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윗길’ 풍광에 취한 나그네들로 철원의 겨울은 뜨겁다 [E-트래블]
“철원군 지난해 1000만 관광 도시로 발돋움”
철원한탄강 주상절리길, 개방 이후 인기 이어져
[강석봉 스포츠경향 여행기자] 주상절리 잔도와 고석정 꽃길에 이어 이번엔 ‘물윗길’이다.
강원도 철원을 찾는 관광객은 겨울에도 인산인해다. 겨울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그 발길은 꼬리를 문다. 겨울 발길이 닿은 곳은 물윗길이다. 태봉대교에서 시작해 순담계곡까지 꽝꽝 언 한탄강 물 위와 물 갓길을 오가며 이어지는 8㎞는 ‘눈높이 여행’의 새로운 방점이 됐다. 부교 구간은 2㎞이고 육로 구간은 6㎞다.
눈높이 여행은 그간 봐왔던 철원 풍광과 달리, 물윗길 여행에서 볼 수 있는 파노라마가 생경하기 그지없다. 눈높이가 다르니 감동도 다르다. 잔도(한탄강 주상절리길, 높은 절벽 옆에 낸 길)가 주마간산이라면 물윗길 탐방은 속살 여행이다. 물윗길 트레킹은 철원 여행의 또 다른 시작이다. 겨울에만 즐길 수 있으니 계절 특화 상품이기도 하다. 물윗길로 철원은 동토를 벗고 겨울 여행의 동트는 새벽을 맞았다.
물윗길…강의 속삭임이 들린다
그간 철원 여행에서 만난 한탄강 물소리는 주상절리에서 맥놀이 된 장쾌한 메아리였다. 물윗길 트레킹에서는 주상절리 잔도 여행과 다른 소리가 들린다. 물윗길에선 얼음 사이를 비집고 속삭이는 잔물결의 속삭임이 귀를 간질인다. 아주 오래전 이 동네 아이들이, 사람들이 발들일 수 없는 바위 벼랑을 기어 내려와 밤낚시를 즐기며 나눈 귀엣말을 닮았다.
그날 만난 손바닥만 한 모래톱은, 아무나 올 수 없으니 그들에겐 소도였다. 수십 년 만에 일반 탐방객에게 그들만의 비밀 아지트를 내어주었다. 물윗길이 아니면 닿을 수 없는 길을 걷는다. 그때 이름 붙였던 손모아·얼굴·마당 바위가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걷던 길을 잠시 쉬며 살펴볼 곳도 있다. 지금은 차량이 통제된 승일교다. 이 다리는 과거 철원 동송읍과 갈말읍을 연결하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그 교각을 쳐다보면 한국전쟁 중 양측이 공방전을 벌이며 남북이 나누어서 지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승일교는 남북 합작 다리다. 교각의 수가 다리를 반으로 나누어 보면 확실히 차이가 난다. 한쪽의 교각은 8개요 다른 쪽은 4개다. 이 탓에 한동안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을 엮어 승일교라 지었다는 풍문도 있었다. 최근 다리의 역사에 대한 사료를 근거로 한국전쟁의 영웅인 전쟁 실종자 ‘박승일’ 대령의 이름에서 다리의 이름을 땄다는 얘기가 정설로 굳혀지고 있다.
물윗길은 잔도의 출발지인 순담계곡까지 이어진다. 총거리(시간으로는 1시간 30분~2시간)가 부담이라면 은하수대교와 승일교 등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다만 승일교~순담계곡까지는 ‘닥치고 직진’이니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물윗길 중간 ‘쉼터’에서는 붕어빵·어묵 등 주전부리를 먹을 수 있는 매점도 있다. 승일교 인근에는 얼음 조각 포토존 등을 만날 수 있다. 중간중간에 자신만의 소원돌탑을 세워 여행의 의미를 더할 수도 있다.
물윗길의 이용 시간은 3월 중순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입장 마감은 오후 4시)까지다. 매주 화요일은 휴무다. 물윗길 탐방비 1만원을 내면, 5000원짜리 철원사랑상품권을 나누어 준다.
물윗길 등 올 겨울 철원을 찾은 탐방객에 대해 철원군의회 박기준 의장은 "철원군을 지난해 천만 관광 도시로 발돋움하게 해주셔서, 찾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주상절리 잔도…한탄강 비경에 눈 호강 트레킹
해외 명소 부럽지 않은 비경과 짜릿함을 선사하는 철원한탄강 주상절리길은 개방 이후 인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물윗길 출구가 잔도의 입구다.
이 길은 유네스코가 인증한 철원한탄강 지질공원 순담~드르니 구간에 조성된 길로, 총길이 3.6㎞에 이른다. 잔도를 거닐며 화산활동이 만든 한탄강 일대의 독특한 지형을 감상한다. 이때 볼 수 있는 주상절리는 마그마가 식어 굳으면 부피가 줄어 금이 생겨 켜켜이 쌓인 듯한 지형이다.
교량 13개, 스카이 전망대 3곳, 전망쉼터 10곳을 설치해 전망과 아슬아슬한 재미를 만끽하고, 각자 체력에 맞게 걷기와 휴식을 조절하도록 했다. 이 길은 출입구가 2곳이라, 출발지로 돌아가려면 차를 이용하거나 걸어야 한다. 전자는 주말과 공휴일에 양쪽 매표소를 왕복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평일에는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이때 철원사랑상품권을 내도 된다.
입장료(어른 1만 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를 내면 절반 정도를 철원사랑상품권(어른 5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으로 돌려준다. 입장 시간은 오전 9시~오후 4시, 동절기(12월 1일~이듬해 2월 28일, 올해는 29일)에는 오후 3시에 마감한다. 매주 화요일은 휴무다.
고석정…임꺽정 전설이 살아 숨 쉰다
고석정(孤石亭)은 철원 8경 중 하나이며, 철원 제일의 명승지이다. 한탄강 한복판에 치솟은 바위산의 양쪽 사이로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른다. 신라 진평왕 때 한탄강 중류에 10평 정도의 2층 누각을 건립해 고석정이라 명명했다 하며, 정자와 고석바위 주변의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했다.
철원은 추가령구조대(서울과 원산으로 이어지는 침식 계곡)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신생대 제4기 홍적세에 현무암 분출로 이루어진 용암대지로서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한탄강이 흐르면서 침식 활동을 통해 곳곳에 화강암의 주상절리와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다. 근대에 들어 경원선의 통과지가 되기도 한 철원은 이렇듯 숨어들기 좋은 장소였는지, 임꺽정(林巨正, ?~1562) 고사가 오롯하다.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고석정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정사가 아니라 바로 이 야사다. 의적 임꺽정의 배경지로 알려지면서부터다.
당시 함경도 지방으로부터 이곳을 통과해 조정에 상납할 조공물을 탈취한 도적이지만, 그것을 빈민 구제에 쓰는 등 부패한 사회에 항거한 의적이라 전해진다. 더 극적인 것은 임꺽정이 이곳에서 많이 잡히는 꺽지로 변신해 물속에 뛰어들어 관군의 추적을 피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현재도 강 중앙에 있는 20m 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했다는 자연 석실이 있고 건너편에는 석성이 남아 있다. 이곳은 풍치가 수려해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국민 관광지이다.
고석정 누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됐는데, 1971년 지방 유지들이 나서 10평의 2층 누각 형식의 정자를 다시 건립했다. 1996년 수해로 또다시 유실됐지만 1997년 재건축됐다.
이곳에서 상류로 약 2㎞ 지점에 직탕폭포가 있고 하류 약 2㎞ 지점에 순담이 있다. 고석정은 넓은 잔디광장과 다목적 운동장 등이 있어 사시사철 어느 때나 관광객이 찾기 편하고, 인근에 게르마늄 온천탕(한탄리버스파호텔)이 있어 여독을 풀기도 그만이다. 또한 한탄강관광사업소(구 철의 삼각 전적지 관리사무소)가 있어 사계절 안보관광과 겨울철에는 철새관광도 함께 할 수 있는 관광의 최적지이다.
철원평야…분주한 철새들의 비행은 왜
계절풍만 한반도를 유랑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가르쳐준 바 없을 텐데, 그들은 이맘때 어김없이 철원을 찾아온다. 흑두루미, 두루미, 청둥오리, 기러기와 독수리까지. 청명한 가을 하늘을 채우고, 가을걷이 끝난 뜨락에서 담소를 나누는 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맘때 철원의 하늘은 기러기, 청둥오리들의 하늘 군무로 소란스럽다. 요즘 철새는 수선스럽다? 예전 저들 선배들은 부산을 떨지 않았다. 너른 철원평야에 가을 추수가 끝나면 그 나락을 주워 먹느라, 철새들의 하늘 비상은 남의 일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볏짚을 축산 사료로 쓰기 위해 하얀 비닐(마시멜로를 닮았다)로 이삭 하나 남기지 않고 확 말아 놓는 통에, 저들의 삶도 궁핍해졌다. 먹을 게 없으니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식량 보급 투쟁’를 해야 하는 운명에 이 뜰 저 논을 찾아 헤매다 보니, 역으로 철원 겨울 하늘의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운이 좋으면 안개 낀 런던의 골목길 가스등 아래 서있는 암울한 분위기의 양복 신사처럼, 그 자태 고고한 수백의 독수리 떼도 만날 수 있다. 가끔 민통선 옆길을 달리다 보면 두루미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고라니가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한다. 조용히 탐조를 원하는 방문객들은 양지리 탐조대를 이용하면 된다.
이외에도 돌아볼 곳은 많다. 잔도나 물윗길 탐방 후, 1~2시간 정도 여유시간이 있다면 철원 역사문화공원(소이산 모노레일)과 철원 도피안사(국보인 고려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층탑이 있다)를 묶어서 들러봐도 좋다. 여유시간이 1시간 정도라면 차를 신철원 쪽으로 틀어 삼부연폭포를 감상해도 좋다. 3곳 모두 입장료가 없다.
한탄강도 식후경…서울식당·솔향기·철원막국수 등 유명
예상치 못하는 곳에 ‘오징어’ 맛집이 있다. 바다는 눈을 씻고 봐도 없고, 한탄강을 가르는 민물고기 매운탕과 비옥한 땅이 일군 오대쌀이 전부인 줄 알았던 강원도 철원에 2대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오징어물회’ 맛집인 장흥리 ‘서울식당’이 그곳이다. 유명세는 인근 내대리에서 얻었지만 현 위치로 옮긴 지 꽤 오래다.
냉동 오징어의 껍질을 벗겨내, 아삭한 배와 버무려 내는 하얀색의 ‘오징어 물회’는 실제 물이 들어가지 않기에 냉회란 표현이 어울린다. 사실 이 오징어물회 역시 냉동실에서 ‘오징어’ 취급받던 음식 재료의 대변신이었다.
짜장면부터 된장찌개까지 국적 불문, 특색 무시였던 흔한 시골식당의 가족 회식 메뉴가 대박 흥행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운 좋게 인기를 이어온 것은 아니다. 이 집의 인기로 철원에 때아니게 ‘오징어물회’ 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적지 않게 오픈했지만, 끝내 오롯이 살아남았다. 원조의 힘이고, 이 집만의 ‘오징어물회’ 맛의 승리다.
가족 모임을 위해 꽝꽝 언 오징어를 배와 무쳐 낸 ‘오징어물회’를, 당시 손님이었던 인근 부대 간부가 한 접시 맛을 보고 회식 메뉴로 요청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수십 가지 메뉴는 이후 ‘오징어물회’ 하나로 통일됐다. 이 음식에 반한 면회객들이 자식 전역 후에도 이곳을 찾으면서 철원 맛집으로 등극했다. 심지어 인천 등에서 오는 손님도 있었고, 유명 배우가 참여한 오토바이 라이더 모임의 단골집으로도 소문이 났다. KBS2 ‘배틀트립’에도 나왔다.
요즘 한탄강 잔도로 알려진 주상절리길 트레킹의 인기로 지역 방문객이 늘면서, 입소문을 들은 여행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오징어물회는 그냥 먹어도 좋고, 밥과 함께 쓱쓱 비벼 먹어도 좋다.
고석정에서 동양의 나이아가라라는 별칭이 있는 직탕폭포를 가는 구 길 중간에 있다. 주차장이 넓어 가던 길에 차를 대도 무리가 없다. 주방이 개방형이라 위생 면에서도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오징어물회와 더불어 제공되는 동치미의 맛도 어디에 빠지지 않는다.
최근 이 집은 뜬금없이 원조 논란에 휩싸였다. 요식업계의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뜬금없이 다른 곳을 ‘원조집’으로 지목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문제를 지적해도 백 대표는 유튜브를 수정하지 않고 있다. 오징어물회 ‘서울식당’의 단골들은 그 일에 고개를 가로저으면, “원조집은 서울식당”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바다가 없는 철원에 ‘오징어물회’라니…그 연유를 아는 곳이 원조집 아닐까?
행정구역이 다르지만 포천시 관인에 있는 ‘싱싱장어’는 인심으로 토핑된 장어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철원과 어깨가 맞닿은 거리에 있다. 관인 시내에서 방사형으로 뻗은 3개의 골목길 중 가운데로 들어오면 그 중간에 있다.
인근에서 횟집 등을 운영하다가 장어집을 냈으니 주인장의 칼솜씨야 이미 검증된 터다. 거기에 전라도 출신 안주인의 손맛이 이어져 장어 맛집이란 말보다 그냥 맛집으로 불러도 좋다. 장어의 풍미도 그만이지만 차려진 반찬을 맛보면 할머니 손맛이 절로 떠오른다.
장어 외에 코다리찜은 밥도둑이다. 매콤하게 차려진 코다리찜은, 살 속속 바다를 품은 코다리와 양념이 작당해 입속에서 살살 녹아내린다. 장어로는 소주 한잔, 코다리로는 밥 한술 떠먹다 보면 그 자리엔 웃음이 가득하다.
허름한 간판에 노포 분위기 판에 박힌 이곳에서 인증사진 정도는 남겨야, 여행의 추억에 오래도록 방점이 찍힐 듯하다.
철원군 동송 입구 만두 전골집 ‘솔향기’는 ‘빅뱅’의 태양이 군 복무 중 자주 찾은 곳으로 유명하다. 손으로 직접 빚은 만두와 칼국수. 쇠고기 냉수육 등이 달아날 법한 겨울 입맛을 붙잡는다.
신철원에 있는 ‘철원막국수’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매운탕 집은 오덕로에 있는 ‘샘통자연의집’이 숨은 맛집이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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