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역대급 실적에도 ‘매서운 칼바람’…“40세 은행원도 짐싼다”
- [은행권 희망퇴직의 역설]①
40대까지 내려온 희망퇴직…디지털 전환이 부른 인력 구조 재편
사상 최대 실적은 ‘구조조정 실탄’…고정비 절감 위한 선제 투자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은행 내부에서는 인력 감축의 칼바람이 일고 있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지금 조직을 가볍게 만들 적기라는 판단 아래 구조조정을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만 40세 임직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되면서 은행이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13일까지 희망퇴직 접수를 받았다. 희망퇴직 대상자는 1970·1971년 중 출생한 전 직원, 1972년 이후 출생 직원은 직급별로 소속장(지점장·부장)급은 전 직원, 관리자(부지점장·부부장)급은 1977년 말 출생자, 책임자(차장·과장)와 행원(대리·계장)급은 1980년 말 이전 출생자로 알려졌다. 출생 연도에 따라 21개월·31개월치 기본급이 특별퇴직금으로 지급된다. 우리은행은 지난해에도 400명이 넘는 희망퇴직자들이 나왔는데, 올해에도 비슷한 규모의 퇴직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은행은 지난 5일까지 준정년 특별퇴직 신청을 받았다. 만 40세 이상이면서 15년 이상 근무한 일반 직원이 대상이었다. 희망자는 오는 31일자로 퇴직하게 되는데 연령에 따라 최대 24·31개월치 평균 임금을 지급받는다. KB국민은행도 지난해 12월 희망퇴직 접수를 받았다. 1975년생 이상 임직원이 대상이었다. 희망퇴직자는 특별퇴직금으로 근속연수에 따라 18·31개월치 임금을 받는다.
같은 달 신한은행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만 40세 이상 직원도 퇴직 신청 대상에 포함됐다. NH농협은행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1969년생 직원은 월평균 임금 28개월치, 10년 이상 근무한 40세 이상 직원은 20개월치를 받을 수 있다고 공고했다. 금융권에서는 5대 은행에서만 희망퇴직 인원이 2000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AX 중심 경영 체제 전환…“사람 대신 AI가 금융 판도 좌우”
시중은행들이 대규모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것은 사상 최대 수익을 낸 시점에서 이를 활용해 본격적인 체질 개선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비대면 서비스가 늘고 점포수가 줄면서 많은 인력이 장기적으로 은행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이 구조조정에 들어간 배경으로는 비대면 서비스와 인공지능(AI) 서비스 확대에 따른 인력 과잉 문제가 꼽힌다. 은행들은 최근 수년간 점포수를 줄이고 AI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인력 부담을 줄여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의 국내 점포 수는 5년간 약 600곳이 감소했다. 지난해 1분기에만 91곳이 줄면서 폐쇄 속도도 빨라졌다. 모바일 뱅킹 확대로 은행 창구를 찾는 금융소비자 수가 줄어든 것이 핵심 원인이지만, AI 기능이 개선되면서 단순 업무 인력을 대신하는 상황도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 금융권 수장들도 AI를 강조하고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최근 그룹 경영전략 워크숍에서 생산적·포용금융의 실행력 강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어 전사적 인공지능전환(AX)을 강조하면서 “AX는 금융의 판도를 좌우하는 기준인 만큼 ‘우리는 AI 회사다’라는 마음가짐으로 AI 중심 경영체제를 그룹 전반에 뿌리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신한금융 본사에서 열린 ‘AX혁신리더’ 발대식에서 “신한금융은 지난해 경영진 대상 AI 교육을 통해 AX에 대한 인식과 가능성을 점검했다면 올해는 현장에서 전 직원이 AI를 실제로 활용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며 “100명의 AX 혁신리더가 AI 에이전트(Agent) 활용 능력을 극대화해 그룹 전반의 AX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촉매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자 수익 기반 탄탄할 때 ‘몸집 줄이기’…비용 효율화 박차
최근 호실적에 힘입어 유입된 풍부한 자금이 희망퇴직을 가능하게 하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2024년 은행들이 공시한 경영현황 공개 보고서를 보면 1인당 평균 희망퇴직금은 ▲국민 3억7000만원 ▲신한 3억1286만원 ▲하나 3억7011만원 ▲우리 3억4918만원 ▲농협 3억2240만원 수준이다. 은행원들의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는 것을 고려하면 근속연수에 따른 법정 퇴직금을 더해 5억·7억원 수준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 한 곳당 평균 500여명의 희망퇴직자가 나온다고 어림잡고, 1인당 6억원의 퇴직금이 발생한다고 계산하면 시중은행 한 곳이 퇴직금으로 책정해야 하는 금액이 3000억원 수준이다. 5곳의 시중은행에서 1조5000억원가량을 희망퇴직금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기순이익이 최고 수준인 지금이 한꺼번에 막대한 금액을 지출해야 하는 희망퇴직을 실시하기 적기일 수 있는 셈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사들의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이 18조5592억원 수준일 것으로 전망했다. 2024년 순이익(16조5268억원)보다 2조324억원(12.3%) 늘어 역대 최대 기록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금융지주사의 핵심 계열사로 순이익의 상당부분을 기여한 것을 고려하면 은행 실적이 얼마나 좋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KB금융 5조7548억원 ▲신한금융 5조2654억원 ▲하나금융 4조1228억원 ▲우리금융은 3조4162억원의 순이익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시중은행이 호실적을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몰리면서 상반기 가계대출이 크게 늘었고, 정부가 대출 규제 정책을 강화하면서 금리 인하기에도 수익성 부문에서 선방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하반기에는 증시 호황에 주식 매매 수수료·유가증권 평가이익 등 비이자이익이 늘어나면서 실적 개선에 효자 노릇을 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2년 넘게 지속된 강도 높은 대출규제가 오히려 가격경쟁 부재에 따른 마진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증권이 견인하는 비이자이익도 견조한 실적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기업 자금력이 뒷받침돼야 위로금을 넉넉하게 지급할 수 있는데, 최근 몇 년간 호실적을 낸 은행들이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고정비인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대규모 지출을 단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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