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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팬덤’과 ‘콘텐츠 IP’의 성공 방정식 [스페셜리스트 뷰]

팬 콘텐츠 대중문화로 부상…엔터 산업의 주된 비즈니스 전략으로 중요해져
슈퍼 팬덤 생태계 유지 위해 팬들과 공생해야

인기 걸그룹 '에스파'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10대 소녀들의 모습, 공항에 모여 입국하거나 출국하는 연예인들을 기다리며 플래카드를 들고 그들의 이름을 연호하는 국내외의 다양한 사람들. 이처럼 팬 혹은 팬덤은 특정한 이미지를 갖고 미디어에 재현되며 스테레오타입화돼 왔다. 

그러나 기실 팬은 그 안에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열광하는 팬 대상 또한 다양하다. 예를 들어 나이키와 애플 스토어 앞에 줄을 선 많은 고객 또한 그 브랜드의 팬일 수 있다. 축구를 좋아해 그들의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해외 원정에 따라가는 관람객들, 자신이 태어난 연고지의 야구팀을 응원하는 사람, 특정 캐릭터의 팝업 스토어에 줄을 선 소비자들, 모두 다른 팬 대상을 가졌지만 그들은 엄연히 팬이고 이들은 자신들의 팬 대상에 굳건한 애정을 갖고 그들을 지지한다.
 
이 때문에 점차 모든 것이 브랜딩 되는 콘텐츠 산업 안에서 팬덤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은 열정적 애정을 기반으로 브랜드에 충성하며, 더 나아가 다른 고객을 영업하기까지 한다. 이로 인해 자신의 브랜드에 충성스러운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이용자의 팬덤화는 필수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콘텐츠 산업은 코로나19 상황을 거치면서 충성도 높은 이용자들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꾸준히 진행했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 제작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넷플릭스·디즈니 플러스·웨이브와 같은 국내외 OTT는 콘텐츠 유통에 있어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 더 많은 이용자가 채널을 구독하게 하기 위해 이러한 자신들의 브랜드 특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팬덤을 생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여기서 콘텐츠 IP와 팬덤 간의 상관관계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지식재산기본법 제3조에 따르면 지식재산이란(Intellectual Property) ‘인간의 창조적 활동 또는 경험 등에 의해 창출되거나 발견된 지식·정보·기술·사상이나 감정의 표현, 영업이나 물건의 표시, 생물의 품종이나 유전 자원, 그 밖의 무형적인 것으로서 재산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창조적 활동 중에서도 재산적 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파생된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은 기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좀 더 유연한 정의를 갖게 되는데,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반으로 해 다양한 플랫폼과 부가 사업에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일련의 콘텐츠 지식 재산권 묶음을 가리킨다. IP는 이제 하나의 콘텐츠를 변형하고, 수정하고, 가공해 다양한 플랫폼에서 2차적으로 활용되는 현상을 모두 지칭하게 된 것이다.
애플 광고에 출연한 걸그룹 뉴진스 [사진 애플]

현재 콘텐츠 IP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 변형된 콘텐츠가 자유롭게 유통돼 광범위하게 대중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형태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변형되거나 확장된 콘텐츠는 다차원적인 세계관을 구성하게 되고, 이를 통해 막대한 산업적 가치를 생산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무엇보다 멀티 플랫폼화 돼가고 있는 콘텐츠 유통 방식은 결과적으로 초기 투자에 있어 리스크를 줄이고 일정 팬덤을 유지할 수 있는 콘텐츠 IP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지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원천 콘텐츠 이용자, 더 구체적으로는 콘텐츠 IP에 대한 팬덤 형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앞서 밝혔듯이, 콘텐츠 IP가 가진 다양한 가치 중 하나가 2차적 확장이 일어났을 때의 리스크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인데, 팬덤이 형성된 IP일수록 2차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 또한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팬이라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을 하나로 묶거나 연대할 수 있게 만드는 팬 대상은 과연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K-콘텐츠의 경우 팬, 팬덤과 팬 문화 연구는 엔터테인먼트사를 중심으로, 무엇보다 K-팝 중심으로 연구돼 온 역사를 갖는다. 이는 팬이나 팬덤이 특정 장르(특히 K-POP)와 인물 중심(특히 아이돌)으로 분석돼 온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아이돌 팬덤이 갖는 산업적인 규모 및 미디어-확장적인 특성으로 팬덤이라는 이용자 집단은 아이돌과 배우와 같은 특정 팬덤의 문화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뮤지컬, 영화와 방송, 시리즈 등과 같은 다양한 장르에서도 팬덤을 생성하는 콘텐츠 이용자들의 IP 이용 확장성에 대한 고찰이 심도 있게 이뤄지고 있다. 뮤지컬 관객문화의 경우 이용자들끼리 콘텐츠의 직접 공유가 불가하기 때문에 팬들의 2차 생산자적인 성격을 콘텐츠 생산과정과 유통에서 적극적으로 가져와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회전문 관객(반복 관람)에 대한 소비 형태가 고착되면서 이에 따른 산업적 차원의 마케팅도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영화, 방송(시리즈+드라마, 예능) 같은 경우에도 반복 관람, 스핀오프 제작 등과 같은 팬덤 위주의 소비 형태가 최근 가시화되면서 적극적으로 세계관 IP 발굴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IP 사례가 바로 ‘좋아하면 울리는’이다. 우리에겐 넷플릭스 시리즈로 알려진 이 작품은 천계영의 웹툰이 원작이며, 넷플릭스가 투자해 시즌2까지 영상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동시에 이 작품은 웨이브가 예능으로까지 IP 확장을 지속했는데 웹툰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와 연애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여 성공을 거뒀다.

결론적으로 많은 콘텐츠들이 시청자와 관람객들을 팬덤화하고, 이를 통해 산업적인 이윤을 얻고자 한다. 그렇다면 슈퍼 IP만큼이나 슈퍼 팬덤에 대한 고려도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과연 슈퍼 팬덤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팬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이전까지 팬덤 내부에서만 활성화되고, 서브컬처라 호명되며 비가시화돼 있었던 팬 콘텐츠가 단순히 팬덤 내부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전까지 소수의 문화로만 여겨졌던 팬 콘텐츠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된 비즈니스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팬덤 경제는 콘텐츠 IP 확장 전략에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다. 콘텐츠 IP 순환을 팬들이 자발적으로 수행하는‘슈퍼 팬덤’의 활성화 과정을 분석하는 일은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 IP 확장에서 리스크를 줄이고 산업적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팬덤의 경제적 가치

이혜인은 ‘2022 엔터, 르네상스의 시작 :K-pop 산업 재도약’이라는 보고서에서 엔터테인먼트사가 가진 자산 중 하나를 ‘팬덤’으로 상정하고 이를 경제적으로 분석한다. 팬덤은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이 언급했듯, 원작을 밀렵해 2차 콘텐츠를 생산하고, 서브컬쳐를 활성화하는‘텍스트 생산 가능자’로서의 정체성에 주목했다. 이러한 관점은 직접적인 문화생산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강조하기보다 문화 매개자, 즉 팬들을 생산자와 이용자를 이어주는 매개로 보는 것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팬덤은 자신이 소비하는 콘텐츠와 관련된 ‘연관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데 적극적이었고, 현재 미디어 환경 변화로 인해 이들의 생산성은 더욱 심화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팬덤을 경제학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실제로 수익을 창출하는 자산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다시 말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숨겨진 ‘무형자산’으로서의 ‘팬덤’을 보는 관점이 팬덤을 경제적으로 분석하는 주요한 축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포스터 [사진 tvN]

팬덤은 문화적으로 2차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생산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자신의 팬 대상을 확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마케터의 역할을 지속해서 수행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자발적으로 구하지 않는 이상) 제공되지 않는다. 미디어를 통해 팬들은 팬 대상에 대한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고, 심지어 유료화하기도 한다. 엔터테인먼트사는 이러한 팬덤의 파생 콘텐츠를 무임으로 얻고 있는 상태다. 

동시에 이러한 팬 콘텐츠는 간접적으로 팬 대상 확산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제적 이윤을 계산하기 쉽지 않다. 현재 많은 엔터테인먼트사가 팬들이 실황 공연을 촬영하고 편집해 소셜 미디어에 게재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팬들이 직접 찍은 사진이나 영상이 팬덤 확산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며, 또 다른 경제적 가치, 즉 바이럴을 생산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콘텐츠산업에서 이용자의 팬덤화, 혹은‘팬덤 전환’

콘텐츠 이용자들이 단순한 이용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의 팬이 되면 그들에게는 콘텐츠를 지속해서 이용하고자 다양한 형태의 팬 수행을 실천하게 된다. 특히 2차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생산하는 ‘생산자적 팬덤’의 경우 팬덤의 소속감을 통해 연대하고 커뮤니티를 생산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팬 커뮤니티를 통해 기존 이용자의 이탈을 막고 신규 이용자 영입을 가능하게 한다.

동시에 팬 커뮤니티의 확장을 통해 생산된 팬 콘텐츠가 콘텐츠 산업 일부 생태계 요소로 편입될 경우, 소비 영역의 확대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생태계 순환은 팬덤이 자발적으로 수행하고, 순환 에너지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생산되는 콘텐츠가 실질적인 ‘산업적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실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때문에 콘텐츠 이용자를 ‘팬덤’으로 전환하려는 다양한 전략들이 산업적으로 필요하게 됐다. 슈퍼 팬덤이란 조 프라이드와 아론 글레이저(Zoe Fraade-Blanar&Aaron M. Glazer)가 2017년 출간한 ‘슈퍼 팬덤:소비자는 어떻게 팬이 되는가’에서 탄생한 용어다. 여기서 두 저자는 “성공적인 팬덤이란 팬 대상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갖는 최소 필요 인원과 그러한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의사소통 플랫폼의 이용 기회가 포함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는 콘텐츠 IP의 생애주기를 확장하고, IP 확장에 있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이용자의 팬덤 전환을 위해 슈퍼 팬덤의 공식화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콘텐츠 IP 확장에 있어 슈퍼 팬덤의 생성 조건과 환경을 구체화하면 콘텐츠 IP의 팬 커뮤니티가 생성할 수 있는 환경인가, 팬덤이 콘텐츠 IP를 통해 친밀성과 유대감을 생성해 낼 수 있는가, 팬덤이 관련 콘텐츠를 지속해서 이용해 서브 텍스트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팬덤화 과정을 콘텐츠 IP에 적용해 팬덤 생성 환경을 부여한다면, 콘텐츠 IP의 확장 가능성과 이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팬덤화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원천 콘텐츠 IP만을 이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단순 이용자에게 후속 콘텐츠 제공과 커뮤니케이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공간, 즉 플랫폼을 제공한다면 이용자들을 슈퍼 팬덤으로 전환하고 그들이 자체 콘텐츠를 생산해 내며 지속적인 소비를 촉진하도록 장려할 수도 있다.

이처럼 단순 이용자·소비자의 슈퍼 팬덤화의 성공적인 사례는 ‘트와일라잇’(2005), ‘애프터’ (2013) 등을 통해서도 분석이 가능하다. 트와일라잇의 경우 팬덤의 2차 텍스트 생산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됐고 그중에서도 트와일라잇의 주인공들을 세계관만 옮겨 만들어낸 팬픽션의 인기 또한 대중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팬픽션 중의 하나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2015)라는 독자적인 텍스트로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게 됐다. 

두 소설은 주인공을 공유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세계관을 옮겨 만들어낸 것으로, 팬덤이 가지고 있는 생산자적 특성과 함께 이러한 팬덤 제작 콘텐츠가 어떤 방식으로 또다시 콘텐츠 산업 안으로 들어와 주류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그룹 원디렉션(One direction)의 멤버인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션 ‘애프터’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영화 ‘애프터’(2021)는 영상화에 해리 스타일스의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캐스팅을 진행했으며 주인공 역의 남자배우는 해리 스타일스와 동일하게 타투를 한 채 애프터에서‘해리 스타일스’를 연기한다. 

콘텐츠 장르별 이용자의 팬덤화 가능성

K-팝과는 달리 현재 콘텐츠 IP 확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영화, 드라마, 시리즈, 예능과 같은 방송-영상 산업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큰 폭의 몰입을 제공하는 콘텐츠다. 깊고 빠르게 몰입한 이용자들은 팬덤으로 전환되더라도 드라마가 끝나거나 시리즈 제공이 끊기게 되면 다시 빠르게 해체되는 수순을 겪는다. 팬덤의 대상이 되는 콘텐츠가 지속해서 팬들이 소비(이용)할 만한 또 다른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고, 생산되더라도 간극이 상대적으로 길며, 팬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과 사교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팬덤이 생성되기 힘든(혹은 생성되더라도 빠르게 해체되는) 맥락이 존재한다. 

동시에 콘텐츠 장르 특성상 IP는 팬덤의 대상이 분산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콘텐츠 IP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장르마다 팬덤과 팬 대상의 상호작용성을 높이고 친밀성을 확산시킬 수 있는 전략들을 개별적으로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팬덤의 구성요소, 혹은 생성 환경에 대한 맥락들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이를 콘텐츠 산업별로 팬덤화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들을 개별적으로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파라텍스트(Paratext)는 ‘시나 소설 등 주된 텍스트를 둘러싼 자료’를 총칭하는 용어다. 파라텍스트의 경우 저자나 편집자 등 생산자가 제공하는, 텍스트 수용 방식과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텍스트의 지속적 제공은 팬들에게 원본 텍스트의 서사를 재구성해서 다른 관점에서 서사를 해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팬들이 지속해서 원 텍스트에 접근하고 이를 확산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 팬덤의 형성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법의학 팬덤(forensic fandom)이라는 용어가 있다. 미들버리 대학의 미디어 연구자인 미텔은 팬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어디서든 즐길 수 있고 분석할 수 있는 장기적인 관여를 ‘법의학 팬덤’이라는 용어를 이용해 설명했다. 특히 현재의 콘텐츠 기획자들은 이러한 법의학 팬덤의 수가 늘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그들은 하나의 콘텐츠를 제작함는 데 이야기의 복잡성과 함께 팬들이 함께 적극적으로 파헤칠 수 있는 방식, 즉 적극적인 관여의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의 성공에는 넓게 확산하는 것(보다 많은 수용자들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야기 내부의 깊이에 대한 대화나 확장, 그것으로부터 나온 잔여 가치들을 팬들이 비교하고 해석을 교환하면서 관여의 깊이를 더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하나의 시리즈나 에피소드들이 결말을 향해가는 핵심적인 수수께끼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주는 단서를 갖고 있는 경우들이 많고, 열성적인 팬들 사이의 논쟁을 촉발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시즌 내내 시청자들에게 ‘남편 찾기’라는 미션을 수행하게 만든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수용자들은 팬덤 내부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남편 후보자들을 라인업하고, 다양한 증거물을 수집하면서 결과적으로 누가 남편일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추론을 내놓는다. 이러한 서사구조와 홍보 전략은 열정적인 팬들로 하여금 자신이 향유하는 시리즈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안내하도록 온라인 레퍼런스를 직접 만들게 한다. 다시 말해 팬이 팬덤 자체를 스스로 확장하는 것이다. 미텔은 법의학적 팬덤이 ‘팬들에게 말할 거리를 주고’, ‘그들이 다른 잠재 수용자들의 귀를 기울이게 만들면서’ 작동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동시에 마블 유니버스와 같은 복잡한 이야기의 세계관은 팬들이 새로운 진실과 시리즈의 이해를 위해 지난 에피소드들을 다시 보면서 콘텐츠를 반복 시청하게 만든다. 팬들은 세계관을 만들어낸 창작자보다 콘텐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도 있다. ‘왕좌의 게임’과 같은 시리즈물에 대한 팬들의 가이드라인이나 해석은 시즌 중간에 이 콘텐츠를 향유하기 시작한 팬들에게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국 대중음악에 확산한 세계관 전략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고찰할 수 있다. 앨범이 연속으로 발매되면서 다양한 해석의 장치들을 팬들에게 제공하고 팬들이 스스로 앨범의 컨셉이나 스토리텔링을 스스로 생산하게 만드는 건 이제 더 이상 새롭거나 신기한 일이 아니다. 팬들이 생산자가 제공한 콘텐츠를 이용해 콘텐츠 자체를 맥락화하고, 실마리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마케팅 전략이 되어가고 있다.  

슈퍼 팬덤은 과연 모든 해답을 갖고 있는가?

콘텐츠 IP의 확장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학계뿐만 아니라 산업에서도 원천 IP의 팬 기반 이용자 확장에 대한 논의들이 구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마케팅의 측면에서 원천 IP가 다양한 경로로 확장될 때 충성도가 높은 이용자들이 그 확장경로를 따라 콘텐츠의 소비 또한 진행될 것이라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팬 기대는 생산자와 기획자가 예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원천 IP의 팬덤 형성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할지라도, 같은 장르에서의 전이나 콘텐츠 접근성이 좋은 장르의 전이는 팬덤의 충성도와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타 미디어 전환은 기존 코어 팬덤의 반발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모든 이용자를 반드시 ‘슈퍼 팬덤’화 할 수는 없다. 이용자들을 단순히 팬덤으로 생산해 내는 방식, 특히 그들의 애정과 열정을 경제적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지속하게 되면 이용자와 팬덤 양측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슈퍼 팬덤의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애정의 대상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팬들과 함께 ‘공생’하는 방법을 생산자 입장에서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각 장르뿐만 아니라 IP 확장이 가능한 미디어 융합과 팬덤 확장 가능성을 산업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고려할 수 있어야만 팬과 팬 대상의 공생이 가능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장민지 박사는_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다.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책본부에서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2015년 박사논문 ‘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 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콘텐츠와 이용자, 글로벌 플랫폼과 팬덤, 젠더와의 연관성을 탐구하고 덕질하는 연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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