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도 아닌데 복잡한 계산”…청약 ‘가점’ 어떻게 산정하나
[복잡한 청약]①
100명 중 5명은 가점 계산 잘못해 ‘부적격’
84점 만점 받으려면 7인 가구, 통장 가입‧무주택 15년 유지해야
가점 높이려 ‘부양가족’ 수 속이기도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최근 5년 동안 청약 시장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이 8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청약 당첨 후 부적격으로 판정된 사람은 8만71명으로 집계됐다. 청약 인기 지역에서는 경쟁률이 수백 대 일까지 치솟기도 하는데, 어렵게 당첨되고도 부적격 판정으로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잃은 가구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부적격 당첨자 발생 비율을 연도별로 보면 ▲2019년 11.3% ▲2020년 9.5% ▲2021년 8.9% ▲2022년 7.8% ▲2023년 5.3% 수준이다. 매년 부적격 당첨자 비율이 줄어들고 있지만, 당첨자 20명 가운데 1명은 적격 대상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부적격자가 되는 대표적인 이유로는 ▲무주택기간 산정 오류 ▲세대원 주택소유(분양권 등) 여부 착오 ▲거주지역 선택 오류 ▲세대주 여부 오류 ▲세대원 중복 청약 등이 있다. 민 의원은 “부적격 판정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생애 첫 내 집 마련을 꿈꾸던 무주택자들이고,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과 좌절이 클 것”이라며 “청약 신청을 간소화하고, 부적격 판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안내를 강화하는 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무주택기간과 관련해 청약자들의 착오가 많이 나오는 것은 기준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주택기간을 산정하는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만 30세’ 나이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만 30세 이후에 결혼했다면 이 나이를 기점으로 입주자 모집 공고일까지를 무주택 기간으로 산정하면 된다. 독신인 만 40세 A 씨의 경우 주택을 보유한 적이 없었다면 무주택 기간을 10년으로 본다는 뜻이다. 35세에 결혼한 만 40세의 B 씨도 집을 산 이력이 없다면 역시 무주택 기간이 10년이 된다.
또 다른 기준은 혼인 신고일이다. 만 30세 이전에 결혼하고 그 이후 주택을 보유하지 않았다면 혼인 신고일로부터 무주택 기간을 따진다. 28세에 결혼한 40세 C 씨의 경우 요건을 충족했다면 무주택 기간을 12년으로 계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부모에게서 독립해 혼자 산 기간이 길더라도 만 30세가 되지 않은 미혼자라면 무주택 기간은 ‘0’ 년으로 산정한다.
주택 보유 여부도 중요하다. 본인과 배우자 중 한 사람이라도 주택을 소유했던 이력이 있으면 주택을 처분해 무주택자가 된 날부터 무주택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후 혼인신고일과 만 30세가 되는 날 가운데 늦은 날부터 공고일까지를 무주택 기간으로 본다.
주택 청약에서 무주택 기간을 중요하게 따지는 것은 이에 따라 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청약 당첨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는 가점제와 추첨제가 있는데 가점제의 경우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우선 당첨된다. 총점 84점 만점에 무주택 기간에 따른 가점은 최대 32점, 부양가족 수는 35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은 17점으로 계산한다.
무주택 기간 가점은 청약 가입자의 무주택 기간 길수록 점수가 올라간다. 1년 미만이면 2점, 1년 이상~2년 미만이면 4점, 2년 이상~3년 미만이면 6점이다. 기간이 1년 늘수록 점수는 2점씩 올라간다. 무주택 기간이 15년 이상이면 상한인 32점을 얻을 수 있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에 따른 가점의 경우 15년 이상 통장을 유지할 17점 만점을 받는다. 6개월 미만은 1점, 6개월 이상~1년 미만은 2점, 1년 이상~2년 미만은 3점으로 가입 기간이 1년 늘어날 때마다 1점씩 더해진다. 최근에는 배우자의 청약통장 가입 기간에 따른 가점도 얻을 수 있는데, 배우자가 2년 이상 청약통장을 유지했다면 가점 3점이 더해진다.
부양가족 수에 따른 가점도 있다. 부양가족은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된 직계존비속을 의미한다. 한 가정에 속한 인원이 많을수록 가점이 올라간다. 부양가족 수가 6명 이상인 경우, 즉 7인 이상 가구이면 만점인 35점을 받을 수 있다. 부양가족 수가 5명이면 30점, 4명은 25점, 3명이면 20점이다. 부양가족이 없는 독신 가정의 경우 5점을 받는다.
청약점수 높이려 ‘위장전입’ 꼼수 의혹도
일각에서는 청약 가점을 계산하는 게 복잡하다는 문제 외에도, 정부가 청약 당첨 가구의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청약 지원자들 가운데 가점을 높이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함께 살지 않는 직계존비속을 ‘위장전입’하는 방식으로 부양가족 수를 늘려 가점을 챙기는 얌체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주택공급 계약이 취소될 뿐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지만, 당첨될 경우 시세차익으로 큰돈을 벌 수 있어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공급하는 ‘청담 르엘’의 경우 최소 당첨 가점이 74점이었다. 이 점수 5인 가구가 15년 이상 무주택 기간을 유지하고 청약저축에 가입한 지 15년 지나야 얻을 수 있는 점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고점자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최근에야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정말 이만큼 점수를 받을 수 있는 5인 이상 가구가 많은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사례는 청담 르엘 청약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서는 70점 이상 당첨자 비중은 83% 수준으로 확인됐다. 일부 청약에는 만점(84점)자가 3명이나 몰리기도 했다. 만점을 받으려면 7인 이상 가구가 15년 이상 무주택을 유지하고 15년 이상 청약 저축에 가입했어야 가능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주택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행 청약제도는 가입 기간이 짧은 젊은 층에 불리한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위법한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나이에 관계없이 청약에 당첨될 기회를 공정하게 얻을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4년간 적발된 부정 청약 1116건 가운데 위장 전입이 778건(69.7%)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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