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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살과의 전쟁'…비만세 도입하면 건강해질까

선진국 등 전 세계 42개국 비만세 도입
설탕, 소금 등 살찌는 음식에 부과 중
우리나라도 10년 째 찬반 논란 거세
"강제 부과보다 건강 인센티브 장려해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마련된 탄산음료 판매대.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비만율은 서구 국가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비만과 과체중의 건강 위해성과 사회경제적 비용을 고려하면 비만 과세의 도입도 고려할 수 있다.”
 
최성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 선임연구원은 지난 7월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최 연구원은 ‘비만세 해외동향과 비만세 도입에 관한 소고’에서 “전 세계적 여러 나라 비만율을 억제하기 위해 비만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은 선진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건강을 위해 비만세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비만세(Fat tax)란 비만을 유발하는 요인을 제공하는 제품에 추가로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설탕이나 트랜스지방 등이 기준치 이상 함유된 제품에는 별도의 세금을 붙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2011년 세계 최초로 비만세를 도입한 덴마크에서는 포화지방 1㎏당 16덴마크 크로네(한화 3400원가량)의 비만세를 물렸다. 비만이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건강보험 재정에 타격을 준다는 것이 부과 이유였다.
 

영국·프랑스·핀란드 등 도입...유럽은 비만과의 전쟁 중

비만세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비만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42개국에 달한다. 나라별로 살펴보면 영국은 설탕 함량이 높은 제품에 비만세를 물린다. 설탕 함량 100mL당 5~8g가량 설탕이 함유된 음료에 L당 0.18₤(파운드)의 비만세를 부과한다. 우리 돈으로 약 285원 수준이다. 설탕 함량이 8g/100mL를 웃돌면 L당 추가 세금은 ₤0.24로 올라간다.
 
프랑스는 가당 음료, 인공감미료를 첨가한 거의 모든 음료에 세금을 매긴다. 100mL 기준 1~11g까지 설탕이 들어간 음료는 점진적 과세 방식을, 11g 이상 초과 음료는 L당 0.2유로(한화 약 270원), 제로 칼로리 가당 음료에도 세금을 붙인다. 
 
핀란드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무알코올 음료에 과세한다. 무가당청량음료와 생수에는 1L당 0.11유로(약 149원), 가당 청량음료엔 그 두 배인 1L당 0.22유로(약 297원)의 세금을 매긴다.
 
미국은 주마다 혹은 지역마다 각기 다른 기준으로 비만세를 부과한다.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는 소다수·에너지드링크·아이스티·인공감미료 등에 부피를 기준으로 과세한다. 콜로라도주 불더에서는 설탕 함량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무알코올 음료에 세금을 매긴다. 필라델피아는 가당 무알코올 음료·소다, 100%가 아닌 과일주스나 향미워터·커피음료·시럽에도 비만세를 내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설탕 함유 음료 이외에도 채소 주스(태국), 가당 우유(스페인), 소금과 카페인이 들어간 스낵이나 반조리식품(헝가리) 등 이른바 살찌는 음식에 비만세를 부과하기도 한다.
 

한국 비만세 논의 10년, 부작용 우려도

우리나라도 국민 건강을 위해 비만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진작부터 있었다. 유럽이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비만을 유발하는 음식에 별도의 세금을 붙이는 방식이다. 설탕 등 특정 재료나 음식 가격이 비싸지면 소비량이 줄고, 이는 비만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했다. 
 
2011년 7월 보건복지부(복지부) 보건의료 미래위원회는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 열량이 높고 상대적으로 영양이 떨어지는 정크푸드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정크푸드가 비만을 유발하는 대표적 음식이라는 논란을 고려하면 포괄적 의미의 비만세 도입의 필요성을 밝힌 셈이다.
 
그러자 이듬해 보험연구원은 ‘비만세 도입에 대한 검토 필요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비만이 국민 건강 문제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악화와 기업의 생산성 저하 등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데, 이를 줄이기 위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당시 김대환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저소득층에서 고칼로리성 저가식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다”며 “(비만세로) 확충한 재원은 저소득층 식품구매 보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타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6년 4월에는 비만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제1차 당류 저감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을 1일 열량의 10% 이내로 낮추겠다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비만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방안 마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비만세 도입을 미뤄왔다. 당장 비만세를 도입할 만큼 우리나라의 비만율이 심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비만세 도입 효과가 크지 않다는 비판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있다. 세계 최초로 비만세를 도입했던 덴마크도 1년 만에 이를 폐지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비만이 생산성 저하와 건강보험 재정에 타격을 준다고 판단해 시행한 정책이었지만 고기·버터·우유 등 생활 물가가 훌쩍 뛰었고 국민이 식품을 사재기하는 등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비만세 법안 발의, 통과는 미지수

그러나 성인 비만율 증가세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 비만율은 2019년 기준 33.8%로 성인 3명 중 1명은 비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8년(26.0%)보다 7.8%포인트 늘어난 수준이다. 지난 3월 대한비만학회 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이전보다 몸무게가 3㎏ 이상 늘었다’고 답한 비율이 46%에 달했다.
 
지난 2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류가 들어 있는 음료를 제조·가공·수입·유통·판매하는 회사에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긴 ‘국민건강증진법일부개정안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비만세를 도입하면 식습관 개선을 유도하는 한편 당뇨·비만·고혈압 등의 질병을 예방하고 국민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품업계에서는 조심스럽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강압적인 조치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보다 건강에 좋은 식품을 권장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18년 복지부가 '국가 비만 관리 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먹방'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먹방을 폭식 조장 콘텐트로 몰아 개인의 시청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복지부는 '규제'라는 용어를 쓴 적이 없다고 강조하며 한발 물러났다. '먹방' 문화의 실태를 파악하겠다는 것이지 법적 규제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최근 복지부는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함께 건강친화기업 인증제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란 근로자의 건강 증진을 위해 직장 내 문화와 환경을 조성하고, 직원 스스로 건강관리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을 정부가 인증해주는 제도다. 2019년 국민건강증진법 개정(2021년 12년 4일 시행)을 근거로 올해부터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기업의 직원 관리 상황이나 건강증진 프로그램도 평가 항목에 포함돼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강친화기업으로 인증받는 기업은 향후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지자체 사업에 참여할 경우 가산점을 주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 제공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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