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은 왜 그렇게 빨리 실패하는가[실리콘밸리의 사람들]
- 실패는 ‘낙인’ 아닌 ‘학습’으로 평가받아야
성공을 위한 가장 빠른 길…’계산된 실패’ 설계해야

[최성안 2080벤처스 대표]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가 칭찬받는다. 한국에서는 숨겨야 한다."
2024년 한 국내 대기업 임원이 던진 이 말은 한국과 실리콘밸리의 본질적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네이버의 한 신사업 담당자는 "3년간 준비한 프로젝트가 출시 6개월 만에 중단됐는데, 사내에서는 이를 '실패'로 기록했다"며 "같은 상황이라면 구글은 '빠른 학습'으로 평가했을 것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투자 받은 스타트업 중 상당수가 2~3년 내 피벗하거나 사업을 중단한다. 하지만 이를 '실패율'이 아니라 '학습 속도'로 평가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실패는 여전히 '낙인'이다. 한 번 실패하면 재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구조에서, 스타트업도 신사업도 완벽한 준비가 끝날 때까지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출시는 늦어지고, 시장 변화에 뒤처지며, 투자 타이밍을 놓친다.
실패를 설계한다는 것
실리콘밸리의 'Fail Fast’(빨리 실패하라)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철저히 계산된 시스템 전략이다.
테슬라는 2008년 로드스터 출시 당시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제품'을 내놓았다. 일론 머스크는 "완벽한 전기차를 만들려고 했다면 아직도 개발 중일 것"이라며 "시장의 피드백이 가장 정확한 R&D"라고 말했다. 로드스터는 수많은 결함을 안고 출시됐지만, 이를 통해 얻은 데이터가 모델 S, 모델 3로 이어지는 성공의 토대가 됐다.
저자가 실리콘밸리에서 토요타와 테슬라 협업을 담당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토요타와 테슬라가 2010년 협업했을 당시 토요타 엔지니어가 테슬라의 기술을 보고 “테슬라 기술은 별거 아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토요타 엔지니어들도 테슬라의 기술력에 놀란다고 한다.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는 더욱 체계적이다. 3개월간의 프로그램 동안 스타트업들에게 최소 3번의 '실패 시나리오'를 경험하게 한다. ▲최소 기능 제품(MVP) 출시 ▲초기 고객 피드백 수집 ▲피벗 결정까지의 전 과정을 압축해서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기존 아이디어를 포기한다. 하지만 YC는 이를 '탈락'이 아닌 '조기 검증'으로 본다.
폴 그레이엄(Paul Graham) YC 창립자는 "최고의 스타트업 아이디어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창업자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조건이 핵심이다. 남들이 가치 없다고 여기는 아이디어일수록 빨리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성공할 경우 독점적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실패는 비용이 아닌 데이터
미국 벤처캐피털들이 실패를 대하는 관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세쿼이아 캐피털의 파트너 더그 레온(Doug Leone)은 "우리는 실패한 스타트업에도 감사한다. 그들이 시장에서 검증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미리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023년 실리콘밸리에서 문을 닫은 스타트업 1200여 개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평균 실패 시점은 창업 후 20개월이었다. 이는 2018년 32개월, 2020년 28개월보다 크게 단축된 수치다. VC들이 의도적으로 '빠른 실패'를 유도하고 있다는 증거다.
안드레센 호로위츠(a16z)의 공동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은 "늦게 죽는 스타트업이 가장 나쁘다. 창업자의 시간도, 투자자의 돈도, 시장의 기회도 모두 낭비한다"며 "6개월 내 실패하는 게 2년 후 실패하는 것보다 10배 낫다"고 단언한다.
이런 철학 아래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한 창업자에게 오히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트위터 창립자 잭 도시는 첫 번째 회사 실패 후 트위터를, 테슬라 창립자 일론 머스크는 Zip2와 X 실패 경험을 토대로 페이팔을 성공시켰다. 실패는 경험이 되고, 경험은 신뢰가 된다.

한국은 왜 빨리 실패하지 못하는가
한국 조직 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보고 중심주의'다. 실험하고 실패하는 것보다 실패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네이버의 한 개발팀장은 “새로운 기능을 테스트하려면 ▲기획서 작성 ▲여러 차례의 검토 회의 ▲ 복수의 승인 단계를 거쳐야 한다” 며 "그 시간이면 구글은 이미 출시하고 피드백까지 받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내부 직원은 "실험적 프로젝트라도 실패하면 담당자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모두가 안전한 길만 선택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생태계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스타트업들은 MVP보다 '완제품'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2024년 국내 스타트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균 개발 기간이 14개월로 실리콘밸리(6개월)의 2배 이상이었다. "불완전한 제품으로 고객을 만나기 부담스럽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토스조차 초기에는 이런 함정에 빠졌다. 이승건 토스 창업자는 "첫 번째 버전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1년 반을 썼는데, 출시 후 사용자 피드백을 보니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기능들은 아무도 쓰지 않았다"며 "그때부터 2주마다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회고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실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다. 2023년 글로벌 기업가정신 연구(GEM) 등에 따르면, "사업 실패가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라고 답한 한국인은 27%로, 미국(73%), 독일(61%)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실패한 창업자가 재창업하는 비율도 한국은 12%로, 미국(42%)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실패를 설계하는 방법
빠른 실패를 위해서는 먼저 '실험 설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구글의 경우 모든 신규 프로젝트에 '킬 크라이테리아(Kill Criteria)'를 미리 정해둔다. 어떤 지표가 나오면 프로젝트를 중단할지를 사전에 합의하는 것이다.
구글 글래스가 대표적 사례다. 구글은 2013~2014년 일반 소비자용 글래스를 출시했으나 ▲높은 가격 ▲사생활 침해 논란 ▲기술적 한계 등으로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 결국 2015년 소비자용 제품 개발을 중단하고, 이후 기업용 ‘구글 글래스 엔터프라이즈’로 방향을 전환해 산업 현장 등에서 활용되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다. 구글은 시장 반응과 실사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용에서 기업용으로 전략을 빠르게 피벗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아마존도 마찬가지다. 파이어폰 실패 후 제프 베조스는 "우리는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실패를 할 것이다. 그것이 혁신의 대가"라며 "중요한 것은 실패의 크기가 아니라 실패로부터 배우는 속도"라고 말했다.
우리는 얼마나 빨리 실패할 수 있는가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결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아니라 '실패를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시스템'에 있다. 이제 한국도 조직 내에서 빠른 실패를 설계해야 한다.
첫째, MVP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핵심 가치만 담은 최소 기능으로 시장에 나가야 한다. 둘째, 실험과 피벗을 일상화해야 한다. 3개월마다 성과를 점검하고, 기준에 미달하면 과감히 방향을 바꾸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셋째, 실패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실패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 값진 데이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다. 경영진부터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실패해도 괜찮은 것이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혁신은 멈춘다.
마크 저커버그는 말했다. "가장 큰 리스크는 리스크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한국도 실패를 무서워하지 말고, 실패를 설계할 때가 됐다. 빠르게 실패할 수록, 빠르게 성공에 가까워진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권은비, 자기관리 완벽…탄탄한 복근 깜짝 공개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이데일리
이데일리
권은비, 자기관리 완벽…탄탄한 복근 깜짝 공개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나랏빚' 국채이자 올해 30조 넘는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원조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몸값 ‘2000억원’ 찍은 이유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구독하면 200만원 주식 선물', 팜이데일리 8월 행사 시작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