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대통령 취임사와 企業의 숙제
金대통령 취임사와 企業의 숙제
김대중 제15대 대통령의 취임사는 기업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똑같이 중시하되 대기업은 자율성을 보장하고 중소기업은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 둘째, 철저한 경쟁의 원리를 지켜갈 것이며 셋째, 세계에서 가장 품질좋고 가장 값싼 상품을 만들어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는 기업인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 넷째, 벤처기업은 새로운 세기의 꽃이며 이를 적극 육성할 것이고 다섯째,대기업과 합의한 5대 개혁, 즉 기업의 투명성, 상호지급보증의 금지, 건전한 재무구조로의 전환, 핵심기업의 설정과 중소기업에 대한 협력 그리고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책임성 확립은 반드시 관철될 것이다. 여섯째, 정부는 기업의 자율성을 철저히 보장하면서 동시에 기업의 자기개혁 노력도 엄격히 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대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요구를 통해 기업구조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대기업들이 경쟁력 없는 기업들을 문어발처럼 거느리지 않았던들”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현 경제위기의 주범 중 하나로 대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지목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따지고 보면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경영변수가 복잡해질수록 1인 경영체제의 위험은 따라서 커진다. 전문가에 의한 책임경영체제가 세계의 초일류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대기업의 가족 지분율은 10%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외국인들의 주식소유 한도를 55%까지 활짝 열어 놓았다는 것은 지금까지 심지어는 1%에도 미달하는 주식만을 소유한 대기업 총수 개인에게 경영의 전권을 맡겨 놓았던 한국적 기업지배구조의 관행이 소유지분에 의한 기업지배권의 창출을 신봉하는 서구자본주의의 엄격한 규칙에 의해 조만간 무너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기업관은 기업 자체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업주에 대해서는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 기업에 대한 기업주들의 생각도 소위 ‘개인재산모형’이 압도적이다. 기업에 대한 지배권에 집착하고 이를 자식에게 세습시켜야 영생(永生)의 본능이 충족된다고 믿는 애니미즘적 사고도 많이 관찰된다. ‘트러스트(Trust)’의 저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따르면 저(低)신뢰사회인 한국에서 대규모의 기업집단이 출현했지만, 경영행태는 가족 중심 또는 마을(가족의 확대형)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대기업의 생존과 발전은 주인의 유무보다는 이들 대기업의 경영을 책임질 주인의식이 있고 유능한 인적자원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능력이나 성과보다는 관계를 중시했던 것이 우리 사회의 인사관행이었지만 연고와 형식이 우선되는 인사가 계속되는 한 우리 기업, 우리사회, 우리 나라의 장래는 어둡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와 EVA(경제적 부가가치), EPS(주당 순이익), ROE(자기자본수익률)등 경영성과의 분명한 평가기준만이 우리 경영의 선진화를 기할 수 있는 길이다. 세계화된 경영환경하에서 표준화된 기술과 보편화된 지식을 공유하면서도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한국형 경영모델의 확립이야말로 지금 우리 대기업, 학계, 그리고 우리 전문가들에게 부여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은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나올 때마다 고민에 휩싸이곤 했다. 매를 어떻게 맞는 것이 유리한 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양새로서가 아닌 본질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그 해답은 분명하다. 남보다 먼저, 그리고 남보다 더 철저하게 변하는 기업만이 21세기에 생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