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만 금지된 ‘원격진료‧약배송’… 세계 각 국은 ‘활성화 사활’
‘산업화’ 활발한 미국‧중국, 유럽‧일본‧싱가포르는 제도화 본격 나서
원격진료 허용여부 논쟁에 뒤쳐진 한국… 룰 제정 본격화 할 듯
“의료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환경에서 닥터나우를 통해 도움받는 분들을 생각하면 한시적 운영이라는 현실이 버겁다. 향후 의료 시스템과 환경 개선을 고민했을 때 비대면 진료는 꼭 필요하다.”
지난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의 말이다. 위드코로나 시대가 다가오며 지난해부터 한시적으로 허용 중인 원격진료 서비스에 대한 논쟁이 커지고 있다. 한시적으로 허용돼 운영된 동안 닥터나우를 비롯한 원격의료 서비스는 의료 소비자의 편의 증대를 입증했지만, 여전히 언제 서비스가 종료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논쟁이 이뤄지고 있는 건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글로벌 주요 국가들은 원격진료의 허용‧불허용에 대해 다투고 있지 않다. 오히려 원격진료를 다가오는 변화로 받아들이고 ‘게임의 룰’을 차곡차곡 만들어나가고 있다.
산업 개화하는 미국‧중국 ‘네거티브 규제’ 공통점
의료법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원격진료를 전면적이고, 명시적으로 금지한 유일한 나라”라고 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한시적으로 원격진료를 전면 허용하고 있는 나라다. 적절한 규제를 통해 원격진료의 장점만을 취할 ‘중간지대’로 향하는 경험은 아직 하지 못했다.
해외의 경우 ‘포지티브식 규제’로 원격진료를 금지한 사례는 없다. 원격진료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막기 위한 ‘네거티브식 규제’를 만드는 방향으로 사회적‧정책적 논의가 진행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보험적용 등을 통해 원격진료 활성화를 지원하는 추세다.
서울대학교 국제통상전략센터가 지난해 발간한 ‘한국 원격의료서비스 잠재경쟁력 분석과 통상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대 의료시장인 미국은 1993년 미국원격의료협회(ATA)가 설립되는 등 일찍이 원격진료가 활성화됐다. 주에 따라 원격의료 자격과 의료사고 시 배상 책임, 보험적용 등에 대한 규정은 다르지만 원격진료와 의약품 배송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곳은 없다.
미국에서 원격진료에 대한 논의는 원격진료의 허용 여부가 아니라 ‘보험적용 여부’에 맞춰져 있다. 각 주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진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다. 연방 차원에선 주마다 차이가 있는 원격의료 장비에 대한 규격과 종사자의 자격 등을 정비하고 통일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원격진료 플랫폼 회사인 텔라닥의 성장과 아마존의 원격진료 및 약 배송 서비스 등 원격진료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은 한국과 다른 규제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들뿐 아니라 미국의 글로벌 IT 회사들은 팬데믹 사태 이후 자사의 기술과 플랫폼을 활용해 디지털 헬스케어 및 원격진료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역시 원격진료를 금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치정부 주도로 온라인 병원을 만들어 원격진료를 장려했다. 온라인병원은 기존 보건소 또는 약국 등 시설을 기반으로 ICT를 활용하여 자문과 문진은 물론 진료와 처방전 발급, 각종 검역검사, 만성질환 관리 및 건강관리 서비스까지 가능하다. 또 관련되는 의약품 배송업에 대한 규제도 없다.
물론 관련 규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규제는 부작용을 줄이되, 원격진료 산업의 육성은 방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2020년 5월 중국 국가건강위원회는 각 성의 정부가 개별 온라인 의료서비스 제공자를 감독 및 규제하도록 했다. 원격진료의 가능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게 목적이다. 중국에 수많은 원격진료 플랫폼들이 등장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다.
디지털헬스케어 관련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의 한 투자심사역은 “원격진료와 의약품 배송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본 전제조건”이라며 “원격진료가 그 자체로 불법이 돼 매 순간 환자가 병원에 찾아가야 한다면 원격 모니터링, 인공지능 진단 등 수많은 원격의료의 영역들이 존재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의료 접근성 높은 일본‧싱가포르서도 ‘룰 정립’ 본격화
한국과 비슷한 의료제도를 가진 일본의 경우 2015년 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의 재진에 대해 원격진료를 허용했다. 2016년부터 일본우정그룹 산하 택배업체인 일본우편을 통해 조제약 택배사업도 시작했다. 일본의 원격진료 규제는 코로나19 이후 더 완화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4월부터는 초진이어도 온라인 진료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 주목할 만한 국가는 싱가포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한 주요국 정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 보건부는 원격진료에 대한 무조건적인 금지가 아니라 가이드라인을 통해 원격진료의 표준을 제시하고, 의료진이 이를 어기면 징계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원격약국 서비스에 대해서도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움직임은 더 주목할만하다. 싱가포르 보건부는 내년 말까지 현행 의료 관련법을 대체하는 헬스케어서비스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의료 면허제도를 포함한 의료체계의 전반에 대해 공공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할 예정이다.
유럽연합(EU) 역시 원격의료 제공범위를 법이나 가이드라인 형태로 명시해 원격진료를 다루고 있다. 국가마다 가이드라인에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럽연합 회원국 간 원격진료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와 제도적 환경은 조성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EU 회원국 중 독일은 과거 원격의료 금지 원칙을 시행했지만,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2018년 연방의사협회가 표준의사직업규정을 개정하며 원격진료가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다만 ‘원격 의료의 특수성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하고, 합리적인 수준으로 의료 서비스의 제공이 가능할 경우’에만 원격 진료를 시행할 수 있다고 정했다.
김나영 서울대학교 국제통상전략센터 연구원은 “미국, 중국, 일본 등은 국가 정책적으로 완화된 규제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원격의료 관련 기업들의 성장을 독려함은 물론, 상대적으로 성장 초기 단계에 있는 국제 원격의료 시장의 표준과 규범을 확립해나가는 중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관련 규정이 모호하고 준비가 미흡하다”며 “원격진료가 대면진료에 비해 부정확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이를 금지할 게 아니다. 그 정확성 및 효과를 향상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이를 경쟁력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복지부 장관 “의료안전성 담보조건으로 확대” 언급
물론 논의가 시작될 움직임은 나타나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 ‘한시적 허용’ 방침이 ‘정해진 기간 이후 완전한 금지’를 뜻하지 않을 것이란 점은 확인됐다. 현재의 한시적 전면 허용 방식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한 인물들도 원격진료의 순기능과 필요성에 대해 인정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도 국감에서 한시적 비대면 진료의 국민편익에 대해 인정하며 “의료영리화 문제 등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또 IT기술 및 의료안전성을 담보조건으로 의원급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기조에 따라 원격의료 관련 스타트업들은 정부 차원에서 논의가 시작될 것이란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원격의료 관련 스타트업들은 이미 정부 및 의료계와 논의를 위한 협의체를 만든 상태다.
원격의료 관련 스타트업 13개사는 지난 7월 ‘원격의료산업협의회’를 구성했다. 닥터나우와 엠디스퀘어가 공동협의회장사를 맡은 이 협의회 관계자는 “원격진료를 포함한 원격의료 전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고, 이런 논의에 업계를 대표해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협의회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최윤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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