존재로 느끼도록 부각시켰다. 그저 결혼하러 마르세이유에 온 장면을 이리 신격화했으니 마리 드 메디치가 얼마나 흡족해했을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 그림을 보면 패션을 안다 바로크 미술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동감이 넘치는데 바로크 패션은 어땠을까? 17세기 이전에는 스페인 모드가 유행했지만 1588년 영국과의 해상전에서 스페인이 대패한 후 프랑스가 패션의 중심이 됐다. 또한 인쇄술의 발달과 ‘판도라’라 불리는 패션인형의 인기로 프랑스는 패션의 중심지로서 화려함을 나타냈다. 복식은 그 시대의 문화집합체이다. 바로크의 의미인 불규칙에 자유로움과 율동적인 면을 강조하고자 복식에 리본 등으로 과도한 장식을 했다. 그러다 보니 르네상스 시대와는 다른 형태로 실루엣이 확장됐다. 그러나 유럽의 모든 나라가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네덜란드도 이 시기에 상공업 국가로 발전하며 전성기를 누렸으나 시민 계급의 성장으로 복식은 시민풍을 띄게 되었고, 이는 복식사상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영국은 1640년에서 1660년 사이에 일어난 청교도 혁명으로 인한 금욕 정치, 1665년 흑사병, 1666년 런던 대화재 등으로 검소한 모습을 띠게 된다. 남성복은 일반적으로 바로크 초기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했던 러프칼라를 그대로 사용했으나 이 시기에 남성들에게 거대한 가발이 유행하자 편리성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칼라가 사용됐다. 러플 대신 현대의 넥타이 초기 형태인 크라바트(그림 7)나 스카프 형태를 단추구멍에 끼워 넣는 형태인 스테인커크를 목에 두르기도 했다. 〈그림 8〉에서는 1659년 피레네 조약을 하는 루이 14세와 스페인왕 펠리페 4세, 그리고 루이 14세의 왕비가 되는 마리 테레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루이 14세를 기준으로 왼쪽의 프랑스 귀족들은 화려한 바로크 패션인 렝그라브(스커트 형태로 화려한 색의 리본 다발 장식이 붙은 바지)를 착용하고 소매와 어깨, 허리, 모자, 심지어 슈즈의 발등에까지 리본 다발을 부착하고 있다. 이와 달리 그림 오른쪽의 펠리페 4세가 입은 스페인의 귀족 복식은 네덜란드 시민복의 영향으로 간편해진 복식의 형태를 하고 망토를 착용하고 있다. 뒤쪽의 마리 테레즈 의상을 보자. 소매엔 심을 넣고 리본으로 묶어 퍼프 형태로 하고 상의는 콜셋으로 꽉 조여 갑옷처럼 볼륨감을 없앴지만 스커트는 양옆으로 팽창된 스페인 특유의 스타일을 하고 있다. 이런 복식을 입고 있는 마리 테레즈의 그림은 단골처럼 바로크 미술 전시회마다 벨라스케스의 대표적인 작품(그림 9) 속에서도 볼 수 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른 태양왕도 죽기 전 루이 15세에게 유언으로 이웃 나라와의 전쟁은 절대로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한다. 평생을 지독한 통증을 동반하고 살았던 루이 14세. 만일 그가 주치의 다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를 몽땅 다 뽑는 고통도, 그로 인해 걸렸던 만성 소화불량도 없었을 텐데. 육체의 고통이 없었다면 좀 더 현명하고 어진 왕이 됐을까. 아니면 더 많은 전쟁으로 백성들을 파탄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희대의 전쟁광이 됐을까. 역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라의숙 교수는 대원대학 교수와 경희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패션 칼럼니스트이자 섬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희대에 출강 중이다. 라의숙 교수

2022.03.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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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의 알고 싶은 것들의 결말(15) 포스트 코로나, 팬데믹이 몰고 온 4가지 중대 리스크?] 코로나19는 역사적 사건 이상의 의미

전문가 칼럼

국가 역할과 헤게모니의 전환, 금융·실물 경제 취약… 패러다임의 변화, 새로운 질서 대비해야 전 세계 코로나 19 확진자 수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바이러스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하나 발생하면 확산에는 여권이 필요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의 신종코로나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생각을 음미해 본다.코로나19는 2001년 9.11 테러,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21세기 세계 시스템에 세 번째로 큰 충격이다. 온 세계가 경제적 미궁에 빠졌고 불확실성으로 경제전망에 안개가 자욱하다. 많은 사람은 세 사건 중에서 이번 사건이 더 큰 충격을 초래할 것으로 믿는다.비록 이전의 사건들이 역사 교과서에 실릴 수 있지만, 9.11과 리먼 브라더스 파산 모두 대중의 기억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질 수 있다고 보지만, 대중은 코로나19를 세대를 넘어서는 문명의 전환을 야기시킬 중대 사건으로 믿는다는 점에 있다. 미래의 학생들은 현재 사람들이 1914년 대공(아치듀크) 암살, 1929년 주식시장 붕괴, 1938년 뮌헨 총회에 대해 경험한 만큼 코로나19가 인류에게 줄 직접적인 영향과 이후 전개된 다소의 안도감에 대해 그래도 그만하니 다행이었다고 회상할지도 모르겠다.보스니아 헤로체코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는 4개의 아치가 있는 조그만 다리가 있다. 1798년에 만들어진 다리는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프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 ‘소피아’가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츠프’에게 암살되어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던 현장이다. 대공 부부의 시신은 다음날 빈으로 옮겨졌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했다. 이것이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었다.1929년 주식시장의 붕괴는 대공황의 전조로 비칠 수 있겠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인 프랑스와 영국은 뮌헨 협정을 체결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를 사실상 독일 나치 세력에게 넘겨주었다. 그 뒤로 수십 년이 흐르면서 뮌헨 협정은 두 전체주의 국가 간에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에 가려져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소련을 고립시키는 데 혈안이 되었던 프랑스와 영국을 주축으로 탄생한 뮌헨 협정이야말로, 결과적으로 소련이 독일과 손을 잡도록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앞당겼다. ━ 코로나19, 1·2차 세계대전에 준하는 역사적 사건 코로나19 역시 그 영향력에 있어서 거대한 세계적 사건이다. 확진자 수가 수 만명대인 미국인의 상황을 보자. 지난 70년 동안의 모든 군사적 충돌에서 죽은 사람의 수보다 더 많은 미국인이 코로나19로 죽을 것 같다. 실업률은 앞으로 2년 동안 대공황 이후 최고 수준을 상회할 것이다. 남북 전쟁 이후 그 어떤 사건도 이 정도로 보통의 미국 가족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않았을 것 같다.상황은 이제 신중해졌다. 최근 3분기에 경제가 급반등할 것이라는 생각은 좀 더 줄어든 듯하다. 유럽으로 고개를 돌려 보자. 현재 상황에 있어 큰 개선은 없어 보인다. 코로나 19 전염사태에 있어서 싱가포르, 한국, 독일을 포함한 성공적인 사례를 보여준 국가에서조차 새로운 발병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보며 우리는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첫째로, 정부 역할에 있어 중대한 전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으로 정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대내외 위협요인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국가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국가 통치체제의 실패 즉 무질서와 폭정, 적대적인 외세의 침입이었다. 그 결과 인류는 세계대전의 반복을 피할 수 있었다. ━ 국가의 역할 변화, 팍스 아시아나의 도래 반면, 코로나19를 계기로, 모든 국가에서 외부적인 위협은 의미 있게 대두하고 있다. 이제는 전통적인 위협보다 외부적인 위협 요인이 더 두드러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후변화는 우리를 집어삼킬 위험으로 도사리고 있다. 에이즈, 에볼라, 메르스, 사스 그리고 현재 코로나 19까지. 일련의 유행성 전염병의 발생은 우리가 이런 위협 요인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암시해 준다.테러, 난민들의 집단 이동과 격변, 금융 불안과 같은 요인도 우리 삶의 위협 요인으로 존재한다. 이들 국가에서는 보건의료 종사자의 마스크가 부족했고, 백악관에서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무시돼 지도자들의 안전이 위태로워 보였다. 중국이 미국에 기초 건강 장비를 공수할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다면, 21세기가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전환점은 코로나19가 될 수도 있겠다. 우리는 역사의 대전환 시점에 사는 지도 모르겠다. 래리 서머스는 코로나 19를 문명의 전환을 좌우하는 역사적 전조(hinge)로 생각하고 있다.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감염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르는 불안함을 안고 지구인은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폭풍처럼 몰려온 지도 수개월이 지났다. 이번 사태로 경기침체, 대규모 실업, 기업실적 악화 등 전면적인 위기가 진행 중이다. 정부가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계속 커지고 있다.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기업 실적이 악화하면서 세수 기반이 악화하고 있어 재정건전성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실적 전망을 한 주요 상장사 173곳의 올 2분기(4∼6월) 영업이익 전망치는 22조285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9.2% 적다. 3개월 전 전망치와 비교하면 30.2% 급감했다. 코로나19의 충격파가 2분기에 본격화해 기업 실적을 끌어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충격으로 부실기업 수도 늘어나면서 앞으로의 세수 전망도 어둡다.경기 침체로 법인세뿐 아니라 다른 세금 수입도 전반적으로 부진하다. 세수 목표치 대비 실적을 뜻하는 세수 진도율은 올 들어 3월까지 23.9%로 지난해 같은 기간(26.6%)보다 낮은 상황이다. 이를 보더라도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이 코로나19를 사태 이전(BC, Before Corona) 이후(AD, After Disease)의 변화를 구분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 기업활동 부진, 소득 감소, 세수 기반 악화 현실화 글로벌 리스크 측면에서 볼 때도 코로나19는 경제·금융·사회·정치 등 다양한 부분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이벤트임은 분명하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 때문에,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128개월간 경제 팽창이 멈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2020년은 지구 전체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멈추고, 하락하는 최초의 해가 될 것이다.JP모건에 따르면, 향후 2년간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으로 6666조원(5조5000억 달러)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이 액수는 일본의 연간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크다. 2021년 말까지 국내총생산(GDP)의 8%를 영구히 잃어버린 셈이다. 특히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만 그 손실 액수는 2008~09년 금융공황과 1974~75년 경제공황 손실액수와 맞먹는다. GDP는 최소한 2022년까지는 코로나 위기 전 단계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 세계경제성장률을 1980년 공식통계 집계 이후 최저치인 -3.0%로 전망했으며,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역성장하는 -1.2%로 전망한 바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세계교역 규모가 최대 32%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월에 생산을 재개하면 V자 회복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 재무장관 스티븐 므누신은 코로나 19를 잘 극복하면 미국 경제가 이전보다 더 강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케인스주의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도 코로나 19 불황이 겨울에 불황이 닥치는 여름 휴양지 경제와 비슷하다며 므누신의 견해에 동조한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동일한 생각을 할까.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데 세계는 2차 팬데픽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듯하다. 전염병 대유행의 리스크를 알파벳 ABCD로 풀어 보자.우선 A로 자국 우선주의에 따른 소외(Alienation) 문제다. 이는 세계성장·교역·투자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글로벌 통상질서와 관련하여 코로나 이전 진행되고 있던 자국 우선주의, 글로벌 공급망 약화, 디지털 전환 등이 코로나 이후 가속화되며 새로운 질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이러한 변화는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진 우리에게 더욱 큰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이번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을 통한 수급 차질, 보건 인프라 부족, 핵심기업 불안, 국내 일자리 공급 부족 등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대표적 형태로 보호무역 강화, 식량안보화, 핵심기업 통제(정부 지분투자, 국영화), 리쇼어링(복귀기업 보조금), 외국인 투자 및 고용 제한 백신 국수주의 등이다. ━ 자국우선주의에 신흥국 소외 심각해져 모디 인도 총리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자립의 시대가 도래”했고, “세계가 쇼비니즘에 사로잡혔다”고 논평했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각축전은 백신을 먼저 확보하는 국가가 코로나 시대의 글로벌 패권을 거머쥘 것이란 국제 정세 흐름을 반영한다고 진단한다. 다른 나라보다 먼저 백신을 대량 생산해 집단 면역력을 갖추면 경제 회복을 몇 달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백신 개발은 ‘달 착륙’과 비견되는 인류 문명의 기념비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국제공조보다는 자국 우선주의 팽배로 각국은 국제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한편,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가난한 자들은 더욱 고립되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디지털 전환 가속화의 부작용도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 산업이 공급망 재구성, 데이터보안, 원격 업무, 업무 자동화 등 디지털 전환 전략을 가속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고용구조 변화, 대면 위주의 서비스산업 약화, 투자가 어려운 중소기업 위기, 사이버 보안 침해 위험도 동반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로부터의 소외된 산업의 어려움이 가속화되고 있음은 또 다른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남미는 신흥국 중 가장 소외당하는 지역이다. 종전에도 원자재가격 하락, 고부채, 재정·경상수지 악화 등으로 저성장에 빠져 있던 남미경제는 코로나19로 정치·사회 불안까지 가세해 불황국면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성장 정체, 신용등급 하향, 외자유입 축소 등이 이어져 다수 국가에서 발생하여 경제·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이 크며, 신흥국 중 가장 외면되는 지역이 될 소지가 있다.나라도 개인도 어려운 여건에 처해있다. 소외에 따른 사회 불평등(Inequality) 심화도 문제이다. 이는 사회·정치 불안 확대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코로나19 사태로 보건서비스·고용·소득·교육 등 다양한 측면에서 취약층·부유층, 장년층·청년층, 피부색·인종 간 불평등 및 격차 확대가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은 반정부·반체제운동, 정치 불안, 극단주의 부상 등을 야기한다. 미국에서는 청년층, 비백인, 남성이 더 큰 고용 타격을 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둘째 B로 버블(Bubble) 형성위험이다. 전 세계적으로 모럴해저드로 인한 위험자산 버블 우려가 있다. 주요국들이 자산 무제한 매입, 투기등급 회사채 지원, 위기기업 지원 등 “문제 있는 모든 곳에 지원 있다”라는 의지를 확인시키면서 금융시장이 급반등했다. 이는 미래에도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위험투자를 조장하는 등 모럴해저드를 양산할 가능성으로 남는다. 자산가격 버블로 이어져 악재 도출 시 충격이 더욱 클 소지를 남긴다. 누군가는 과도한 증시호황이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말을 남긴다. ━ 신냉전 체제 도래, 국제 거버넌스 약화 세 번의 금융거품을 예측해 주식시장의 전설로 불리는 제레미 그랜덤이 최근의 미 증시 과열을 두고 ‘네 번째 거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랜덤은 CNBC와 인터뷰를 갖고 “지금이 내 투자 이력에서 네 번째 거품이라고 갈수록 확신하게 된다. 거품은 오래가면서 커다란 고통을 안긴다”면서 “최소한 나는 지금 우리가 거품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경제·금융 불확실성이 실제화하는 지금, 거품 속에 대담함(chutzpah·용기)이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차 렌트회사 헤르츠글로벌홀딩스 등 파산 기업들을 중심으로 실직한 투자자들의 주식거래가 만연해있고, 투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는 투자업에 몸담으면서 봤던 것 중 가장 거품 낀 시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로 미국에서 수 천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주가가 반등하는 점, 헤르츠처럼 파산보호를 신청한 회사의 주가가 급등하는 점에서 의구심을 보였다. 무분별한 투자에 대한 금융구루의 조언을 새겨볼 만하다.래리 서머스는 실물과 금융 디커플링의 원인으로 과거 위기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무제한 양적완화와 재정확대의 부작용을 지목하고 있다. 나스닥이 만스닥이 된 현실을 어떻게 정당화할지 고개를 저어보기도 한다. 과도한 유동성은 정상화(Normalisation) 위험을 낳는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자산매입 등으로 풀린 유동성 공급은 천문학적 수준으로 미국에서 최근 3개월간 풀린 유동성은 최근 3년간 풀린 유동성 규모를 능가한다고 한다. 만약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공급 중단·회수 계획을 수립할 경우 채권시장 수급 교란, 자산가격 급락 등의 위험요인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셋째, C의 신냉전(Cold War 2.0) 발생이다. 미중 대립 구도가 전 세계적 위험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패권경쟁에 더해 사태 책임론을 둘러싸고 미중 대립이 격화될 소지도 있어 보인다. 양국의 정치를 넘어선 경제연대 노력으로 편들기 구도가 전 세계로 확대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수 있다. 국제사회 양분화는 글로벌 공조 약화, 국제기구 거버넌스 침해, 반대입장국에 대한 경제압박, 지정학적 리스크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신냉전이 지정학적 균형과 경제 성장을 저해할까 모두 고민하고 있다.넷째, D의 부채(Debt) 위협 요인이다. 글로벌 총부채는 재정지출·민간차입이 확대되고 있다. 전 세계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응해 막대한 부채를 쌓고 있으며 팬더믹 위기 위협이 사라지면 위험이 될 수 있다고 IMF는 경고했다. IMF는 지난 4월에 이미 “전 세계 당국은 총 8조 달러에 달하는 직접 지출, 대출, 대출 보증 등 긴급 조치를 발표했다”며 “이는 전 세계 생산량의 약 9.5%에 해당한다”고 말했다.지금까지 정부 대응은 2007~09년 침체 때보다 빠르고 강력했다. 전 세계 정책 입안자들 쪽에서 이렇게 빠르고 더 강력한 대응 조치가 나온 사례가 없었다. 2007~09년과 달리 오늘날 정부는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 대처에 드는 직접적인 의료비, 거의 완전히 폐쇄된 경제를 지탱하기 위한 노력 등의 비용에 직면한 것이다. IMF는 전 세계 총 재정부채가 지난해 GDP의 83.3%에서 올해 96.4%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선진국의 경우 105.2%에서 122.4%로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 과도한 부채 증가, 수습 과정에서 문제 불거질 수도 일단 전염병을 통제해야 할 즉각적인 필요성이 사라지면 각국은 경기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계속 지출을 해야 할 것이라고 IMF는 내다봤다. 문제는 회복 속도가 더딜 것이라는 점이다. IMF는 과거 각국이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 지출을 통제하라고 요구해왔다.선진국 정부부채는 지속가능수준(60%)의 2배로 증가할 전망이다. 과도한 부채는 신용등급 강등, 남유럽 재정위기, 신흥국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민간에서는 기업파산, 은행부실로 확대될 가능성으로 남게 된다.과거 경제·금융위기는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되어 온 리스크(경기과열·가격 버블·과다부채)가 특정 시점에 터지면서 이후에 해소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특별한 징후 없이 돌발적으로 발생한 데다 오히려 수습 과정에서 리스크 수위가 더욱 커지거나 갑작스럽게 방향 전환을 하여 더 위험해진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음에 각별히 유의하여야 한다.코로나19 사태에는 예상을 넘은 적극적인 대책으로 한차례 위기를 진정시켰으나 아직도 진행형이다. 향후에는 잠재된 위험을 함께 헤쳐 나갈 묘책이 필요해 보인다. 재정·재무 건전화, 다양한 정책 믹스와 대응옵션 강구, 글로벌 협력체제 강화 등을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코로나 19로 우리를 지배해 온 생각들은 뒤바뀔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새로운 미래와 조우할 때이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울산 경제부시장이다. 대한민국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2020.07.0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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