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성 장애아 맥스 가족의 ‘작은 행복’
양극성 장애아 맥스 가족의 ‘작은 행복’
맥스 블레이크는 일곱 살 때 처음 자살을 기도했다. 장난감을 친구들에게 유산으로 남긴다는 내용의 유서 4쪽을 남기고 1층 침실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1.8m 아래의 뒤뜰에 떨어졌지만 찰과상을 좀 입었을 뿐 대체로 멀쩡했다. 어린이들은 죽음의 의미를 잘 모른다. 이는 맥스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 쪽에도 잘 나타나 있다. 첫 문장이 “내 손자가 태어날 때까지 살아 있다면”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불행하다는 게 무엇인지는 안다. 최근 어느 월요일 오후 2시 15분, 이제 10살이 된 맥스의 상담교사가 아이 엄마 에이미를 호출했다. 맥스가 스쿨버스를 타고 귀가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엄마가 학교로 달려가자 맥스는 당초 소환의 원인이 됐던 메모를 엄마에게 건넸다. 그 메모는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로 시작됐다. ”나는 정말 슬프고 우울하고 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져요. 엄마 아빠를 사랑하지만 그래도 죽고 싶어요. 정말 슬프지만 도움을 받아서 다시 행복해지고 싶어요. 내가 그렇게 기분이 나쁜 이유는 밤에 잠이 안 오기 때문이에요. 아빠는 밤이 되면 내게 자라고 마구 고함치지요.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잠을 통제하는 건 내가 아니에요.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나는 아니라고요. 정말로 정말로 도움이 필요해요. 사랑하는 맥스로부터!!!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이것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어린 아들이 등장하는 가족 드라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공포물에 가깝다.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등장인물들이 비명을 지르고 울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나중에 후회할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 그 모든 고통의 원인은 양극성 장애다. 조증과 울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정신질환이다. 어떤 부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의사는 어린이에겐 없다고 믿으며 거의 모두가 백안시하는 정체불명의 질병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애정물이기도 하다. 부모가 합심하고 아이가 더 잘하려고 노력하며 교사·의사·친구들이 도우려 애쓴다. 맥스 블레이크네 가족은 다른 가족과 공통점이 별로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한가족이다. 1997년 10월 31일 그들의 아들이 세상에 나서 첫울음을 터뜨린 후 에이미와 리치 블레이크에게 가족만큼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맥스는 심장에 구멍이 뚫린 채 세상에 태어났다. 세상에 나오려 발버둥치는 동안 산소결핍 증세를 보여 의사들이 황급히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에이미는 회복실에 있으면서 아기도 수술을 받아야 하나 걱정이 컸지만 의사들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나흘 뒤 부부는 아기를 데리고 매사추세츠주 피바디의 작은 집으로 왔다. 해병대 출신인 리치는 카운티 교도관으로 일했다. 에이미는 인근 보스턴에 있는 한 회사의 전도유망한 이혼 전문 변호사였다. 리치와 에이미 모두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했지만 두 사람은 잘 어울려 살았다. 에이미는 두 사람이 활짝 웃는 커다란 결혼사진을 거실에 걸었다. 하지만 아기를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 조부모가 멀리 떨어져 살아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에이미에게 허용된 출산휴가는 3개월뿐이었다. 그래도 맥스와 함께 안전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리라 믿었다. 양극성 장애아의 엄마들은 아기가 태어날 때 비명을 지른다고 종종 말한다. 이 아이들의 삶은 극과 극을 달린다. 너무 흥분해서 말을 두서없이 내뱉는가 하면 어떤 때는 우울해 하며 입을 열지 않는다. 양극성 장애를 가진 성인들과 달리 어린이들은 감정 변화가 빠르다. 때로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듯할 때도 있다. 미국에선 최소 80만 명이 넘는 아이가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중엔 오진도 포함됐을 수 있다. 이 병은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 두뇌 회로가 뒤엉켰지만 그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약은 많지만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약효가 전혀 없을 때도 있고 정상적인 두뇌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이런 약이 어린이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된 바도 없다. 그러나 이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환자 중 10%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부모에게 주어진 두 개의 선택지는 모두 고통스럽다. 나쁜 결과를 감수하고 아이의 병을 치료하든가 아니면 치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나쁜 결과를 감수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불확실성과 고통은 피하지 못한다. 맥스가 태어날 때 에이미는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아기를 키우기가 힘들 것이란 사실만 알았다. 맥스는 밤에 깊게 잠이 들지 못했고 에이미도 밤잠을 설쳤다.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몇 시간씩 그치지 않았다. 요람에 머리를 박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악을 쓰며 울어댔다. 젖을 물려도, 안아줘도, 공갈 젖꼭지를 물려도 소용이 없었다. 맥스가 울며 밤을 지새우는 날이 늘어가는 동안에도 산통(疝痛)이나 배에 가스가 찼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진이 빠지고 얼이 나간 채로 그녀는 농담을 했다. 아기가 핼러윈 데이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거나 출산 전 내가 매운 닭날개를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고. 고개도 제대로 못 가누는 어린것이 어떻게 그렇게 사람의 혼을 빼놓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1년 뒤 그런 농담이 걱정으로 바뀌었다. 맥스는 10개월 때 걸음마를 하고 12개월째엔 문장으로 말하면서 발달과정을 정상적으로 밟아갔지만 아동 양육서에서 묘사하는 아기들과는 달랐다. 뒤뜰에서 땅바닥에 내려놓으려 하면 아빠의 품에 바짝 매달렸다. 맨발바닥에 닿는 잔디의 감촉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목욕을 시킨 뒤 환풍기를 틀면 양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 13개월째는 장난감 트럭 수십 개를 같은 방향으로 정렬해 놓고는 엄마가 그중 하나를 건드리면 “자신의 팔이 잘려 나간듯” 악을 썼다. 어린이집 교사와 친구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덩치는 크지 않았지만 아무런 이유나 경고 없이 잇자국이 또렷하게 남도록 사람을 물었다.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법 없이 때리고 차고 침을 뱉었다. 부모의 걱정이 죄의식으로 변했다. 에이미는 임신 중 과체중에 탈수증상을 보였다. 맥스의 그런 과격한 행동이 그때 엄마가 뭘 잘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18개월째 어린이집에서 맥스를 더 이상 봐줄 수 없다고 하자 블레이크 부부는 다급해졌다. 해병대 시절 훈련 교관이었던 리치는 군에서 했던 대로 군기를 잡아보려 했다. ‘안 돼’라고 잘라 말하고 TV와 디저트를 금지하고 볼기를 때려 보기도 했다. 소용없었다. 변호사인 에이미는 갓난아기와 협상을 시도했지만 그것도 별무효과였다. 에이미와 리치는 아기의 양육방식을 놓고 언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수십년의 경력을 가진 담당 소아과 의사도(에이미도 그의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답을 내놓지 못했다. 두 살의 반항기가 일찍 찾아온 건 아닌 듯하다는 진단이 고작이었다. 자신이 치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대도시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레이크 부부는 보스턴의 병원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수소문한 끝에 터프츠-뉴잉글랜드 메디컬 센터의 조셉 잰코스키 아동 정신과 과장과 연락이 닿아 맥스의 두 번째 생일 직후인 11월 18일 진료를 받기로 예약했다. 잰코스키는 몇 가지 검사를 했지만 대사효소 수치가 약간 높은 것 말고는 특이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 두뇌 스캔을 하도록 지시하고 인턴들과 함께 아기를 지켜봤다. 맥스의 행동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비명을 지르고 엄마를 물고 종이를 가져다 그림을 그리는가 싶더니 갈기갈기 찢어댔다. 한 시간 뒤 잰코스키는 맥스에게 양극성 장애가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 밖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블레이크 부부에게 양극성 장애는 뎅기열만큼이나 생소한 병명이었다. 에이미는 ‘조울증’이란 말은 들어봤지만 그것은 어린이에겐 생기지 않는 무서운 질병으로 알고 있었다. 미 국립정신보건연구소(NIMH)는 미국의 성인 조울증 환자가 570만 명이라고 추산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의사들은 대부분 유아에게선 진단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어린이는 모두 ‘양극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아직도 회자된다. 감정에 따라 울다가 웃다가 변덕을 부린다는 얘기다. 에이미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녹초가 된 그녀는 다른 의사를 찾아가 봐야 할지 고민했다. 사무실 벽에 걸린 의사의 학위 그리고 그의 흰 가운에 새겨진 이름을 바라봤다. 그리고 “적어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지”라고 생각했다. 잰코스키는 맥스에게 발작, 편두통, 양극성 장애 치료제 데파코테를 소량 먹여보자고 했다. 에이미는 편두통 약에는 익숙했고(몇 년 동안 두통을 앓았다) 그녀를 비롯해 가족 몇몇이 항울제를 복용한 적이 있었다. 리치는 더 조심스러웠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어린이에게 독한 정신활성제를 먹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부작용을 걱정했다. 그리고 그후 오랫동안 그와 에이미는 그런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맥스는 3주 만에 데파코테의 복용을 중단했다. 밥을 못 먹었고 잠도 못 잤다. 잰코스키는 정신병약인 지프렉사를 시도했다. 며칠 만에 맥스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에이미의 기억으론 맥스가 처음으로 정말 아기처럼 곤히 잠들었다. “좋아.” 에이미는 생각했다. “항생제처럼 몇 주만 이 약을 먹이면 아이의 건강이 다시 회복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될 거야.” 2월 4일, 잰코스키의 진단이 나왔다. 에이미는 치료할 수 있는 병(“심할 경우 뇌종양이라 하더라도 자료를 찾아보고 이해하고 나을 수 있는 것”)을 기대했다. 아마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ADHD) 장애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비슷한 경우의 친구 아이들이 모두 그 병으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리치는 맥스에게 어떤 병이 있든 좀 더 크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장에 뚫렸던 구멍이 저절로 없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아이의 병이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심각한 불치병이란 것이었다. 잰코스키의 직감이 들어맞았다. 맥스의 병은 양극성 장애였다. 에이미와 리치는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돌아갔고 에이미는 메모장을 하나 준비했다. 이때부터 쓰기 시작한 노트는 맥스의 병력을 빠짐없이 기록한 완벽한 일지가 된다. 에이미는 “진단: 양극성 장애, 과잉행동장애”라고 적은 뒤 바로 공책을 덮었다. 맥스가 다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 희한한 병에서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적어도 자신이 나쁜 엄마는 아니라는 증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당시 소아 양극성 장애는 아동 정신의학계 내에서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 질환을 규명한 것은 맥스가 진단받기 불과 4년 전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의 의료팀이었다. 1995년 아동 정신과 의사 조셉 비더만과 그의 제자 재닛 위즈니액은 내원한 아동의 16%가 그런 유형의 질환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당시엔 어린이에게 아주 드물어서 의사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병으로 간주됐다”고 워즈니액이 말했다. “그러나 바로 우리 눈앞에 있던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의사들은 어린이들이 병리적으로 흥분과 우울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그녀가 말했다. 어린이가 흥분해 있으면 과잉행동으로 진단하고 우울해 하면 우울증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MGH 팀의 주장에 많은 의사가 반신반의했지만 그 주장을 주의 깊게 경청한 의사도 많았다. 양극성 장애아는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라는 두뇌 영역의 활동이 지나치게 활발한 반면 이성적 사고를 관장하는 전전두엽은 움직임이 둔하다는 사실이 의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생각할 수 없을 때 감정적이 된다”고 일리노이대(시카고) 아동 정신과의 매니 파불루리가 말했다. 양극성 아동은 세상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위험한 장소로 인식한다. 무표정한 얼굴 사진을 보여주면 화가 났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정말 화난 얼굴을 보여주면 아이의 편도가 폭죽처럼 터지는 사이 전전두엽은 기능을 중단하게 된다. 보통 분노가 분노를 부르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신경학적 조사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직도 두뇌 스캔만으로는 양극성 장애를 진단할 수 없다. 그 진단은 과학이라기보다 예술에 가깝다. 맥스의 진단 이후 몇 년 사이 의사들이 아무 어린이에게나 양극성이라는 엉뚱한 진단을 내려 제약회사들의 배만 불렸다고 많은 정신과 의사는 생각한다. 맥스의 담당의사 중 한명도 양극성 진단을 받은 어린이 중 십중팔구는 오진이라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에이미는 이런 논쟁엔 별 흥미가 없다. “맥스가 어떤 진단을 받든 상관없다”고 그녀가 말했다. “내게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점이다.” 진단 후 몇 달간 약을 계속 바꿔 먹였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사설 어린이집에서도 두 돌 4개월째에 쫓겨났다. 블레이크 부부는 남아 있는 최선의 대안인 공립학교 특수교육 프로그램에 아이를 넣었다. 맥스는 신체장애나 중증 학습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둘러싸이게 됐다. 교육을 받지도, 그처럼 길길이 날뛰는 송아지를 다루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들의 손에 맡겨진 것이다. 에이미가 아침에 아이를 맡긴 뒤 보스턴의 사무실에 출근하면 얼른 피바디로 돌아와서 아이를 데려가라는 교사의 전갈이 도착해 있었다. 아이가 몇 달간 정학처분을 받아 블레이크 부부가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집에 발이 묶인 적도 있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그동안 다른 의사를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이 한시도 에이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친구를 통해 매사추세츠 벨몬트의 매클리언 병원에 약뿐만 아니라 행동요법에 관심이 많은 진 프래지어라는 아동 정신과의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맥스가 잰코스키의 진료를 받기 시작한 지 1년 1개월 1일 뒤인 2000년 12월 19일, 블레이크 부부는 세 살이 된 아이를 프래지어의 병원으로 데려갔다. 맥스는 처음엔 쾌활했지만 진찰이 길어지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의사가 질문을 해도 쳐다보지 않았다. 아빠를 물려고 덤비더니 엄마에게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블레이크 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프래지어는 이번에는 속삭이듯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맥스가 귀를 기울였다. 프래지어는 이때 뭔가를 깨달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이의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맥스는 말소리의 정상적인 톤을 괴로워했다. 의사는 메모에 “머리카락이 짙고 눈빛이 초롱초롱한 미소년”이라고 적었다. 그녀는 아이가 전형적인 양극성 장애의 증상을 보인다고 인정하면서도 두뇌 스캔과 혈액검사를 다시 받아보자고 주문했다. 그리고 맥스가 복용하는 약을 줄이는 편이 좋겠다고 말했다. 잰코스키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던 놀이 치료에 대해 묻자 프래지어는 다른 전문가를 부부에게 추천해 줬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맥스는 여전히 공립학교의 특수교육 프로그램을 받았으며 곧 유치원으로 올라가야 할 형편이었다. 주와 연방 장애법에 따라 학생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해당 교육청에서 사립학교 학비를 대신 지급해야 했다. 피바디 교육당국은 맥스를 공립학교 시스템 안에 붙잡아 두려는 생각에 아이를 위한 특수 교육과정을 개발했다. 맥스는 6주를 더 다니면서 벽에 주먹질을 하고 욕설을 퍼붓고 낙서를 했다. 결국 학교 당국이 두 손을 들고 아이를 맨빌 스쿨에 보내기로 합의했다. 보스턴 소재 저지 베이커 아동센터 부설 학교로 1년 학비가 6만4000달러다. 맨빌은 책상과 의자가 있고 로비에 밝은 색 벽화가 그려진 여느 학교와 다름없어 보였지만 사회복지사와 심리학자들을 고용해 학생들을 돌봤다. 학생 8명당 교사가 3명이었으며 교실과 거의 같은 숫자의 타임아웃 룸(어린이가 잘못을 했을 때 안에 들어가 조용히 반성하도록 하는 방)이 있었다. 에이미는 커다란 바인더를 구입해 아들의 학교생활에 관한 교사들의 메모를 모두 보관했다. 여느 엄마라면 독서 감상문과 공룡 그림을 보관했겠지만 말이다. 오후 시간에 맥스를 돌봐주는 보모 제니 멜로도 구했다. 리치도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소방관으로 직업을 바꿨다. 한 주에 이틀씩 소방서에서 철야를 해야 했지만 다음날 낮에 아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온갖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맥스의 삶은 여전히 격동의 연속이었다. 한 해 사이에 정신활성제를 8가지나 바꿔 먹였다. 그렇게 많은 약을 복용해도(그리고 어쩌면 그 때문에) 아이는 정서적으로 파탄상태였다. 에이미는 그의 눈을 보며 하나의 표정을 읽어내는 법을 익혔다. 그런 표정이 보이면 “이제 곧 소동이 벌어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맥스는 2002년 1월 네 살 때 “얼어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6월엔 집을 뛰쳐나가 이웃집 자동차 밑에 숨어 있다가 발견됐다. 맥스는 상상 속의 친구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에이미 부부는 아이가 환청을 듣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식료품점에 갔을 때 옆 칸에서 어떤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아이가 갑자기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아줌마가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쯤 되자 에이미와 리치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맥스는 생일파티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에이미는 초청장을 조용히 쓰레기통에 버렸다. 가족의 친구들도 일부는 연락을 끊었다. 에이미의 엄마는 양극성 장애 ‘치료법’을 인터넷에서 찾아 e-메일로 보내주기 시작했다. 에이미는 맥스의 친척들조차 그를 ‘불량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낯선 이들의 몰이해도 상처를 남긴다. 어느 날 오후 쇼핑몰에 갔을 때 맥스가 광란을 일으키자 한 여자가 에이미에게 다가오더니 이런 여자는 아이를 갖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일행에게 말했다. 집에서도 에이미와 리치는 서로의 아픈 곳을 감싸주지 못하고 오히려 긁어댔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서로를 공격했다. 리치는 맥스가 태어나기 전엔 참을성이 많았지만 지금은 인내심이 “종잇장처럼 얇아졌다.” 양극성 장애는 유전성이 강하다. 언쟁이 격해지자 둘 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가슴에 못질을 해댔다. “당신 아이야! 당신 잘못이라고!” 블레이크 부부는 처음부터 아이를 하나 더 가질 계획이었다. 맥스가 안정을 되찾았을 때 (종종 그럴 때가 있었다) 에이미는 불현듯 둘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리치는 이제 자신들의 유전자가 걱정돼 입양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녀는 입양기관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음날 맥스가 광란을 일으켰다. 마치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 순간 블레이크 부부는 아이를 더 이상 갖지 않기로 작정했다. 훗날 맥스는 자기에겐 왜 동생이 없는지 묻기 시작했다. 상황에 따라, 장난감을 동생과 나눠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거나 “엄마와 아빠는 완벽한 아이 하나면 족한데 네가 있잖아”라는 식으로 둘러댔다. 하지만 리치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고 맥스가 충분히 농담을 받아들일 만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땐 미소를 머금은 채 이렇게 대답했다. “거울을 보면 그 이유를 알 거야.” 일곱살 반이 됐을 때 맥스가 복용한 약의 종류가 너무 많아져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해로운지 의사나 부모 모두 더는 알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이는 안면 경련을 일으키는 틱 장애를 앓고 있었다. 눈을 깜빡이고 헛기침을 하면서 “마치 피부를 벗어던지고 싶은 듯 옷을 잡아당겼다”고 리치가 말했다. 2005년 2월 프래지어의 감독 아래 맥스에게 먹이던 약을 모두 끊었다. 화학성분이 체내에서 모두 빠져나가자 맥스는 두 살 때와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됐다. 상태가 더 악화된 것이다. 양극성 장애는 나이가 들면서 더 심해지기도 한다. 두뇌 또한 자기 개조를 통해 일부 약품에 반응한다. 도파민 수용체도 약해지고 민감해진다. 약의 복용을 중단하면 쇼크가 일어난다. 맥스는 환각을 일으키고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다. 엄마가 자신에게 독약을 먹인다고 생각해 그녀가 요리한 음식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입을 열기만 하면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밤에도 두 시간 이상 자지 않았다. 한 달도 안 돼 프래지어는 아이에게 다시 약을 먹이면서 조건을 하나 달았다. 어린이 정신병동에 단기 입원시키자는 것이었다. 블레이크 부부는 이번 조치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매일 병원으로 맥스를 찾아갔지만 아이를 입원시킨 많은 부모가 자신들과 똑같이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맥스가 적절한 치료를 받는지도 걱정스러웠다. 아이가 잠자코 앉아 혈액검사를 받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체내 약품 농도를 확인할 수 없었다. 3주 뒤 마침내 에이미와 리치가 아이를 붙잡아 앉히고 검사를 받도록 했다. 그 결과 아이의 치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리튬 수치가 낮았다. 프래지어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들은 맥스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오면서 다시는 아이를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두 달 뒤 맥스가 침실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오늘날 맥스의 의료 파일은 처방전, 웹사이트에서 출력한 인쇄물, 의사들의 명함 같은 서류로 가득하다. 맥스는 10살의 나이에 38가지의 정신활성제를 복용했다. 그 약들은 심각한 부작용을 부른다. 약 때문에 체중이 불었으며 아직 자라나는 중이어서 빈번히 약을 바꿔줘야 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아이(어떤 아이라도)는 절대 그렇게 많은 약을 먹이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블레이크 부부도 잘 안다. 그들도 그 점이 늘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현실에 적응했다. 잰코스키가 처음 맥스에게 양극성 장애와 과잉행동 장애 진단을 내린 후 7년 반 동안 맥스의 예후 역시 더 복잡해졌다. “그 아이는 적대적 반항장애, 난독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강박장애(OCD)”라고 에이미가 말했다. “이니셜로 된 병은 모두 갖고 있다.” 양극성 장애아, 특히 어렸을 때 진단을 받은 경우에는 종종 그런 다른 장애들을 줄줄이 수반한다. 양극성 장애아의 두뇌는 다른 영역들을 끌어들여 전전두엽의 약점을 보완하려 한다. 따라서 지금은 다른 영역들까지 제 기능을 못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아동 정신과의사들은 현실적으로 커다란 난제에 직면한다. 종종 한 가지 장애를 치료하다 보면 다른 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풍선과 같다”고 아동 양극성 장애 규명에 기여한 MGH의 정신과의사 워즈니액이 말했다. 맥스 같은 어린이의 경우 부모는 종종 “증상의 일부를 제거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맥스의 삶은 아주 어렸을 때에 비해 몇 가지 측면에서 호전됐다. 맨빌 스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아직도 학교에서 소동을 일으키지만 친한 친구도 한 명 있다. 가벼운 불안장애를 가진 착한 금발 소년이다. 맥스는 작년에 항상 앞장서 신입생들에게 학교를 안내하는 모습이 선생님들의 눈에 띄어 ‘모범상’을 받았다. 급우들이 광란을 일으키면 자신이 나서서 진정시킨다. “자리에 앉거나 심호흡을 하거나 교실 밖으로 나가보라고 말하곤 한다”고 담임교사 줄리 히긴스가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은 터득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회성 측면에선 발달이 있었지만 학업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나이로 따지면 4학년이지만(맨빌은 학년을 가르지 않는다) 몇몇 과목에서 뒤떨어진다. 과학과 미술은 좋아하지만 읽는 데 어려움이 있으며 창의성은 뛰어나지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지 못한다. 때로는 연필을 몇 분 이상 쥐고 있는 일도 어렵다. “아이를 보면서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짐 프린스 교장이 말했다. “하지만 아이를 내버려둘 순 없다. 때로는 실제로나 정서적으로 아이를 꼭 잡아줘 수렁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맥스는 깊고 강렬한 감정을 지녔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은 매사추세츠주의 케임브리지 헬스 얼라이언스에서 근무하는 진 프래지어는 칠판에 아이의 걱정거리를 그려보도록 했다. 맥스는 최근 진료를 받던 중 게(crab)를 그렸다. 불면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진(crabby)’ 것이다. MGH의 임상 심리학자 스튜어트 애블런은 놀이를 통해 아이와 소통하려 한다. 맥스는 병원에 파워레인저 액션 인형을 가져간다. “그 캐릭터들을 갖고 선과 악이 있으며 악이 항상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좋아한다”고 애블런은 말했다. “자기 몸속의 악이 선을 항상 이기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그러나 아이에게 그것을 직접 물어볼 순 없다. 상처를 줄 수 있다.” 한 번 시도한 적은 있었다. 그때 맥스가 완구를 던져 애블런의 다리에 상처가 났다. “피를 보자마자 아이는 수치심을 느끼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고 애블런이 말했다. 맥스는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움직일 때가 종종 있다. 가장 최근 유서를 쓴 뒤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훌쩍이며 말했다. “나를 병원에 보내지 말아 주세요.”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설 무렵엔 화가 나 있었다. 유서를 쓴 것은 선생님이 “늘 하던 대로 불공평하게” 자신을 반성의 방으로 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당초 그런 문제를 일으킨 것을 창피하게 여겼다. “수업을 끝까지 마치지 못해 엄마 아빠를 실망시킬까 겁이 났어요” 라고 양 손가락을 꼬며 에이미에게 말했다. “슬프고 무서웠어요. 모두가 나를 못 살게 구는 것 같았어요.” 1분 뒤 맥스는 언제 겁을 먹었느냐는 듯 애완견 불 마스티프(불독 비슷한 대형견)와 함께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단체 스포츠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사추세츠주 앤도버의 장애아 재활단체 챌린지 언리미티드에서 승마 치료를 통해 감정조절법을 배우고 있다. “맥스 같은 아이들에겐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최근 어느 날 오후 맥스가 말 등에 올라타 실내 트랙을 도는 동안 강사 린다 고스가 말했다. “분명하게 지시를 내리면서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게 요령이다. 약간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말이 금방 알아차린다.” 때마침 신호라도 떨어진 듯 맥스의 말이 아직 설치되지 않은 한 쌍의 비월 폴대를 향해 질주했다. 린다가 달려가며 점프하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말이 도약한 뒤였다. “미안해요”라고 맥스가 말했다. “나도 어쩔 수 없어요.” 그러나 그는 말 등에서 내리지 않고 몇 가지 묘기를 보여줬다. 작년 그는 주 내에서 열린 특수 올림픽에서 동메달 두 개를 획득했다. 몇 주 동안 그것을 목에 걸고 다니며 샤워할 때도 벗으려 하지 않았다. 도중에 몇 차례 고비는 있었지만 가라테도 그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아이가 다니던 한 도장의 사범이 정신력이 약하다며 울보라고 놀리자 맥스는 당장 도장을 뛰쳐나왔다. 5개월 전에 매사추세츠주 노스 리딩의 서비치스 무도 아카데미에 다시 등록했다. 특수아동 대상 교실을 운영하는 곳이다. 맥스는 이미 노란 띠를 땄다. “아이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잘못이라고 가정할 때가 있다”고 사범 크리스 스미스가 말했다. “때때로 좀 더 칭찬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막기, 발차기, 주먹 지르기는 잘한다.” 마치 좋은 일인 것처럼 맥스가 주먹질과 발차기를 잘한다는 말을 들으니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가라테 도장에서 감정을 폭발시킨 적은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행동은 여전하다. 보모 제니 멜로는 3년 전 아들을 낳았다. 맥스를 돌봐주러 올 때 아기 잭슨을 함께 데려온다. 맥스는 아기를 귀여워하는 편이지만 문제는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작년 여름 아기를 포함해 셋이서 집 뒷마당의 풀장으로 수영을 하러 갔다. 보모가 배수구 필터에서 죽은 다람쥐를 발견했다. 학교에서 공수병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은 맥스는 물속에서 뛰쳐나왔다. 제니와 아기는 개의치 않고 수영을 계속했다. 맥스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곧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악을 쓰며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불현듯 제니는 문제가 생기겠다는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그녀는 아기를 데리고 물속에서 나와 집 안 서재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맥스가 문을 향해 몸을 던져 문 반대쪽에 걸린 거울이 산산조각이 났다. 제니는 잠긴 문 뒤에서 떨면서 전화로 이웃에 도움을 청했다. 자신과 아들이 다칠까 겁이 났지만 “맥스가 안쓰러워 울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한동안 일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2주 뒤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별 탈 없이 잘 다닌다. 에이미는 아직도 아들의 행동을 어떻게 고쳐야 좋을지 고민 중이다. 절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자신의 생각이 너무 짧았다고 털어놓았다. 말을 잘 들으면 장난감을 상으로 주곤 했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아이에겐 뇌물이었으며 계속하다간 자신이 파산하고 말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집에 완구 백화점 별관을 차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애블런의 지도를 받아 ‘난폭한 아이 다루기(Treating Explosive Kids)’라는 책에 나온 기법을 이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맥스를 훈육하려 배우는 중이다. 리치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다. 해병대 생활이 몸에 밴 그는 아이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고 부모가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지 말라는 이론이 성격에 맞지 않는다. 자신이 어릴 때 같았으면 맥스 같은 애는 “볼기를 좀 맞았을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모두가 응석을 받아주며 교과서대로 존중해 주지는 않았다.” 그는 때때로 자신이 맥스에게 압력을 준다는 점을 인정한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치려 한다”고 그가 말했다. 그는 자기 아들이 다른 집 자식들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맥스의 나이만 할 때 나는 하키와 야구를 즐겼다. 운동을 좋아했다”고 그가 말했다. “10살이나 된 아이가 자전거도 못 탄다니 실망스럽다. 또래 아이들이 다 하는데도 우리 아이는 못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좀 더 나이가 들면 달라지리라 믿는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쿼터백 톰 브래디도 12살 때까지 미식축구공을 잡아보지 못했다. 아직 희망이 있다.” 리치의 집안은 전통적으로 말을 많이 아꼈다. 집안에 정신병 내력이 있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의 형은 21세 때 자살했지만 아무도 이유를 모른다. “아버지는 내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리치가 말했다. “원래 그런 분이다. 무슨 일에든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과묵하기로는 리치도 아버지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 자신도 아들과 똑같은 몇 가지 문제와 씨름을 한다. 욱하는 성격이 있으며 아내로부터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리치는 자신은 “엄격하고 아내는 물러터졌다”고 반박한다. 자신은 심리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년 말 에이미는 남편에게 함께 결혼 카운슬러의 상담을 받아보자고 요구했고 리치도 동의했다. 몇 번 찾아갔지만 나중엔 찾아가지 않았다. 지금은 맥스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어떤 치료가 아이에게 효과가 있으면 가족 모두가 좋아지는 것이다. 물론 맥스의 삶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최근 프래지어에게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 한바탕 광란을 벌였다. 미친 듯이 깔깔대면서 바닥을 뒹굴더니 부모 쪽으로 기어가 빈 약병을 손에 쥐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약이다! 내게 약이 있다! 어린이에게도 안전한 약이다!” 리치가 다시 빼앗아 들자 맥스가 비명을 질렀다. 리치는 마치 개에게 공을 물어오는 훈련을 시키듯 약병을 방 저편으로 던졌다. 맥스는 꺅 하고 환성을 올리며 약병을 향해 몸을 날려 집어 들더니 마이크처럼 손에 쥐고는 노래 ‘본 투 비 와일드’를 불렀다. “Booorn to be wiiiiild ….” 에이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안에 또 다른 애가 있어. 웃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지.” 정말 그랬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짐을 떠안은 맥스를 바라보며 아이 얼굴의 웃음이 여느 아이들의 장난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질병의 증상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도 힘든 일이었다. 슬픔과 분노가 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뻔히 알지만 행복도 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에이미는 맥스를 이끌고 진료실 문을 나서면서 괜찮으냐고 물었다. 맥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하기까지 몇 초가 걸렸다. “그런 거 같아요.” 이처럼 자신의 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아주 드물지만 가끔씩 있다. 앞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지나면 사춘기가 오는데 그때가 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10대의 반항이야 그러려니 해도 양극성 장애를 가진 10대의 반항은 비극으로 끝날 수 있다. “아이가 ‘약을 먹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해도 내가 강제로 입을 벌리고 약을 쑤셔 넣을 수는 없다”고 에이미가 말했다. 아이가 10학년(고1에 해당)을 마칠 때도 걱정이다. 그때가 되면 맨빌 스쿨을 졸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이미는 맥스가 피바디의 공립학교로 되돌아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특수학교를 찾지 못할 경우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 맥스는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으며 이미 매사추세츠 아트&디자인 칼리지를 목표로 잡았다. 에이미도 그때의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십중팔구 대학 학비로 쓰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마다 대학 학자금 계좌에 적금을 납입한다. “맥스가 정상인처럼 훌륭하게 살아가리라고 믿고 싶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 생각을 한다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맥스 같은 아이들의 미래를 놓고 깊이 있게 생각한 과학자들이 있다. 다수가 아직도 양극성 장애의 오진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만 환자들은 길고 험난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데는 생각이 다르지 않다. 2년 전 NIMH는 7~17세에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청소년 대상의 대규모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예후가 나쁜 청소년들은 장애가 일찍 찾아왔을 뿐 아니라 정신병, 불안, ADHD 그리고 조증과 울증 간의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바로 맥스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의 앞날이 그렇게 밝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18번째 생일은 먼 훗날의 일이다. 블레이크 부부는 아이가 별 탈 없이 11세 생일을 맞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그런 현실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내려 한다. “좋든 나쁘든 맥스는 우리 아이다. 나쁜 일이 많지만 좋은 일도 많다”고 에이미가 말했다. “엄마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줄 아는 아이를 둬서 정말 행운이다. 맨빌에 다니는 많은 자폐아동의 부모는 그런 말을 전혀 듣지 못한다. 아이가 아무리 울고 때리고 ‘미워’ 라고 말해도 나는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을 듣지 않는가.” 지난 5월 어느 날 밤 맥스가 차분히 숙제를 마친 뒤 엄마와 함께 푹신한 안락의자에 몸을 뉘었다. 에이미가 책을 읽어주는 사이 겨우 7시 45분인데도 아이의 눈꺼풀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윽고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하자 에이미가 광란이 일어날 것 같으냐고 물었다. 맥스는 “그럴 거 같아요. 얼른 해 버리고 말죠”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광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몇분 간 조용히 있더니 엄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의 마음이 세상만큼 넓어요.” 그래야 하는 이유를 지금은 잘 모를지라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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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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