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계열분리, 만능 해법 아니다 [요즘 대기업 이별공식]②
- 공동경영 택한 ‘현대百·GS·LS’
승계 안정·기업가치 지켰다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신세계그룹부터 한화그룹까지 대기업집단의 오너일가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으면서 계열분리 방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 계열분리는 대기업집단이 지주사 및 계열사 지분 정리와 분할 등을 통해 형제·남매가 독립 경영을 하는 구조 개편을 의미한다. 이는 ‘선택과 집중’을 위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다만 대기업집단의 계열분리가 기업 또는 주주가치 상승에 무조건적으로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계열분리 이후 쇠퇴한 기업의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오히려 안정과 실리를 위한 공동경영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더 높인다는 평가가 많다.
위험보다 안정 오너가의 공동경영
유통 업계에서는 계열분리가 아닌 형제간 공동경영을 선택한 대표적인 대기업집단으로 현대백화점그룹을 꼽는다. 2023년 말부터 2024년까지 단일 지주사 체제 구축에 집중한 현대백화점그룹은 형 정지선 회장(현대지에프홀딩스 대표이사)과 동생 정교선 부회장(겸 현대홈쇼핑 회장)이 공동경영을 펼치고 있다. 정지선, 정교선 회장은 지주사인 현대지에프홀딩스 지분(2025년 3분기 말 기준)을 각각 39.7%, 29.1%씩 보유 중이다.
시장에서는 현대백화점그룹의 공동경영 기조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2025년) 현대홈쇼핑이 비(非)백화점 부문을 거느리는 중간 지주사로 자리 잡으면서 계열분리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서다.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분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30%에 가까운 정교선 회장의 현대지에프홀딩스 보유 지분을 정지선 회장에게 넘겨야 한다. 동시에 정교선 회장은 50%가 넘는 현대지에프홀딩스의 현대홈쇼핑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교선 회장은 막대한 세금과 주식 매입 비용 등을 지불해야 한다. 현대백화점그룹의 공동경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현대백화점그룹 외에도 다양한 대기업집단이 계열분리 대신 오너가 공동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재계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공동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범LG가인 ‘GS’와 ‘LS’다.
2004년 LG그룹에서 분리된 GS그룹은 별다른 경영권 분쟁 없이 안정적인 형제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GS그룹은 공동경영 체제에서 급격한 성장세를 실현했다. 특히 2020년 허창수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허태수 회장이 그룹을 맡은 뒤 연간 경영 성과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GS그룹의 연간 매출은 2019년 말 62조원 수준이었으나 2024년 말 기준 81조원을 넘어섰다.
2003년 LG그룹에서 분리된 LS그룹은 10년 주기로 사촌간 경영권을 승계하는 전통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LS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구자은 회장의 경우는 2021년 사촌형인 구자열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았다. 공동경영 방침 하에 연착륙한 구자은 회장 체제의 LS그룹은 지난 3년(2022~2024년) 연속 영업이익 1조원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오너가 제 몫 챙기기, 오히려 ‘독’
이처럼 복수의 대기업집단이 공동경영을 추구하는 것은 안정적인 승계와 계열사간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반대로 계열분리의 경우는 불확실성이 크고 기업가치 저해 우려 등 각종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공동경영 체제를 취하는 이유는 경영권 분쟁 예방 외에도 계열사간 상호보완 등 시너지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라며 “계열분리의 경우 독립 의사결정 및 속도, 전문성 강화 등의 측면에서 이점이 있지만 재무적 안전성과 리스크 분산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공동경영이 전략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라고 말했다.
계열분리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한진그룹이다. 한진그룹은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 별세 후 4형제(조양호·남호·수호·정호)가 각각 ▲항공물류 ▲중공업 ▲해운 ▲금융 등을 나눠 운영했다. 이후 ▲금융위기 ▲업황 악화 ▲경영자 부재 등이 겹치면서 일부 사업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계열분리에 나섰던 한진중공업은 자본잠식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새로운 주인의 품에 안겼다.
학계에서는 오너일가의 승계만을 위한 계열분리를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무분별한 계열분리가 대기업집단의 가치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통계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의 한 보고서다. 해당 보고서는 사업부 단위의 분리 효과를 다루고 있지만 국내 대기업집단의 계열분리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HBR에 따르면 해외 연구진이 2000년부터 2020년 사이에 발생한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 가치를 지닌 상장기업의 스핀오프(사업부 분리) 350여건을 분석한 결과, 분할 추진 기업의 50%가 2년이 지난 뒤에도 새로운 주주가치를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 25%는 오히려 분할 과정에서 주주가치 훼손을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계열분리는 사업 집중이라는 명분과 달리 그룹 차원에서 형성돼 있던 시너지와 규모의 경제를 약화시켜 중장기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부작용이 존재한다”며 “특히 국내 대기업의 계열분리는 자회사 상장과 맞물리면서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키워 자본시장 신뢰를 오히려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계열분리가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지려면 명확한 사업 독립성과 책임 경영이 전제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단순한 구조 쪼개기에 그칠 위험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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