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마이너스’ 요소 안경을 ‘플러스’로 바꾼 비결 대공개
[김홍일의 혁신우혁신⑬] 박형진 콥틱 대표
맞춤형 안경 제조·유통·판매, 안경 경험 혁신 위해 고군분투
불편함 당연했던 안경 대신 얼굴에 딱 맞춘 ‘나만의 안경’
3D 프린터, 얼굴 스캔, 빅데이터 분석 등 첨단 기술 활용
“몇 년 만에 연매출 수백억 신화”, “고졸이 대박집 사장이 되기까지”, “유명 대기업에 수백억 투자받은 비결”, “스타트업,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 창업 관련 기사를 수놓는 미디어의 헤드라인이다. 가시밭길을 밟아온 창업가의 역경 드라마를 소개하고,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숱한 곡절을 생생하게 목격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전 디캠프 센터장)는 창업 시장이 일률적으로만 묘사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창업가의 성공에 손뼉만 치고 끝낼 게 아니라, 그들의 혁신 비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공유하자.” [이코노미스트]가 ‘김홍일의 혁신우혁신’을 연재하는 이유다. 창업 요람의 리더 역할을 하던 VC 대표가 스타트업 CEO를 만나 진중한 질문부터 가볍고 짓궂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새 성장 동력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라서다. 열두 번째 시간엔 내 얼굴에 딱 맞는 맞춤형 안경을 선보이는 스타트업, 콥틱의 박형진 공동대표를 만났다.[편집자]
콥틱은 모래 속 바늘처럼 찾기 힘든 제조 기반 스타트업이다. 3D 커스텀 안경 전문 브랜드 ‘브리즘’을 운영하고 있다. 매장에서 고객 얼굴을 3차원으로 스캔하고 이 데이터를 3D 프린터에 입력해 안경테를 만든다. 얼굴 너비, 동공 간 거리, 귀 높이, 코 높이 등을 고려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안경’을 만드는 셈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제조기업이 주목받는 건 드문 일이다. 제품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만큼 진입장벽이 높아서다. 하드웨어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도 있지만, 대부분 중국에 OEM으로 양산을 맡긴다. 국내에서는 더 제조업을 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퍼진 탓이다. 제조업은 산업 생태계의 주춧돌인데도 낡은 산업 취급을 받는다. 새롭게 부상한 디지털 기업이 각광받고 있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김홍일 대표와 [이코노미스트]가 수많은 나만의 안경이 진열된 브리즘 삼성동점에서 박형진 콥틱 대표를 만났다. 박형진 대표는 제조 스타트업으로의 고충과 애환 대신 자부심을 강조했다. “그거 아십니까. 전 세계적으로 6개의 국가만 안경을 대량생산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그중 하나죠. 예년만 못하다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제조 강국입니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김홍일 대표) : 안경 제조가 쉽게 떠올릴 사업 아이템은 아닙니다.
박형진 콥틱 대표(박형진 대표) : 콥틱을 창업하기 전 안경 사업을 했었습니다. 젊은 감각의 디자인을 내세운 프랜차이즈 브랜드였는데, 그때 이 산업과 관련한 내공을 쌓았죠.
김홍일 대표 : 그때도 제조를 한 건 아니었죠.
박형진 대표 : 안경을 만드는 공정은 꽤 복잡합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노동집약적이고 수공업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제조는 엄두를 못 냈죠. 우연히 3D프린터 전문가인 성우석 콥틱 공동대표를 만난 건 천운이었습니다. 이 기술이면 안경 사업을 하면서 열망했던 ‘각각의 얼굴에 맞는 맞춤형 안경’이 가능하겠더라고요.
김홍일 대표 : 브리즘에서 맞춘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착용감이 남다릅니다.
박형진 대표 : 단순히 얼굴 형태를 맞추는 일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사물을 보는 각도와 방식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광학중심점의 너비와 높이를 고려해 렌즈의 성능도 최적화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 기술로 기존 고객의 구매 결과를 분석해 유사성이 높은 고객이 선택한 최적의 안경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김홍일 대표 : 안경이 발명된 지는 한참이 지났는데, 이제야 이런 제품이 나왔군요.
박형진 대표 : 안경 산업은 시장 규모가 크고, 플레이어도 많죠. 그런데도 혁신이 일어난 적은 드뭅니다.
공급자 중심의 시장을 소비자 중심으로 바꿔놓으면 시장은 열광한다. 안경은 대표적인 공급자 중심의 산업이다. 사람의 얼굴은 천차만별인데도 고객은 안경원에 전시된 안경을 하나씩 써보면서 그나마 괜찮은 걸 골라야 한다. 디자인과 사이즈가 제각각인데, 원하는 디자인이면서도 착용감이 좋은 안경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량생산된 안경테가 안경원에 공급되고, 이중 적절한 걸 소비자가 골라내는 일방적인 서비스였다. 흔히 하는 “안경은 직접 써봐야 안다”는 이런 관행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다. 써보기 전까진 어떤 제품이 좋은지 소비자는 짐작도 할 수 없다.
박형진 대표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 안경을 썼지만 안경원을 나왔을 때 후련했던 경험은 없었습니다. 신발도 제품마다 사이즈가 구분돼 있는데, 안경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안경은 원 사이즈 피츠 올(One size fits all)인 셈이죠. 처음 쓴 안경은 불편한 감이 있지만 쓰다보면 또 익숙해지거든요. 안경이 고객을 맞추는 게 아니라, 고객이 안경에 맞추는 거죠. 이걸 해결하면 파급 효과가 큰 혁신이 될 게 분명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김홍일 대표 : 고객 관점에서 봤을 때 필요한 게 맞춤형 안경이었군요.
박형진 대표 : 우리는 경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게 서비스든 제품이든 간에,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높은 기대를 갖게 되죠. 안경 산업도 이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때가 온 겁니다.
공급자 중심의 안경 산업에 변화를 꾀하다
김홍일 대표 : 맞춤형 안경이 브리즘만의 고유의 개성은 아니지 않습니까.
박형진 대표 : 맞춤형 안경을 제작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많았을 겁니다. 안경 구매 경험이 불편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들이 실패한 원인을 추정해보자면, 사람의 얼굴이 너무 입체적이라는 거죠. 구두나 정장이야 몸과 발을 자로 잰다지만, 사람의 얼굴은 그럴 수 없잖아요. 브리즘도 아이폰의 ‘페이스 아이디’가 나오기 전까진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김홍일 대표 : 애플의 생체 인증 기술이군요.
박형진 대표 : 브리즘 매장엔 전문 스캔장비가 설치돼있는데, 원리가 페이스 아이디와 유사합니다. 전면 카메라와 적외선 빛을 사용자의 얼굴에 쏘아 굴곡, 크기, 생김새를 기록하죠. 얼굴의 입체적인 구조를 정확하게 매핑할 수 있습니다. 또 맞춤형 안경을 계속 유지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다품종 소량생산은 채산성이 맞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김홍일 대표 : 브리즘은 3D 프린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군요.
박형진 대표 : 물론 안경이 뚝딱 나온 건 아니었어요. 소재가 문제였죠. 고군분투 끝에 의료용으로 쓰이는 폴리아미드 소재를 찾았습니다. 무게가 7g 내외로 가벼운 데다 튼튼하고, 미학적으로도 훌륭했죠.
김홍일 대표 : 맞춤형이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건 아닙니까.
박형진 대표 : 테를 사는데 17만8000원이면 됩니다. 제작기간이 2주가량 소요되긴 하지만, 기다릴 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김홍일 대표 : 그간 안경 산업에 혁신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유명한 스타 기업이 있죠. 미국의 와비파커요. 그 회사와 브리즘을 비교한다면요.
박형진 대표 : 상장에 성공해서 지금은 시가총액이 조 단위인 기업입니다. 감히 견줄 순 없지만, 혁신성만 따져본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브리즘이 더 앞서있죠.
와비파커는 품질 좋고 저렴한 안경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혁신 기업이다. 오프라인 중심이던 기존 시장을 뒤흔들었다. 고객은 와비파커 홈페이지에서 최대 5개의 안경테를 골라 집으로 배송받을 수 있다. 닷새간 안경테를 체험해본 뒤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해 구매하면 된다. 배송료도 무료고, 안경테값도 시중보다 훨씬 저렴하다.
미국 경영전문지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가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서 애플과 구글을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수백 년간 변화가 없던 안경 업계의 판도를 바꿨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에 ‘안경산업의 넷플릭스’로 불리며 지난해 뉴욕증권거래소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박 대표는 “판매 구조를 전환한 건 대단한 일”이라면서도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와비파커도 결국 중국에서 OEM으로 만든 안경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거든요. 배송 온 5개의 안경테 중 내 얼굴에 맞는 게 없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죠.”
김홍일 대표 : 브리즘도 와비파커처럼 몸집이 커질까요. 콥틱의 미래 비전이 궁금합니다.
박형진 대표 : 당장의 목표는 마이너스를 제로로 끌어올리는 겁니다.
김홍일 대표 : 마이너스요. 콥틱의 손익계산서를 말하는 건가요.
박형진 대표 : 고객의 마이너스입니다. 눈이 나쁜 건 시력 수치가 마이너스일 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엄청난 손실이에요.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눈이 갑자기 침침하거나 흐릿하게 보이는 노안 증상을 겪는데, 눈이 나빠지면 생산성이 확 떨어집니다. 우리는 보는 것으로 85% 이상의 정보를 얻습니다.
김홍일 대표 : 그래서 시력 교정수단인 안경이 있는 게 아닙니까.
박형진 대표 : 그냥 안경을 써선 완전히 해소할 수 없죠. 얼굴형에 맞지 않는 안경은 불편하잖아요. 콧등을 누르고, 귓바퀴에도 부담이 제법 있습니다. 맞는 안경을 찾더라도 디자인이 마음에 들 거란 보장이 없죠. 브리즘은 이 마이너스 요소인 불편함을 제로로 만들고 싶어요.
김홍일 대표 : 맞춤형 제품을 통해서 제로로 끌어올린 게 아닌가요.
박형진 대표 : 아직 디자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진 못했습니다. 3D 프린터를 활용하다 보니 소재가 제한적이에요. 브리즘의 라인업엔 플라스틱 재질로 보이는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하죠. 다양한 소재를 두고 계속 실험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홍일 대표 : 더 먼 시점에 콥틱은 뭘 하고 있을까요. 이 사업으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요.
박형진 대표 : 제로까지 끌어올렸으니, 다음은 플러스겠죠. 고객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싶습니다.
김홍일 대표 : 안경을 쓰는 일로 플러스가 될 수 있을까요.
박형진 대표 : 언젠가 스마트글라스 시대가 열릴 거라 확신합니다. 디지털 정보를 실제 공간에 포개어 구현할 수 있는 안경입니다.
김홍일 대표 : 구글과 아마존이 내놨었고, 애플도 준비 중이라는 스마트글라스요. 경쟁이 치열해보이는데요.
박형진 대표 : 직접 만들겠다는 게 아닙니다. 구글의 예를 들어볼까요. 2013년 이 회사가 내놓은 ‘구글 글라스’는 우스꽝스러운 디자인과 무거운 중량감 때문에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저는 스마트글라스가 성공하기 위해선 고객 맞춤형으로 나와야 한다고 봐요. 혹시 모를 일입니다. 글로벌 IT 기업이 제작한 스마트글라스의 테를 브리즘이 담당하게 될 지도요.
“미래 스마트글라스 시장에서도 활약할 수 있을 것”
김홍일 대표 : 실제로 해외 진출도 계획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박형진 대표 : 미국을 갑니다. 얼마 전 CES 2022에서 헬스·웰니스 분야에서 혁신상을 받았거든요. 그때 바이어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잖아요. 그만큼 얼굴 형태도 다양하죠. 브리즘의 역할이 더 클 겁니다.
김홍일 대표 : 해외에서도 브리즘의 메시지가 통했군요.
박형진 대표 :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제품이 있으니까요. 역량을 드러내기가 쉬웠죠.
김홍일 대표 : 제조 스타트업의 강점이네요. 반대로 힘든 점은 없었습니까.
박형진 대표 : 쓸 만한 제품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불안의 늪에 빠졌죠. 진짜 될까를 수없이 되물었어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시행착오를 줄일 순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안경 생산단지인 대구가 있었으니까요.
김홍일 대표 : 한때 안경테 산업을 대표하는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옛날 같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중국 OEM이 부상하면서요.
박형진 대표 : 그럼에도 여전히 장인 같은 역량을 갖춘 분이 숱합니다. 안경테만의 일이 아니에요. 현장엔 상당한 제조 기술력을 갖춘 기업과 인재가 많습니다. 중동의 원유보다 더 큰 천연자원 같아요. 여기에 디지털 전환을 하고 IT를 붙이면 어떨까 상상하죠. 우리 사회 전체가 이런 방향에 관심을 뒀으면 좋겠어요. 세계에서 먹히는 한국기업은 모두 제조업이잖아요.
김홍일 대표 : 창업을 꿈꾸는 많은 이가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군요.
박형진 대표 : 산전수전 겪고 40대가 돼서야 콥팁을 창업했지만, 지금도 더 획기적인 혁신을 꾀하고 싶어요. 멈춰있던 안경 산업을 두드린 건 그래서입니다. 써보니까 정말 편하다란 피드백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습니다. 콥틱과 브리즘은 고객의 평생 시력 파트너가 되고 싶어요.
기자가 본 박형진 대표
박형진 대표는 브리즘을 만들 때 “내가 가고 싶은 안경원이길 바랐다”고 했다. 얼굴을 스캔하고, 상담원과 디자인과 색상을 논의하고, 빅데이터가 추천하는 스타일도 고려한 끝에 선택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안경. 지극히 고객의 관점에서만 유리한 일이었다. 고객이 알아서 테를 고르면 렌즈만 끼워주는 다른 안경원 입장에선 번거롭고 귀찮을 게 뻔했다.
“수년에 한 번 바꾸는 안경인데, 호들갑 아닐까”란 생각이 들다가도 금세 납득했다. 우리는 안경 없인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게 불가능했다. 잘 때를 빼곤 항상 밀착돼있으니 기왕이면 더 잘 맞는 걸 고르는 게 당연했다. 적어도 신발을 살 때보단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았다.
박형진 대표는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해주는 일이 즐겁다. 그런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에너지가 샘솟는단다. 그의 특별한 커리어도 들었다. 외식업계에 몸을 담은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루프탑바 시장을 개척한 게 박 대표였다. 그는 지금도 서울 유명 호텔에 있는 바를 운영하고 있다. “그냥 술집이 아니라 새로운 미식과 풍경을 즐기는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박 대표가 매장에서 내준 커피잔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마음을 씁니다.” 다음 안경 교체주기엔 브리즘에 오기로 결정했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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