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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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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는 국가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 기술 패권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코노 인터뷰]

산업 일반

“저는 이 자리에 면접을 보러 온 게 아닙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이 자리를 나가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겁니다. 저는 결혼을 했고, 처음으로 아이를 낳았고, 앞으로 육아가 걱정됩니다. 하지만 저의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승진의 걸림돌이라면 제가 이 회사를 먼저 버리겠습니다.”상업고등학교 출신의 연구보조원이 회사 내에서 대학 졸업자 처우를 받는 승진 시험에서 필기는 매번 붙었는데,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다. 회사 입장에서도 그럴만했다. 당시 고졸 출신의 여사원은 대부분 3년 이상을 버티지 못했고, 결혼하면 그만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처럼 결혼하고 출산 하루 전까지 일하는 고졸 사원은 없었다. 심지어 대졸자 대상인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매번 신청해 회사는 그에게 “자격이 안된다”고 했고, 그는 회사를 설득해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는 악바리 근성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갔지만, 대졸 사원 대접을 받는 승진 문턱에서 번번이 물을 먹었다. 그가 택한 것은 ‘자신이 죽는 것’이다. “회사의 정책이나 불합리한 점이 있으면 내가 죽겠다고 다짐하고 그 불합리에 대해 저항을 한다”면서 “내가 죽겠다는 각오가 됐을 때 그 저항의 힘이 생긴다”며 웃었다. 그의 말대로 승진 면접에서 ‘내가 회사를 먼저 버리겠다’라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선례를 만들었다. 고졸 출신의 반도체 엔지니어 보조사원이 처음으로 대졸자 대우를 받는 직급으로 승진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회사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삼성전자 역사에서 상업고등학교 출신의 보조사무원으로 입사해 28년 만에 샐러리맨의 꽃이라 불리는 임원에 승진해 고졸 신화를 남겼다. 지금은 반도체와 혁신기술 전문 국회의원이자 한국의희망이라는 초미니 정당의 대표가 됐다. 주인공은 양향자 대표다. “삼성에 있을 때는 뼛속까지 삼성맨인 줄 알았다”며 “지금은 국회에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있어 뼛속까지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반도체 엔지니어 보조사무원에서 반도체 전문 국회의원 되다양 대표를 본지 신년 기획 인터뷰이로 선정한 것은 2024년 한국 경제가 살기 위한 조건인 반도체 산업이 살아남는 방법을 듣기 위해서다. 21대 국회 300명 의원 중 반도체 전문가는 그가 유일하다. 국회에서 그만큼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한 입법 활동과 강연 등의 외부 활동을 하는 의원은 드물다. 심지어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만든 ‘반도체특위위원장’ 자리를 야당 의원인 그에게 맡아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2023년 6월 창당한 한국의희망 정책자료집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정책은 ‘과학기술 퍼스트무버 대한민국’이다. ‘과학기술이 곧 산업이고, 경제이고, 안보인 시대다’라고 선포했다. Q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가 한국의 미래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가 뭔가. “이제는 기술 패권 시대다. 그 중심에 반도체가 있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데이터 통신·모빌리티· 로봇·드론·커머스·뱅킹 등 일상에 필요한 기술에 모두 필요하다. 일반 사람들은 반도체의 중요성을 잘 모르지만, 나는 반도체를 전기라고 말하고 싶다. 정전이 되어봐야 전기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반도체 패권을 빼앗기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게 된다.”Q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나 되나. “2022년 기준 한국 전체 수출의 19% 정도가 반도체 수출이 차지하고 있다. 2022년 국내 반도체 총수출액은 1292억 달러로 이중 메모리반도체가 전체 반도체 수출액의 57.46%(738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 유일하게 글로벌 밸류 체인(Global Value Chain) 공급망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반도체, 특히 메모리 반도체 덕분이다. 1983년 삼성전자가 도쿄 선언을 시작으로 반도체 사업을 시작해 1993년에 1등으로 올라섰다. 30년 넘게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패권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석유가 나오는 나라가 패권 국가였지만, 지금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국가가 패권 국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먼저 방문한 국가가 한국이고, 가장 먼저 간 곳이 삼성전자 평택 공장이다.”Q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패권 분쟁을 펼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위기라는 분석이 많이 나오는데. “미국은 혁신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압도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을 제재하고 있지만, 중국의 무기는 바로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TSMC다. 중국이 대만을 차지하면 미국은 위험하다. 미국 입장에서 TSMC를 대체할 수 있는 솔루션은 삼성전자 밖에 없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7 대 1로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TSMC를 대체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뿐이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 다변화를 하려면 한국의 파운드리 분야 육성을 환영할 수밖에 없다. 위기는 곧 기회다. 한국은 미중 갈등 속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Q 2023년 한국 반도체 산업이 큰 부진을 겪었고, 한국 경제가 많이 어려웠다. “지난해 반도체 산업의 불황 원인은 ‘재고와의 전쟁’ 때문이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글로벌 경제가 침체하고, 대형 데이터 센터가 축소됐다. 전자상거래 침체 등으로 반도체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메모리반도체나 시스템반도체 구분 없이 반도체 산업계 전반이 침체기를 겪은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업황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세계 반도체 매출이 증가세로 돌아섰고, 2024년 올해 세계 반도체 매출은 13.1%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인공지능(AI)나 자율주행차, 전자제품 등의 고도화로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산업 혹한기에도 반도체 기술개발(R&D)에 2022년 대비 2.2%를 늘려 설비투자를 오히려 강화했는데, 이 결단이 마중물이 되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다.” 미·중·일 반도체 지원법 마련해 글로벌 기업 유치 경쟁양 대표의 말대로 반도체 산업은 ‘치킨게임’의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25년 만에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1위인 삼성전자가 감산에 돌입한 것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격차 확대를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치킨게임이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반도체 기업 사이의 합종연횡이 시작됐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NAND Flash Memory) 세계 2위인 키옥시아와 4위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논의가 시작됐다. 중국의 추격도 무섭다. 눈여겨볼 국가는 일본이다. 한때 반도체 강국이었지만 2012년 디램 기업 엘피다 메모리가 파산한 이후 글로벌 경쟁 대열에서 이탈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계기로 TSMC 공장을 일본 규슈에 유치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일본 공장에 TSMC는 약 9조원을 투자했다.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 램리서치는 구마모토에 기술 지원 거점을 마련했고, 글로벌 노광 장비 기업인 네덜란드의 ASML도 홋카이도기술 지원 거점을 확장했다. 반도체 관련 국내외 기업이 규슈를 중심으로 몰려들었고, 이를 통해 고용창출 효과가 커지고 있다. 일본이 TSMC 공장 유치로 얻을 효과는 약 6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반도체 강국 탈환에 사활을 거는 일본이 TSMC 유치에 성공한 이유는 22조8000억원이 넘는 지원예산 덕분이다. 첨단 반도체 생산공장 유치에 4조2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 공장을 유치할 수 있었다. 또한 핵심 첨단 기술 개발에 4조7000억원, 반도체 시설 보조금 5조8000억원, 미일 차세대 반도체 연구센터에 3조3000억원 등 일본은 반도체 기반 역량을 근거로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양 대표는 “장기적인 투자가 집중되면 일본은 한국에 위협적인 역량을 갖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비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에 불과하다. 일본과 중국보다도 낮은 상황이다. 미국과 대만, 중국 등이 강력한 반도체산업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240억 달러 규모로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를 하고 있고, 반도체 보조금으로 520억 달러를 지원한다. 대만도 R&D 세액공제율을 높이고, 반도체 설비를 구매하면 5% 추가 공제에 나선다. 중국은 반도체 기업에 최대 10년 동안 소득세를 면제하고 있다.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해 각 국가들이 대규모 반도체 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양 대표는 이런 글로벌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규제를 없애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성과도 있다. 2022년 8월 반도체특별법을 발의해 2023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가 된 것이다. 일명 ‘K-칩스법’으로 미국의 ‘반도체칩과 과학법’인 일명 칩스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Q 반도체특별법을 대표 발의하고 국회 통과까지 했는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조세제한특레법 개정안’에 반도체특별법이 포함되어 있는데, 2022년 8월 대표발의를 한 것인데 반도체 시설 준공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규제를 줄이고 세제혜택을 줘서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반도체 설비 투자 세액공제율은 기존에 대기업 6%,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였는데 이를 대기업 25%로 미국 수준으로 높였다. 이렇게 세액공제율을 높인 것은 일본이 TSMC를 유치한 것처럼 글로벌 기업의 한국 투자를 유인하고, 대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K-칩스법 때문에 시설투자액이 56조원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특화단지 조성 단계에서 국가가 지원하고 인허가를 간소화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Q 반도체특별법으로 대기업만 혜택을 입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지금까지 반도체 관련 법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이 워낙 우위에 있었고, 그런 법이 없어도 기업들이 잘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 우선주위로 돌아서면서 한국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 한국 정부도 그런 법안을 만들어 대응을 해줘야 하지만, 전문가들이 정부나 국회에 없었다. 양향자라는 정치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법이다. 산업계에서 ‘기적의 법’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과거 법 하나 만들려면 정치적인 싸움이 되곤 했지만, 전문가가 여야를 떠나서 기술이 한국의 미래라는 것을 설득하니까 이런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기업 특혜를 우려하는 이들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반도체 산업은 수많은 중견중소기업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노동의 가치도 이제는 기술로 넘어갔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묶여 있는 정치는 이제 사라질 때가 됐다.”K-칩스법 시즌 2 준비…인프라 지원이 중심양 대표가 반도체특별법을 대표발의한 이유는 빠르게 재편되는 국제 정세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이 각종 세제 지원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양 대표는 “조세 특례다 뭐다, 인프라 다 깔아준다, 보조금 준다 등으로 미국 테일서 시에는 삼성 도로가 깔릴 정도다. 그만큼 각국이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데, 한국이 그렇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라며 “한국 기업의 엑소더스(대규모 탈출)가 이어질 것이다. 시장이 해외에 있고, 지원도 받을 수 있는데 공장을 해외에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K-칩스법의 핵심은 세제 지원이다. 반도체 관련 R&D나 시설 등의 투자에 대해 세제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2022년 8월 발의 후 2023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때까지 많은 진통을 겪었다고 한다. 세제 지원의 폭을 두고 8%로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면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게 된 것. 양 대표는 여야가 합의한 반쪽짜리 법에 대해 “차리라 법을 통과시키지 마라”라고 할 정도. 다행히도 정부가 양 대표가 발의한 반도체특별법에 힘을 실어주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 양 대표는 “K-칩스법 시즌 1이 끝났고, 이제는 두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이라며 “이 법에서 부족했던 것을 보완해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준비한 K-칩스법 시즌2의 주요 내용은 ▲첨단산업 특화단지 인프라 국가 직접 조성 ▲첨단산업 특화단지 조성·운영 지원 확대 ▲첨단산업 특화단지 인프라 관할 지자체 교부금 우선 배분 ▲첨단산업 특화단지 용적률 향상 등의 인프라 지원을 골자로 하고 있다. 양 대표가 한국 한국 반도체 산업의 부흥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력 양성이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의대 쏠림’ 현상이다. 유능한 인재들이 이공계 대신 의대로 밀려드는 것에 대해 “부모들이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어떤 부모가 자식을 대량 해고 사태가 있는 산업으로 보내겠나”라며 “내가 ‘히든 히어로스’ 책을 낸 이유는 혁신 기술을 만드는 이들을 영웅으로 대접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항공우주연구원에 입사하면 연봉이 9000만원이지만, 의사가 되어서 개원을 하면 3억원을 받는다. 한국 사회가 이런 엔지니어들을 영웅으로 만들어줘야 의대 쏠림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공계 전문 인력이 많아져야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약점인 시스템반도체 분야도 살아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오래전부터 시스템반도체에 도전했지만 인력이 부족했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웠던 것”이라며 “TSMC가 파운드리 분야를 선점한 것은 30년이라는 시간과 인력이 풍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양 대표는 ‘기술 패권’을 강조했다. 국제 정세는 이제 정치가 아닌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1월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에 동료 의원 10여 명과 함께 간다고 한다. 기술 혁신의 현장을 의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과학기술에는 이념이 없고, 정치의 본령은 이제 과학 기술에 있다. 나는 우리 정치가 이뤄야 할 시대정신을 과학기술 패권국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의원 1인 정당 생활이 어렵지 않나?”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다. “소망과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이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그럴 여유가 없다. 과학기술 패권국가라는 희망이 있는데 어려움이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나.”

2024.01.01 08:00

9분 소요
커지는 韓 존재감, 거세지는 美‧中 압박…‘칩4’ 동맹 뭐기에

산업 일반

우리기업이 반도체 산업에서 존재감을 드러낼수록 미국과 중국의 압박도 강해지고 있다.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동맹 ‘칩4(chip4)’에 한국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견제에 나섰다. ‘칩4 동맹’이란 한국과 미국·일본·대만이 반도체 생산 전 과정에서 협력하는 체제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에서, 일본은 소재·장비 분야에서 각각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메모리반도체 분야를 장악한 한국, 비메모리반도체 강국 대만과 공동 전선을 짜겠다는 것이다. 이 동맹은 사실상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을 고립시키려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 회의 개최 계획을 한국 정부에 전달하고 8월까지 참석 여부를 알려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칩4 동맹을 현실화하기 위한 실무회의에 한국 참여를 독촉한 셈이다. 중국은 한국의 움직임에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최근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한국은 미국의 위협에 맞서 'NO'(노)라고 말할 용기를 내야 한다”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칩4 동맹에 참여하려는 한국의 움직임에 불편한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런 미국 측 행태는 세계 경제가 서로 깊이 융합된 상황에 거스르는 것으로 민심을 얻지 못하며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도 비난했다. 문제는 미‧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어느 한쪽으로 방향을 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한 일본‧대만이 칩4 동맹에 우호적인 분위기인 것과는 반대 상황이다. 미‧중 양국이 한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만큼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조사기관 옴디아(Omdi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 D램 시장 점유율은 42.7%, SK하이닉스는 27.1%로 나타났다. 우리 기업이 세계 D램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3위는 미국 마이크론으로 점유율은 24.8%로 조사됐다. 지난 25일에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te-All-Around ‘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미터, 1㎚=10억분의 1m)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제품 출하식을 개최하기도 했다. 업계 1위인 대만 TSMC보다 ‘3나노’ 고지를 선점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칩4 동맹에 한국을 포함하지 않으면 중국 견제가 어려워지고, 중국은 한국을 우방으로 만들지 않으면 고립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제시하며 한국 기업 끌어안기에 나섰다. 바이든 행정부는 520억 달러(약 68조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지원 내용을 포함한 ‘혁신경쟁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의회를 압박하는 중이다. 다만 이 법의 수혜를 보려면 중국에 대한 투자를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이(홍콩 포함) 국내 반도체 수출의 60%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입장에선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 신중론 택한 한국 “공급망 안정 위한 협의 진행” 우리 정부도 칩4 동맹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25일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칩4 참여와 관련해 “공급망 교란이 가져오는 여파가 크기 때문에 공급망 안정을 위해 어떤 게 최선인지를 다양하게 검토하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 정부가 8월까지 답변 시한을 설정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당국자는 “(답변 시한이) 한 달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 것도 특별히 긍정 시인을 하기 어렵다”며 “우리가 필요하면 우리의 생각에 따라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내용을 만들어 협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의 마찰 우려에 대해 “지금까지도 중국이 굉장히 우선해 한국에 협조를 많이 진행해왔기 때문에 불확실한 공급망 불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지난 14일 진행한 국장급 한·중 경제협력 종합점검회의에서도 중국 쪽의 공급망 교란 가능성에 대해서는 채널을 수시로 열고 지원해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병희 기자 leoybh@edaily.co.kr

2022.07.26 17:00

3분 소요
[단독] 서울대, 반도체 계약학과 2년 만에 재추진...기업 아닌 협회와 손잡는다

산업 일반

서울대가 2년 만에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을 재추진하고 있다. 서울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대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손잡고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을 추진 중이다. 정원은 50~80명 내외로 한국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비메모리반도체(시스템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한다. 서울대는 2019년에도 삼성전자와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해 시스템반도체학과를 개설하려 했다. 하지만 ‘서울대가 특정 기업의 인력양성소냐’는 학내 반대 여론에 부딪혀 분발된 바 있다. 특정 분야, 특정 기업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국립대인 서울대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서울대 공대 측은 이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번에는 특정 기업이 아닌 협회와 손잡는 방식을 택했다. 기업을 위한 인재양성이 아니라,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위한 인재양성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뿐 아니라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 패키징기업 등 다양한 기업이 회원사로 속해있다. 서울대가 반도체 계약학과 재추진에 나서는 이유는 반도체 산업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산업생태계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 또한 대학의 역할이라는 산업현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그동안 산업 현장에 투입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호소해왔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1~2020년 연평균 반도체학 석‧박사 졸업생은 60명, 전자공학과는 1000명이다. 현장 투입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석·박사 인력은 30% 이상 모자란다. 수도권 정원 제한에 가로막혀 대만이나 미국처럼 한 산업군의 정원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특히 반도체를 설계하고 개발할 시스템반도체 인재난은 한국 반도체 산업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이런 한국 반도체 시장을 두고 "좋은 식재료와 음식을 만들 요리사는 있지만 좋은 레시피가 없는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반도체를 생산할 시설과 공정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설계 등 원천기술이 없다는 지적이다. ━ "2년 전과 글로벌 반도체 경쟁 상황 다르다" 서울대의 반도체 계약학과 추진에는 아직 큰 산이 남아있다. 공과대학에서 다른 단과대에 동의를 구해야 하고 학교 차원의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서울대는 학부 과정에 계약학과를 개설한 전례가 없다. 2년 전에도 특정 기업과 특정 분야를 위한 인재 양성은 서울대의 교육철학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단과대의 반대에 부딪혔다. 서울대는 당시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 대신 특정 기업과 연계가 없는 연합 전공 형태로 지난해 반도체 관련 전공인 ‘인공지능형 시스템 반도체 연합전공’을 개설했다. 연합전공은 2개 이상의 전공 과정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전공 형태로, 재학생 중 3학기 이상 등록하고 36학점 이상 이수한 재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연합전공은 새로 전공을 신설하는 것보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이수학점이 적어 안정적인 인력 수급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2년 전과 비교해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더 격화됐다. 정부에서도 “2019년과 현재의 반도체 경쟁의 심각성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전공자 161명 중 반도체만 전공하는 학생은 30~40명뿐”이라며 “특히 대기업뿐 아니라 팹리스 기업들이 인재난을 호소하고 있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성장을 위해서는 반도체산업만을 위한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2019년 이후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양성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서울대는 특정 기업이 아니라 생태계의 지원을 받아 인재를 양성하고 나라에 기여하기 위해 계약학과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1.12.16 16:03

3분 소요
시장 점유율 1%, 인재난·자금난까지 겪는 팹리스 성장하려면….

산업 일반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 아니다. 메모리반도체는 세계 1위지만,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비메모리반도체(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존재감은 미미하다. 삼성전자가 막대한 시설투자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지만, 반도체 설계와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시장은 걸음마 수준이다. 반도체가 ‘경제안보’로 떠오를 만큼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고 있지만, 글로벌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1%에 불과하다. 인력 부족과 자금 부족으로 팹리스 기업 수는 2009년의 약 200개 사에서 70개 사로 대폭 줄었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성장을 위한 상생포럼 '테크 비즈 콘서트2021'이 지난 29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렸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대 시스템반도체산업진흥센터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팹리스 기업들과 투자자,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한국형 팹리스 성공모형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중소형 기업이 대다수인 한국 팹리스 기업들에 가장 절실한 건 ‘인재’와 ‘자금’이었다. ━ 한국 팹리스 점유율 1%, 인재 부족 심각 첫 번째 연설자로 나선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팹리스 산업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국내 주요 팹리스 기업 15개 중 5년 간 영업이익 적자를 경험하지 않은 곳은 단 3개뿐이다. 그는 전문인력 부족과 해외 경쟁기업 대비 열세한 규모, 자금력 부족을 한국 팹리스의 약점으로 꼽았다. 김 연구위원은 “글로벌 팹리스 상위 10위 기업은 모두 미국과 대만 기업”이라며 “글로벌 매출 상위 팹리스들은 수요산업의 성장과 함께 지속적인 M&A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며 승자독식의 과점 시장을 이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금력 부족도 창업 팹리스가 줄어들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창업 팹리스가 제품 개발을 위해 제품 설계에 필요한 설계 자산(IP), 반도체 설계자동화(EDA) 도구 라이선스 비용 등 몇백 억에 달하는 초기 비용이 필요하지만 규모가 영세하고 자금력이 부족해 제품 개발을 위한 초기 비용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꼬집었다. 다만, 발굴되지 않은 한국 팹리스 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정부의 지원도 늘고 있어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며 “AI, 자율주행 등 다양한 수요산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기능의 반도체 수요가 확대되면 소규모 팹리스의 시장 진입 기회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연사로 나선 이은세 541벤처스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성공방정식을 토대로 한국 팹리스 생태계를 위한 인사이트를 나눴다. 특히 기술 기업과 벤처투자회사의 협력모델, 대학의 역할 강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페어차일드 출신들이 세운 기업을 중심으로 반도체와 반도체 수요기업들이 지역 내에 집적화됐고 그 지역에 있는 스탠퍼드대를 통해 우수한 인재 유입 및 네트워크가 형성됐다”며 “여기에 기술기업에 특화된 자금원인 벤처캐피털이 모여있어 실리콘밸리의 성공모형이 만들어졌다”고 발표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대학을 거점으로 하는 고성장기업의 이합집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도 강남이나 판교 등 IT 클러스터를 만들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새로운 인재의 이동을 통한 기업의 탄생이나 인재의 집적이 힘들다”며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인재를 배출해내는 대학을 거점으로 클러스터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재와 기업이 한 지역에 집적해야 벤처캐피털의 자금을 유인하기 좋다는 이유다. ━ 최기영 "시스템 잘하려면 AI 잘해야" 서울대 시스템반도체 산업진흥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인공지능 반도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최 전 장관은 “시스템반도체를 잘하려면 인공지능 반도체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의 통계를 빌어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인공지능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2030년 30%가 넘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전 장관은 “PC 시대에 인텔이, 모바일 시대에 ARM이 있었다면 아직 인공지능 시대의 절대강자는 없다”며 “인공지능 반도체에는 5000만개의 파라미터를 처리할 새로운 프로세싱 인 메모리(PIM)가 필요한 만큼 우리가 우위에 있는 메모리 기반 신개념 반도체 개발을 통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팹리스에 전문성과 속도,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전 장관은 “팹리스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응용까지 아우르는 솔루션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수요기업의 새로운 요구를 신속하게 분석하고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 키노트에서는 최기창 서울대 시스템반도체 산업진흥센터 교수가 팹리스 생태계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대의 성과를 공유했다. 서울대는 시스템반도체 산업 발전을 선도하기 위해 지난 10월 시스템반도체산업진흥센터를 신설했다. 이 센터에서는 팹리스 역량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인재양성, 정책연구, 멘토링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 교수는 "우리 팹리스 기업들은 인력 수급 이슈, 금융 이슈, 수요시장 연결 이슈, 파운드리 생산차질 등 크게 4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서울대는 팹리스 기업들이 초기 제품 설계를 위해 고가의 IP를 구매하는 비용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ARM IP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고 시놉시스사와 케이던스사의 EDA(반도체 설계자동화)툴을 18개사에 무상 지원했다. 향후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를 위해 묶음발주 사업과 공용 IP 개발과 확산을 주도할 IP 뱅크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1.12.0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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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독점’ 시대 올까 ] ‘빅테크기업=국가경쟁력’ 시대, IT공룡 독점 강화

테크

대체 플랫폼 없고, 규제해도 새로운 독점… 항공·조선·해운도 사실상 정부가 독점 승인 "34개 회사로 분할하라.”1911년 미국 대법원은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오일을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석유 생산·가공·판매·운송 시장의 90%를 장악한 스탠더드오일이 가격 결정력을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이 판결 이유다. 1890년 미국에 도입된 최초의 반독점법 ‘셔먼법’을 처음 적용한 사례다.스탠더드오일은 이후 모빌오일·콘티넨털오일·아모코 등으로 쪼개졌고, 엑슨모빌을 제외한 대부분 회사들은 20세기 후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에도 셔먼법을 통해 아메리칸토바코(1911년)·NBC(1942년)·AT&T(1984년) 등의 회사가 강제 분할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PC 운영체제(OS)를 독점하고 있던 윈도를 통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다가 1998년 제소된 바 있다.‘모든 작용에는 항상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있다’는 ‘뉴턴의 제3법칙’처럼 기업의 독점력은 법적 규제, 경쟁자의 등장, 소비자 저항 등 그에 상응하는 반발력을 낳는다. 특히 성장 산업은 선도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이익이 빠르게 커지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옭아매기도 한다. 이 때문에 기업이 독점력을 확보했더라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독점 이익’을 거두는 사례는 많지 않다.그러나 페이스북·애플·MS·아마존·넷플릭스·구글(FAMANG) 등 오늘날 모든 산업의 지배자로 부상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얘기가 다르다. 쇼핑·물류·운송·광고·방송·금융 등 수많은 산업을 집어삼키고 있음에도 독점력 행사에 대한 저항이 어려운 실정이다. ICT 기술의 진화와 사용자 확대, 국가간 정보통신(IT) 플랫폼 경쟁, 기술력 격차에 따른 경쟁 부재, 대체 불가능성 등 때문이다.구글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구글이 내년 1월부터 플레이스토어에 입점한 업체를 상대로 ‘애플리케이션 수수료 30%·인앱결제 강제’ 정책을 추진키로 해서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11월 18일 성명을 통해 “구글이 통행세를 강행하면 국내 모바일 콘텐트 매출이 3조원 이상 감소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개발사나 창작자들이 콘텐트 제작비·마케팅비·에이전시비 등을 부담하는 상황에서 구글의 수수료 인상과 인앱결제 강제는 횡포에 가깝다는 것이다. ━ 구글 독점에 세계 주요국 제재 움직임 이에 국회는 ‘구글방지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앱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지적과 구글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혼선을 빚고 있다. 반발이 심해지자 구글은 시행을 내년 9월로 늦추기로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추진 중인 정책이라 시간벌기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구글이 마음껏 가격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이유는 안드로이드의 독점사업자이기 때문이다. 현재 스마트폰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구글을 대체할 수 있는 OS는 사실상 전무해 개발사가 앱 콘텐트를 유통하기 위해선 반드시 구글플레이에 등록해야 한다. 삼성·SK텔레콤·LG유플러스같은 스마트폰 제조사 및 통신사들도 앱 스토어를 운영하지만 영향력은 미미하다. 구글은 스마트폰 제조사에 안드로이드를 먼저 설치하도록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는 등 배타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힘쓰고 있다.구글이 운영하는 유튜브 역시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YPP)’에 포함하지 않은 채널 동영상에도 광고를 게재할 수 있도록 서비스 약관을 개정하며 비판을 받고 있다. 광고 수익을 올리는 한편, 프리미엄 요금제 사용자를 늘리기 위한 포석이다. 정종채 법무법인 정박 변호사는 “미국 등 주요국 당국이 구글의 반독점 행위를 조사하기 시작한 만큼 공정거래위원회도 즉각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실제 미국 법무부도 10월 20일(현지시간) 구글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행위를 했다며 미 연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구글이 자사 OS를 설치한 스마트폰에 자사 앱을 미리 탑재해 타사를 방해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모바일 OS와 검색에 기반을 둔 온라인 플랫폼은 현재 대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스탯카운터에 따르면 모바일 OS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애플의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양분하고 있다. 파이어폭스 OS를 커스터마이징한 KaiOS나 삼성OS·심비안 등의 시장점유율은 소수점 단위에 머물고 있다. ━ 독점 데이터·경험이 국가 산업 경쟁력 글로벌 검색엔진 순위 역시 스태티스타 조사에서 구글이 70.83%로 압도적 1위였고, 빙(Bing) 12.61%, 바이두 11.83%, 야후 2.3%, 얀덱스 1.41% 등 순이었다. 검색광고 시장 역시 구글을 대체하긴 어려운 실정이다.호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광고 서비스를 구글 대신 ‘앱넥서스’로 전환할 것을 고려했지만, 구글 마켓 플레이스의 광고 수요가 60%에 달해 결국 포기했다. 미국의 ‘넥스타 미디어그룹’도 지난해 웹 사이트 광고에 구글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실험을 했더니, 영상 등 콘텐트 노출이 크게 감소해 막대한 손실을 입은 바 있다. 구글이 독주하며 미국 오픈 X와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즈 등 많은 광고 대행사가 온라인 서비스를 포기하기도 했다.이에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구글과 더블클릭 합병 해제를 제안했다. 워런 의원은 독과점법 전문 변호사다. 구글은 2008년 광고 기술 회사 더블클릭을 인수함으로써 기술력을 확보하는 한편 시장 경쟁을 없앴다.그러나 두 회사의 합병을 해제하더라도 검색광고 시장 2~3위 페이스북과 아마존닷컴이 과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엔 독점이 한 산업군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기업 해체 등의 조치가 통했지만, IT 공룡들은 경제·산업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어 규제가 어려운 실정이다. 합병 해제가 IT 공룡의 독점 문제를 해소하는 처방이 되지 않는 셈이다.특히 검색광고는 물론, e커머스·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OTT) 등 전 영역에서 독보적 자리에 오른 1위 기업과 2~3위 기업 간에는 데이터와 서비스 수준 등에 큰 격차가 있다. 이에 독점을 막는다고 경쟁이 촉진되거나 서비스 품질이 오르기 어려우며, 되레 글로벌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예컨대 세계 최대의 상업용 드론 제조사 중국 DJI의 경우 농업용 씨앗·농약을 효율적으로 살포하는 소프트웨어에 강점이 있다. 이는 중국에서 4만대 이상 드론의 비행 데이터를 취합한 결과다. 현재 경쟁사들은 DJI만큼의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집되는 정보량의 차이로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상황이다.결과적으로 소수 기업의 독점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며, 자유주의 확대에 따른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져 이를 막기 어려울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일종의 ‘국가대표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크며, 미국 정부의 독과점 차단 의지도 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유주의 경제권 확대와 IT의 진화가 글로벌 사업 전개를 뒷받침했다”며 “부의 원천이 데이터와 지적 재산으로 이동했으며, 제조업도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성능이 중요해졌다. 소수의 가진 자가 더 강해지는 세계가 찾아왔다”고 지적했다.미국이 중국의 ‘틱톡’을 규제하고 인수에 나선 것도 경쟁 플랫폼의 등장을 차단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영국 등은 구글·페이스북 등 IT 플랫폼 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며 규제에 나섰지만, 이들 기업은 새로 부과된 세금만큼 수수료율을 인상하며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습이다. 산업 독과점화가 뉴노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셈이다.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독점력을 가진 기업이 가진 데이터나 특허를 중소기업들에게 공개해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카다 요스케 히도츠바시대학 교수는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데이터와 지적 재산이 특정 기업에 지나치게 집중되면 다양한 혁신의 탄생과 도전자의 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산업 독점화 현상은 비단 소프트웨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조업 역시 기술 경쟁력이 벌어지고 특정 제품에의 의존도가 커지고 있어 독점력이 강해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세계적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3두 체제가 공고해지고 있고, 비메모리반도체 파운드리의 경우 대만 TSMC의 시장점유율이 날로 커지고 있다. ━ 제조업도 정부 공인 독점 기업 늘어나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 산업망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시장에 신규 진출하는 사업자는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4~5년간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항공·해운·조선·철강 등 중후장대 산업 역시 경쟁력 강화 및 고용유지를 위한 인위적 인수합병(M&A)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공인한 일종의 ‘합법적 독점’인 셈이다. 1998년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했듯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등이 인수 승인의 주된 명분이다.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논의 등이 대표적 사례다. 국내 굴삭기 시장 점유율 40%에 달하는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입찰에 업계 2위 현대건설기계의 모기업 현대중공업도 뛰어들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 무산되면 아시아나 항공에 긴급자금 투입이 무산되고 연내 파산할 수 있다”며 “항공산업 전체가 붕괴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2020.11.2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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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 이종 경쟁 격화]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인텔은 메모리에 집중

산업 일반

인텔, 한국서 차세대 메모리 선전포고… 삼성전자, NPU·GPU에 투자 집중키로 “메모리·스토리지 계층 구조의 최첨단 혁신을 추진할 것이다.” 롭 크룩 인텔 수석 부사장은 9월 26일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메모리&스토리지 데이 2019’에서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옵테인DCPM’(이하 옵테인)을 발표하며 이렇게 밝혔다. 옵테인은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장점을 합친 제품으로 전력이 차단돼도 데이터가 날아가지 않고, 가격도 저렴하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한국에서 신제품을 내놓으며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반도체 시장에 커다란 변화의 파도가 일고 있다. 25년간 비메모리 반도체 왕좌를 지킨 인텔이 메모리반도체 분야에 뛰어들며 시장을 흔들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1위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수탁생산)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5세대(5G) 이동통신 도입, 자율주행차 기술 발전 등으로 메모리·비메모리 간의 격벽이 얇아진 결과다. 다른 생태계에서 살던 반도체 공룡 간 혈전이 불가피해졌다. ━ 메모리·비메모리 경계 무의미, 모듈·시스템화 메모리반도체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비메모리반도체 회사는 인텔이다. 서버 스토리지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로 넘어가며 시작한 2015년께부터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넘보기 시작했다. 3D 크로스포인트 기술에 기반을 둔 ‘옵테인SSD’를 내놓는 등 메모리반도체 판매에 힘을 쏟고 있다. 다만 인텔의 올 1분기 낸드 시장점유율은 6%에 그치는 등 아직 성과는 미미하다. 그러나 인텔이 이번에 출시한 옵테인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제품이란 평가를 받는다. D램보다는 속도가 느리지만, 데이터 휘발성이 낮아 SSD처럼 저장할 수 있어서다. 이미 미국 오라클과 중국 바이두 등이 옵테인을 도입하기로 했다. 인텔은 그간 D램 기술 부족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 진출을 꺼려왔다. 인텔은 1970년대 세계 D램 등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이끌었지만 1980년대 일본 NEC·히타치·후지츠에 밀려 결국 1985년 철수했다. 2015년 옵테인 SSD를 내놓기 전까지 31년간 D램 시장과는 벽을 쌓고 지냈다. 그러다 일종의 P램(상변화 메모리)인 옵테인을 앞세워 시장 전환을 노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옵테인이 SSD와 D램 사이의 데이터 병목현상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겠지만, 인텔의 메모리반도체 시장 확대의 발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실제로 인텔은 옵테인이 자사 중앙처리장치(CPU)와의 호환성·안전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컴퓨팅은 SSD에 기록된 데이터를 D램이 읽어 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전달하고, 여기서 계산된 데이터는 다시 D램을 거쳐 SSD에 저장된다.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 간 호환성이 높으면 적은 전력으로도 많은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인텔은 세계 CPU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고객사 요구에 따른 패키지 형태의 제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경우도 속도나 전력 손실 등에서 하나의 칩세트를 장착하는 것이 바람직해 하나로 구성된 제품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며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의 경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현대자동차·네이버·넷마블 등은 인텔 옵테인을 도입하기로 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는 옵테인을 자율주행·커넥티드카에, 네이버는 인텔 2세대 제온 프로세서와 함께 클라우드 경쟁력 강화에 쓸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에 생산을 맡기고 있어 양산 경쟁도 걸어볼 만한 입장이다. TSMC는 삼성전자와 더불어 글로벌 파운더리 중 극자외선(EUV)을 이용한 6나노 공정을 도입한 유이한 회사다.삼성전자는 그간 상대적으로 약했던 시스템반도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해 2030년 시스템반도체 분야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 1위 목표를 불과 10년 뒤로 잡은 것은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이 급변하고 있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메모리반도체 시장을 공략 중인 인텔은 비메모리반도체에서는 AMD에도 쫓기는 입장이다. AMD의 PC용 CPU인 라이젠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인텔 CPU를 앞서기 시작했다. 서버용 CPU 역시 인텔의 불안정한 공급을 문제 삼아 AMD나 IBM으로 선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6월 AMD와 손잡고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AMD의 초저전력·고성능 그래픽 설계자산(IP)을 활용하기로 했다.더불어 삼성전자는 지난 4일 CPU 코어 개발에서 손을 떼는 대신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부품으로 꼽히는 신경망처리장치(N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자원을 더 집중하기로 했다. CPU 코어는 저전력 모바일 프로세서 설계 강자인 영국 암(ARM)과 손잡을 것으로 보인다. NPU는 수천개 병렬 컴퓨팅이 필요한 딥러닝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프로세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클라우드와 AI 등 신기술 등장으로 서버·반도체 시장이 크게 변했다”며 “오라클은 잊힌 하드웨어 기술을 꺼내 클라우드 서비스에 나섰고, 인텔은 크로스포인트(메모리반도체의 일종)의 실패와 AMD와의 경쟁으로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발전으로 CPU만으로는 높은 컴퓨팅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세계적으로 인텔과 반인텔 전선이 명확히 그려졌다”며 “비메모리반도체 클러스터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로서는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현재 글로벌 협력사들과 메모리·비메모리반도체 칩셋 모듈화 등 다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서피스 신제품에서 AMD·퀄컴과 손잡기로 했다. ━ 비메모리반도체는 선택 아닌 필수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올 3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을 18.5%로 끌어올린 점도 고무적이다. IBM(서버용 CPU)·엔비디아(GPU)·퀄컴(AP) 등을 주요 고객사로 확보했다. 글로벌 연대 체제에서 비메모리반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바탕을 마련한 셈이다. 이주완 연구위원은 “반도체 시장 전체가 하나의 영역으로 바뀌어 이합집산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며 “한국은 국제 표준에서 입김을 행사할 능력과 위상이 있으며 특히 비메모리반도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장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2019.11.0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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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반도체 강화론’ 왜 나왔나] 메모리반도체 한계 덜어줄 ‘쌀 중의 쌀’

산업 일반

미래 활용성 풍부하고 시황 덜 타 유리… 시장 비중도 7대 3으로 더 높아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 1위를 유지하는 한편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 세계 1위, 팹리스(설계전문) 분야 (글로벌)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해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입니다.” 지난 4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의 경기도 화성사업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강조하면서 ‘시스템반도체’의 국가적인 육성 의지를 내비쳤다. 이를 위해 반도체 분야에서 내년부터 2030년까지 1조원을 투입해 차세대 시스템반도체 연구·개발(R&D)에 나서고, 1만7000명의 고급 전문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정부는 밝혔다. 이보다 한 주 앞서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를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와 기업의 의지가 동시에 시스템반도체 쪽으로 모아졌다.배경이 뭘까. 이를 살피려면 메모리반도체와 비(非)메모리반도체의 차이와 국내외 반도체 시장 현황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정보 ‘저장’ 용도로 이용되는 반도체다. D램·S램·V램·롬(ROM)이 대표적이다. 비메모리반도체는 정보 ‘처리’ 목적의 반도체다. 중앙처리장치(CPU)·응용프로세서(AP)·차량용반도체·마이크로프로세서·광개별소자 등이다. 이 가운데 센서로 대표되는 광개별소자를 제외한 모든 비메모리반도체 종류가 시스템반도체다. 흔히 반도체 강국으로 표현되는 한국의 경쟁력은 지금껏 메모리반도체에 집중됐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비메모리반도체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많은 자본을 투입해 미세공정으로 성능을 강화, 대량생산해 수익을 올릴 기댓값이 높은 분야여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분야에서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구사해야 했던 한국으로선 이쪽에 집중하는 편이 승산 있는 선택지로 해석됐고, 실제로도 그랬다.문제는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의존도가, 수출 효자 종목으로서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 독이 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일단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약 30%에 불과하다. 70%가량을 비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고 있다. 30%의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60%가량 점유할 만큼 속된 말로 ‘꽉 잡고 있는’ 한국은, 반면 70%의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선 점유율이 3%에 머물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비메모리반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는 다양한 4차 산업혁명 분야에 적용될 수 있어 성장성이 그만큼 크다”며 “종종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중에서도 ‘쌀 중의 쌀’이라 일컬어질 정도”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사물인터넷·자율주행자동차·로봇·바이오와 같은 전도유망한 차세대 기술에 다양한 형태로 접목될 수 있는 게 시스템반도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2022년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가 30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 메모리는 정보 ‘저장’, 비메모리는 정보 ‘처리’ 이처럼 현재 가치뿐 아니라 잠재력까지 높은 시장을 미국 등 경쟁국들에 고스란히 내준 채 메모리반도체에만 안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최근까지의 기록적인 호황을 뒤로 한 채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것도 ‘시스템반도체 강화론’에 힘을 실어준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수출품인 D램의 경우 올 들어 지난해 대비 국제 거래 가격이 거의 반 토막이 났다.수요 대비 공급이 너무 많아진 탓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D램 재고가 세계적으로 줄지 않으면서 반도체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사이 기업들의 실적도 눈에 띄게 나빠졌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6조233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0.2% 감소했다. 2016년 3분기 이후 10분기 만에 최저 수준이다. 반도체 부문 실적 악화가 치명타였다. 지난해 1분기 14조4700억원가량이던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올 1분기 약 4조1200억원으로 72% 줄었다. SK하이닉스가 기록한 1분기 영업이익 1조3665억원도 전년 동기 대비 68.7% 급감한 수치였다.메모리반도체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내포한 한계점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미국의 인텔은 CPU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압도적 세계 1위를 달리는 기업이다. 그런 인텔은 올 1분기 국내 기업들과 달리 지난해와 엇비슷한 실적으로 선방하면서 2017년 1분기 이후 삼성전자에 2년간 빼앗겼던 반도체 업계 영업이익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인텔의 1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약 4조7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하는 데 그쳤다. 증권가는 삼성전자의 2분기 반도체 영업이익도 인텔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스템반도체의 한층 큰 시장 규모와 무궁무진한 활용성 등이 시황 변동 문제에 따른 리스크를 어느 정도 최소화해주기 때문으로 분석된다.이에 대해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메모리반도체는 표준화한 제품이라 진입장벽이 낮고 공급 변동폭이 크다”며 “시스템반도체는 특화 제품이고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하면 생산이 쉽지 않아 애초부터 (반도체) 시황 변동에 덜 휩싸인다는 장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스템반도체를 제조하는 기업이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보다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수월하다는 분석도 있다. 통상 D램 제조사가 CPU나 AP 제조사에 제품을 납품하기 때문에, 기술 수준 등을 요구하는 쪽은 시스템반도체 제조사일 수밖에 없어서다.인텔은 과거 D램의 원조로 통할 만큼 메모리반도체 사업에도 힘썼지만, 1980년 무렵 이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다. 메모리반도체에 의존했을 때의 한계점과 시스템반도체에 집중했을 때의 강점을 동시에 인식해서였다. 이후 한국은 패스트팔로어로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남은 경쟁 상대들을 누를 수 있었다. 반도체 전문가인 이강원 전 한국에스지티 대표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스템반도체는 값이 싼 메모리반도체보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남들이 메모리반도체 하나를 만들어 2~3달러를 벌 때 인텔은 그 10배를 벌 수 있는 CPU에 집중하기로 했다. 인텔이 메모리반도체에서 철수한 이유다. 메모리반도체는 미세공정 전환을 통한 원가 절감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시스템반도체는 설계가 극히 어려워 그 능력이 제품 성패를 가른다. 메모리반도체가 대규모 투자를 요하는 장치 산업 성격을 갖는 반면에, 시스템반도체는 고도의 기술력과 창의성을 지닌 인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기술 집약적 산업 분야다.” ━ 고도의 기술력·창의성 가진 인력이 성패 좌우 이 같은 배경 속에 정부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시스템반도체 부문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AP와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시스템반도체를 집중 양산하면서 미래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상용 DS투자증권 연구원도 “삼성전자가 투자를 결정한 133조원 중 73조원은 R&D에, 나머지 60조원은 생산설비 구축에 각각 쓰일 예정”이라며 “해외 파운드리 의존도가 낮아지고 국내 팹리스 생태계가 확대되면서 반도체 설계 분야가 전반적으로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아직 국내에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민간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아 팹리스 생태계가 당장은 잘 구축되기 쉽지 않은 점, 일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인 고급 설계 인력을 어떻게 끌어 모을지 불확실하다는 점은 계속해서 지켜봐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2019.05.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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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도 치맛바람 불 것”

산업 일반

세상이 변하면 직업 세계도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선 현재가 아닌 미래 관점을 가져야 한다. 김준성 연세대 직업평론가는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김준성 연세대학교 직업평론가는 25년간 ‘직업’을 연구한 커리어 디자인 분야 전문가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블링크』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신저 『아웃라이어』에서 “한 분야에서 최소한 1만 시간 동안 노력한다면 누구나 최고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김 평론가는 최고 전문가로 손색이 없다.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편 직업 관련 글을 쓰고, 강연하고 책을 저술한다. 그가 내다본 직업의 미래, 미래의 직업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일자리 신자유주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0년을 풍미한 신자유주의의 종언이 회자하는 이때, 일자리 신자유주의라니…. 그가 말한 ‘일자리 신자유주의’의 요지는 “무한 취업 경쟁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곧 직업 시장에도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전문가 수난 시대가 불 보듯 뻔하다”며 “부모나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나 현재 관점이 아니라 미래 관점에서 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1일 만난 김준성 평론가는 정부 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미래 유망 직업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고용 시장, 특히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합니다.“2009년 1월 한 달 사이에 20~30대 일자리 12만 개가 사라졌어요. 1년 전과 비교하면 30만 개 정도 일자리가 없어졌습니다. 2008년 중순 이후부터 상황이 악화되면서 지난 1월에 구직을 포기한 사람만 16만 명까지 늘었어요. 좋지 않은 고용 사정이 축적돼 오다가, 이번 세계 금융위기가 곧바로 20~30대를 덮친 겁니다.”>> 기본적으로 고용은 경기 후행 지표인데, 벌써 이렇게 안 좋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가 큽니다.“세계 패권국가 미국의 위기, 30년 만에 찾아온 자본주의 위기, 10년 만에 돌아온 경기 변동의 복합 불황이 3각파도로 덮쳐오고 있습니다. 통상적인 노동경제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국면에 봉착해 있다고 봅니다. 점점 더 어려워질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고용사정이 풀리려면 족히 3~4년은 걸릴 것으로 봅니다.”>> 어떤 근거에 의해 그렇습니까?“전 세계를 보세요. 우리나라 같은 수출 의존 국가가 먹고 살기 어려운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까? 무역 보호주의가 대두하고 수출 수요는 줄죠. 경기가 회복된다고 고용시장이 바로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용은 경제가 나빠지면 급속히 냉각되고, 좋아져도 서서히 회복되는 성격이 있습니다. 점점 나빠지는 고용의 질도 문제지만 양적으로도 어려운 시기가 오래 지속될 겁니다.”근성과 창조력 발휘할 직업 택해야>> 정부가 일자리 대책을 계속 내놓고 있는데, 평을 해주신다면.“한마디로 임시방편적 정책이죠. 본원적 일자리 창출에 집중해야 하는데, 12개월 행정인턴, 공공근로 같은 것으로 예산을 낭비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일자리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고, 수익 창출 동력이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해요. 성장동력산업 같은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대중은 기다려주지 않고 정치가 역시 당장 가시적인 숫자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재정을 투자해 바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맥락이 되면 안 돼요. 거듭 주장하지만 본원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듯한 일자리 정책은 실패합니다. 일자리 주체는 기업이어야 합니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해 수익구조 기반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불황이 지나면 직업 시장은 어떻게 변화될 것으로 보십니까?“저는 일자리 신자유주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국경선을 넘어 일자리를 무한대로 찾아 경쟁해야 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삼성전자에서 비메모리반도체 분야 일자리가 하나 나오면, 이제는 한국인뿐 아니라 미국사람, 영국사람, 인도사람들과 경쟁해야 할 거예요. 소위 일자리 하나를 두고 만인의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는 거죠. 이력서가 대단히 빠르게 국경선을 넘나들 겁니다. 더 이상 기업도 일자리 애국주의에 사로잡혀 있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그렇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합니까?“상황인식을 똑바로 해야 해요. 예를 들어 아직도 부모들이 의사, 변호사, 판사에 목을 매는데 지금 의사들 사정이 어떻습니까? 1년에 2000여 곳 병원이 폐업하고, 페이닥터 월급이 300만원을 갓 넘는 곳도 많아요. 변호사도 그렇죠. 사무실 유지조차 어려운 변호사 얘기는 이제 뉴스도 아닙니다. 곧 로스쿨 출신 변호사도 쏟아져 나오겠죠. 부모들이 옛날 변호사, 의사에 대한 인식과 현재 상황 간에 괴리를 정확히 봐야 합니다. 지금 좋아 보이는 직업이 나중에 덫이 될 수 있어요. 시대가 변하면 직업 시장에 빅뱅이 일어납니다. 십몇 년 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중견 탤런트가 아들을 프로골퍼로 키우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잘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프로골퍼란 직업이 잘 알려지지도 않던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늘고 골프가 대중화로 가면 골프선수는 유망한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부모는 읽은 겁니다.” 사농공상을 잊어라>> 요즘 매니저 엄마가 유행인데, 직업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겠군요?“학부모들을 상대로 강연하다 보면, 준전문가 수준의 엄청난 질문이 쏟아집니다. 일부 대학생 부모는 직업 설명회나 박람회에 참여하고 정보를 수집해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수준입니다. 아마 머지않아 직업 시장에도 엄마들 치맛바람이 불 거예요. 대학 교수에게 아들딸 학점을 따지는 부모들이 출현하는 마당에, 일자리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 엄마들이 취업 경쟁에 코칭스태프로 뛰게 될 겁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개별적으로 커리어 디자인 컨설팅을 강화해야 합니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에 맞는 직업을 찾아야 합니다. 특히 창조력이 작동하지 않는 직업은 택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김연아, 신지애 선수처럼 근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 사농공상 귀천 의식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세계에는 13만6000가지 직업이 있어요. 그 어떤 것이라도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을 골라 그 분야에서 뿌리를 뽑겠다는 마음만 가지면 됩니다. 대학 갈 필요가 없다면, 과감히 가지 말아야죠.”>> 앞으로 유망한 직업을 꼽아주신다면.“현재 속에 미래가 존재하고, 미래는 곧 현재의 문제입니다. 그린비즈니스 관련, 지식산업, 문화콘텐트 분야는 대단히 시장이 커질 겁니다. 개인적으로 남성용 화장품 전문 연구원, 해양생물 연구원, 신재생 에너지 엔지니어, 의료 기초과학 분야, 인체통신 기술 엔지니어, 뇌과학자, 나노 및 휴먼 로봇 기술자, 맞춤형 신약개발 연구원이 좋아 보입니다. 크루즈선 실내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유망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1인 기업도 긍정적으로 봅니다. 청년 일자리 정책으로 1인 기업은 성공하기 힘들지만 사회생활을 통해 자기 브랜드와 노하우를 쌓은 사람들이 1인 기업 형태로 많이 독립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직업 주목하라 남성 화장품 연구원 …> 남성도 피부를 관리해야 하는 미학 추구형 세상이 된다 태양전지 기술 엔지니어 …> 유가 재상승 국면이 오면서 신재생 에너지 분야 각광받을 것 해양생물 전문연구원 …> 식량위기가 오면서 바다식품 관련 해양생물원 직업 수요 증가 인체통신 기술 엔지니어 …> 입는 컴퓨터 등 인체를 통한 통신 기술 전문가가 각광 의료과학자 …> 의학 치료에 과학이 접목되면서 환자 치료보다 연구하는 의사가 각광 줄기세포 연구원 …> 미국에서 상당히 우대할 것. 한국의 전략산업 중 하나로 성장 전망 나노 분야 엔지니어 …> 나노과학과 전자 정밀 기술 결합 산업 확대 휴먼로봇 연구원 …> 섬세한 감각 지닌 여학생들 진출이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 맞춤형 신약 개발자 …> 질병에 맞춰 치유하는 신약 개발자 직업 수요가 획기적 증가 크루즈선 실내 디자이너 …> 호화 크루즈선 내부 디자이너 희소성 가질 것

2009.04.0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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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특허권 뜨거운 분쟁

산업 일반

불황에 고전하고 있는 음악 ·소프트웨어업계가 저작권 분쟁에 휩싸여 있다. 특히 음악단체 사이에선 이해관계에 따라 내분까지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자 ·전기기업에서는 글로벌 IT기업 간 ‘특허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적재산권을 훔치는 행위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는 요즘은 더욱 극성이다. 기술의 발달로 더욱 쉽게 복제된 저작물은 네트워크를 타고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넘어 급속히 퍼진다. 원본과 똑같은 데다 공짜이기까지 하다. 이런 까닭에 게임, 사무용 소프트웨어, 음악 ·동영상 파일 등의 저작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빠듯한 살림에다 저작권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음악업계와 소프트웨어업계에서 저작권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요즘 국내 음악산업은 음반 매출 부진에다 저작권 문제로 내분까지 겹쳐 어수선하다. 현재 음악업계의 골칫거리는 이동통신회사의 MP3폰과 음악서비스업체인 벅스의 유료화 문제로 대별된다. 먼저 음악업계와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 사이의 저작권 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4월에 SK텔레콤 ·KTF ·휴대전화 제조사는 정부의 중재로 한국음원제작자협회 등과 MP3폰으로 내려받은 음악파일의 재생 가능시간을 72시간으로 제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LG텔레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비교 우위를 가진 LG텔레콤의 MP3폰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가입자 수는 독자 생존이 가능한 600만 명에 이르렀다. 이러자 SK텔레콤과 KTF도 5개월여 만에 입장을 바꿔 무료 음악파일 제한 조치를 잇달아 풀었다. 이런 가운데 LG텔레콤은 한국음원제작자협회 ·연예제작자협회 ·한국음악산업협회 등이 모여 만든 ‘한국 대중음악 비상대책협의회’와 막후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LG텔레콤이 100억원의 음악산업발전기금을 제공하는 대신 예당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미디어레보러토리 등 3개 음반사의 음악 사이트에서 음악파일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형 음반사의 한 임원은 “이동통신회사 가운데 한 곳이라도 먼저 합법(유료화)의 장에 끌어내면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고 협상 배경을 설명했다. 음악파일을 불법(공짜)으로 쓰고 있는 이동통신회사와 지루한 힘겨루기를 매듭짓는 한편, 온라인 음악시장에서 유료화를 앞둔 음악서비스업체 벅스의 아성도 흔들겠다는 포석이다. 사실 음악업계에서 MP3 플레이어업체가 아닌 이동통신회사를 타깃으로 삼은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벨 소리 ·컬러링 등의 서비스로 거래를 터왔고, 얻어낼 것도 많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사실 음원 권리자가 ‘재생기간 제한’이나 ‘불법’이라는 주장을 입증할 방법은 딱히 없다. 저작권법의 해석에 따라 근거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작권을 가진 MP3 파일의 무제한 재생을 허용하는 조항도 없다. 윤성무 한국음원제작자협회 법무실장은 “법은 기술을 따라가게 마련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둘 사이의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 MP3폰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이를 포괄할 법과 제도는 미흡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논란 속에 열린우리당의 윤원호 의원은 저작권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기존 ‘음악 ·비디오 ·게임에 관한 법률’은 큰 틀에서 권리관계만 규정하기 때문에 음원 활용 등의 내용을 담은 ‘음악산업진흥법’ 제정안도 따로 만들었다. 다만 국회 일정상 심의는 국감이 끝난 뒤인 11월에 이뤄질 전망이다. 김종선 보좌관은 “법 제 ·개정이 너무 더디다는 비난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며 “올해 안에 처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여곡절 속에 협상과 법제 정비가 이뤄지고 있지만 불협화음도 거세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9월 14일 지난 5월에 해체된 MP3폰 협의체를 재구성하자고 나섰다. MP3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LG 측과 협상을 벌였던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기금조성 방안이 거론되자 애초 명분과 어긋난다며 한국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 YBM서울음반 등과 함께 비대협을 탈퇴했었다. 지난 8월 31일 벅스와 한국음원제작자협회가 맺은 ‘음악 발전을 위한 협력 조인식’을 놓고도 음악계 내부에서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형 음반사 위주의 한국음악산업협회 측은 “무단 서비스를 하더라도 광고수입의 일정액만을 소급 적용해 지급하면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최악의 선례를 남겼다”고 혹평했다. 또한 “조정안에 반대하며 벅스에 소송으로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윤성무 실장은 “온라인 음악 사이트를 갖고 있는 대형사들이 벅스를 견제하려는 자사 이기주의 발상”이라며 “법원의 조정안이 이미 나온 만큼 다시 소송을 해도 별 소득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트리밍 방식 소프트웨어 사용도 저작권 공방 소프트웨어업계에서는 소프트웨어를 한 곳에 저장해두고 여러 명이 동시에 끌어다 쓸 수 있는 ‘스트리밍’ 방식이 논란이다. 정보통신부 산하 프로그램심의위원회가 이 같은 방식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해석을 내리자 국내외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스트리밍 기술로 계약을 맺은 사용자보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접속해 제품을 사용하면 소프트웨어 제작사가 지닌 고유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어도비시스템스 등 세계적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권익단체인 ‘사무용 소프트웨어협회(BSA)’의 제프 하디 아태지역 의장은 “저작권사의 개발 의욕을 떨어뜨려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서정란 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진흥과 사무관은 “저작권자와 사용자가 직접 만난 적이 없어 오해와 불신이 증폭됐다”며 “지난 9월 9일 서로 만나 엇갈리는 대목 등을 논의했으며 쟁점인 라이선스 계약 문제도 향후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짜로 쓴다는 개념은 아닌데 오해가 있었으며 결국 권리 침해냐 아니냐보다 라이선스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여정호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 부장도 “구체적인 논의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저작권자 측의 입장이 많이 누그러졌다”며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를 창구로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욱 어도비코리아 대표는 “정통부 측이 의도했든 아니든 이번 유권해석은 소비자에게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쓸 수 있다는 쪽으로 비칠 수 있다”며 “이를 둘러싼 명확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적재산권 가운데 특허권도 화두다. 특히 전자?전기겵ㅊ릴茱?IT) 업계를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 간에 ‘특허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시스코시스템스와 중국 화웨이테크놀로지(華爲技術), 구글과 야후, 소니와 코닥 등이 법정에서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우리 기업도 안전지대에 있지 않다. 글로벌 기업의 특허 공세는 한국 경제를 이끌 전자 ·IT 분야에 몰려 있다. 액정표시장치(LCD)와 비메모리반도체가 공세에 노출됐고, 원천기술이 부족한 위성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 무선인터넷 플랫폼 등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은 거액의 로열티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기술의 패러다임이 디지털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시장 선점과 로열티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특허 관련 소송이 크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 ·LG 특허인력 대폭 늘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얼마 전 일본 가전업체인 후나이(鉛井)로부터 비디오카세트리코더(VCR) 특허침해 소송을 당했다. 후나이는 지난 2000년에 제품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VCR의 크기를 줄이는 기술을 국내에 등록했는데, 대우가 이 특허를 무단 도용해 제품을 생산했다는 것. 후나이 측의 로열티 지급 요구가 이어지자 대우 측은 지난 7월 국내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 심판을 제기했다. 삼성전자도 캐나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모사이드테크놀로지로부터 반도체 D램 설계와 관련된 분야 등 9개 특허를 위반했다고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당해 미국 뉴저지 연방법원에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삼보컴퓨터도 일본 PC업체들의 특허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도시바(東芝)는 지난해 6월 자사가 보유한 노트북PC의 전원 절약 관련 특허를 삼보컴퓨터가 침해했다며 미국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국내 IT기업이 역공을 펼치기도 한다. LCD ·반도체 전(前)공정장치 전문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은 9월6일에 세계 최대 LCD 장비 회사인 미국 AKT사의 7세대 플라즈마화학증착장치(PECVD)의 특허 침해 여부를 조사해 달라고 국내 관계 기관에 신청했다. PECVD는 주성 측이 2002년에 독자 개발한 LCD 양산라인의 핵심 장비로 1대당 100억원이 넘는다. 두 회사는 현재 한국과 대만에서 6, 7세대 LCD 장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피 말리는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허 소송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노력도 다양하다. 삼성SDI는 2차 전지 등 3개 신사업 부서에 별도의 특허전담부서를 설치했다. 특히 후지쓰(富士通)와의 PDP분쟁을 계기로 법무실을 법무팀으로, 담당 임원을 팀장으로 부서의 권한을 강화했다. 그 덕에 올해 상반기에 세계 최대 PDP 특허 출원기업으로 변신했다. LG전자도 정보통신 등 3개 사업부 소속 모든 연구소와 연구 부서에 특허 관련 인원을 배치했다. 또 내년 상반기까지 특허 전담인력을 현재보다 50% 이상 늘릴 계획이다. 삼성도 지난 6월에 그룹 차원에서 특허 전담조직을 240여 명 규모로 확대, 라이선스 등과 관련된 국제소송에 대비하고 있다. 원천기술이 부족해 외화내빈 격인 국내 휴대전화 업계도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삼성과 LG 등 대기업은 외국 경쟁사도 아쉬운 특허를 꽤 갖고 있어 ‘크로스 라이선스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 특허 분쟁 전문가도 상당수 확보하고 있다. 반면 중견 휴대전화 업체들은 뾰족한 대책이 없다. 중견 휴대전화 회사의 한 관계자는 “중견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 국내외 연구기관에서 특허를 사들여 크로스 라이선스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다이요 뮤직의 저작권 사업 일본의 대표적 음악 저작권 회사인 ‘다이요(太陽)뮤직’은 일본에서 가장 큰 엔터테인먼트 기업 ‘호리프로(HoriPro)’의 자회사다. 이 회사는 가수가 아닌 작곡가와 계약을 맺어 원곡의 저작권을 확보한다. 기요시 미즈카미(喜由水上) 다이요 뮤직 사장(사진)은 “계약을 맺은 모든 작곡가의 곡을 일본음악저작권협회(JASRAC)에 등록한 후 사용처를 파악해 로열티를 받는다”며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돈이 다이요 뮤직의 매출”이라고 밝혔다. 연간 5억엔의 매출과 5,000만엔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는 다이요 뮤직은 수익을 작곡가와 반반씩 나눈다. 단 작곡가와 작사가가 다른 경우 3등분 한다. 기요시 사장은 저작권료에만 치중하지 않고 음악 프로모션 등으로 부가적 로열티 창출에 힘쓴다는 점에서 다른 저작권 회사와 차별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계약을 맺은 작곡가의 곡을 많이 쓰도록 홍보해 회사는 물론 작곡가에게도 도움을 준다는 것. 다이요 뮤직은 특히 해외 작곡가의 곡도 많이 확보하고 있다. 스티비 원더, 조지 해리슨, 롤링 스톤스 그리고 안드레아 보첼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음악으로는 〈겨울연가> ·

2004.10.14 16:13

7분 소요
전자전쟁 격전의 현장

산업 일반

삼성SDI 천안공장. PDP TV 시연 모습. SKC 천안공장 2차전지 연구실. “전선 넓혀라, 전면전 벌인다” 디스플레이·반도체·2차전지 등 日 압박… 무역적자 증가, 낮은 국산화율은 과제 한국과 일본 간 전자산업의 전선이 확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한 열쇠로 디지털을 전면에 내세운 지 오래다. 한국도 디지털산업에 미래를 걸었다. 그만큼 세계 시장에서 양국이 맞부딪히는 분야도 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승부. 그래서 한·일 전자전은 양국의 미래가 걸린 숙명의 대결로 비춰진다. 주요 전자산업에서 한국의 위상 강화는 일본의 파이를 갉아먹고 들어간 성격이 강하다. 더욱이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황금 시장에서의 연속된 참패가 일본에는 쓰라릴 수밖에 없다. 현재 주요 첨단산업의 양국 좌표만 보자면 일본이 공한증(恐韓症)에 휩싸였다는 분석이 그리 성급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반도체·디스플레이·통신기기 등에서 일본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것은 대기업 위주로 적절한 시기에 과감한 투자를 집행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LG 등의 전자업체들이 일본의 거대 메이커들을 상대로 맞싸우면서 이룬 실적에 대해 선진 각국에서도 찬사를 보내고 있다. 양국 전자업계의 치열한 전투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특히 늘어나는 대일 무역적자가 문제다. 지난해 대일 무역적자는 190억 달러. 이 중 부품·소재 분야만 136억 달러, IT 부문은 45억2,000만 달러가 적자다. 반도체 분야만 놓고 봐도 상황은 심각하다. 한국의 대일 반도체 무역적자폭은 지난해 21억 달러에 이른다. 국내 전자산업의 핵심부품에 대한 대일 의존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한국이 매년 기술무역 부문에서 2조5,0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내는 반면 일본은 지난 2002년에만 6조8,0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핵심 부품의 높은 수출의존도로 부가가치 창출이 미약하다”며 “원천기술과 표준화의 국제기반이 취약해 기술료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일 간 전자산업 기술력 격차도 아직은 적지 않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백색가전 등의 기술은 대등한 수준까지 왔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전반적으로는 일본이 앞서 있다. 일본이 국제경쟁력 상실에 대한 반성과 고민을 마치고 핵심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 확대에 나설 경우 세계 전자산업의 밑그림은 다시 그려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기술력 외에 고급 인적자원 보유·R&D 투자·마케팅 능력·기업 브랜드 등에서도 일본이 한국보다 한수 위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추격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전략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대학 교수는 “10년 후 먹을거리로 150여개 차세대 동력상품을 육성한다는 것 자체가 틀렸다”고 말했다. “줄이고 줄여 정말 잘할 수 있는 신수종 산업을 솎아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는 “일본은 이미 나노·바이오·환경·로봇·디지털기술 분야에 상당한 기술개발 진척이 있고 선진 기술국도 마찬가지”라면서 “정부나 전자업계가 차세대 산업의 키워드를 경쟁이 아닌 선진국과의 협업과 분업으로 방향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CD 이어 PDP도 일본 누른다 디스플레이… OLED까지 앞서면 전 분야 세계 1위 한국과 일본 전자업계의 최대 격전장은 디스플레이 시장이다. 디스플레이 시장은 향후 몇 년간 고성장이 예상되는 핵심산업으로 올해 세계 시장은 지난해보다 2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은 LCD·PDP·유기EL과 디지털TV 완제품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다. LCD만큼은 한국이 확실한 우위다. 2003년 세계 LCD 시장 점유율은 한국이 약 45%, 일본은 20% 남짓이다. 특히 TFT-LCD의 경우 올해 한국이 세계 시장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LCD 시장은 규모 면에서 올해 460억 달러를 넘어서 메모리 반도체(450억 달러) 시장을 추월할 것이 예상되는 ‘노른자위 산업’이다. 한국은 지난해 LCD로만 91억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반면 일본에게 LCD는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00년 37.1%대 51.9%였던 한국과 일본의 LCD 시장점유율은 2001년을 기점으로 역전되면서 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다. 특허분쟁이 한·일 간 통상마찰로 비화된 PDP 분야에서도 한국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디스플레이뱅크 자료에 따르면 PDP 생산능력에서도 올해 한국은 일본을 넘어설 전망이다. 게다가 시간이 가면서 일본과의 격차를 점차 늘려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메릴린치가 전망한 올해 PDP 시장 점유율 예측은 일본의 위기감을 잘 설명해 준다. 자료에 따르면 올해 삼성SDI와 LG전자가 각각 24%, 23%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며 세계 시장 점유율 선두를 다툴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일본은 마츠시타(17%)·FHP(14%)·NEC(10%)·파이오니어(6%)가 한국을 추격하는 양상이 될 전망이다. 결국 지난해 61%를 차지한 일본의 PDP 시장 점유율은 올해 47%로 떨어지고 한국은 지난해 32%에서 올해 48%로 일본을 제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2002년 1억 달러 규모에서 2006년 20억 달러로 고성장이 예상되는 OLED(유기EL)에서도 한일 양국의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OLED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 이 시장은 삼성SDI와 일본 NEC가 SNMD라는 합작사를 지난 2001년 설립, 공동보조를 맞춰왔다. 하지만 지난 2월 삼성SDI가 SNMD의 NEC 지분 49%를 전량 인수한 후 삼성OLED라는 이름으로 독립하면서 본격적인 경쟁 구도로 돌입했다. 삼성SDI 측은 319억원에 NEC 측의 특허기술까지 매입했다. 지난해 OLED 시장에서는 일본 파이오니아가 세계 시장의 40%를 차지했고, 삼성OLED는 33%를 점유했다. 일본이 주도해 왔던 디지털TV 시장에서도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시장 규모가 161억 달러로 2002년 48억 달러 대비 300%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소니·마츠시타·샤프 등 일본 전자메이커들이 주도해 왔다. 하지만 삼성전자·LG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 등이 선전하면서 일본 전자업계가 경고등을 켠 상태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올 1분기에 국내 디지털TV 수출액은 3억6,8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90.7% 증가했다. 정부와 업계는 국외 현지생산량까지 포함하면 세계 시장 점유율이 4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9년 늦었지만 대등한 경쟁 2차전지… 기술력은 상대적으로 미흡 한·일 양국은 2차전지 시장에서도 치열한 ‘전자대전’을 벌이고 있다. 2차전지는 반도체·디스플레이와 함께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핵심전략 산업으로, 한·일 양국 모두 시장 선점을 위해 대규모 자금으로 ‘융단폭격’ 중이다. 2차전지 시장은 2002년 기준 일본이 전 세계의 약 70%를 차지했다. “핵심기술뿐 아니라 공정과 양산기술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일본은 1991년부터 리튬이온계 2차전지를 상용화하면서 시장을 주도했다. 반면 한국은 9년이나 늦게 뛰어들어 기술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하지만 삼성SDI·LG화학 등이 분전하면서 시장을 확대해 가는 추세다. 때문에 2차전지 시장도 한·일 양국만 비교한다면 일본 약세·한국 강세의 그래프가 그려질 전망이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2차전지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보다 9.4%포인트 끌어올린 28.8%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54.5%로 반타작 조금 넘는 데 만족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평화협정 끝내고 시장 뺏기 돌입 반도체… 삼성 등 비메모리 분야 본격 진출 반도체 전선(戰線)도 심상치 않다. 그 동안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일본은 비메모리 반도체라는 식으로 ‘평화협정’을 지켜왔지만 서서히 상대방의 시장에 관심을 가지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각각 5.3%, 1.7%였다. 메모리반도체 분야만 보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전 세계 시장 3분의 1(삼성전자 25%, 하이닉스 8%)을 커버한다. 특히 D램은 한국의 시장 점유율이 45%에 이른다. 일본은 5% 수준이다. 일본은 비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전통적 강국이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비메모리 분야는 80%를 차지한다. 그만큼 일본의 세계 반도체 시장 장악력이 높다. 올해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반도체 공급국 1위에 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업체로는 히타치와 미츠비시가 합작 설립한 르네사스 테크놀로지가 지난해 79억 달러로 삼성전자에 이어 반도체 시장점유율 3위를 차지했다. 도시바는 73억 달러로 세계 5위를 기록했다. 일본 D램 시장의 자존심인 엘피다메모리는 세계 D램 시장에서 4%를 점유하며 선전했다. 카메라폰 시장 경쟁 본격화 휴대폰… 기술력·마케팅력 대등 한국의 수출 효자품목인 휴대전화기 분야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기술력에서는 대등하다는 평가다. 한국정보통신수출진흥센터에 따르면 2003년 휴대폰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10.8%, 5.3%를 차지해 각각 3위와 5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매출액 기준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이 2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일본 휴대폰 업체들은 5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첨단 휴대폰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카메라폰 분야에서 일본은 NEC가 15.5%로 1위를 차지하는 등 모두 7개 업체가 10위권 내에 들었다. 비록 한국의 삼성전자가 3위(11.8%)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LG전자(1.4%)와 팬택앤큐리텔(0.8%)은 각각 14, 15위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일본의 산요·교세라 등이 한국이 절대 우위를 보이고 있는 CDMA 시장에 가세하면서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는 추세다. 용어설명 ■TFT-LCD(초박막액정디스플레이):컴퓨터·TV 등에 널리 쓰이고 있는 평판 디스플레이의 일종. 동작 전압이 낮아 소비 전력이 적고 휴대용으로 쓰일 수 있다. 올해 시장 규모가 30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대화면·박형·고화질의 디지털 디스플레이 소자. 50인치 정도의 대형화면에 선명한 화질을 내기 때문에 디지털TV나 PC용 디스플레이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말 삼성SDI·LG전자·오리온PDP·UPD 등 국내 업체가 세계 시장의 50%가량을 점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유기발광 재료에 전류를 가하면 스스로 빛을 발하는 성질을 이용한 디스플레이로 유기EL이라고도 한다. 자체 발광으로 백라이트가 필요 없어 얇고 가벼운 상품을 만들 수 있다. ■2차전지:종이처럼 얇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어떠한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는 안전한 전지다. 리튬이온전지와 리튬이온폴리머전지 등이 현재 개발된 2차전지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휴대전화·PDA·노트북 PC 등에 두루 사용된다.

2004.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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