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13일 개봉)은 ‘조용한 가족’ ‘반칙왕’의 김지운 감독이 만든 ‘본격 가족괴담’이자 ‘하우스 호러물’이다.제목이 가리키듯 고전 소설인 ‘장화홍련전’을 토대로 빚어냈다. 그러나 원전은 영화에 대해 그다지 많은 걸 말해주지 않는다. 새 엄마와 전처 자식들 간의 반목과 원한, 그리고 그 사이에서 속수무책으로 방관만 하는 아버지…. 기본적 인물구도 외에는 원전에 크게 기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정신병원인 듯한 곳에 감금돼 있는 한 소녀의 기억과 상상 등에서 시작된다. 인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외딴 곳의 한 고풍 가옥, 자매 수미(임수정)와 수연(문근영)이 아버지 무현(김갑수)의 차로 도착한다. 언뜻 보기에도 여느 평범한 집 분위기와는 너무나도 다른 집 안으로 들어가면, 새 엄마 수연(염정아)이 그들을 환대하지만 당장 심상치 않은 ‘전운’이 감돈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이 기괴한 ‘조용한 가족’ 간에 생명을 담보로 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얼굴조차 선명치 않은 첫 장면의 소녀는 결국 두 자매 중 언니인 수미(임수정)임이 드러난다. 정작 의아스러운 건 이상한 일들이 연속되는 데도 무현은 좀처럼 동요하지 않으며, 줄곧 냉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음산하면서도 모호한 도입부와 더불어 이해하기 힘든 아버지의 이상한 태도가 ‘장화, 홍련’의 정체를 단적으로 암시한다. 보이는 것 내지 말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닌 공간, 이 영화의 묘미는 은근 슬쩍 제공되는 일련의 힌트, 즉 복선을 토대로 이야기의 퍼즐을 짜맞추는 것에 있다. 한번의 관람으론 다 짜맞추기 불가능해 보이는 이 퍼즐 게임은 원전은 물론 그간의 국산 공포 영화들에선 좀처럼 맛보기 힘들었던 강렬한 지적 자극과 쾌감을 선사한다. 영화는 무엇보다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나 해피 엔딩 등에서 완전히 이탈한다. 원전에선 목불인견의 추녀요 악의 화신으로 등장했던 계모부터도 사뭇 다른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다분히 병적 캐릭터인 건 틀림없지만, 수연은 퍽 미모이며 팜므 파탈(요부)적 기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단순히 가해자로만 낙인찍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곧 극 중 두 자매를 일방적 피해자·희생자로만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계모인 수연이 공포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들 자매들에게도 어떤 병적 기질이 내재돼 있다. 분명 다른 외모이건만, 때론 그 세 인물을 구분할 수 없는 순간들이 눈길을 끈다. 감독은 성격화나 분장 등을 통해 인물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영화를 보면서 어딘지 낯설고, 적잖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우선은 그 때문일 것이다. 전적으로 동일시할 인물이 부재하는 것이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가족간의 죄의식,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대한 두려움을 그리고 싶었다”고 강변하는 것은 괜한 수사나 허풍이 아니다. ‘죄의식’이란 말은 영화에 근접하기 위한 키워드인 것이다. 그럼에도 관객이 감독의 의도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많은 것들이 말해지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것 속에 은폐돼 있는 탓이다. 더욱이 영화는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세트, 즉 ‘귀신들린 집’은 말할 것 없고, 연기·조명·편집·음악 효과 등 시청각적 측면에서 각별한 공을 들여 세심한 영화 읽기를 강력하게 요청한다. ‘장화, 홍련’의 으뜸 매력은 그 속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은폐물들을 찾아내 읽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영화는 아주 다양한 해석에 열린 매혹의 작품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영화 속 자매 또래들에게는 고통을 수반한 통과제의적 성장담으로, 수연 같은 30대 여성들에겐 전처, 즉 자기 아닌 다른 여인의 망령으로부터 남편과 새 가정을 사수하려는 여성 특유의 안간힘을 그린 여성 영화로, 무현 같은 40대 남성들에겐 거세당한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가부장의 현실을 보여주는 가슴 아픈 고백담 등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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