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재계 ‘아메리칸 드림’③] 현대차, ‘전기차 美 생산’ 카드 꺼냈다

미국 현지 생산 위해 5년간 8조4000억원 투자
대단위 투자 통해 글로벌 시장서 존재감 키워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바마 공장 [사진 Hyundai Motor Manufacturing Alabama]
 
‘자동차 제조사’에서 ‘모빌리티 플랫폼 프로바이더’로 변화를 선언한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확장하려는 ‘아메리칸 드림’을 구상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5년간 74억 달러(한화 약 8조4000억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이는 최근 활발했던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 기조를 감안할 때 놀랄 만한 수준은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이 전권을 잡은 뒤 미국 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수차례 단행해왔다. 다만 뜨거운 감자인 ‘전기차 생산’이 포함돼 이목이 집중된다.  
 

자율주행‧UAM‧로보틱스 연구개발, 미국으로 향한 이유


일각에선 현대차그룹의 이번 투자 계획에 대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내놓은 ‘선물’이라고 보지만 자동차업계에선 이미 예정했던 투자 계획을 정리해 발표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모빌리티 생태계의 중심에 있는 미국에 미래를 위한 투자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게 자동차업계의 시각이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시대’의 개막과 동시에 아메리칸 드림을 키워왔다. 미국에서의 대단위 투자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전략이다.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 시절이던 2019년 20억 달러를 출자해 미국 자율주행 업체 앱티브와 조인트벤처(JV) 설립을 추진했다. 모셔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JV는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연구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모셔널의 본사는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다. 현대차그룹이 2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한 셈이다. 자동차업계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업계 관계자는 “모셔널은 자율주행 관련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회사로, 현대차그룹은 이 투자로 결국 첨단 기술을 연구할 인력을 확보한 것”이라며 “관련 인재가 집중돼 있는 미국을 떠나 한국에서 회사를 설립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투자가 현대차그룹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자율주행’의 변방이었던 현대차그룹이 이 한 건의 투자로 글로벌 자율주행 생태계에서 주목받는 플레이어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의 미래 투자는 이미 미국으로 향해있는 상태다. 모셔널 본사 뿐 아니라 정 회장이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꼽은 UAM과 로보틱스의 중심 축이 미국에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일반도로에서 주행 중인 모셔널의 무인 자율주행차. [사진 모셔널]

업계에선 이번에 발표한 투자 계획의 상당 금액이 미국 워싱턴DC에 설립할 현대차의 UAM 사업 전담 법인에 투자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한 축인 ‘로보틱스’의 중심은 인수를 진행중인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약 1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입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기로 했으며, 현재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금액도 이번 투자 계획 속에 포함됐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UAM은 워싱턴 자회사를 통해 생태계 조성 투자에 집중한고, 로보틱스 분야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중심으로, 자율주행 분야도 앱티브와의 JV인 모셔널과 로보택시 상용화 파트너인 리프트를 중심으로 투자될 것”이라며 “투자 방식은 설비투자뿐만 아니라 R&D, 지분 인수, M&A 등 다양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UAM과 로보틱스 분야의 사업화는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이라며 “최고 수준의 인력 확보는 물론 관련 업계와의 원활한 협력을 위해서라도 미국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이번에 발표한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 계획 중 가장 주목받는 건 ‘전기차 미국 생산’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를 내년부터 미국에서도 생산한다는 게 중심이다.  

이는 자율주행과 UAM 등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투자’와는 결이 다르다. 미래 기술 패권이 아니라 당장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투자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미국 현지 생산 계획을 밝힌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차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국 내 전동화 리더십을 확보하겠다는 차원으로 읽힌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량 중 미국 시장 판매량은 절대적으로 큰 수치다. 지난해 기준 현대차‧기아는 2020년 기준 미국에서 122만4758대(현대차 63만8653대, 기아 58만6105대)를 팔았다. 국내 시장을 제외하곤 단일 국가 중 가장 많은 판매로, 같은 해 현대차그룹 판매량(635만대)의 20% 수준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에 이렇게 중요한 미국 시장은 빠르게 ‘전기차’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현대차그룹이 미국시장의 영향력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전기차를 팔기 위해선 ‘현지 생산’이 필수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친환경차 산업에서 100만개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건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월 정부기관의 공용차량을 미국산 부품 50% 이상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한 전기차로 교체하겠다는 ‘바이 아메리칸’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여기에 전기차와 배터리의 미국 현지 생산을 유도하거나 강제하는 강력한 정책들이 수립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부의 입김 뿐만이 아니다. 김진우 연구원은 “구글, 애플, 아마존 등 현지 IT 기업들과 미래차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최신 설비를 갖추는 게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국내 투자하라” 노조 반발도


현대차그룹의 ‘아메리칸 드림’에 반기를 드는 세력도 있다. 바로 현대차그룹의 노동조합이다. 국내 자동차공장의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노조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 발표가 있은 직후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는 “사측의 일방적인 미국 투자 계획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며 “노조의 뜻을 무시하고 일방적 해외투자를 강행한다면 노사 공존공생은 결코 요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이 지난 12일 울산 북구 현대차 문화회관에서 열린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노조는 반대의 근거로 단체협약을 들고 있다. 현대차 노조 단체협약 42조에는 “회사는 해외공장 신설, 증설(엔진, 변속기, 소재, CKD공장 포함) 및 해외공장 차종투입 계획 확정시 조합에 설명회를 실시하고, 해외공장 신설 및 차종 투입으로 인한 조합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고용안정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측은 “국내 전기차 생산 물량의 이관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고용안정위 절차를 거칠 의무가 없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현대차그룹과 노조의 갈등에 주목한다. 단순히 미국 생산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뿐 아니라 중국 및 유럽 등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하며 전기차의 국내 생산 문제는 언젠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지난해 육아휴직자 10명 중 3명은 남성…처음으로 30% 넘어

2국민 55%는 ‘국장’보다 ‘미장’ 선호…그 이유는?

3SK텔레콤, MWC 2025 참가…AI 기반 혁신 기술 공개

4주가 '반토막' 더본코리아 ...백종원 '오너 리스크' 함정 빠지나

5비만치료제 개발 드라이브…新치료제 개발 속도 내는 한미

6‘똘똘한 1채’ 열풍…지난해 서울 아파트 외지인 매입 역대 최고

7삼성물산, 4544억원 규모 송파 대림가락 재건축 시공사 선정

8한미약품그룹 갈등 종결…지배구조 향방 주목

9불확실의 시대, 리더는 왜 독서를 멈출 수 없는가

실시간 뉴스

1지난해 육아휴직자 10명 중 3명은 남성…처음으로 30% 넘어

2국민 55%는 ‘국장’보다 ‘미장’ 선호…그 이유는?

3SK텔레콤, MWC 2025 참가…AI 기반 혁신 기술 공개

4주가 '반토막' 더본코리아 ...백종원 '오너 리스크' 함정 빠지나

5비만치료제 개발 드라이브…新치료제 개발 속도 내는 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