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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충전기 확대’ 물음표에도…정부, 충전기 123만기 시대 기조 유지

[전기차 포비아를 파는 사람들]①
설익은 대책이 ‘전기차 포비아’ 부추긴다는 지적도
업계와 전문가들 근거 없는 ‘전기차 포비아’ 진화 나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던 인천 서구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기차 충전 구역에 녹아내린 전기차 충전기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전기차 충전기 123만기 시대, 차질 없이 간다. 약간의 수정은 있다. 내년부터는 전력선통신(PLC)모뎀이 탑재된 ‘스마트 제어 완속충전기’만 보급된다. PLC 모뎀이 장착될 경우 전기차 배터리 충전 상태 정보(SoC)를 전기차 배터리관리시스템(BMS)에서 건네 받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과충전을 방지한다. 이미 전기차 자체에도 충전량을 제한하는 기능은 있지만, 이중으로 과충전을 예방할 수 있는 셈이다.

자동차 업계는 항변한다. 충전률과 화재와의 연관성은 미미하다는 것.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100% 완전 충전해도 안전하게 관리되도록 설계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를 ‘안전마진’이라 부른다. 안전마진이 5%로 설정된 차량의 경우 100% 충전이 됐다고 고객에게 보여져도, 실제 충전 가능 용량의 95%까지만 충전된다. 100%가 실제로는 100%가 아닌 셈이다. 현대차·기아는 자사 전기차 중 과충전으로 화재가 발생한 경우는 0건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만도 나온다. ‘전기차 포비아’를 앞세운 예산 낭비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특히 완성차 업계와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 없이 마련된 이번 대책에 물음표를 던진다. 사후약방문으로 설익은 대책을 내놓기보다, 보다 실질적인 전기차 화재 예방이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전기차 주차장에서 충전중인 차량들. [사진 연합뉴스]

정부·지자체 엇박자에도...“조화롭게 이행”


환경부 내년도 예산안 규모는 13조94억원. 이 중 충전기 설치를 비롯해 무공해차 보급에 편성된 예산은 총 3조1915억원이다. 올해 3조537억원보다 4.5% 증가한 금액이다. 환경부는 내년에 전기차 완속충전기 7만1000기와 급속충전기 4000기를 새로 보급할 계획이다. 완속충전기는 전부 스마트 제어 충전기로 설치된다. 일반 완속충전기 구축사업은 종료된다.

앞서 정부 발표한 ‘전기차 충전 기반시설(인프라) 확충 및 안전 강화 방안’에 따르면 오는 2025년 총 59만대의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된다. 이 중 급속 충전기는 6만9000대, 완속 충전기는 52만대다. 이후 2027년 85만대(급속 9만9000대·완속 74만6000대)를 구축하고 오는 2030년까지 최종 123만대(급속 14만5000대·완속 108만5000대) 구축을 목표로 세웠다.

충전기 시설장소별 구축 목표를 살펴보면 공동주택 및 직장을 포함한 생활권이 가장 높았다. 25년 목표치인 59만대 중 공동주택·직장 등에 51만9000대가 설치된다. 뒤이어 2027년 74만5000대 30년 108만5000대의 순으로 설치가 이뤄질 전망이다.

문제는 환경부의 충전기 시설 장소별 구축 목표와 지자체의 동상이몽이다. 오는 30년을 기준으로 공동주택·직장 외 나머지 생활권 및 이동 거점의 비율은 터무니 없이 낮다. 상업시설·근린생활시성의 30년 구축 목표는 7만6000대다. 이밖에 이동거점(고속도로 휴게소·공영주차장·주유소 등)의 구축 목표 대수 총 합은 3만8500대에 그친다. 공동주택·직장의 설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셈이다.

환경부의 충전기 시설 장소별 구축 목표치가 공동주택·직장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 개정을 통해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을 제한한 전기차만 들어갈 수 있도록 권고할 예정이라 밝힌 바 있다. 대다수의 전기차 충전기가 공동주택에 설치되는 점을 미뤄 봤을 때, 90% 이하로만 충전이 되는 전기차 충전기만 지하에 설치해야 되는 셈이다.

지난 7월 말 기준 서울에 설치된 충전기 현황은 총 5만8580대다. 이중 급속이 5002대, 완속이 5만3578대다. 경기 10만2324대(급속9830대·완속 9만2494대)에 이어 2위다. 서울시의 계획에 따르면 PLC모뎀이 장착되지 않은 완속 충전기는 사실상 교체 수순을 밟게 된다. 기존 완속 충전기에는 과충전을 예방할 수 있는 기능이 없는 까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시가 발표한 ‘공동주택 지하주차장 충전율 90% 이상 전기차 출입 제한’ 정책이 성급하게 발표됐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회 의원은 지난 28일 열린 제326회 임시회에서 “청라 화재 발생 후 열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과 과학적 근거 없이 마치 배터리 과충전이 사고 원인이었던 것처럼 성급히 정책을 발표한 것은 전기차 보급 확산에 앞장서야 할 서울시가 전기차 포비아만 부추긴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배터리 셀 안전기준을 담당하는 산업부도 과충전에 따른 전기차 화재 가능성에 대해 신중론을 택했다. 박성택 산업부 1차관은 지난달 19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울시의 대책이 전기차 공포증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대해 “방법론상 옳다고 해도 엄밀한 검증 후에 발표되면 좋지 않았겠나”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률 90% 이상 지하주차장 출입 제한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 사안”이라며 “혼란을 막기 위해 추후 정부 차원의 대책 발표 결과에 따라 관련 현안들을 검토하고 조화롭게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빌딩 주차장 입구에 붙어있는 '전기차 주차 불가' 안내문 [사진 연합뉴스]

업계가 바라본 ‘전기차 충전기 대책’


업계는 정부의 ‘전기차 충전기 대책’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전기차 포비아로 인한 설익은 대책이라 평가한다. 특히 전기차 충전량과 화재 발생의 연관성에 대해 사실과 다르거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주장들이 무분별하게 퍼지자 업계와 전문가가 나서 바로잡는 경우도 발생했다.

지난 8월 현대차·기아는 과충전에 의해 전기차 화재가 일어난 사례는 전무하다는 설명 자료를 통해 ‘전기차 포비아’ 진화에 나섰다. 현대차·기아는 “배터리 충전량이 총열량과 비례해 화재의 규모나 지속성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도 “배터리 화재의 원인은 배터리 충전량 자체와는 관계없는 셀 자체의 제조 불량 또는 외부 충격 등에 의한 내부적 단락이 대부분이고 과충전에 의해 전기차 화재가 일어난 사례도 전무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지금껏 확산 된 전기차 충전기 화재 발생 관련 주장들 가운데 명확히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이 얼마나 있나”며 “일부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뱉은 말들을 아무런 확인 절차 없이 정책에 반영하는 것보다 화재 예방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윤원섭 셩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배터리 충전량이나 충전 속도 등이 (전기차 화재에) 연관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배적인 이유는 아니다”라며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 셀 내부 결함이나 BMS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내연기관차 화재 건수보다 전기차 화재 건수가 적다는 점도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감이 과도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자동차 화재는 총 4800건이 발생했다. 연도별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를 기준으로 산출한 1만대당 화재 건수는 지난해 기준 비(非)전기차는 1.86건, 전기차는 1.32건으로 전기차 화재가 내연기관차 화재보다 적었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전기차 및 충전시설 보급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반드시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 및 충전시설 보급 등 관련 사업 육성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반드시 추진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전기차 화재 안전 대책 및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과 안전강화 방안 등을 통해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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