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의 art TALK(2)] 동경에서 열린 '선 샤워' 전
[이지윤의 art TALK(2)] 동경에서 열린 '선 샤워' 전
동남아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상 현상인 ‘여우비’인, ‘선 샤워(SUN SHOWER)’ 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본 전시는 우여곡절의 역사를 거쳐 온 이 지역을 나타내는 메타포로다. 특히 이 전시가 ASEAN1 창립 50주년을 맞아 모리미술관과 국립 신미술관에서 동시 개최된다는 점이 놀랍다. 이지윤의 아트TALK의 두 번째 이야기는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이다. 사실 동남아시아라 하면 약 11개의 나라에 인구가 약 6억 명이 되는 매우 큰 지역이고, 다양한 민족과 다종교로 구성된 지역이기에, 이 지역의 특징적인 미술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다. 특히 우리에게 동남아시아 지역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동남아시아 각국은 유럽 여러 나라의 식민지로 각기 서로 다른 문화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통합된 지역 정체성을 정립하기란 더욱 쉽지 않다.
동남아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상 현상인 ‘여우비’인, ‘선 샤워(SUN SHOWER)’ 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본 전시는 이러한 우여곡절의 역사를 거쳐 온 이 지역을 나타내는 메타포로서, 1980년대 이후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을 한자리에 소개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 전시회였다.
특별히 이 전시가 ASEAN1 창립 50주년을 맞아 모리미술관과 국립 신미술관에서 동시 개최된다는 점이 놀랍다. 일본은 1972년 재팬 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을 설립하고 당시 ASEAN 국가들에 대한 문화적 지원을 시작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아젠다로 지정했다. 일본이 국제화에 있어, 지역적·문화적 리더십이 중요다는 점을 일찍이 인지하고 ASEAN 국가들의 문화 미술관들을 연계하고, 교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력의 결실로 지난 40년간 축적된 지식을 기반한 연구로서 세계 처음으로, 아세안 국가의 큐레이터들과 일본 미술관의 큐레이터 14명이 2년반 동안 본 전시를 만들어 냈다. 아세안 10개국의 16개 도시에서 총 86명의 작가가 선정되었고, 190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사실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대대적인 콜렉션 구입을 시작한 곳은 미국의 구겐하임이다. 구겐하임은 바젤 아트페어 메인 스폰서이기도 한 UBS은행과 함께 글로벌 아트 콜렉션을 구축하고 있고, 그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글로컬(glocal)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글로벌 미술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신 시장 구축과 함께 아시아 미술이 또 미국에 의해 선점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2013년 개최된 구겐하임의 전시는 싱가포르 출신 큐레이터인 준엽(June Yup)이 큐레이팅 하였고, ‘노 컨트리(NO COUNTRY)’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사실 그 어떠한 이유이던 간에, 세계적으로 동남아 작가들이 처음 소개되었던 2013년의 전시가 2017년 일본에서 열린 이 전시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5년간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 동남아시아 미술계·화랑가의 발전 또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10년 전부터 글로벌 미술계에 대한 인식이 시작되었지만, 지난 전시 이후 동남아시아 작가들 중 해외에서 관심을 끈 작가들의 경우 화랑과의 ‘전속 작가’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또한 동남아시아 갤러리들의 활동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또 하나,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글로벌 미술시장 진출에 도움이 된 것은, 그들의 외국어 능력이기도 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영국·프랑스·네덜란드·스페인 식민지였던 그들의 역사가 작가들의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여전히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도 우리는 예술 생태계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데 상당한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도쿄에서도 이렇게 신미술관과 모리미술관이 공동으로 전시를 진행한 적은 거의 없다시피한데, 이처럼 대규모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9개의 주제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열정과 혁명들> <역사적 아카이브> <다양하게 공존하는 정체성> <일상의 삶> <현대적 발전과 그 뒤의 그림자> <예술이 무엇이고, 왜 하는가?> <명상적 미디어> <역사와의 대화> 라는 주제로, 190점의 작품들을 나누었다. 이 9개 주제의 제목이 시사하듯, 이번 전시는 구겐하임의 전시와는 사뭇 다르게 다소 역사적 사건과 연계된 역사책의 시각화와도 같은 연구 중심 전시였다. 구겐하임 전시는 UBS의 콜렉션이 되는 만큼, 지난 5년간 소더비와 싱가포르 아트스테이지 등 동남아시아 중요한 미술 시장에서 큰 각광을 받던 아린 수나리오, 와누 등의 스타 작가들 위주로 많이 보여진 데 반해, 본 전시는 1927년생 작가부터 1987년생 작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가들의 다양한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평적 관점이 주가 되는 전시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또한 작품 캡션을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많은 일본 미술관들의 소장품이 소개된 전시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사실이다.
사실 동남아시아 작가라고 하지만 우리가 예전에 백남준 선생님이 글로벌한 작가로 활동했음에도 덜 알려졌듯이, 태국·인도네시아 등의 출신이지만 해외에서 거주하며 글로벌한 스타 작가로 자리매김해 있는 작가들도 많다. 그 중 한 작가인 아핏차퐁은 차이 시리와 협업을 하여 전시장 입구에 ‘선 샤워’라는 대형 조각을 소개하였다.
눈을 반쯤 감은 8m의 코끼리는 마치 죽은 듯 고요하게 누워 있다. 둥실 떠 있는 코끼리는 공간에 위화감을 주며 그 위에는 색이 변하는 원반이 설치되어 극적 효과를 연출한다. 본 작품은 모뉴먼트이자 사실과 픽션, 물질과 정신, 존재와 부재라는 양면성을 의미하며 이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선 샤워’라는 이름을 통해 복잡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진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의 양면성을 표상한다.
또한 전시 섹션들이 제시하듯,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러한 작품들 중 와산 시티켓의 <파란 10월> (1996)은 매우 압도적인 설치로 다가온 작품이다. 1976년 방콕 타마삿대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듯한 화면과 신문 보도내용이나 학생운동에서 사용된 노래의 가사 등을 한 화면에 담아 낸다. 당시 대학생이기도 한 그는 이 사건을 중심으로 사회파 작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활약하였다. 아래에는 플래카드를 든 자신의 미니어처를 늘어놓은 <잃어버린 정보> (2010)를 설치했다. 이 작품은 가끔 빈 플래카드에 관람자가 문구를 써 넣으며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전시된다. 동남아의 중요한 작가들 또한 우리가 민중예술이라는 장르를 가지고 있듯, 정치·사회적 표현으로써 예술을 이용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소개할 만한 미술관이나 화랑이 부재한 시대에서도 작가들이 중요한 액티비스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미술계를 리드해갔다는 점이 이번 동남아시아 전시작품을 보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FX 하루소노의 출품작인 <목소리 없는 목소리> (1993-1994) 작품은 9개의 패널에 수화로 표현한 데모크라시라는 글자를 보여준다. 마지막 글자를 만드는 손은 밧줄로 묶여 있는데, 이는 자유롭게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당시에 존재하던 언론적 사상적 자유에 대한 억압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화계 자바인인 FX 하루소노는 최근에는 중화계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억압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우 아름다운 드로잉으로, 보여주는 손짓이 무엇일지 궁금한 관객에게 이 내용이 수화로 만들어진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알게 되는 순간은 매우 진한 감동을 주게 되는 동시에 작가의 예술적 승화라는 것이 이런 것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구스 스와게의 <관용의 벽> (2012)과 <사회의 거울> (2013) 작품도 그러하다.
이 작품들은 인도네시아의 전형적 일상의 경험을 관람자에게 전달한다. 슬럼가와 고급 주택가 양측에 있는 모스크에서부터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시에 이 작업에는 파티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시외버스 뒷자리에서 나누는 담화 등 다양한 개인적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육체의 표상인 귀는 작품의 구조에 개입해 제시하는 그의 개인적 견해를 표현한다. 그의 작품은 불안과 공포, 억압과 거부 도발이라는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 하며, 다문화가 가져온 위기를 반영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렇듯 본 전시는 아마도 우리에게 앞으로의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의 역사를 말할 때 기준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전시로 자리할 것 같다. 다만 그들의 미술사를 논할 수 있는 국립 미술관들의 전문성과 사관이 만들어져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본 미술사가들의 해석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하게 자국 내에서 재토론되고 비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 이지윤은… 이지윤은 지난 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학박사/미술경영학석사를 취득하고, 국제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큐레이터이다. 2014년 귀국하여 DDP 개관전 <자하 하디드360도> 을 기획하였고, 지난 3년간 경복궁 옆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첫 운영부장(Managing Director)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서 설립한 현대미술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 대표로서, 기업 콜렉션 자문 및 아트 엔젤 커미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하> 사회의> 관용의> 목소리> 잃어버린> 파란> 역사와의> 명상적> 예술이> 현대적> 일상의> 다양하게> 역사적> 열정과>빠르게>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동남아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상 현상인 ‘여우비’인, ‘선 샤워(SUN SHOWER)’ 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본 전시는 이러한 우여곡절의 역사를 거쳐 온 이 지역을 나타내는 메타포로서, 1980년대 이후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을 한자리에 소개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 전시회였다.
특별히 이 전시가 ASEAN1 창립 50주년을 맞아 모리미술관과 국립 신미술관에서 동시 개최된다는 점이 놀랍다. 일본은 1972년 재팬 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을 설립하고 당시 ASEAN 국가들에 대한 문화적 지원을 시작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아젠다로 지정했다. 일본이 국제화에 있어, 지역적·문화적 리더십이 중요다는 점을 일찍이 인지하고 ASEAN 국가들의 문화 미술관들을 연계하고, 교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력의 결실로 지난 40년간 축적된 지식을 기반한 연구로서 세계 처음으로, 아세안 국가의 큐레이터들과 일본 미술관의 큐레이터 14명이 2년반 동안 본 전시를 만들어 냈다. 아세안 10개국의 16개 도시에서 총 86명의 작가가 선정되었고, 190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사실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대대적인 콜렉션 구입을 시작한 곳은 미국의 구겐하임이다. 구겐하임은 바젤 아트페어 메인 스폰서이기도 한 UBS은행과 함께 글로벌 아트 콜렉션을 구축하고 있고, 그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글로컬(glocal)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글로벌 미술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신 시장 구축과 함께 아시아 미술이 또 미국에 의해 선점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2013년 개최된 구겐하임의 전시는 싱가포르 출신 큐레이터인 준엽(June Yup)이 큐레이팅 하였고, ‘노 컨트리(NO COUNTRY)’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사실 그 어떠한 이유이던 간에, 세계적으로 동남아 작가들이 처음 소개되었던 2013년의 전시가 2017년 일본에서 열린 이 전시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5년간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 동남아시아 미술계·화랑가의 발전 또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10년 전부터 글로벌 미술계에 대한 인식이 시작되었지만, 지난 전시 이후 동남아시아 작가들 중 해외에서 관심을 끈 작가들의 경우 화랑과의 ‘전속 작가’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또한 동남아시아 갤러리들의 활동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또 하나,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글로벌 미술시장 진출에 도움이 된 것은, 그들의 외국어 능력이기도 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영국·프랑스·네덜란드·스페인 식민지였던 그들의 역사가 작가들의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여전히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도 우리는 예술 생태계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데 상당한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도쿄에서도 이렇게 신미술관과 모리미술관이 공동으로 전시를 진행한 적은 거의 없다시피한데, 이처럼 대규모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9개의 주제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열정과 혁명들> <역사적 아카이브> <다양하게 공존하는 정체성> <일상의 삶> <현대적 발전과 그 뒤의 그림자> <예술이 무엇이고, 왜 하는가?> <명상적 미디어> <역사와의 대화> 라는 주제로, 190점의 작품들을 나누었다. 이 9개 주제의 제목이 시사하듯, 이번 전시는 구겐하임의 전시와는 사뭇 다르게 다소 역사적 사건과 연계된 역사책의 시각화와도 같은 연구 중심 전시였다. 구겐하임 전시는 UBS의 콜렉션이 되는 만큼, 지난 5년간 소더비와 싱가포르 아트스테이지 등 동남아시아 중요한 미술 시장에서 큰 각광을 받던 아린 수나리오, 와누 등의 스타 작가들 위주로 많이 보여진 데 반해, 본 전시는 1927년생 작가부터 1987년생 작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가들의 다양한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평적 관점이 주가 되는 전시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또한 작품 캡션을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많은 일본 미술관들의 소장품이 소개된 전시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사실이다.
사실 동남아시아 작가라고 하지만 우리가 예전에 백남준 선생님이 글로벌한 작가로 활동했음에도 덜 알려졌듯이, 태국·인도네시아 등의 출신이지만 해외에서 거주하며 글로벌한 스타 작가로 자리매김해 있는 작가들도 많다. 그 중 한 작가인 아핏차퐁은 차이 시리와 협업을 하여 전시장 입구에 ‘선 샤워’라는 대형 조각을 소개하였다.
눈을 반쯤 감은 8m의 코끼리는 마치 죽은 듯 고요하게 누워 있다. 둥실 떠 있는 코끼리는 공간에 위화감을 주며 그 위에는 색이 변하는 원반이 설치되어 극적 효과를 연출한다. 본 작품은 모뉴먼트이자 사실과 픽션, 물질과 정신, 존재와 부재라는 양면성을 의미하며 이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선 샤워’라는 이름을 통해 복잡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진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의 양면성을 표상한다.
또한 전시 섹션들이 제시하듯,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러한 작품들 중 와산 시티켓의 <파란 10월> (1996)은 매우 압도적인 설치로 다가온 작품이다. 1976년 방콕 타마삿대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듯한 화면과 신문 보도내용이나 학생운동에서 사용된 노래의 가사 등을 한 화면에 담아 낸다. 당시 대학생이기도 한 그는 이 사건을 중심으로 사회파 작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활약하였다. 아래에는 플래카드를 든 자신의 미니어처를 늘어놓은 <잃어버린 정보> (2010)를 설치했다. 이 작품은 가끔 빈 플래카드에 관람자가 문구를 써 넣으며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전시된다. 동남아의 중요한 작가들 또한 우리가 민중예술이라는 장르를 가지고 있듯, 정치·사회적 표현으로써 예술을 이용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소개할 만한 미술관이나 화랑이 부재한 시대에서도 작가들이 중요한 액티비스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미술계를 리드해갔다는 점이 이번 동남아시아 전시작품을 보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FX 하루소노의 출품작인 <목소리 없는 목소리> (1993-1994) 작품은 9개의 패널에 수화로 표현한 데모크라시라는 글자를 보여준다. 마지막 글자를 만드는 손은 밧줄로 묶여 있는데, 이는 자유롭게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당시에 존재하던 언론적 사상적 자유에 대한 억압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화계 자바인인 FX 하루소노는 최근에는 중화계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억압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우 아름다운 드로잉으로, 보여주는 손짓이 무엇일지 궁금한 관객에게 이 내용이 수화로 만들어진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알게 되는 순간은 매우 진한 감동을 주게 되는 동시에 작가의 예술적 승화라는 것이 이런 것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구스 스와게의 <관용의 벽> (2012)과 <사회의 거울> (2013) 작품도 그러하다.
이 작품들은 인도네시아의 전형적 일상의 경험을 관람자에게 전달한다. 슬럼가와 고급 주택가 양측에 있는 모스크에서부터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시에 이 작업에는 파티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시외버스 뒷자리에서 나누는 담화 등 다양한 개인적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육체의 표상인 귀는 작품의 구조에 개입해 제시하는 그의 개인적 견해를 표현한다. 그의 작품은 불안과 공포, 억압과 거부 도발이라는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 하며, 다문화가 가져온 위기를 반영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렇듯 본 전시는 아마도 우리에게 앞으로의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의 역사를 말할 때 기준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전시로 자리할 것 같다. 다만 그들의 미술사를 논할 수 있는 국립 미술관들의 전문성과 사관이 만들어져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본 미술사가들의 해석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하게 자국 내에서 재토론되고 비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 이지윤은… 이지윤은 지난 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학박사/미술경영학석사를 취득하고, 국제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큐레이터이다. 2014년 귀국하여 DDP 개관전 <자하 하디드360도> 을 기획하였고, 지난 3년간 경복궁 옆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첫 운영부장(Managing Director)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서 설립한 현대미술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 대표로서, 기업 콜렉션 자문 및 아트 엔젤 커미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하> 사회의> 관용의> 목소리> 잃어버린> 파란> 역사와의> 명상적> 예술이> 현대적> 일상의> 다양하게> 역사적> 열정과>빠르게>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