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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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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소동’ 전두환 손자 퇴원…“3시간 동안 폐 멈춰”

정책이슈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 폭로에 나선 손자 전우원씨가 마약 소동 이후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근황을 전했다.전씨는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께서 저 같은 놈을 또 한 번 살려주셨다”며 “책임감 없는 행동으로 민폐를 끼쳐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생방송으로 마약 난동을 일으킨 지 일주일만이다.그는 “목요일(16일)에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고 얼마 안 돼서 기절해 3시간 이상 동안 폐가 작동을 멈췄고 기도가 닫혔다”면서 “삽관이 저를 살려줬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이어 “금요일 오후 눈을 떴을 때 목 안 깊숙이 튜브가 넣어져 있었고 숨이 안 쉬어졌고 온몸이 피투성이였다”며 “오늘까지 병원에 비자발적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했다”고 밝혔다.전씨는 생방송 중 각종 약물을 복용하고 환각 증세를 보인 것에 대해 사과와 함께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것"이라며 “약물 사용도 다시는 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러분 모두 따뜻한 도움의 손길, 사랑, 관심 보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또 전씨는 트위터를 통해서도 “민폐 끼쳐서 죄송하다”면서 “병원에서 오늘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방송으로 자세한 소식 전달 드리겠다”고 방송을 예고했다.전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두환 일가와 지인들의 범죄를 폭로했으나 이날 기준 폭로 게시물은 전부 삭제된 상태다.미국 뉴욕에 체류 중인 전씨는 지난 13일부터 SNS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일가의 비자금 의혹과 지인들의 범죄를 폭로해왔다.지난 17일에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각종 약물을 복용하며 환각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현지 경찰로 추정되는 외부인들이 집 안으로 진입했고, 라이브 방송은 종료됐다.현재 전씨가 올렸던 폭로 게시물들은 모두 삭제된 상태다.한편 경찰은 전씨의 마약 투약 등 범죄 의혹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현재 입건 전 조사 상태로 현지 주재관을 통해 대상자 안전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2023.03.24 13:42

2분 소요
국정원 개혁 모델로 거론되는 모사드의 피투성이 역사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1일 국가정보원 원장에 김규현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내정한 것을 두고 국정원을 해외와 대북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조직과 기능을 바꾸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 국정원장은 주로 대통령의 측근이나 중량급 정치인, 또는 북한과 직접 거래를 해본 인물을 중용해 왔지만 김 내정자는 외교관 출신이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해외·대북에만 국정원 업무 집중 기대 이에 따라 김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원장에 취임하면 국정원을 이스라엘 해외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처럼 해외 업무에 집중하도록 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내정자 본인도 주변에 ‘국정원이 모사드처럼 변화가 필요하며, 정보부서 본연의 기능으로 정상화해서 멀리,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이익이나 정치에 눈 돌리지 않고, 오로지 국가만 위해 일하는 투철한 신념의 기관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김 내정자는 대학 재학 중인 1980년 외무고시(14회)에 합격해 외교부에 입부했다. 외교부에선 북미1과장, 북미국 심의관,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와 공사 등을 맡으며 대미 관련 업무를 많이 맡았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2007년 국방부에 국제협력관으로 파견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 등 한·미 국방 현안을 다뤘다. 박근혜 정부에선 외교부 1차관과 국가안보실 1차장, 대통령 외교안보수석 겸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을 지내 국방 업무의 경험이 풍부하다. 안보실 1차장을 맡았을 때는 남북고위급 접촉 수석대표로 북측과 직접 대면했다. 외교는 물론 국방과 남북관계까지 경험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국정원장을 맡을 만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김 내정자 발탁은 평소 잘 알고 있던 ‘내 사람’이 아니더라도, 전문성과 함께 국제 감각을 갖춘 인재에게 정보기관의 수장을 맡기려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인선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김 내정자의 인선을 통해 자기 방식의 국정원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는 이야기다. 윤 대통령의 개혁은 국정원 본연의 정보 능력 강화와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여기엔 지난 정권에선 오로지 정치 개입 차단만 강조하면서 능력 강화는 도외시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대와 환경 변화에 따르는 사이버·테러·사보타지(파괴공작)·방첩·디스인포메이션·미디어전 등 다양한 국가안보 도전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충분한 예산 투자와 인력·조직·장비·교육·훈련 마련, 그리고 법률적인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인식도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을 해외와 대북 업무에 치중케 함으로써 이 분야에 대한 정치권의 발목잡기와 국민의 의심을 차단하자는 의도도 읽힌다. 국내 정보에는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해외 정보 수집과 분석, 정세 판단, 그리고 비밀공작만 맡는 대표적인 조직이 모사드이기 때문이다. 해외 정보·공작기관인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국내 보안기관인 신베트(Shin Bet, 샤박(Shabak)이라고도 부름)와 군 정보국인 아만(Aman)과 함께 음지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를 떠받히는 삼지창의 하나다. 이스라엘 밖에서 벌이는 정보수집과 암살·납치 작전은 모두 모사드의 임무다. 이스라엘 국내와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와 골란고원에서 벌이는 모든 정보수집과 작전은 신베트의 관할이다. 군은 별도로 활동한다. 예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거주하는 무장단체 지도자나 자폭공격에 쓸 폭탄이나 로켓 제조자를 아파치 헬기나 무인공격기, 또는 휴대전화 폭탄으로 표적 살해하는 공작은 모사드가 아닌 신베트나 이스라엘군이 맡아왔다. 모사드가 윤석열 정부 국정원의 롤모델로 떠오른 본질적인 이유는 정치와 활동의 분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정권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국민의 사활이 걸린 정보 수집과 정세 판단, 그리고 비밀공작으로 존재가치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갔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정보기관의 수장도 정권의 운명과 상관없이 자리를 계속 지켜왔다. 정보기관의 입장에선 정치적인 변화와 무관하게 오로지 국민과 국가를 위해 묵묵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 받을 수 있다. 이는 모사드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아울러 국민이 정치권이 아닌 정보기관을 더 믿고 지지하는 게 당연시되면서 정치권력은 정보기관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 이용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모사드는 실제로 전 세계의 정보기관 중 국민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는 조직으로 꼽힌다. 강력한 능력과 노하우, 그리고 전문 인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첩보수집과 공작활동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 강국 이스라엘을 받치는 조직이다. 특히 미국과 서방이 목말라 하는 이란·시리아 등 적성국의 정보를 어느 나라보다 풍부하게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리아 이란 등과 무기 거래를 해온 북한과 관련한 정보도 상당히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성과 능력을 모두 갖춘 해외 정보·공작 조직인 셈이다. 실적이 이를 말해준다. 이 따라 우방은 모사드에 손을 벌리고, 적성국은 모사드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 특수외교·정보수집·국민보호·무기조달 등 해외에 전념 이에 따라 윤 대통령과 김 내정자가 국정원 업그레이드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모사드가 과연 어떤 기관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모사드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독립투쟁 및 건국과 궤를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건국했지만, 모사드는 1년여 뒤인 1949년 12월 13일에 공식 설립됐다. 하지만 정보수집과 파괴공작, 요인암살 등 관련 활동은 이미 건국 1년 전인 1947년에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한 독립운동을 하면서 필요 때문에 활동이 벌어졌으며, 이를 통해 조직이 나중에 생긴 셈이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모사드의 모토는 이 기관의 정체성을 함축한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이 바로 모토다. 적을 색출하고 제거해 평화롭고 편안한 나라를 만들어 국민을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하는 게 조직의 목표라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건국 이념인 시온주의와 2000년간 유지해온 유대인 공동체의 정체성도 엿보인다. 모사드의 본부는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에 있다. 직원은 정확한 숫자를 알 순 없지만 일부 추정에선 1200명 정도라고 제시한다. 예산도 당연히 기밀이다. 모사드는 7대 목표도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모든 해외정보·공작 기관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외와 대북 업무에 집중할 윤 정부 시대 국정원의 실질적인 목표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다. 모사드의 첫째 목표는 해외에서의 비밀 정보수집이다. 이는 당연하고 평범한 목표다. 둘째 목표는 더욱 구체적이다. 적성국의 비재래식 무기 개발과 조달의 방지가 그것이다. 셋째 목표는 모사드의 정체성과 역사성, 그리고 유대 국가 이스라엘의 건국과도 연관이 있다. 바로 해외 이스라엘인에 대한 테러 예방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국민이라는 이유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국민과 같은 민족이 세계 곳곳에서 핍박이나 봉변, 그리고 잔혹한 일을 당해온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이를 막는 게 이스라엘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의 주요 업무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한국의 경우 해외 국민 보호는 외교부가 맡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시리아·예멘·우크라이나 등을 여행하는 것은 법에 따라 금지한다’고 고시하는 데 그친다. 이들 국가에 입국하려면 외교부의 특별입국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법적이 제재를 가한다. 특별입국허가를 받으려면 방탄차에 무장경호원을 확보하도록 요구해 큰 이익이 걸린 기업인이나 직원이 아닌 이상 힘든 게 사실이다. 이런 방식보다 이들 국가에서 국가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국민 안전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는 게 필요하다. 국제화되고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입국 금지만으로 해외 국민 안전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무모할 뿐이다. 해외 국민 보호라는 원칙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이스라엘의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모사드가 맡은 게 다를 뿐이다. 국민 안전을 확보하려면 국민의 활동을 틀어막는 것보다 정보와 무력을 가진 국가기관이 나서는 게 맞을 것이다. 모사드의 넷째 목표는 특수외교 및 여타 비밀 관계의 발전과 유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 교류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국익 확대 업무가 그것이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미국·영국 등 우방은 물론 전 세계 다양한 국가와 정보 교류를 한다. 모사드 활동의 특징은 은밀성에 있다. ‘우크라이나에 정보를 제공해 러시아군 장성을 표적 제거하도록 지원했다’는 기밀이 줄줄 새는 미국과 달리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기밀은 기밀로만 존재한다. 가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모사드가 했다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이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연안의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와 2020년 8월 13일 국교를 수립한 ‘아브라함 협정’은 누가 봐도 모사드의 작품이다. 모사드의 정보 수집과 공작이 외교 관계 수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요시 코헨 모사드 국장이 UAE로 날아갔다. 다섯째 임무는 유대인의 해외이민을 공식 허용하지 않는 나라로부터 유대인을 탈출시키는 일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건국 정신을 모사드에 투사한 것이다. 실제로 모사드는 에티오피아·예멘 등에서 유대인을 데려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섯째 임무가 전략·정치·작전 정보의 생산이다. 국가 전략을 마련하고, 국내에서 입법 활동 등 정치적인 행동을 하며, 안보나 보안과 관련해 무력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해외 정보를 모사드가 마련하는 것이다. 정치에 관여하는 게 아니라, 정치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모사드가 하는 것이다. 일곱째 업무는 겉으론 상당히 관료적인 표현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내용이다. 바로 ‘해외 특수작전 수립과 실행’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이스라엘의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높여준 암살 작전을 포함한 해외 공작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물론 이들 공작은 대부분 모사드가 한 것으로 짐작만 할 뿐 뚜렷한 증거가 없는 ‘도깨비 공작’이다, 아울러 이스라엘 정부와 모사드는 작전을 절대 시인하지 않는다. 내가 했노라고 자랑하거나 홍보하지 않는다. ━ 유대인 보호, 적성국 무기개발자 제거 등 대외안보 주력 그런 모사드가 그동안 벌여온 위험한 작전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살펴보자. 물론 모사드가 했다고 의심만 하는 사건이다. 첫째, ‘유대인을 해친 자는 반드시 보복 살해한다’는 원칙에 따른 공작이다. 대표적인 것이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 11명과 독일 경찰 1명의 살해에 가담한 팔레스타인 검은구월단 조직원을 일일이 찾아서 제거하는 복수 작전이다. ‘신의 분노’라는 이름의 이 작전은 영화 ‘뮌헨’으로 잘 알려졌다. 1992년 6월 8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스라엘 강경파 무장조직인 하마스의 지도자 아테프 브세이소가 두 명의 총잡이에게 처형 방식의 근접 사격으로 살해됐다. 브세이소는 뮌헨 학살 관련자다. 1983년 8월 21일엔 그리스 아테네에서 뮌헨 학살 관련자이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고위간부인 마문 메라이시가 오토바이를 타고 온 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숨졌다. 1979년 1월 22일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선 뮌헨 학살 기획자인 PLO 간부 알리 하산 살라메(별명 아부 하산)가 인근의 자동차 폭탄이 터지면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폭발 위치가 보이는 건물의 2층에 수년간 거주하며 저녁 시간이면 고양이를 데리고 베란다에 나왔던 할머니가 있었는데 살라메가 폭사한 뒤 사라졌다. 살라메 제거 작전을 몇 년 간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다. 살라메는 PLO 내의 확고한 정치적 위치 때문에 ‘PLO의 황태자’로 불리며 항상 무장 경호원을 여러 대의 차량에 싣고 다녔지만, 상대의 치밀한 작전 앞에 목숨을 잃었다. 1972년 10월 16일 이탈리아 로마에선 뮌헨학살 관련자로 PLO의 현지 대표이자 리비아 대사관 직원인 압델 와엘 즈바이터가 자신의 아파트 입구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아날로그 전화기로 통화하다 전화기 안에 숨긴 폭탄에 터지면서 숨진 경우도 있다. 이스라엘 국적기나 이스라엘인·유대인이 탑승한 여객기를 납치한 테러범의 상당수도 비슷하게 최후를 맞았다. 1960~70년대 여객기 납치에 관여했던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의 지휘관 와디 하다드가 거주해온 동독에서 1978년 3월 28일 독이 든 초콜릿을 먹고 한 달 뒤에 사망했다. 1971년 7월 8일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 작가이자 여객기 납치 관련자인 가산 카나파니가 자동차 폭탄으로 숨졌다. 1972년 7월 25일 같은 도시에 살던 여객기 납치 관련자 바삼 아부 샤리프가 배달된 책이 폭발하면서 손가락 네 개를 잃고 한 눈이 실명했으며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둘째, 모사드는 공작을 벌이면서 ‘이스라엘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무기 개발자는 살려두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해왔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험한 천적으로 통하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자가 우선 타격 대상이다. 실제로 이란 핵 과학자는 자신의 나라에서 줄줄이 살해됐다. 2020년 11월 27일 이란 수도 테헤란 인근의 소도시인 아브사드르에서 핵 과학자인 모셴 프크리자네는 경호원이 탑승한 두 대의 자동차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다 140m 거리에 주차된 픽업트럭에서 발사된 원격조종 기관총으로 살해됐다. 파크리자데는 헬기 편으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숨졌으며, 원격조종 기관총이 장착된 트럭은 원격조종 폭탄이 터지면서 파괴됐다. 2012년 1월 1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거리에서 핵 과학자인 모스타파 마흐말디 로샨이 자석 폭탄으로 피살됐다. 2011년 4월 9일엔 역시 테헤란에서 이란 핵 과학자인 다리우슈 레자이에가 오토바이에 탄 총잡이의 총에 맞아 숨졌다. 2010년 11월 29일엔 같은 도시에서 이란 핵 과학자 마지드 샤흐리아르가 자동차 폭탄으로 폭사했다. 이란은 물론 팔레스타인의 무기 조달책도 제거 대상이다. 2010년 1월 19일 UAE의 두바이에선 팔레스타인 강경파 무장조직인 하마스의 무기·폭탄 조달 담당인 마무드 알마부가 호텔 방에서 질식사했다. 당시 여러 명의 수상한 남녀가 호텔 CCTV에 찍혔지만, 유럽 국가 여권을 가진 이들은 당일로 항공편으로 이 나라를 떠났다. 1990년 이스라엘의 적인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위해 장거리 야포를 개발하던 캐나다인이 피살된 사건에도 모사드의 냄새가 난다. 1990년 3월 20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캐나다인 대포 개발자 제럴드 벌이 자신의 아파트 문 앞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벌은 사담 후세인을 위해 이라크에서 이스라엘을 직접 포격할 수 있는 최대 사거리 750km의 초대형 대포를 개발하고 스커드 미사일의 사거리와 정확도를 높이는 개량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1980년 6월 13일엔 프랑스 파리에서 이집트인으로 이라크 핵 개발 책임자였던 폐히아 엘마샤드가 프랑스 파리의 메리디앙 호텔 객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1962년 11월 28일 이집트 할루안의 로켓 공장인 팩토리 333에선 우편물 폭탄이 터져 로켓 엔지니어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62년 9월 11일엔 독일 뮌헨에서 이집트 미사일 개발을 돕던 서독 로켓 과학자 하인츠 크루크가 사무실에서 피랍된 뒤 영영 행방불명됐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1948년 독립전쟁, 1952년 수에즈 위기, 1967년 6일 전쟁,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등 4차례에 걸쳐 짧지만, 대대적인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양측은 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1978년 9월 17일 미국에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고 점령지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이 과정에도 모사드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알려지고 모사드가 한 것으로 의심을 받은 일만 이 정도다. 모사드가 했다는 증거가 따로 없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에 작전의 동기가 있으며, 모사드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공작일 경우 모사드가 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정보과 공작 세계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윤 대통령이 지향하는 모사드의 실체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역대 지도자들이 조직을 믿고 애정을 쏟았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사드나, 이 기관이 그동안 쌓아온 실적은 없었을 것이란 점이 명백할 뿐이다. 물론 국정원도 보안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실적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사드가 누리는 신뢰를 확보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적이 두려워하게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물론 멀고 험해도 가야 할 길이다. 국민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말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2.05.14 19:00

10분 소요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성지(聖地)에 진동하는 화약 냄새

전문가 칼럼

거룩한 종교 성지에 화약 냄새가 진동한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 등 유일신을 따르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다시 갈등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예루살렘은 종교 성지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 모두 헌법상 수도로 선언한 정치적인 갈등 지역이기도 하다. 2021년 5월 예루살렘은 갈등과 분쟁, 그리고 유혈극의 발화점이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로켓탄을 이스라엘로 쏘고 이스라엘이 전투기를 출동시켜 인구 밀집 지역인 가자지구를 공습하는 피투성이 힘겨루기가 이곳에서 불붙었다. 왜 성스러운 지역에서 이런 일이 시작됐을까? 중동에 강하다는 AFP통신과 카타르에 본부를 두고 아랍어·영어 등 다국어로 송출하는 글로벌 방송인 알자지라, 독일의 DW, 프랑스의 프랑스24 등 비교적 중립적인 국제채널을 중심으로 그간의 상황과 배경을 짚어본다. ━ ‘성전산’서 벌어진 폭력사태 사태의 시작은 토지를 둘러싼 송사였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북쪽으로 2㎞ 떨어진 ‘셰이크 자라’ 지역의 유대인 정착민들이 이 지역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을 퇴거시켜달라고 재판을 걸면서 시작됐다. 이곳은 이른바 ‘동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 점령한 지역 중 자국에 편입한 곳이다. 그 뒤 유대인들이 이 지역의 팔레스타인인을 퇴거시키고 유대인 지역으로 만들려고 50년 이상 시도해왔다.유대인들은 다양한 수법을 동원했다. 일부 유대인은 토지와 건물을 점거한 뒤 퇴거를 거부하고 버텼다. 과거 오스만튀르크가 이 지역을 지배하던 시절의 문서를 입수해 유대인이 살던 토지임을 증명하고 팔레스타인인을 밀어내기도 했다. 유럽 등에 살던 유대인이 유대국가 건설을 위해 이곳으로 귀환하기 전에도 이 지역에는 적지 않은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역사적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이스라엘 법원이 이런 재판에서 유대인의 손을 들어주며 분쟁에 불씨가 붙었다. 셰이크 자라 지역의 토지를 둘러싸고 제기한 소송에서 이스라엘 법원은 지난 1월 유대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을 계기로 ‘셰이크 자라’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또 다른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불만이 폭발했다. 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서 폭력 사태가 계속됐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대법원에 항소했지만 심리가 미뤄지면서 다시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러다 5월 7일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충돌했다. 팔레스타인 무슬림(이슬람 신자)들은 이날 예루살렘 성전산에 위치한 알아크사 모스크에 모여 단식월인 라마단 종료 전 마지막 금요 기도회를 열려고 했다. 라마단은 신앙고백·기도·기부·성지순례와 함께 ‘이슬람의 다섯 기둥’으로 불리는 종교적 의무다. 낮 시간 동안 단식하며 신앙을 다진다. 라마단 등 이슬람 종교 행사는 태음력인 이슬람력을 바탕으로 한다. 서양 달력인 그리고리우스력을 기준으로 하면 매년 바뀔 수밖에 없다. 올해의 경우 대략 4월 12일 저녁부터 5월 12일 아침까지이다. 이슬람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주류 종교다. 2018년 미국 매체 알모니터의 추정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출신의 약 79%가 무슬림, 20%는 기독교 신자, 1%는 드루즈다. 기독교 신자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외국으로 떠나는 비율이 높아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무슬림이 알아크사 모스크에 모여 기도회를 열려던 날짜다. 이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이슬람 수니파에선 라마단이 시작된 지 27번째 날인 이날을 ‘라일라트 알카드르(권능의 밤)’라고 부른다. 신앙심 깊은 무슬림은 이날을 기도가 가장 잘 받아들여지는 날로 여긴다. 장소도 중요하다. 알아크사 사원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하늘로 승천해 믿음의 성인들을 만났다는 자리에 건설한 거룩한 사원이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의 17장 1절은 “알라는 그의 종을 데리고 밤에 성스러운 예배당으로부터 우리가 정결하게 한 멀리 떨어진 예배당에까지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조짐을 눈으로 경배하도록 하여 주셨도다”라고 기록한다. 이슬람에서는 이를 ‘알이스라 왈미라지’라고 부르는데 서구에서는 통상 ‘밤의 여행’으로 번역한다. 메카에 살던 무함마드가 천마 부라크를 타고 순식간에 ‘가장 먼 모스크(아랍어로 알마스지드 아크사)’로 여행한 것을 가리킨다. 무함마드는 이곳에서 다른 예언자들을 만나 기도를 인도했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여기서 말한 ‘가장 먼 모스크’를 실제 세계의 예루살렘 성전산의 한 지점으로 여겨 서기 705년에 이곳에 같은 이름의 알아크사 사원을 지었다. 무슬림들은 이를 실제 세계와 영적 세계를 동시에 아우르는 내용으로 여긴다 이슬람 세계에서 이렇게 중요한 날에 그토록 거룩한 성지인 알아크사 앞에서 기도회를 열려던 팔레스타인 무슬림은 이스라엘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앞서 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선 폭력 사태가 계속 빚어졌기 때문에 ‘예방차원’이라며 기도회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을 해산하려고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고무탄을 쏘는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 돌과 병, 그리고 폭죽을 던지며 저항했다. 팔레스타인인이 220여 명의 부상했다. 다음 날인 8일엔 철야 대치 끝에 121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부상했고 이스라엘 경찰관 17명도 다쳤다. 충돌이 심화한 것은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성전산은 고대 유대교 성전이 있던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솔로몬 대왕이 세운 제1 성전이 기원전 957~기원전 586년에, 페르시아의 군주 키루스(구약성서엔 고레스로 표기)가 건설을 승인한 제2 성전이 기원전 516년~기원 70년 성전산에 있었다고 믿는다.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마지막으로 무너지고 남은 서쪽 벽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기를 기원할 때 목적지로 상정했던 곳이다. 성전산은 넓지 않다. 언덕 위에 서쪽이 488m, 동쪽이 470m, 북쪽이 315m, 남쪽이 288m인 마름모꼴의 평지가 펼쳐져 있는 게 전부다. 유대교와 이슬람 모두에게 양보하기 어려운 역사적·종교적 성지인 셈이다. ━ 2개 정파 분열된 팔레스타인… 온건파 파타, 강경파 하마스 2002년 마드리드 회의 이후 평화중재 작업을 계속해 온 ‘중동 콰르텟(사중주단)’인 미국·러시아·유럽연합(EU)·유엔은 이날 모두 폭력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교황도 폭력 중단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호소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요일인 9일 저녁에는 동예루살렘의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다시 대치했다. 이스라엘은 금요일과 토요일을 쉬고 일요일에 한 주가 시작된다. 시위는 월요일 아침에도 계속돼 395명이 부상하고 이 중 200명은 입원했다. 5월10일이 되자 사태는 극도로 심각해졌다. 이날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의 날’로 부르는 국경일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1967년 6월 6일 ‘6일전쟁’ 당시 예루살렘 점령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스라엘은 태음력과 태양력이 섞인 유대력(히브리력)을 쇠기 때문에 올해는 5월 9~10일이다. 이스라엘 당국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유대인의 행진을 중단시켰다. 이날은 이스라엘의 유대인에겐 자랑스러운 날이지만, 팔레스타인에겐 분노를 유발하는 날이다. 양측의 분쟁의 기원은 1947년의 유엔 분할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엔 임시위원회가 채택하고 유엔총회가 통과한 결의안 181호는 팔레스타인을 유대 지구, 팔레스타인 지구, 그리고 유엔이 관리하는 예루살렘으로 분할했다. 이를 바탕으로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아랍 국가들이 공격해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 독립전쟁으로 불리는 1차 중동전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독립을 확고히 했다. 아랍권의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지구인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이집트는 가자지구를 각각 점령했다. 이들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아랍은 이스라엘을 타도한 뒤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생각을 했겠지만 유대인은 만만하지 않았다. 전쟁 뒤 이스라엘은 유대인 지역 전체와 서예루살렘을 확보했다. 사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유대교와 이슬람 모두의 성지란 점을 감안해 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 도시에서 전투를 벌이지 않기로 비밀협약을 맺었다. 대신 도시를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서쪽과 요르단이 통치하는 동쪽으로 나눴다.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는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이 다수인 동예루살렘을 요르단이 통치하게 됐다. 지리상으로나, 인구상으로 합리적인 타협안이었다. 그러나 동·서 예루살렘 분할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군사적인 타협안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1967년 6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그리고 가자지구를 모두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지로 관리했지만, 예루살렘을 하나로 통합했다. 예루살렘은 주변 지역을 합쳐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6개 ‘구역(지방행정구역)’의 하나가 됐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과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영토이자 수도’로 본다. 팔레스타인도 예루살렘을 수도로 보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명분까지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점령된 팔레스타인은 1987~1993년 제1차 티파타(봉기)를 통해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1993년 미국 등이 개입한 오슬로 합의를 통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자치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서안지구에 쿠드스(예루살렘의 아랍어) 주를 세웠다. 이 주는 과거 동예루살렘으로 불리던 옛 요르단령 예루살렘을 포함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행정구역과 겹친다. 자치정부는 이를 감안해 이 주를 J1과 J2로 나눴다. 이스라엘이 실효 지배를 하는 지역이 J1이고 나머지 지역은 J2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현실적으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라인는 2개의 지역과 이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는 파타와 하마스라는 2개의 정파로 분열됐다는 사실도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 파타와 하마스는 서로 사뭇 다르며 서로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승리’라는 뜻의 파타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이끌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1957년 설립한 정당이다. 대이스라엘 정책에서 온건파이며,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합의한 ‘2국가체제’를 지지한다. ‘2국가 체제’는 이스라엘과 장래 들어설 팔레스타인 국가가 평화롭게 안전하게 공존하는 방안을 가리킨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한 나라를 구성하는 ‘1국가 체제’나,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가 각각 병립하는 ‘3국가 체제’와 대립하는 개념이다. 파타는 정치적으로 중도좌파로 분류되며, 세속주의와 온건 민족주의를 지향한다. ‘이슬람 저항운동’의 아랍어 머릿글자를 딴 하마스는 1987년 이슬람주의자 아흐마드 야신이 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를 바탕으로 설립한 정파다. 이념과 정책에서 파타와 극과 극이다. 대이스라엘 정책에서 강경파다. 이스라엘을 타도하고 전체 팔레스타인 지역을 ‘해방’하는 게 목표다. 따라서 ‘2국가체제’를 거부한다. 철저한 반유대주의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무장투쟁을 주도한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한 자선사업으로 민심을 얻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한 생각만 동일하다. 아랍어로 알쿠드스로 부르는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수도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갈등은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 폭격 시작한 하마스, 이스라엘도 보복 나서 하마스는 5월 10일 이스라엘이 성전산에서 보안 병력을 철수하지 않으면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 뒤 이스라엘로 150발 이상의 로켓을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전투기를 동원해 보복에 나섰다. 하마스가 지배하는 가자지구에 130회에 이르는 폭격을 가했다. 가자지구에는 거제도(379㎢)와 비슷한 365㎢의 좁은 땅에 대부분 난민인 200만의 팔레스타인인이 거주한다. 이곳을 폭격하면 민간인에 대한 부수적 피해는 불가피하다. 이스라엘은 ‘군사 목표물’을 겨냥했다고 발표했지만, 하마스는 여성과 어린이 사망자를 강조한다.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을 대공방어체계인 아이언 돔으로 잘 방어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역 매체인 중동뉴스는 하마스의 로켓 발사가 이제 시작이라고 지적한다. 하마스가 한 발에 60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드는 로켓탄을 15만발정도 비축해 앞으로 다량·장기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루 1000발 정도를 발사한다면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도 제대로 방어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이스라엘 방산업체인 라파엘과 IAI가 개발한 아이언 돔은 4~70㎞ 거리에서 발사돼 단거리 로켓과 포탄을 차단한다. 주·야간 전천후로 가동하는 이 시스템은 탐지거리 4~350㎞의 레이더와 사거리 4~70㎞의 타미르 미사일, 분당 1200개의 목표물을 처리하는 컴퓨터 시스템으로 이뤄졌다. 발사대가 대당 5000만 달러 이상, 요격 미사일은 기당 2만~5만 달러로 알려졌다. 700만원짜리 미사일을 6000만원짜리 미사일로 막는 형국이다. 이스라엘군이 날아오는 로켓의 궤도를 보고 인구 밀집지역으로 오는 것만 골라 요격하고 빈터로 가는 것은 그냥 두는 이유다 중동에는 전쟁의 불씨가 여전히 잠복해 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05.15 13:57

8분 소요
종교,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

산업 일반

예수회 선교사들의 얘기 다룬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 관객 사로잡는 요소 거의 없고 잔인한 고문 장면 많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 ‘사일런스(Silence)’ (국내 개봉 2월 28일)는 아무리 독실한 신앙이라도 시험에 들게 할 만한 수십 년의 극심한 고통과 끈질긴 인내를 다룬 영화다.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가 1966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스콜세지 감독은 1989년 이 소설을 처음 읽고 영화 제작을 결심한 뒤 수십 년 동안 자금 마련에 힘써 왔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만큼이나 힘든 과정이었다. 이 이야기가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이야기는 1643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한다. 독실한 예수회 선교사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프란시스코 가루페(애덤 드라이버)는 일본에서 박해 받는 가톨릭교인들을 돕던 그들의 스승 페레이라(리암 니슨)가 고문을 받고 신앙을 저버렸다는 소식을 듣는다.이 말을 믿지 않는 로드리게스와 가루페는 일본으로 가서 페레이라를 찾아보기로 하고 예수회에 승인을 요청한다. 나가사키 근처의 해변에 도착한 이들은 교인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로 간다. 마을 주민들은 봉건영주와 사무라이들에게 발각될까 두려움에 떨며 밤의 어둠을 틈타 기도한다. 서양인 신부의 존재가 발각되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초반의 이 장면들은 스콜세지 감독의 경찰 스릴러 영화 ‘디파티드’(2006)처럼 위험으로 가득 찼지만 의외로 감동적이기도 하다. 펄럭거리는 촛불과 안개, 그림자를 배경으로 박수를 치고 십자가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얼굴은 진흙투성이지만 믿음으로 빛난다. 마치 알프레히트 뒤러(16세기 독일 화가)의 그림처럼 단순하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다.“예수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참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죽었다”고 로드리게스는 말한다.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죄인들을 두루 아우르는 예수회의 가르침이다. ‘비열한 거리’(1973)의 마피아 단원들, ‘택시 드라이버’(1976)에서 인간 주도의 구원을 꿈꾸는 트래비스 비클, ‘분노의 주먹’(1980)에서 피투성이 순교자처럼 벌을 달게 받는 무명 복서 제이크 라모타 등이다.‘사일런스’는 스콜세지의 감독 생활 내내 그를 괴롭혀 왔던 믿음과 의심의 모순이 넘치는 고차원의 종교 영화다. 두 주인공 중 스콜세지 감독 스타일에 더 어울려 보이는 쪽은 드라이버다. 몹시 쇠약해진 바이런(19세기 영국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처럼 여위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쪽은 아기 사슴 밤비처럼 눈이 크고 수줍은 가필드다. 그는 교활한 종교재판관 이노우에(이세이 오가타)의 손에 걸려든 뒤 양심의 시험대에 올라 갈등을 일으킨다.오페라 ‘나비부인’의 나비부인처럼 부채질을 하면서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웃는 오가타의 모습은 ‘차이나타운’(1974)의 존 허스턴 이후 가장 음흉스럽다. 그는 이 교활한 인물을 뻔뻔하고도 태평스럽게 연기한다. 오가타는 잡혀온 교인들을 고문하면서 그들에게 “왜 내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느냐?”고 말한다. 마치 고문 과정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고문하는 쪽이라는 투다. ‘카지노’(1995)에서 조 페시가 한 남자의 머리를 기계로 조이는 고문을 하면서 던진 말을 떠올린다. ‘사일런스’는 선뜻 추천하기 어려운 영화다.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가톨릭교 포교 위기에 관한 이야기가 2시간 41분 동안이나 펼쳐진다. 영화에 나오는 예수회 선교사들처럼 스콜세지 감독도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영화엔 관객을 혹하게 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음악이 별로 안 나오고 지저분하고 불결한 장면이 많으며 고문 장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다. 교인들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에 세워진 십자가에 못박히고 산 채로 화형당하며 도살된 돼지처럼 피 흘리며 죽어간다. 로드리게스는 “신음하는 이들에게 그분의 침묵을 어찌 설명해야 합니까?”라고 하느님을 원망한다.영화에는 또 ‘사일런스(침묵)’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신학적인 논쟁이 많이 나온다. 이 논쟁은 로드리게스의 상급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와 주인공들의 내면적인 독백, 사악한 이노우에와의 정면 대결로 등장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시간을 잘 선택해서 관람해라. 그리고 관람 뒤엔 아무런 스케줄도 잡지 말아라. 극장을 나온 뒤에도 영화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인간 정신의 승리’라는 상투적인 홍보를 늘어놓지만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고 난해한 영화다.하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고집스런 뭔가가 느껴진다. 스콜세지 감독의 최근 작품 대다수는 그가 초기 작품에서 절박하게 집착했던 문제를 그저 건드리는 시늉만 하는 듯했다. ‘사일런스’는 오랜만에 그 초기의 절박함이 다시 드러나는 영화다. 그 결과 거의 신의 은총과도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 톰 숀 뉴스위크 기자

2017.03.13 11:24

3분 소요
[지구촌 이모저모]  시리아 - 이 아이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국제 이슈

동영상 속의 다섯 살 배기 옴란 다크니시는 피범벅인 채로 쇼크를 받아 멍한 표정이었다.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 정부 지원세력의 공습이 집중된 알레포 시의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된 직후였다. 시리아의 잔혹한 내전을 보여주는 끔찍한 모습이다.다크니시는 지난 8월 17일 오후 공습으로 부상당한 어린이 5명과 함께 있었다. 익명을 조건으로 AP 통신과 인터뷰한 의사에 따르면 남자 2명과 젊은 여성 1명도 다쳤다.다크니시가 살던 알레포의 카테르지 동네를 공습한 것은 러시아 전투기들로 알려졌다. 아사드 정권과 동맹군은 반군의 역습을 받은 이후 최근 몇 주 사이 알레포와 주변 지역에 집중 공격을 가해 왔다.얼마 전 파도에 떠밀려 터키의 보드룸 해변에 올라온 세 살 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이 유럽 난민위기의 비극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듯이 다크니시의 동영상은 알레포 집중공습과 련된 여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알레포 미디어 센터가 제공한 동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널리 공유됐다. 영국 외무장관 출신으로 현재 국제구제위원회 대표인 데이비드 밀리밴드는 다크니시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어린 생존자의 겁에 질린 피투성이 얼굴이 알레포의 공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다크니시는 M10 병원으로 실려가 머리 부상을 치료받고 머리카락·눈·옷에 내려앉은 먼지와 잔해를 씻어냈다. 알레포의 의사들은 병원을 코드 명으로 부른다. 그들은 정부가 병원을 겨냥해 조직적인 공습을 가해왔다고 말했다. 이 병원도 수시로 공습을 받았다. 의료진은 17일 모두 15세 이하의 어린이 12명을 더 치료했다고 밝혔다.- 파비트라 드위바시암, 캘럼 페이턴 아이비타임즈 기자

2016.08.21 15:51

1분 소요
생리 혁명이 시작됐다

산업 일반

세계적으로 더 안전하고 저렴한 제품을 생산하고 일상생활의 일부로 통합하기 위한 법·관습·기술 개혁 진행돼 명백한 사실에서부터 시작하자. 인류 역사상 모든 여성이 생리를 하거나 했다. 달마다 자궁 내막이 떨어져나가면서 질을 통해 피가 흘러나온다. 이런 과정은 먹고 마시고 잠자는 행위처럼 자연스럽다. 생리가 없다면 인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거의 모두가 공개석상에서 이 문제를 쉬쉬한다.소녀는 생리를 시작하면서 수십 년에 걸친 침묵과 불안의 여정을 시작한다. 생리는 고통스럽다. 요통과 경련을 유발할 뿐 아니라 불쾌감이 먹구름처럼 마음을 덮는다. 이 같은 고통은 30~40년 동안 매달 계속된다. 하지만 생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설사만큼이나 드물게 거론된다. 여성들은 ‘그때’가 됐음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패드나 탐폰을 소매 속에 감추고 화장실로 향한다. 광고에선 몸에 달라붙는 흰색 진바지 차림의 여성이 뛰노는 동안 연한 청색 액체들이 보송보송한 흰색 생리대 위로 부드럽게 쏟아져 내리는 장면으로 이 피투성이의 과정을 미화한다.여권운동의 선구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1978년 ‘미즈’ 잡지에 실린 한 풍자에서 많은 여성이 품고 있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만일 마법처럼 여자는 생리를 중단하고 대신 남자가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답은 뻔하다. 생리가 남들이 선망하고 자랑할 만한 남성적인 행사가 된다. 남자들은 얼마나 오래 많이 하는지 자랑할 것이다.” 스타이넘은 전쟁터, 정계, 종교계 지도부 그리고 메디컬 스쿨 등 거의 모든 곳에서 ‘멘스(men-struation)’가 남성의 위상을 정당화하는 세상을 그렸다.4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스타이넘의 풍자는 우리 가슴에 아프게 와닿는다. ‘생리 형평성(menstrual equity)’에 거의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성인 기저귀, 비아그라, 로게인(발모제), 포테이토칩은 세금을 면제해 주면서 탐폰과 생리대에는 세금을 매긴다. 남자들은 어떤 화장실에서든 화장지, 비누, 페이퍼 타월과 시트 커버까지 신상관리에 필요한 온갖 용품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여학생은 마치 월경이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라기보다 질병인 양 양호실까지 찾아가 생리대나 탐폰을 요청해야 한다. 대다수 공적·사적인 장소에서 차라리 거친 화장지 뭉치가 낫겠다 싶은 저급한 생리대 자판기라도 설치됐으면 운이 좋은 편이다. 동전이 없다고? 요즘엔 주차장에서도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지만 여자 화장실에서 그런 기술이 적용된 탐폰 자판기를 본 적이 있는가? 교도소 수감자와 노숙 여성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탐폰을 구할 수 있다 해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제조사에 성분 표기를 의무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 여성이 질 속에 탐폰을 착용하는 시간이 평생 10만 시간을 웃돈다. ‘생리 위생 기술의 역사(Under Wraps: A History of Menstrual Hygiene Technology)’를 저술한 퍼듀대학 역사가 샤라 보스트랄은 “탐폰에 화학 제초제 잔류물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며 “탐폰과 관련해선 그런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이런 상황이 부당하다 싶으면 개도국 여성은 어떤지 보자. 금기, 빈곤, 부적절한 위생 시설, 부족한 건강 교육, 그리고 침묵의 문화가 소녀와 여성의 기본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한다. 깨끗하고 값싼 생리용품, 신상관리에 필요한 안전하고 사적인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유니세프(UNICEF)와 세계보건기구(WHO)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적절한 생리관리 시설이 없는 환경에서 생활하는 소녀와 여성이 세계적으로 최소 5억 명을 넘는다. 닐슨 플랜 인디아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 농촌 지역에선 여학생 5명 중 1명이 생리를 시작한 뒤 학교를 중퇴한다. 그리고 인도의 생리 연령 소녀와 여성 3억5500만 명 중 생리대를 사용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하다.“요즘은 사람이 죽기 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지난 20년 동안 청소년 건강 분야에 종사한 WHO 과학자 벤카트라만 찬드라 물리는 말했다. “생리 문제로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해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소녀의 자아관과 자신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일에서나 자신감은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다.”생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외면당하는 인권 문제 중 하나다. 이는 교육·경제·환경 그리고 공중보건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마침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년 사이 생리와 관련된 대중문화적 사건이 상당히 많이 발생했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에서 2015년을 ‘생리의 해’로 부를 정도였다. 생리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는다면 양성 평등은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엔 토론을 뛰어넘어 새로운 변화의 출발 신호가 울리며 생리혁명 원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생리의 낙인을 벗겨내고 공공정책이 뒤따르도록 하는 운동이다. 운동가, 발명가, 정치인, 벤처 창업자,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이 같은 움직임을 주도한다. 미국인이 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생리를 통해 양성평등·페미니즘·사회변화를 논의하고 있다. 스타이넘의 말마따나 이는 “여성이 세계 인류의 절반으로서 위상을 되찾고 있다는 증거”다. ━ # HappyToBleed(기쁘게피흘리리라) 생리가 원래부터 금기시됐던 건 아니다. 고대와 모계 문화에서 생리는 명예와 권력의 표시이자 여성이 휴식을 취하며 활력을 되찾는 성스러운 시간이었다. 오늘날 생리를 맞아 스파에 가거나 며칠씩 회사를 쉬는 사람은 없다. 생리는 수세기 동안 수치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1970년 잠시 침묵이 깨졌던 순간이 있었다. 민주당 국가중점과제위원회의 에드가 버만 위원이 여성은 ‘극심한 호르몬 불균형’ 때문에 공직을 맡을 수 없다고 주장했을 때였다.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당에 탄원했던 팻시 밍크 연방 하원의원(하와이)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버만 위원은 “생리 중인 여성 대통령이 피그만 침공(미국의 쿠바 카스트로 정권 전복 시도) 결정을 내리거나, 은행 총재가 극심한 호르몬 이상 속에서 융자 결정을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고 사람들에게 요구했다. 밍크 의원이 그의 “역겨운 연기”를 비웃으며 물러나게 하면서 여성의 생리에 반짝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그 뒤 어떤 정책 변화도 없이 46년이 흘렀다.지난 1월 유튜브의 인기 스타 잉그리드 닐슨(27)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인터뷰에서 40개 주에서 탐폰과 생리대가 사치품으로 과세되는 이유를 물었다. 아마 오바마 대통령은 여성 생리 문제를 논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인지도 모른다. 그는 뜻밖의 질문에 놀란 듯했다. 그는 “주 정부에서 왜 이런 품목을 사치품으로 과세하는지 솔직히 전혀 모르겠다”며 “당시 남자들이 세법을 제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닐슨의 인터뷰는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미국 문화와 정치에서 가장 쉬쉬하는 이슈로 꼽히는 생리에 대한 그녀의 솔직한 접근방식도 큰 화제를 모았다. “매일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데 대통령이 모르고 있었다니! 사람들이 그냥 덮어버리려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오늘날까지 정부와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를 잘 말해준다.”지난 1년 사이 꾸준히 일어난 대중문화적인 사건들이 생리 평등(일명 생리 페미니즘, 화장실 평등 또는 스타이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냥 ‘삶’)을 주류 대열에 올려놓았다. 뮤지션 키란 간디는 지난해 런던 마라톤에서 생리대나 탐폰을 하지 않고 달렸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다리 사이가 붉고 커다랗게 얼룩져 있었다. 예술가 루피 카우어가 바지의 엉덩이 부분과 시트에 검붉은 얼룩이 묻은 자신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뒤 두 차례나 ‘우연히’ 삭제된 일도 있었다. 코미디 센트럴 방송의 콤비 키건-마이클 키와 조던 필은 남자들에게 생리에 관한 교육을 했다. “인류의 절반이 한 달에 한 번씩 고통받는다고 하는데 나머지 절반은 소 닭 보듯 하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공화당 대선 경선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분명 그 방송을 못 본 듯하다. 그는 폭스뉴스의 공화당 후보 토론 진행자 메긴 켈리가 던진 난처한 질문에 볼멘소리를 하면서 “그녀의 몸 어디선가 피가 흘러나온다”고 말해 트위터에서 #PeriodsAreNotAnInsult(생리는 모욕이 아니다)라는 해시태그(트윗 메시지 주제분류어)를 낳았다. 의식고취 해시태크 캠페인(#노숙자생리, #기쁘게피흘리리라, #탐폰을무료로), 청원 사이트 Change.org의 탐폰세 폐지 서명운동, 아루시 두아(20)가 페이스북에 ‘생리중’ 버튼을 도입해 생리를 터부시하는 인도 풍습과의 싸움을 지원해 달라고 마크 저커버그에게 요청한 일까지 생리에 조명이 집중되고 있다.이 같은 움직임이 널리 확산되면서 영화배우 우피 골드버그는 생리통을 완화하는 의료용 마리화나 제품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의 극단적인 낙태 금지 법안에 항의하는 데도 여성이 자신의 생리를 이용한다. 생리의 상세한 진행상황을 매일 그에게 전화·이메일·트윗으로 알린다. 영화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레드카펫에서 흔히 받는 “어떤 브랜드 옷을 입고 있나요(Who are you wearing)?”라는 질문에 생리 이야기로 답했다. 그녀는 2016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빨간색 컷아웃(일부 신체 노출) 드레스를 선택한 이유를 하퍼스 바자 잡지에 밝혔다. 시상식 때 생리 중이어서 “앞부분이 헐렁한 옷을 원했다”는 설명이었다. “몸에 정말 딱 달라붙는 드레스도 있는데 나는 자궁에 힘 주고 있을 생각은 없다(I’m not going to suck in my uterus).” ━ 걱정까지 빨아들인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는 지난해 탐폰·생리대 그리고 위생 팬티 라이너(생리용 위생 패드)에 31억 달러를 썼다. 그리고 글로벌 위생 생리제품 시장 규모는 300억 달러에 달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이 분야에서 일어난 의미 있는 혁신은 3가지에 불과했다. 19세기 후반 처음 시판되고 1969년 접착식으로 개량된 일회용 위생 패드, 1930년대의 탐폰, 그리고 1980년대 인기를 모은 생리컵(menstrual cups, 생리혈을 받는 실리콘 컵)이다. 닐슨은 “여기서 여성의 몸을 보는 관점이 잘 드러난다”며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어떻게 40~50년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생리대와 탐폰이 나오기 전에는 부드러운 거즈나 플란넬을 접어 속옷에 핀으로 부착했다. 그 뒤 1920년대 코텍스 위생 생리대가 등장하면서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표면상의 개선에 지나지 않았다. “(생리대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마찰로 살갗이 벗겨진다는 불평이 있었다”고 보스트랄 교수는 말했다. “패드가 커서 탄력 벨트가 필요했다. 착용하려면 서커스를 해야 했다.”1931년 얼 클리블랜드 하스라는 덴버의 한 의사가 현대적인 탐폰과 삽입용 골판지 어플리케이터를 발명했다(피임용 질격막의 발명자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여성이 육체노동에 뛰어들면서 착용감 좋고 섬세하고 품질 좋은 제품의 필요성이 커졌다. 1937~1943년 탐폰 판매가 5배 증가했으며, 1940년대 초에는 여성의 25%가 일상적으로 탐폰을 사용했다.여성 생리용품이 미국의 주류 문화에 점차 뿌리내렸다. 여성들은 생리대보다 탐폰을 더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을 해방시켜주는 발명이라고 탐폰을 찬양했다. 매사추세츠주립대학(보스턴) 생리주기연구학회 회장인 크리스 보벨 교수(여성학·양성학과)는 “아무도 제품의 안전성은 생각하지 않았다”며 “말 그대로 그냥 삽입하면 되는 간편한 제품이 나온 데 고마워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비주류 예술계 사람들만이 탐폰 에티켓의 한계를 확장하려 애썼다. 페미니스트 미술가 주디 시카고의 1971년작 ‘빨간 깃발’은 작가가 질에서 피투성이 탐폰을 꺼내는 모습의 흐릿한 클로즈업 장면을 포착했다(많은 사람이 피투성이의 페니스라고 가정했다. 생리를 터부시하는 문화를 꼬집으려는 작가의 의도였다).1975년 프록터&갬블(P&G)은 릴라이라는 티백 형태의 초강력 흡수성 탐폰을 시판하기 시작했다(광고문구가 ‘걱정까지 흡수한다’였다). 합성소재 제품이며 카르복시메틸셀룰로오스(CMC)가 주요 성분이었다. 흡수력을 크게 강화해 이론상 생리 기간 내내 탐폰의 효능이 지속되게 하는 화합물이었다. 보스트랄 교수는 “내가 만나본 많은 사람들은 ‘탐폰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며 “기막히게 좋은 새 디자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릴라이 탐폰을 빼내기가 고통스러웠다는 반응도 있었다. “액체를 너무 많이 흡수해 꺼낼 때 질내 피부가 벗겨졌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플라스틱 어플리케이터 끝의 날카로운 부분에 때로는 피부가 베이기도 했다.그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치명적이었다. 탐폰의 CMC와 폴리에스터로 인해 여성의 질이 매우 건조해지면서 독소를 생성하는 박테리아 황색포도상구균이 번식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 됐다. 1980년 890건의 독성쇼크증후군(TSS)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신고됐다. 그중 91%가 생리와 관련됐고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미국 여성 중 약 70%가 탐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릴라이의 시장 점유율은 25%였지만 그로 인한 TSS 환자는 75%에 달했다. 플레이텍스와 탐팩스 등 다른 초강력 흡수성 탐폰 브랜드도 연루됐지만 1980년 9월 리콜된 제품은 릴라이뿐이었다. 모든 탐폰 제조업체가 TSS 소송에 걸렸지만 P&G를 겨냥한 고소가 1100건을 넘었다. 1982년 FDA는 제조사들에 탐폰 사용과 TSS의 연관성을 소비자에게 경고하도록 했다. 1983년 6월까지 CDC가 확인한 TSS 사례는 약 2204건에 달했다. 하지만 1989년에 가서야 FDA는 제조사들에 탐폰 흡수도를 표준화하고 케이스에 경고문을 삽입하도록 했다.1980년대와 90년대 탐폰의 안전도가 향상되고 TSS 발병 사례는 급감했다. 하지만 CDC에 따르면 1987~1996년 생리와 관련해 여전히 636명의 TSS 환자가 발생했으며 그중 36명이 사망했다. 탐폰에 CMC의 사용은 중단됐지만 1995년 빌리지 보이스 잡지는 새로운 폭탄을 터뜨렸다. ‘면역체계에 독이 되고’ 태아의 선천성 결함을 유발하는 발암물질 다이옥신이 일부 탐폰 제품에서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FDA가 이 같은 관련성을 폭로하는 메모를 깔고 앉아 탐폰 관련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맹비난했다.운동가들의 노력으로 탐폰 업계가 일부 표백 관행을 개선해 다이옥신 위험을 크게 낮추는 작은 개가를 올렸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아 있다. FDA는 기업들에 탐폰과 생리대의 성분 공개를 의무화하지 않는다. 우리가 의류 생산지는 알지만 여성의 질 안에 삽입하는 제품 관련 정보는 거의 없다는 의미다. 여성이 평생 사용하는 탐폰은 대략 1만2000개에 달한다. 그것도 적게 잡은 숫자라고 탐폰의 합성소재와 TSS의 연관성을 처음 밝힌 뉴욕대학 의학대학원 미생물학과 필립 티어노 교수는 말했다. “FDA는 다이옥신이 미량이라고 하지만 탐폰을 사용하는 수십 년 동안 누적된다.” 톱밥으로 만드는 비스코스 레이온은 아직도 탐폰에 사용된다. 티어노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알고 보면 그래도 나쁜 성분 중 가장 나은 편이다.”보벨 교수는 “우리 몸에서 가장 흡수력이 뛰어난 부분에 한 번에 며칠씩 40년 간 착용하는 탐폰의 안전성을 말해주는 확실하고 믿을 만한 데이터가 없다”며 “생리를 둘러싼 침묵에서 기인한 증상”이라고 말했다. 1997년 뉴욕 주 캐롤린 멀로니 하원의원은 탐폰안전조사법을 발의했다(지금은 1998년 TSS로 사망한 여성의 이름을 따 로빈 대니얼슨 여성위생제품안전법으로 불린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생리위생제품과 관련된 건강위험을 조사할 뿐 아니라 FDA가 탐폰·생리대와 기타 생리 필수품의 성분 리스트를 공개하도록 하려는 취지다. 그 뒤로 멀로니 의원은 그 법안을 8회나 재발의했지만 현재 에너지·상거래 보건 소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다. “특히 여성 건강과 관련된 법안은 통과시키기가 대단히 어렵다. 많은 의원들이 탐폰의 안전 문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멀로니 의원은 말했다. “언젠가 이 법안이 통과되리라고 믿는다.”한편 롤라와 콘셔스 피리어드(Conscious Period) 같은 신생 벤처가 대기업엔 없는 투명성을 제공한다. 탐폰은 면·레이온·합성섬유의 혼합 제품이다. 하지만 롤라 탐폰은 100% 천연 면제품이다. 알렉스 프리드먼과 함께 롤라를 공동 창업한 조대나 키어는 “확실한 최신 데이터가 없을 때는 우리가 아는 성분을 몸에 착용하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지난해 창업 이후 롤라는 420만 달러의 자본을 조달하고 수만 명을 고객으로 끌어모았다. 18개 들이 탐폰 한 박스에 10달러다(2박스는 18달러). 약함·보통·강함의 흡수 강도 중 고객이 원하는 수량에 따라 맞춤 공급할 수 있다. 콘셔스 피리어드는 100% 유기농·저자극성·생체분해성 면 탐폰을 판매한다. 공동창업자 마고 랭에 따르면 면은 세상에서 세 번째로 농약을 많이 쓰는 작물이다. 하지만 콘셔스 피리어드 탐폰의 유기농 면에는 화학물질·염료·합성물질이 들어 있지 않다. 20개 들이 박스 당 8.50달러이며 한 박스가 팔릴 때마다 유기농 패드 한 박스를 여성 노숙자에게 제공한다(패드형이 더 싸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 따르면 패드가 교체하기 더 쉽고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몸에 덜 해롭다).“모든 여성이 TSS에 취약하지는 않지만 어느 탐폰에나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라면 합성물질 없는 100% 면을 구입하겠다”고 티어노 교수는 말한다. “100% 면은 유기농이든 아니든 위험성이 가장 낮다. 하지만 제조업체들은 장비를 모두 개조해야 하기 때문에 100% 면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삽입형을 원치 않을 경우 캐나다 밴쿠버의 루나패즈가 판매하는 생리대, 생리용 팬티라이너뿐 아니라 생리·임신·요실금 용 내의와 생리컵도 있다. 닐슨은 “요즘엔 유기농에 100% 면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많다”고 말했다.미국 전역에서 각종 식품·도구·필수품을 면세로 판매한다. 캘리포니아 주에선 팝타르트(간편식 과자), 인디애나 주의 BBQ 브랜드 해바라기 씨, 루이지애나 주의 마디 그라 구슬 목걸이, 메인 주의 성경, 미시시피 주의 관 등이다. 그러나 이들과 기타 35개 주에서 생리용품엔 4~10%의 세금을 매긴다. “미국 경제에선 셔츠보다 블라우스 세탁 비용이 더 비싸고, 남자가 구입하는 제품은 필수품이고 여자가 구입하면 사치품으로 간주된다. 탐폰세는 그런 시스템의 일부”라고 스타이넘은 말한다.탐폰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10개 주 중 5개 주에선 소비세가 없고(알래스카·델라웨어·몬태나·뉴햄프셔·오리건), 나머지 5개주엔 면세 생리용품이 따로 있다(메릴랜드·매사추세츠·미네소타·뉴저지·펜실베이니아). 올해 시카고는 생리용품에 대한 소비세를 폐지했다. 뉴욕 주에선 지난 4월 초 하원에 이어 상원도 탐폰세 폐지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법안의 사소한 이견이 해소되면 주지사 서명 단계로 넘어간다.뉴저지 주에선 최근 의료용 마리화나 적용 증상 리스트에 생리통을 추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캐나다는 지난해 생리용품에 부과하는 전국 물품·서비스세를 폐지했다. 대표적으로 영국과 프랑스도 탐폰세를 내리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이자 여권운동 블로그 페미니스팅의 개설자 제시카 발렌티가 2014년 쓴 ‘무료 탐폰을 위한 변론’은 탐폰세를 비판한 초기의 칼럼으로 유명하다. 발렌티는 “여성 위생용품은 만인에게 항상 무료로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기겁한 보수파들이 반격했다. 여성에게 탐폰을 무료 제공하면 그 다음엔 자동차와 식품을 공짜로 나눠줘야 하나? 자궁 문제에 정부가 끼어들기를 원하는가? 절도(여자애들이 탐폰을 모두 훔쳐갈 것이다!), 공공시설 훼손(여자 애들이 패드를 사방에 붙일 것이다!), 세수 감소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모두 핑계에 불과하다”고 뉴욕시의 모든 공립학교 화장실, 노숙자 시설, 교도소에 무료 탐폰과 생리대를 비치하는 법안을 발의한 줄리사 페레라스 코플랜드 뉴욕시 의원은 말했다. “관공서 화장실에는 어딜 가든 화장지가 있다. 없으면 아마 황당할 것이다 … 나는 아직 ‘이 모든 (무료 배포되는) 콘돔 예산이 얼마냐?’는 질문을 들어보지 못했다.”지난 1월 캘리포니아 주의 크리스티나 가르시아와 링링 창 의원은 여성 생리용품을 소비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그 주의 여성들은 모두 2000만 달러를 돌려받는다. 캘리포니아 주 예산의 0.01%에 불과한 액수라고 가르시아 의원은 말했다. ‘미스 생리’라고 놀림받으면서도 양당의 남녀를 포함해 30명을 법안 발의자로 끌어들인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법안을 발의했을 때 진보적인 동료 의원들도 나를 외면했다. 피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불편해 하고 역겨워 해서 큰 소리로 말할 수도 없다.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손을 잡아야 했다.”올해 그레이스 멩 연방 하원의원(뉴욕주)은 연방긴급사태관리청을 설득해 노숙자 보호시설에서 연방 보조기금으로 여성 위생용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오하이오 주 컬럼버스의 엘리자베스 브라운 의원은 수영장과 레크리에이션 센터에 생리용품 배포를 추진한다. 그 밖에 미시건·버지니아·위스컨신도 탐폰세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유타 주에선 전원 남성으로 이뤄진 위원회에서 위생세제법안이 8대3으로 부결됐다. 테네시 주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퇴짜를 맞았다.“탐폰세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여자가 아니거나 가난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뉴욕대학 로스쿨 브레넌 사법센터 부회장으로 생리 형평성에 관한 대표적 저술가인 제니퍼 와이스 울프는 말했다. 그녀는 미국의 탐폰세 폐지를 위한 정책 캠페인의 설계자다. 지난해 저서 ‘법적 개혁, 미국 사회운동이 주는 교훈’에서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사회변화를 이루려면 동영상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썼다. “여론 광장과 법정에서 승리해야 한다.” 탐폰세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다. 올해 들어 14개 주에서 탐폰세 법안을 발의해 12개 주에서 그런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와이스 울프 부회장은 “40개 주에서 14개 주니까 3분의 1이고 또한 빠르게 진척된다”며 “미국에서 그렇게 대담하고 공개적으로 초당적인 지지를 받는 이슈가 있다면 말해보라”고 큰소리쳤다. ━ 첨단 생리 방지 내의 ‘싱크스’ 미키 아그라왈은 “나는 남자용 쇼트 팬츠를 입고 있다!”며 벌떡 일어나 바지를 내리고 세련된 검정 내의를 드러냈다. 우리는 맨해튼 중심가 사회혁신센터에 있는 아그라왈의 작은 사무실에 있다. 벽에 자몽 사진이 걸려 있고 우리 머리 위의 격자 선반에는 형형색색의 내의가 매달려 있다. 캘빈 클라인 속옷 신상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첨단 생리 방지 내의 싱크스(Thinx)다. 아그라왈이 쌍둥이 자매 라다, 그리고 친구 안토니아 세인트 던바와 함께 개발한 제품이다.싱크스 내의는 생리혈을 흡수하기 때문에 생리대나 탐폰이 필요 없다(양이 많은 날에는 추가적인 보호막을 사용하면 된다). 아그라왈에 따르면 특허 내의 싱크스는 항균성·습기흡수·누출방지 기능을 갖춰 건조한 느낌을 주지 않으며 최대 탐폰 2개 분량의 생리혈을 흡수할 수 있다. 착용감은 높이고 탐폰의 사용과 오염은 줄였다는 의미다. “매년 매립지에 버려지는 탐폰 어플리케이터, 생리대, 생리용품이 모두 2000만 개를 웃돈다”고 그녀는 말한다. 싱크스는 6가지 스타일이 있으며 한 벌 당 24~38달러다. 세탁·재사용 가능하고 착용해본 기자들에 따르면 효과가 있다. 싱크스는 우간다 여성에게 재사용 가능 생리대의 생산과 판매 교육을 실시하는 아프리패즈에 매출 중 일부를 기부한다. 아그라왈은 또한 ‘싱크스 글로벌 걸스 클럽’도 출범 중이다. 보조금을 받아 생리용품을 무료 배포하고 건강교육·자기방어·창업 교육을 실시하려는 취지다.아그라왈은 2010년 남아공에서 12세 소녀를 만났을 때 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소녀의 답변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아이는 ‘수치의 주간(week of shame)’이라고 말했다.” 소녀는 생리할 때는 등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나뭇잎, 진흙, 비닐봉지, 낡은 매트리스와 천 조각을 사용해 봤지만 모두 효과가 없어서 “결국 등교를 포기했죠.” 아그라왈이 소녀가 한 말을 돌이켰다. “선진국이나 개도국 모두 생리 문제가 있는데 왜 혁신 기술이 나오지 않나? 왜 아무도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가?”싱크스를 비롯해 ‘디어 케이트’ 등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신생 벤처들이 반 세기 만에 처음으로 생리용품에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점잖은 척하는 문화가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싱크스는 자몽과 떨어지는 달걀 노른자의 예술적 이미지와 함께 내의와 탱크톱 차림의 모델들이 조심스러운 포즈를 취한 광고를 뉴욕시 지하철에 제출했다. 광고대행사 아웃프런트 미디어는 이미지가 ‘부적절하다’고 평했다. 광고는 결국 지하도 벽면에 걸렸지만 뉴욕시 택시 TV와 엘리베이터 내 TV에는 퇴짜를 맞았다고 아그라왈은 말한다. 그녀는 “우린 모닝 토크쇼에 나갈 수 없다”며 “그들은 ‘생리’란 말을 입에 올리고 싶어 하지 않으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 ‘비 걸(Be Girl)’의 기능성 생리대와 내의 콜롬비아 태생의 다이애나 시에라는 생리의 진보를 위한 독자적인 투쟁을 벌인다. 그녀는 개도국 소녀와 여성을 위한 내의를 개발하고 있다. 파나소닉에서 산업 디자인 일을 하던 그녀는 2년 전 회사를 그만뒀다. 얼굴 미용 스티머와 마사지기에 둘러싸여 일하는 동안 “이런 제품을 살 수 있는 10%만을 위해 디자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나머지 90%도 좋은 제품을 누릴 자격이 있는데 그만한 소득이 없어 생산성 있는 시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녀는 2014년 기능성 생리대와 내의를 개발하는 디자인 업체 ‘비 걸(Be Girl)’을 창업했다. 유엔 인턴십으로 우간다 농촌 주민에게 미술과 공예로 돈 버는 법을 가르치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11세와 12세 소녀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같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한 교사가 아이들이 생리 중이라 등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깜짝 놀란 시에라는 우산 천과 모기장 소재를 이용해 위생 패드를 급조했다. “나는 개도국 출신이라 임기응변에 능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시에라의 부모는 농민이었지만 ‘불우 환경’ 학생 대상의 장학금 혜택 덕분에 대학에 진학해 뉴욕시에서 인턴십 일자리를 얻었다. 그 뒤 스마트 디자인, 나이키, LG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12년 동안 근무했다.시에라는 우간다의 소녀들이 천 조각을 생리대로 쓴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천이나 기타 깨끗한 소재로 채울 수 있는 누출 방지 포켓이 달린 내의를 개발했다. 지난해 이후 비걸은 우간다·르완다·탄자니아·말라위와 기타 10개국에 재사용 가능한 내의 1만5000벌 이상을 공급했다. 비걸 내의는 빅토리아 시크릿 제품만큼이나 밝고 산뜻하다. 한 벌 팔릴 때마다 또 한 벌을 어려운 환경의 소녀에게 기부한다. “소득이 적다고 기대나 포부도 낮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생리 건강 분야의 나이키가 되고 싶다. 소녀에게 단순히 팬티나 생리대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몸의 주인이 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식을 주는 것이다.”시에라는 제품 예비조사의 설문 결과를 살펴보던 중 탄자니아 음볼라의 한 소녀가 작성한 더럽혀진 종이를 발견했다. “생리대의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를 묻는 질문에 소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아껴준다는 것을 알게 돼 너무 기쁘다”고 썼다고 시에라는 돌이켰다. “그 누군가가 아주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줘 내가 여자라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그것이 시에라의 회사명 ‘비걸’의 탄생 배경이다. “바다 건너 먼 대륙의 소녀가 생리대 같은 단순한 물건에 존엄성과 자긍심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달리고, 자신감을 갖고 걷고, 착용감 좋고, 깨끗할 수 있는 것.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확신, 그것이 디자이너로서 원하는 전부다.” ━ 인도의 멸균 생리대 만드는 기계 유기농과 100% 천연 면 소재 탐폰이 선진국만의 특권이 돼선 안 되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리고 탐폰세 폐지 투쟁이 가치는 있지만 탐폰이 공급되지 않는 지역이나 생리를 꺼리는 문화에선 아무 의미도 없다. 많은 나라에서 생리는 저주나 마찬가지다. 소녀와 여성은 생리 중엔 요리할 수 없고, 급수원에 손을 대거나 예배당이나 공공장소를 돌아다니지 못한다. 아프리카에선 10명의 소녀 중 1명이 생리 때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인도의 소녀 중 70%는 초경 때까지 생리를 모른다. 동아프리카의 소녀 5명 중 4명은 생리대와 관련한 건강 교육을 받지 못한다. 네팔의 일부 농가에선 아직도 생리 중인 여성을 헛간으로 내쫓는 차우파디라는 고대 전통을 따른다.WHO의 찬드라 물리는 “대다수 소녀는 생리가 시작될 때까지 그게 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반복적으로 듣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학교에서 생리를 하기 시작했다. 옷이 더럽혀졌다. 반 친구들이 키득거렸다. 나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다. 팬티가 축축하게 느껴졌다.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기다리게 했다. 내 내장이 썩어 들어가는구나 생각했다. 엄마가 와서 내 몸을 타월로 감싼 뒤 집으로 데려가 욕조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너는 이제 숙녀다. 밖에 나가서 남자애들과 놀지 말아라.’”이 같은 시스템 상의 문제는 첨단 내의로 해결되지 않는다. “우간다·케냐·인도에서 이 같은 문제를 다루는 단체에서 현장 체험을 한 적이 있다”고 보벨 교수는 말했다. “그들은 특효약이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이 후원자들이 선호하는 가시적인 해법이다. 생리를 숨기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문화에 대한 개혁시도는 없다.”제품이 매력적인 해법이라 해도 앞날이 순탄치 않다. 10년 동안 글로벌 생리문제를 연구해 온 컬럼비아대학 메일맨 공중보건대학원 사회의학과 마니 솜머 부교수는 “저비용의 지속가능한 인프라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며 “금기를 깨고 소녀들을 교육시키고 인프라를 개선해 공격이나 창피를 당하거나 위생을 걱정할 필요 없는 안전하고 사적인 장소를 마련할 수 있다면 큰 발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인도의 ‘멘스 맨(Menstrual Man)’으로 알려진 한 남자는 이 문제를 조금씩 공략해 들어간다. 아루나찰람 무루가난탐은 인도 남부에서 가난한 베틀 공인의 아들로 자랐다. 1998년 결혼 직후 아내가 더러운 천을 생리대로 쓴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내가 가족 먹을 우유도 없는데 생리대를 어떻게 살 수 있냐는 말에 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작정했다.그는 생리대 소재와 모델을 갖고 몇 년 간 실험을 했다. 자신의 제품을 착용해 보도록 아내를 설득하고 그 뒤엔 현지 의과대생들에게도 부탁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래서 무루가난탐은 직접 생리대를 착용했다. 고무 자루를 동물 피로 채워 튜브를 부착한 뒤 한쪽 끝을 자신의 속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 뒤 생리대를 착용하고 5일을 지냈다. “지저분하고 기분 나쁜 날들, 그 축축함. 상상하기 힘든 경험이었다.” 그가 2012년 이야기쇼 테드엑스 방갈로르 강연에서 말했다.6년간의 연구 끝에 멸균 생리대를 만드는 기계를 개발했다. 하지만 그동안 이웃사람들은 그를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고 아내도 그를 떠났다(지금은 다시 결합했다). 인도에 2500대, 그 외 17개국에 기계를 수백 대 공급했다. 그의 생리대 소매가는 개 당 3센트, 기계는 대 당 2500달러다. 모두 시가보다 싸다. 무루가난탐은 2014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여성들이 그 기계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을 향한” 사업이다.인도 구자라트의 과학자 스와티 베데카르는 2010년 무루가난탐의 기계를 한 대 구입했다. 사막 지역사회를 방문했다가 소녀들이 돌 위나 모래를 채운 단지 위에 앉아 생리혈을 흘려 보내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녀는 소녀들을 돕고 싶었지만 기계를 사용한 여성들은 발로 움직이는 페달 때문에 허리가 아프다고 불평했다. 베데카르는 기계를 개조해 그 과정을 단순화했다. 생리대 디자인을 단순화하고 날개를 달아 착용감을 개선했다. 하지만 또 다른 장벽이 있었다. 인도의 대다수 도시와 마을에는 폐기물 처리 규정이 없어 다 쓴 위생제품을 종이나 비닐로 싸서 쓰레기와 함께 버리는 경우가 많다. 떠돌이 개들이 종종 쓰레기 속을 파헤치고 남성 일부는 여성이 생리대를 흑마술에 이용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베데카르의 남편 시암은 다쓴 생리대를 전기 없이 신속히 소각할 수 있는 화분 모양의 점토 소각로를 발명했다.요즘 베데카르는 40개 여성 그룹을 조직해 그 개량 기계로 월 5만 개의 생리대를 만들어 사키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사키는 힌디어로 ‘친구’를 뜻한다). 베데카르는 2014년 화제를 모은 루게릭병 환자 돕기 모금 캠페인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위생 버킷 챌린지를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한 양동이의 사키 생리용품 구입을 권유해 소녀들을 도우려는 취지의 캠페인이다. 지난해 자신의 비영리단체 비찰리야 재단과 공동으로 6000명의 소녀에게 1년치 생리용품을 제공했다.인도에서의 혁신은 상당부분 소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재나아프리카 재단(ZanaAfrica Foundation)은 매년 케냐의 소녀 1만 명에게 생리대와 성(性)·생식 건강 교육을 제공한다. 케냐는 2004년 세계 최초로 생리용품에 대한 소비세를 폐지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재나아프리카 재단의 지나 라이스 윌친스 대표는 “매년 케냐의 사춘기 소녀 100만 명이 생리로 인해 최대 6주씩 결석한다”며 “학교를 중퇴하는 비율이 사춘기를 시작하는 남학생의 2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재단의 사회적 기업 재나아프리카그룹은 생리용품을 생산해 동아프리카의 소녀와 여성에 제공한다. 이 조직이 지난 3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4년간 26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게 됐다. 소녀들에게 성·생식 건강 교육과 함께 생리대 제공의 효과를 검토하는 획기적인 연구 지원 자금이다.라이스 윌친스 대표는 “케냐의 모든 소녀가 중등학교를 마친다면 그녀의 평생에 걸쳐 케냐의 국내총생산(GDP)이 46%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곤·학대·아동결혼·임신 등 아주 많은 장벽이 있다. 생리가 장벽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조용히 작은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애비게일 존스 뉴스위크 기자

2016.06.1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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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휘어잡은 우먼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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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제88회 아카데미상 수상작이 모두 발표됐다. 그러나 논란 많은 그 시상식이 열리기 전부터 다양성 결여를 둘러싼 비판이 사방에서 빗발쳤지만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영화의 과반수(‘브루클린’ ‘룸’ 그리고 은근히 페미니스적인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예외)가 88년 연속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월스트리트의 투기꾼과 책략가 이야기(‘빅 쇼트’), 정장 차림의 직장인에서 변신한 스파이들(‘스파이 브릿지’), 화성에서의 삶을 모색하는 남자들(‘마션’), 카페인에 찌들고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시스템 전반적인 부조리를 파헤치는 (주로 남자) 기자들을 다룬 올해 작품상 수상작 ‘스포트라이트. 또는 황야에서 피투성이의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가 곰에게 공격당하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그래도 곰은 암컷이다).그렇다고 모든 작품상 수상작에서 여성이 주인공을 맡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옷을 벗지 않은 여성이 주인공을 맡고, 스토리를 이끌거나, 남성 중심적인 줄거리에 양념 치는 역할로 나오지 않는 영화는 극히 드물다. 뉴스위크가 그 숫자를 헤아려봤다. 그것은 디캐프리오가 오랫동안 고대하던 아카데미상을 움켜쥐기 위해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려 애쓰는 모습보다 더 애처로웠다.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여성이 권력을 갖거나 난관을 극복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상 수상작 영화가 있을까? 뉴스위크가 조사한 바로는 14편이었다. ━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IMDB는 할리우드 베테랑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가리켜 ‘마초 영화 스타의 아이콘’으로 칭송했다. 그는 여성을 내세운 고난극복 스토리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미증유의 도약을 이뤘다. 힐러리 스웽크가 프로에 뛰어들려 안간힘을 쓰는 아마추어 복서 매기 피츠제럴드를 연기한다. 노장 트레이너 프랭키 던(이스트우드)에게 자신의 재능을 입증해야 한다. 이는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승리의 스토리이자 남성 중심적인 영화 ‘에비에이터’ ‘레이’ ‘사이드웨이’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제치고 그해 작품상을 수상한 보편적인 스토리다. ━ 시카고(2003 섹스·살인·탈옥이 횡행하는 스토리의 2002년작 뮤지컬 ‘시카고’는 다음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카고’를 이끌어간 사람들은 여성들이다. 인기에 목마른 댄서 록시와 살인을 하는 나이트클럽 가수 벨마 켈리 역을 각각 맡은 르네 젤위거와 캐서린 제타 존스다. 선정적이고 탁월한 퀸 라티파가 연기한 간수 마마 모턴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뮤지컬 각색 영화에서 이들 3명은 활기차게 무대 위를 걷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복수하고 경의를 표한다. 변호사 역을 맡은 리처드 기어는 이들 3명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 타이타닉(1998) 영화 ‘타이타닉’이 미국에서만 개봉 첫 주말 2863만8131달러를 낚아 올리며 미국 영화계를 항해한 지 근 20년이 지난 지금도 잭과 로즈의 슬픈 연가는 살아 있다. 그러나 영화가 지금껏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차분하고 강한 로즈 역을 맡은 케이트 윈슬렛이 보여준 연기의 힘이었다. 로즈는 빠르게 가라앉는 배에서 귀족 대신 노동자 계급의 잭(이번에 마침내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과의 사랑을 택한다. 세상의 의지력 강한 여성을 향해 경의를 보낸 이 영화는 ‘LA 컨피덴셜’ ‘굿 윌 헌팅’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풀 몬티’ 같은 영화들을 물리쳤다. 무릎 꿇은 영화들은 놀랍게도 모두 남자들 이야기다. ━ 양들의 침묵(1992) ‘양들의 침묵’에서 앤서니 홉킨스가 나오는 장면은 17분도 채 안 된다. 그러나 눈 한번 깜짝 않고 인육을 먹는 연쇄 살인범 한니발 렉터의 모습으로 우리를 악몽에 시달리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탄탄하게 만드는 힘은 야심만만한 FBI 수습요원 클라리스 스타링으로 분장한 조디 포스터의 연기다. 두려움·의심·공포를 극복하고 렉터와 기이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포스터의 연기 덕분에 영화는 이론의 여지 없이 사상 가장 탁월한 작품상 수상작 중 하나로 입지를 다졌다. 그해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올리버 스톤 감독 작품 ‘JFK’나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같은 다른 영화들보다 분명 더 흡인력 있다. ━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90) 영화에서 주인공 데이지 워턴(제시카 탠디)은 호크 콜번(모건 프리먼)이라는 흑인이 승용차 기사로 배정되면서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 이 영화는 예상을 뒤엎고 시와 문학에 대한 송가 ‘죽은 시인의 사회’, 아빠를 울게 만든 스포츠 영화 ‘꿈의 구장’을 제치고 작품상을 차지했다. ━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6) 놀랍게도 이 영화에선 여자가 남자의 일회용 연애 상대나 하나의 도구로 동원되지 않는다. 카렌 블릭센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자신이 정한 조건으로 로맨스에 대처한다. 메릴 스트립이 남작부인 카렌 디네센 역을 맡아 바람둥이에 주정뱅이 남편 브로를 무시하고 사냥꾼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와 가까워진다. 카렌의 스토리를 전면에 내세워 역대 작품상 수상작 리스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 애정의 조건(1984) 제임스 L 브룩스의 감독 데뷔작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셜리 매클레인과 데브라 윙거가 병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상대의 눈알을 뽑아버릴 듯 아웅다웅하면서도) 협력하는 모녀 역할을 맡는다. 온갖 고통과 기쁨이 교차하는 그들의 관계를 절묘하게 묘사한 기지 넘치는 각본을 탄생시킨 브룩스와 래리 맥머피에게 보너스 점수를 줄 만하다. ━ 사운드 오브 뮤직(1966) 오래도록 사랑 받는 이 뮤지컬 영화는 마리아(빛을 발하는 줄리 앤드류스 분)가 수녀원에서 오스트리아의 언덕으로 파견돼 노래 부르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좇는다. 폰 트랩 대령의 7남매 가정교사로 일하게 된 그녀는 훌륭한 인품으로 아이들의 경애를 받고 애인도 얻는다. 그뿐만 아니라 나치까지 따돌린다! 그해 대표적으로 ‘닥터 지바고’ 등 다른 작품상 후보들을 물리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마이 페어 레이디(1965) 놀랍게도 이 뮤지컬을 각색한 작품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그리고 또 다른 고집 센 여성 이야기 ‘메리 포핀스’)를 물리치고 1965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인간개조 스토리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뒤로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용감한 엘리자와 그녀의 멋들어진 모자에 대한 찬사의 아이콘이 됐다. ━ 지지(1959) 일견 이 영화는 모리스 슈발리에가 연기하는 파리의 사교계 한량 오노레 라샤이유의 이야기인 듯하다. 그러나 (특히 그 시대에) 여자들을 앞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태어날 때부터 요조숙녀로 교육 받은 말괄량이 소녀 지지 역을 맡은 레슬리 카론은 뻔뻔하고 당당하다. 그리고 ‘샴페인을 발명한 밤’ 같은 주당들의 노래를 부른다. ━ 이브의 모든 것(1951) 무명 배우가 교묘하게 계략을 동원해 1인자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앤 백스터가 브로드웨이 스타 마고 채닝(베티 데이비스)의 환심을 사 결국에는 그녀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배우 지망생 이브 해링턴을 연기한다. 1950년대 여성 테마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등장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게다가 경쟁작들이 ‘신부의 아버지’ ‘선셋 대로’ 같은 쟁쟁한 작품들이었기에 작품상 수상은 값진 승리였다. ━ 미니버 부인(1943) 1943년에는 유성영화가 등장한 지 20년도 채 안 됐지만 무려 10편이나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오손 웰즈의 ‘위대한 앰버슨가’와 브로드웨이의 인기작 ‘사랑의 별장’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그해 치열한 경쟁의 승자는 전시의 영화 ‘미니버 부인’이었다. 그리어 가슨이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가정 전선’의 변화와 씨름하는 내용이다. 다소 구시대적이지만 이 영화가 왜 가정에 남은 관객들 사이에 큰 울림을 줬는지 이해할 만하다. 그들도 전쟁으로 인한 혼란이나 불안과 씨름하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 레베카(1940) 알프레드 히치코크 감독의 덜 알려진 히트작 중 하나인 레베카는 고등학교 시절 거의 누구나 읽었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한 예비신부가 결혼할 남자의 요트 사고로 숨진 전처 레베카의 망령에 시달리는 이야기다. 조안 폰테인이 주인공을 맡은 이 심리 드라마는 관객 몰입도가 대단히 높아 남자 주인공 로렌스 올리비에의 존재감까지 희미해진다. ━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1935년 아카데미상의 5개 주요 부문 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 1930년대 유행했던 경쾌한 템포의 희극영화)’ 장르의 탄생에 기여했다. 또한 최초의 여성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영화는 아빠의 손아귀를 벗어나 모험을 시작하는 반항적인 상속녀 엘리(클로데트 콜베르)의 뒤를 좇는다. 그녀는 결국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신문기자 피터 워니(클라크 게이블)를 만난다. 다행히 카프라 감독이 상황을 바로잡는다.- 폴라 메자 뉴스위크 기자

2016.03.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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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악룡+어부+미인이 빚은 판타지

전문가 칼럼

떵팅삐뤄춘(洞庭碧螺春, 이하 삐뤄춘)은 제주도 면적 만한 거대한 호수 타이후(太湖)에 우뚝 솟은 떵팅산에서 생산되는 명품 녹차다. 롱징차(龍井茶)와 더불어 중국 10대 명차의 반열에 올라있는 저장성 최고의 특산물로 방문객의 구매희망 품목 1순위다. 떵팅산은 섬으로 이루어진 서산(西山)과 수면 아래로 이어져 반도 끝에 있는 동산(東山)으로 나뉘어져 있다. 최고 품질의 삐뤄춘 생산기지인 떵팅산을 중심으로 타이후 주변에서 삐뤄춘이 출품되기에 타이후삐뤄춘이라고도 한다. 삐뤄춘은 맛도 훌륭하지만 차향이 강렬하고 신선해 예로부터 ‘혁살인향(사람 잡는 향기)’이란 애칭이 있다. 청나라 제4대 황제 캉시띠(康熙帝)가 1699년 타이후 유람선상에서 이 차를 마셔보고 감탄했다. 그래서 그자리에서 황실공차로 지정하며 푸른 소라모양의 찻잎에 걸맞은 삐뤄춘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 청나라 4대 황제 캉시띠가 이름 하사 이뿐만 아니다. 삐뤄춘에 대한 민간 전설은 애틋한 사랑이 담겨있기에 원전을 살려 필자의 시각으로 재구성해봤다. 용과 사람이 어울려 살던 아주 먼 옛날 타이후의 동쪽 떵팅산에 사는 젊은 어부, 아씨양은 조업을 마치고 피곤이 몰려왔지만 집과 반대 방향인 서쪽 떵팅산이 있는 섬을 향해 열심히 노를 저어갔다. 노을이 깃드는 산 어디선가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표정이 밝아지며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아씨양의 배 앞에는 아씨양보다 먼저 온 배들이 줄지어있다. 산자락에서 어여쁜 소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산 아래에서도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소녀의 노래에 빠져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마을의 귀염둥이로 살아가는 삐뤄(碧螺)는 떵팅산에 사는 모든 이의 시름과 피로를 노래로 달래주는 아이돌이었다. 아씨양은 삐뤄의 노래를 멀리서라도 들어야 살맛이 났다. 고기도 잘 잡고 무예도 뛰어났지만 삐뤄에게 다가갈 용기는 없었다.겨울이 끝날 무렵 서쪽 떵팅산에 흉악한 악룡(惡龍)이 나타나 마을의 평화를 위협했다. 산 위에 커다란 사당을 지어 매일 향을 피우고 달마다 공양을 바치고 해마다 어린 남녀를 몸종으로 바치라고 했다. 더구나 삐뤄를 부인으로 삼겠다고 요구했다. 마을사람들은 삐뤄를 숨기고 악룡의 요구를 거절했다. 화가 난 악룡은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낮에 조업하던 어선을 모두 전복시켰다. 밤에는 광풍을 몰고 와 농작물을 망치고 나무와 집을 파괴했다. 이 소식을 접한 아씨양은 마을과 삐뤄를 구하러 분연히 나섰다.달이 뜨지 않은 칠흑 같은 밤을 틈타 아씨양은 서쪽 떵팅산으로 건너갔다. 악룡은 나무를 뿌리 채 뽑아 집을 부수고 있었다. 마음대로 횡포를 부리며 마을을 유린하는 악룡의 등에 번개처럼 올라탄 아씨양은 용의 급소인 역린(逆鱗)을 향해 작살을 날렸다. 느닷없는 공격에 놀란 악룡이 하늘로 날아 오르려했지만 역린 사이를 뚫고 깊숙이 들어온 작살 때문에 허리를 곧게 펼 수 없어 땅에 떨어져 뒹굴며 발버둥을 쳤다. 악룡 위에 올라탔던 아씨양도 산등성이에 내동댕이쳐졌다. 악룡은 시뻘건 입을 벌려 독니를 드러내며 아씨양을 공격했다. 아씨양은 물러서지 않고 작살로 용의 급소를 노렸다. 7일 밤낮 동안 악룡과 아씨양의 사생결단이 산과 호수에서 벌어졌다. 무협과 판타지에서 보여주는 모든 대결이 펼쳐졌다. 악룡은 발톱을 세울 힘도 없게 되자 독버섯 같은 피를 뿜어내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렸다. 피투성이가 된 아씨양도 산등성이에서 피를 흘리며 혼절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뿌리 채 뽑혀 죽은 나무와 부러진 가지들이 아씨양이 흘린 피에 닿자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 곡우 전에 차를 따서 마셔 마을사람들은 악룡을 물리친 아씨양을 마을로 데려와 상처를 치료해 줬다. 삐뤄도 매일 찾아와 간병을 했다. 의식을 겨우 차린 아씨양은 삐뤄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조차 없었다. 아씨양을 위해 각지에서 답지한 좋다는 약을 모두 써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침상에 누워 겨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삐뤄의 노래를 들으러 노를 저어 매일 왔었다”는 아씨양의 얘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삐뤄는 그날부터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아씨양을 돌보며 틈틈이 노래를 불러줬다. 아씨양은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었지만 기력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고민 끝에 삐뤄가 직접 선약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약초를 찾아 산을 헤매던 삐뤄는 아씨양이 악룡과 싸우며 피를 흘린 곳에서 자그마한 어린 차나무를 발견했다. 아직은 추운 경칩 때인데도 잎을 틔우려는 새싹을 위해 삐뤄는 매일 새벽 일찍 산에 올라 입김을 따뜻하게 불어줬다. 속삭이듯 노래를 해주며 냉해를 입지 말고 잘 자라기를 기원했다. 삐뤄의 정성을 먹고 튼실하게 발아한 어린찻잎을 곡우 전에 입술로 채취해 아씨양에게 가져왔다. 차를 끓이는 향기만으로도 벌써 눈이 맑아진 아씨양은 차를 마시자 몸에 활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혈색이 좋아졌다. 비로소 남녀는 손을 마주 잡게 됐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아씨양을 보고 삐뤄는 감격했다.삐뤄는 수시로 산에 올라 찻잎을 입술로 물어와 차를 만들어 아씨양이 마시게 했다. 하루가 다르게 아씨양의 몸은 좋아졌다. 그러나 삐뤄는 나날이 수척해졌다. 아씨양이 침상을 벗어나 기운을 완전히 회복하는 날, 삐뤄는 숨을 거뒀다. 삐뤄가 키운 찻잎은 삐뤄의 원기가 농축된 결정체였다. 아씨양과 마을사람들은 차나무 옆에 삐뤄를 묻어줬다. 아씨양은 삐뤄의 무덤 아래 움막을 짓고 평생 동안 묘를 지키며 살았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마을 사람들이 삐뤄의 산소를 찾아왔다. 차나무가 무성한 산속에 아씨양이 있었다. 자신들은 세월 따라 늙었는데 아씨양은 젊은 청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불로장생차로 여긴 마을 사람들은 매년 봄 곡우 전에 차를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 차의 이름이 ‘삐뤄춘’이다.차에 얽힌 전설과 역사는 재가공되어 다양한 산업에 영감을 주고 있다. 21세기의 차는 단순한 농작물을 넘어 문화와 관광산업의 주요 테마로 성장하고 있다. 팩트를 무시한 전설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닌 성인을 위한 영화와 교육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요즘 각광받는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에서도 좋은 판타지로 활용되고 있다. 명차에 숨어있는 이야기 발굴과 스토리 탄생은 그 자체가 돈이 되는 광맥이 될 수 있다.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에 출연했다.

2015.11.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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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점쟁이 킬러

산업 일반

쿠라파티 나가라주는 인도 최고의 부자 점성술사 중 1명이다. 운도 상당히 따라준다. 몇 달 전 오토바이를 탄 총잡이 2명이 그의 집 근처에 멈춰서더니 그의 배에 세 발의 총탄을 쐈다. 나가라주는 곧바로 병원에 실려가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살인혐의로 구속되는 처지가 됐다.나가라주의 친척 3명(역시 부자 점성술사들)에게는 그런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지난해 마을 밖 간선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도요타 미니밴이 꽁무니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 뒤 가속 페달을 밟아 그들의 쉐보레를 앞지르더니 길가에 차를 세우게 했다. 살인청부업자 3명이 차에서 뛰쳐나와 차에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운전자만 살고 나머지는 모두 숨졌다.희생자들은 언젠가는 그런 일이 닥치리라 예감했을 터. 점성술사라서가 아니다. 몇 달 전 나가라주를 비롯한 간담 가문이 두르가 라오의 참혹한 살해를 공모했다고 알려졌다. 라이벌인 부탐 일가의 카리스마 넘치는 후손이었다. 현지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두르가 가문이 복수를 다짐했다. 별도의 보고서에서 경찰은 나가라주의 살해기도와 그의 친척 살인 사건 용의자로 부탐 일가 사람들을 지목한다. 나가라주는 아직 재판을 받지 않았으며 현지 검사에 따르면 그는 적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고 주장한다.인도에서 성공한 점쟁이로 살아가기가 갑자기 위험해졌다. 근년 들어 점성술사와 구루(guru, 힌두교 지도자)가 종종 인도 부패 정치인들의 배후 실력자 겸 중재자로 떠올랐다. 또한 그 직업에서의 폭력이 갈수록 일상화됐다. 2012년 경찰로 위장한 암살자들이 한 점성술사를 쏴 죽였다. 인도 북부 우타르 브라데시주의 유력 정치인들에게 조언하던 점성가였다. 그의 피살은 지방선거와 건설계약을 둘러싼 라이벌 막후실력자(kingmakers)와의 다툼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경찰은 밝혔다.이웃 하랴나주의 한 구루는 강간·살인·사기를 비롯한 갖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고도 여러 해 동안 멀쩡히 활개치고 다녔다고 반대파들은 비난한다. 그의 추종자들이 몰아주는 표에 권력자들의 정치 생명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그 힌두 지도자는 적들이 혐의를 날조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엔 또 다른 구루가 자신의 은거지에서 무려 1만5000명의 추종자로 인의 장벽을 쳤다. 살인 음모 혐의로 그를 체포하러 온 경찰을 막기 위해서였다. 자기 그룹과 또 다른 종파 간의 충돌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도 오랫동안 지역 정치인들의 후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부탐과 간담 일가도 주 단위 정치인들에게 작은 특혜를 청할 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피나카디미 마을에서 벌어진 두 가문의 유혈사태는 돈과 영향력을 둘러싼 전쟁의 결과인 듯하다고 경찰은 말한다. 언론과 공식 인터뷰가 허용되지 않는다며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 한 경찰 정보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두르가와 라이벌 나가라주가 지역 정치 체제의 주도권을 놓고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 불가촉천민 점성술사들 피나카디미는 전형적인 인도 남부 마을처럼 보인다. 암살자들이 두르가의 사체를 유기한 수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물소 몇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그 건너편에 보이는 마을 중심가에 좁은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인접한 들판에선 수확한 옥수수 더미를 햇볕에 널어 말리고 있다. 그러나 피나카디미는 여느 마을과 다르다. ‘점성술사 마을’로 알려졌다. 마을의 500여 가구 중 다수가 점성술과 점술을 생업으로 삼는다. 전국 각지 심지어 외국에서도 점을 보러 찾아온다. 마을에 도착한 지 얼마 안돼 말쑥한 콧수염에 호리호리한 체구의 한 남자가 말을 걸며 즉석에서 점을 봐주겠다고 제안한다. “큰 돈을 벌겠소. 부인 둘에 자식 다섯을 두겠구먼.” (셋 다 틀렸다. 하지만 이제 겨우 44세니까.)인도 마을에서 흔히 눈에 띄는 소박한 오두막집 대신 여러 층짜리 주택이 많이 들어섰다. 점성술사들이 새로 부를 쌓았다는 증거다. 부탐 일가의 번쩍거리는 핑크색 주택들과 간담 가문의 화려한 청색 주택에는 위성 접시 안테나가 달려 있고 고가의 에나멜 타일로 장식됐다. 두 가문 모두 뭄바이·뉴델리와 기타 인도 대도시에 상당한 규모의 점술 사업을 구축했다. 호주·일본·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의 고객을 만나러 수시로 해외 출장을 나간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국제적인 사업가인 락시미 미탈 아르셀로미탈 회장뿐 아니라 지역 고위 정치인과 영화 스타들이 그들의 고객이다.두 가문의 부상은 카스트(신분제도)의 장벽을 일거에 뛰어넘은 눈부신 성과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수세기 동안 점성술은 카스트 제도 중 가장 높은 브라만(성직자) 계급의 영역이었다. 베다스로 알려진 고대 힌두교의 성전에 뿌리를 둔 점성술은 성직자의 전담 분야였다. 중매 그리고 결혼 길일의 택일에 이용됐다. 이른바 ‘구제 점성술(remedial astrology)’은 더 수익성 높은 파생 사업분야다(점성술사는 장신구와 조언을 동시에 판매한다). 행성의 불길한 정렬을 막기 위한 구제수단으로 보석·장신구·의식을 판매하는 식이다. 그런 서비스는 최하층 계급에는 제공되지 않았다. 브라민 사제들이 그들을 불가촉천민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탐과 간담 가문이 속한 장갈루 계급(순례 승려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점괘·의식·구제를 받으러 그들을 찾는 고객층이 엄청났다.하지만 고객 기반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그 순례 점술가에게 큰 돈벌이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하위 계급이 사회·정치적으로 막강한 세력으로 떠올랐다. 예전의 불가촉천민과 막노동 계급을 합치면 인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 세력을 바탕으로 지역 정당들이 부상했다. 6개 주에서 인도의 양대 정당인 국민회의당과 인도인민당(Bharatiya Janata Party)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 같은 지각변동으로 수세기에 걸친 편견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이권을 중심으로 뭉친 후원 시스템을 낳았다. 하위 계층 지도자들이 관급계약과 정부 일자리를 뿌리며 지지표를 얻었기 때문이다.부탐과 간담 가문 간의 싸움은 이권다툼에서 비롯된다고 경찰은 말한다. 두 가문은 점성술 사업과 부동산 투기에서 이미 앙숙이었다. 장기간의 분쟁에도 휘말렸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빗나간 로맨스의 결과였다. 2006년 나가라주의 조카딸이 전통 중매결혼을 거부하고 두르가의 조카와 함께 달아났다. 열띤 협상 끝에 양가는 두 젊은 남녀의 결혼을 마지 못해 허락했다. 그러나 그 스토리는 ‘그 뒤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지 않는다. ━ ‘온몸이 피범벅이었다’ 결혼 후 얼마 안 가 두 사람이 갈라섰다. 파경으로 인해 양가의 적개심이 더 깊어졌다. 정치 권력의 분점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두 가문은 지역 주의회의 라이벌 선거 진영에 막대한 정치자금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암살이 시작되기 전 지역 마을 의회 의장 선거에서 경쟁 후보들을 후원했다. 정부 관급 공사의 주요 공급루트다. “두르가의 인기가 높아 간담 가문이 질투했다”고 미망인 티루파탐마가 말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항상 너그럽게 대했고 모든 공동체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도움과 조언을 구했다.”경찰의 설명은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마을 의회 의장 선거에서 후원하던 후보를 버리고 다른 후보를 물심양면으로 밀어준 듯하다고 현지 경찰관이 말했다. 그런 변심도 피살의 한 원인이었을지 모른다고 경찰은 판단한다.현재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티루파탐마를 거대한 방갈로의 베란다에서 만났다. 자주색 꽃 무늬가 수 놓인 연녹색 사리(인도의 전통 여성 의상)를 걸치고 양 손목에는 10여개의 적색과 금색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2명의 무장경찰관 사이에 선 그녀는 스마트폰에 담긴 남편 사진들을 보여줬다. 인도 남부의 영화 스타처럼 곱슬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미남이었다. 어떤 사진에선 검정색 조종사 선글라스를 끼고 몸에 달라붙는 셔츠 차림으로 카메라를 향해 대담하게 걸어온다. 마이클 잭슨의 이름이 새겨진 또 다른 사진에선 그 가수와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남편이 피살되던 날 밤을 설명하는 티루파탐마의 목소리가 갈라지고 눈꺼풀이 떨린다(경찰에 따르면 최소 4명 이상이 그를 16회 이상 찔렀다). 두르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과 1개와 차파티 빵(일종의 무효모빵) 2개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산책하러 나갔다. 티루파탐마가 설거지를 하 때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 왔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발코니로 나갔다. “두르가가 공격당했다”고 마을 사람이 고함쳤다. 두르가의 동생이 그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고 티루파탐마가 말했다. 동생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왔다. “형이 살해당했다고 말하더니 바닥에 쓰러졌다.”나가라주의 1차 공판은 오는 8월로 예정돼 있다. 그때 보석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 사법시스템의 재판진행이 부지하세월이기 때문에 재판이 수십 년을 끌지도 모른다. 티루파탐마로선 당장이라도 결말을 짓고 싶은 심정이다.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남편을 죽인 자들이 제거될 때까지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JASON OVERDORF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2015.09.0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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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은 무조건 나쁘다?

산업 일반

‘세기의 재판’을 기억하는가? 1994년 6월 백인 여배우 니콜 브라운과 애인 로널드 골드먼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저택에서 피투성이 시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전 미식축구 스타로 브라운의 전 남편인 O J 심슨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과학수사 결과는 그의 범행임을 시사했다. 피 묻은 장갑, 혈흔, 머리카락, 카펫 섬유 등 법의학적 증거가 숱하게 확보됐다. 그런데도 검찰은 배심원단이 그의 유죄 평결을 내리도록 설득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배심원들이 과학수사 기법과 법의학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심슨은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그 유명한 재판이 끝난 지 5년 뒤인 2000년 TV 범죄 드라마 시리즈 ‘CSI 과학수사대(CSI: Crime Scene Investigation)’가 처음 방영됐다. 시청자는 처음으로 범죄현장에 쳐진 경찰의 노란색 테이프를 넘어가 법의학과 과학수사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매회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먼저 시신 발견되고, 그 다음 수사팀이 증거를 수집·분석하고 증인을 심문한 뒤 범인을 체포하는 형식이었다.이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자 속편 시리즈가 두 가지로 만들어졌다. 2002년 ‘CSI 마이애미’, 2004년엔 ‘CSI 뉴욕’이 시작됐다. 2007년이 되자 CSI 시리즈가 하나의 문화현상(cultural phenomenon)으로 자리 잡았다. 시청률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을 뿐 아니라 일반대중이 과학 수사에 사용되는 용어와 법의학 지식까지 갖추게 됐다.2010년 원래 시리즈의 시청률이 계속 떨어지고 속편 시리즈들이 종영되자 CSI 제작진은 미개척지였던 ‘에듀테인먼트’ 영역으로 진출하고 시청률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발상을 했다. 그 결과물이 ‘CSI 사이버(CSI: Cyber)’다. 디지털 시대정신이 반영된 이 새 시리즈는 지난 3월 4일 CBS 방송에서 첫선을 보였다.‘CSI 사이버’는 사이버심리학자 애버리 라이언(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패트리샤 아켓이 맡았다)이 이끄는 FBI 사이버범죄 수사팀의 활동을 다룬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완전한 익명 영역인 ‘다크넷(darknet)’의 언저리에서 활동한다(다크넷은 신뢰하는 사용자들 간 파일 공유를 위한 폐쇄형 사설 네트워크로 표준 프로토콜과 포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IP 주소가 공적으로 공유가 안 되는 익명성이 보장돼 기관이나 정부의 간섭을 쉽게 피할 수 있다). 이 시리즈의 비공식 슬로건에 따르면 그들은 ‘생각에서 시작되고 온라인으로 이뤄지지만 현실세계에서 결과가 나타나는’ 범죄를 해결한다. CSI 시리즈 크리에이터 겸 수석 프로듀서 앤서니 자이커는 “CSI 팬이라면 편안하게 느낄 정도로 익숙한 CSI 특성이 그대로 들어 있는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또 10년 이상 CSI 시리즈 제작을 총괄해온 파멜라 비시는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매일 사용하는 이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CSI 시리즈가 그 문제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청자가 이 드라마를 시청하며 스스로 공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팩스에서 컴퓨터, 그리고 송수신 신호까지 어떤 영역이든 범죄의 가능성은 끝이 없다.”그러나 그전까지 CSI 드라마가 제공한 교육이 유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 드라마의 전성기에 전문가들은 한가지 불길한 추세를 발견했다. 극중에서 과학수사가 과대포장되면서 배심원들이 법의학적 증거를 지나치게 중시하게 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른바 ‘CSI 효과’다. 과학자들은 극중에서 많은 사람을 감옥으로 보낸 ‘이로 깨문 자국 분석’ 같은 법의학적 기법을 ‘쓰레기 과학’이라고 비판했다.새로운 시리즈 ‘CSI 사이버’의 경우도 그와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할지 모른다. 우선 이 드라마에서 사이버범죄자와 피해자 둘 다를 분석하는 사이버심리학자 라이언은 상당히 비현실적인 팀을 이끈다. 그중 한 명이 해커 브로디 넬슨(래퍼 겸 배우인 섀드 모스가 연기한다)이다. 그는 증권거래소를 해킹해 5억 달러를 빼돌리려다 체포된 뒤 FBI의 사이버 수사를 돕든지 감옥에 가든지 선택을 강요 받아 팀원이 됐다.그처럼 개심한 범죄자가 또 있다. 수사팀에서 소셜미디어와 사이버추세 전문가로 일하는 레이븐 라미레즈(헤일리 키요코)다. 그와 달리 언제나 정부를 위해 일해온 ‘화이트 해커’(컴퓨터와 온라인의 보안 취약점을 연구해 해킹을 방어하는 전문가) 대니얼 크루미츠(찰리 쿤츠)도 팀원이다.그런 설정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법집행 기관은 범죄를 저지른 해커를 공개적으로 고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이 극중에서 하는 일도 현실과 동떨어진다. 사실 해킹은 아주 따분한 일이다. 오랜 시간(며칠 또는 몇 주)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프로그램 코드를 뚫어지게 쳐다봐야 한다. 해킹을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CSI 사이버’에선 양성 코드는 녹색, 악성 코드는 붉은색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팀은 즉시 컴퓨터 시스템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다.이 드라마에서 군인 출신으로 범죄자를 직접 뒤쫓는 FBI 요원 일라이자 문도를 연기하는 제임스 반 더 비크는 “50분 동안 4명이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은 결코 재미있는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감초 역할을 한다.” 이 드라마의 다른 단점은 정부의 편견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극중인물 라이언은 실제 사이버심리학자인 메리 아이큰을 모델로 한다(아이큰은 이 드라마의 자문역을 맡고 있다). 미국 정부만이 아니라 인터폴, 유로폴에서도 일한 아이큰은 요즘 다크넷에 숨어 있는 범죄자가 첨단 디지털 수단을 어떻게 악용하는지 잘 안다. 그러나 법집행 기관과 긴밀한 관계에 있어 극중에서 범죄자 묘사에 편향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큰은 이렇게 항변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법집행 기관에 가서 ‘CSI 사이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는데 그들은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멋진 플랫폼’이라고 말했다.”그들이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다. 자신들의 일을 미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수사관이 영장도 없이 디지털 수색을 실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지만 아이큰은 극중에선 FBI 요원이 “용의자를 대상으로 디지털 감시를 하려면 언제나 영장을 발부 받는다”고 말했다.또 수사기관이 언제나 ‘좋은 편’이라는 극중 설정은 제작진이 정부의 불법행위를 폭로하는 문제를 다룰 의사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현실에선 여러 수사기관이 교묘한 방법으로 불법적인 감시를 자행한다는 사실이 자주 폭로된다. 자이커는 “하지만 우리는 중립성을 지킬 뿐 드라마를 통해 정치적 선언을 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항변했다.그러나 그런 중립성 주장은 정부를 지지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 드라마의 다른 자문역 제임스 아킬리나도 정부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 디지털 위험 관리·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 스트로즈 프리드버그에서 일하는 그는 정부 기관을 포함해 다양한 조직에서 의뢰 받은 디지털 수사를 지휘한다. 또 9·11 테러사태 직후에는 FBI 긴급작전센터의 법무팀을 이끌었다.섀드 모스는 해커 브로디 넬슨 역할을 준비하면서 “실제 해커의 자문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해커에게 자문을 받았다면 정부의 이익에 반해 활동하는 세력이 반드시 나쁜 편은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정부의 은밀한 도감청 행위를 폭로한 전 국가안보국(NSA) 분석가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민을 위해 큰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법집행 기관에 편향된 자문역들은 사이버범죄자 묘사, 범죄 구성요건 구축, 사이버범죄 수사 방식 등을 지도한다. 대중에게 전달되는 이런 메시지는 불가피하게 우리의 인터넷 이해에 영향을 미친다.예를 들어 극중인물들은 ‘다크웹’을 사악한 곳으로 말하면서도 그게 실제로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진 않는다. 드라마의 초점이 그곳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맞춰져 시청자는 다크웹이 무조건 나쁘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다크웹에서 흔히 사용되는 브라우저 ‘토르(Tor)’는 미 해군이 만들었다. 다크넷 활동이 전부 나쁘며 그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은 중대한 위협 인물이라고 시사하는 것은 ‘정부는 무조건 좋은 편’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다.지난해 9월 애플과 구글이 운영체제를 자동으로 암호화하는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자 법집행 기관들은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그렇게 되면 기기 소유자의 비밀번호 없이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백도어(backdoor, 시스템 설계자가 시스템에서 만들어 놓은 보안이 제거된 비밀 통로)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정부기관이 사실상 장님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범죄와 싸우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처럼 그런 선언도 정부 활동을 보호하려는 연막인 셈이다.예를 들어 정부기관들이 은밀한 감시에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약점을 찾고 있으며 그 결과를 제조사에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널리 보도됐다. 그들이 사이버 활동을 훔쳐보려는 욕구를 국민의 사이버 보안과 사생활 보호보다 우선시한다는 얘기다. 시민자유 보호와 인터넷 보안, 정부의 법집행 능력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으려는 논의와 논란이 뜨거워지는 상황에서 ‘CSI 사이버’가 해킹과 사이버범죄를 편향된 시각으로 그려내면 정부만 유리해질 수 있다.얼마 전 악명 높은 다크넷 마약 시장 ‘실크로드’를 운영한 혐의로 구속된 로스 울브리히트가 배심원의 유죄 평결을 받았다. 일각에선 FBI가 그를 체포하기 위해 영장 없이 비공개 인터넷 브라우저에 침투하는 등 미심쩍은 수사 기법을 사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그 재판이 시작되자 검사 측이 배심원단의 기술적 지식 격차를 이용할 것이 분명했다. 모두진술에서 검사 측은 ‘실크로드’를 “인터넷의 어둡고 은밀한 부분”으로 설명했다. 반면 변호인 측은 ‘실크로드’가 정부의 관할권 밖에서 상품을 사고 파는 ‘합법적인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울브리히트는 ‘실크로드’가 정부의 규제와 감시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자유롭고 열린 시장을 만들려는 자신의 시도였다고 거듭 주장했다. 마약 거래, 돈세탁, 컴퓨터 해킹 등 7가지 혐의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그는 최소한 징역 30년을 선고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CSI 사이버’에서 FBI 요원 일라이자 문도를 연기하는 제임스 반 더 비크는 “15년이나 20년 뒤엔 무엇이 악성코드인지 모두가 알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알리는 팝업은 절대 클릭하지 않을 것”이라며 낙관론을 폈다. 그러나 이 드라마 때문에 NSA가 민간인의 개인정보를 은밀히 캐내기가 더 쉬워진다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 걸까?- 번역 이원기

2015.03.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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