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보험사가 고른 의사” 시대 끝나나…의료자문 구조 대전환
- 금감원·의협 손잡고 의료자문 독립화
소비자 선택권 확대…보험사 통제력 약화 우려도
보험사 ‘무기’로 쓰여온 이유
금융감독원과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월 4일 보험금 분쟁 관련 제3의료자문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그동안 보험사가 사실상 장악해 온 의료자문 구조를 제도적으로 손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외부 의사에게 치료의 타당성과 결과를 검토받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질병 청구건은 보험사가 약관을 기준으로 자체 판단하지만 보험금 지급에 있어 분쟁의 여지가 있는 경우 의료자문을 신청한다. 보험금 지급심사나 분쟁조정 단계에서 의학적 소견을 받는 절차인 셈이다.
다만 의료자문은 사실상 보험사의 ‘무기’로 활용돼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외부 의료자문을 받지만, 자문기관과 자문의 대부분을 직접 선정해 왔기 때문이다. 장기간 거래 관계에 있는 병원이나 의사에게 반복적으로 자문을 의뢰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자문 결과가 사실상 보험사에 유리하게 나올 수 있다.
실제 의료자문 후 부지급률은 상승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의료자문은 손해보험사 26만여건, 생명보험사 8만9000여건을 기록했다. 이 기간 생보사 의료자문 후 전액 지급 비율은 38.2%에서 27.2%로 하락했고, 부지급 비율은 30.7%까지 상승했다. 특히 전체 자문의 77%는 보험사가 자체 선정한 의사에게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 관계자는 “질병을 판단하는 데 있어 보험사보다 의료인 등 전문가가 이 부분을 더 정확하게 심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의료자문제도가 시행되는 것”이라며 “의료기관을 정해두는 것은 자문 신속성을 높이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소비자는 보험사 의료자문 결과에 이의가 있는 경우 제3의 기관에서 다시 의료자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험사의 의료자문과 보험금 지급 결정 적정성을 판단해 줄 제3의 기관 풀(Pool)이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협약으로 소비자가 보험사 의료자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상호협의하에 제3의료기관에서 의료자문을 재실시할 수 있다. 이때 보험사가 비용을 전액 부담한다.
대상은 정액형 보험(실손보험 제외) 중 뇌·심혈관, 정형외과 후유장해 관련 대상 질환으로 제한된다. 금융당국은 올 2분기부터 시범적으로, 4분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한다.
금융감독원이 의협과 손을 잡고 제3의료자문제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금융소비자 보호 기조 속 더는 의료자문 관련 분쟁을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최근 의료자문 관련 분쟁이 늘면서 사회적 비용이 확대됐고, 보험사가 자문기관을 선정하고 결과를 활용하는 구조 자체가 이해상충 논란을 키운 측면이 있다. 또한 금융당국이 올해 금융소비자 보호 기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의료자문제 개편의 이유로 해석된다.
다만 의료자문에 참여한 의사명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기존 제도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의료자문 의사 명단은 비공개다. 앞으로 도입될 제3의료기관 의료자문 제도에 참여한 의사들 명단 역시 개인정보보호 문제와 외부 접촉 가능성 등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는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최소한 자문단 구성 기준과 참여 현황은 공개해야 절차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의료계 측은 명단 공개 없이도 신뢰성을 높일 방안을 당국과 협의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업계는 공식적으로는 이번 협약을 제도 개선 노력으로 평가하며 수용하는 분위기다.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라는 취지 자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경계심이 적지 않다. 단계적으로 의료자문이 독립화될 경우 보험금 지급 인정 범위가 넓어지고 손해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면서 분쟁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한 실손보험 보험금 과다 지급 등을 두고 항상 날 선 대립을 이어온 보험업계와 의료계가 의료자문을 두고 또 한번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아마 보험사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은 ‘보험금 통제력’ 약화일 수 있다”라며 “의료계는 제3의료자문제도를 통해 실손보험에서의 영향력을 높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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