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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철도혁명’

중국의‘철도혁명’

승객들로 붐비는 열차 안에서 밤새 시달리는 고된 여정. 지난 수십 년 중국 철도여행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동독에서 설계한 열차들이 낡은 레일 위를 덜컹거리며 달렸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향후 3년 동안 철도사업에 3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번에 새로 건설되는 2만km의 철도 중 1만3000km는 시속 350km 주행이 가능한 고속열차 용으로 설계된다.

‘광활한 영토’의 대명사였던 중국이 점점 좁아진다. 베이징에서 산시(山西)성의 성도인 타이위안(太原)까지 철도여행 시간은 이미 8시간에서 3시간으로 단축됐다. 또 1시간 가까이 걸리던 베이징~톈진(天津) 간 120km 구간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직전 27분으로 단축됐다.

10시간이 소요되던 우한(武漢)~광저우(廣州) 구간도 몇 년 후면 3시간으로 단축된다. 얼마 전 20시간에서 10시간으로 단축된 상하이~베이징 구간은 4시간으로 더 단축된다. 그러면 중국의 2대 도시인 이 두 도시 간 철도여행이 처음으로 항공여행을 상대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또 베이징에서 남부 제조업의 중심지인 광저우(廣州)까지는 현재 20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된다(현재 버스로는 하루 반이 걸린다). 중국의 철도혁명은 여러 면에서 19세기 미국의 대륙횡단 철도 건설이나 1950~60년대 미국의 주간 고속도로 개통에 비견된다. 위의 두 사회기반시설 사업은 각각 미국에 발전과 탐험, 무역의 길을 열어줬다.

이전의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에게 여행의 기회를 제공해 거리의 개념뿐 아니라 개개인이 자신의 한계에 갖는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영국 요크대의 철도역사학 교수 콜린 디발은 “자신이 사는 땅덩어리를 가늠하는 마음속 지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광활한 영토와 많은 인구, 지역 분쟁의 역사를 고려할 때 중국의 고속열차 출현은 한층 더 큰 효과를 불러올 듯하다.

지역 간 연결이 원활해지면 균형 있는 경제발전의 확산에 도움이 된다. 또 국가의 결속을 다지고 지방 장악력을 강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에도 보탬이 된다. 게다가 내분이 나라를 분열시켜 전국(戰國)시대처럼 수많은 소국이 패권을 다투는 양상을 띠게 될지 모른다는 최악의 예측이 실현될 가능성도 낮아진다.

중국 지도부는 특히 철도 덕분에 서부 오지 지역 접근이 용이해지면 국가의 인재와 산업을 서부 빈곤 지역으로 확산시키려는 운동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그래서 현재 도시와 시골, 도시화 된 동부와 농촌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부를 갈라놓는 부(富)와 사회적 지위의 격차가 좁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중국 정부가 꿈꾸는 ‘좀 더 조화로운 사회’의 실현을 앞당기기 때문이다. 고속열차는 이미 당일여행의 개념을 확장시켰고, 시안(西安) 등 고립되고 낙후된 내륙 지역을 발전하는 국가 심장부의 중심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도움을 줄 전망이다. 또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을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그리고 아직 자가용 자동차를 마련하거나 항공여행을 할 형편이 안 되는 수많은 중국인에게 손쉬운 여행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고속철도는 항공여행의 절반 가격에 똑같이 빠른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고속열차는 또 사람들이 느끼는 중국 국토의 규모를 축소시킴으로써 중국이 경제발전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한 창조성과 새로운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상하이 퉁지(同濟)대 철도·도시대중교통 연구소의 시에웨이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교통은 중국 사회의 모든 국면에 큰 영향을 끼친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문화에도 영향을 준다.” 중국 정부의 철도 부문 투자는 이미 일종의 미니 호황을 일으켰다. 상하이 북쪽 쑤저우(蘇州)[양쯔(揚子)강 삼각주 지역의 오래된 도시로 아름다운 운하와 정원들로 유명하다]의 기차역에서는 일단의 건설 노동자가 레일 위쪽 공중 높이 설치된 그물 작업대에 위태롭게 매달려 작업에 여념이 없다.

이곳에는 곧 유리와 강철로 된 새 역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1950년대에 건축된, 승강장이 몇 개 안 되는 낡은 역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광저우, 상하이 등 다른 도시들도 빨라진 새 열차들을 맞을 근사한 새 역사를 건축할 계획이다. 철도 시장에 자신감을 가진 당국은 고속열차 생산 현지화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일례로 베이징~상하이 간 새 노선을 운행하는 열차 부품 85%를 국내에서 제작한다. 또 그보다 훨씬 더 큰 경제 효과도 기대된다. 바로 소비자 지출 증대다.

예를 들면 베이징 시민들은 물가가 싼 톈진(120km 거리) 같은 곳까지 기차를 타고 쇼핑을 가기도 한다. 편도 기차 요금이 8달러 50센트에 시간이 30분도 안 걸리기 때문에 많은 중산층 시민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이들은 시간이 기차의 3배나 걸리는 버스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상하이 근처의 양쯔강 삼각주 지역이나 광저우부터 홍콩까지 주장(珠江) 삼각주 지역은 곧 1시간 이내 교통권에 들게 됨으로써 지역 간 고른 발전을 꾀하는 중국 정부의 계획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또 기존에 4시간이 걸리던 상하이~난징(南京) 간 기차여행은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75분으로 단축된다.

패션업체 메이터스 방웨이, 신발업체 아오캉 등 많은 대규모 민영기업의 본거지인 남부 저장(浙江)성의 원저우(溫州)는 해안 산악지방이라는 지리적 약점 때문에 오랫동안 곤란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 주요 항구인 닝보(寧波), 그리고 타이완의 집중 투자처인 푸젠(福建)성까지 연결되는 고속철도가 개통됐다.

궁극적으로 홍콩까지 연결될 이 철도는 소규모 가내공업 도시에서 단기간에 대형 섬유·전자 산업 도시로 탈바꿈해 중국 부동산 투자의 중심이 된 원저우의 기업가 정신을 한층 더 북돋울 전망이다. 고속철도는 또 기존 철도의 수송용량에 여유를 줌으로써 물류의 병목 현상 해소에 도움이 될 듯하다.

상하이에 있는 소매·물류 컨설팅 업체 액세스 아시아의 대표 폴 프렌치는 중국 화물열차들이 석탄과 곡물 수송에 우선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많은 외국 업체들이 상품 수송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현재 여객철도에는 많은 돈이 투자되는 반면 화물철도의 투자는 부족하다.

따라서 업체들은 가뜩이나 교통체증이 심한 고속도로 위로 과적(過積) 트럭들을 더 내보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여객철도 부문의 투자는 기존 철도가 화물 운송에 이용될 여지를 줌으로써 좀 더 효율적인 화물철도망 확보에 도움이 될 듯하다. 퉁지대의 시에 교수는 중국 정부가 2010년 말까지 새 화물열차에 400억 달러를 투자해 화물철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물철도가 강화되면 중국 정부의 서부개발 정책에 가속도가 붙을 듯하다. 이 정책은 지난 2000년 서부의 일부 빈곤 지역에서 동부 해안 지방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룩해 위험한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완화한다는 목표로 시작됐다. 하지만 연결 교통편이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자격 있는 인재들이 서부 오지에서 일하기를 꺼리는 바람에 별 진전이 없었다.

고속철도는 이 모든 문제를 해소하는 데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중국 고대 왕조들의 수도였던 시안은 지리적으로 고립된 위치 탓에 첨단 산업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베이징에서 1200km 떨어진 이곳까지 기차로 가려면 지금은 10시간이 걸리지만 곧 4시간으로 단축된다.

중국 정부는 또 동부 해안의 대도시로 인구가 몰리는 현상을 해소하려고 중소도시 발전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 정책 또한 고속철도의 덕을 볼 전망이다. 고속철도에는 빠르게 확산 중인 대도시의 경철도망이 포함된다. 경철도는 중심 도시에서 소규모 위성도시로의 이주나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의 통근을 장려하는 수단이 된다.

좀 더 좋은 생활 환경을 원하는 퇴직자들도 소규모 위성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가의 결속을 다진다는 고속철도 사업의 목표는 중국 정부에 예상 밖의 어려움을 안길 가능성도 있다. 일부 고속철도 구간은 인기가 매우 높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가는 승객들도 많다.

이런 승객들의 분노를 반영해 일부 언론은 국영 사업인 철도를 민간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실었다. 청두(成都)상보에 실린 한 기사에서는 ‘독점 체제가 자유경쟁 체제로 바뀌어야만 양질의 철도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지역 간 이동이 용이해지면 인구이동을 철저히 제한하는 중국 정부의 호구(戶口)제도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 제도는 복지와 의료・교육의 권리를 출생지나 성인이 된 후 직장생활을 해온 지역으로 국한시킨다. 상하이의 뉴욕대 분교 책임자이자 중국 도시 발전 전문가인 밍증시에 따르면 요즘 중국에서는 과거의 행정구역을 벗어나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중국인들의 도시와 거리 개념이 바뀌어 간다”고 말했다.

“요즘 상하이 시민들은 아파트 값이 싼 장쑤(江蘇)성 남부의 도시로 이주해 상하이까지 고속열차로 출퇴근(20~40분 소요)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많은 도시 거주자들이 원래 자신의 복지권이 있던 도시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 밍증시는 이런 현상이 호구제도에 큰 부담을 줌으로써 종국에는 완전히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전통적인 사회통제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다. 여행과 이동의 편리화는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의 앞날을 새롭게 내다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중국 관리들은 오랫동안 중국의 영토가 방대하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다수당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사고는 수세대 동안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20년 전만 해도 이웃 마을까지 가는 데 한나절이 걸리고,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전화를 걸려면 4시간이 걸리던 나라에선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국토가 점점 좁아진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이상 그런 장애 역시 사소해 보이지 않겠는가? 고속철도는 실제로 중국의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계획했던 방식대로는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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