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우 더벤처스 대표 인터뷰
AI 심사역 도입으로 투자 검토 1달→1주
발표 없는 20분 미팅…VC 업무 방식 재설계
소비재는 수단, 핵심은 글로벌 얼리 스테이지
“사업은 10년” 집요함에서 창업자를 본다
[이데일리 마켓in 김연서 기자]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투자 검토는 통상 한 달 이상 걸린다. 발표 자료를 준비해 수 차례 미팅을 거치는 방식도 여전히 일반적이다.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더벤처스는 이 관행을 인공지능(AI)으로 뒤집었다. AI 심사역을 도입해 투자 검토 기간을 ‘한달에서 1일주일’로 줄였고, 창업자와의 미팅은 발표 없이 20분 Q&A로 끝낸다.
김철우 더벤처스 대표는 “AI는 목적이 아니라 효율을 위한 수단”이라며 “VC 역시 충분히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철우 더벤처스 대표. (사진=더벤처스)
더벤처스는 창업자 출신 파트너들이 후배 창업자에 투자하는 글로벌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다. 대표를 포함한 임원진 다수가 직접 창업과 엑시트 경험을 갖고 있다. 투자 판단과 지원 방식 전반을 ‘창업자 편’에 맞춰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팀은 한국을 중심으로 베트남, 싱가포르, 미국 등지에 분산돼 글로벌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AI 심사역이 바꾼 VC의 일하는 방식
더벤처스의 AI 심사역은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니다. 인하우스로 직접 개발했다. 뱅크샐러드 출신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합류해 시스템 구축을 주도했고, AI 도입에 앞서 내부 데이터의 온라인화와 대시보드 정비 작업을 장기간 진행했다. 투자 검토 기록과 투자위원회 논의까지 시스템에 축적했다.
프로세스는 단순하다. 스타트업이 정보를 남기면 AI가 시장과 경쟁 현황, 확인해야 할 포인트를 정리한다. 심사역은 이를 바탕으로 미팅에서 필요한 질문만 던진다. 발표는 없다. 대부분 20분이면 충분하다.
김 대표는 “VC는 구조적으로 중고거래 플랫폼과 같은 멀티사이드 중개자”라며 “중고거래는 효율과 속도를 극적으로 개선해왔지만 VC는 50년간 같은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AI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일하는 하우스와 그렇지 않은 곳의 투자 성과는 앞으로 극단적으로 갈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AI 심사역은 투자 속도뿐 아니라 창업자 경험(UX)도 바꿨다. 김 대표는 “20분 대화로 투자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에 놀라는 창업자들이 많다”며 “더벤처스에 투자 검토를 요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소비재 VC’가 아닌 ‘글로벌 얼리 스테이지’
더벤처스는 올해 투자 키워드로 ‘글로벌’을 꼽는다. 올해에만 12개국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해 싱가포르·베트남 등 동남아, 뉴질랜드,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까지 투자 범위를 넓혔다.
한국 스타트업이든 해외 스타트업이든 기준은 같다.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설계된 팀인지다. 김 대표는 “지금도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글로벌”이라며 “글로벌을 지향하는 스타트업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글로벌 K소비재 펀드 조성 이후 더벤처스를 소비재 전문 VC로 보는 시선도 있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소비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글로벌이 더 중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쉬운 분야가 소비재였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 서비스와 제품의 완성도는 이미 글로벌 상위권”이라며 “차이는 한국 시장에만 머무르느냐, 동남아와 북미 전체를 겨냥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번개장터 등 국내 서비스의 완성도가 해외 유사 서비스보다 높다는 점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는 것이다.
김철우 더벤처스 대표. (사진=더벤처스)
◇“사업은 10년”…집요함에서 창업자를 본다
AI로 투자 효율을 높였지만, 최종 판단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더벤처스가 창업자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집요함’과 ‘10년을 버틸 동기’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이 일정 수준까지 성장하는 데는 10년이 걸린다”며 “유행을 따라 시작한 사업으로는 그 시간을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투자 검토 과정에서 과거에 무엇에 집요하게 매달렸는지, 왜 그랬는지를 묻는 이유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타트업 ‘리피드’다. 리피드는 폐식용유(Used Cooking Oil)의 디지털 수거·관리 기술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항공유(SAF) 원료 공급망을 혁신하는 기후테크 스타트업이다.
한국 출신 창업자들이 베트남으로 건너가 직접 식당을 돌며 폐식용유 수거부터 시작했다. 학벌이나 과거 경력이 이 분야와 맞닿아 있던 것도 아니었다. 김 대표는 “신념 하나로 베트남에 들어가 직접 수거한 그 집요함이 결국 경쟁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더벤처스는 2022년 10월 첫 투자 이후 후속 투자를 이어가며 적극적으로 리피드를 지원하고 있다.
뤼이드(산타토익) 이후 재창업에 나선 창업자에게 다시 투자한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김 대표는 “평가가 엇갈릴 수는 있지만, 비저너리 창업자는 많지 않다”며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창업자에게 의미를 둔다”고 말했다.
◇“지금은 글로벌 도전에 가장 좋은 시기”
김 대표는 지금이 한국 창업자들에게 글로벌 도전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강조했다. 더벤처스가 투자를 처음 시작한 2007년 당시와 비교하면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과거에는 한국에서 시작하면 100m 뒤에서 출발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동등하거나 오히려 유리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콘텐츠와 기술, 제조 역량 전반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글로벌 인식이 높아졌고,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전제로 한 사업 설계도 훨씬 수월해졌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한국에서 뭘 해도 ‘왜 한국이냐’는 질문부터 받았지만, 지금은 한국 출신이라는 점 자체가 하나의 경쟁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시장을 꿈꾸는 창업자라면 더벤처스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투자사가 되고 싶다”며 “초기부터 글로벌을 전제로 사업을 설계하고 실행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자들이 도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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