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메뉴·스마트오븐·로봇팔…레드오션 피자 시장을 파랗게 만들다
[김홍일의 혁신우혁신⑪] 임재원 고피자 대표
푸드트럭에서 출발해 매장 110개 출점, 1인 피자 시장 주도
인도,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시장에 매장 내고 성과 거둬
외식업 드문 혁신 창업 시장서 국내 첫 피자 유니콘 성장 목표
“몇 년 만에 연매출 수백억 신화”, “고졸이 대박집 사장이 되기까지”, “유명 대기업에 수백억 투자받은 비결”, “스타트업,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 창업 관련 기사를 수놓는 미디어의 헤드라인이다. 가시밭길을 밟아온 창업가의 역경 드라마를 소개하고,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숱한 곡절을 생생하게 목격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전 디캠프 센터장)는 창업 시장이 일률적으로만 묘사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창업가의 성공에 손뼉만 치고 끝낼 게 아니라, 그들의 혁신 비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공유하자.” [이코노미스트]가 ‘김홍일의 혁신우혁신’을 연재하는 이유다. 창업 요람의 리더 역할을 하던 VC 대표가 스타트업 CEO를 만나 진중한 질문부터 가볍고 짓궂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새 성장 동력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라서다. 열한번째 시간, ‘1인 피자’란 콘셉트로 식음료 시장을 혁신 중인 임재원 고피자 대표를 만났다. [편집자]
성공한 창업가 중엔 블루오션 전략을 꾀한 이가 많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에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박수갈채를 받는다. 신선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새 시장을 개척하곤 금세 부자 반열에 오른다.
이런 창업가의 관점에서 ‘한국 외식업’은 파란 면을 찾기 힘든 레드오션으로 보일 게 뻔하다. 그 어떤 시장보다 경쟁자가 빽빽하게 있기 때문이다. 영세사업자 중 폐업률이 가장 높은 업종은 외식업이고 창업률이 가장 높은 업종도 외식업이다. 음식 종류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식당이 포화했다.
임재원 고피자 대표는 이 새빨간 바다를 항해하는 창업가 중 하나다. 싱가폴 경영대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경영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의 이력만 보면 남들이 가지 않는 블루오션만 쫓을 것 같은데, 치킨과 더불어 자영업의 대명사로 꼽힐 만큼 경쟁사가 많은 피자를 아이템으로 삼았다.
그런데도 고피자는 좌초는커녕 순항하고 있다. 2020년 중소기벤처기업부가 선정한 40개 아기유니콘 기업 중 유일하게 요식업 스타트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6년 푸드트럭 한 대로 출발한 고피자는 국내 매장 수 110개를 돌파했고, 연간 거래액은 100억원을 넘어섰다. 싱가폴과 홍콩, 인도에도 매장을 낸 글로벌 기업이다.
임재원 대표와 고피자가 내세우는 콘셉트는 ‘1인 피자’다. 여럿이서 먹는 음식인 피자를 혼자 먹기 알맞은 크기로 제공하는데, 이 과정에 첨단 기술을 도입했다. ‘고븐’이란 자체 개발한 스마트오븐으로 피자를 수 분 만에 구워낼 수 있다. 지난해엔 피자 조리를 돕는 로봇팔 ‘고봇플러스’를 개발해 일부 매장에 시범 적용했다. 로봇이 피자를 자르고, 소스를 뿌리고 화덕 위로 옮긴다.
[이코노미스트]와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임재원 대표를 고봇플러스가 개발된 고양시의 작은 창고에서 만났다. 피자를 만드는 신통방통한 로봇 팔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김홍일 대표가 입을 뗐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김홍일 대표) : 한집 건너 한집이 식당입니다. 진짜 치열하잖아요. 어쩌다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된 겁니까.
임재원 고피자 대표(임재원 대표) : 제가 피자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피자는 각 잡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잖아요. 창업하기 전엔 직장인이었는데,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듯 간단히 피자를 먹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해보기로 했죠.
김홍일 대표 : 집에서 작은 피자를 만들면 될 일입니다. 한국에 매장을 110여개, 해외에도 매장을 냈군요.
임재원 대표 : 피자를 손쉽게 먹고 싶은 사람이 저만 있는 건 아니었을 테니까요. 여럿이서 피자를 먹을 때도 불만은 항상 있었습니다. 사람은 여럿인데 제품은 1~2개를 시켜야 하니 내가 먹고 싶은 맛을 고르는 게 어려웠죠. 그래서 손바닥만 한 크기, 타원형 형태의 혼자 먹기 딱 좋은 고피자를 시장에 선보이게 됐습니다.
디캠프 데모데이서 2회 우승하고 사업성 인정받아
김홍일 대표 : 외식업으로 투자업계 주목을 받긴 어려웠을 텐데요. 너도나도 혁신 창업을 자처하고 있으니까요.
임재원 대표 ; 골목엔 흔한 게 피자가게지만 VC업계에선 아니었습니다. 고피자를 냉정하게 보는 시선이 적지 않았죠. 다행히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창업경진대회인 디데이에서 두 번이나 우승했고, 사업성을 증명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죠.
김홍일 대표 : 외식업 중에서도 프랜차이즈는 더 이미지가 안 좋습니다.
임재원 대표 :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또 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성공 가능성이 큰 모델인 것도 사실이거든요.
외식 프랜차이즈는 창업 희망자에게 현명한 선택지다. 프랜차이즈 본사를 통해 부족한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 브랜드의 마케팅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장점만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프랜차이즈 본사의 교육과 통제가 ‘갑질’로 변하는 게 사회 문제가 됐다.
일부 부도덕한 가맹본부는 오너 친인척이 운영하는 회사를 통해 유통 물류 마진을 챙기거나 식자재를 비싸게 팔고 광고비를 떠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본부 오너가 부도덕한 행위를 벌여 브랜드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추락하기도 했다. 본사에 제대로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근에 매장을 내는 보복 출점 행위도 적발됐다.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 자영업자의 몫이었다. 이후엔 업계 전체가 자정능력을 발휘하면서 관련 이슈가 줄었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꼬리표가 따라붙는 건 사실이다. 이런 이미지와 무관하게 프랜차이즈 식당이 난립해 주요 상권에 개성이 사라졌다며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도 한다.
임재원 대표가 말했다. “저는 나쁜 본사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법인이 성격을 가질 순 없잖아요. 결국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외형은 커질 대로 커지는데 이에 걸맞은 경영과 제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거죠. 저는 고피자가 나쁜 본사가 되지 않도록 시스템적으로 방지하려고 합니다.”
김홍일 대표 : 고피자도 지금보다 몸집이 더 커지면 성장통처럼 논란을 겪지 않을까요.
임재원 대표 : 과잉출점의 기준이 무엇인지 상당히 꼼꼼히 분석했어요. 전국에 1000개 매장을 세우는 게 최대더라고요. 그 이상 수를 늘리면 카니발리제이션, 제살깎아먹기가 되죠. 국내엔 그 이상 매장을 내진 않을 겁니다.
김홍일 대표 : 기업은 계속 성장해야 하는데, 한계가 일찌감치 정해졌군요.
임재원 대표 : 그래서 진지하게 글로벌 시장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김홍일 대표 : 내로라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해외 공략에 성공한 사례가 손에 꼽습니다. 이들은 재벌기업으로 불릴 만큼 막대한 자본과 컨설팅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도 실패했습니다.
임재원 대표 : 케이스 스터디도 했는데요. 그중엔 조급하게 사업을 확장한 기업이 많더라고요. 해외에 법인부터 만들고, 사무실을 내고, 화려한 경력의 법인장을 앉혀서 미디어에 크게 홍보하는 식이죠. 고피자는 작은 스타트업이니 조급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단한 숫자는 아니지만 성과를 조금씩 내고 있습니다. 마케팅 예산을 쏟거나 화려한 인테리어로 매장을 꾸미진 못했지만요.
김홍일 대표 : 현재 싱가폴, 홍콩, 인도에 매장을 냈다고요.
임재원 대표 : 전체 고피자 매장 중 싱가폴 매장의 매출은 최상위권에 속합니다.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죠. 인도의 경우 팬데믹 변수로 성장이 더뎠는데, 요샌 심상치 않습니다. 곧 싱가폴 매장의 매출을 뛰어넘을 것 같아요.
김홍일 대표 :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나요.
임재원 대표 : 일단 피자는 전 세계가 먹는 음식이잖아요. 레시피를 교육하거나 설명하는 시간을 현저히 줄였죠. 매장 대표도 현지 사람을 선정했습니다. 디테일한 요소에서 현지화할 수 있게 권한을 줬죠. 거기다 요샌 한류 덕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피자 조리 과정 기술로 혁신한 푸드테크
김홍일 대표 : 1인 피자는 특별한 아이템이고, 해외에 진출해 성과를 낸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래도 이런 과업만으로 아기 유니콘에 선정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임재원 대표 : 고피자의 또다른 본질은 푸드테크 기업입니다. 회사 직원 중 빅데이터나 AI 전문가가 많죠. 제품을 혁신하는 과정에 첨단기술을 접목했고 조리 과정부터 손봤습니다. 재료 값과 견줘보면 피자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고객이 많은데, 피자를 만드는 일이 의외로 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도우를 펴내고 토핑은 얹고 피자가 구워지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죠. 고피자는 속도전을 지향하는 만큼 반조리된 도우와 자체개발한 스마트오븐을 점주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김홍일 대표 : 임 대표 뒤에 있는 로봇을 보니 푸드테크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이 역시 직접 개발했다고요.
임재원 대표 : 신기한 구경거리로 만든 게 아닙니다. 실제로 피자 커팅이나 소스를 뿌려주는 번거로운 과정을 대신합니다. 점주와 직원 업무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매장 정리나 재료 손질, 설거지 등 다른 업무에 몰두할 수 있죠.
김홍일 대표 : 혁신은 방법이 참 다양합니다. 세상이 전혀 없는 것을 만드는 걸 수도 있고, 있는 걸 새롭게 개선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임 대표에겐 피자 시장이 블루오션이었던 셈이네요.
임재원 대표 : 블루오션을 찾는 건 어렵고, 어렵게 찾아도 경쟁자가 쫓아와 금세 레드오션이 됩니다. 경쟁이 치열하단 이유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전세계 누구나 간편하고 빠르게 지갑사정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피자를 만들겠단 고피자의 방향과 가치는 확고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매장 수를 늘리고 성장했으니까요.
기자가 본 임재원 대표
“비전이 크죠. 그래도 이런 목표가 있어서 힘을 냅니다. 목표까지 닿으려면 할 게 잔뜩 남아있으니까요. 내가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삶을 살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그렇게 업무에 시달리다가 쉴 땐 뭘 하냐고 물었다.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운동이나 독서, 등산 같은 게 취미일 줄 알았는데 답변은 의외였다. “집에서 TV를 봅니다. 그냥 쉴 땐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좋아해요.”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MBTI 테스트로 따지면 외향(E)적인 특성을 있을 것 같았는데, 고개를 갸웃했다. 임 대표가 덧붙여 설명했다. “저 사실 SNS도 안합니다. 저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인터뷰도, TV 출연도 제 개인적으론 곤혹스러운 일이었죠. 다만 제 안에 두 개의 자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임재원과 고피자의 대표 임재원이요. 고피자의 대표로서,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저는 그야말로 뭐든지 할 겁니다. 만약 제가 불편하다고 그걸 안한다면 CEO로서 직무유기 아닐까요.”
대표로서 뭐든지 해내겠단 각오가 참 흥미로웠다. 만약 임 대표가 꿈을 실행한다면, 한국의 외식업체가 세계를 주름잡는 첫 번째 사례가 된다. 고피자를 위해 무엇이든 해낼 임 대표가 ‘피자업계 맥도날드’란 비전을 달성했단 소식을 알려오는 날이 기다려졌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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