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반도체 최혜국 대우, 안심하긴 이르다”...관세 넘는 실질 경쟁력 키워야 [韓美 관세 진단] ⑤
- 특별 기고-전정환 경상국립대 산업시스템공학부 교수
최혜국 대우 약속했지만...단기 위기 회피에 불가
수출의 17% 차지하는 산업...혁신적 생태계 전환 필요

특히 반도체 산업은 2023년 전 세계 시장 규모가 약 5700억 달러(한화 약 780조원)에 달하며, 우리나라 수출의 약 17%를 차지하는 대표적 국가전략산업이다. 2022년 국내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는 30조원에 육박해 제조업 경쟁력의 바로미터로 평가받는다. 주요 강대국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반도체를 ‘경제 패권’뿐 아니라 ‘기술 안보’의 핵심 기반으로 인식, 자국 중심 공급망 확보와 기술 내재화에 막대한 예산과 보호무역 정책을 투입 중이다.
이런 국제 환경에서 최근 한미 양국은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과 심화하는 보호무역 기조에 대응해 관세협정을 새롭게 개정했다. 미국은 자동차, 조선 등 일부 핵심 품목에 대해 25% 관세 부과를 예고했으나, 이번 협정을 통해 이를 15%로 완화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반도체에 대해서는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합의해 당장의 충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협정 타결은 단기 위기 회피에 불과하다. 미국은 CHIPS Act를 통한 대규모 반도체 투자 확대와 까다로운 현지화 요건 도입 등 실질적인 비관세 장벽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 유럽연합 역시 자국 산업 보호와 기술 확보를 위한 보조금 정책 및 규제를 강력히 추진 중이다. 이런 조치들은 단순한 관세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하여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5년 7월 기준, 한국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1.6% 증가한 147억 달러를 기록하며 단기적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이는 AI와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며, 무관세 유지가 시장 확대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다. 미중 기술 패권 갈등이 심화할수록 국내 기업들은 공급처 다변화와 투자 결정, 기술 개발 방향에서 더 복잡한 압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AI 전환 속에서 변화하는 경쟁 요소에 집중
현장에서는 이미 관세율보다 더 강한 경쟁 요소들이 산업 위상을 좌우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AI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공급사 선정에서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가 보유한 뛰어난 기술 신뢰도와 양산 수율을 높이 평가해 핵심 협력사로 선택했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HBM3E 제품 양산 수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려 안정적 공급 기반을 마련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초기 품질 인증 지연으로 고전했으나, 막대한 R&D 투자와 조직 혁신으로 기술력 회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처럼 품질, 기술력, 공급 안정성이 관세보다 산업 내 지위와 실적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세계 반도체 산업은 미세공정, 파운드리, 패키징, 소프트웨어 등 가치사슬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은 설계와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시장을 주도하며, 대만 TSMC는 초미세 공정에서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은 소재·장비 분야에서 3년 연속 점유율 확대를 이어가고 있으며, 중국은 내수 시장 강화와 우회 수출 전략 추진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으나, 이는 과거부터 축적된 기술력과 대규모 투자의 결과이고, 현재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설계·고부가 패키징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2024년 국내 시스템반도체 설계(팹리스) 기업은 약 170개이나 글로벌 톱 10에는 포함된 기업이 단 한 곳도 없을 정도다. AI 전환 속에서 반도체 경쟁이 단일 제품에서 생태계 통합 경쟁으로 바뀌고 있기에, 설계, 패키징, 소프트웨어 분야가 뒤처지면 장기적 성장에 심각한 제약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단기적 관세 협상에 안주하지 않고, 산업 구조의 대대적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일이다. 향후 예상되는 주요 도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미국·중국을 중심으로 수요처가 분산됨에 따라 지역별 공급망 이중화 및 현지 생산 투자가 크게 늘어날 압력이 존재한다. 이는 안정적 공급을 위해 현지 제조시설 구축을 요구하는 동시에, 글로벌 생산 거점 다변화라는 과제를 안긴다. 둘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기술 내재화 요구가 더욱 강화되면서, 관련 산업 생태계를 조속히 구축하고 육성해야 한다. 이는 단순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넘어 산업 전반의 경쟁력 확보와 공급망 안정성의 핵심 기반이 된다. 셋째, 시스템 반도체, 설계, AI 반도체 등 신성장 분야에서의 역동적 진입과 경쟁력 확보가 필수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고성능 연산용 칩, 신소재, AI 전용 칩 등 차세대 기술 개발과 상용화가 글로벌 주도권 확보의 관건이다.
단기 외부 변수 넘어 장기적 전략 필요
이에 다음과 같은 실천 방안을 제언한다. 첫째, 메모리·시스템·패키징·소프트웨어 전 분야에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인력 재교육을 병행해 산업 전반 혁신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고객사와의 공동 설계 및 상품기획 협력 체계를 조속히 구축해 시장 요구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산업계는 공급망 다변화 및 현지화 전략으로 복합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분산하고 대응해야 하며 넷째, 정부는 ▲세제 지원 강화 ▲연구 인력 확대 ▲산학 R&D 클러스터 구축 등 실효성 높은 정책적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한미 관세협정 타결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시간을 벌어준 장치’나 다름없다. 급변하는 산업 패러다임 속에서 실질 경쟁력 확보와 생태계 전환을 위한 골든타임이 도래했다. 특히 정부 정책은 대기업 위주의 지원을 넘어서 팹리스, 소부장, 산학협력 생태계 간 활발한 연계 강화와 전문 인재 양성에 집중해야 한다. 단기 외부 변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향후 5년, 10년 뒤에도 글로벌 기술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업계, 정부, 학계, 스타트업이 모두 협력하며 혁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준비된 국가와 기업만이 다가올 글로벌 무역환경 변화의 승자가 될 것이다.

※ 전정환 교수는 기술경영분야의 전문가로서 경상국립대 산업시스템공학부에 재직중이다. KAIST 기계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삼성전자(반도체사업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에서 근무했으며, 경상국립대에서는 공과대학 부학장, 기획처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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