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엔터테인먼트는 ‘춘추전국시대’
야구장 엔터테인먼트는 ‘춘추전국시대’
마른 오징어에 소주(1990년대), 치킨에 맥주(2000년대), 삼겹살·불족발·곱창(2010년대)···. 야구장의 공간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먹거리부터 체험 이벤트로 야구 팬들을 무섭게 끌어들인다. 과거 독특한 응원문화나 특별한 시구가 있었다면, 이제는 관중을 위해 좌석까지 뜯어고친다. 구단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마케팅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치이익.” “야, 탄다 탄다!”
불판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가 가득한 이곳. 회사원 이용신(40)씨는 집게를 들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다 고기를 태울 뻔했다. 9월 29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 최종전이었다. 고기를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비큐존’ 200여 석은 빈 좌석 없이 꽉 찼다. 이씨는 “오늘 직원 동료들과 회식을 왔다”며 “함께 온 8명이 SK팬이라 회식 장소로 여기만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8년 전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조리원 동기’ 5명은 간혹 자녀들을 데리고 야구장을 찾는다. 어른들은 바비큐존에서 맥주를 마시고, 아이들은 놀이시설에서 시간을 보낸다. 관람석 뒤쪽 ‘타요’ 키즈존은 줄 서 있는 아이들로 인산인해였다. 응원 열기에 땀 범벅이 된 이연실(39) 씨는 “바비큐존 덕에 조리원 모임이 더 활발해졌다”며 웃었다. 추석 연휴를 앞둔 금요일의 열기는 밤이 깊어갈수록 더 뜨거워졌다.
요즘 야구장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변모했다. ‘스포테인먼트’를 실현하기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테인먼트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다. 야구장 곳곳을 다양한 콘텐트로 빼곡하게 채워 야구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어린이 등 다양한 팬 층을 흡수하고자 했다.
2007년 SK는 스포테인먼트로 한국 프로야구에 새 바람을 불러온 주인공이다. SK 와이번스 수석코치이던 이만수 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이 팬티 차림으로 그라운드를 돌면서 시작됐다. 10년간 진화를 거듭했다. 올해엔 야구장 전체가 ‘스포테인먼트 파크’ 콘셉트로 새 단장했다. 지난해 전 세계 야구장에서 가장 큰 전광판인 ‘빅보드’를 설치했던 SK는 올해 구장 개·보수에만 무려 32억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한 번의 행사를 위해서 500만원 이상 투자한다. 한 시즌 약 12번의 주말 홈경기를 치르는 것을 고려하면 약 6,000만원 이상을 팬들의 추억을 위해 지출하는 셈이다.
야구장은 개·보수 공사로 ‘신축붐’이 일었다. 가족 관중을 공략하는 구단은 특히 잔디석을 늘리는 데 공을 들였다. 가족끼리 소풍 온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다. 돗자리를 펴놓고 관람할 수 있어서 인기를 누린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잔디석은 좌석 판매율 86%를 기록하기도 했다. 어린이 관중을 공략해 놀이터나 모래사장을 함께 설치한다. KT는 계단식으로 바꿨다. KT는 약해진 공이 날아오는 외야 쪽이라 안전한 편이다. 평일엔 텐트도 설치할 수 있다.
좌석에도 테마가 있어야 한다. SK의 대표적인 좌석이 우측 외야 상단에 위치한 바비큐존이다. 바비큐존은 국내 최초로 조리가 가능한 좌석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좌측 외야 상단에는 역시 한국 프로야구 최초 잔디 관람석 그린존이 있다. 그린존의 인기로 올해는 규모를 2배 늘렸다.
롯데와 삼성은 각각 특정 선수와 감독을 응원할 수 있는 ‘이대호 응원존’ ‘한수울타리석’을 마련했다. 롯데는 고향으로 돌아온 이대호가 1루수로 출전하는 만큼 1루 베이스와 가장 가까운 익사이팅존을 이대호 응원존으로 활용한다. 삼성은 김한수 신임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는 한수울타리석을 3루 익사이팅존에 일부 지정했다.
몸이 편한 걸로 치면 프리미엄석만한 게 없다. 한화는 브랜드 체험관 ‘홈클라우드존’을 마련했다. 인테리어 전문기업인 한화 L&C 제품으로 실제 가정집처럼 꾸몄다. 1층에 정원, 2층엔 주방·거실·테라스가 있는 집을 전광판 우측에 지었다.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선 방 크기에 따라 입장 가능 인원(10~18인)과 가격(50만~100만원)이 달라지는 프리미엄석 ‘스카이박스’를 마련했다. 스카이박스는 소파와 테이블이 놓인 방에서 편안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경기장 방향으로 테라스에 앉아 경기도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수원 KT위즈파크는 관중석을 2000석 증축했고, 피크닉 분위기 테라스석도 갖췄다. 모기업에서 신성장 동력으로 삼은 VR(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5G존도 꾸미는 중이다. 기아도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 9억 원을 들여 식음료 매장을 단장했다. 생맥주 판매 시설인 ‘비어탭’도 갖췄다. 1, 3루 끝에 들어선 ‘챔피언스 펍’(champions pub)은 관중이 서서 맥주와 음료,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바(bar)가 마련된 공간으로 TV 3대를 설치해 스포츠 펍 분위기로 조성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구단 특성을 살린 먹거리 판매도 유행이다. 2015년 수원 KT위즈파크는 유명 맛집인 진미통닭과 보영만두를 입점시켰다.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의 대경맥주는 ‘디 퍼스트(D First)’ 등 수제맥주를 대구에서 생산해 판매한다. 대구 명물 납작만두부터 떡볶이·모듬튀김·치즈떡도그 등을 모은 로라방앗간의 만루홈런 세트는 야구장에서만 판다. 사직구장에서는 부산 명물인 자갈치 꼼장어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선수 이름을 딴 메뉴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다. 경남 마산 구장에서는 NC다이노스 내야수 박민우 선수의 이름을 딴 바나나 음료 ‘민우에게 바나나’가 인기다. 박 선수가 바나나 우유를 좋아한다고 알려져서다. 같은 구장 투수 이재학 선수의 이름을 딴 딸기 주스도 판매한다. 이 선수가 평소 얼굴이 딸기처럼 잘 빨개져서 생긴 상품이다.
지난해 개장한 한국 첫 돔구장 넥센 고척스카이돔은 세계 최초로 중식 레스토랑을 입점시켰다. 좌석으로 배달도 가능하다.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메뉴는 ‘뉴욕버거’의 ‘돔구장세트’다.
이벤트는 야구장의 감초다. 고척돔구장에선 홈경기가 열리는 금요일에 ‘클럽 데이’가 펼쳐진다. 이날 고척돔은 경기 종료 후 어둠 속에 현란한 조명을 켠다.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돔구장의 이점을 십분 활용했다.
SK 역시 금요일인 그날 ‘불금파티’가 열렸다. 구장을 압도하는 음향 시설으로 인해 참여하는 팬들은 웬만한 공연장 이상의 화려함과 짜릿함이 전해진다. 10년째 SK팬으로 인천 야구장을 찾는 최성현(39)씨는 “경기를 보기만 하던 관람객에서 함께 즐기는 공간에 참여한 기분“이라며 “이기든 지든 경기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치켜세웠다.
- 박지현·양미선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원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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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가 가득한 이곳. 회사원 이용신(40)씨는 집게를 들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다 고기를 태울 뻔했다. 9월 29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 최종전이었다. 고기를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비큐존’ 200여 석은 빈 좌석 없이 꽉 찼다. 이씨는 “오늘 직원 동료들과 회식을 왔다”며 “함께 온 8명이 SK팬이라 회식 장소로 여기만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8년 전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조리원 동기’ 5명은 간혹 자녀들을 데리고 야구장을 찾는다. 어른들은 바비큐존에서 맥주를 마시고, 아이들은 놀이시설에서 시간을 보낸다. 관람석 뒤쪽 ‘타요’ 키즈존은 줄 서 있는 아이들로 인산인해였다. 응원 열기에 땀 범벅이 된 이연실(39) 씨는 “바비큐존 덕에 조리원 모임이 더 활발해졌다”며 웃었다. 추석 연휴를 앞둔 금요일의 열기는 밤이 깊어갈수록 더 뜨거워졌다.
요즘 야구장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변모했다. ‘스포테인먼트’를 실현하기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테인먼트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다. 야구장 곳곳을 다양한 콘텐트로 빼곡하게 채워 야구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어린이 등 다양한 팬 층을 흡수하고자 했다.
2007년 SK는 스포테인먼트로 한국 프로야구에 새 바람을 불러온 주인공이다. SK 와이번스 수석코치이던 이만수 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이 팬티 차림으로 그라운드를 돌면서 시작됐다. 10년간 진화를 거듭했다. 올해엔 야구장 전체가 ‘스포테인먼트 파크’ 콘셉트로 새 단장했다.
좌석도 구장도 관중 ‘맞춤형’
야구장은 개·보수 공사로 ‘신축붐’이 일었다. 가족 관중을 공략하는 구단은 특히 잔디석을 늘리는 데 공을 들였다. 가족끼리 소풍 온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다. 돗자리를 펴놓고 관람할 수 있어서 인기를 누린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잔디석은 좌석 판매율 86%를 기록하기도 했다. 어린이 관중을 공략해 놀이터나 모래사장을 함께 설치한다. KT는 계단식으로 바꿨다. KT는 약해진 공이 날아오는 외야 쪽이라 안전한 편이다. 평일엔 텐트도 설치할 수 있다.
좌석에도 테마가 있어야 한다. SK의 대표적인 좌석이 우측 외야 상단에 위치한 바비큐존이다. 바비큐존은 국내 최초로 조리가 가능한 좌석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좌측 외야 상단에는 역시 한국 프로야구 최초 잔디 관람석 그린존이 있다. 그린존의 인기로 올해는 규모를 2배 늘렸다.
롯데와 삼성은 각각 특정 선수와 감독을 응원할 수 있는 ‘이대호 응원존’ ‘한수울타리석’을 마련했다. 롯데는 고향으로 돌아온 이대호가 1루수로 출전하는 만큼 1루 베이스와 가장 가까운 익사이팅존을 이대호 응원존으로 활용한다. 삼성은 김한수 신임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는 한수울타리석을 3루 익사이팅존에 일부 지정했다.
몸이 편한 걸로 치면 프리미엄석만한 게 없다. 한화는 브랜드 체험관 ‘홈클라우드존’을 마련했다. 인테리어 전문기업인 한화 L&C 제품으로 실제 가정집처럼 꾸몄다. 1층에 정원, 2층엔 주방·거실·테라스가 있는 집을 전광판 우측에 지었다.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선 방 크기에 따라 입장 가능 인원(10~18인)과 가격(50만~100만원)이 달라지는 프리미엄석 ‘스카이박스’를 마련했다. 스카이박스는 소파와 테이블이 놓인 방에서 편안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경기장 방향으로 테라스에 앉아 경기도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수원 KT위즈파크는 관중석을 2000석 증축했고, 피크닉 분위기 테라스석도 갖췄다. 모기업에서 신성장 동력으로 삼은 VR(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5G존도 꾸미는 중이다. 기아도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 9억 원을 들여 식음료 매장을 단장했다. 생맥주 판매 시설인 ‘비어탭’도 갖췄다. 1, 3루 끝에 들어선 ‘챔피언스 펍’(champions pub)은 관중이 서서 맥주와 음료,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바(bar)가 마련된 공간으로 TV 3대를 설치해 스포츠 펍 분위기로 조성했다.
수원 통닭, 대구 납작만두…지역 먹거리 모여라
특히 선수 이름을 딴 메뉴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다. 경남 마산 구장에서는 NC다이노스 내야수 박민우 선수의 이름을 딴 바나나 음료 ‘민우에게 바나나’가 인기다. 박 선수가 바나나 우유를 좋아한다고 알려져서다. 같은 구장 투수 이재학 선수의 이름을 딴 딸기 주스도 판매한다. 이 선수가 평소 얼굴이 딸기처럼 잘 빨개져서 생긴 상품이다.
지난해 개장한 한국 첫 돔구장 넥센 고척스카이돔은 세계 최초로 중식 레스토랑을 입점시켰다. 좌석으로 배달도 가능하다.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메뉴는 ‘뉴욕버거’의 ‘돔구장세트’다.
이벤트는 야구장의 감초다. 고척돔구장에선 홈경기가 열리는 금요일에 ‘클럽 데이’가 펼쳐진다. 이날 고척돔은 경기 종료 후 어둠 속에 현란한 조명을 켠다.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돔구장의 이점을 십분 활용했다.
SK 역시 금요일인 그날 ‘불금파티’가 열렸다. 구장을 압도하는 음향 시설으로 인해 참여하는 팬들은 웬만한 공연장 이상의 화려함과 짜릿함이 전해진다. 10년째 SK팬으로 인천 야구장을 찾는 최성현(39)씨는 “경기를 보기만 하던 관람객에서 함께 즐기는 공간에 참여한 기분“이라며 “이기든 지든 경기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치켜세웠다.
- 박지현·양미선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원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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